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40Home >  TOP40
-
[지구일보] 안중근의 동양평화와 한중일 경제공동체
[지구일보 이창호 칼럼니스트]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다. 그러나 그를 단지 총을 든 독립운동가로만 기억한다면 그의 사상과 역사적 위상을 절반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안중근은 침략과 지배에 맞서 싸운 민족의 영웅이면서, 한·중·일 세 나라가 공동 번영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 선구적인 동양 평화 사상가였다. 안중근이 옥중에서 집필한 『동양평화론』은 오늘날에도 놀라울 만큼 현실적이다. 그는 한국·중국·일본이 서로를 적으로 돌리면 서구 열강의 각축장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반대로 세 나라가 독립과 주권을 존중하면서 협력한다면 동양의 평화와 번영을 지킬 수 있다고 확신했다. 공동회의체 구성, 공동은행 설립, 공동화폐 발행, 공동 방위체제와 청년교육 구상까지 제시했다. 사형을 앞둔 한 독립운동가가 100년 뒤의 동북아 질서를 내다본 것이다. 오늘의 한중일은 세계 경제의 중심축이다. 세 나라는 제조업과 첨단기술,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 조선, 물류, 금융, 문화산업에서 막강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인구와 시장, 생산력과 기술력을 결합한다면 유럽연합에 견줄 수 있는 거대한 경제권을 형성할 잠재력이 충분하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역사 갈등과 영토 문제, 안보 대립과 경제적 견제가 협력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세 나라가 가까이 있으면서도 멀리 돌아가고, 함께하면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고 있다. 경쟁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경쟁이 곧 적대일 필요는 없다. 미국과 유럽도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공동의 규칙과 시장을 만든다. 한중일 역시 서로의 체제와 주권을 존중한다는 원칙 아래 경제협력의 제도화를 서둘러야 한다. 공급망 안정, 기후변화 대응, 에너지 전환, 감염병 관리, 고령화, 인공지능과 디지털 경제는 어느 한 나라의 힘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정치적 갈등 때문에 경제와 민생까지 인질로 잡는 낡은 외교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중일 경제공동체는 당장 국경을 없애거나 단일 화폐를 도입하자는 구호가 아니다. 실현 가능한 분야부터 신뢰를 축적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먼저 한중일 자유무역협정 협상을 진전시키고, 기업과 지방정부·대학·연구기관이 참여하는 상설 협력기구를 강화해야 한다. 공동 산업단지와 기술혁신기금을 조성하고, 청년과 과학기술 인재의 이동을 확대해야 한다. 통관·물류·전자상거래 기준을 연결하고, 재난과 보건·환경 분야의 공동대응 체계도 구축해야 한다. 경제공동체의 핵심은 어느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지배하는 데 있지 않다. 안중근이 꿈꾼 동양평화 역시 강대국 중심의 질서가 아니었다. 독립된 국가들이 평등하게 참여하고, 공동의 이익을 나누며, 전쟁의 가능성을 경제적 연대로 차단하는 구상이었다. 일본은 과거 침략의 역사에 대한 진정성 있는 성찰을 보여야 하고, 중국은 커진 국력만큼 주변국의 우려를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한국은 미·중 경쟁의 파도에 수동적으로 흔들릴 것이 아니라 동북아 협력의 원칙과 의제를 주도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은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은 박물관에 보관할 유물이 아니라 오늘의 한중일이 실행해야 할 미래 설계도”라며 “세 나라가 과거의 상처를 외면해서도 안 되지만, 그 상처를 영원한 적대의 명분으로 이용해서도 안 된다. 경제와 청년, 기술과 문화의 연대를 통해 전쟁할 수 없는 동북아를 만드는 것이 안중근 정신을 계승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평화는 선언만으로 오지 않는다. 서로에게 전쟁보다 협력이 훨씬 큰 이익이 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지속된다. 경제공동체는 바로 그 구조를 세우는 현실적 수단이다. 정치가 막히면 민간이 길을 열고, 중앙정부가 주저하면 지방정부와 기업, 대학과 시민사회가 먼저 움직여야 한다. 안중근은 마지막 순간까지 일본 자체를 증오한 것이 아니라 침략주의를 꾸짖었다. 그가 겨눈 것은 한 나라의 국민이 아니라 동양의 공존을 파괴한 제국주의였다. 이제 한중일은 답해야 한다. 앞으로도 과거의 갈등을 반복하며 세계 질서의 변화를 바라보기만 할 것인가, 아니면 공동 번영의 새로운 질서를 스스로 만들 것인가. 안중근이 남긴 총성은 침략을 향한 심판이었다. 그가 남긴 『동양평화론』은 미래를 향한 명령이었다. 한중일 경제공동체는 몽상이 아니다. 결단하지 않아 실현되지 않았을 뿐이다. 지금이야말로 세 나라가 안중근의 미완성 원고를 현실의 정책으로 완성할 때다.
-
한중수교 34주년 기념포럼 국회 개최… "동북아 평화질서와 한·중 협력의 전략적 역할 모색"
[지구일보] 한중수교 34주년을 맞아 동북아 평화와 한·중 협력의 미래를 모색하는 대규모 정책포럼이 국회에서 열렸다. 국제질서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양국이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새로운 협력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는 데 참석자들의 공감대가 모였다. 한중교류촉진위원회와 서영교 국회의원실은 지난 7월 10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한중수교 34주년 기념포럼'을 공동 개최했다. 주한 중국대사관이 후원한 이번 행사는 '동북아 평화질서와 한·중 협력의 전략적 역할'을 대주제로 정치·경제·문화·학술 등 다양한 분야의 협력 방안을 폭넓게 논의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최근 국제사회는 미·중 전략경쟁 심화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 지정학적 갈등 등으로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정부가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를 기조로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안정적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외교 방향을 제시하면서 한중 교류 확대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다. 이번 포럼은 이러한 시대적 변화 속에서 양국이 나아갈 실질적 협력 방안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 포럼은 이창호(李昌虎)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의 기조 강연을 시작으로 진행됐다. 이어 김문준 한남대학교 교수가 '미·중 경쟁 속 한중 우호관계'를 주제로, 김한준 남서울대학교 교수가 '문화가 여는 평화, 비즈니스가 잇는 한중 협력- K-컬처·교육·민간기업 융합을 통한 한중 문화교류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종합토론은 김도희 교수가 좌장을 맡아 진행했으며, 장철인 서영대학교 부총장과 권대근 중국 하북미술대학교 객좌교수 등이 토론자로 참여해 동북아 정세 변화와 민간외교의 역할, 문화교류 확대 방안 등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이날 행사에는 손보영 에스에이인터내셔날 회장, 김광진 청와대 전 정무비서관, 이한용 남북민간교류협의회 이사장, 대한기자신문 송면규 논설위원(박사), 김대유 경기대 전 교수, 지용일 동서울대학교 교수, 장경률 연변일보 종신논설위원, 조현 스포츠루다 이사장, 송광근 『화촌의 열정』 저자 등 정·관계와 학계, 문화예술계 인사를 비롯해 국내외 참가자 200여 명이 온·오프라인으로 함께했다. 이기수 전 고려대학교 총장은 축사를 통해 "동북아는 세계 경제와 안보를 좌우하는 핵심 지역"이라며 "한·중 협력은 역내 평화와 공동번영을 위한 전략적 기반이며, 경제협력뿐 아니라 기후변화, 첨단기술, 문화와 청년 교류 등 미래지향적 협력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영교 국회의원은 "이번 포럼은 한중 수교 34주년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을 넘어 새로운 한중관계의 미래를 준비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한중 양국 간 갈등을 완화하고 학술과 정책, 정보교류를 확대하는 소통의 플랫폼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마이구성(马貴生) 주한 중국공사는 "주한중국대사관은 한중수교 34주년 기념포럼에서 축사를 통해 지난 34년간 한중 양국이 경제·문화·교육·과학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룬 협력 성과를 높이 평가하며, 선린우호와 상호협력이 양국 관계의 올바른 발전 방향이라고 강조했다.”며 “최근 양국 간 고위급 교류를 계기로 관광·교육·과학기술·지방교류·언론 분야 협력이 한층 확대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인공지능(AI), 녹색경제, 디지털경제 등 미래 신산업 분야를 새로운 협력 동력으로 제시하며, 이번 포럼이 지난 34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한중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고 말했다. 중국국제우호연락회 리우한무(刘汉武) 상임이사는 축전을 통해 "지난 34년간 양국이 경제·무역·인문 교류를 바탕으로 상호 존중과 호혜 협력, 대화와 협의를 통해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해 온 경험이 미래 협력의 중요한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지정학적 갈등과 진영 대립이 심화되는 국제 환경 속에서 다자주의와 개방·포용의 원칙을 바탕으로 경제·과학기술·인문교류 등 실질 협력을 확대하고, 평화와 공동번영을 지향하는 새로운 동북아 질서를 함께 구축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박언휘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총재는 "한중 관계는 단순한 경제협력을 넘어 신뢰와 상생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성장해 왔다"며 "위원회는 앞으로도 양국을 잇는 민간외교의 가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기조 강연에 나선 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장은 "오늘날 한중 협력의 전략적 중요성이 더욱 커지는 이유는 한반도 안보 환경의 구조적 변화 때문"이라며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는 중국의 국경 안정, 미국의 역내 군사전략, 일본의 방위정책과 직결되는 동북아 공동의 과제"라고 진단했다. 이어 "동북아의 평화는 어느 한 국가만의 노력으로 이룰 수 없다"며 "지속 가능한 협력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정부 간 외교와 함께 문화·학술·경제 분야의 민간교류가 더욱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번 포럼이 단순한 기념행사를 넘어 동북아가 직면한 복합적 도전에 대한 공동 대응의 지혜를 모으고, 한중 협력의 새로운 청사진을 그리는 실질적인 논의의 장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포럼은 한중수교 34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 머물지 않고, 급변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한중 양국이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평화와 공동번영의 미래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확인한 의미 있는 정책 플랫폼으로 평가받았다. 정부 외교와 민간외교가 조화를 이루는 지속 가능한 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제언 역시 참석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
[지구일보] 이창호 작가로서의 로드맵, 시대를 기록하는 필자에서,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인문 저술가로...
[지구일보 이강문 기자] 한 권의 책은 한 사람의 삶을 담지만, 한 사람의 작가는 한 시대의 정신을 기록한다. 작가는 단순히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시대를 해석하고 미래를 제시하는 사람이다. 이창호 작가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 역시 개인의 성공을 넘어 한국과 중국, 그리고 동아시아를 잇는 인문학적 가교를 세우는 데 있다. 그동안 이 작가는 『마오쩌둥 평전』, 『덩샤오핑 평전』, 『시진핑, 위대한 중국을 품다』, 『팍스 차이나』, 『이순신 리더십』, 『안중근 평전』 등을 통해 중국 현대사와 정치, 외교를 꾸준히 연구하며 저술 활동을 이어왔다. 특정 인물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대의 흐름과 국제질서를 함께 조망하려는 시도가 그의 작품 세계를 형성해 왔다. 세계적인 작가들의 길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영국의 역사가 폴 존슨은 정치와 문명을 연결해 서술했고, 미국의 전기작가 월터 아이작슨은 한 인물의 삶을 통해 시대정신을 읽어냈다. 일본의 시바 료타로는 역사 속 인물을 통해 국민의 정체성을 되새기게 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사건보다 사람을, 사람보다 시대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이창호 작가 역시 이제는 '중국 전문가'라는 범주를 넘어 '동아시아 문명과 평화를 기록하는 작가'로 영역을 넓힐 필요가 있다. 앞으로의 저술은 세 갈래로 발전할 수 있다. 첫째, 평전의 대가가 되는 길이다. 한 인물을 둘러싼 정치·문화·외교적 맥락을 깊이 있게 풀어내는 평전은 오랫동안 독자의 생명력을 얻는다. 단순한 사실 나열이 아니라 인간의 철학과 시대적 의미를 담아내야 한다. 둘째, 인문학 에세이스트의 길이다. 최근 발표한 건강과 삶, 열정, 희망, 경청 등을 주제로 한 칼럼처럼 일상의 경험을 인문학적 성찰로 연결하는 글은 폭넓은 독자층과 만날 수 있다. 독자는 지식보다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글을 오래 기억한다. 셋째, 국제관계 기록자의 길이다. 한중 관계와 동북아 평화, 문화외교의 현장을 직접 취재하고 기록하는 작업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큰 가치를 지닌다. 현장의 경험은 다른 사람이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작가만의 자산이 된다.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경쟁력은 많이 쓰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쓰는 것이다.하루 한 편의 원고, 한 달 한 권의 기획, 일 년 한 권의 대표작이 쌓이면 결국 그것이 작가의 브랜드가 된다. 좋은 작가는 책을 남기지만, 위대한 작가는 시대를 남긴다. 앞으로 이창호 작가의 로드맵은 단순히 저서를 늘리는 데 있지 않다. 대한민국과 중국을 잇는 문화의 기록자, 동아시아 평화와 인문의 가치를 전하는 저술가, 그리고 후학들이 참고하는 사료를 남기는 작가가 되는 데 있다. 글은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드러난다. 오늘의 한 문장이 내일의 역사 자료가 되고, 한 권의 책이 한 시대를 이해하는 창이 된다. 이창호(李昌虎) 작가의 다음 목표는 더 많은 책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래 읽히는 책을 쓰는 것이다. 그것이 한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가 걸어야 할 가장 긴 여정이며, 가장 의미 있는 로드맵이다.
