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Home >  뉴스
-
[칼럼] 나는 과연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지구일보 이창호 |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나는 가끔 나에게 묻는다. “나는 과연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국가와 국가가 교류하는 모든 관계의 출발점은 바로 이 ‘이해(理解)’의 능력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상은 연결되어 있지만, 정작 마음은 단절되어 있다. 정보와 기술이 넘쳐나는 시대지만, 정작 사람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이는 많지 않다. 누군가의 말 속에 숨은 사정이나 감정을 헤아리는 대신, 우리는 너무 쉽게 판단하고 너무 빨리 결론을 내린다. 그래서 관계는 얇아지고, 신뢰는 약해진다. 나는 한중 교류의 현장에서 수없이 느꼈다. 언어와 문화, 가치관이 다른 두 나라가 함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상대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경제협력의 성과보다 더 귀한 것은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중국의 고전 『주역(周易)』에는 “군자는 후덕재물(厚德載物)이라 하여, 덕이 두터운 사람은 세상을 품을 수 있다”고 했다. 이 말은 오늘날 국제 교류의 본질을 꿰뚫는다. 덕이란 곧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아는 품격이며, 그것이야말로 신뢰의 토대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타인을 이해하기 어려운가. 그 이유는 대부분 ‘자기 기준’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내 생각이 옳다는 확신, 내 경험이 보편적이라는 착각이 상대의 현실을 왜곡한다. 이해는 상대를 바꾸려는 시도가 아니라, 나를 비워내는 인내다. 내가 옳다는 마음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상대의 말이 들리고 그의 사정이 보인다. “왜 저럴까”에서 “그럴 수도 있겠구나”로 바뀌는 순간, 관계는 달라진다. 한중 양국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때로 역사적 감정이나 정치적 입장에 매여 서로를 오해한다. 그러나 진정한 외교는 감정이 아니라 이해에서 출발한다.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면 협력은 오래가지 않는다. 필자가 한중교류촉진위원회가 추진하는 다양한 학술·문화 교류의 목적도 여기에 있다. 학문과 문화, 언어와 인문정신의 교류를 통해 서로의 생각과 삶의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런 노력이 쌓여야 국가 간 신뢰가 형성된다. 나는 젊은 세대에게도 자주 말한다. 국제사회에서 진정한 리더가 되려면, 지식보다 ‘공감의 깊이’를 먼저 길러야 한다. 공감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지혜다. 그것이 있어야 한중 공동체는 지속 가능해지고, 국제 협력은 실질적 성과를 낼 수 있다. 타인을 이해하는 일은 멀리 있지 않다. 가정에서부터, 직장에서부터, 내 옆 사람을 먼저 이해하는 데서 시작된다. 부모와 자녀, 스승과 제자, 상사와 직원, 그리고 이웃 간의 관계 속에서도 ‘상대의 입장’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것이 결국 사회의 신뢰를 세우고, 국가의 품격을 높인다. 나는 늘 믿는다. 한중 양국이 진정으로 서로를 이해한다면, 그 어떤 갈등도 극복할 수 있다. 이해는 협력의 씨앗이고, 신뢰는 평화의 열매다. 우리가 서로의 입장에서 세상을 본다면, 그 길은 결코 멀지 않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리고 국제사회가 다시 돌아봐야 할 질문은 단 하나다. “나는 과연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 질문에 진심으로 ‘예’라고 답할 수 있을 때, 한 개인의 관계든 국가 간 교류든, 진정한 변화는 시작된다.
-
[APEC 분석과 전망] 2025 APEC 경주선언 이후, 한중 관계의 포괄적 전략은 무엇인가
[지구일보 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2025년 10월, 경주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는 동북아 질서의 전환점이자, 한중 관계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분기점이었다. ‘경주 선언’이 채택되면서, 세계 경제의 다극화 흐름 속에서 한국과 중국은 상호의존을 넘어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의 재정립을 요구받고 있다. 이는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실질적 협력구조의 재편과 전략적 신뢰의 복원을 의미한다. 한중 관계는 지난 30여 년간 경제협력 중심에서 출발해, 정치·안보·문화 등 다층적 관계로 발전해왔다. 미·중 전략 경쟁의 심화, 공급망 재편, 기술 패권의 대립 등 복합적 변수가 양국 관계에 구조적 긴장을 불러왔다. 경주 APEC 정상회의는 이러한 불안정한 국제 환경 속에서 한중이 다시 협력의 틀을 모색하는 계기가 됐다. 특히 기후변화 대응, 디지털경제 협력, 청년 교류 확대 등은 상호보완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핵심 의제들로 꼽힌다. 우선 경제 전략 측면에서 한국은 첨단기술과 제조 경쟁력을 기반으로, 중국은 거대한 시장과 공급망 중심국으로서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향후 한중 간 경제협력의 방향은 ‘탈의존’이 아니라 ‘재조정’으로 요약된다. 반도체, 배터리, 인공지능 분야에서의 기술 협력은 여전히 상호 필요성이 크다. 한국 입장에서는 기술자립과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하되, 중국 시장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이중 축 전략(dual-track strategy)’이 요구된다. 이는 공급망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한중 산업 생태계의 상호 보완성을 극대화하는 현실적 접근이다. 둘째, 안보 및 외교 전략의 핵심은 균형외교의 정교화다. 한중 관계는 미·중 경쟁 구도 속에서 ‘전략적 모호성’보다 ‘전략적 실용주의’로 옮겨가야 한다. 한국이 미국과의 안보 동맹을 기반으로 하되, 중국과의 외교 협력을 심화시키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특히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해 여전히중국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경주 선언 이후, 한중 양국은 ‘동북아 평화·안보 협의체’ 구축을 실질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향후 한반도 안정의 제도적 기반이 될 가능성이 있다. 셋째, 인문·문화 교류는 양국 관계의 심리적 신뢰 회복을 위한 ‘정치적 완충장치’로서 중요하다. 양국 국민 간 인식의 간극이 커지는 상황에서, 학술·청년·지방정부 간 교류 확대는 관계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핵심 수단이다. 한중 수교 33주년을 맞이한 올해, 문화 창조 산업 콘텐츠와 공동 연구, 관광 교류의 재활성화는 단순한 이벤트를 넘어 상호이해를 회복하는 전략적 자산으로 작용할 것이다. 넷째, 기후변화·녹색경제 협력은 향후 한중 관계의 신성장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2025 APEC 경주선언에서 양국은 ‘탄소중립 기술 공동개발’ 및 ‘재생에너지 표준 협력’을 공식 의제로 채택했다. 이는 국제사회에서의 리더십 경쟁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한중이 공동의 녹색경제 블록을 형성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한국의 기술력과 중국의 대규모 시장이 결합될 경우, 아시아의 녹색전환은 실질적 성과를 낼 수 있다. 다섯째, 미래지향적 포괄전략의 방향성은 ‘신뢰의 재건’이다. 외교는 말보다 행동으로 신뢰를 쌓아야 한다. 그동안 양국 관계가 불안정했던 이유는 경제와 정치의 비대칭적 상호작용 때문이었다. 이제는 ‘상호이익의 경제, 안보의 상호존중, 문화의 상호이해’라는 세 가지 원칙이 병행되어야 한다. 결국 APEC 경주선언 이후의 한중 관계는, ‘이익의 동반자’를 넘어 ‘운명공동체의 협력자’로 나아가야 한다. 게다가 미·중 갈등의 장기화 국면에서 한국은 중견국으로서의 포괄적 중재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며, 중국은 한국을 신뢰할 수 있는 협력 상생 파트너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한중이 선택해야 할 길은 갈등의 관리가 아니라, 공존의 설계다. 또 한편으로 경주는 천년 신라의 수도였다. 그 역사적 무대에서 채택된 2025 APEC 경주 선언은, 단순한 외교행사가 아니라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의 서막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한중 양국이 과거의 오해를 넘어 실질적 신뢰로 나아갈 때, 동북아는 경쟁의 전장이 아니라 평화의 축으로 거듭날 것이다. 그 중심에는 이제 ‘포괄적 동반자 관계’라는 이름으로, 한중의 새로운 미래가 서 있을 것이다. 글: 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
