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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기자신문 도전브랜드대상 올해 10월 개최
    [지구일보 이강문 기자] 대한기자신문 도전브랜드대상 [Korea Journalist Newspaper Challenge Brand Award [KJNCBA],大韩记者新闻 品牌挑战大奖]을 2024년 1월 2일 제정했다. 대한기자신문 박현수 기획국장은“브랜드(Brand)는 기업(단체)과 개인이 가지고 있는 위대한 재산 중 하나다.대한기자신문은 도전브랜드대상의 심사기준을 설계할 때는 혁신성, 도전 정신, 사회적 영향력, 지속 가능성등을 핵심축으로 삼았다.”며“역경을 이겨낸 국내외 기업(단체)와 인물들을 발굴하고 홍보하여 도전하는 세계인과 함께 더 나아가 세계 속의 세계인을 재발견하여 도전하는 것을 격려한다”고 밝혔다. 특히 역경을 이겨낸 국내외 기업(단체)와 인물들의 도전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사회, 인류 문명 발전에 이바지함에 그 목적이 있다. 향후 "대한기자신문 도전브랜드대상"은 혁신과 도전 정신을 바탕으로,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는 ‘브랜드기업(단체) 또는 브랜드 인물’에게 수여되는 의미가 높은 상이다. 한편 2025 대한기자신문 도전브랜드대상은 오는 10월 중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시상할 예정이다. ◐[공지] 대한기자신문 도전브랜드대상 주최◑ 대한기자신문 개요 설립 연도: 대한기자신문은 이창호 칼럼리스트가 2024년1월2일에 설립되었습니다. 목적: 기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언론의 자유를 증진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진행합니다. 또한, 기자 및 언론인에 대한 교육과 지원을 통해 언론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주요 활동 뉴스 보도: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보도하여 독자들에게 최신 정보를 제공합니다. 기자 교육: 기자들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언론 관련 행사: 언론의 자유와 기자의 권익을 증진하기 위한 다양한 행사와 세미나 및 특히 ‘도전브랜드대상’을 개최합니다. 웹사이트 접근성 웹사이트: 대한기자신문의 공식 웹사이트는 www.newskorea.cn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최신 뉴스, 기자 관련 정보, 그리고 다양한 자료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한기자신문은 대한민국 언론의 발전과 기자들의 권익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으며, 독자들에게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언론의 질을 높이고,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자 합니다. 이에 따른 도전브랜드대상은 대한기자신문이 주최합니다. 한국의 다양한 브랜드와 기업의 성장을 지원하고, 소비자에게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대한기자신문 도전브랜드대상의 목적은 브랜드 가치 증대: 도전브랜드대상의 주요 목적은 소비자에게 신뢰를 얻고,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브랜드가 시장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소비자 인식 향상: 이 상은 소비자에게 브랜드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고, 브랜드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데 기여합니다. 혁신과 도전 장려: 도전브랜드대상은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브랜드를 발굴하여, 이들이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역할도 합니다. 이는 브랜드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합니다. 대한기자신문 도전브랜드대상은 브랜드의 신뢰성과 가치를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소비자와 기업 간의 신뢰를 구축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을 통해 대한민국 브랜드는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이메일로 문의를 하시면 이와관련 공문을 발송해 드립니다. kcu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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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14
  • 이 한 편의 수필, 김봉구 수필가의 '학습효과'
    학습효과 김 봉 구/ 수필가. 고려대 명예교수 나는 열정적으로 강의를 한다. 내용이 복잡한 경우에는 핵심변수를 중심으로 내용을 단순화시켜 문제의 본질을 이해시킨다. 그다음에 주요 변수들 간의 관계를 분석하고 인과관계를 설명한다. 내용을 서술적으로 단조로운 톤으로 설명하는 것은 대단위 강의에서는 금물이다. 강조할 때는 개념을 명확히 하고 적절한 사례를 들어 설명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주제를 열정적으로 설명하다 보면 멈출 수 없어서 강의시간을 10여 분을 초과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시간이 지나면 자리를 뜨는 학생이 있었으나 차츰 내 강의 특성을 알게 된 후부터는 진지하게 머물러 수강했다. 특강이 있는 날은 학생들의 경청하는 분위기가 진지하다 못해 후끈 달아오르는 느낌 마져 든다. 학생들이 교실에 들어오기 바쁘게 앞자리를 차지하려는 경쟁이라도 하는 것 같은 분위기다. 바른 자세를 잡고 시선을 집중하면서 열중하는 모습이 숙연하다. 문제분석을 통해 주제를 깔끔하게 정리하면 흥미를 갖기 시작한다. 실제 데이터를 활용해서 주제를 분석하고 결론을 도출해 내면 학생들은 흥분을 넘어 감격에 젖어 들게 된다. 학생들은 필기하느라 정신이 없다. 강의가 끝난 후에도 여러 학생이 앞으로 나와 많은 질문을 제기하면서 관심을 표시한다. 강의를 잘하려면 전문분야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고 인접 학문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야 한다. 다음으로 외부강연에 대한 경험도 필수다. 명강의는 아는 것에 더해서 강의 경험이 잘 어우러져야 가능하다. 이것은 오랫동안 내가 대학강의에서 경험한 견해이다. 내가 맡은 핵심교양 두 과목은 강의 계획서의 내용 중에는 정부의 고위공직자들에게 강연한 주제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부분이 대학가에서 큰 인기를 얻는 요인이 됐다. 한 주제에 대하여 이론 역사 정책을 종합적으로 분석함으로써 학생들은 흥미를 느끼게 된다. 대학가에서 항상 토막전문지식 위주의 강의를 벗어나지 못한 대학생들에게는 매우 신선한 접근이다. 특히 현실응용에 목말라 하던 학생들에게는 가뭄에 단비와 같이 받아들여 진다. ‘사회의 이해’ 영역은 K대 전체로 보면 300여 명의 교수가 관련되는데 그들이 강의하는 900여 전공과목의 내용과는 다르다. 달리 말하면 300여 명의 교수가 법학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경영학 등 사회과학과 내용이 중복되지 않으면서 교양과목의 특성을 아우르도록 설계해야 한다. 해마다 많은 교수가 다양한 핵심교양과목을 개설하지만 성공 여부는 학생들의 수강신청에서 결정된다. 학생들의 평가내용은 SNS 등 미디어에 소개되고 이는 결국 수강신청에 영향을 미친다. 학생들의 몫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성공하는 개설과목이 있는가 하면 추풍낙엽처럼 사라지는 과목들도 많다. 자유경쟁이다. 내가 담당하는 ‘자연자원과 경제생활’ ‘시장경제와 공공선택’의 두 과목은 처음에 한 학생이 ‘그 선생님은 말만 잘하지 내용은 평범하다’는 댓글을 올렸다. 그러자 법대생들이 ‘한 주제를 이론, 역사, 정책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결론을 제시하면서 강의하는 교수님이 고려대에 누가 있느냐고 지적하는 글이 올라왔다. 체계적으로 종합분석하여 결과까지 도출해 내는 분이 김 교수 외에 누가 있느냐는 내용이 이어졌다. 많은 지지 반응이 일어났고 뒤 따라 오는 법대 경영대 학생들의 주장에 처음 올렸던 글이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면서 내 강의가 학생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대학강의에서 학생들과의 신뢰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는 두 시간 동안 100% 무언으로 강의한 적이 있다. 그 날은 몸 컨디션이 매우 좋지 않았다. 나는 휴강할 수 없었다. 학생들의 800시간을 허공에 날려 보낼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강의실에 들어섰다. 대형칠판을 네 단원으로 구획한 후 차분히 필기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내용을 잘 파악해서 깔끔하게 정리했다. 400명이 수강하면서도 강당 내는 조용하게 필기하는 분위기였다. 나는 한 단원씩 차례대로 강의 노트를 칠판에 써 내려갔다. 누구도 의의제기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학습효과 때문이 아닌가. 그전에는 시간을 초과해가면서 열심히 강의했던 모습이 오늘은 완전히 바뀌었다. 강의가 끝났다. 왼손을 들면서 평소에 하던 그만, It’s over.라는 소리도 내지 않은 체 강당을 나왔다. 핵심교양 개설 초기에는 경험 미숙으로 과목에 신청한 학생 모두를 수강생으로 받아들인 때가 있었다. 핵심교양의 ‘사회의 이해’ 영역은 전교생을 대상으로 한 강의인데 사회의 변화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비판적 사고력을 배양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 나는 핵심교양 두 과목을 학기별로 두 반씩 번갈아 강의했다. 연간 수강생이 1600명이었다. 본교 캠퍼스에서는 가장 많은 인원이 수강하는 과목이었다. 나는 핵심교양과목을 강의할 때는 매우 긴장한다. 매 학기 철저히 강의안을 개선하고 새로운 사례 발굴 노력도 한다. 성적평가는 엄격하다. 나는 교양과목에서 C 이하의 성적은 졸업 후 취업이나 진학에 장애가 된다고 지적한다. 성적관리의 기준은 D 또는 그 이하 등급을 받은 5-7% 학생들에게는 F 학점으로 처리한다고 주지시킨다. 내가 느끼는 것은 강의 주제가 신선해야 하고, 이론 역사 정책 함의를 내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핵심교양 강의가 나에게 준 의미는 열정을 쏟아부은 결과 학생들의 호응이 긍정적이었다는 점이다. 수강신청 시작 5분 내에 등록이 마감된다. 다른 하나는 학교 당국을 안심시킨다는 사실이다. 성적을 후하게 주어서 학생들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열정적인 강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겠는가. ▼김봉구 약력 고려대 졸업, 미국 미주리대학교 자원경제학 박사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 수필로 등단,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고려대 학생처장, 고려대 노동대학원 원장 역임 현)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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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12