-
[지구일보]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중국 문화·교육계, 세계유산위원회 부산 개최지지
[지구일보 이강문 기자] 한중교류촉진위원회는 19일 중국 문화유산 연구자와 교육·문화계 인사들이 공동 명의로 작성한 ‘세계유산위원회 부산 개최 지지 서한’을 전재수 부산시장 당선인 측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서한에는 부산이 세계유산위원회 개최에 필요한 역량과 인프라를 갖춘 도시라는 평가가 담겼다. 중국 측 인사들은 부산이 국제회의 시설과 교통, 숙박 여건을 갖추고 있으며 다양한 국제행사를 개최한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중국 측은 문화유산을 인류가 함께 보존하고 계승해야 할 공동 자산으로 규정했다. 이어 기후변화와 전쟁, 도시화 등으로 세계 각국의 문화유산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세계유산위원회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 개최의 의미도 언급했다. 중국 측은 한국과 중국이 오랜 기간 문화와 사상, 예술, 학문 분야에서 교류를 이어온 만큼 세계유산위원회가 부산에서 열릴 경우 동북아 문화 협력과 국제사회의 연대 확대에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한중교류촉진위원회는 “이번 서한이 국제회의 유치 지지를 넘어 문화유산을 통한 평화와 협력의 가치를 담고 있다”고 했다. 중국 문화·교육계 인사들은 서한에서 “세계유산은 과거의 유산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세대에 전해야 할 공동 자산”이라며 “부산이 세계와 함께 문화유산의 가치를 공유하는 국제 문화도시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
[지구일보] 2026 북중미 월드컵, 대한민국 경제에 불어넣는 희망의 바람
[지구일보] 2026 북중미 월드컵이 전 세계 축구팬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 막을 올렸다. 대한민국 대표팀의 선전은 국민들에게 감동과 자부심을 안겨주고 있으며, 월드컵 열기는 단순한 스포츠 행사를 넘어 우리 경제와 사회 전반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비록 대한민국은 이번 대회의 개최국은 아니지만 월드컵이 가져오는 경제적 파급효과는 결코 적지 않다. 오 히려 디지털 플랫폼과 글로벌 네트워크가 발달한 오늘날에는 개최 여부와 관계없이 다양한 분야에서 경제적 혜택을 기대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무엇보다 가장 먼저 나타나는 변화는 소비시장 활성화다. 대한민국 대표팀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치킨, 피자, 음료, 간편식 등 외식 및 식품업계의 매출이 증가하는 현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스포츠용품과 응원용품 시장 역시 활기를 띤다. 최근에는 온라인 쇼핑과 모바일 플랫폼 이용이 확대되면서 월드컵 특수가 오프라인을 넘어 디지털 경제 영역까지 확대되고 있다. 기업들은 국가대표 선수들을 활용한 광고와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히고 있으며, 이는 내수시장 활성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광고와 미디어 산업 역시 월드컵의 대표적인 수혜 분야다.월드컵은 올림픽과 함께 세계 최대 규모의 콘텐츠 시장으로 평가받는다. 방송사들은 경기 중계와 특집 프로그램을 통해 높은 시청률을 확보하고, 기업들은 브랜드 노출을 위해 적극적인 광고 경쟁에 나선다. 특히 유튜브와 SNS를 중심으로 한 디지털 콘텐츠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새로운 광고시장도 형성되고 있다. 경기 하이라이트와 응원 영상, 선수 인터뷰 등 다양한 콘텐츠가 생산되고 소비되면서 미디어 산업 전반에 활력을 제공하고 있다. 스포츠 산업의 성장 또한 주목할 부분이다.대표팀의 활약은 국민들의 축구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유소년 축구 참여를 확대하는 계기가 된다. 이는 단순히 축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스포츠 교육, 스포츠 관광, 스포츠 용품, 체육시설 산업 등 연관 산업 전반의 성장으로 이어진다. 선진국의 사례를 보면 국제 스포츠 이벤트는 스포츠 산업의 저변을 넓히고 장기적인 시장 확대를 이끄는 중요한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국가 브랜드 가치 상승은 월드컵이 가져오는 가장 중요한 경제적 효과 가운데 하나다. 오늘날 국가 경쟁력은 국내총생산(GDP)이나 수출 규모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문화, 스포츠, 관광, 국민의식 등이 종합적으로 국가 이미지를 형성한다. 대한민국 대표팀이 세계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경우 세계인들은 한국을 더욱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는 관광객 증가와 해외 투자 유치, 한국 제품에 대한 신뢰도 향상으로 연결될 수 있다. K-팝과 K-드라마가 한국의 위상을 높였듯이 스포츠 역시 국가 브랜드를 높이는 중요한 자산이다. 특히 월드컵은 국민 통합과 사회적 자신감을 높이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온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국민들은 희망과 자신감을 필요로 한다. 대표팀의 선전은 세대와 지역, 계층을 넘어 국민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심리적 경제효과'라고 부른다. 국민들의 자신감이 높아질수록 소비와 투자 심리 역시 개선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필자는 이번 북중미 월드컵의 진정한 가치를 단순한 경제적 수치에서만 찾지 않는다.대한민국은 이미 세계가 주목하는 문화강국으로 성장했다. 이제 스포츠는 문화와 경제를 연결하는 또 하나의 국가 경쟁력이 되고 있다. 세계인들이 대한민국 선수들의 투혼과 국민들의 열정적인 응원 문화를 지켜보는 순간, 그것은 곧 대한민국이라는 브랜드를 경험하는 시간이 된다. 결국 월드컵의 경제효과는 경기 종료와 함께 끝나는 것이 아니다.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는 대한민국의 이미지, 미래 세대에게 심어주는 도전정신, 그리고 세계와 함께 나누는 감동이야말로 가장 큰 자산이다. 2026 북중미 월드컵은 축구 경기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대한민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국가 브랜드 가치를 높이며, 더 큰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희망의 플랫폼이 될 것이다. ▲ 글/사진: 이창호(李昌虎)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겸 국제다자외교평의회 대표(의장), 한중기자연맹 회장, 중국 곡부사범대학 겸직교수, 위해직업대학 객좌교수, 허베이미술대학 명예•종신교수, Marquis Who’s Who 등재 저자, 《우리가 아는 중국 우리가 모르는 중국》 저자. 도서
-
[지구일보] “우리는 중국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이창호, 내달 21일 북콘서트 개최
[지구일보 김채원 기자] 내달 21일 서울 마포구 교보문고 합정점에서 이창호 저자의 신간 『우리가 아는 중국 우리가 모르는 중국』 북콘서트가 개최된다. 이번 행사는 중국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하려는 독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다고 믿어온 중국의 실체를 새롭게 조명하는 자리로 마련된다. 단순한 출판 기념을 넘어, 변화하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을 재정립하는 지적 교류의 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창호 저자는 오랜 기간 한중 교류 현장에서 활동해온 전문가로, 책을 통해 중국 사회의 문화적 코드와 사고방식, 그리고 변화하는 국제 질서 속 전략적 움직임을 설득력 있게 풀어냈다. 특히 ‘알고 있는 중국’과 ‘실제의 중국’ 사이의 간극을 짚어내며 독자들에게 보다 균형 잡히고 현실적인 시각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북 콘서트에서는 저자의 집필 배경과 핵심 메시지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강연을 비롯해, 장철인 서영대학교 부총장의 축사와 김문준 한남대 교수, 김한준 남서울대 교수의 서평 발표가 이어질 예정이다. 또 독자와의 대화, 질의응답, 사인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현장 참여의 의미를 더한다. 현장에서 공유되는 생생한 사례와 경험은 독자들에게 책의 이해를 한층 깊게 하는 동시에, 중국을 둘러싼 복합적인 현실을 보다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계기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도서출판 북그루 관계자는 “이번 행사는 단순한 저자와의 만남을 넘어, 급변하는 국제 환경 속에서 중국을 어떻게 읽고 대응해야 할지에 대한 실질적인 통찰을 제공하는 뜻깊은 시간이 될 것”이라며 독자들의 관심과 참여를 당부했다.
-
-
[지구일보] 안중근의 동양평화와 한중일 경제공동체
- [지구일보 이창호 칼럼니스트]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다. 그러나 그를 단지 총을 든 독립운동가로만 기억한다면 그의 사상과 역사적 위상을 절반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안중근은 침략과 지배에 맞서 싸운 민족의 영웅이면서, 한·중·일 세 나라가 공동 번영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 선구적인 동양 평화 사상가였다. 안중근이 옥중에서 집필한 『동양평화론』은 오늘날에도 놀라울 만큼 현실적이다. 그는 한국·중국·일본이 서로를 적으로 돌리면 서구 열강의 각축장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반대로 세 나라가 독립과 주권을 존중하면서 협력한다면 동양의 평화와 번영을 지킬 수 있다고 확신했다. 공동회의체 구성, 공동은행 설립, 공동화폐 발행, 공동 방위체제와 청년교육 구상까지 제시했다. 사형을 앞둔 한 독립운동가가 100년 뒤의 동북아 질서를 내다본 것이다. 오늘의 한중일은 세계 경제의 중심축이다. 세 나라는 제조업과 첨단기술,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 조선, 물류, 금융, 문화산업에서 막강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인구와 시장, 생산력과 기술력을 결합한다면 유럽연합에 견줄 수 있는 거대한 경제권을 형성할 잠재력이 충분하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역사 갈등과 영토 문제, 안보 대립과 경제적 견제가 협력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세 나라가 가까이 있으면서도 멀리 돌아가고, 함께하면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고 있다. 경쟁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경쟁이 곧 적대일 필요는 없다. 미국과 유럽도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공동의 규칙과 시장을 만든다. 한중일 역시 서로의 체제와 주권을 존중한다는 원칙 아래 경제협력의 제도화를 서둘러야 한다. 공급망 안정, 기후변화 대응, 에너지 전환, 감염병 관리, 고령화, 인공지능과 디지털 경제는 어느 한 나라의 힘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정치적 갈등 때문에 경제와 민생까지 인질로 잡는 낡은 외교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중일 경제공동체는 당장 국경을 없애거나 단일 화폐를 도입하자는 구호가 아니다. 실현 가능한 분야부터 신뢰를 축적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먼저 한중일 자유무역협정 협상을 진전시키고, 기업과 지방정부·대학·연구기관이 참여하는 상설 협력기구를 강화해야 한다. 공동 산업단지와 기술혁신기금을 조성하고, 청년과 과학기술 인재의 이동을 확대해야 한다. 통관·물류·전자상거래 기준을 연결하고, 재난과 보건·환경 분야의 공동대응 체계도 구축해야 한다. 경제공동체의 핵심은 어느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지배하는 데 있지 않다. 안중근이 꿈꾼 동양평화 역시 강대국 중심의 질서가 아니었다. 독립된 국가들이 평등하게 참여하고, 공동의 이익을 나누며, 전쟁의 가능성을 경제적 연대로 차단하는 구상이었다. 일본은 과거 침략의 역사에 대한 진정성 있는 성찰을 보여야 하고, 중국은 커진 국력만큼 주변국의 우려를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한국은 미·중 경쟁의 파도에 수동적으로 흔들릴 것이 아니라 동북아 협력의 원칙과 의제를 주도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은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은 박물관에 보관할 유물이 아니라 오늘의 한중일이 실행해야 할 미래 설계도”라며 “세 나라가 과거의 상처를 외면해서도 안 되지만, 그 상처를 영원한 적대의 명분으로 이용해서도 안 된다. 경제와 청년, 기술과 문화의 연대를 통해 전쟁할 수 없는 동북아를 만드는 것이 안중근 정신을 계승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평화는 선언만으로 오지 않는다. 서로에게 전쟁보다 협력이 훨씬 큰 이익이 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지속된다. 경제공동체는 바로 그 구조를 세우는 현실적 수단이다. 정치가 막히면 민간이 길을 열고, 중앙정부가 주저하면 지방정부와 기업, 대학과 시민사회가 먼저 움직여야 한다. 안중근은 마지막 순간까지 일본 자체를 증오한 것이 아니라 침략주의를 꾸짖었다. 그가 겨눈 것은 한 나라의 국민이 아니라 동양의 공존을 파괴한 제국주의였다. 이제 한중일은 답해야 한다. 앞으로도 과거의 갈등을 반복하며 세계 질서의 변화를 바라보기만 할 것인가, 아니면 공동 번영의 새로운 질서를 스스로 만들 것인가. 안중근이 남긴 총성은 침략을 향한 심판이었다. 그가 남긴 『동양평화론』은 미래를 향한 명령이었다. 한중일 경제공동체는 몽상이 아니다. 결단하지 않아 실현되지 않았을 뿐이다. 지금이야말로 세 나라가 안중근의 미완성 원고를 현실의 정책으로 완성할 때다.
-
- TOP40
-
[지구일보] 안중근의 동양평화와 한중일 경제공동체
-
-
한중수교 34주년 기념포럼 국회 개최… "동북아 평화질서와 한·중 협력의 전략적 역할 모색"
- [지구일보] 한중수교 34주년을 맞아 동북아 평화와 한·중 협력의 미래를 모색하는 대규모 정책포럼이 국회에서 열렸다. 국제질서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양국이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새로운 협력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는 데 참석자들의 공감대가 모였다. 한중교류촉진위원회와 서영교 국회의원실은 지난 7월 10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한중수교 34주년 기념포럼'을 공동 개최했다. 주한 중국대사관이 후원한 이번 행사는 '동북아 평화질서와 한·중 협력의 전략적 역할'을 대주제로 정치·경제·문화·학술 등 다양한 분야의 협력 방안을 폭넓게 논의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최근 국제사회는 미·중 전략경쟁 심화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 지정학적 갈등 등으로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정부가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를 기조로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안정적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외교 방향을 제시하면서 한중 교류 확대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다. 이번 포럼은 이러한 시대적 변화 속에서 양국이 나아갈 실질적 협력 방안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 포럼은 이창호(李昌虎)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의 기조 강연을 시작으로 진행됐다. 이어 김문준 한남대학교 교수가 '미·중 경쟁 속 한중 우호관계'를 주제로, 김한준 남서울대학교 교수가 '문화가 여는 평화, 비즈니스가 잇는 한중 협력- K-컬처·교육·민간기업 융합을 통한 한중 문화교류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종합토론은 김도희 교수가 좌장을 맡아 진행했으며, 장철인 서영대학교 부총장과 권대근 중국 하북미술대학교 객좌교수 등이 토론자로 참여해 동북아 정세 변화와 민간외교의 역할, 문화교류 확대 방안 등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이날 행사에는 손보영 에스에이인터내셔날 회장, 김광진 청와대 전 정무비서관, 이한용 남북민간교류협의회 이사장, 대한기자신문 송면규 논설위원(박사), 김대유 경기대 전 교수, 지용일 동서울대학교 교수, 장경률 연변일보 종신논설위원, 조현 스포츠루다 이사장, 송광근 『화촌의 열정』 저자 등 정·관계와 학계, 문화예술계 인사를 비롯해 국내외 참가자 200여 명이 온·오프라인으로 함께했다. 이기수 전 고려대학교 총장은 축사를 통해 "동북아는 세계 경제와 안보를 좌우하는 핵심 지역"이라며 "한·중 협력은 역내 평화와 공동번영을 위한 전략적 기반이며, 경제협력뿐 아니라 기후변화, 첨단기술, 문화와 청년 교류 등 미래지향적 협력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영교 국회의원은 "이번 포럼은 한중 수교 34주년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을 넘어 새로운 한중관계의 미래를 준비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한중 양국 간 갈등을 완화하고 학술과 정책, 정보교류를 확대하는 소통의 플랫폼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마이구성(马貴生) 주한 중국공사는 "주한중국대사관은 한중수교 34주년 기념포럼에서 축사를 통해 지난 34년간 한중 양국이 경제·문화·교육·과학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룬 협력 성과를 높이 평가하며, 선린우호와 상호협력이 양국 관계의 올바른 발전 방향이라고 강조했다.”며 “최근 양국 간 고위급 교류를 계기로 관광·교육·과학기술·지방교류·언론 분야 협력이 한층 확대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인공지능(AI), 녹색경제, 디지털경제 등 미래 신산업 분야를 새로운 협력 동력으로 제시하며, 이번 포럼이 지난 34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한중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고 말했다. 중국국제우호연락회 리우한무(刘汉武) 상임이사는 축전을 통해 "지난 34년간 양국이 경제·무역·인문 교류를 바탕으로 상호 존중과 호혜 협력, 대화와 협의를 통해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해 온 경험이 미래 협력의 중요한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지정학적 갈등과 진영 대립이 심화되는 국제 환경 속에서 다자주의와 개방·포용의 원칙을 바탕으로 경제·과학기술·인문교류 등 실질 협력을 확대하고, 평화와 공동번영을 지향하는 새로운 동북아 질서를 함께 구축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박언휘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총재는 "한중 관계는 단순한 경제협력을 넘어 신뢰와 상생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성장해 왔다"며 "위원회는 앞으로도 양국을 잇는 민간외교의 가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기조 강연에 나선 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장은 "오늘날 한중 협력의 전략적 중요성이 더욱 커지는 이유는 한반도 안보 환경의 구조적 변화 때문"이라며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는 중국의 국경 안정, 미국의 역내 군사전략, 일본의 방위정책과 직결되는 동북아 공동의 과제"라고 진단했다. 이어 "동북아의 평화는 어느 한 국가만의 노력으로 이룰 수 없다"며 "지속 가능한 협력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정부 간 외교와 함께 문화·학술·경제 분야의 민간교류가 더욱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번 포럼이 단순한 기념행사를 넘어 동북아가 직면한 복합적 도전에 대한 공동 대응의 지혜를 모으고, 한중 협력의 새로운 청사진을 그리는 실질적인 논의의 장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포럼은 한중수교 34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 머물지 않고, 급변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한중 양국이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평화와 공동번영의 미래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확인한 의미 있는 정책 플랫폼으로 평가받았다. 정부 외교와 민간외교가 조화를 이루는 지속 가능한 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제언 역시 참석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
- TOP40
-
한중수교 34주년 기념포럼 국회 개최… "동북아 평화질서와 한·중 협력의 전략적 역할 모색"
-
-
[지구일보] 이창호 작가로서의 로드맵, 시대를 기록하는 필자에서,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인문 저술가로...