[지구일보] 황제가 사랑한 간식, 외교의 품격이 되다
[지구일보=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지난달 31일, 대통령실은 이재명 대통령이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방한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중국 대표단에게 경주의 명물 ‘황남빵’을 선물했다고 밝혔다. 단순한 지역 특산품이 아닌, 오랜 전통과 정성을 간직한 이 작은 빵 한 상자에는 한중 양국의 깊은 인연과 문화적 상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황제가 사랑한 간식’이라 불릴 만큼 품격과 역사를 지닌 황남빵은 1939년 경주 황오동의 작은 제과점에서 시작됐다. 경주 최씨 가문의 후손이었던 창업자는 천년 고도의 정취를 담아 ‘왕이 먹을 수 있는 정직한 빵’을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반세기가 넘도록 그 맛과 전통을 지켜왔다. 얇은 밀피 속에 단팥소를 가득 채운 단아한 형태는 마치 신라의 미학을 닮았고, 한입 베어물면 달콤함 속에 깊은 여운이 남는다. 이재명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에게 황남빵을 선물한 것은 단순한 ‘기념품 교환’의 차원을 넘어선 외교적 메시지로 해석된다. 그것은 ‘정성의 외교’, 즉 마음을 전하는 품격 있는 소통의 상징이었다. 황남빵은 화려하지 않지만, 그 안에 담긴 정직함과 꾸준함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지녔다. 이는 한중관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도 닮아 있다. 겉으로는 경쟁과 갈등의 구도가 존재하지만, 속으로는 오랜 시간 쌓아온 교류와 상호 신뢰의 뿌리가 있다. 시진핑 주석이 이 선물을 받으며 미소를 지었다는 후일담은 상징적이다. 그는 평소 역사와 전통에 깊은 의미를 두는 지도자다. 한국의 천년 수도 경주에서 태어난 황남빵은 그에게 단순한 디저트가 아니라, 문화유산의 향기를 품은 ‘한국의 진심’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한중 양국이 정치·경제적 현안을 논의하던 공식 자리에서조차, 이런 따뜻한 정성은 마음의 문을 여는 또 다른 외교의 품격이 된다. 이번 APEC 정상회의는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한중 관계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중요한 계기였다. 그 자리에서 황남빵은 작지만 강한 존재감을 발휘했다. 그것은 ‘작은 선물이 큰 신뢰를 만든다’는 외교의 기본을 다시금 일깨워준 순간이었다. 글로벌 경제의 파도가 거세질수록, 국가 간 관계는 점점 더 세밀한 감성과 문화적 이해 위에서 유지된다. 황남빵은 바로 그 ‘문화외교의 디테일’을 상징한다. 또 황남빵의 의미는 단순히 전통 음식의 차원을 넘어, 한국인의 정체성과 미학을 전한다. 겉은 단정하고 속은 따뜻한 이 간식은 ‘겸손한 품격’의 한국적 미덕을 표현한다. 인위적인 화려함 대신 진심으로 다가가는 방식, 그것이야말로 세계가 한국을 사랑하게 만드는 문화의 힘이다. 이번 선물은 한중 간의 상호 존중과 평화적 협력의 메시지를 담은 ‘달콤한 외교’였다. 한편, 중국은 차 문화와 과자 문화가 발달한 나라다. 시진핑 주석에게 황남빵은 중국의 월병(月饼)이나 전통과자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문화적 공감대를 형성한다. 서로의 전통 속에서 유사한 감성과 정서를 느낄 때, 정치적 거리감은 자연스레 좁혀진다. 문화는 언어보다 강한 외교의 수단이다. 황남빵은 바로 그 다리를 놓았다. 더 나아가 이번 선물은 한국 지방의 문화자원을 외교무대에 올려놓은 모범 사례이기도 하다. 글로벌 무대에서 지역의 브랜드가 국가의 품격을 상징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경주가 품은 역사와 문화, 그 속에서 태어난 황남빵은 한국이 가진 ‘시간의 깊이’를 증명한다. 세계가 한국을 단순한 경제 파트너가 아닌, 문화적 신뢰의 나라로 바라보게 하는 데 이만한 외교 아이콘도 드물다. ‘황제가 사랑한 간식’이라는 이름처럼, 황남빵은 시간과 정성을 넘어선 인간적 교류의 매개체가 되었다. 달콤함 속에 깃든 따뜻한 마음은, 국가 간의 냉철한 전략보다 더 오래 기억될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선물 외교는 겉으로는 작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황남빵 한 조각에는 한국의 역사와 예의, 그리고 우정이 함께 구워져 있다. 한중 양국이 다시 신뢰를 회복하고 미래로 나아가야 할 길목에서,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문화의 외교’였다. 결국 외교란,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만나는 일이다. 국경을 넘어, 언어를 넘어, 한 조각의 빵이 만들어낸 따뜻한 온기는 그 어떤 정치적 합의문보다 오래 남는다. 황남빵이야말로 오늘날 외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 진심으로 전하고, 따뜻하게 연결하는 ‘품격의 외교’를 보여준 상징이었다.
-
[칼럼] 공자의 ‘의로움을 따르라’가 던지는 현대 경영의 길
[지구일보] 군자유어의 소인유어리(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 군자는 의로움을 따르고, 소인은 이익을 따른다는 공자의 말이다. 2천5백 년 전의 언어이지만, 지금 이 시대의 기업과 경영자들에게 여전히 유효한 지침이다. 오늘날의 경영 환경은 변화의 속도가 숨 가쁘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사고를 대체하고, 글로벌 시장은 예측 불가능한 리스크로 요동친다. 이런 시대일수록 ‘의(義)’의 철학이 더욱 절실하다. ‘의로움’은 단순한 도덕적 수사가 아니다. 그것은 모든 경영 판단의 근본이자, 기업이 존재할 수 있는 윤리적 기반이다. 공자는 이익을 전적으로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이익이 ‘의로움’을 벗어날 때, 그것은 탐욕이 되어 공동체를 해친다고 보았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단기적 이익을 좇는 경영은 일시적 성과를 낳을 수 있지만, 그 끝에는 반드시 신뢰의 붕괴가 뒤따른다. 반대로 ‘의’를 바탕으로 한 경영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속가능한 성장으로 이어진다. 공자의 경영 철학은 ‘의’를 실천의 중심에 두는 데 있다. ‘의’는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마음이자, 공동체의 조화를 지키려는 책임이다. 오늘날 ESG 경영, 윤리 경영, 사회적 가치 창출이라는 말들이 강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진정한 지속 가능성은 기술이나 자본이 아니라 ‘도덕적 신뢰’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이 단기적 수익을 위해 환경을 훼손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무시한다면, 그 기업은 언젠가 시장의 신뢰를 잃는다. 반면, 공자의 ‘의’를 실천하는 기업은 위기 속에서도 지탱된다. 왜냐하면 그 기업은 이익보다 먼저 ‘정의롭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신뢰는 시간이 걸려도 결국 최고의 자산이 된다. 공자는 또 이렇게 말했다. 견리사의(見利思義), '이익을 보거든 그 안에서 의로움을 먼저 생각하라.' 이는 경영자가 결정을 내릴 때 가져야 할 기준이기도 하다. 기업의 목표는 이익 창출이지만, 그 이익이 공정한 과정에서 얻어진 것인지, 사회적 약자를 배려했는지, 다음 세대에게 피해를 남기지 않았는지를 끊임없이 자문해야 한다. 그 물음이 바로 ‘의’를 경영의 나침반으로 삼는 길이다. ‘의로운 경영’은 때로 손해처럼 보일 수 있다. 원가를 아끼기보다 안전을 강화하고, 단기 성과보다 직원의 성장에 투자하는 일은 당장의 이익을 줄인다. 그것이야말로 장기적으로 조직을 강하게 만든다. 공자는 의이위상(義以為上)이라 했다. 모든 판단의 첫 자리에 의로움을 두라는 뜻이다. 기업이 이 정신을 실천한다면, 위기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경영자는 단지 이익을 관리하는 관리자가 아니라, 가치와 신뢰를 지키는 지도자여야 한다. 조직의 방향은 결국 리더의 철학에서 비롯된다. 리더가 ‘의’를 중심에 두면 구성원은 신뢰를, 고객은 감동을, 사회는 존경을 보낸다. 그것이 진정한 리더십의 완성이다. 공자는 “정치는 덕으로 하는 것이다. 위정이덕(爲政以德)”이라고 했다. 이를 경영에 대입하면, ‘경영은 의로 하는 것이다’라 할 수 있다. 윤리와 이익의 균형이 무너진 시대, 공자의 ‘의’는 다시금 경영의 좌표를 정렬하게 한다. 기업은 단지 돈을 버는 기계가 아니라, 사회의 신뢰를 구축하는 공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이익을 위한 의’가 아니라, ‘의를 위한 이익’이다. 즉, 의로움이 이익을 낳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기업은 단순한 경제 주체를 넘어, 사회적 신뢰의 등불이 된다. 지금의 경영자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기술도, 더 큰 자본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의로움을 따르는 용기’다. 공자가 던진 이 한마디가 오늘의 기업과 사회에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군자는 의로움을 따르고, 소인은 이익을 따른다.” 이제 기업의 미래는 그 선택 위에 달려 있다. 이익을 좇을 것인가, 의로움을 따를 것인가. 답은 이미, 2천 년 전 공자가 남겨두었다.