  •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 김용기 씨 수필가 등단 계간 에세이문예 제80회 에세이문예신인상 수필 부문 당선
    [대한기자신문 이산 기자]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지도교수 권대근)에 재학 중인 김용기 씨가 제80회 에세이문예신인상 수필 부문에 당선되었다. 유네스코부산 우수잡지로 선정된 바 있는 계간 에세이문예는 7월 20일 김씨에게 당선통지서를 발송했다고 밝혔다. 계간 에세이문예 가을호로 등단하게 되는 김용기 씨는 작년부터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에서 수업을 받고 있다. 김용기 씨는 <살다 보면> 외 1편으로 신인상에 당선, 수필가로 등단한다. 김 수필가는 경영학박사로 사업가로 활동하고 있는 중이다. 김용기 씨는 당선소감에서, “문학에 대한 취미는 있었으나 사업을 하다가 공부하고 바쁜 생활 하다가 지인의 소개로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수생반에서 권대근 교수님 지도로 수필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배우기 전에는 체험이나 이야깃거리들을 사실 그대로 나열하는 것이 수필이라 생각했는데 배우고 나서 자신의 체험을 철학적인 사유와 관조를 통하여 재해석하고 독자가 감동할 수 있는 문학적인 문장으로 옷을 입히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인생의 기쁨과 슬픔, 고독과 아픔을 문어로 표현하면서 뭇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기란 결코 쉽지 않다. 앞으로 희망은 어떠한 시련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용기와 담대함으로 칼보다 예리한 통찰력과 살아있는 문어로 세상을 향해 깊은 울림을 주고 싶다. 수필가로 등단의 길을 이끌어주신 에세이문예 권대근 교수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더욱 정진하여 좋은 문학작품으로 보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썼다. 김용기 수필가는 권대근 심사위원장으로부터 “김용기 씨의 수필은 일상을 소재로 해서 정서와 그를 통해 획득되는 깨달음이 유감없이 기술된 글이라 할 수 있다. 수필의 고유한 영역과 특성을 제대로 살렸기에 그녀의 글은 향기를 지닌다. 수필을 인간학이라 부르는 소이도 수필의 내용이 인간에 대한 성찰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흔히 수필은 자신의 심적 나상이라고도 하고 독백의 문학이라고 하는데, 김용기의 수필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자기의 드러냄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비워내기를 통한 부부애의 소중함을 수필적 소재로 취택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현대는 단절과 소외로 특징되는 시대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김용기 작가 역시 아내의 사고를 경험하고 치료를 돕는 과정에서 주변 동료들의 삭막함에 많은 깨달음을 획득한다. 이런 현실 속에서 수필을 쓴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가 순수의 사랑에 푹 빠져들고 있는 이유는 누구보다도 착한 심성이 그 원천으로 작용한 때문이라고 하겠다. 이 수필은 살다 보면 자신도 미쳐 알지 못하는 세상의 무정함에 분노하고, 진실 찾기로부터 삶의 의의를 깨닫는 측면에서 유의미한 글이다. 자기발견의 소중함이 어떤 것인가를 엿볼 수 있게 하기에 인식 구조로서의 문학적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 수필의 핵심은 묘미는 반전에 있다. 전개부에 ‘때로는 신기할 정도의 예지몽을 꾸는 때도 가끔 있다. 세상사에 꿈 이야기만큼 신비한 게 있을까. 살다 보면, 남자들의 군대이야기만큼이나 인생사에 널브러지게 많은 게 꿈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겠는가.’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수필은 골프이야기에서 비롯되어 예지몽으로 마무리되는 데 특징이 있다. 함께 골프 여행을 가서 아내가 골프공에 머리를 맞는 사고를 당하자 보인 남편의 행동이 감동과 재미를 준다. ‘그동안 생과부로 살 듯이 외롭게 살아온 아내의 행복한 인생을 위해 수호신의 역할을 해준 예지몽은 골프장 출입을 삼가라는 무언의 점지’로 여기는 데서 가장으로서의 자세가 빛난다. 가족의 안위 문제라면 미신까지도 수용할 수 있다는 의지가끈적하게 녹아있어 감동을 주고, 사랑의 향기와 긍정의 미학이 펼쳐져 있어 공감을 준다. 부부애와 긍정의 미학을 주제로 하는 수필은 현대사회의 특성상 필연적으로 자주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신의 반쪽을 위해 사는 삶, 진정한 의미의 부부애를 보여주어 감동을 준다. 주제를 의미화하기 앞서 그런 인생관을 갖기까지의 과정이 매우 인상적이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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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23
  •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 한청수 씨 수필가 등단 계간 에세이문예 제80회 에세이문예신인상 수필 부문 당선
    [지구신문 이산 기자]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지도교수 권대근)에 재학 중인 한청수 씨가 제80회 에세이문예신인상 수필 부문에 당선되었다. 유네스코부산 우수잡지로 선정된 바 있는 계간 에세이문예는 7월 20일 한씨에게 당선통지서를 발송했다고 밝혔다. 계간 에세이문예 가을호로 등단하게 되는 분은 작년부터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한청수 수필가이다. 한청수 씨는 수필 <구절초와 어머니> 외 1편이 신인상에 당선, 수필가로 등단한다. 한 수필가는 현재 교직 퇴임 후 옥조근정훈장 수훈하고 글쓰기 전념하고 있다. 한청수 씨는 당선소감에서 “점점 쇠약해 지는 육신의 변화에 적응하고 더불어 헤쳐가려면 숨 고를 창이 필요했습니다. 한 길 교직만이 내 길인 양 앞만 보고 걸었습니다. 가슴 한켠 글을 쓰고 싶은 내 꿈에 굳은 살이 박힐 때 권대근 교수님을 만났습니다. 행운이었숩니다. 기쁨 하나에 서러움 서너 개가 따라온대도 글 쓰는 기쁨 놓치지 않으리라.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다듬어지지 않은 글을 뽑아 주신 것은 실망하지 말라는 격려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가슴에 묻어둔 못다한 이야기들 여지껏 잘 못살아온 일들을 반추해 보고 반성하기 위해 시작한 글쓰기입니다. 넘어질 때 열성과 정열로 일으켜주신 권대근 교수님과 흔들릴 때 합평으로 격려해 주신 문우 회원님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했다. 한청수 수필가는 권대근 심사위원장(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으로부터 “한청수 씨는 교직에 계셨던 분으로 대단히 글을 잘 쓴다. ‘별이 지나간다. 차곡차곡 가슴에 한을 누르고 누구에게도 내색하지 않고 저세상으로 가신 어머니 얼굴이 구절초밭에 덮여온다.’라는 진술에 담긴 함의는 ‘구절초를 심어 어머님이 보고 싶을 때마다 곁에 두고 보고 싶다.’로 연결되면서 결말부가 사모곡이라는 주제의식을 구체화한다. 한청수는 ‘생명력이 강해 하나만 심어 두어도 몇 해만 지나면 무더기로 피어나는 구절초 꽃을 보면, 시앗의 위세에 눌려 병을 얻고 9년 동안 홀로 투병하다 세상을 떠난, 기구한 삶을 모질게 살아낸 어머니를 그려낸 게 드러난다. ‘세찬 가을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려도 꽃잎 하나 흔들림 없이 고상한 기풍을 유지하고 찬 서리 이슬에도 인내하며 은은한 향내를 풍기는 어머니의 삶을 그녀는 ‘구절초’로 비유하여 잘 형상화해내었다. 전이의 미학이 담긴 이 작품의 쾌미는 ‘변덕스러운 시어머니와 일도 많고 탈도 많은 5섯 고모의 서리발보다 더 고된 시집살이를 참아내신 내 어머니의 모습’을 ‘척박한 돌짝밭에서도 예쁜 한송이 꽃을 피어내고 마는 구절초를 닮았다’는 진술에 잘 담아냈다. 수필 속의 ‘어느 것 하나 버리는 것이 없다. 무엇이든 당신이 가지신 건 아낌없이 펴주기만 하시든 어머님을 닮았다.’는 표현은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정서적인 접근성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매우 성공적인 주제의식의 구체화 전략이라고 하겠다. 한청수가 이 수필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시집살이 속에서 힘들게 살아낸 이야기를 들여주고자 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녀는 사모곡을 통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수필 속에 녹여내고 있다. 이 수필은 존재 본질로서 어머니의 사랑과 지혜를 깨닫고 작가가 삶의 본래적 가치를 찾아간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이 작품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그리움의 미학뿐만이 아니다. 잊고 있거나 잊혀 가는 것에 대한 향수와 우리가 진정 돌아가야 할 세계에 대한 발견과 인식이 이 작품의 존재 의의이며 가치인 것이다. 오랜 시간을 함께했던 운명적 존재에 대한 애착이기도 하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삶의 옆에 또는 삶의 한복판에 자리 잡은 중요한 정서이며, 그 정서의 힘이 자신의 수필 속에 절실하게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한청수의 내면적 나상 속에 들어 있는 구절초에 대한 그림자 형상이 수필의 제재로 선택된 것은 한청수가 자신의 심층 무의식에 남아 있는 어머니의 영상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으로 보인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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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23
  • 李昌虎委员长《邓小平评传》出版:邓小平诞辰120周年最新评传