- [지구일보 이강문 기자] 한 권의 책은 한 사람의 삶을 담지만, 한 사람의 작가는 한 시대의 정신을 기록한다. 작가는 단순히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시대를 해석하고 미래를 제시하는 사람이다. 이창호 작가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 역시 개인의 성공을 넘어 한국과 중국, 그리고 동아시아를 잇는 인문학적 가교를 세우는 데 있다. 그동안 이 작가는 『마오쩌둥 평전』, 『덩샤오핑 평전』, 『시진핑, 위대한 중국을 품다』, 『팍스 차이나』, 『이순신 리더십』, 『안중근 평전』 등을 통해 중국 현대사와 정치, 외교를 꾸준히 연구하며 저술 활동을 이어왔다. 특정 인물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대의 흐름과 국제질서를 함께 조망하려는 시도가 그의 작품 세계를 형성해 왔다. 세계적인 작가들의 길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영국의 역사가 폴 존슨은 정치와 문명을 연결해 서술했고, 미국의 전기작가 월터 아이작슨은 한 인물의 삶을 통해 시대정신을 읽어냈다. 일본의 시바 료타로는 역사 속 인물을 통해 국민의 정체성을 되새기게 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사건보다 사람을, 사람보다 시대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이창호 작가 역시 이제는 '중국 전문가'라는 범주를 넘어 '동아시아 문명과 평화를 기록하는 작가'로 영역을 넓힐 필요가 있다. 앞으로의 저술은 세 갈래로 발전할 수 있다. 첫째, 평전의 대가가 되는 길이다. 한 인물을 둘러싼 정치·문화·외교적 맥락을 깊이 있게 풀어내는 평전은 오랫동안 독자의 생명력을 얻는다. 단순한 사실 나열이 아니라 인간의 철학과 시대적 의미를 담아내야 한다. 둘째, 인문학 에세이스트의 길이다. 최근 발표한 건강과 삶, 열정, 희망, 경청 등을 주제로 한 칼럼처럼 일상의 경험을 인문학적 성찰로 연결하는 글은 폭넓은 독자층과 만날 수 있다. 독자는 지식보다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글을 오래 기억한다. 셋째, 국제관계 기록자의 길이다. 한중 관계와 동북아 평화, 문화외교의 현장을 직접 취재하고 기록하는 작업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큰 가치를 지닌다. 현장의 경험은 다른 사람이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작가만의 자산이 된다.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경쟁력은 많이 쓰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쓰는 것이다.하루 한 편의 원고, 한 달 한 권의 기획, 일 년 한 권의 대표작이 쌓이면 결국 그것이 작가의 브랜드가 된다. 좋은 작가는 책을 남기지만, 위대한 작가는 시대를 남긴다. 앞으로 이창호 작가의 로드맵은 단순히 저서를 늘리는 데 있지 않다. 대한민국과 중국을 잇는 문화의 기록자, 동아시아 평화와 인문의 가치를 전하는 저술가, 그리고 후학들이 참고하는 사료를 남기는 작가가 되는 데 있다. 글은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드러난다. 오늘의 한 문장이 내일의 역사 자료가 되고, 한 권의 책이 한 시대를 이해하는 창이 된다. 이창호(李昌虎) 작가의 다음 목표는 더 많은 책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래 읽히는 책을 쓰는 것이다. 그것이 한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가 걸어야 할 가장 긴 여정이며, 가장 의미 있는 로드맵이다.
-
- TOP40
-
[지구일보] 이창호 작가로서의 로드맵, 시대를 기록하는 필자에서,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인문 저술가로...
-
-
[지구일보]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중국 문화·교육계, 세계유산위원회 부산 개최지지
- [지구일보 이강문 기자] 한중교류촉진위원회는 19일 중국 문화유산 연구자와 교육·문화계 인사들이 공동 명의로 작성한 ‘세계유산위원회 부산 개최 지지 서한’을 전재수 부산시장 당선인 측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서한에는 부산이 세계유산위원회 개최에 필요한 역량과 인프라를 갖춘 도시라는 평가가 담겼다. 중국 측 인사들은 부산이 국제회의 시설과 교통, 숙박 여건을 갖추고 있으며 다양한 국제행사를 개최한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중국 측은 문화유산을 인류가 함께 보존하고 계승해야 할 공동 자산으로 규정했다. 이어 기후변화와 전쟁, 도시화 등으로 세계 각국의 문화유산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세계유산위원회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 개최의 의미도 언급했다. 중국 측은 한국과 중국이 오랜 기간 문화와 사상, 예술, 학문 분야에서 교류를 이어온 만큼 세계유산위원회가 부산에서 열릴 경우 동북아 문화 협력과 국제사회의 연대 확대에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한중교류촉진위원회는 “이번 서한이 국제회의 유치 지지를 넘어 문화유산을 통한 평화와 협력의 가치를 담고 있다”고 했다. 중국 문화·교육계 인사들은 서한에서 “세계유산은 과거의 유산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세대에 전해야 할 공동 자산”이라며 “부산이 세계와 함께 문화유산의 가치를 공유하는 국제 문화도시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
- TOP40
-
[지구일보]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중국 문화·교육계, 세계유산위원회 부산 개최지지
-
-
[지구일보] 2026 북중미 월드컵, 대한민국 경제에 불어넣는 희망의 바람
- [지구일보] 2026 북중미 월드컵이 전 세계 축구팬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 막을 올렸다. 대한민국 대표팀의 선전은 국민들에게 감동과 자부심을 안겨주고 있으며, 월드컵 열기는 단순한 스포츠 행사를 넘어 우리 경제와 사회 전반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비록 대한민국은 이번 대회의 개최국은 아니지만 월드컵이 가져오는 경제적 파급효과는 결코 적지 않다. 오 히려 디지털 플랫폼과 글로벌 네트워크가 발달한 오늘날에는 개최 여부와 관계없이 다양한 분야에서 경제적 혜택을 기대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무엇보다 가장 먼저 나타나는 변화는 소비시장 활성화다. 대한민국 대표팀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치킨, 피자, 음료, 간편식 등 외식 및 식품업계의 매출이 증가하는 현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스포츠용품과 응원용품 시장 역시 활기를 띤다. 최근에는 온라인 쇼핑과 모바일 플랫폼 이용이 확대되면서 월드컵 특수가 오프라인을 넘어 디지털 경제 영역까지 확대되고 있다. 기업들은 국가대표 선수들을 활용한 광고와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소비자와의 접점을 넓히고 있으며, 이는 내수시장 활성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광고와 미디어 산업 역시 월드컵의 대표적인 수혜 분야다.월드컵은 올림픽과 함께 세계 최대 규모의 콘텐츠 시장으로 평가받는다. 방송사들은 경기 중계와 특집 프로그램을 통해 높은 시청률을 확보하고, 기업들은 브랜드 노출을 위해 적극적인 광고 경쟁에 나선다. 특히 유튜브와 SNS를 중심으로 한 디지털 콘텐츠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새로운 광고시장도 형성되고 있다. 경기 하이라이트와 응원 영상, 선수 인터뷰 등 다양한 콘텐츠가 생산되고 소비되면서 미디어 산업 전반에 활력을 제공하고 있다. 스포츠 산업의 성장 또한 주목할 부분이다.대표팀의 활약은 국민들의 축구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유소년 축구 참여를 확대하는 계기가 된다. 이는 단순히 축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스포츠 교육, 스포츠 관광, 스포츠 용품, 체육시설 산업 등 연관 산업 전반의 성장으로 이어진다. 선진국의 사례를 보면 국제 스포츠 이벤트는 스포츠 산업의 저변을 넓히고 장기적인 시장 확대를 이끄는 중요한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국가 브랜드 가치 상승은 월드컵이 가져오는 가장 중요한 경제적 효과 가운데 하나다. 오늘날 국가 경쟁력은 국내총생산(GDP)이나 수출 규모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문화, 스포츠, 관광, 국민의식 등이 종합적으로 국가 이미지를 형성한다. 대한민국 대표팀이 세계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경우 세계인들은 한국을 더욱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는 관광객 증가와 해외 투자 유치, 한국 제품에 대한 신뢰도 향상으로 연결될 수 있다. K-팝과 K-드라마가 한국의 위상을 높였듯이 스포츠 역시 국가 브랜드를 높이는 중요한 자산이다. 특히 월드컵은 국민 통합과 사회적 자신감을 높이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온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국민들은 희망과 자신감을 필요로 한다. 대표팀의 선전은 세대와 지역, 계층을 넘어 국민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심리적 경제효과'라고 부른다. 국민들의 자신감이 높아질수록 소비와 투자 심리 역시 개선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필자는 이번 북중미 월드컵의 진정한 가치를 단순한 경제적 수치에서만 찾지 않는다.대한민국은 이미 세계가 주목하는 문화강국으로 성장했다. 이제 스포츠는 문화와 경제를 연결하는 또 하나의 국가 경쟁력이 되고 있다. 세계인들이 대한민국 선수들의 투혼과 국민들의 열정적인 응원 문화를 지켜보는 순간, 그것은 곧 대한민국이라는 브랜드를 경험하는 시간이 된다. 결국 월드컵의 경제효과는 경기 종료와 함께 끝나는 것이 아니다.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는 대한민국의 이미지, 미래 세대에게 심어주는 도전정신, 그리고 세계와 함께 나누는 감동이야말로 가장 큰 자산이다. 2026 북중미 월드컵은 축구 경기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대한민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국가 브랜드 가치를 높이며, 더 큰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희망의 플랫폼이 될 것이다. ▲ 글/사진: 이창호(李昌虎)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겸 국제다자외교평의회 대표(의장), 한중기자연맹 회장, 중국 곡부사범대학 겸직교수, 위해직업대학 객좌교수, 허베이미술대학 명예•종신교수, Marquis Who’s Who 등재 저자, 《우리가 아는 중국 우리가 모르는 중국》 저자. 도서
-
- TOP40
-
[지구일보] 2026 북중미 월드컵, 대한민국 경제에 불어넣는 희망의 바람
-
-
[지구일보] “우리는 중국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이창호, 내달 21일 북콘서트 개최
- [지구일보 김채원 기자] 내달 21일 서울 마포구 교보문고 합정점에서 이창호 저자의 신간 『우리가 아는 중국 우리가 모르는 중국』 북콘서트가 개최된다. 이번 행사는 중국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하려는 독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다고 믿어온 중국의 실체를 새롭게 조명하는 자리로 마련된다. 단순한 출판 기념을 넘어, 변화하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을 재정립하는 지적 교류의 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창호 저자는 오랜 기간 한중 교류 현장에서 활동해온 전문가로, 책을 통해 중국 사회의 문화적 코드와 사고방식, 그리고 변화하는 국제 질서 속 전략적 움직임을 설득력 있게 풀어냈다. 특히 ‘알고 있는 중국’과 ‘실제의 중국’ 사이의 간극을 짚어내며 독자들에게 보다 균형 잡히고 현실적인 시각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북 콘서트에서는 저자의 집필 배경과 핵심 메시지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강연을 비롯해, 장철인 서영대학교 부총장의 축사와 김문준 한남대 교수, 김한준 남서울대 교수의 서평 발표가 이어질 예정이다. 또 독자와의 대화, 질의응답, 사인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현장 참여의 의미를 더한다. 현장에서 공유되는 생생한 사례와 경험은 독자들에게 책의 이해를 한층 깊게 하는 동시에, 중국을 둘러싼 복합적인 현실을 보다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계기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도서출판 북그루 관계자는 “이번 행사는 단순한 저자와의 만남을 넘어, 급변하는 국제 환경 속에서 중국을 어떻게 읽고 대응해야 할지에 대한 실질적인 통찰을 제공하는 뜻깊은 시간이 될 것”이라며 독자들의 관심과 참여를 당부했다.
-
- TOP40
- 문화
-
[지구일보] “우리는 중국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이창호, 내달 21일 북콘서트 개최
실시간 TOP40 기사
-
-
[지구일보] 안중근의 동양평화와 한중일 경제공동체
- [지구일보 이창호 칼럼니스트]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다. 그러나 그를 단지 총을 든 독립운동가로만 기억한다면 그의 사상과 역사적 위상을 절반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안중근은 침략과 지배에 맞서 싸운 민족의 영웅이면서, 한·중·일 세 나라가 공동 번영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 선구적인 동양 평화 사상가였다. 안중근이 옥중에서 집필한 『동양평화론』은 오늘날에도 놀라울 만큼 현실적이다. 그는 한국·중국·일본이 서로를 적으로 돌리면 서구 열강의 각축장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반대로 세 나라가 독립과 주권을 존중하면서 협력한다면 동양의 평화와 번영을 지킬 수 있다고 확신했다. 공동회의체 구성, 공동은행 설립, 공동화폐 발행, 공동 방위체제와 청년교육 구상까지 제시했다. 사형을 앞둔 한 독립운동가가 100년 뒤의 동북아 질서를 내다본 것이다. 오늘의 한중일은 세계 경제의 중심축이다. 세 나라는 제조업과 첨단기술,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 조선, 물류, 금융, 문화산업에서 막강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인구와 시장, 생산력과 기술력을 결합한다면 유럽연합에 견줄 수 있는 거대한 경제권을 형성할 잠재력이 충분하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역사 갈등과 영토 문제, 안보 대립과 경제적 견제가 협력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세 나라가 가까이 있으면서도 멀리 돌아가고, 함께하면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고 있다. 경쟁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경쟁이 곧 적대일 필요는 없다. 미국과 유럽도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공동의 규칙과 시장을 만든다. 한중일 역시 서로의 체제와 주권을 존중한다는 원칙 아래 경제협력의 제도화를 서둘러야 한다. 공급망 안정, 기후변화 대응, 에너지 전환, 감염병 관리, 고령화, 인공지능과 디지털 경제는 어느 한 나라의 힘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정치적 갈등 때문에 경제와 민생까지 인질로 잡는 낡은 외교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중일 경제공동체는 당장 국경을 없애거나 단일 화폐를 도입하자는 구호가 아니다. 실현 가능한 분야부터 신뢰를 축적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먼저 한중일 자유무역협정 협상을 진전시키고, 기업과 지방정부·대학·연구기관이 참여하는 상설 협력기구를 강화해야 한다. 공동 산업단지와 기술혁신기금을 조성하고, 청년과 과학기술 인재의 이동을 확대해야 한다. 통관·물류·전자상거래 기준을 연결하고, 재난과 보건·환경 분야의 공동대응 체계도 구축해야 한다. 경제공동체의 핵심은 어느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지배하는 데 있지 않다. 안중근이 꿈꾼 동양평화 역시 강대국 중심의 질서가 아니었다. 독립된 국가들이 평등하게 참여하고, 공동의 이익을 나누며, 전쟁의 가능성을 경제적 연대로 차단하는 구상이었다. 일본은 과거 침략의 역사에 대한 진정성 있는 성찰을 보여야 하고, 중국은 커진 국력만큼 주변국의 우려를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한국은 미·중 경쟁의 파도에 수동적으로 흔들릴 것이 아니라 동북아 협력의 원칙과 의제를 주도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은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은 박물관에 보관할 유물이 아니라 오늘의 한중일이 실행해야 할 미래 설계도”라며 “세 나라가 과거의 상처를 외면해서도 안 되지만, 그 상처를 영원한 적대의 명분으로 이용해서도 안 된다. 경제와 청년, 기술과 문화의 연대를 통해 전쟁할 수 없는 동북아를 만드는 것이 안중근 정신을 계승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평화는 선언만으로 오지 않는다. 서로에게 전쟁보다 협력이 훨씬 큰 이익이 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지속된다. 경제공동체는 바로 그 구조를 세우는 현실적 수단이다. 정치가 막히면 민간이 길을 열고, 중앙정부가 주저하면 지방정부와 기업, 대학과 시민사회가 먼저 움직여야 한다. 안중근은 마지막 순간까지 일본 자체를 증오한 것이 아니라 침략주의를 꾸짖었다. 그가 겨눈 것은 한 나라의 국민이 아니라 동양의 공존을 파괴한 제국주의였다. 이제 한중일은 답해야 한다. 앞으로도 과거의 갈등을 반복하며 세계 질서의 변화를 바라보기만 할 것인가, 아니면 공동 번영의 새로운 질서를 스스로 만들 것인가. 안중근이 남긴 총성은 침략을 향한 심판이었다. 그가 남긴 『동양평화론』은 미래를 향한 명령이었다. 한중일 경제공동체는 몽상이 아니다. 결단하지 않아 실현되지 않았을 뿐이다. 지금이야말로 세 나라가 안중근의 미완성 원고를 현실의 정책으로 완성할 때다.