-
[지구일보=칼럼] 바야흐로 한중 시대다... 경주 한중정상회담이 남긴 메시지
[지구일보 이창호 칼럼니스트] 2025년 가을, 천년의 고도 경주가 세계의 이목을 다시 한 번 끌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리는 그 자리에서 한국과 중국의 정상은 따로 또 함께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이름하여 ‘한중정상회담’. 이는 단순한 외교 행사가 아니라, 한중 관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상징적 신호였다. 양국 관계는 지난 몇 년간 얼어붙어 있었다. 사드(THAAD) 배치 이후 고조된 긴장, 미중 경쟁 속에서의 전략적 거리두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인적 교류의 단절까지. 다양한 요인들이 겹치면서 한중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한 궤적을 그려왔다. 이번 경주 한중정상회담은 “완전한 회복은 아니지만, 바야흐로 다시 시작하겠다”는 양국의 공감대는 분명해 졌다.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정상 회담은 경제와 문화, 인적 교류의 새로운 틀을 모색하면서 양 정상간 논의된 민생분야 실질 협력 구상을 구체화하기 위해 양국 중앙은행간 체결된 통화스왑 계약서 및 양국의 정부 부처간 체결된 6건의 MOU에 대한 교환식이 있었다. 발표문에서 ‘포괄적 협력 복원’이라는 문구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실질적인 복원 의지가 곳곳에서 읽혔다. 이 대통령은 “경제협력의 문을 다시 열고, 문화와 인적 교류를 통해 신뢰의 토대를 재건하겠다”고 언급했고, 시 주석 역시 “한중 양국은 이사 갈 수 없는 이웃으로서 서로의 발전을 존중하고, 함께 성장해야 한다”고 화답했다. 중국 측의 태도 변화는 특히 문화 분야에서 감지된다. 한때 한국 콘텐츠의 중국 내 유통이 사실상 차단되며 ‘한한령(限韓令)’이라는 말이 떠돌았다. 이는 어디까지나 민간이 만들어낸 관념적 용어일 뿐,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내린 정책은 아니었다. 시진핑 주석 또 이번 정상 회담에서 그 점을 에둘러 표현했다. “한한령을 푼다”는 식의 직접적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민간의 활발한 교류를 장려한다”는 말 속에 실질적인 변화를 예고했다. 다시 말해, 한한령은 행정 명령으로 ‘해제’되는 것이 아니라, 민간의 자율적 교류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는 메시지다. 실제 중국의 정책 흐름도 이를 뒷받침한다. 최근 베이징과 상하이, 광저우 등 대도시에서 K-콘텐츠 관련 전시, 공연, 공동 제작 프로젝트가 재개되고 있다. 중국 주요 방송 플랫폼에서도 한국 드라마와 예능이 점진적으로 복귀하고 있으며, 한국 배우와 감독들의 초청 행사도 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정치가 열어주지 못한 문을 문화가 다시 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경주는 이번 한중 정상 회담의 무대이자 상징이었다. 신라 천년의 수도였던 경주는 과거 동아시아 문명의 교류 중심지로서 한중 문화의 뿌리를 공유하는 도시다. 불국사와 석굴암, 황룡사의 옛터에 서린 문화적 기억은 양국이 과거를 되새기며 미래 협력의 방향을 모색하는 데 더할 나위 없는 장소였다. 이번 정상 회담이 경주에서 열린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역사의 길 위에서 미래를 설계한다’는 상징적 선택이었다. 게다가 경제 분야에서도 양국은 신중하지만 긍정적인 진전을 보였다. 한중간 양국 국민의 민생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미래지향적 협력을 추진해 나가기 위해 ‘실버산업’ 및 ‘혁신창업’ 분야 협력에 관한 MOU 및 우리 농산물의 중국 수출을 원활히 하는 MOU도 체결했다. 특히 ‘APEC AI 이니셔티브’ 채택을 계기로 한국이 제안한 인공지능 협력 플랫폼에 중국이 적극 동참하겠다는 뜻을 보이며 기술·산업 협력의 가능성을 넓혔다. 이는 한중 경제관계가 단순한 수출입 구조를 넘어, 새로운 협력 모델로 발전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양국 관계의 진정한 회복은 결국 ‘사람’에서 비롯된다. 정부 간 합의나 선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과 국민의 신뢰 회복이다. 시 주석이 직접 ‘한한령 해제’를 언급하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식 발언으로 규정하는 순간, 그 자체가 정치적 해석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민간이 서로 마음을 열고 교류를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한중 관계의 다음 단계가 정부 주도의 협력에서 민간 중심의 상호 신뢰 회복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필자는 바야흐로 한중 관계는 ‘포스트 경주 시대’로 접어들었다. 완전한 회복을 선언하기엔 이르지만, 흐름은 분명히 바뀌었다. 정치적 이견이 남아 있더라도 경제적 실익과 문화적 공감대는 양국을 다시 묶는 끈이 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경주의 한중 정상 회담은 과거를 넘어, 상생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상징한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키워드를 꼽는다면 ‘평화, 복원’이다. ‘냉정과 온정’이 교차하는 국제무대에서, 한중이 다시 손을 맞잡는다면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은 현실이 될 것이다. 천년의 도시 경주가 그랬듯, 새로운 한중 시대는 과거의 기억 위에 미래의 희망을 쌓아 올리는 여정이다. 정치가 닫은 문을 문화가 열고, 경쟁이 만든 거리를 교류가 메운다. 이제부터 진정한 한중 시대가 시작됐다. 글/사진 : 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
[지구일보] 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GWICC,만리장성국제전파센터(The Great Wall International Communication Center) 인터뷰
[지구일보 이강문 기자] APEC 정상회의 주제인 “모든 이를 위한 회복력 있고 지속가능한 미래”는 한국과 중국이 포용적 성장과 녹색전환을 중심으로 협력할 수 있는 전략적 틀을 제시한다. 양국은 탄소중립, 디지털 전환, 공급망 안정 등 공통 과제를 중심으로 실질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 특히 한중은 APEC의 다자적 플랫폼을 활용해 역내 무역자유화와 기술표준 조율을 주도하고, 중소기업·청년 창업 지원을 통한 지속 가능한 성장 모델을 함께 구축할 수 있다. 이러한 협력은 동아시아의 안정과 공동번영에도 기여할 것이다. 젊은 세대가 서로의 나라에서 일하고, 여행하고, 유학하며 교류하는 현상은 단순한 인적 이동을 넘어 양국 관계의 미래를 지탱하는 민의(民意)의 토대를 강화하는 긍정적 흐름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언어와 문화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상호 이해와 공감의 폭을 넓히고, 편견을 줄이는 ‘생활 속 외교관’의 역할을 수행한다. 특히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문화 확산은 한중 간 정서적 거리감을 좁히고, 상호 신뢰를 쌓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민간 차원의 연결은 정치·경제 관계의 변동에도 흔들리지 않는 지속 가능한 우호 기반, 즉 ‘소프트 파워 동반자 관계’를 형성하며 양국 협력의 미래 에너지가 될 것이다.