    韩国图书出版社북그루日前表示,由韩中交流促进委员会委员长李昌虎著述的新书《引领中国现代化建设与经济大国化的小巨人——邓小平评传》即将出版。 《评传》作者、韩中交流促进委员会委员长李昌虎,是在韩国国内外讲授人文学与领导力的知名人物,其希望通过深刻探讨邓小平的生平及其领导下的中国变革,为读者提供对邓小平人格和统治力的深入理解。 2024年8月22日是邓小平诞辰120周年纪念日。邓小平对中国历史、乃至世界历史都产生了巨大的影响。他是帮助理解中国在政治、社会和经济方面影响力的重要人物,被评价为引领中国“现代化建设和经济大国化的小巨人”。中国至今仍还致力于宣传和弘扬他的思想和领导力。 引领20世纪后期中国动荡时代的邓小平还被评价为通过改革开放政策使中国摆脱贫困、迈向经济强国的领导人。邓小平的经历不仅可以帮助我们理解中国现代史和政治的复杂性,同时也为国际局势复杂多变的现代社会和政治提供了许多启示和教训。 此书将超越邓小平的个人故事,成为帮助理解20世纪后半期中国现代史的必备资料。邓小平于1904年出生在中国四川省,从小生活贫困。他于1924年赴法国留学时接触到社会主义思想,回国后加入中国共产党,并开始参加革命活动。 1978年,邓小平成为中国共产党最高领导人后,随即推出了划时代的改革开放政策,将中国经济转变为市场经济体制。邓小平的改革开放政策在帮助中国摆脱贫困和推动经济增长方面取得了巨大成功,但是在这一过程中也相应地出现了社会不平等加剧和腐败等问题。 作者李昌虎表示“在评价邓小平这个人物时,我们要承认他的成就和理念等存在争议,这本评传将尽量以客观和中立的立场来呈现邓小平的生平和成就”。他还指出,“在长征、抗日战争、国共内战等中国现代史上的重大事件中,邓小平都展现出了卓越的军事统治力和政治实用主义”。 李昌虎还补充说,“韩国不可避免地会受到中国一些政策动向的最大影响。只有通过对未来的细致分析和周密应对,才能在列强的角力中确保韩国的全面发展和国民的安全。” 李昌虎委员长的新作《引领中国现代化建设与经济大国化的小巨人——邓小平评传》目前已可以在线上及实体书店购买,教保文库、Yes24、阿拉丁、永丰文库等韩国四大大型书店均有销售。 BOOKGURU/李昌虎著/284页/22,000韩元(精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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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7-18
  • 푸바오 중국행,' 영원히 기억할게 너와의 1354일'
    사진: 지난 3월 3일 일반 공개 마지막 날 '푸바오'의 모습. 삼성물산 리조트부문 제공 [국제연합뉴스 조은지 기자] 푸바오는 2016년 3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중 친선 도모의 상징으로 보내온 판다 러바오와 아이바오 사이에서 2020년 7월 20일 태어났다. 용인 에버랜드에서 태어난 첫번째 자이언트 판다 푸바오가 지난 3일 중국으로 떠났다. 에버랜드에서 태어나 생활한 지 1천354일 만이다. 이날 오전 10시 40분부터 20분간 에버랜드는 푸바오 팬들을 위해 판다월드에서 장미원까지 구간에서 푸바오 배웅 행사를 열었다. 이후 인천공항에 도착한 푸바오는 중국 측이 제공한 전세기에 올라 중국으로 출발할 예정이다. 에버랜드는 중국 측 요청에 따라 전세기 비행 일정 등은 비공개하기로 했다. 어제 늦게 중국에 도착하는 푸바오는 앞으로 쓰촨성 자이언트판다보전연구센터 워룽 선수핑 기지에서 생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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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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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구일보] 이 한 편의 수필, 김봉구 교수의 '오르지 못할 나무'
    오르지 못할 나무 김봉구/수필가, 고려대 명예교수 대학은 입학전형을 거쳐 체육특기자를 학생으로 선발할 수 있다고 한다. 그는 운동선수로서 소질과 우수한 기량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운동에 전념하느라 중고교학업에 소홀한 점이 눈에 뜨인다. 특기자로 뽑힌 학생들은 경기에서 뛰어난 기량을 발휘할 때는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하다. 대학재학 시에는 학교로부터 여러 가지 특전을 받는다. 학비면제 등 경제적 혜택을 누리기도 한다. 성적이 나빠도 최소한 학교에서 졸업은 보장해주는 것 같다. 선수로 활동하는 한 졸업하면 프리미엄을 받고 전문팀에 채용되기도 한다. 그다음이 문제다. 선수 생활을 계속할 수 있도록 전문팀으로 진출하거나 코치나 감독으로 승진할 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사태가 일어나면 어려운 상황에 몰리게 된다. 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기력향상을 위한 체력단련과 기술을 연마해야 하지 않을까. 신체적으로 최대의 기량을 유지하는 것은 끊임없는 노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운동경기나 연습 중에도 신체부상을 당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부상을 당하면 치료로 회복해야 한다. 결정적인 부상으로 운동선수 생활을 할 수 없게 되면 특기생 신분에서 바뀌게 된다고 한다. 이때는 학습을 따라가지 못해서 학업을 중도 포기하는 경우도 있지 않겠는가. 운동선수 생활은 기량이 뛰어난 경우에는 사람들의 높은 인기를 토대로 매우 영예스러울 수 있다. 한편 학업은 따라가기 어려워 애로를 겪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체육특기자에게는 성적처리 지침의 혜택이 있지만, 일반 운동선수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학생들과 같이 학습하고 시험에 참여하여 학점을 취득하여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말미암아 운동선수들의 졸업년도가 뒤로 밀리기도 한다. 대체로 운동선수는 중 고등학교 시절부터 선수활동을 해온 경험이 있다. 그때부터 학업능력 향상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수학능력에서 보면 일반 학생들보다는 뒤떨어지는 것을 누구나 느낄 수 있다. 졸업 후 선수생활을 하지 않는 경우는 성적이 좋지 않아서 취업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 에세이에 등장하는 사람은 K대에서 체육특기자로 선발되어 온갖 특혜를 받고 대학생활을 마쳤다. 졸업 후 실업계 운동선수로 진출하여 생활을 계속하는 것이 가장 좋다. 오랜 선수경험에 이어 코치 감독으로 진급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 그는 졸업 후 선수생활을 계속할 수 없게 되자 군대를 다녀와서 공무원 시험을 거쳐 교육부에서 근무하였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사무관으로 진급하게 되었다. 그때까지는 성공적인 삶을 살아왔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체육 행정업무를 진행하던 중에 한국체육대학이 발족하면서 그 대학의 ‘전임강사 발령’을 받았다. 교수로 전환하는 계기를 맞았다. 영전을 축하받는 분위기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교수직업은 시간이 지난다고 전문지식이 채워지지는 않는다고 믿는다. 고교 시절부터 바닥에는 철저한 기초지식이 깔려 있어야 하고, 대학에서는 그 기초위에 교양과 전공영역의 실력을 쌓아야 한다. 그다음에 대학원에서 전공 학문을 심화시킨다. 그래야 교수 자질이 갖추어지지 않겠는가. 체육특기자로 선발될 정도의 기량을 갖춘 선수는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거의 학과목 수업을 듣지 못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 아닌가. 개탄스럽다. 이를 고려하면 앞이 캄캄하다. 교수직업으로의 전환이 행운이고 축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인생에서 극단적 한계를 노출 시키는 불운의 서막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고 충고하고 싶다. 실현 가능성이 낮은 목표는 포기하는 게 좋다는 뜻이 아닐까. 그는 전임강사 3년이 지나자 조교수로 승진하고 다시 6년이 지나자 부교수로 진급했다. 너무나 쉽게 풀린다고 판단하는 것 같았다. 그는 고등학교와 대학과정에서 제대로 학업에 전념한 적이 없었다. 영어 수학 과학 등 학문적 기초가 전혀 형성되어 있지 않은 것이 확실해 보였다. 자신을 뒤돌아보지 못한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처지인 것 같았다. 그는 전공 지식과 박사학위를 절실하게 요구하는 것으로 외부에 비춰졌다. 다만 지금까지 운이 좋아서 현 위치까지 오게 된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박사학위 획득이 누구에게나 가능하다고 착각했을 수도 있다. 현재 교수 위치에 있으므로 막연한 기대감으로 미국유학을 결정한 것이 아닌지 묻고 싶다. 주택을 처분하고 중 고교를 다니는 두 자녀와 아내를 동반한 가족 전체가 미국으로 떠난다. 금의환향을 꿈꾸며. 이 점괘를 파 해쳐 보는 것이 이 글의 핵심 포인트가 아닐까. 미국대학에서 느끼는 학문의 세계는 매우 엄격하다. 수학하는 사람은 누구나 일정한 자격 기준에 도달해야 한다. 대학원에서 교과목 성적이 우수해야 하고 요구하는 논문의 질이 일정한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 그 후에 논문심사를 하고 박사학위 수여를 결정한다. 그는 미국유학 5년이 경과 되어도 교과목 이수와 박사학위 논문이 일정 수준에 이르지 못하였던 것으로 보였다. 대학에서 박사학위 탈락자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냥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중요한 것은 박사학위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가족 전체가 귀국할 때의 허탈한 모습은 나로서는 상상하기도 싫다. 바로 이점이 처음부터 ‘오르지 못할 나무’가 아니었는지라고 시사해 주고 싶다. 교수직업은 고도의 전문지식을 요구하는 직업이라고. 모든 것은 마음가짐에 달려있다. 자신의 처한 현실을 똑바로 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르는 것이 핵심이다. 자신의 취약점은 무엇인가. 이를 보완할 수있는 방법은 어떤 것인가. 운 좋게 학문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더라도 처음부터 실력을 쌓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위치에 걸맞은 명예를 절대 누릴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인생의 교훈이 아니겠는가. ▼김봉구 약력 고려대 졸업, 미국 미주리대학교 자원경제학 박사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 수필로 등단,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고려대 학생처장, 고려대 노동대학원 원장 역임 현)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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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22
  • [지구일보] 이 한 편의 수필, 고수부 수필가의 '대못'