-
- TOP40
-
[지구일보] 안중근의 동양평화와 한중일 경제공동체
-
-
[지구일보] 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40) 권대근의 2등철학의 역설, 살아남음의 미학
- 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40) 권대근 ‘2등철학의 역설, 살아남음의 미학’ ― 김영하 「무용의 용」, 산문집 『단 한 번의 삶』에서 권대근 문학박사, 하북미술대 객좌교수 좋은 수필은 사소한 경험에서 출발하지만 결코 사소한 곳에 머물지 않는다. 한 사람의 기억이 자기 고백에 그치지 않고 인간과 세계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될 때, 체험은 비로소 문학적 사유가 된다. 소설가로 유명한 김영하의 산문집 『단 한 번의 삶』에 실린 수필 「무용의 용」은 바로 그러한 수필의 본령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라디오 프로그램의 프로듀서와 함께 통영으로 가는 승합차 안에서 벌어진 포커 한 판이 이 글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포커는 단순한 에피소드가 아니다. 그것은 작가가 인간의 생존 방식과 삶의 가치에 대해 사유하기 위해 선택한 하나의 ‘사건’이다. 이 수필의 핵심 명제는 의외로 단순하다. “1등이 아니라 2등을 해야 돼요.” 그러나 이 문장은 경쟁사회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가치의 질서를 정면으로 거스른다. 우리는 1등을 성공으로, 2등을 실패에 가까운 것으로 배워왔다. 1등은 기억되고 2등은 잊힌다는 사회적 통념 속에서 살아왔다. 그런데 작가는 포커를 잘하는 한 프로듀서의 입을 빌려 오히려 “꾸준히 2등을 하는 게 최선”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수필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철학적 질문으로 전환된다. ‘무엇이 성공인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쓸모 있다는 것은 과연 좋은 것인가’, ‘눈에 띄지 않는 삶은 가치가 없는가’라는 질문이 포커판에서 장자의 철학으로, 다시 현대사회의 생존 경쟁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무용의 용」이 명수필로서 갖는 첫 번째 조건이다. 이 글의 문학적 출발점은 매우 구체적이다. 도수 높은 안경을 쓴 마산 출신의 프로듀서, 두 대의 검은 승합차, 카메라 박스로 만든 임시 테이블, 트럼프 카드와 바둑알 등 구체적인 사물과 인물이 차례로 등장한다. 특히 프로듀서를 “먹이를 찾아 어슬렁어슬렁 마을로 내려온 곰 같은 인상”이라고 묘사한 대목은 인물의 성격을 단번에 각인시킨다. 이처럼 구체적인 관찰은 수필의 중요한 미덕이다. 추상적인 철학을 먼저 들이밀지 않고 사람과 사물과 상황을 보여준 뒤 그 안에서 의미를 길어 올린다. 독자는 먼저 웃고, 흥미를 느끼고, 호기심을 갖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자신이 읽고 있던 것이 포커 이야기가 아니라 ‘삶의 게임’에 관한 이야기였음을 깨닫는다. 특히 프로듀서의 포커 실력은 단순한 재주가 아니라 그의 세계관을 드러내는 장치로 기능한다. 그는 패를 읽고, 상대를 관찰하고, 승부의 판을 판단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무조건 게임에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잘 모르겠는 판에는 함부로 끼지 마세요”라는 원칙이다. 이 문장은 포커의 기술을 넘어 삶의 기술이 된다. 수필의 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포커라는 특수한 경험이 독자의 일상적 삶으로 번져 나간다. 직장, 인간관계, 경쟁, 성공과 실패의 모든 영역에서 우리는 수많은 ‘판’에 참여한다. 그러나 그 판의 성격과 상대의 힘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뛰어드는 경우가 많다. 작가는 포커를 통해 삶의 경쟁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제시한다. 이 작품의 압권은 “1등이 아니라 2등을 해야 돼요”이다. 이것은 단순한 처세술이 아니라 가치의 전복을 일으키는 역설적 문장이다. 프로듀서에게 1등은 위험하다. 한 번의 압도적인 승리는 사람들의 눈에 띄게 하고, 지속적인 경쟁을 불러오며, 결국 자신을 위험에 노출시킨다. 반면 2등은 눈에 잘 띄지 않으면서도 꾸준히 실속을 챙길 수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2등은 패배가 아니라 하나의 생존 전략이다. 작가는 이 역설을 삼성그룹의 유명한 광고 문구와 연결한다.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습니다”라는 사회적 명제에 대해 작품 속 프로듀서는 정반대의 논리를 제시한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2등이 최고”라는 것이다. 여기서 수필은 개인적 체험을 넘어 사회문화적 비판으로 확장된다. 이는 미셸 푸코식으로 말하면 사회가 인간에게 요구하는 규율과 정상성에 대한 작은 저항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 수필의 문학적 가치는 이 상식을 깨는 인식에서 찾을 수 있다. 사회는 끊임없이 순위를 매기고, 서열화하고, 누가 앞섰는지를 기록한다. 1등을 표준으로 만들어 놓고 나머지를 그 표준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로 평가한다. 그런데 작가는 그 질서 자체를 의심한다. 수필가는 여기서 “왜 1등이어야 하는가?”라고 묻는다. 이 질문은 1등을 부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1등이라는 하나의 가치만을 절대적인 가치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2등’은 숫자가 아니라 하나의 철학적 태도가 된다. 작품의 후반부에서 포커 이야기는 장자의 ‘무용지용(無用之用)’으로 이동한다. 이것이 제목 「무용의 용」의 사상적 근거다. 장자의 철학에서 쓸모없음은 단순한 결핍이 아니다. 오히려 쓸모가 없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고, 쓸모가 없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다. 작가는 이를 나무의 비유로 설명한다. 쓸모 있는 나무는 그 쓸모 때문에 베어지지만, 쓸모없는 나무는 베어지지 않고 천수를 누린다. 이 역설은 포커판의 2등과 정확하게 연결된다. 이 작품에서 ‘2등’과 ‘무용’은 서로 다른 이야기가 아니다. 둘 다 사회가 정해놓은 가치의 중심에서 벗어난 존재 방식이다. 1등이 되지 않는 것, 가장 유능한 존재가 되지 않는 것, 모두에게 기억되는 사람이 되지 않는 것, 때로는 쓸모없는 존재로 남는 것이 오히려 삶을 보존하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작품은 장자의 철학을 단순히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장자의 사상을 자신의 체험 속에 다시 작동시킨다. 이것이 중요한 문학적 성취다. 철학이 인용문으로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경험을 해석하는 사유의 도구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작품 후반부의 중요한 변화는 사람을 나무로 바라보기 시작하는 대목이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크고 우람한 나무처럼 도드라지는 이가 있다. 그런 사람은 그늘도 크다. 그 그늘 속에 존재감 없이 묵묵히 앉아 있는 이도 있다.” 이 부분은 「무용의 용」에서 가장 아름다운 환유적 장면 가운데 하나다. 나무는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사회적 위치를 보여주는 이미지가 된다. 큰 나무와 그늘, 드러나는 사람과 드러나지 않는 사람의 관계가 겹쳐진다. 작가는 이제 ‘2등’을 단순히 포커의 순위로 바라보지 않는다. 자신의 주변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새롭게 발견한다. 이것은 작가의 시선이 변화한 순간이다. “그후로 사람을 보는 관점도 조금 바뀌었다”는 문장은 짧지만 작품 전체의 전환점이다. 좋은 수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건 자체보다 사건 이후 달라진 ‘보는 방식’이다. 체험 전의 세계와 체험 후의 세계가 달라져야 한다. 「무용의 용」은 이 변화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포커를 치기 전의 작가는 2등을 패배의 위치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프로듀서의 말을 들은 뒤에는 보이지 않는 2등, 존재감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치를 보기 시작한다. 작가의 이런 가치관과 세계관이 자신이 살아가는 지침으로 여러 산문을 관통하며 흐르고 있음을 볼 때, 작가는 누구보다도 진실한 삶의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것 같다. 작품은 마지막에 ‘생존’이라는 거대한 문제로 나아간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도 아니고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도 아니다.” 이 문장은 작품의 사유를 압축하는 결정적 문장이다. 생존은 능력이나 우월성의 단순한 결과가 아니다.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하나의 사건이며, 그 이유와 방법을 당사자조차 정확히 알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작품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불러온다. 브레히트의 시가 던지는 죄의식과 생존자의 자의식은 김영하의 수필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과거에는 살아남은 것이 오히려 부끄러움의 대상이었다면, 오늘날에는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이 최고의 가치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이를 오늘날의 서바이벌 게임과 연결한다. “오직 단 한 명만이 살아남는다는 ‘오징어 게임’, 서바이벌 게임의 세계관”은 극단적인 경쟁사회의 은유가 된다. 여기서 작품은 개인의 회고를 넘어 현대사회의 경쟁 구조를 바라보는 사회철학적 수필로 확장된다. 그러나 작가는 끝내 냉소로 마무리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음과 같은 믿음을 남긴다. “액정화면 밖 진짜 세상은 다르다고. 거기에는 조용히, 그러나 치열하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남아 어떻게든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싸우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이 결말이야말로 작품을 단순한 성공론이나 처세론과 구별한다. 작가는 1등을 포기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기 방식으로 삶을 견디고 살아가는 인간의 존엄을 말한다. 「무용의 용」은 포커라는 작은 사건에서 출발해 2등의 철학, 장자의 무용지용, 생존의 의미, 현대사회의 경쟁 구조까지 사유의 폭을 넓혀가는 수필이다. 무엇보다 이 글의 미덕은 철학을 앞세우지 않는 데 있다. 작가는 처음부터 장자를 말하지 않는다. 먼저 곰 같은 프로듀서를 보여주고, 승합차를 보여주고, 포커판을 보여주고, 그가 하는 말을 들려준다. 그리고 독자가 충분히 이야기 속으로 들어왔을 때 장자의 ‘무용지용’을 끌어들인다. 이것은 본격수필이 지녀야 할 ‘체험에서 사유로, 사유에서 존재론으로 나아가는 구조’를 정확히 보여준다. 사건은 사유의 재료이고, 사유는 다시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으로 돌아온다. 문학적으로도 이 작품은 역설과 대비의 힘이 강하다. 1등과 2등, 쓸모와 무용, 강자와 생존자, 드러난 사람과 보이지 않는 사람, 경쟁과 생존이 끊임없이 대립한다. 그러나 작가는 어느 한쪽을 단순하게 선택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이의 틈에서 인간의 삶을 바라본다. 이것이 작품의 철학적 깊이를 만든다. 특히 제목 「무용의 용」은 작품 전체를 압축하는 탁월한 역설이다. ‘쓸모없음의 쓸모’라는 장자의 사유가 현대인의 삶 속에서 새롭게 번역된 것이다. 사회가 쓸모 있다고 규정한 사람만이 가치 있는 것이 아니며, 1등으로 기록되는 사람만이 성공한 것도 아니다. 때로는 눈에 띄지 않는 2등이 가장 오래 살아남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나무가 천수를 누린다. 따라서 이 수필에서 ‘2등’은 패배가 아니다. 그것은 과도한 경쟁과 과시의 욕망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생존의 미학이며, ‘무용’은 무가치함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존재 가능성이다. 명수필은 독자에게 정답을 가르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당연하다고 믿어온 것을 낯설게 만든다. 「무용의 용」은 바로 그런 작품이다. 우리는 이 글을 읽고 난 뒤 1등을 바라보던 눈으로 2등을 바라보게 되고, 큰 나무만 보던 눈으로 그늘 속의 작은 나무를 보게 된다. 무엇보다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결국 이 작품이 말하는 것은 2등이 되라는 처세술이 아니다. 남보다 앞서는 삶보다 자기 방식으로 끝까지 살아가는 삶이 더 깊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세상이 기억하지 않는 존재들에게도 자기만의 생존과 존엄의 서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무용의 용」은 포커에 관한 수필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를 묻는 생존의 철학이며, 보이지 않는 인간들을 발견하게 하는 시선의 문학이다. 사소한 여행담 하나를 장자의 무용지용과 현대사회의 서바이벌 구조까지 확장한 이 작품은 체험과 사유, 이야기와 철학, 유머와 성찰을 균형 있게 결합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명수필의 반열에 놓을 만하다. ▮권대근 주요 약력 △경남 남해 출생 △'동양문학' 수필 등단(1988) △'문예사조' 문학평론 △'경북신문' 문학평론 △미주 '중앙일보' 수필 신춘문예 당선 △현재 대신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중)하북미술대 객좌교수 △한국본격문학가협회 회장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명예회장 △평론집 '수필은 사기다', 번역서 '한국의 명수필', 문학이론서 '문장가로 가는 길' △수필집 '고운 별 하나 가슴에 묻고' 등 28권 △부산수필문학상, 부산펜문학상, 월강문학상, 여산문학상, 정과정문학상, 부산pen번역문학상 등 수상 무용의 용 김영하 삼십대 중반에 나는 이 년 정도 라디오 책 소개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았다. 생방송이어서 매일 방송국에 출근했고 여러 분야의 저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메인 프로듀서는 도수 높은 안경을 쓴 마산 출신의 사십대 남자로, 먹이를 찾아 어슬렁어슬렁 마을로 내려온 곰 같은 인상을 풍겼다. 늘 미소를 잃지 않았으나 승부욕이 강하고 집요했다. 라디오 진행이라니 말도 안 된다며 손사래를 치는 소설가들을 여럿 붙잡아 진행을 맡겼고, 출연하지 않겠다는 저자가 있으면 어떻게든 설득해 방송국까지 오게 만들었다. 여름이 되자 그는 통영으로 프로그램 MT를 가자고 했다. 좀 멀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진행자인 내가 안 갈 수는 없어 가겠다고 했고, 고정 패널, 보조 프로듀서와 방송작가까지 거의 전원이 참여했다. 이른 아침에 울긋불긋한 옷을 입고 방송국에 모인 우리는 그래도 여행은 여행이라 다들 조금 들떠 있었고, 방송국 마크가 찍힌 두 대의 검은 승합차에 나눠 타 통영을 향해 출발했다. 출발 전 곰 프로듀서는 2열의 의자를 뒤로 돌려 3열과 마주보도록 만들었다. 차가 경부고속도로에 올라서자 그는 나에게 포커를 할 줄 아냐고 물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해본 적이 있다고 하니 가는 동안 재미삼아 치자면서 카메라 박스를 가운데 놓아 테이블처럼 만들더니 그 위에 트럼프 카드를 올려놓았다. 제작진들은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닌지 주섬주섬 자세를 잡고 포커를 칠 준비를 했다. 돈을 걸고 하는 것은 아니었다. 곰 피디는 준비해 온 바둑알을 모두에게 분배해주었다. 갑자기 무슨 도박인가 싶어 몸을 움츠렸던 나와 다른 출연자들도 바둑알을 보고는 긴장을 풀었다. 포커는 통영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되었는데 곰 피디의 원맨쇼였다. “아, 스페이드 킹은 영하씨가 들고 있구나.” 그는 다른 사람이 들고 있는 패를 투시하듯 다 알았고, 판에 깔린 바둑알을 모두 거둬들였다가 나눠주기를 반복했다. 자기 주머니에 넣었다 빼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좁은 승합차 안에서 불편한 자세로 끝없이 계속되는 포커에 다들 조금씩 지쳐갔지만 그의 눈만은 반짝였다. 그는 우리에게 포커가 얼마나 재미있는 세계인지를 알려주고 싶어했다. 그에게 포커는 과학이면서 심리학이고, 인생 학교였다. 그러고 보니 그는 평소 오목도 잘했다. 오목을 애들 장난쯤으로 비웃는 사람들을 만나면 바로 가방에서 휴대용 바둑판과 자석 바둑알을 꺼내 한 판 둬보자고 졸랐고, 됐다 하면 이겼다. 방송국 휴게실에서도 그는 틈만 나면 몸을 웅크리고 오목을 두었는데 그를 꺾었다는 사람을 못 봤다. 오목에도 바둑처럼 15급부터 9단까지 급수가 있다는 것 역시 그를 통해 처음 알았다. 승합차 안에서 그는 포커의 ‘과학’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지만 나는 거의 이해하지 못했고, 사실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들어보니 포커라는 게 치밀한 계산이 필요한 것 같았는데 차가 흔들려 자꾸 멀미 기운도 올라오고 해서 나의 뇌는 생각을 거부했다. 그래도 운이 좋으면 한 판이라도 이기겠지 싶어 터무니없는 블러핑도 해보고,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았으나 전혀 먹히지 않았다. 포커는 승합차가 지리산 어딘가의 휴게소로 들어서면서 끝났다. 함께 화장실로 걸어가면서 나는 그에게 도대체 어떻게 이 정도로 포커 실력을 키웠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독학이라고 답했다. 오목처럼 포커도 하나의 기술이며 그래서 열심히 연습하면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진담인지 농담인지 모호한 표정으로, 용돈이 좀 필요하면 포커를 하러 가고, 적당히 따면 큰 욕심 부리지 않고 물러난다고도 했다. “영하씨, 포커에서 제일 중요한 거 하나 알려줄까요?” 그러지 않아도 나는 원래 누구에게든 이런 질문을 잘 던지는 편이다. 예를 들어 바리스타를 만나면 커피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뭔가요, 라고 묻고, 건축가를 만나면 집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뭐예요, 라고 묻는다. 로스팅을 하는 바리스타는 무엇보다 생두의 품질이라고 말했고, 건축가는 물과의 싸움이라고 했다. 그가 포커에서 제일 중요한 것 하나를 스스로 알려준다니 비록 포커를 계속할 것은 아니었지만 솔깃했다. “뭔데요?” “잘 모르겠는 판에는 함부로 끼지 마세요.” “왜요?” “나보다 고수가 있을 수 있거든. 처음 보는 사람이 앉아 있는 포커판에 어쩌다 끼게 되면 나도 그냥 학교만 가요. 절대 크게 걸지 않아요.” 기본 판돈만 걸고 포기한다는 뜻이었다. “운이 좋으면 고수를 이길 수도 있잖아요? ‘초심자의 운’, 그런 것도 있고.”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없어요. 장기전으로 가면 절대 못 이겨요.” 통영까지 가는 내내 판판이 깨진 터라 그의 장담이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먼저 그 판에 나보다 고수가 있는지를 살피고, 없다 싶으면 그때부터 제대로 게임을 해요.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어요.” 나는 이런 게임을 이렇게 진지하게 하는 사람은 처음 접했고, 그래서인지 그의 말은 어딘가 무시무시하게 들렸다. “아, 그리고 하나 더.” 내가 열심히 들어주자 그는 자기만의 비밀을 보너스로 하나 더 알려주었다. “포커판에서는,” 그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1등이 아니라 2등을 해야 돼요.” “왜요? 1등이 제일 많이 벌잖아요? 영화 같은 데 보면 한 사람이 싹 다 쓸어가던데요?” “그거야 영화니까 그런 거고, 1등 크게 한 번 하는 것보다 꾸준히 2등을 하는 게 최선이에요. 2등은 사람들 눈에 잘 띄지도 않고, 개평 달라고 보채는 사람도 없고…….” 1995년에 삼성그룹은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습니다”라는 유명한 카피를 유행시킨 시리즈 광고를 내놓았다. 달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닐 암스트롱이나 최초로 대서양을 횡단한 찰스 린드버그 등을 내세워 오직 세계 일류만이 살아남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2002년의 곰 피디는 삼성그룹의 슬로건에 맞서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2등이 최고’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후 1등으로 잘나가던 이들이 법적으로 또는 정치적으로 시련을 겪고 이카로스처럼 추락할 때마다 나는 지리산 어귀의 휴게소에서 2등이 최고라고 말하던 프로듀서를 떠올리곤 했다. 그리고 남들 눈에 띄지 않은 채 조용히 실속을 챙기는, 최선을 다해 2등을 하고 있을 얼굴 없는 고수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후로 사람을 보는 관점도 조금 바뀌었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크고 우람한 나무처럼 도드라지는 이가 있다. 그런 사람은 그늘도 크다. 그 그늘 속에 존재감 없이 묵묵히 앉아 있는 이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2등 지향의 곰 프로듀서보다 더 멀리 가면 아예 쓸모 자체가 없어야 좋다는, 이른바 ‘무용(無用)의 용(用)’을 주창하는 장자莊子가 있다. 장자는 쓸모 있는 나무는 그 쓸모 때문에 일찍 벌목되므로, 쓸모가 오히려 제 몸에 해를 입힌다고 말했다. 가지가 무성한 나무를 자르지 않은 나무꾼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잘라봐야 아무 소용이 없는 나무라 자르지 않았다는 나무꾼의 말에 장자는, 이 나무는 쓸모가 없어 천수를 다할 수 있었다고 제자에게 설명하기도 한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도 아니고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도 아니다. 살아남은 자는 그냥 살아남은 자이고, 그 이유와 방법도 어쩌면 자신만 알거나 아니면 자기도 모를 것이다. 우리는 많은 사람과 어울려 살아가지만 그들이 인생이라는 게임을 어떻게 풀어나가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남아 여기까지 와 있는지 속속들이 알 도리가 없다. 일부러 2등에 머물거나, 확고한 신념으로 ‘잘라봐야 아무 소용이 없는 나무’로 존재하는 이들이 내 주변 어딘가에 숨어 있을지 모른다는 것에 대하여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나의 이십대는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로 시작하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외우는 이들과 함께였다. 그 시는 이렇게 끝난다. “그러나 지난밤 꿈속에서/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강한 자는 살아남는다”/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살아남은 자들이 부끄러워하던 시대는 가고, 곧 1등이든 2등이든 무조건 살아남는 것이 최선이라는 시대가 왔다. 지금은 너를 떨어뜨리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오직 단 한 명만이 살아남는다는 ‘오징어 게임’, 서바이벌 게임의 세계관이 스크린을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은밀히 믿고 있다. 액정화면 밖 진짜 세상은 다르다고. 거기에는 조용히, 그러나 치열하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남아 어떻게든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싸우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 수필 「무용의 용」, 산문집 <단 한 번의 삶>에서 ▮김영하 사진 출처 <나무위키> 소설가. 1995년에 작품 활동을 시작, 장편소설로 『작별인사』, 『살인자의 기억법』, 『검은 꽃』,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빛의 제국』, 『아랑은 왜』, 『너의 목소리가 들려』, 『퀴즈쇼』, 소설집으로 『오직 두 사람』, 『오빠가 돌아왔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호출』이 있고, 산문 『여행의 이유』, 『오래 준비해온 대답』, 『다다다』 등을 냈다.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현대문학상, 만해문학상, 김유정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독일과 일본에서 각각 독립출판사문학상과 번역대상을 받았다. 30여 개국에 작품이 번역 출간되어 있다.