-
-
[칼럼] 나는 과연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 [지구일보 이창호 |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나는 가끔 나에게 묻는다. “나는 과연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국가와 국가가 교류하는 모든 관계의 출발점은 바로 이 ‘이해(理解)’의 능력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상은 연결되어 있지만, 정작 마음은 단절되어 있다. 정보와 기술이 넘쳐나는 시대지만, 정작 사람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이는 많지 않다. 누군가의 말 속에 숨은 사정이나 감정을 헤아리는 대신, 우리는 너무 쉽게 판단하고 너무 빨리 결론을 내린다. 그래서 관계는 얇아지고, 신뢰는 약해진다. 나는 한중 교류의 현장에서 수없이 느꼈다. 언어와 문화, 가치관이 다른 두 나라가 함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상대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경제협력의 성과보다 더 귀한 것은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중국의 고전 『주역(周易)』에는 “군자는 후덕재물(厚德載物)이라 하여, 덕이 두터운 사람은 세상을 품을 수 있다”고 했다. 이 말은 오늘날 국제 교류의 본질을 꿰뚫는다. 덕이란 곧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아는 품격이며, 그것이야말로 신뢰의 토대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타인을 이해하기 어려운가. 그 이유는 대부분 ‘자기 기준’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내 생각이 옳다는 확신, 내 경험이 보편적이라는 착각이 상대의 현실을 왜곡한다. 이해는 상대를 바꾸려는 시도가 아니라, 나를 비워내는 인내다. 내가 옳다는 마음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상대의 말이 들리고 그의 사정이 보인다. “왜 저럴까”에서 “그럴 수도 있겠구나”로 바뀌는 순간, 관계는 달라진다. 한중 양국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때로 역사적 감정이나 정치적 입장에 매여 서로를 오해한다. 그러나 진정한 외교는 감정이 아니라 이해에서 출발한다.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면 협력은 오래가지 않는다. 필자가 한중교류촉진위원회가 추진하는 다양한 학술·문화 교류의 목적도 여기에 있다. 학문과 문화, 언어와 인문정신의 교류를 통해 서로의 생각과 삶의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런 노력이 쌓여야 국가 간 신뢰가 형성된다. 나는 젊은 세대에게도 자주 말한다. 국제사회에서 진정한 리더가 되려면, 지식보다 ‘공감의 깊이’를 먼저 길러야 한다. 공감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지혜다. 그것이 있어야 한중 공동체는 지속 가능해지고, 국제 협력은 실질적 성과를 낼 수 있다. 타인을 이해하는 일은 멀리 있지 않다. 가정에서부터, 직장에서부터, 내 옆 사람을 먼저 이해하는 데서 시작된다. 부모와 자녀, 스승과 제자, 상사와 직원, 그리고 이웃 간의 관계 속에서도 ‘상대의 입장’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것이 결국 사회의 신뢰를 세우고, 국가의 품격을 높인다. 나는 늘 믿는다. 한중 양국이 진정으로 서로를 이해한다면, 그 어떤 갈등도 극복할 수 있다. 이해는 협력의 씨앗이고, 신뢰는 평화의 열매다. 우리가 서로의 입장에서 세상을 본다면, 그 길은 결코 멀지 않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리고 국제사회가 다시 돌아봐야 할 질문은 단 하나다. “나는 과연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 질문에 진심으로 ‘예’라고 답할 수 있을 때, 한 개인의 관계든 국가 간 교류든, 진정한 변화는 시작된다.
-
- 뉴스
- 사회
-
[칼럼] 나는 과연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
-
[APEC 분석과 전망] 2025 APEC 경주선언 이후, 한중 관계의 포괄적 전략은 무엇인가
- [지구일보 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2025년 10월, 경주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는 동북아 질서의 전환점이자, 한중 관계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분기점이었다. ‘경주 선언’이 채택되면서, 세계 경제의 다극화 흐름 속에서 한국과 중국은 상호의존을 넘어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의 재정립을 요구받고 있다. 이는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실질적 협력구조의 재편과 전략적 신뢰의 복원을 의미한다. 한중 관계는 지난 30여 년간 경제협력 중심에서 출발해, 정치·안보·문화 등 다층적 관계로 발전해왔다. 미·중 전략 경쟁의 심화, 공급망 재편, 기술 패권의 대립 등 복합적 변수가 양국 관계에 구조적 긴장을 불러왔다. 경주 APEC 정상회의는 이러한 불안정한 국제 환경 속에서 한중이 다시 협력의 틀을 모색하는 계기가 됐다. 특히 기후변화 대응, 디지털경제 협력, 청년 교류 확대 등은 상호보완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핵심 의제들로 꼽힌다. 우선 경제 전략 측면에서 한국은 첨단기술과 제조 경쟁력을 기반으로, 중국은 거대한 시장과 공급망 중심국으로서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향후 한중 간 경제협력의 방향은 ‘탈의존’이 아니라 ‘재조정’으로 요약된다. 반도체, 배터리, 인공지능 분야에서의 기술 협력은 여전히 상호 필요성이 크다. 한국 입장에서는 기술자립과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하되, 중국 시장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이중 축 전략(dual-track strategy)’이 요구된다. 이는 공급망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한중 산업 생태계의 상호 보완성을 극대화하는 현실적 접근이다. 둘째, 안보 및 외교 전략의 핵심은 균형외교의 정교화다. 한중 관계는 미·중 경쟁 구도 속에서 ‘전략적 모호성’보다 ‘전략적 실용주의’로 옮겨가야 한다. 한국이 미국과의 안보 동맹을 기반으로 하되, 중국과의 외교 협력을 심화시키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특히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해 여전히중국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경주 선언 이후, 한중 양국은 ‘동북아 평화·안보 협의체’ 구축을 실질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향후 한반도 안정의 제도적 기반이 될 가능성이 있다. 셋째, 인문·문화 교류는 양국 관계의 심리적 신뢰 회복을 위한 ‘정치적 완충장치’로서 중요하다. 양국 국민 간 인식의 간극이 커지는 상황에서, 학술·청년·지방정부 간 교류 확대는 관계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핵심 수단이다. 한중 수교 33주년을 맞이한 올해, 문화 창조 산업 콘텐츠와 공동 연구, 관광 교류의 재활성화는 단순한 이벤트를 넘어 상호이해를 회복하는 전략적 자산으로 작용할 것이다. 넷째, 기후변화·녹색경제 협력은 향후 한중 관계의 신성장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2025 APEC 경주선언에서 양국은 ‘탄소중립 기술 공동개발’ 및 ‘재생에너지 표준 협력’을 공식 의제로 채택했다. 이는 국제사회에서의 리더십 경쟁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한중이 공동의 녹색경제 블록을 형성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한국의 기술력과 중국의 대규모 시장이 결합될 경우, 아시아의 녹색전환은 실질적 성과를 낼 수 있다. 다섯째, 미래지향적 포괄전략의 방향성은 ‘신뢰의 재건’이다. 외교는 말보다 행동으로 신뢰를 쌓아야 한다. 그동안 양국 관계가 불안정했던 이유는 경제와 정치의 비대칭적 상호작용 때문이었다. 이제는 ‘상호이익의 경제, 안보의 상호존중, 문화의 상호이해’라는 세 가지 원칙이 병행되어야 한다. 결국 APEC 경주선언 이후의 한중 관계는, ‘이익의 동반자’를 넘어 ‘운명공동체의 협력자’로 나아가야 한다. 게다가 미·중 갈등의 장기화 국면에서 한국은 중견국으로서의 포괄적 중재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며, 중국은 한국을 신뢰할 수 있는 협력 상생 파트너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한중이 선택해야 할 길은 갈등의 관리가 아니라, 공존의 설계다. 또 한편으로 경주는 천년 신라의 수도였다. 그 역사적 무대에서 채택된 2025 APEC 경주 선언은, 단순한 외교행사가 아니라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의 서막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한중 양국이 과거의 오해를 넘어 실질적 신뢰로 나아갈 때, 동북아는 경쟁의 전장이 아니라 평화의 축으로 거듭날 것이다. 그 중심에는 이제 ‘포괄적 동반자 관계’라는 이름으로, 한중의 새로운 미래가 서 있을 것이다. 글: 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
- 뉴스
- 정치
-