    대못 고수부/ 수필가 군에서 장기복무를 지원한 이유가 몇 가지 있지만 그중 하나는 20년 이상 근무하여 연금수혜자가 될 때까지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중간에 도중 하차하지 않아야겠다는 결심이 무너질까 봐서였다. 내가 임관할 때 마침 ROTC 장교를 대상으로 장기복무 지원자를 최대한 획득하라는 정부 방침이 있었다. 본인이 일단 장기복무 지원 결정만 하면 여러 가지 혜택을 주는 대신에 10년까지는 제대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나는 정년까지 각오했기 때문에 장기복무 지원서에 서명했다. 중간에 내 마음이 변할까 봐 장기복무라는 안전장치를 함으로써 나 자신을 강제적으로 묶어놓았다. 예상한 대로 임관 이후 3년 되는 해에 제대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월남전에 참전하여 전투 근무를 마치고 귀국했을 때다. 전쟁터에서 죽을 고생을 하고 왔으니 편안한 보직을 받아 근무하고 싶었지만 내 희망과는 달리 전방지역으로 발령이 났다. 부상을 입고 야전병원에서 입원했다가 귀국하여 건강상태도 안 좋아 사기가 저하된 상태였다. 그러한 상황에서 다시 전방 근무를 하려 하니 낙심이 되어 근무할 의욕이 상실되었다. 결국 군을 떠나야겠다는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미 장기복무를 지원했기에 아무리 노력해도 제대를 할 수가 없었다. 이때 장기복무라는 장치가 없었더라면 더 견디지 못하고 전역했을 것이다. 할 수 없이 군 명령에 따라 발령지로 가서 근무하게 되었다. 전방에 가서 처음엔 힘들었으나 차차 환경에 적응하게 되었고 의욕을 회복했다. 전방에서 근무한 지 얼마 안 되어 운 좋게 미 육군공병학교에 가는 시험에 합격하여 미국으로 떠나는 행운이 따랐다. 미국 생활은 월남 전쟁터와는 전혀 다른 호화로운 세계였다. 워싱턴 부근 훠트벨바에 있는 육군공병학교에 다니면서 월남에 있었을 때 펜팔로 사귄 ‘헤디’를 극적으로 만나 멋있는 로멘스의 추억도 만들 수 있었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도 있듯이 고통의 산을 넘으면 넓고 풍요로운 평야가 나오는 법이다. 미 공병교육 과정을 마치고 귀국하여 김해 육군공병학교 교관으로 근무하면서 상황은 또 달라졌다. 서울에 가정을 두고 있어 경상남도 김해까지 오가며 매주 주말 부부로 산다는 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다. 지금처럼 CTX 고속철도가 있지도 않은 그때는 무려 7시간을 타고 가야만 김해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매주 토요일이면 오전 근무가 끝나기 바쁘게 뛰어나와 부산역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 집에 도착하는 시간이 밤 10시다. 하룻밤 자고 그다음 날 낮차를 타야 하겠지만 신혼생활의 꿀 같은 그 시간에 한 시간이라도 더 머무르고 싶어 야간열차를 탄다. 한겨울 늦은 밤에 매섭게 부는 찬바람을 맞으며 집을 나서는 심정은 비참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주 이런 생활을 하기가 지겹고 왜 군에 들어왔던가 하는 후회심이 밀려왔다. 의무기간 10년은 넘었기에 제대가 가능했다. 또다시 제대해야겠다는 두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그때 마침 중학교 영어교사로 있는 동기생이 그럴듯한 제안을 했다. 대학원에 들어가 영어교육 석사 학위를 취득하면 중등교사 자격증이 나온다. 당시에는 과외수업이 한창이어서 영어교사만 되면 수입도 괜찮다고 권했다. 그때는 서울 용산에 있는 미 8군 본부에서 연락장교로 근무했기에 곧바로 Y대학원 영어 교육과 시험에 응시하여 들어갔다. 그러나 한 학기가 끝나갈 즈음에 동기생이 소령 진급 소식이 들렸다. 나는 전방 중대장의 필수직을 이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탈락되었다. 이러다가 자칫 군에서 진급도 못 하고 대학원을 나온다고 해도 영어교사 취업이 된다는 보장도 없으니 자칫 낭패를 보겠다는 불안한 생각이 엄습했다. 바로 마음을 바꿔 전방으로 갔다. 2군단 천전지역에서 공병 중대장 보직을 받아 근무한 후 소령으로 진급이 되었다. 이어서 군단 작전처, 육군대학, 대대장, 육군본부, 국방부를 거쳐 승승장구하는가 했더니 대령 진급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결국 25년간의 군 생활을 마무리하고 계급정년으로 퇴역했다. 그러나 처음 목표했던 20년은 훌쩍 넘겼으니 일차적 목표는 달성했으며 이는 그동안 몇 번의 위기가 있었으나 처음부터 장기복무라는 대못을 박아놓았기 때문에 그때마다 버틸 수가 있었다. 군에서 퇴역한 후 전쟁기념관에 재취업이 되었다. 그곳에서 11년까지 근무할 수 있었으나 10년을 마친 후 마지막 정년 1년을 앞두고 또 사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념관 건설이 완성되고 업무가 안정되자 편안함을 누리고 싶은 안이한 마음이 스며들자 일이 손에 잘 잡히지를 않은 데다가 신임 사무총장이 부임해 와 과도한 일거리들을 만들어내어 힘들게 했다. 창설 초기에는 이보다 더 어려운 일도 해냈으나 끝나가는 지점에서 더 이상 일하고 싶은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고심 끝에 정년 1년을 앞두고 사표를 내고 나와버렸다. 생각해보면 군에서는 목표로 정한 20년을 초과하여 25년간의 근무를 마침으로써 그 목적 달성에 성공하였으나 그다음 제2 직장에서는 마지막 정년 1년을 못 채우고 사표를 내고 말았으니 실패작이었다. 첫 번째 직업에서는 장기복무라는 대못을 쳐놓았기 때문에 성공했고 두 번째 직업에서는 그러한 장치가 없어서 무너지고 말지 않았는가. 인간의 마음은 나약해서 어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인위적인 강력한 안전장치가 없으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것을 여기서도 알 수 있다. 수필을 시작한 지 20년째가 된다. 그러나 가끔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슬슬 스며들어온다. 이제 나는 또 하나의 대못을 치기로 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신념의 마력’이라는 책이다. 나는 오늘도 그 못을 글 속에 박으며 다시는 흔들리지 않겠다는 마음을 굳히고 있다. 글을 쓰다가 지치고 포기하고 싶을 때는 이 책을 펼치고 빨간 줄을 쳐놓은 부분을 읽다 보면 새로운 힘이 샘솟는다. ▼고수부 약력 ROTC 3기로 월남 맹호부대 참전했으며, 고려대와 동국대 대학원, 육군대학을 졸업하고 국방부 관리정보실에서 육군 중령으로 예편했다. 2003년 순수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수생반 회원, 순수문학 우수상, 2004년 전쟁문학상, 제20회 순수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자발적, 원고료로 응원해 주세요! 계좌 : 우체국 110-005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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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20
  • [지구일보] 이 한 편의 수필, 김봉구 박사의 '배움의 환희'
    배움의 환희 김봉구/ 수필가, 고려대 명예교수 어느 날 한 연구원이 유학 문제를 상의하겠다고 나에게 면담요청을 해왔다. 그는 만 40세의 연구원으로 부인과 두 자녀를 두고 있으며 주택을 소유하고 있었다. 미국으로 박사학위를 위해 사직하고 유학을 떠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나는 답변하기를 주저했다. 배우는 것도 시기가 있는데 너무 늦었다고 지적했다. 집을 처분하고 가족을 동반해서 박사학위 하러 떠나기에는 리스크가 크다고 했다. 그런데도 그는 뜻을 굽히지 않고 다시 와서 추천서에 서명을 부탁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이 일을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다가 하나를 제안했다. 오늘 저녁에 별도로 만나서 깊은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만날 장소를 여러 식당을 떠 올리다가 양주집으로 정했다. 겨울 어느 날 오후 5시에 만나서 양주 한 병을 앞에 놓고 마음속의 대화를 시작했다. 그 자리에 2페이지 분량의 자기소개서와 3페이지를 꽉 채운 이력서, 장문의 입학지원서를 내놓았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이미 영문으로 작성된 나의 추천서까지 제시했다. 이들 서류를 영문으로 작성한 배경을 그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연구원에 미국 박사 7명이나 있어서 그들에게 부탁해서 작성했고 리뷰까지 마쳤다고 했다. 교수님의 추천서도 이 과정을 거쳐 작성했으니 선생님은 서명만 해주시면 된다고 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는 그가 평소에 너무나 현명한 것을 넘어서 민첩하게 행동하기에 나는 어떻게 설득할 수 있는지를 생각했다. 이제 마음속을 드러낼 결심이 섰다. 8시 30분이다. 자네의 자기소개서나 이력서를 보면 교수급에 해당할 정도로 지나치게 과장되어 묘사되고 있다. 이것은 안 된다. 이처럼 과장된 채로 미국대학에 보내면 신뢰를 완전히 잃게 된다. 나는 잠시 정부출연 연구기관에서 자원경제연구실장을 맡은 적이 있다. 그는 그때 같이 근무한 연구원이다. 서울대 농학과를 졸업하고 다른 기관에 종사하다가 자원경제연구실에 합류하였다. 당시 경제기획원으로부터 공공차관으로 진행된 중규모 수리시설 투자에 대한 경제분석연구를 위탁받아 수행했다. 연구보고서는 영문으로 작성하여 경제기획원에 보고하게 되어 있었다. 그는 영문보고서 작성이나 발표회를 보면서 자기도 영어 실력을 쌓고 싶은 배움의 욕망을 잔뜩 키우고 있었다. 그 후 전문지식이 필요한 그는 K대 식품자원경제학과에서 석사학위과정을 마쳤다. 나는 지도교수로서 학부의 미시경제학, 재정학, 통계적 방법 등은 연구 수행에 꼭 갖추어야 할 기초지식이라고 지적했다. 백지 위에 볼펜을 꺼내놓고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쓰기 시작했다. 자기소개서는 간결하게 다섯 줄로 끝냈다. 불필요한 내용을 넣으면 안 된다고 했다. 그리고 이력서는 거의 모든 줄을 빨간 펜으로 그었다. 전부 다시 써야 한다고 했다. 그 자리에서 자기소개서 와 비슷하게 단순하고 명확하게 핵심사항만 서술했다. 더 가관이었던 것은내 이름으로 작성된 추천서 내용이었다.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부풀려 작성한 글이었다. 이렇게 추천서를 써서 보내기에 미국 교수들이 한국 사람을 전혀 안 믿는다고 했다. 그 자리에서 내가 일곱 줄 정도로 간결하게 추천서를 써서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미국대학에 입학지원 서신을 보냈다. 그 내용은 군더더기를 배제하고 새롭게 쓴 자기소개서 간략한 이력서 입학지원서와 성적증명서를 포함하고 있었다. 나는 별도로 지원대학에 추천서를 발송했다. 한 달 후 기적에 가까운 회신을 받았다. 박사과정 입학허가와 더불어 대학원 조교로 선발되었다는 통보였다. 그는 내 연구실에 와서 철저하게 고쳐주고 가르쳐 주셔서 이런 영광을 얻게 됐다고 감사를 표했다. 그때의 분위기 같으면 미국유학은 3년이면 끝날 것 같았지만 실제는 5년 후에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서 수석연구원으로 승진할 수 있었다. 그는 박사학위만 받으면 신분상의 큰 변화를 기대했으나 현실은 다른 박사 소지자들과 다르지 않았다. 정년퇴임을 하면서 인생이 허무하다는 현실을 느꼈다. 어떤 호재의 기회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년퇴임 후 MB정부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질 때였다. 어떻게 61학번을 알았는지 그가 내 연구실로 찾아와서 도움을 요청했다. 총리실 산하에 사회과학 연구소가 정부의 출연 연구기관을 관리한다면서 농촌경제연구원 원장 후보로 지원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쪽에 유력한 지인이 있어서 교수님의 추천만 있으면 연구원장으로 발령받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석사 지도교수를 한 적이 있어서 추천서를 써 주었다. 