-
- 최신뉴스
- 문화•책
-
[지구일보] 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40) 권대근의 2등철학의 역설, 살아남음의 미학
-
-
[지구일보]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39) '송명화 ‘소멸에서 생성으로, 굽은 등에서 세계로’
- 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39) 송명화 ‘소멸에서 생성으로, 굽은 등에서 세계로’ 정선모의 ‘굽은 등으로 여는 생의 오아시스’ 송명화/ 문학평론가 <굽은 등으로 여는 생의 오아시스>는 성찰의 깊이가 남다른 수필이다. 작가는 관찰자이면서 존재의 이면을 읽어내는 견자다. 노인의 굽은 등에서 돌봄을 보고, 키스투스의 발화에서 소멸 이후의 생성을 보고, 고래의 죽음에서 해양 생태계의 생성을 본다는 점에서 작가는 ‘보이는 현상 너머의 관계’를 보는 견자의 시선을 보여준다. 작가는 휠체어를 미는 노인의 굽은 등 곡선에서 돌봄의 시간을, 한 인간의 자기 소모 속에서 다른 생명의 지속을 발견한다. ‘생명이란 본디 소멸의 재를 먹고 자라는 법’이라는 표현이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작가의 철학이다. 정선모는 시선을 일상에서 자연으로, 자연에서 존재론으로 이동하며 대상을 하나의 의미체로 재구성해낸다. 노인의 구부러진 등을 ‘아내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굳어진, 고단하지만 숭고한 생의 훈장’이라 하였다. 그 등에서 작가는 ‘자신의 형태를 바꾸어 사랑하는 이의 생 속으로 더 깊이 스며드는 가장 적극적인 방식’을 본다. 키스투스의 불과 고래의 심해를 거쳐 노인의 돌봄을 하나의 생명 순환으로 연결한다. 작가는 식물과 동물의 생명 현상을 인간의 삶과 연결하고, 인간의 돌봄에서 자연의 생태적 순환으로 사유를 확장함으로써 존재의 상호의존성을 드러낸다. 이러한 사유의 확장은 키스투스와 고래, 노인의 돌봄이라는 세 모티프가 하나의 주제를 향해 수렴하는 과정에서 선명해진다. 이 작품의 중심 사유는 ‘소멸과 생성의 역설’이며, 소멸은 그 사유를 관통하는 핵심 모티프다. 키스투스와 고래에게서 소멸은 새로운 생명을 낳는 자연의 순환으로 나타나고, 노인에게서는 자기 소모를 통해 타자의 생명을 지속시키는 돌봄의 윤리로 나타난다. 고래의 죽음은 생태계의 생성과 보존이라는 결과를 불러오고, 신록은 새싹이라는 형태로 생명의 귀환을 알린다. 소멸이라는 하나의 모티프가 서로 다른 존재 영역을 횡단하며 의미를 변형하고 증식하는데, 모두가 중심생각을 지지하고 있어 통일성을 확보한다. 이런 구성은 작품에 구조적 완결성과 사유의 다층성을 동시에 부여한다. 반면 결말부에서 추상적이고 가치 판단적인 어휘를 거듭 사용하여 의미를 강하게 규정하는 방식은 작품의 주제를 부각시키며 독자가 스스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여백을 다소 좁히기도 한다. 소멸을 생명을 가능하게 하는 과정으로 전환하는 생태적 상상력 또한 이 작품을 남다르게 한다. 자연과 인간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생명 순환 안에 놓여 있다는 인식이 작품의 바탕에 깔려 있다. 키스투스는 불과 열을 통해 잠자던 씨앗을 깨우는 존재로, 고래는 자신의 사체로 바닷속 생태계를 먹여 살리는 오아시스로 형상화된다. 식물인 키스투스와 동물인 고래의 생명 현상을 찾아낸 것은 이 글을 본격수필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중요한 장치다. 지상에서 위로 솟구치는 불과 심해로 가라앉는 고래의 사체라는 상반된 운동이 모두 생명을 되살리는 힘으로 작동한다. 작가는 휠체어를 미는 노인의 등을 보고 있다. 노인의 ‘심하게 구부러진 등’에서 노인의 헌신과 사랑을 읽어내고 그것을 숭고한 가치로 의미화한다. 이 수필에서 작가가 돌봄을 숭고한 헌신으로 받아들이게 된 배경은 ’몹시도 굽어‘, ‘하루도 빠짐없이’, ‘손길에 정성이’로 간단히 다뤄지고 있다. 이러한 생략은 돌봄과 자기소진이 어떻게 생명을 잉태하는 책임 윤리로 전환되는지를 독자가 상상하게 하는 한편, 주인공의 삶을 좀 더 가까이에서 체험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작품은 노인의 굽은 등을 돌봄의 숭고함으로 해석하는 데 성공하지만, 그 숭고함이 너무 빨리 부여되면서 돌봄의 고통과 피로, 인간적 갈등의 층위가 다소 지워진다. 평자는 <굽은 등으로 여는 생의 오아시스>를 ‘헌신적인 부부애’를 다룬 수필이라기보다, 소멸을 단순한 상실이 아니라 다른 생명을 가능하게 하는 생성의 과정으로 사유한 작품으로 읽었다. 이 글은 자연의 생태적 순환과 인간의 희생 윤리를 동일한 생명원리로 묶어 생명과 소멸, 헌신의 가치를 되묻게 한다. 등이 굽은 이웃 노인이 병든 아내를 산책시키는 장면을 본 구체적 경험을 생명과 소멸에 관한 보편적 사유로 확장하고 조직한 데서 이 수필의 문학적 성취가 빛난다. 한마디로 평범한 관찰을 생명과 소멸에 관한 존재론적 사유로 확장한 본격수필이라 하겠다. ■송명화 주요 약력 △수필가, 문학평론가, 문학언어치료학 박사 △경남 남해 출신 △전남일보 신춘문예 수필(2005) △에세이문예 문학평론(2010) △제8대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회장, 초대 한국본격수필비평가협회 회장 △한국도서비평가협회 부회장, 계간 [에세이문예] 주간, 사)부산광역시문인협회 부이사장, 부산교대 평생교육원 문예창작반 지도교수 △수필집 <순장소녀>(세종도서), <꽃은 소리 내어 웃지 않는다>(문학나눔), <나무의 응시 풀의 주름>(아르코창작기금) 등 7권 △이론서 <본격수필 창작이론과 적용> △김만중문학상(수필), 우하박문하문학상(평론), 한국에세이평론상(평론), 평사리문학대상(수필), 신격호샤롯데문학상 대상(수필) 등 수상 굽은 등으로 여는 생의 오아시스 정선모 온 천지가 신록으로 출렁이는 계절이다. 마른 나뭇가지의 침묵을 뚫고 솟아오른 연둣빛 새싹들이 햇살을 머금고 반짝이는 양을 보고 있으면, 생명이란 본래 소멸의 재를 먹고 자라는 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죽음 같은 겨울을 견뎌낸 저 여린 것들의 기척은, 세상의 모든 생이 빛을 향해 고개를 치켜들 때 누군가는 기꺼이 바닥으로 내려앉아 토양이 되었음을 말해준다. 매일 아침 베란다 창 너머로 한 폭의 풍경화를 마주한다. 하루도 빠짐없이 아픈 아내를 휠체어에 태우고 느릿느릿 산책길을 나서는 이웃 할아버지의 뒷모습이다. 휠체어를 미는 노인의 등은 몹시도 굽어 있다. 그 구부정한 곡선은 오랜 세월 투병하는 아내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굳어진, 고단하지만 숭고한 생의 훈장이다. 그분의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지중해의 척박한 바위틈에 사는 키스투스라는 나무가 떠오른다. ‘바위장미’라고도 부르는데 향료와 약제로 쓰이기도 한다. 키스투스는 화려한 꽃을 피우거나 무성한 그늘을 만드는 일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저 지독한 건조함을 견디며 제 몸 안에 불타는 물질을 채운다. 마침내 모든 것이 바싹 마른 여름날, 키스투스는 스스로 불타오른다. 나무기 한 줌 재가 되어 흩어지면 그 열로 씨앗이 열린다. 무엇에도 열리지 않는, 단단하게 잠겨 있던 씨앗의 빗장을 푸는 유일한 열쇠는 바로 제 몸을 태운 열인 셈이다. 휠체어를 미는 할아버지의 굽은 등 역시 자신을 태워 아내의 남은 생을 지키는 처연한 불꽃과 닮았다. 자신의 기력을 소진하며 아내에게 바깥세상의 공기와 햇살을 수혈하는 그 행위는, 소멸을 통해 다음 생의 문을 여는 키스투스의 산고(産苦)와 다르지 않다. 대지의 불꽃이 소멸의 시작이라면, 푸른 바다의 심연에는 또 다른 형태의 숭고한 몰락이 존재한다. 수명을 다한 거대한 고래가 빛조차 닿지 않는 어둠의 영토로 가라앉는 순간, 불모의 심해는 축제의 장으로 변한다. 고래의 사체는 수십 년간 수백 종의 생명을 먹여 살리는 거대한 오아시스가 되어준다. 자신의 육신을 허물어 깊은 바다의 생태계를 지탱하는 기둥이 되는 고래처럼, 할아버지의 지극한 간병은 아내라는 작은 우주를 지탱하는 든든한 안식처가 된다. 노부부가 지나간 자리에는 왠지 모를 따뜻함이 감돈다. 눈부실까 예쁜 모자도 씌워주고, 추울세라 꽃무늬 담요도 무릎에 덮어주는 손길에 정성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의 구부정한 등은 키스투스의 그을린 밑동이며, 아내를 향해 쏟아붓는 헌신은 심해의 생명들을 먹여 살리는 고래의 뼈와 같다. 할아버지는 조금씩 작아지고 스러져가고 있지만, 그것은 허무로 돌아가는 무의미한 몸짓이 아니다. 자신의 형태를 바꾸어 사랑하는 이의 생 속으로 더 깊이 스며드는 가장 적극적인 방식이다. 우리는 흔히 삶이란 무엇인가 끊임없이 채워가는 일이고, 죽음이란 그릇이 깨져 모든 것을 잃는 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휠체어 바퀴가 구르는 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생과 사의 경계는 안개처럼 뒤섞인다. 타버린 자리가 비어 있기에 새로운 싹이 돋고, 거대한 존재가 내려앉았기에 작은 생명들이 둥지를 튼다. 노인의 등 뒤로 펼쳐진 신록이 유독 눈부신 이유는, 그곳에 자신을 기꺼이 허락한 존재의 아름다운 소멸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비워지는 고통은 결국 채워지기 위한 거룩한 준비다. 지금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불꽃을 태우고 있거나 끝을 알 수 없는 추락의 무게를 견디는 이가 있다면 잊지 말 일이다. 자신을 깎아내리는 그 중력은 누군가에게 가장 깊은 안식처가 되기 위한 성스러운 과정일 수도 있음을. 잿더미 위에서 돋아나는 연초록 새순처럼 나의 소멸은 누군가의 생을 긷는 숭고한 사랑의 시작이 될 수도 있음을. 장엄하게 가라앉아 오아시스가 된 고래처럼, 우리네 고통 또한 누군가에게는 희망의 싹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다시 일어설 단단한 대지가 된다는 사실을. ▮정선모 주요 약력 △ 1989년 월간 《한국시》 등단 △ 현재 도서출판 SUN 대표. 한국디지털문인협회 부회장△ 한국수필문학상(2003년), 신곡문학상(2013년), 한국산문문학상(2014년), 현대수필문학상(2019년) 수상△ 수필집 《빛으로 여는 길》, 《지휘자의 왼손》, 《바람의 선물》, 《너를 위한 노래》, 《우는 방》, 수필선집 《아버지의 기둥》
-
- 최신뉴스
- 문화•책
-
[지구일보]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39) '송명화 ‘소멸에서 생성으로, 굽은 등에서 세계로’
-
-
대한기자신문 추천도서 『우리가 아는 중국, 우리가 모르는 중국』
- [대한기자신문=김채원 기자] 중국은 가깝지만 여전히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나라다. 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이 지은 『우리가 아는 중국, 우리가 모르는 중국』(북그루 펴냄)은 익숙한 이미지와 단편적인 정보에서 벗어나 중국을 보다 입체적으로 바라보도록 안내하는 책이다. 중국의 역사와 문화, 정치·경제, 사회의 변화는 물론 한중관계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시각을 폭넓게 담았다. 특히 중국을 무조건 긍정하거나 부정하기보다 현실과 현장을 바탕으로 중국의 내면과 변화의 방향을 읽어내는 데 의미가 있다. 한중 양국은 지리적으로 가까울 뿐 아니라 경제·문화·인적 교류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그렇기에 앞으로의 관계를 위해서는 상대를 정확히 알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중국을 공부하는 학생과 연구자, 기업인, 국제교류 관계자는 물론 한중관계의 미래를 고민하는 독자에게도 권할 만한 책이다. 대한기자신문 관계자는 “중국을 단순히 ‘아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해하는 것’으로 이끄는 책”이라며 이 도서를 추천했다. 『우리가 아는 중국, 우리가 모르는 중국』은 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이 집필하고 도서출판 북그루가 펴냈으며,교보문고·영풍문고·알라딘·예스24·북센 등 전국 주요 온·오프라인 서점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
- TOP40
-
대한기자신문 추천도서 『우리가 아는 중국, 우리가 모르는 중국』
-
-
[지구일보]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 (38) 최순덕 ‘구름의 재해석, 포용과 변화의 삶 ’