[APEC 분석과 전망] 2025 APEC 경주선언 이후, 한중 관계의 포괄적 전략은 무엇인가
-
-
[지구일보] 황제가 사랑한 간식, 외교의 품격이 되다
- [지구일보=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지난달 31일, 대통령실은 이재명 대통령이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방한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중국 대표단에게 경주의 명물 ‘황남빵’을 선물했다고 밝혔다. 단순한 지역 특산품이 아닌, 오랜 전통과 정성을 간직한 이 작은 빵 한 상자에는 한중 양국의 깊은 인연과 문화적 상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황제가 사랑한 간식’이라 불릴 만큼 품격과 역사를 지닌 황남빵은 1939년 경주 황오동의 작은 제과점에서 시작됐다. 경주 최씨 가문의 후손이었던 창업자는 천년 고도의 정취를 담아 ‘왕이 먹을 수 있는 정직한 빵’을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반세기가 넘도록 그 맛과 전통을 지켜왔다. 얇은 밀피 속에 단팥소를 가득 채운 단아한 형태는 마치 신라의 미학을 닮았고, 한입 베어물면 달콤함 속에 깊은 여운이 남는다. 이재명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에게 황남빵을 선물한 것은 단순한 ‘기념품 교환’의 차원을 넘어선 외교적 메시지로 해석된다. 그것은 ‘정성의 외교’, 즉 마음을 전하는 품격 있는 소통의 상징이었다. 황남빵은 화려하지 않지만, 그 안에 담긴 정직함과 꾸준함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지녔다. 이는 한중관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도 닮아 있다. 겉으로는 경쟁과 갈등의 구도가 존재하지만, 속으로는 오랜 시간 쌓아온 교류와 상호 신뢰의 뿌리가 있다. 시진핑 주석이 이 선물을 받으며 미소를 지었다는 후일담은 상징적이다. 그는 평소 역사와 전통에 깊은 의미를 두는 지도자다. 한국의 천년 수도 경주에서 태어난 황남빵은 그에게 단순한 디저트가 아니라, 문화유산의 향기를 품은 ‘한국의 진심’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한중 양국이 정치·경제적 현안을 논의하던 공식 자리에서조차, 이런 따뜻한 정성은 마음의 문을 여는 또 다른 외교의 품격이 된다. 이번 APEC 정상회의는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한중 관계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중요한 계기였다. 그 자리에서 황남빵은 작지만 강한 존재감을 발휘했다. 그것은 ‘작은 선물이 큰 신뢰를 만든다’는 외교의 기본을 다시금 일깨워준 순간이었다. 글로벌 경제의 파도가 거세질수록, 국가 간 관계는 점점 더 세밀한 감성과 문화적 이해 위에서 유지된다. 황남빵은 바로 그 ‘문화외교의 디테일’을 상징한다. 또 황남빵의 의미는 단순히 전통 음식의 차원을 넘어, 한국인의 정체성과 미학을 전한다. 겉은 단정하고 속은 따뜻한 이 간식은 ‘겸손한 품격’의 한국적 미덕을 표현한다. 인위적인 화려함 대신 진심으로 다가가는 방식, 그것이야말로 세계가 한국을 사랑하게 만드는 문화의 힘이다. 이번 선물은 한중 간의 상호 존중과 평화적 협력의 메시지를 담은 ‘달콤한 외교’였다. 한편, 중국은 차 문화와 과자 문화가 발달한 나라다. 시진핑 주석에게 황남빵은 중국의 월병(月饼)이나 전통과자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문화적 공감대를 형성한다. 서로의 전통 속에서 유사한 감성과 정서를 느낄 때, 정치적 거리감은 자연스레 좁혀진다. 문화는 언어보다 강한 외교의 수단이다. 황남빵은 바로 그 다리를 놓았다. 더 나아가 이번 선물은 한국 지방의 문화자원을 외교무대에 올려놓은 모범 사례이기도 하다. 글로벌 무대에서 지역의 브랜드가 국가의 품격을 상징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경주가 품은 역사와 문화, 그 속에서 태어난 황남빵은 한국이 가진 ‘시간의 깊이’를 증명한다. 세계가 한국을 단순한 경제 파트너가 아닌, 문화적 신뢰의 나라로 바라보게 하는 데 이만한 외교 아이콘도 드물다. ‘황제가 사랑한 간식’이라는 이름처럼, 황남빵은 시간과 정성을 넘어선 인간적 교류의 매개체가 되었다. 달콤함 속에 깃든 따뜻한 마음은, 국가 간의 냉철한 전략보다 더 오래 기억될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선물 외교는 겉으로는 작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황남빵 한 조각에는 한국의 역사와 예의, 그리고 우정이 함께 구워져 있다. 한중 양국이 다시 신뢰를 회복하고 미래로 나아가야 할 길목에서,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문화의 외교’였다. 결국 외교란,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만나는 일이다. 국경을 넘어, 언어를 넘어, 한 조각의 빵이 만들어낸 따뜻한 온기는 그 어떤 정치적 합의문보다 오래 남는다. 황남빵이야말로 오늘날 외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 진심으로 전하고, 따뜻하게 연결하는 ‘품격의 외교’를 보여준 상징이었다.
-
- 뉴스
- 문화
-
[지구일보] 황제가 사랑한 간식, 외교의 품격이 되다
-
-
[칼럼] 공자의 ‘의로움을 따르라’가 던지는 현대 경영의 길
- [지구일보] 군자유어의 소인유어리(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 군자는 의로움을 따르고, 소인은 이익을 따른다는 공자의 말이다. 2천5백 년 전의 언어이지만, 지금 이 시대의 기업과 경영자들에게 여전히 유효한 지침이다. 오늘날의 경영 환경은 변화의 속도가 숨 가쁘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사고를 대체하고, 글로벌 시장은 예측 불가능한 리스크로 요동친다. 이런 시대일수록 ‘의(義)’의 철학이 더욱 절실하다. ‘의로움’은 단순한 도덕적 수사가 아니다. 그것은 모든 경영 판단의 근본이자, 기업이 존재할 수 있는 윤리적 기반이다. 공자는 이익을 전적으로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이익이 ‘의로움’을 벗어날 때, 그것은 탐욕이 되어 공동체를 해친다고 보았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단기적 이익을 좇는 경영은 일시적 성과를 낳을 수 있지만, 그 끝에는 반드시 신뢰의 붕괴가 뒤따른다. 반대로 ‘의’를 바탕으로 한 경영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속가능한 성장으로 이어진다. 공자의 경영 철학은 ‘의’를 실천의 중심에 두는 데 있다. ‘의’는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마음이자, 공동체의 조화를 지키려는 책임이다. 오늘날 ESG 경영, 윤리 경영, 사회적 가치 창출이라는 말들이 강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진정한 지속 가능성은 기술이나 자본이 아니라 ‘도덕적 신뢰’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이 단기적 수익을 위해 환경을 훼손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무시한다면, 그 기업은 언젠가 시장의 신뢰를 잃는다. 반면, 공자의 ‘의’를 실천하는 기업은 위기 속에서도 지탱된다. 왜냐하면 그 기업은 이익보다 먼저 ‘정의롭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신뢰는 시간이 걸려도 결국 최고의 자산이 된다. 공자는 또 이렇게 말했다. 견리사의(見利思義), '이익을 보거든 그 안에서 의로움을 먼저 생각하라.' 이는 경영자가 결정을 내릴 때 가져야 할 기준이기도 하다. 기업의 목표는 이익 창출이지만, 그 이익이 공정한 과정에서 얻어진 것인지, 사회적 약자를 배려했는지, 다음 세대에게 피해를 남기지 않았는지를 끊임없이 자문해야 한다. 그 물음이 바로 ‘의’를 경영의 나침반으로 삼는 길이다. ‘의로운 경영’은 때로 손해처럼 보일 수 있다. 원가를 아끼기보다 안전을 강화하고, 단기 성과보다 직원의 성장에 투자하는 일은 당장의 이익을 줄인다. 그것이야말로 장기적으로 조직을 강하게 만든다. 공자는 의이위상(義以為上)이라 했다. 모든 판단의 첫 자리에 의로움을 두라는 뜻이다. 기업이 이 정신을 실천한다면, 위기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경영자는 단지 이익을 관리하는 관리자가 아니라, 가치와 신뢰를 지키는 지도자여야 한다. 조직의 방향은 결국 리더의 철학에서 비롯된다. 리더가 ‘의’를 중심에 두면 구성원은 신뢰를, 고객은 감동을, 사회는 존경을 보낸다. 그것이 진정한 리더십의 완성이다. 공자는 “정치는 덕으로 하는 것이다. 위정이덕(爲政以德)”이라고 했다. 이를 경영에 대입하면, ‘경영은 의로 하는 것이다’라 할 수 있다. 윤리와 이익의 균형이 무너진 시대, 공자의 ‘의’는 다시금 경영의 좌표를 정렬하게 한다. 기업은 단지 돈을 버는 기계가 아니라, 사회의 신뢰를 구축하는 공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이익을 위한 의’가 아니라, ‘의를 위한 이익’이다. 즉, 의로움이 이익을 낳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기업은 단순한 경제 주체를 넘어, 사회적 신뢰의 등불이 된다. 지금의 경영자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기술도, 더 큰 자본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의로움을 따르는 용기’다. 공자가 던진 이 한마디가 오늘의 기업과 사회에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군자는 의로움을 따르고, 소인은 이익을 따른다.” 이제 기업의 미래는 그 선택 위에 달려 있다. 이익을 좇을 것인가, 의로움을 따를 것인가. 답은 이미, 2천 년 전 공자가 남겨두었다.