한 달 후에 농촌경제연구원 원장으로 발령이 났다. 놀라웠다. 정년퇴임 후에 소속기관의 원장으로 취임한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을 경이롭게 하기에 충분했다. 배움의 매력에 빠져있던 그 연구원이 정년퇴임 후에 연구원 원장 자리로 캄백하는 것은 ‘배움의 환희’가 아닌가. 격려할 일이다. 원장으로 재임 중일 때 내가 박사학위 논문심사위원으로 그를 위촉한 일이 있다. 그는 방문한 박사후보자에게 이렇게 멘트를 남겼다. “지도교수인 김 교수님이 논문을 읽었으면 내가 다시 읽을 필요가 없다”고 자기 생각을 밝혔다. 이 말을 전해 듣고 ‘원장의 마음에 새겨진 박사학위 유학을 준비할 때 끈질기게 설명하면서도 간결한 나의 표현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지도하기 어려웠던 한 사람을 인내를 가지고 올바르게 이끌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큰 기쁨으로 다가왔다. ▼김봉구 약력 고려대 졸업, 미국 미주리대학교 자원경제학 박사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 수필로 등단,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고려대 학생처장, 고려대 노동대학원 원장 역임 현)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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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20
  • [지구일보] 이 한 편의 수필, 고수부 수필가의 '현대판 화수분'
    현대판 화수분 고수부/ 수필가 친구 L은 내가 필요할 때 같이 가자고 하면 어디든지 쾌히 응해주는 마음씨 착한 친구였다. 몇 해 전에 면도기 하나 사기 위해 그와 함께 신세계 백화점에 간 일이 있다. 그곳에 가니 수없이 많은 종류의 면도기가 진열되어 있었다. 나는 어느 것이 좋은지 어떤 것을 사야 할지 고를 수가 없었으나 그는 단번에 스위스 제품 하나를 선택하여 사라고 권했다. 그는 다른 물건들도 사러 가자고 요청하면 언제나 쾌히 응해주었기에 필요한 물건을 마음대로 구할 수 있었다. 그러한 그가 세상을 떠나 무척 아쉽다. 그 대신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 핸드폰이다. 핸드폰 하나로 필요한 모든 물품을 구매할 수 있다. 지난주에 바디로숀이 필요하여 약수동 지하철 화장품 상가에 갔더니 없다고 한다. 이것 하나를 사기 위해 시내까지 나가야 하나 하는 귀찮은 생각이 들어 그냥 집에 돌아왔다. 그때 온라인 구매 생각이 났다. 핸드폰에 저장된 ‘쿠팡’ 앱을 열어 구매란에 그 물품을 입력했더니 수도 없이 많은 종류가 죽 나왔다. 원하는 물품을 클릭 한 번으로 주문하여 다음 날 새벽에 배달받을 수 있었다. ‘쿠팡’에는 없는 게 없다. 글을 쓰다가 A4용지가 떨어져도 문방구점까지 갈 필요가 없다. A4용지 500매짜리 한 권의 무게도 만만치 않은데 다섯 권을 주문했더니 그다음 날 아침에 문 앞에 와 있다. 커피, 김치, 계란 등 각종 음식, 책상, 소파, 침대, 장롱까지 필요한 것들은 다 구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들이 따라올 수 없는 세계 최강의 온라인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고 한다. 초고속 통신망과 모바일 기기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무엇이나 초고속으로 배달을 받는다. 24시간 택배 배송이 가능한 세계 유일의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얼마나 편리한 세상인가. 아내는 신혼 초에 틈만 있으면 내게 말했다. “우리집에도 화수분 하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때는 웃어넘겼다. 옛날이야기 속에나 나올 법한 보물단지, 현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손안의 작은 기계, 핸드폰 하나면 필요한 물건들을 즉시 구할 수 있으니 생각해보면 아내가 원하던 화수분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인간의 욕구는 자꾸 발전한다. ‘매슬로’에 의하면 인간에게는 5대 욕구가 있다고 한다. 생리적 욕구, 안정의 욕구, 사랑과 소속의 욕구, 존경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이다. 물질문명이 발달한 현대사회에서는 먹고 사는 문제 이외의 이차적 욕구가 더 요구된다. 아내가 원하는 화수분은 인간의 일차적인 욕구 즉 생존에 필요한 의식주에 대한 것들이다. 물질문명이 발달한 현대에서는 일차적 욕구 이외 자아실현을 위한 지식, 정보 및 창작에 대한 욕구가 더 크다. 예전의 화수분은 생존에 필요한 일차적 욕구는 해결해주지만 그 이상의 욕구는 충족시켜주지 못한다. 인터넷과 디지털 문화가 지배하는 현대에서는 먹고 사는 문제보다 자아실현을 위한 지식 정보에 대한 갈망이 더 크다. 이에 질세라 인간의 창조력, 자기표현의 욕구까지 척척 들어주는 기상천외한 현대판 만물 박사가 나타났으니 AI 인공지능이다. AI는 텍스트, 이미지, 음악, 창작의 영역에서 끊임없이 결과물을 생성해내며 인간의 상상력과 작업효율을 극대화하고 있다. 지난주 글을 쓰다가 ‘이승만의 반공포로석방 사건이 왜 한미동맹을 끌어내는 계기가 되었는가’라는 답이 궁금했다. 인터넷을 열어보았으나 만족스러운 답이 나오지 않았다. 알 만한 친구에게 전화로 알아보았어도 정확히 답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에 관한 책을 구매해 찾아봤다. 그 역시 시원한 답을 찾기가 어려웠다. 난감했다. 그때 퍼뜩 AI가 생각나 Chat GPT에게 물어보았더니 1초도 안 되어 줄 줄 답변을 해주지 않는가. 내 궁금증을 다 풀어주는 완벽한 해답이었으며 배경, 원인, 결과까지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주었다. 놀라웠다. 요즈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다. 그때마다 어느 병원에 가야 할지 무슨 약을 먹어야 할지 모를 때가 많다. 이러다가 생명이 단축되지는 않나 하는 걱정이 엄습해 올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럴 때마다 클릭 한 번으로 약 처방을 받을 수 있는 그러한 시대는 올 수 없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이뿐 아니라 노화 방지에 대한 약 처방이 나오는 그런 AI가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도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요즈음 신문지상에서는 앞으로 AI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해결사로 등장하는 시대가 도래하리라 예측한다. 병이 들어 문제가 되는 아픈 부위의 건강상태를 AI에게 상세하게 설명하면 의사의 처방과 똑같은 대답을 대신 해주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인간의 일차적 욕망이 중심이 되었던 과거의 시대에서는 화수분이야말로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유일한 꿈의 대상이었으나 정보 통신이 발달한 디지털 시대인 현대에서는 재물만의 노다지가 아니라 인간의 노화 방지까지 해결해주는 만능 박사 AI가 또 하나의 현대판 화수분이 아닐까. ▼고수부 약력 ROTC 3기로 월남 맹호부대 참전했으며, 고려대와 동국대 대학원, 육군대학을 졸업하고 국방부 관리정보실에서 육군 중령으로 예편했다. 2003년 순수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수생반 회원, 순수문학 우수상, 2004년 전쟁문학상, 제20회 순수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자발적, 원고료로 응원해 주세요! 계좌 : 우체국 110-0053-16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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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14
  • 대한기자신문 도전브랜드대상 올해 10월 개최
    [지구일보 이강문 기자] 대한기자신문 도전브랜드대상 [Korea Journalist Newspaper Challenge Brand Award [KJNCBA],大韩记者新闻 品牌挑战大奖]을 2024년 1월 2일 제정했다. 대한기자신문 박현수 기획국장은“브랜드(Brand)는 기업(단체)과 개인이 가지고 있는 위대한 재산 중 하나다.대한기자신문은 도전브랜드대상의 심사기준을 설계할 때는 혁신성, 도전 정신, 사회적 영향력, 지속 가능성등을 핵심축으로 삼았다.”며“역경을 이겨낸 국내외 기업(단체)와 인물들을 발굴하고 홍보하여 도전하는 세계인과 함께 더 나아가 세계 속의 세계인을 재발견하여 도전하는 것을 격려한다”고 밝혔다. 특히 역경을 이겨낸 국내외 기업(단체)와 인물들의 도전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사회, 인류 문명 발전에 이바지함에 그 목적이 있다. 향후 "대한기자신문 도전브랜드대상"은 혁신과 도전 정신을 바탕으로,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는 ‘브랜드기업(단체) 또는 브랜드 인물’에게 수여되는 의미가 높은 상이다. 한편 2025 대한기자신문 도전브랜드대상은 오는 10월 중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시상할 예정이다. ◐[공지] 대한기자신문 도전브랜드대상 주최◑ 대한기자신문 개요 설립 연도: 대한기자신문은 이창호 칼럼리스트가 2024년1월2일에 설립되었습니다. 목적: 기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언론의 자유를 증진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진행합니다. 또한, 기자 및 언론인에 대한 교육과 지원을 통해 언론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주요 활동 뉴스 보도: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보도하여 독자들에게 최신 정보를 제공합니다. 기자 교육: 기자들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언론 관련 행사: 언론의 자유와 기자의 권익을 증진하기 위한 다양한 행사와 세미나 및 특히 ‘도전브랜드대상’을 개최합니다. 웹사이트 접근성 웹사이트: 대한기자신문의 공식 웹사이트는 www.newskorea.cn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최신 뉴스, 기자 관련 정보, 그리고 다양한 자료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한기자신문은 대한민국 언론의 발전과 기자들의 권익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으며, 독자들에게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언론의 질을 높이고,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자 합니다. 이에 따른 도전브랜드대상은 대한기자신문이 주최합니다. 