- 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 (38) 최순덕 ‘구름의 재해석, 포용과 변화의 삶 ’ 석인수 ‘구름은 고향이 없다’ 최순덕 / 수필가, 평론가 석인수 작가의 <구름은 고향이 없다>는 ‘구름’이라는 실재하는 대상을 자신의 관점으로 새롭게 해석하여 변화와 수용의 삶이 지닌 의미를 드러낸다. 또한 생성과 소멸의 섭리 속에서 흐른다는 공통점을 지닌 구름과 인생을 창조적으로 해석하여 고향의 의미를 되짚으며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 낸다. 작품은 종종걸음으로 주인을 따라가는 강아지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일반적인 강아지가 아니라 종착역도 모르고 어디쯤 가고 있는지도 알지 못한 채 앞으로만 가고 있는 우리의 인생과 같다는 작가의 특별한 관점의 해석이 개입된 강아지다. 작가의 시선은 강아지에서 하늘의 구름으로 옮겨가며 사유를 심화시킨다. 니체 철학의 핵심인 관점주의에 의하면 인간은 결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다고 한다. 모든 인식은 하나의 관점이며, 관점은 개인의 경험, 문화, 시대, 욕망, 가치관 속에서 형성된다고 한다. 그의 말대로 작가 석인수의 관점으로 해석된 구름과 고향은 인간 존재의 의미를 어떻게 드러내는가. ‘사실은 없다. 해석만 있을 뿐이다.’는 니체의 유명한 명제에 기대어 접근해 본다. 고향은 단순히 태어난 장소가 아니라 삶의 출발점이며 삶이 힘들거나 지칠 때 돌아가고 싶은 마음의 안식처이자 존재의 뿌리이다. 젊은 날 고향을 그리워했던 작가는 고향 하늘에 떠 있던 구름을 통해 고향을 다시 떠올린다. 이때 작가의 시선이 닿은 구름은 물의 순환이라는 자연의 이치에 따라 하늘에 피어올랐다가 빗방울로 사라지는 단순한 구름이 아니라 한 곳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와 머무는 순간의 소중함을 의미하는 구름으로 해석된다. 작가는 보편적인 풍경을 넘어 재해석된 구름을 가슴속에 존재하는 마음의 고향으로 인지한다. 작가가 해석한 구름에는 작가 자신의 젊은 날이 있고, 적응하고 포용하고, 더러는 체념하기도 하면서 끝없이 변화해 온 삶이 녹아있다. 이는 실향민이나 이와 유사한 경험을 지닌 독자들에게 공감의 여백을 제공한다. 독자의 추억과 회한, 고향에 대한 그리움,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던 젊은 날의 그림자 등 숱한 경험과 사유가 스며들 여백이다. 텍스트에 여백을 두어 독자의 역할을 유도하고 작품의 완성을 기대하는 볼프강 이저의 ‘수용미학’의 이론과도 닿아 있다. 문학은 해석의 투쟁이라고 니체는 말한다. 작가는 ‘가는 구름과 흐르는 물은 애초에 정해진 바탕이 없다.’는 중국의 동파 소식蘇軾의 시구로 구름은 고향이 없다고 해석한다. 가는 곳마다 다양한 공기를 흡수하는 구름은 적응과 포용이다. 어디에 있느냐보다 어떻게 흘러가느냐가 중요하다. 그렇게 살아온 자신의 삶을 비추며 새롭게 해석을 확장한다.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구름은 운명을 받아들이듯 흘러간다.’는 문장은 삶의 난관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며 평온을 찾아온 작가 자신의 삶을 드러낸다. 이러한 지점에서 작품은 철학성과 문학성을 함께 확보한다. ‘구름은 고향이 없다.’라는 말은 역설적으로 사람에게는 마음의 고향이 있음을 일깨우는 의미로 확장된다. 추억과 그리움을 간직한 어머니 품과 같은 마음의 고향이 있다는 자체가 정도의 삶을 사는 잣대가 된다. ‘변한 것은 나였다.’는 독백에서 자신의 변화된 삶과 인식의 변화를 엿볼 수 있다. ‘세계는 고정된 본질이 아니라 끊임없이 생성하는 흐름’이라고 한 니체의 이론과 연결된다. ‘구름은 고향이 없지만 세상 전부가 그의 길이다.’는 문장에서 작가는 구름의 그늘진 의미를 확 걷어낸 희망적인 현실로 의미를 확장한다. ‘떠도는 것은 단절이 아니라 연결이고 흘러가는 것은 잊힘이 아니라 순환’이라는 창의적인 해석은 집착하지 않고 현재와 앞으로의 여정에 집중하라는 해석의 핵심이다. 참된 행복은 목적지를 향해 가는 여정에 있는지도 모른다는 해석을 통해 긍정적인 삶의 방향을 제시한 철학적 수작이다. ◆최순덕의 약력 △경남 통영 출생 △2003년 《문예시대》 수필 등단 △2025년 《에세이문예》 평론 등단 △국제PEN한국본부부산지부 부회장 △부산문인협회수필분과 이사 △부산수필문인협회 부회장 △부산여류문인협회 회장 역임 △부산가톨릭문인협회 부회장 역임 △부산수필문학협회 부회장 △에세이문예 편집3부장 △풀꽃수필문학상 △한국해양문학상 우수상 △부산PEN문학 작품상 △부산가톨릭문학 본상 △부산수필문학 작품상 △부산수필문인협회 ‘올해의 작품상’ △제2회 한영문학상 △부산PEN문학상 본상 수상 △수필집 『껍질 벗는 나무』 『사라예보의 붉은 강물』 『잃어버린 도시』 『고등어의 눈물』 『박제된 나비가 내게 말을 걸어올 때』 『바람에도 기댈 곳은 있다』 ❚석인수의 <구름은 고향이 없다> 길을 가다 종종걸음으로 주인을 따라가는 강아지를 봤다. 가는 곳은 어디고, 어디쯤 가고 있는지 알고 가는가? 라는 궁금함이 생겼다. 앞으로 좌우로 잘도 따라간다. 따라가지만 앞서기도 하며 익숙한 길을 가듯 간다. 우리 인생도 강아지처럼 걷는 게 아닌가 싶다. 종착역은 어디고 지금 어디쯤 가고 있는지 모른다. 좌우도 살피면서 앞으로만 종종걸음으로 나아간다. 낯선 길이고 처음 걷는 길이지만 잘 아는 길처럼 걸어간다. 강아지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나도 따라 하늘을 쳐다보았다. 청명한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높이 떠 천천히 흐르고 있다. 흩어졌다가 다시 만나고 만나면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 보이며 유유히 떠간다. 떠가는 구름이 인생을 닮아 보인다. 구름의 생성이 여일한데 우리 인생의 흐름도 그와 같은 듯하다. 중국 북송 시대의 시인이자 문인이며 서예가인 동파 소식(蘇軾)의 시구 ‘가는 구름과 흐르는 물은 애초에 정해진 바탕이 없다는 행운유수(行雲流水), 초무정질(初無定質)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그렇다. 떠가는 구름과 흐르는 물은 애초에 정해진 바탕이 없다. 고정된 근거지나 출신을 가지지 않은 구름이나 물처럼, 인생 역시 정해진 길이나 한정된 운명이 없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시 구절이다. 하늘 높이 떠 있는 구름은 돌아갈 고향이 없다. 흩어지고 모이며 머무는 모든 곳이 잠시의 정류장일 뿐이다. 구름은 단 한 번도 한 자리에 뿌리내린 적이 없다. 구름은 애초에 고향이 없다. 정확히 어디서 생성되었는지 모호하다. 머무는 듯 보여도 바람이 부는 대로 흩어지고, 그 자리를 끝내 지키지 못한다. 사람은 제 발로 걷는 존재지만, 구름은 바람에 밀려 흐르는 존재다. 어느 하늘에 떠 있든, 그곳이 고향이라 부를 수 없다는 점에서 구름은 늘 방랑자요 유랑자이다. 구름은 어느 곳에 가도 그곳의 공기를 품는다. 바다 위를 지나면 짠 기운을, 산 위를 넘으면 풀 냄새를 머금는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변하지 않는다. 모양만 바뀔 뿐, 본질은 물의 숨결이다. 사람도 그렇다. 고향을 떠나 세상을 돌며 많은 공기를 마시지만, 그 안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그 본질이 닿는 풍경이 바뀔 뿐이다. 구름은 저마다 다른 속도로 흐른다. 바람이 센 날엔 급히 떠나 흐르고, 잔잔한 날엔 오래 머문다. 인생도 그와 같다. 어느 시절엔 떠밀리듯 이리저리 옮겨 다니고, 어느 시기엔 잠시 정박해 쉼을 얻는다. 중요한 건 어디에 있느냐보다, 어떻게 흐르냐다. 나는 종종 삶이 구름과 닮았다고 느낀다. 몸을 붙일 만큼의 거처를 가졌을 때도 마음은 늘 어디론가 흘러가고, 희망은 바람결에 따라 모양을 바꾼다. 오래 머문다는 것은 어쩌면 생각일 뿐, 우리 인생도 결국 변화 속에서만 존재한다. 그 흘러감 속에서 우리는 자신이라는 모양을 지키려 애쓰지만, 매 순간 달라지는 빛의 결이 우리를 다시금 새로이 그린다.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구름은 운명을 받아들이듯 흘러간다. 머물고 싶어도 머무를 수 없는, 그 체념 속의 평온함이 나는 좋다. 인간의 욕심은 구름을 땅에 붙들어 두려 하지만, 구름은 언제나 그것을 거절한다. 떠도는 구름의 운명은 불안하지만 동시에 자유롭다. 고향이 없으니 잃을 것도 없고, 다시 돌아와야 할 집도 없다. 젊은 날에는 고향이 그리웠다. 떠나온 곳이 나를 기억해주길 바라고, 내가 돌아가 그 자리에 서길 꿈꾸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나는 구름의 마음을 조금씩 알았다. 돌아갈 곳보다 머무는 순간이 더 소중하다는 것, 정착보다 흘러감이 더 정직하다는 것을. 그리움으로만 살아가던 마음이 조금씩 바람을 품게 되었다. 고향의 냄새는 그립고 애틋하지만, 내 삶은 그 마음을 모르는 체한다. 구름은 고향이 없지만, 세상 전부가 그의 길이다. 떠도는 건 단절이 아니라 연결이고, 흘러가는 건 잊힘이 아니라 순환이다. 구름의 생은 끝없는 이동 속에서 완성된다. 나 또한 언젠가 이름 없이 흩어질지라도, 살아 있는 동안은 매 순간의 하늘을 바라보며 인생길 위에서 나를 완성해가려고 한다. 하늘을 올려다볼 때마다 나는 구름을 본다. 구름은 언제나 제멋대로 흐른다. 어느 날은 산허리를 감싸며 느릿하게 흘러가고, 어느 날은 바람을 타고 휘몰아친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는다. 잠시 머문다 싶으면 금방 다른 모양, 다른 배경의 하늘로 옮겨간다. 그 유랑의 생은 어쩌면 우리의 인생과도 닮았다. 잠시라도 같은 모양, 한 자세로 머물지 못한다. 구름이나 우리 인생도 변화가 곧 삶이다. 젊은 시절, 나는 고향을 떠나 도시로 왔다. 그때의 마음은 막 피어난 구름 한 조각 같았다. 설렘과 두려움이 뒤섞인 채, 내 인생의 바람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알 수 없었다. 도시는 낯설었다. 빽빽한 건물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던 하늘마저도 삭막했다. 그러나 그 좁은 틈 사이로 떠가는 구름을 볼 때마다 나는 고향의 들판을 떠올렸다. 어린 시절 뛰놀던 논두렁 위의 하늘은 언제나 넓고 푸르렀다. 그 위를 구름이 천천히 흘러갔다. 그 구름은 내 마음의 고향이었다. 시간이 흘러 머리엔 흰 서리가 내려앉았다. 오랜 세월을 일에 쫓기며 살았다. 어느새 인생의 저녁 무렵에 서서 하늘을 보니, 여전히 구름은 떠가고 있다. 변한 것은 나였다. 구름은 변함없이 흘렀는데, 나는 그 구름을 따라 흐르지 못하고 땅에 묶인 삶을 살았다. 사람은 누구나 뿌리를 내리려고 하지만. 결국, 내리지 못한다. 구름도 마찬가지다. 흩어졌다가 모이고, 사라졌다가 다시 태어난다. 이합집산의 연속일 뿐이다. 한편으로는 그 자유가 부럽기도 하고, 그 외로움이 애잔하기도 하다. 고향이란 물리적인 곳이 아니라 마음가짐이라는 것을 구름에서 배운다. 우리 인생도 구름처럼, 지나간 일에 집착하지 않고 현재와 앞으로의 여정에 집중하고 있다. 목적지보다는 그 목적지로 가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점도 알고, 미지의 길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서는 용기가 중요함을 구름이 가는 길에서 배운다. 인생에 정해진 길이란 없다. 오직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일 뿐이다. 그리움이 깃든 곳이면 어디든 잠시의 고향이 된다. 구름이 머무는 산마루, 스쳐 지나가는 도시의 하늘, 혹은 마음속 어딘가의 기억 한 조각. 그 모든 곳이 구름의 고향이자 나의 고향이다. 구름과 물과 바다가 고향이 의미가 없는 것처럼, 어차피 세월은 흘러갔고 구름은 소멸할 뿐이다. 새는 날면서 뒤돌아보지 않는 것처럼 나그네인 인생도 갈 길이 남아 있을 때 행복한 법이다. 가지 않은 길이란 갈 수 없었던 길이 아니라 가기가 두려워 회피한 길이다. 누구나 인생을 순풍에 돛단 듯 순조롭게 살고 싶지만, 돌아보면 파란만장한 삶이 훨씬 더 가치 있고 아름답다. 순탄만 했다면 삶이 재미가 없고 매력이 없다. 그래서 결과보다는 과정이 더 중요한지도 모른다. 어쩌면 참된 행복이란 목적지에 있지 않고 목적지를 가는 여정에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 나는 그 여정의 한 길목에 서 있다. 매 순간 머무는 곳이 곧 새로운 집이 된다면, 떠남도 상처가 아니다. 나 또한 언젠가 구름처럼 내 마음의 방향이 이끄는 대로 흘러가고 싶다. 돌아갈 곳이 없어도 괜찮다. 그리움이 흐르는 그 자리가 곧 나의 오늘이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표현 2026년 여름 제 99호> ❚석인수 약력 △공학박사 △원광대학교 겸임교수 △이사관 △전라북도 건설교통방재국장 △행촌수필 문학회장 △홍조 근정훈장 △녹조 근정훈장 △근정포장 △작촌 문학상 △한비문학상 대상 △한국을 빛낸 인물대상(문학대상) △대한민국 문학예술 대상 △행촌수필 문학상 △수필과비평 문학상 △수필집:『생각이 머무를 때면』, 『그래서 당신을』,『발자국 없이 걸었네』,『다시 솔잎을 먹으며』, 『세월의 흔적』, 『살며 생각하며』 등
-
- TOP40
- 문화
-
[지구일보]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 (38) 최순덕 ‘구름의 재해석, 포용과 변화의 삶 ’
-
-
[지구일보]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37) 최혜영 ‘흔들림 속에서 생성되는 삶의 평형’