-
- 뉴스
- 정치
-
[칼럼] 공자의 ‘의로움을 따르라’가 던지는 현대 경영의 길
-
-
[지구일보=칼럼] 바야흐로 한중 시대다... 경주 한중정상회담이 남긴 메시지
- [지구일보 이창호 칼럼니스트] 2025년 가을, 천년의 고도 경주가 세계의 이목을 다시 한 번 끌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리는 그 자리에서 한국과 중국의 정상은 따로 또 함께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이름하여 ‘한중정상회담’. 이는 단순한 외교 행사가 아니라, 한중 관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상징적 신호였다. 양국 관계는 지난 몇 년간 얼어붙어 있었다. 사드(THAAD) 배치 이후 고조된 긴장, 미중 경쟁 속에서의 전략적 거리두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인적 교류의 단절까지. 다양한 요인들이 겹치면서 한중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한 궤적을 그려왔다. 이번 경주 한중정상회담은 “완전한 회복은 아니지만, 바야흐로 다시 시작하겠다”는 양국의 공감대는 분명해 졌다.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정상 회담은 경제와 문화, 인적 교류의 새로운 틀을 모색하면서 양 정상간 논의된 민생분야 실질 협력 구상을 구체화하기 위해 양국 중앙은행간 체결된 통화스왑 계약서 및 양국의 정부 부처간 체결된 6건의 MOU에 대한 교환식이 있었다. 발표문에서 ‘포괄적 협력 복원’이라는 문구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실질적인 복원 의지가 곳곳에서 읽혔다. 이 대통령은 “경제협력의 문을 다시 열고, 문화와 인적 교류를 통해 신뢰의 토대를 재건하겠다”고 언급했고, 시 주석 역시 “한중 양국은 이사 갈 수 없는 이웃으로서 서로의 발전을 존중하고, 함께 성장해야 한다”고 화답했다. 중국 측의 태도 변화는 특히 문화 분야에서 감지된다. 한때 한국 콘텐츠의 중국 내 유통이 사실상 차단되며 ‘한한령(限韓令)’이라는 말이 떠돌았다. 이는 어디까지나 민간이 만들어낸 관념적 용어일 뿐,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내린 정책은 아니었다. 시진핑 주석 또 이번 정상 회담에서 그 점을 에둘러 표현했다. “한한령을 푼다”는 식의 직접적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민간의 활발한 교류를 장려한다”는 말 속에 실질적인 변화를 예고했다. 다시 말해, 한한령은 행정 명령으로 ‘해제’되는 것이 아니라, 민간의 자율적 교류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는 메시지다. 실제 중국의 정책 흐름도 이를 뒷받침한다. 최근 베이징과 상하이, 광저우 등 대도시에서 K-콘텐츠 관련 전시, 공연, 공동 제작 프로젝트가 재개되고 있다. 중국 주요 방송 플랫폼에서도 한국 드라마와 예능이 점진적으로 복귀하고 있으며, 한국 배우와 감독들의 초청 행사도 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정치가 열어주지 못한 문을 문화가 다시 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경주는 이번 한중 정상 회담의 무대이자 상징이었다. 신라 천년의 수도였던 경주는 과거 동아시아 문명의 교류 중심지로서 한중 문화의 뿌리를 공유하는 도시다. 불국사와 석굴암, 황룡사의 옛터에 서린 문화적 기억은 양국이 과거를 되새기며 미래 협력의 방향을 모색하는 데 더할 나위 없는 장소였다. 이번 정상 회담이 경주에서 열린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역사의 길 위에서 미래를 설계한다’는 상징적 선택이었다. 게다가 경제 분야에서도 양국은 신중하지만 긍정적인 진전을 보였다. 한중간 양국 국민의 민생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미래지향적 협력을 추진해 나가기 위해 ‘실버산업’ 및 ‘혁신창업’ 분야 협력에 관한 MOU 및 우리 농산물의 중국 수출을 원활히 하는 MOU도 체결했다. 특히 ‘APEC AI 이니셔티브’ 채택을 계기로 한국이 제안한 인공지능 협력 플랫폼에 중국이 적극 동참하겠다는 뜻을 보이며 기술·산업 협력의 가능성을 넓혔다. 이는 한중 경제관계가 단순한 수출입 구조를 넘어, 새로운 협력 모델로 발전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양국 관계의 진정한 회복은 결국 ‘사람’에서 비롯된다. 정부 간 합의나 선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과 국민의 신뢰 회복이다. 시 주석이 직접 ‘한한령 해제’를 언급하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식 발언으로 규정하는 순간, 그 자체가 정치적 해석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민간이 서로 마음을 열고 교류를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한중 관계의 다음 단계가 정부 주도의 협력에서 민간 중심의 상호 신뢰 회복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필자는 바야흐로 한중 관계는 ‘포스트 경주 시대’로 접어들었다. 완전한 회복을 선언하기엔 이르지만, 흐름은 분명히 바뀌었다. 정치적 이견이 남아 있더라도 경제적 실익과 문화적 공감대는 양국을 다시 묶는 끈이 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경주의 한중 정상 회담은 과거를 넘어, 상생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상징한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키워드를 꼽는다면 ‘평화, 복원’이다. ‘냉정과 온정’이 교차하는 국제무대에서, 한중이 다시 손을 맞잡는다면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은 현실이 될 것이다. 천년의 도시 경주가 그랬듯, 새로운 한중 시대는 과거의 기억 위에 미래의 희망을 쌓아 올리는 여정이다. 정치가 닫은 문을 문화가 열고, 경쟁이 만든 거리를 교류가 메운다. 이제부터 진정한 한중 시대가 시작됐다. 글/사진 : 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
- 뉴스
- 정치
-
[지구일보=칼럼] 바야흐로 한중 시대다... 경주 한중정상회담이 남긴 메시지
-
-
[지구일보] 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GWICC,만리장성국제전파센터(The Great Wall International Communication Center) 인터뷰
- [지구일보 이강문 기자] APEC 정상회의 주제인 “모든 이를 위한 회복력 있고 지속가능한 미래”는 한국과 중국이 포용적 성장과 녹색전환을 중심으로 협력할 수 있는 전략적 틀을 제시한다. 양국은 탄소중립, 디지털 전환, 공급망 안정 등 공통 과제를 중심으로 실질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 특히 한중은 APEC의 다자적 플랫폼을 활용해 역내 무역자유화와 기술표준 조율을 주도하고, 중소기업·청년 창업 지원을 통한 지속 가능한 성장 모델을 함께 구축할 수 있다. 이러한 협력은 동아시아의 안정과 공동번영에도 기여할 것이다. 젊은 세대가 서로의 나라에서 일하고, 여행하고, 유학하며 교류하는 현상은 단순한 인적 이동을 넘어 양국 관계의 미래를 지탱하는 민의(民意)의 토대를 강화하는 긍정적 흐름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언어와 문화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상호 이해와 공감의 폭을 넓히고, 편견을 줄이는 ‘생활 속 외교관’의 역할을 수행한다. 특히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문화 확산은 한중 간 정서적 거리감을 좁히고, 상호 신뢰를 쌓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민간 차원의 연결은 정치·경제 관계의 변동에도 흔들리지 않는 지속 가능한 우호 기반, 즉 ‘소프트 파워 동반자 관계’를 형성하며 양국 협력의 미래 에너지가 될 것이다.