한국의 다양한 브랜드와 기업의 성장을 지원하고, 소비자에게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대한기자신문 도전브랜드대상의 목적은 브랜드 가치 증대: 도전브랜드대상의 주요 목적은 소비자에게 신뢰를 얻고,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브랜드가 시장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소비자 인식 향상: 이 상은 소비자에게 브랜드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고, 브랜드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데 기여합니다. 혁신과 도전 장려: 도전브랜드대상은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브랜드를 발굴하여, 이들이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역할도 합니다. 이는 브랜드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합니다. 대한기자신문 도전브랜드대상은 브랜드의 신뢰성과 가치를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소비자와 기업 간의 신뢰를 구축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을 통해 대한민국 브랜드는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이메일로 문의를 하시면 이와관련 공문을 발송해 드립니다. kcu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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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14
  • 이 한 편의 수필, 김봉구 수필가의 '학습효과'
    학습효과 김 봉 구/ 수필가. 고려대 명예교수 나는 열정적으로 강의를 한다. 내용이 복잡한 경우에는 핵심변수를 중심으로 내용을 단순화시켜 문제의 본질을 이해시킨다. 그다음에 주요 변수들 간의 관계를 분석하고 인과관계를 설명한다. 내용을 서술적으로 단조로운 톤으로 설명하는 것은 대단위 강의에서는 금물이다. 강조할 때는 개념을 명확히 하고 적절한 사례를 들어 설명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주제를 열정적으로 설명하다 보면 멈출 수 없어서 강의시간을 10여 분을 초과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시간이 지나면 자리를 뜨는 학생이 있었으나 차츰 내 강의 특성을 알게 된 후부터는 진지하게 머물러 수강했다. 특강이 있는 날은 학생들의 경청하는 분위기가 진지하다 못해 후끈 달아오르는 느낌 마져 든다. 학생들이 교실에 들어오기 바쁘게 앞자리를 차지하려는 경쟁이라도 하는 것 같은 분위기다. 바른 자세를 잡고 시선을 집중하면서 열중하는 모습이 숙연하다. 문제분석을 통해 주제를 깔끔하게 정리하면 흥미를 갖기 시작한다. 실제 데이터를 활용해서 주제를 분석하고 결론을 도출해 내면 학생들은 흥분을 넘어 감격에 젖어 들게 된다. 학생들은 필기하느라 정신이 없다. 강의가 끝난 후에도 여러 학생이 앞으로 나와 많은 질문을 제기하면서 관심을 표시한다. 강의를 잘하려면 전문분야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고 인접 학문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야 한다. 다음으로 외부강연에 대한 경험도 필수다. 명강의는 아는 것에 더해서 강의 경험이 잘 어우러져야 가능하다. 이것은 오랫동안 내가 대학강의에서 경험한 견해이다. 내가 맡은 핵심교양 두 과목은 강의 계획서의 내용 중에는 정부의 고위공직자들에게 강연한 주제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부분이 대학가에서 큰 인기를 얻는 요인이 됐다. 한 주제에 대하여 이론 역사 정책을 종합적으로 분석함으로써 학생들은 흥미를 느끼게 된다. 대학가에서 항상 토막전문지식 위주의 강의를 벗어나지 못한 대학생들에게는 매우 신선한 접근이다. 특히 현실응용에 목말라 하던 학생들에게는 가뭄에 단비와 같이 받아들여 진다. ‘사회의 이해’ 영역은 K대 전체로 보면 300여 명의 교수가 관련되는데 그들이 강의하는 900여 전공과목의 내용과는 다르다. 달리 말하면 300여 명의 교수가 법학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경영학 등 사회과학과 내용이 중복되지 않으면서 교양과목의 특성을 아우르도록 설계해야 한다. 해마다 많은 교수가 다양한 핵심교양과목을 개설하지만 성공 여부는 학생들의 수강신청에서 결정된다. 학생들의 평가내용은 SNS 등 미디어에 소개되고 이는 결국 수강신청에 영향을 미친다. 학생들의 몫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성공하는 개설과목이 있는가 하면 추풍낙엽처럼 사라지는 과목들도 많다. 자유경쟁이다. 내가 담당하는 ‘자연자원과 경제생활’ ‘시장경제와 공공선택’의 두 과목은 처음에 한 학생이 ‘그 선생님은 말만 잘하지 내용은 평범하다’는 댓글을 올렸다. 그러자 법대생들이 ‘한 주제를 이론, 역사, 정책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결론을 제시하면서 강의하는 교수님이 고려대에 누가 있느냐고 지적하는 글이 올라왔다. 체계적으로 종합분석하여 결과까지 도출해 내는 분이 김 교수 외에 누가 있느냐는 내용이 이어졌다. 많은 지지 반응이 일어났고 뒤 따라 오는 법대 경영대 학생들의 주장에 처음 올렸던 글이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면서 내 강의가 학생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대학강의에서 학생들과의 신뢰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는 두 시간 동안 100% 무언으로 강의한 적이 있다. 그 날은 몸 컨디션이 매우 좋지 않았다. 나는 휴강할 수 없었다. 학생들의 800시간을 허공에 날려 보낼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강의실에 들어섰다. 대형칠판을 네 단원으로 구획한 후 차분히 필기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내용을 잘 파악해서 깔끔하게 정리했다. 400명이 수강하면서도 강당 내는 조용하게 필기하는 분위기였다. 나는 한 단원씩 차례대로 강의 노트를 칠판에 써 내려갔다. 누구도 의의제기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학습효과 때문이 아닌가. 그전에는 시간을 초과해가면서 열심히 강의했던 모습이 오늘은 완전히 바뀌었다. 강의가 끝났다. 왼손을 들면서 평소에 하던 그만, It’s over.라는 소리도 내지 않은 체 강당을 나왔다. 핵심교양 개설 초기에는 경험 미숙으로 과목에 신청한 학생 모두를 수강생으로 받아들인 때가 있었다. 핵심교양의 ‘사회의 이해’ 영역은 전교생을 대상으로 한 강의인데 사회의 변화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비판적 사고력을 배양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 나는 핵심교양 두 과목을 학기별로 두 반씩 번갈아 강의했다. 연간 수강생이 1600명이었다. 본교 캠퍼스에서는 가장 많은 인원이 수강하는 과목이었다. 나는 핵심교양과목을 강의할 때는 매우 긴장한다. 매 학기 철저히 강의안을 개선하고 새로운 사례 발굴 노력도 한다. 성적평가는 엄격하다. 나는 교양과목에서 C 이하의 성적은 졸업 후 취업이나 진학에 장애가 된다고 지적한다. 성적관리의 기준은 D 또는 그 이하 등급을 받은 5-7% 학생들에게는 F 학점으로 처리한다고 주지시킨다. 내가 느끼는 것은 강의 주제가 신선해야 하고, 이론 역사 정책 함의를 내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핵심교양 강의가 나에게 준 의미는 열정을 쏟아부은 결과 학생들의 호응이 긍정적이었다는 점이다. 수강신청 시작 5분 내에 등록이 마감된다. 다른 하나는 학교 당국을 안심시킨다는 사실이다. 성적을 후하게 주어서 학생들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열정적인 강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겠는가. ▼김봉구 약력 고려대 졸업, 미국 미주리대학교 자원경제학 박사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 수필로 등단,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고려대 학생처장, 고려대 노동대학원 원장 역임 현)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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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12
  • 이 한 편의 수필, 조경숙 수필가의 '가시울타리'
    가시울타리 조경숙/ 수필가 늦추위가 바닷바람과 결탁한 2월 말이다. 강화도 서쪽에 있는 섬 속의 섬에 찾아갔다. 교동대교 앞에 민간인 출입 통제선이라고 군인들이 막아선다. 신분증 제시로 허락은 떨어졌건만 까다로운 절차와 경계 때문인가. 죄인이 죽음 끝에 머물렀던 곳으로 가는 길이라서인가. 다리를 건너며 내려다보는 바다는 할 말이 많은 듯 넘실거린다. 폭군 연산군이라는 유명세 때문일 것이다. 교동도가 깔끔하게 가꿔져 화개정원과 함께 연산군 유배지라고 등재되었다. 언덕길을 오르니 초가집이 보인다. 누추하기보다는 자식 잃은 늙은이 몰골이다. 비빌 곳 없어 떠나간 생명은 죄인을 따라갔는지. 가시 무성한 탱자나무 울타리를 기어다니며 삶을 버티던 벌레들, 나뭇가지 사이를 노닐던 날 것들도 자취를 감추었다.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쌀쌀한 해풍의 자책인가. 귀양살이를 닮은 듯 고개 숙인 키 큰 나무도 한기에 메말라 까칠하다. 짚으로 엮은 초가는 홀로 갇혀 지내기에 턱없이 작다. 처마 밑 쪽문으로 본 연산군은 소반에 밥과 국, 간장 종지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 고려 때부터 왕손들을 유배시켰던 곳이라니 한스런 혼이 떡져 있지 않을까. 당시에는 빽빽한 나무에 싸여 격리된 채 빛도 볼 수 없었으니 자신의 숨소리조차 두려운 고요로 옥죄었으리라. 적막은 병이 되고 간간이 들리는 짐승의 울부짖음에 귀를 막고 싶었던 곳이거늘 세월이 세상과 단절을 사해주었나. 산을 다듬어 앞을 틔우니 경관이 빼어나 여느 유원지 못지않다. 교동도는 두 번 바다를 건너야 하는 지난한 유배지다. 적지 않은 죄인들이 죽음을 고수하며 살아내던 그늘진 흔적을 고변하는가. 곤충 다리같이 앙상해진 탱자나무가 에인 몸뚱이를 지키고자 바람에 파르르 떤다. 잘못된 생을 깨닫지 못하고 그저 억울하다고 남은 시간 통곡으로 보내지 않았을까. 위리안치된 연산군은 두 달 만에 숨을 거두었다. 재위 12년 나이 31세다. 패악한 폭군이었건만 가슴 아린 이야기 한 줄 남긴다. 반나절 바라보던 해토머리에 빛바랜 노을이 드리우니 그는 단 한마디, 중전이 보고 싶다며 눈을 감는다. 흥청망청 환幻에서 살다가 현現으로 돌아와 남겨질 아내에게 용서를 빌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 또한 울타리를 치고 스스로 고립된 적이 있지 않은가.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혼자 남았을 때 따뜻한 이별 한 마디 못하고 갈팡질팡한 자신을 탓하며 행한 미숙한 자학이었다. 세상에 대한 못난 투정이었다. 병마와 싸운 것은 그가 아니고 나였지 싶다. 생의 끝에서 이제는 놓아야 한다는 현실에 승복하지 못하고 대중요법에 매달려 그를 괴롭혔던 4개월, 먹기 힘들어하는 많은 약을 모진 말로 우기지 않았든가. 안타까운 이별의 시간을 허둥대며 허송세월한 나를 용서할 수 없어 명치에 박히는 가시를 흔쾌히 껴안았다. 