- 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37) 최혜영 ‘흔들림 속에서 생성되는 삶의 평형’ 조자영의 ‘평형수를 생각하다’ 최혜영/문학평론가 수필은 흔히 일상의 경험을 바탕으로 삶의 깨달음을 이끌어내는 고백의 문학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조자영의 수필 <평형수를 생각하다>는 그러한 안일한 통찰의 단계를 넘어, 삶의 근원적인 흔들림과 주체의 균열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깊은 사유의 지평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단순한 감상적 고백을 넘어, 흔들리는 인간 존재의 본질과 삶의 균형을 성찰하는 깊이 있는 사유의 텍스트이다. 이 작품의 도입부를 여는 것은 풍랑이 몰아치는 바다 위에서 요동치는 배의 풍경이다. 저녁을 먹다 마주한 TV 화면 속 선박의 모습은 작가에게 삶의 균형이라는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배가 균형과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평형수를 조절하듯, 인간의 삶 역시 역경이라는 거친 파도를 마주할 때 내면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장면은 일상의 사물을 단순한 비유에 머물게 하지 않고, 존재의 균형이라는 보편적 문제로 확장시키는 핵심 장치가 된다. 그러나 화자가 바라본 자신의 내면은 안정적이지 않다. “나의 평형수, 그것은 가끔 너무나 허술해서 비워야 할 때 차 있고 채워야 할 때 비어 있기 일쑤다”라는 구절은 자기 성찰의 출발점이 된다. 화자는 비워야 할 자리에 아집과 오만이 들어차 있고, 편견이라는 짐 때문에 타인의 마음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토로한다. 또한 “균형 잃은 일엽편주가 되어 하루를 버텨내기에 급급하다가 끝내 난파되고 마는 밤도 있다”는 진술은 삶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불완전성과 내면의 흔들림을 여실히 드러낸다. 이러한 자기 성찰은 가족과의 관계 속에서 더욱 구체화된다. 배우자를 “신이 결핍과 나머지를 적절히 맞추기 위해 보내신 스승”이라는 대목은, 동반자가 단순한 삶의 짝을 넘어 자신의 부족함과 한계를 깨닫게 하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이렇듯 인간관계는 자신의 결핍을 발견하고 타인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변화와 성장을 이루는 계기가 된다. 이를 통해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가는 과정 자체가 인간을 성숙하게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삶의 무게중심은 스스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조율되어 간다. 화자의 이러한 성찰과 변화의 과정은 에리히 프롬이 제시한 ‘소유(To Have)’와 ‘존재(To Be)’의 삶의 양식과 맞닿아 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 가치관을 움켜쥔 채 타인을 수용하지 못하는 태도는 프롬이 말한 ‘소유’의 삶에 가깝다. 반면 가족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타인과 함께 성장하려는 모습은 ‘존재’의 삶을 지향하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작품이 지닌 문학적 깊이는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문학평론가 권대근 박사는 프롬이 제시한 ‘소유’와 ‘존재’의 틀을 바탕으로, 인간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 ‘생성(Becoming)’의 차원까지 확장해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인간은 고정된 틀에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 삶의 경험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형성해 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화자가 삶의 갈등과 흔들림 속에서도 자신을 새롭게 조율해 가는 모습은 인간 존재의 역동성과 형성 과정을 드러내는 생성의 사유와 맞닿아 있다. 작품 후반부에서 화자는 부모와 형제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다시금 내면의 균형이 흔들리는 순간을 맞는다. “하루에도 열두 번 동요하는 감정의 평형을 유지하며 고요한 바다와 같은 마음으로 살 수 있는 날이 올까”라는 고백은 완성된 인간을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흔들림 속에서 자신을 성찰하며 스스로를 만들어 가는 ‘생성’의 과정을 보여준다. 이러한 흔들림은 실패의 징표가 아니라, 내면의 성숙을 이끌어가는 여정이다. 결국 이 작품의 핵심 제재인 평형수는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 물리적 장치를 넘어, 자신을 조율하며 끊임없이 형성되는 주체를 드러내는 ‘생성’의 은유로 기능한다. 흔들리지 않는 삶이 어디 있으랴. 중요한 것은 흔들림이 없는 삶이 아니라, 그 흔들림 속에서도 자신의 중심을 찾아가는 여정일 것이다. 조자영의 <평형수를 생각하다>는 일상의 경험을 철학적 사유로 확장하고, ‘평형수’라는 독창적인 상징을 통해 삶 속에서 자신을 조율하며 살아가는 인간 존재의 모습을 성찰한다는 점에서 수필적 성취를 이룬 작품이다. 특히 삶의 균형을 ‘생성’의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인간의 존재 방식과 변화의 의미를 깊이 성찰하게 하는 수작(秀作)이라 할 만하다. ▮최혜영 주요 약력 △에세이문예 평론 등단(2007) △문학평론가 △문학언어치료학박사 △한국본격수필비평가협회 회장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에세이문예 부주간 △에세이문예 수필계간평 집필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감사 △부산문인협회 이사 △권대근문학상 자문위원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 연구교수 역임 △한국에세이 평론상 △부산수필문학협회 작품상 △부산북구문인협회 작가상 수상 △공저, 『오늘의 수필 비평1,2,3』 ▮조자영<평형수를 생각하다> 풍랑이 몰아치는 바다 위, 배가 흔들린다. 저녁을 먹다 말고 TV 화면 속에 눈길이 머문다. 속수무책 요동치는 배를 보고 있노라니 문득 ‘평형수’가 떠오른다. 배의 균형과 안전을 위해 존재하는 바닥짐, 평형수. 물건을 실으면 그만큼 덜어내고 내릴 땐 다시 채워 무게중심을 잡는다. 거친 파도를 만나 역경에 처할수록 평형수의 역할은 지대하다. 나의 평형수, 그것은 가끔 너무나 허술해서 비워야 할 때 차 있고 채워야 할 때 비어 있기 일쑤다. 쓸데없는 아집과 오만이 들앉아 있어 새로운 것들을 채울 공간이 없기에 늘 흔들린다. 편견이라는 짐을 미리 채워버린 탓으로 내 감정에만 충실해 다른 이의 마음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균형 잃은 일엽편주가 되어 하루 버텨내기에 급급하다가 끝내 난파되고 마는 밤도 있다. 신은 결핍과 나머지를 적절히 맞추기 위해 배우자라는 스승을 보내셨단다. 어쩌다 어른이 된 나는 남편으로 하여 단련되고 자식으로 인해 모가 깎이며 진짜 어른이 되어간다. 자식은 때론 자부심이 되고 가끔은 아킬레스건이 되기도 하며 사랑을 가르치고 인내와 겸손까지도 알게 한다. 제 한 몸 살아가는 것도 힘이 드는 시대라고 한다. 가족이 힘이 아니라 짐이 되는 세상이라고도 한다. “각자 알아서 잘 살자. 늙어서도 절대 짐이 되지 않을 테니 너희도 행여 기댈 생각 말아라.” 두 아들이 어릴 적부터 귀에 못이 박이도록 되뇌던 남편의 말에 “사람 일 어찌 될 줄 모르는데 너무 인정머리 없다.” 하며 타박하던 나. 속절없이 흔들리는 집안의 어른들을 보며 요즘 들어 그의 말에 자꾸만 머리를 끄덕이고 있는 내 안의 평형수는 과연 안전한 것일까. 균형감이란 늘채 쌓인 조화로움의 산물일 것이다. 언젠가 어느 초등학교 건물에서 보았던 문구가 떠오른다. ‘밝고 맑고 조화로운 인간’ 교훈으로 보이는 그 말은 한동안 뇌리에 남아 떠나질 않았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평생 이루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과 함께. 하늘의 명을 알아차리는 나이, 지천명(知天命)을 넘어서며 내게 가장 부족한 덕목이 바로 ‘조화’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모임이나 단체 생활에서 간혹 조화로운 사람을 만나면 보석처럼 귀하게 여겨진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카리스마까지 갖추었다면 말 그대로 군계일학(群鷄一鶴), 낭중지추(囊中之錐)인 존재다. 좌도 우도 아닌 중간 어디쯤의 균형 잡힌 관점과 쉬이 달뜨지 않는 평정심으로 깊은 물처럼 파도에 휩쓸리지 않는 사람. 다만 그와 정반대의 인간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여전히 부조화투성이인 나다. 더욱이 요 며칠, 감정에 과부하가 걸리는 일이 잦다. 갱년기인지 멋대로 오르락내리락하는 것도 언짢은데 의도치 않게 부모, 형제의 마음을 중재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탓이다. 진실은 늘 존재하기 마련일진대 가까운 사이일수록 바른말을 한다는 건 세상 가장 어려운 일이 되고 만다. ‘진실한 게 늘 답은 아니야.’ 하며 이리 휩쓸리고 저리 휩쓸리다 보면 중재는커녕 내 몸 하나 중심 잡기도 힘들 때가 있다. 마음이란 게 늘 합리적이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상대가 그리 받아들이지 못함에 화가 나고, 어느 편도 녹록지 않아 스스로 고달프기만 한 걸 보면 난 한참 멀었다는 생각도 든다. 하루에도 열두 번 동요하는 감정의 평형을 맞추어 고요한 바다와 같은 마음으로 살 수 있는 날이 올까. 아니, 매일 파도처럼 출렁일지라도 부단히 바닥짐을 덜고 더하며 태연한 척 사는 게 인생인 건가. 인간의 삶에 신은 교묘하고도 시의적절하게 개입해 살 수 있는 만큼의 평형수를 맞춰놓는다고 믿는다. 정신없이 흔들리다가도 어느새 또 중심을 잡으며 삶이 이어지는 걸 보면. 살다 보면 또 살아지는 걸 보면…. <2026년 한국산문인 봄호> ▮조자영 대한문학 등단(2016년), 광주문인협회,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필집 <시들지 마라 피어있으라>
-
- TOP40
- 문화
-
[지구일보]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37) 최혜영 ‘흔들림 속에서 생성되는 삶의 평형’
-
-
[이창호칼럼] 끼와 감각은 학습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 [지구일보] 우리는 흔히 "노력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노력은 성공의 가장 중요한 조건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모든 능력이 오직 학습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예술, 스포츠, 리더십, 언론, 창작, 외교와 같은 분야에서는 '끼'와 '감각'이라는 설명하기 어려운 능력이 존재한다. 끼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 타고난 직관이며, 사물의 본질을 빠르게 읽어내는 능력이다. 같은 교육을 받고 같은 시간을 투자해도 어떤 사람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쓰고, 어떤 사람은 평범한 수준에 머무른다. 같은 악보를 연주해도 누군가는 감동을 주고, 누군가는 음만 정확하게 맞춘다. 이것이 바로 감각의 차이다. 뇌과학에서도 이러한 현상을 설명한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서로 다른 인지 능력과 공간지각 능력, 음악적 감수성, 언어 감각을 가지고 태어난다. 학습은 이러한 능력을 키우고 다듬는 역할을 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재능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다. 예술가들은 흔히 "감각은 배울 수 없다"고 말한다. 화가는 색을 보는 눈이 있어야 하고, 음악가는 음을 느끼는 귀가 있어야 하며, 기자는 시대를 읽는 촉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감각은 수많은 경험으로 더욱 정교해질 수 있지만, 출발점 자체는 사람마다 다르다.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세계적인 선수들은 혹독한 훈련을 거쳤지만, 뛰어난 운동신경과 순발력이라는 선천적 요소를 함께 가지고 있었다. 노력은 재능을 꽃피우는 비료이지만, 씨앗이 전혀 없는 곳에서 꽃을 피우기는 쉽지 않다. 언론과 외교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의 표정 하나, 분위기의 미묘한 변화, 시대의 흐름을 읽는 직관은 교과서만으로 익힐 수 없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현장을 경험하며 자신의 감각을 끊임없이 연마해야 한다. 그러나 그 출발점에는 사람을 향한 관심과 타고난 통찰력이 자리하고 있다. 그렇다고 재능만 믿는 것도 위험하다. 아무리 뛰어난 끼를 가졌더라도 노력하지 않으면 결국 평범함에 머문다. 반대로 재능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꾸준한 훈련과 성실함으로 높은 수준에 도달하는 사람도 많다. 결국 최고의 성과는 타고난 감각과 끊임없는 노력이 만날 때 탄생한다. 우리 사회는 결과보다 학습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모든 사람을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하기보다 각자가 가진 고유한 재능을 발견하고 키워주는 교육이 필요하다. 물고기에게 나무를 오르라고 요구해서는 안 되며, 독수리에게 헤엄을 잘 치라고 강요해서도 안 된다. 사람마다 가장 잘할 수 있는 영역은 다르다. 부모와 교사, 조직의 리더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부족한 부분만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끼와 감각을 발견하도록 돕는 일이다. 자신의 재능을 찾은 사람은 배우는 속도도 빨라지고, 일 자체를 즐기게 된다. 그때 비로소 노력은 고통이 아니라 성장의 기쁨이 된다. 결국 성공은 타고난 재능과 성실한 노력의 조화에서 시작된다. 끼는 방향을 제시하고, 감각은 가능성을 열어 준다. 그리고 학습과 훈련은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든다. 인생은 모두가 같은 길을 걷는 경주가 아니다. 자신만의 끼를 발견하고, 그 위에 땀과 성실을 더할 때 비로소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자신만의 경쟁력이 완성된다. 진정한 성공은 남을 따라 하는 데 있지 않다. 자신만이 가진 감각을 믿고, 그것을 끝까지 갈고닦는 사람에게 미래는 가장 크게 열린다. ▲ 글/사진: 이창호(李昌虎)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겸 국제다자외교평의회 대표(의장), 한중기자연맹 회장, 중국 곡부사범대학 겸직교수, 위해직업대학 객좌교수, 허베이미술대학 명예•종신교수, Marquis Who’s Who 등재 저자, 《우리가 아는 중국 우리가 모르는 중국》 저자.