-
- 뉴스
- 정치
-
[지구일보] 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GWICC,만리장성국제전파센터(The Great Wall International Communication Center) 인터뷰
실시간 뉴스 기사
-
-
[기고] 이해받기보다 이해하는 용기
- [지구일보=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중국 하미대 종신교수] 우리는 흔히 “세상은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정작 “나는 세상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이해받지 못한다는 서운함은 인간의 본능적인 감정이지만, 이해하려는 노력은 의식적인 선택이자 성숙의 결과다. 진정한 용기는 자신을 변명하지 않고 타인을 헤아릴 줄 아는 데서 비롯된다. 오늘날의 사회는 ‘발현의 시대’라고 불린다. 누구나 말하고, 기록하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만큼 ‘경청’과 ‘이해’의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SNS와 각종 플랫폼은 사람들에게 발언의 기회를 주었지만, 그 발언이 상대의 입장을 헤아린 사려 깊은 말이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말이 많아질수록 공감은 줄고, 오해는 커지는 아이러니한 시대다. 유교의 고전 『논어』에는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라는 구절이 있다. 군자는 서로 다름 속에서도 조화를 이루지만, 소인은 같음 속에서도 불화한다는 뜻이다. 이해한다는 것은 나와 다른 생각, 다른 감정을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조화를 찾으려는 지혜다. 이해받으려는 마음은 자기중심에서 비롯되지만, 이해하려는 마음은 타인의 세계를 존중하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이해는 결코 약함의 표현이 아니다. 오히려 관계의 균형을 지탱하는 가장 강한 힘이다. 상대의 말에 즉각 반박하지 않고 잠시 멈추어 듣는 일, 나와 다른 의견을 틀렸다고 단정하지 않는 일, 그것이 바로 이해의 첫걸음이다. 인내를 필요로 하지만, 그 인내는 단순한 참음이 아니라 인간관계를 성숙시키는 에너지다. 한중 교류를 비롯한 국제 관계에서도 이 원리는 다르지 않다. 국가 간의 신뢰 또한 ‘이해’의 확장에서 시작된다. 서로의 역사와 문화를 인정하고, 차이보다 공통의 가치를 보려는 시선이 있을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협력이 가능하다. 외교도, 비즈니스도, 문화 교류도 마찬가지다. 상대를 이기려 하기보다 이해하려는 자세가 진정한 파트너십의 출발점이다. 가정과 직장, 사회 곳곳에서도 우리는 늘 ‘이해받기’를 갈망한다. 누군가가 먼저 ‘이해하려는 사람’이 되지 않는 한, 그 갈망은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이해받는 관계는 이해하는 사람의 노력 위에 세워지는 법이다. 한 걸음 양보하고 한마디 덜함으로써 관계는 훨씬 더 깊어질 수 있다. 심리학자 카를 로저스는 “진정한 이해란 상대방이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해란 상대를 바꾸려는 시도가 아니라, 상대가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마음이다. 그 마음이 모여 공동체의 품격이 세워지고, 사회의 온도가 따뜻해진다. 오늘도 우리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세상을 향한 시선을 조금만 바꾸면, 이해받지 못한 하루가 아니라 ‘이해할 수 있었던 하루’로 바꿀 수 있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을 비추는 거울을 닦는 일이다. 이해받기보다 이해하려는 용기, 그것이 인간관계의 품격을 결정짓는 마지막 덕목이다. 말보다 마음이 앞서고, 판단보다 공감이 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성숙한 사회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기를 기다리기보다, 내가 세상을 먼저 이해하려는 그 한 걸음이 변화의 시작이다. 이해받기보다 이해하려는 용기, 그것이 오늘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진정한 품격이다.
-
- 뉴스
- 문화
-
[기고] 이해받기보다 이해하는 용기
-
-
[칼럼] 경청은 지혜로 가는 문이고, 공감은 그 문을 여는 열쇠다.
- [지구일보 이창호 칼럼니스트] 말은 세상을 움직이지만, 세상을 품는 것은 ‘듣는 마음’이다. 듣는다는 행위는 단순히 소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생각과 감정을 헤아리는 내면의 공감 능력을 말한다. 우리는 흔히 ‘대화’를 강조하지만, 실제로 말하기에만 능숙하고 듣는 법에는 서툴다. 진정한 소통은 말의 수사보다 귀 기울이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듣는 마음은 관계의 기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 공동체에서 불화가 생기는 대부분의 이유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서로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아서’다. 상대의 말을 중간에 끊고, 자신의 판단으로 덮어버리는 순간, 대화는 단절된다. 듣는 마음은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세계에 들어가려는 존중의 표현이다. 한 발짝 물러서서 들을 수 있을 때, 인간관계는 비로소 단단해진다. 정치에서도 듣는 리더십은 중요하다. 진정한 지도자는 지지자의 환호보다 비판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다. 듣지 않는 권력은 결국 민심에서 멀어지고, 소통을 잃은 정치는 고립된다. 최근 세계 각국의 리더십 위기 역시 대화보다 독백이 많아진 정치문화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민주주의는 말하는 자유가 아니라, 듣는 의무로부터 성숙한다. 듣는 마음은 또한 타인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자기 성찰의 통로이기도 하다. 타인의 말 속에는 우리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 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할 때, 우리는 스스로의 부족함과 편견을 발견한다. 듣는다는 것은 곧 배우는 것이다. 경청은 지혜로 가는 문이고, 공감은 그 문을 여는 열쇠다. 현대 사회는 말이 넘쳐난다. 수많은 정보와 주장, 감정이 하루에도 수천 번씩 쏟아진다. 그러나 이럴수록 ‘듣는 기술’이 절실하다. SNS의 짧은 글과 영상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향해 외치지만, 그 안에 진심으로 듣는 이는 드물다. 경청 없는 소통은 소음에 불과하다. 듣는 마음이야말로 혼란한 시대의 질서를 세우는 가장 조용한 힘이다. 심리학에서는 ‘공감적 경청’이라는 개념이 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층위까지 함께 느끼며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 네가 그런 마음이었구나.”라는 한마디는 논리적 반박보다 훨씬 강한 설득력을 가진다. 타인의 아픔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사회,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며 들어주는 공동체야말로 건강한 민주사회의 근간이다. 특히 청년 세대에게도 듣는 마음은 필요하다. 변화와 경쟁이 치열한 시대일수록 자기 주장에 집중하기 쉽지만, 진정한 리더는 먼저 듣는 법을 안다. 듣는 태도는 겸손의 다른 이름이다. 세상을 바꾸는 혁신도, 사람을 움직이는 감동도 결국 타인의 목소리에서 비롯된다. 우리 사회가 성숙해지는 길은 더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듣는 것이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일, 말보다 마음을 읽어주는 일, 그것이 진정한 이해의 출발점이다. 듣는다는 것은 곧 사랑한다는 뜻이다. 말보다 귀가 더 큰 사회, 주장보다 공감이 앞서는 세상, 그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듣는 마음이야말로 이해의 시작이며, 이해는 곧 평화다. 글쓴이 | 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긍정의 온도 저자)
-
- 뉴스
-
[칼럼] 경청은 지혜로 가는 문이고, 공감은 그 문을 여는 열쇠다.
-
-
[칼럼] 나는 과연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 [지구일보 이창호 |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나는 가끔 나에게 묻는다. “나는 과연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국가와 국가가 교류하는 모든 관계의 출발점은 바로 이 ‘이해(理解)’의 능력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상은 연결되어 있지만, 정작 마음은 단절되어 있다. 정보와 기술이 넘쳐나는 시대지만, 정작 사람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이는 많지 않다. 누군가의 말 속에 숨은 사정이나 감정을 헤아리는 대신, 우리는 너무 쉽게 판단하고 너무 빨리 결론을 내린다. 그래서 관계는 얇아지고, 신뢰는 약해진다. 나는 한중 교류의 현장에서 수없이 느꼈다. 언어와 문화, 가치관이 다른 두 나라가 함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상대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경제협력의 성과보다 더 귀한 것은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중국의 고전 『주역(周易)』에는 “군자는 후덕재물(厚德載物)이라 하여, 덕이 두터운 사람은 세상을 품을 수 있다”고 했다. 이 말은 오늘날 국제 교류의 본질을 꿰뚫는다. 덕이란 곧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아는 품격이며, 그것이야말로 신뢰의 토대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타인을 이해하기 어려운가. 그 이유는 대부분 ‘자기 기준’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내 생각이 옳다는 확신, 내 경험이 보편적이라는 착각이 상대의 현실을 왜곡한다. 이해는 상대를 바꾸려는 시도가 아니라, 나를 비워내는 인내다. 내가 옳다는 마음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상대의 말이 들리고 그의 사정이 보인다. “왜 저럴까”에서 “그럴 수도 있겠구나”로 바뀌는 순간, 관계는 달라진다. 한중 양국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때로 역사적 감정이나 정치적 입장에 매여 서로를 오해한다. 그러나 진정한 외교는 감정이 아니라 이해에서 출발한다.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면 협력은 오래가지 않는다. 필자가 한중교류촉진위원회가 추진하는 다양한 학술·문화 교류의 목적도 여기에 있다. 학문과 문화, 언어와 인문정신의 교류를 통해 서로의 생각과 삶의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런 노력이 쌓여야 국가 간 신뢰가 형성된다. 나는 젊은 세대에게도 자주 말한다. 국제사회에서 진정한 리더가 되려면, 지식보다 ‘공감의 깊이’를 먼저 길러야 한다. 공감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지혜다. 그것이 있어야 한중 공동체는 지속 가능해지고, 국제 협력은 실질적 성과를 낼 수 있다. 타인을 이해하는 일은 멀리 있지 않다. 가정에서부터, 직장에서부터, 내 옆 사람을 먼저 이해하는 데서 시작된다. 부모와 자녀, 스승과 제자, 상사와 직원, 그리고 이웃 간의 관계 속에서도 ‘상대의 입장’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것이 결국 사회의 신뢰를 세우고, 국가의 품격을 높인다. 나는 늘 믿는다. 한중 양국이 진정으로 서로를 이해한다면, 그 어떤 갈등도 극복할 수 있다. 이해는 협력의 씨앗이고, 신뢰는 평화의 열매다. 우리가 서로의 입장에서 세상을 본다면, 그 길은 결코 멀지 않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리고 국제사회가 다시 돌아봐야 할 질문은 단 하나다. “나는 과연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 질문에 진심으로 ‘예’라고 답할 수 있을 때, 한 개인의 관계든 국가 간 교류든, 진정한 변화는 시작된다.