회의 속에 홀로였던 1년 후였다. 그가 남긴 기록을 정돈하다 어제와 내일은 신의 영역이니 오늘만 생각하라고, 생전에 자주 말해주던 글을 읽고 이른 아침 산에 올라 맑은 해와 마주하였다. 왕비가 궁금하다. 어떤 여인이었기에 폐주는 생을 마치며 애첩 장록수가 아닌 폐서인이 된 아내를 찾았을까. 세종의 4남 임영대군의 외손녀인 신씨는 11세 나이에 동갑내기인 연산군과 가례를 올려 세자빈이 되었다. 사랑과 신뢰로 매우 소중히 여김을 받아, 재위 동안 8명의 자식을 두었다. 날이 갈수록 포악해져 가시 성성한 울타리로 변하는 궁이건만 눈물로 반대에 나서며 끝내 막으려 애썼다. 내명부의 수장인 중전은 폭군과는 달리 후궁과 궁녀에게 존댓말을 사용할 만큼 은혜로웠다. 지체가 그만하면 겸손보다 자신을 내보이는 까다로운 아집이 있을 법한데 자애롭게 상대를 존중하는 자세가 그만큼이나마 자신을 지켜낸 것이리라. 갑자사화 때 연산군의 악행은 극에 달하여 장 칼을 들고 어머니 격인 자순대비의 처소에 난입한다. 뒤쫓은 중전이 군주를 말려 대비를 구원하지 않았던가. 미친 듯 폭정을 일삼는 연산군에게 눈물로 간언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터다. 올바르고 어진 마음을 익히 알기에 왕은 무슨 직언이든 화내지 않고 도리어 중전의 성덕을 칭찬하며 기리도록 하였다. 그녀의 바른 바탕을 백성들도 소중히 여겼을 것이다. 왕좌에서 쫓겨나 강화도로 떠나는 폐주를 위해 자신도 함께 유배지로 보내달라며 울부짖는다. 애타도록 거듭 간하였건만 친정이 있는 사저로 보내져 마음은 가시울타리에 갇혔어도 육신만은 편안한 여생을 마쳤다. 폐서인이 된 후 그녀는 거창군부인으로 불린다. 출구로 향하다 발을 멈춘다. 안평대군도 여기로 귀양 와 생을 마쳤다지만 대군의 명으로 그린 안견의 걸작, 몽유도원도가 있지 않은가. ‘이것이 꿈일 수도 있다. 생生은 가시울타리이고 사死는 낙원이지 않을까.’ 하는 꽤나 역설적인 개똥철학을 생각해 본다. 밖으로 나와보니 안내판에 반면교사의 교육적 가치와 역사를 알리고자 설치했다고 쓰여있다. 어쨌거나 아직도 불필요한 욕심, 분수에 맞지 않게 탐내거나 누리고자 하는 마음이 간혹 불쑥거리지 않는가. 불식간의 유혹을 경계해야 한다. 헤어나지 못하면 어두운 울에 갇힌 채 인생 후반기를 지낼 수도 있다. 거창군부인이 꾸짖는가. 귀가에 바람 소리 거세다. ▼약력 인천 거주, 2019년 국보문학 수필로 등단, The 수필 2024 빛나는 수필가 60에 선정, 인천문인협회, 한국수필가협회, 한국본격문학가협회 회원, 정독도서관 다스림서울 회원, 제11회 풀꽃수필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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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10
  • 이 한 편의 수필, 조선연 수필가의 '끈'
    끈 조선연/ 수필가 나는 풀어진 끈이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여서 살아가는 것 같다. 새해에 계획할 일이 많은가 보다. 탁상용 달력을 구할 수 있냐는 오빠의 전화다. 너나 나나 이제 끈이 떨어져 구하기 힘들 거라고 한다. 막내인 내가 퇴직하였으니, 큰오빠는 오죽하겠나. 무엇이든 식구들이 도움을 요청하면 입속의 혀처럼 움직였다. 회사 후배에게 전화하려니 마음이 허락하지 않는다. 세상사 어떤 끈으로 묶여 있는지 궁금하다. 가족으로 묶인 끈은 태어나면서부터 나를 동여매고 있다. 금속 사슬의 꼬임처럼 단단하게 느껴진다. 자라면서 바로 위 오빠와 매일 투덕투덕 싸웠다. 한 대 맞으면 눈을 감고 팔을 휘저어 대들고 얄미워서 내 오빠가 아니었으면 싶었다. 어른이 되고 싸운 정이 모여 지금은 살가운 오빠다. 그때의 마음이 미안하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로 기억된다. 고모할머니네 고기잡이 통통배를 타고 하동에서 여수오동도까지 가족 휴가를 갔다. 바다와 하늘이 뒤섞여 나를 집어삼켰다. 속이 요동치고 위장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듯한 고통이었다. 물을 먹이고 등을 쓸어내리고 가족의 보살핌이 따뜻했다. 많은 추억 중에 어렴풋하지만 그때 일이 먼저 떠오르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아마도 나를 지켜주는 사람이 가족이라는 것을 처음 느꼈나 보다. 큰오빠는 지금 세 생명을 품고 산다. 우리 가족이 만들어낸 기적이다. 두 번이나 몸이 가물어 두 언니가 다시 샘물이 솟을 수 있도록 했다. 원래 네 것이 내 안에 있었다는 듯이 선뜻 내어 달아준 별이 오빠 안에서 빛나고 있다. 한 뿌리에서 뻗어 나와 한 젖 먹고 자랐으니 어찌 빛이 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신장이식이다. 가족의 끈은 어렵고 힘들 때 운명처럼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다. 삶이 거칠게 흔들어 댈 때도 이 줄을 잡고 따라가면 가족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다. 서로가 멀어져 있을 때도 풀어지지 않는 끈이다. 반면, 직장의 끈은 다르다. 생계를 위해서 억지로 묶어야 유지되는 관계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 같은 방향으로 가야 하는 운명을 감당해 내야 한다. 갈등과 상하 관계가 형성되고 경쟁 상대보다 앞서려면 두 배는 더 열심히 달려야 살아남는 ‘붉은 여왕의 법칙’이 있는 곳이다. 경쟁 없는 사회는 없는 것일까. 인사이동이 있거나 승진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은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고 사람을 가장 지치게 했다. 이곳은 내가 선택한 끈이므로 이 끈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너무 팽팽하면 끊어지고 느슨하면 존재가 무의미하다. 치열하게 지내온 동료들과의 시간을 되돌려 본다. 음향이 다른 상사와의 갈등으로 대의명분인 순환보직이란 미명하에 4년 동안 지방으로 나갔다가 돌아왔다. 나를 아껴주는 상사들은 너의 뜨거운 열정을 조금만 식혀 보라고 부탁을 했다. 이번엔 덜 익은 과실 같은 리더의 발칙한 행동들을 참아내느라 심적 고통이 컸다. 사람들 앞에서 나이 많은 부하의 기를 꺾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업무를 재촉하면서 자존심을 자극하는 일을 반복했다. 인내심이 극에 달하면 멱살을 잡고 비상계단으로 데려가 단호한 손길로 그의 뺨을 어루만지는 상상으로 참아내곤 했다. 이제 이곳의 끈은 풀어져 있다. 오랜 세월 같이 묶여있던 끈을 이렇게 풀어버려도 되는지 돌아본다. 나의 평온한 삶이 자란 곳이 아닌가. 친구란 이름의 끈도 있다. 여러 부류의 친구 중 특히, 단발머리 때부터 시작된 우정은 한 편의 시처럼 소중한 이야기다. 계산 없이 진실했다. 처음엔 가느다란 실 같았으나 점점 실타래처럼 포근하고 두툼해졌다. 관계 유지를 위해 오랜 기간 애쓴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모임 때마다 거실에 이부자리를 펴고 여섯 명이 나란히 누워, 추억을 긁어모아 새벽녘까지 이어지다가 잠이 들곤 했다. 그런 세월을 50년 가까이 이어가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살짝 풀렸다가 다시 묶어지기도 했다. 친구이기에 언제든지 묶을 수 있는 믿음이 있기에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 아니 서로 끌어당겼다. 그렇게 다시 시작되나 했더니 그중 한 명, 늘 똑같다. 심성이 나쁜 것도 아니다. 친구들을 배려하는 것 같기는 하나 그 무엇인가가 불편함을 쌓이게 하고 모두로부터 한 발씩 멀어지게 한다. 세월이 흐르고 조금씩 둥글어질 때도 여전히 뾰족하다. 어느 순간부터 모임이 반가우면서도 조심스럽고 그와 하는 시간에 마음 한구석이 무겁다. 가장 안타까운 건 그 친구가 변하지 않는다는 게 슬프다. 나이 들어 친구는 꼭 있어야 한다는데 조금씩 멀리하고 싶어진다. 억지로 그 끈을 잡으려 하니 이제 내 손이 아프다. 그도 같은 마음일지 모르겠다. 의미가 희미해지는 끈이라면 조용히 놓아야 하지 않나 싶다. 서로를 위하는 배려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쉽게 끊어지지 않는 그 무언가가 친구란 존재인가 싶다. 갈등을 반복하고 있다.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의 끈을 쉽게 맺는다. 그 끈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풀어지면 안 되는 끈, 풀어버려야 하는 끈, 서서히 풀려나가는 끈, 어느 끈을 잡고 살아가야 할지 끈을 만지는 손길이 조심스럽다. ▼약력 경남 하동 출생, 중앙대학교 건설대학원 건설경영학 전공, 공학석사,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 수필가로 등단, 정독도서관 다스림서울 문예창작반 회원. 한국본격문학가협회 회원, 건설단체 근무'36년'. 건설교통부장관 표창,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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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10
  • 이 한 편의 수필, 김봉구의 '사진첩'
    사진첩 김봉구/ 수필가 나는 네 어른을 모시는 3박 4일 제주 여행을 예약했다. 어머니와 큰어머니는 돌아가셨기에 모신 어르신들은 아버지와 백부님 그리고 장인과 장모님이다. 단순히 함께 하는 여행이 아니다. 평소에 부족했던 효심 탓에 며칠 동안 함께 하면서 보여드리고 싶은 나의 효도선물이다. 그동안 학생운동 격동기에 대학 보직을 맡으면서 부모님을 제대로 모시지 못한 것이 늘 안타까웠다. 법적 아들을 son-in-law 둔 장인 장모님께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여행계획을 상의 드렸더니 아버지가 그렇게 좋아하셨다. 큰집 백부님 께서도 아주 기뻐하셨다. 장인어른과 장모님께 말씀드렸더니 매우 흡족해 하셨다. 호텔 예약을 하고 여행 대상지를 선정한다. 교통문제는 렌트카를 이용하여 해결한다. 준비과정을 빠짐없이 어른들께도 알려드린다. 모두 초미의 관심사다. 여행이란 누구에게나 기대를 갖게하는 매력이 있다. 나는 예약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잠자리가 편안할지를 염두에 둔다. 여행지를 선정하면서 시간 여유를 두는 문제와 기념으로 남기게 될 추억의 사진을 생각한다. 더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 있다. 끼니마다 식사 메뉴를 정하는 문제다. 식당을 잘 정해야 흡족할 만한 음식을 드실 수 있으며 식사 때 주류를 겸하면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어쩌면 이 대화 분위기가 여행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여행 출발일이 닦아왔다. 공항에 모여서 기쁜 마음으로 비행기에 오른다. 차 한잔 마시고 나면 우리나라 남도 제주의 청정도시에 도착한다. 공항에서 승용차로 바꿔탄다. 이국적인 남국의 정취를 풍기는 제주도를 드라이브하면서 주변 경관을 음미한다. 차로 이동하면서 한라산 중턱도로에서 이색적인 경험을 했다. 도로가 분명히 내리막으로 보이는데도 오르막 경사라는 표지판이 있다. 지나가던 많은 차가 멈춰 서서 사람들이 내려서 걸어오는 광경을 맞이했다. 우리도 이 상황을 놓치지 않고 모두 내려서 한참 걸어보면서 놀라운 경험을 했다. 시각적으로 도로는 오르막 경사였지만 실제는 그 반대이다. 착시현상의 오류다. 여행지 몇 군데를 둘러본 다음 숙박지 호텔로 향한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어른들을 편안하고 즐겁게 모시는 효도관광이다.