-
- TOP40
-
[이창호칼럼] 끼와 감각은 학습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
-
[지구일보]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36) 김정애 ‘몸이 세계를 탄주하는 시간‘
- 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36) 김정애 ‘몸이 세계를 탄주하는 시간‘ 김희자의 '탄주' 김정애/ 문학평론가 소리는 어디에서 시작하여 어디로 건너가는가. 수필 「탄주」는 해금의 선율에서 시작하여 바다의 리듬으로, 다시 몸의 울림과 글쓰기의 운율로 의미를 확장해 나간다. ‘탄주’라는 하나의 동사가 자연과 몸, 언어를 관통하는 중심 은유로 기능하며 작품 전체의 의미망을 정교하게 조직한다. 이러한 구조적 일관성을 통해 미학적 응집력을 획득한 이 작품은, 세계의 파동이 어떻게 내면의 언어로 승화되고 그 언어를 써 내려가는 행위가 어떻게 신체적 연주가 되는지를 다채롭게 증명하는 몸의 현상학이자 미학적 선언이라 할 수 있다. 작품은 달빛 아래 울려 퍼지는 해금의 선율로 문을 연다. 연주자는 해금의 네 줄을 “떡 주무르듯이” 쥐고 손가락으로 음색을 조절한다. 관념이나 기계적 기교가 아닌, 순수한 손의 감각과 신체의 리듬으로 소리를 자아내는 것이다. 메를로퐁티가 말했듯 우리의 몸은 정신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도구가 아니라, 세계를 지각하고 관계를 맺는 주체다. 「탄주」 역시 몸을 단순한 감각기관에 누이지 않는다. 몸은 소리를 받아들이고 자연과 공명하며 마침내 언어를 생성하는 존재의 근원으로 작동한다. 이러한 신체성은 지각을 넘어 끊임없는 내적 변화로 이어진다. 수필학자 권대근이 에릭 프롬의 존재(being)와 소유(having)를 넘어 ‘생성(becoming)’을 강조했듯, 작가의 몸은 고정된 객체가 아니라 세계를 받아들이고 다듬어 내는 생성의 장(場)이다. 작가 김희자에게 해금 소리는 단순한 객관적 악기음에 그치지 않고, “그 소리를 탄주하는 사람의 몸 소리”로 변주되며 주체와 객체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해금과의 신체적 교감은 동해안 몽돌밭의 풍경에 이르러 거대한 우주적 탄주로 확장된다. 오랜 세월 파동에 닳아 동글동글해진 몽돌 위로 바닷물이 지나갈 때, 바다는 자신의 몸으로 몽돌이라는 건반을 두드린다. 그리고 작가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이 글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눈부신 통찰을 끌어올린다. “그때, 내 몸속에도 쓸쓸히 파도치는 건반이 있다는 걸 알았다.” 해금과 달빛, 파도와 몽돌의 이미지는 모두 이 한 문장을 향해 모여들며, 이후의 글쓰기에 대한 성찰 또한 여기서 싹을 틔운다. 외부에서 들려오던 바다의 소리는 작가의 신체 내부로 침투하여 내면의 건반을 두드린다. 소리와 몸이 하나로 포개어지는 순간이다. 바다라는 거대한 자연의 탄주를 받아내어 다시 자신의 언어로 울려내는 일, 작가의 몸은 이제 글을 구상하는 단순한 머리가 아니라 세계의 파동을 받아 울리는 하나의 ‘쓸쓸한 건반’이자 악기 그 자체가 된다. 외부의 소리가 내면의 언어로 이행하는 존재론적 전환점이 마련되는 셈이다. 세계의 파동이 내 몸의 건반을 두드릴 때, 글쓰기는 비로소 시작된다. 작가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몸속의 느낌으로 표현해내는 악보”를 그리는 일이며, “글이라는 건반을 소리 없이 연탄(連彈)하는” 무아지경의 행위다. 이는 니체가 강조한 “몸의 지혜”가 단단하게 빛을 발하는 현장이다. 니체에게 정신이나 의식은 몸이라는 거대한 주체가 사용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몸과 사유를 연결해야” 글로 옮길 수 있다고 고백하는 작가에게 글쓰기의 진정한 주체는 관념적인 머리가 아닌 온몸의 감각이다. 이는 생명의 리듬 속에 자신을 온전히 던지는 니체적 몰입과 온전히 맞닿아 있다. 작가 역시 “몰입의 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경지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도 경험했다”라고 토로한다. 결국 글쓰기란 관념의 조합이 아니라, 온몸을 밀어 올려 사유와 생명을 일치시키는 신체적 사건이다. 봄비 내리는 무심한 밤, 작가는 자신의 짧은 사유를 안타까워하며 하나의 문장을 우주로 만들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그 겸손한 안타까움 뒤에는 “내가 탄주하는 언어가 언젠가는 출렁출렁 가슴에서 울려 나와 세상이라는 바다를 건널 것이라 확신했다”라는 단단하고 묵직한 신뢰의 뿌리가 내려져 있다. 김희자의 문장에는 해금을 주무르는 연주자의 손길처럼, 몽돌을 위무하는 파도처럼, 온몸으로 밀어낸 생명의 숨결과 리듬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수필 「탄주」는 소리에서 파도로, 파도에서 몸으로, 마침내 몸에서 언어로 이행하는 숭고한 선율이다. 이성의 차가운 언어가 아닌, 몸속의 쓸쓸한 건반을 두드려 만든 이 생명력 있는 언어들은 누군가의 가슴속 바다를 향해 출렁출렁 건너갈 것이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읽는 이의 몸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쓸쓸한 건반 하나를 조용히, 그러나 깊게 깨워 울리는 명징한 수작(秀作)으로 남는다. ▮김정애 주요 약력 △부산 출생 △윤리교육학 석사 △문학언어치료학 박사 △‘에세이문예’ 수필 등단(2012), 평론 등단(2013) △(사)부산수필문학협회 회장 △다스림문학동인 회장 △(사)국제PEN한국본부부산지역위원회 수석부회장 △에세이문예 편집1부장 △설총문학상 △민들레수필문학상 △에세이문예문학상 △사유와언어문학상 △문학발전 유공 기념은장 △부산펜문학상 작품상 △한국에세이 작품상 △부산수필문학 작품상 △수필집 ‘내 마음의 엑스레이’, ‘탈춤’, ‘인연’, ‘고슴도치 사랑’ ▮김희자의 <탄주> 푸른 달빛이 무대 위에 흩어져 내린다. 무대 서편에는 초저녁 별이 반짝반짝 빛을 낸다. 애잔하면서도 슬픈 해금의 선율이 달빛 속으로 흐른다. 그 저녁 무렵부터 새벽이 올 때까지. 밤을 지새우고 서서히 밝아오는 새벽의 아름다움을 그린 곡이다. 밤의 몸짓이 달빛의 현을 탄주彈奏하듯 여인은 손으로 음을 주무른다. 오래전부터 내 안에 들리던 소리처럼 은은하게 젖어 든다. 해금 탄주이다. 여인은 왼손으로 해금의 현을 잡고 오른손으로 채를 붙들어 음을 탄다. 왼손으로 음정을 찾고 오른손에 쥔 활대로 줄을 마찰하여 소리를 낸다. 소금쟁이가 물의 현을 지나가듯 그녀의 손가락이 해금의 현을 스쳐 간다. 순간 현이 소리를 자아낸다. 사람의 손으로는 도저히 낼 수 없는, 현의 울림으로 나오는 그윽한 소리이다. 라일락 수줍게 만개한 봄밤에 귀를 열고 나직나직한 가락을 듣는다. 홀로 있는 시간을 위하여……. 해금 연주가 허공에 머무는 어둠을 둥글게 밀어낸다. 문득문득 물방울처럼 떠오르거나 생각난 것들이 이미 오래전 내 안에서 흐르던 것처럼 반짝이며 되살아난다. 달빛 속으로 흐르는 선율이 건조해진 가슴을 눅진하게 녹인다. 홀로 있는 시간이 좋다는 건 이렇게 무언가에 진 중히 빠질 수 있음이다. 깡깡이라고 불리는 해금은 대나무 통이라는 공명통에 두 줄이 걸려 있다. 위쪽 주아에는 약간 굵은 줄인 중현이, 아래쪽 주아에는 중현보다 약간 가는 줄인 유현이 걸려 있다. 이 두 줄은 한 손에 잡히도록 수평으로 입죽에 묶어 놓은 산성이 있을 따름이다. 볼품은 없지만, 음의 폭이 놀라울 정도이다. 여인은 왼손으로 해금의 네 줄을 싸 감아쥐고 떡 주무르듯이 소리를 낸다. 손가락으로 음색을 조절한다. 거칠게 꺾고 구부리면서 섬세한 것들을 아우른다. 해금의 소리는 그 소리를 탄주하는 사람의 몸 소리처럼 들린다. 몸이 느끼는 리듬을 손바닥으로 받아내어 세상으로 소리를 내보낸다. 며칠 전, 동해안에서 파도와 몽돌이 한 몸 되어 내는 소리를 들었다. 비가 막 그치고 햇살이 몽돌 위로 쏟아져 내렸다. 달이 끌어당기는 대로 물은 멀어졌다 다시 돌아왔다. 밀려온 바닷물이 오랜 세월 파도에 닳아 동글동글해진 몽돌을 나직나직 탄주했다. ‘쏴와, 자그락자그락……’ 흑진주 같은 몽돌을 바닷물이 위무하는 소리였다. 몽돌 위로 쓸려나가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내 몸은 전율했다. 비 그친 해안 길을 걸으며 들었던 바다의 탄주는 해금의 선율처럼 깊었다. 그 소리는 사람의 손으로는 도저히 낼 수 없는 바다의 심장 소리였다. 오직 파도의 손으로만 칠 수 있는 저음의 건반이었다. 그때, 내 몸속에도 쓸쓸히 파도치는 건반이 있다는 걸 알았다. 바다가 탄주하는 소리. 그 애절한 탄주를 들으며 내 몸도 날마다 글이라는 건반을 소리 없이 연탄 한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탄주하는 언어가 언젠가는 출렁출렁 가슴에서 울려 나와 세상이라는 바다를 건널 것이라 확신했다. 나는 글을 온몸으로 쓴다. 온몸으로 글을 밀고 나가는 느낌이 없으면 쓰지 못한다. 그만큼 몰입한다는 뜻일 것이다. 글쓰기의 무아지경에 들지 않으면 한 줄도 그려내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만 있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할 때 가장 많이 배운다고 했다. 그럴 때면 시간이 가는 것도 느끼지 못한다. 무언가에 푹 빠져 있을 때는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글에 몰두하다가 끼니를 잊을 때도 있고, 냄비를 새까맣게 태우기도 한다. 커피를 마시다가 식는 줄도 모른다. 몰입하면 잘하게 되고, 잘하게 되면 더 빠져들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좋아서 하는 것으로 글쓰기가 시작되었다. 글에 미쳐서 수년 동안 내 몸을 갉아먹기도 했다. 몰입의 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경지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도 경험했다. 문학의 경지에 이르는 길도 하지 않으면 알 수 없고, 가지 않으면 볼 수 없다. 조금씩 새로운 것을 시도하다 보면 해금을 탄주하는 여인처럼 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늘이 깊어야 향기도 깊어진다는 말처럼 내면에 쌓인 사유의 힘이 요동쳐 글을 무르익게 하리라. 무슨 일이든 일치, 하나가 되어야 깊어진다. 몸과 사유를 연결해야 글로 옮길 수 있다. 그것이 문학의 운율이다. 해금의 선율과 몽돌 위에서 내는 파도 소리 같은 리듬은 살아있는 생명 속에서 탄생한다. 탄주는 오직 몰입하는 시간 속에만 존재한다. 글을 창작할 때 나는 음악을 듣는다. 곡을 작곡하듯 음악을 들으며 창작을 꿈꾼다. 글은 몸속의 느낌으로 표현해내는 악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려내는 글도 음악처럼 리듬이 있어야 한다. 시 같은 운율이 아니라 사람이 호흡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리듬을 만들어야 한다. 현이 울릴 때마다 달빛이 물결친다. 해금 탄주를 들으며 나의 글이 해금의 소리를 닮았으면 좋겠다고 염원한다. 글은 내면의 뿌리에서 피는 꽃이다. 여인이 해금의 소리를 주물러 손바닥으로 반죽해 내듯 나도 내 문장을 맛깔나게 주물러 낼 수 있었으면. 하나 지금의 내 짧은 사유로는 깊디깊은 문장을 주물러 낼 수가 없다. 하나의 문장을 우주로 만들어보고 싶은 열망만 가득할 뿐 서툴기만 하다. 그래서 오늘같이 봄비 내리고 무심한 밤에는 해금 탄주에 귀를 기울인다. 저녁 무렵부터 새벽이 올 때까지…….<작품선집 차경(2026)>. ▮김희자 아호 연당蓮塘.남해 출신. 《수필세계》 등단(2011). 한국방송통신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 대구 범어도서관 수필 강사 역임, 유배문학관 운영위원, 화전도서관 수필 강사, 수필사랑문학회, 남해문학회 회원. 숙소 설흘재雪屹齋 운영 중. 저서: 《등피》 《꽃문이 열릴 때까지》 《바람의 지문》 《터》, 작품 선집 《차경》. 제1회 천강문학상 대상, 목포문학상, 근로자예술제 수필부문 금상 등 전국공모전 다수 입상.
-
- TOP40
- 문화
-
[지구일보]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36) 김정애 ‘몸이 세계를 탄주하는 시간‘
-
-
[지구일보]신춘문예 출신 송정자 수필가, 44일간 아프리카 8개국 기록하다 『카렌을 만난 아프리카』 발표, 여행을 넘어 삶과 인간을 성찰한 감동의 에세이
- 【지구일보】 신춘문예 출신 송정자 수필가가 44일간 아프리카 8개국을 여행하며 기록한 체험과 성찰을 담은 여행에세이 『카렌을 만난 아프리카』를 대한기자신문에 발표했다. 이번 작품은 단순한 여행 안내서가 아니라 낯선 대륙에서 만난 사람들의 삶과 문화, 자연의 경이로움, 그리고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문학적으로 풀어낸 여행수필이다. 광활한 초원과 야생동물, 다양한 부족 문화와 역사적 현장을 생생한 필치로 담아내며 독자들에게 아프리카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특히 작가는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소중한 인연을 통해 삶의 본질과 공존의 가치를 성찰하며,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과 감동을 전한다. 섬세한 문체와 따뜻한 시선이 어우러진 이번 작품은 여행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송정자 수필가는 지구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으며, 제3회 권대근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꾸준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의 문학은 삶의 현장을 진정성 있게 기록하며 인간과 자연을 잇는 따뜻한 감성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 송정자 작가는 경남 밀양 출생으로 한국수필가협회, 한국수필작가회 회원이며, 미미래수필문학회 사무장, 동대문문인협회 감사 및 편집위원, 정독수필다스림 회장 등을 맡아 활발한 문단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한국문인협회 서울지회 이사로 활동 중이다. 그는 『한국수필』 등단 이후 제43회 강원경제신문 코벤트가든문학상, 제4회 설총문학상, 제7회 동대문문학상, 제3회 권대근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아 왔다. 2026년에는 지구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다시 한번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첫 수필집 『f홀의 위로』에 이어 두 번째 작품집 『누에나비의 척수가 되어』를 통해 송정자 작가는 인간 존재의 내면과 삶의 흔적을 더욱 깊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길어 올리고 있다. 그의 수필은 단순한 감상의 차원을 넘어, 상처 입은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조용한 위로와 성찰의 시간을 선물한다.
-
- TOP40
- 문화
-
[지구일보]신춘문예 출신 송정자 수필가, 44일간 아프리카 8개국 기록하다 『카렌을 만난 아프리카』 발표, 여행을 넘어 삶과 인간을 성찰한 감동의 에세이
-
-
[지구일보] 지식인의 우월감은 민주주의를 약하게 만든다
- [지구일보] 민주주의는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하는 제도다. 대통령도 비판받을 수 있고, 지식인도 평가받을 수 있다. 문제는 비판 자체가 아니라 그 태도다. 논리보다 우월감이 앞서고, 설득보다 상대를 깎아내리는 방식이 반복된다면 민주주의는 건강해질 수 없다. 최근 유시민 작가의 일부 발언을 둘러싸고 적지 않은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평가와 비판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오히려 그것은 민주사회에서 필요한 역할이다. 그러나 비판이 상대를 존중하는 토론이 아니라, 자신의 지적 우위를 과시하는 방식으로 비쳐진다면 국민은 공감보다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지식인은 사회를 이끄는 등불이어야 한다. 등불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빛나는 것이 아니라 길을 비추기 위해 존재한다. 아무리 뛰어난 식견과 논리를 갖추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상대를 낮추고 자신을 높이는 도구가 되는 순간 지성은 권위주의로 변질된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엘리트의 언어'에 지쳐 왔다. 국민은 어려운 수사보다 진심 어린 설명을 원한다. 상대를 무시하는 논리보다 함께 이해하려는 태도를 높이 평가한다. 정치도, 언론도, 학계도 결국 국민의 신뢰 위에서 존재한다. 신뢰는 지식의 양이 아니라 겸손에서 비롯된다. 유시민 작가는 오랜 세월 한국 사회를 대표하는 논객으로 활동하며 영향을 끼쳐 왔다. 그의 통찰과 문제의식은 충분히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영향력이 큰 사람일수록 '말의 도덕적 무게'는 더욱 커진다. 한마디의 표현이 사회적 갈등을 키울 수도 있고, 통합의 계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대통령을 향한 비판은 더욱 신중해야 한다. 대통령 개인을 보호하자는 뜻이 아니다. 국가 최고 지도자를 향한 언어는 결국 국가 운영 전반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도 연결된다. 날카로운 비판은 필요하지만, 조롱이나 단정, 감정적 표현은 공론장을 메마르게 만들 뿐이다. 지식인의 가장 큰 덕목은 정답을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용기다. 자신의 견해가 절대적이라고 믿는 순간 대화는 끝나고 독백만 남는다. 민주주의는 독백이 아니라 토론으로 성장한다. 오늘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비난이 아니라 더 깊은 성찰이다. 상대를 이기기 위한 언어가 아니라 함께 미래를 찾기 위한 언어가 필요하다. 정치도, 언론도, 지식인도 국민 앞에서는 모두 겸손해야 한다. 비판은 민주주의의 산소다. 그러나 우월감은 민주주의의 독이 될 수 있다. 지식인이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 이유는 많이 알아서가 아니라, 많이 알수록 더욱 낮아질 줄 알기 때문이다. 진정한 지성은 상대를 압도하는 데 있지 않다. 상대를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데 있다. 대한민국은 특정 개인의 명성보다 성숙한 공론장이 더 필요한 시대를 맞고 있다. 서로 다른 의견을 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논리와 품격으로 경쟁하는 문화가 자리 잡을 때 민주주의는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그것이 오늘날 모든 정치인과 지식인이 함께 되새겨야 할 시대적 책임이다.
-
- TOP40
-
[지구일보] 지식인의 우월감은 민주주의를 약하게 만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