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또 빼놓지 않고 사진에 담아야 한다.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아니겠는가. 둘째 날은 관광 욕구가 치솟는 날이다. 8월 여름철에 온도는 높으나 습도가 높지 않아서 쾌적하다. 오늘은 기대가 큰 만큼 함께 여행하기가 좋다. 어제 제주시를 돌아봤기에 오늘은 서쪽 관광명소를 탐방할 차례다. 먼저 들른 곳은 열대식물원이었다. 분위기가 이색적이 어서 여름을 시원하게 느끼게 해 주고 사진 찍기에 좋았다. 이어서 예술 조형물이 많은 야외 공원을 들러보게 되었다. 다양한 조각물과 예술전시작품이 돋보였다. 늦은 시간에 점심을 먹었다. 특색있는 음식에 반주를 겸한 오찬은 네 어른에게 풍성한 대화를 이끌게 되어 분위기가 매우 좋았다. 오후에는 한림공원을 둘러보고 해상풍경을 주시하면서 주변을 드라이브했다. 휴식할만한 곳을 발견하면 바로 멈춰서 내린 후 차 마시는 시간을 가졌다. 그때마다 나는 현지인을 만나 가볼만한 음식점과 특색있는 메뉴를 물어보았다. 맛있고 추억에 남을 식당을 찾는 것은 노력하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당시는 인터넷에 음식점홍보가 흔하지 않아서 현지에서 묻는 것이 최선이었다. 제주 남쪽인 서귀포에는 정방폭포와 천지연 폭포가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대포 주상절리는 잊을 수 없다. 웅장한 기암절벽과 계속 파도에 부딪히는 모습은 우리 모두의 시선을 멈추게 했다. 용머리 해안도 장관이 펼쳐지는 곳으로서 들려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셋째 날은 제주 동쪽 여행코스를 찾았다. 오전에 만장굴을 탐방했다. 기념촬영에 이어 동굴에 들어가니 곧장 장관이 펼쳐졌다. 오랜 세월이 만들어낸 기암과 종류석이 자태를 보이고 있었다. 어른들이 감탄사를 연발하기에 충분했다. 기암절벽과 종류석이 자라는 광경은 신비의 절정을 보는 것 같았다. 큰아버지는 이 광경을 맞이할 때는 사색에 잠기면서 걸음을 멈추기까지 했다. 일행 중에서 뒤처질 때는 장모님이 먼발치에서 기다리면서 모시고 오기도 했다. 이날 점심은 도가니탕집에서 풍성한 수육안주를 곁드려 술을 드시면서 두 시간 이상 대화를 나누었다. 성산일출봉 근처에 이르러 우리 일행은 자동차에서 내려 섭지코지를 보면서 바다와 일출봉을 한눈에 담는 장면을 한참 즐겼다. 장관이었다. 성읍민속마을에 도착해서는 전통 가옥과 생활상을 보면서 옛 모습이 고스란이 간직된 것에 감탄했다. 돌낭예술원은 수목원 산책로로 기억에 남는다. 이곳은 돌과 나무, 바람을 느끼며 산책하기가 딱 좋았다. 이곳에서 나는 사진 여러 장을 찍었다. 제주시로 돌아와서 돌문화공원을 방문하니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어서 안성맞춤이었다. 한라수목원에서는 시원하게 숲길 산책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저녁 시간의 수목원 야시장 길은 또 다른 매력을 선사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배행기 안은 아쉬움으로 가득했다. 즐거운 여정이 끝난 후의 소감이다. 진짜 3박4일 여행을 회상하는 시간은 이제부터다. 여행 중의 모습과 즐거웠던 장면은 모두 사진으로 남겼다. 나는 이 기록물을 한 권의 사진첩에 정리하면서 또 다른 느낌이 들었다. ‘효는 표현할수록 그 마음이 커진다는 것을’. 똑같은 사진첩 세 권을 만들어서 어른들에게 드렸다. 이 사진첩은 네 어른께는 자손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증거이자, 여행의 즐거움을 기억하게 만드는 근원이 되지 않을까. 오랫동안. ▼김봉구 약력 고려대 졸업, 미국 미주리대학교 자원경제학 박사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 수필로 등단,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고려대 학생처장, 고려대 노동대학원 원장 역임 현)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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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08
  • 이 한 편의 수필, 조남대의 '사랑의 또 다른 표현'
    사랑의 또 다른 표현 조남대/ 수필가 잔소리를 듣기 싫어하면서도 정작 자신도 모르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듣는 처지에서는 귀에 거슬리고 불필요하게 느껴지지만, 상대방은 걱정과 애정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그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면 짜증과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깨닫게 되지 않을까. 한낱 불평이 아니라 사랑과 관심의 또 다른 표현이었음을. 아내가 “친구들과 남프랑스로 열흘 동안 여행을 가기로 했어요”라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해외여행 다녀온 지 얼마 되었다고 또 간다는 거냐’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입에서 튀어나온 것은 뜻밖에도 “알았어”였다. 후폭풍이 두렵기도 하지만 홀가분할 것 같은 느낌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잔소리 없는 열흘이라니. 속으로 ‘야호’를 외쳤다. 미안해할 때 큰소리를 쳐야 하는 법. “밥은 어떻게 하라고”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가기 전에 반찬이랑 다 챙겨 놓고 갈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라며 미소 짓는다. 출국 날이 다가오자 고소한 냄새가 온 집안에 풍긴다. 콩나물, 멸치볶음, 시금치나물 같은 밑반찬을 냉장고에 가지런히 채운다. 하루는 마트에 가자고 하더니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즉석조리식품을 마음대로 고르라고 한다. 입꼬리가 슬쩍 올라간다. 출국 날짜가 은근히 기다려진다. 공항버스가 출발하고 아내의 뒷모습이 점점 멀어진다. 자유롭다 못해 설레기까지 한다. 침대 한쪽을 차지하던 온기가 사라졌는데 허전함보다 양팔을 벌려도 아무도 밀쳐내지 않으니 그것으로 족하다. ‘저녁 먹고 들어간다.’라는 메시지를 보내던 습관도 구속이었나. 해방감에 들뜬 것도 잠시, 하루 이틀 지나자 집 안이 깊은 산속의 절간 같다. 적막 속에서 들려오는 것은 젓가락질 소리, 시계 초침 소리, 냉장고 모터 돌아가는 소리뿐.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울림이 아내의 부재를 실감 나게 한다. 떠난 지 한참이 된 것 같은데 사흘 지났을 뿐이다. 친구들과 여행이 즐거워 푹 빠졌는지 카톡 하나 없다. 이렇게 무심할 수가. 남은 일주일이 아득하다. 문득 재잘거리는 목소리가 그립다. 오기만 해라. 무슨 잔소리든 기꺼이 들을 것이니. 결국 사람은 함께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존재인가 보다. 아흔여덟의 장모님과 여든여덟의 어머니를 시골 농원에서 보름 동안 모시고 지낸 적이 있다. 따뜻한 봄볕 아래 지팡이를 짚고 보행기를 밀며 시골길을 산책할 때 두 분의 얼굴에는 어린아이 같은 해맑은 미소가 번졌다. 며칠 지나고 서로의 어색함이 사라지자 “비가 오는 데 모자도 안 쓰고 일하느냐”. “군불을 땔 때는 꼭 곁에 있어야지 왔다 갔다 하다간 불 꺼질라” 등의 말씀을 하신다. 정겨웠던 목소리가 점점 귀에 거슬리기 시작한다. 듣고 있으면 끝이 없어 보인다. “어머니 저도 환갑이 넘었는데 잔소리 그만 하세요. 다 알아서 합니다”라고 언성을 높였더니 주춤해지신다. 오랜만에 시골에 와서 기분이 좋으셨는데 그 소리를 들은 어머니는 얼마나 머쓱했을까. 불쑥 뱉은 말이 무겁게 가슴에 내려앉았다. 그때는 몰랐다. 단순한 간섭이 아니라 자식을 향한 깊은 사랑의 표현이었다는 것을. 죄송하고 후회스럽다. 돌아보면 어머니가 걱정하는 것은 당연했다. 허벅지 골절로 목발을 짚고 다니던 자식이 삐끗할까 봐. 비탈진 땅에서 일하다가 다치지는 않을까 불안했을 것이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부모에게 자식은 위험한 곳에 서 있는 듯 위태로워 보이는 존재가 아니던가. 어머니의 눈에는 단지 어린애일 뿐이다. 하지만 그때는 잔소리로만 들렸다. 속 좁은 자식이었기에 따뜻한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제 두 분 다 하늘나라로 가셨다. 적막한 밤이면 이따금 어머니의 잔소리가 그리워진다. 다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기꺼이 모든 말씀을 가슴에 새길 텐데. 세월이 흘러 잔소리를 듣기보다 하는 처지가 되었다. 한때는 귀찮고 불필요하게만 들렸던 말을 내뱉고 있다. 아들딸이 벌써 사십 줄에 들어섰건만 내 눈에는 여전히 어린 자식으로 보인다. 만나거나 통화할 때마다 “운전 조심해라”. “감기 걸리지 않게 마스크 잘 쓰고 다녀라”. “양보하며 살아라”와 같은 말들을 반복한다. 아이들은 어떻게 들을까. 불필요한 간섭이나 익숙한 소음 정도로 느낄지도 모르겠다. 천만다행인 것은 내가 어머니께 했던 것처럼 “잔소리 그만 하세요”라며 퉁명스럽게 말하지 않는다. 쓰다 달다는 표현 없이 묵묵히 듣고 일어서는 것을 보면 마음 한편으로는 그 말들이 사랑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고 있는 듯하다. 청출어람이랄까. 나보다 훨씬 성숙한 것 같아 흐뭇해진다. 사람들은 간섭받는 것을 싫어한다. 쓸데없는 참견이나 불필요한 꾸지람으로 받아들이곤 한다. 시선을 조금만 돌려보면 그것은 오랜 세월의 경험과 시행착오 속에서 얻은 걱정과 배려의 표현이라는 것을 알 텐데. 부모의 이야기는 단순한 간섭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보호막과도 같다. 시대가 변하면서 가치관과 사고방식도 달라지고 잔소리와 충고의 경계는 점점 희미해진다. 나이 들수록 자기 생각이 정답이라는 확신이 강해짐에 따라 잔소리라는 형태로 흘러나오는 것이 아닐는지. 인생 후반기에 숙고해야 할 숙제가 하나 더 늘었다. 데일 카네기는 말했다. “잔소리는 사람을 바꾸지 못한다. 다만 짜증 나게 할 뿐이다.” 어쩌면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충고의 내용과 듣는 사람의 자세에 따라 잔소리가 되느냐 약이 되느냐로 갈라질 터. 시간이 지나고 인생의 계절이 바뀌면 그 말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는 잔소리하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렇게 하겠노라고 마음먹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하는 말이 듣기 싫은 이야기가 아니라, 따뜻한 바람결처럼 스며드는 애정 어린 속삭임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약력 조남대 수필가는 국제정치학 박사로 데일리안 칼럼리스트다. 한국문인협회, 한국수필가협회 회원, (사)한국국보문인협회 부이사장,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사)금아피천득선생기념사업회 이사, 동북아경제협력위원회 행정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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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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