-
- 뉴스
- 사회
-
[칼럼] 나는 과연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
-
[지구일보=칼럼] 생명을 지키는 손끝, 그 길의 이름은 의사
- [지구일보] “삶은 유한하기에 더욱 빛난다.” 병원이라는 작은 세상 속에서 나는 매일 이 사실을 새긴다. 수많은 환자의 숨결과 눈빛이 오가며, 그 경계 위에서 나는 ‘살아있음’이야말로 가장 큰 축복임을 절실히 느낀다. 의사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병을 고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꺼져가는 생명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이며, 절망의 끝자락에서 희망을 놓지 않는 일이다. 약보다 강한 것은 따뜻한 마음이고, 처방보다 깊은 것은 함께 울어주는 진심이다. 환자가 두려움을 내려놓을 때, 그 순간 이미 치유는 시작된다. 나는 수많은 진료 현장에서 깨달았다. 의술의 중심에는 기술이 아니라 사랑이 있다는 것을. 진정한 의사는 청진기 너머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다. 환자의 증상보다 마음을 먼저 읽고, 병명보다 그 사람의 삶을 먼저 본다. 고통 속에서도 인간의 품격을 지켜주고, 마지막 희망의 끈을 함께 붙드는 사람 — 그것이 내가 바라는 의사의 모습이다. 의학은 과학이지만, 그 출발점은 사람이다. 수술실의 긴장된 공기, 병실을 지키는 가족의 눈물, 밤새 환자를 살리기 위한 의료진의 손끝… 그 모든 장면 속에는 ‘생명’이라는 이름의 존엄이 흐르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한 사람의 의사가 있다. 완벽하지 않기에 인간은 서로에게 기대고, 상처받기에 더 깊이 이해한다. 우리는 언젠가 죽음으로 향하지만, 그 길 위에서도 서로를 살리는 순간들이 있다. 나는 그 순간들을 위해 오늘도 청진기를 든다. 내 이름이 세상에 잊히더라도, 내 손끝에서 되살아난 누군가가 다시 웃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것이 내가 이 길을 걷는 이유이자, 생명을 향한 내 신념이다. 의사는 단지 병을 치료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사람이며, 세상의 아픔을 품고 희망을 심는 사람이다. 오늘도 나는 다짐한다. 내가 건네는 손끝 하나가 누군가의 내일이 되기를. 그 길의 이름은 ‘의사(醫師)’, 그 마음의 이름은 ‘사랑’이다.
-
- 뉴스
-
[지구일보=칼럼] 생명을 지키는 손끝, 그 길의 이름은 의사
-
-
[APEC 분석과 전망] 2025 APEC 경주선언 이후, 한중 관계의 포괄적 전략은 무엇인가
- [지구일보 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2025년 10월, 경주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는 동북아 질서의 전환점이자, 한중 관계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분기점이었다. ‘경주 선언’이 채택되면서, 세계 경제의 다극화 흐름 속에서 한국과 중국은 상호의존을 넘어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의 재정립을 요구받고 있다. 이는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실질적 협력구조의 재편과 전략적 신뢰의 복원을 의미한다. 한중 관계는 지난 30여 년간 경제협력 중심에서 출발해, 정치·안보·문화 등 다층적 관계로 발전해왔다. 미·중 전략 경쟁의 심화, 공급망 재편, 기술 패권의 대립 등 복합적 변수가 양국 관계에 구조적 긴장을 불러왔다. 경주 APEC 정상회의는 이러한 불안정한 국제 환경 속에서 한중이 다시 협력의 틀을 모색하는 계기가 됐다. 특히 기후변화 대응, 디지털경제 협력, 청년 교류 확대 등은 상호보완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핵심 의제들로 꼽힌다. 우선 경제 전략 측면에서 한국은 첨단기술과 제조 경쟁력을 기반으로, 중국은 거대한 시장과 공급망 중심국으로서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향후 한중 간 경제협력의 방향은 ‘탈의존’이 아니라 ‘재조정’으로 요약된다. 반도체, 배터리, 인공지능 분야에서의 기술 협력은 여전히 상호 필요성이 크다. 한국 입장에서는 기술자립과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하되, 중국 시장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이중 축 전략(dual-track strategy)’이 요구된다. 이는 공급망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한중 산업 생태계의 상호 보완성을 극대화하는 현실적 접근이다. 둘째, 안보 및 외교 전략의 핵심은 균형외교의 정교화다. 한중 관계는 미·중 경쟁 구도 속에서 ‘전략적 모호성’보다 ‘전략적 실용주의’로 옮겨가야 한다. 한국이 미국과의 안보 동맹을 기반으로 하되, 중국과의 외교 협력을 심화시키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특히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해 여전히중국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경주 선언 이후, 한중 양국은 ‘동북아 평화·안보 협의체’ 구축을 실질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향후 한반도 안정의 제도적 기반이 될 가능성이 있다. 셋째, 인문·문화 교류는 양국 관계의 심리적 신뢰 회복을 위한 ‘정치적 완충장치’로서 중요하다. 양국 국민 간 인식의 간극이 커지는 상황에서, 학술·청년·지방정부 간 교류 확대는 관계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핵심 수단이다. 한중 수교 33주년을 맞이한 올해, 문화 창조 산업 콘텐츠와 공동 연구, 관광 교류의 재활성화는 단순한 이벤트를 넘어 상호이해를 회복하는 전략적 자산으로 작용할 것이다. 넷째, 기후변화·녹색경제 협력은 향후 한중 관계의 신성장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2025 APEC 경주선언에서 양국은 ‘탄소중립 기술 공동개발’ 및 ‘재생에너지 표준 협력’을 공식 의제로 채택했다. 이는 국제사회에서의 리더십 경쟁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한중이 공동의 녹색경제 블록을 형성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한국의 기술력과 중국의 대규모 시장이 결합될 경우, 아시아의 녹색전환은 실질적 성과를 낼 수 있다. 다섯째, 미래지향적 포괄전략의 방향성은 ‘신뢰의 재건’이다. 외교는 말보다 행동으로 신뢰를 쌓아야 한다. 그동안 양국 관계가 불안정했던 이유는 경제와 정치의 비대칭적 상호작용 때문이었다. 이제는 ‘상호이익의 경제, 안보의 상호존중, 문화의 상호이해’라는 세 가지 원칙이 병행되어야 한다. 결국 APEC 경주선언 이후의 한중 관계는, ‘이익의 동반자’를 넘어 ‘운명공동체의 협력자’로 나아가야 한다. 게다가 미·중 갈등의 장기화 국면에서 한국은 중견국으로서의 포괄적 중재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며, 중국은 한국을 신뢰할 수 있는 협력 상생 파트너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한중이 선택해야 할 길은 갈등의 관리가 아니라, 공존의 설계다. 또 한편으로 경주는 천년 신라의 수도였다. 그 역사적 무대에서 채택된 2025 APEC 경주 선언은, 단순한 외교행사가 아니라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의 서막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한중 양국이 과거의 오해를 넘어 실질적 신뢰로 나아갈 때, 동북아는 경쟁의 전장이 아니라 평화의 축으로 거듭날 것이다. 그 중심에는 이제 ‘포괄적 동반자 관계’라는 이름으로, 한중의 새로운 미래가 서 있을 것이다. 글: 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
- 뉴스
- 정치
-
[APEC 분석과 전망] 2025 APEC 경주선언 이후, 한중 관계의 포괄적 전략은 무엇인가
-
-
[지구일보] 황제가 사랑한 간식, 외교의 품격이 되다
- [지구일보=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지난달 31일, 대통령실은 이재명 대통령이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방한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중국 대표단에게 경주의 명물 ‘황남빵’을 선물했다고 밝혔다. 단순한 지역 특산품이 아닌, 오랜 전통과 정성을 간직한 이 작은 빵 한 상자에는 한중 양국의 깊은 인연과 문화적 상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황제가 사랑한 간식’이라 불릴 만큼 품격과 역사를 지닌 황남빵은 1939년 경주 황오동의 작은 제과점에서 시작됐다. 경주 최씨 가문의 후손이었던 창업자는 천년 고도의 정취를 담아 ‘왕이 먹을 수 있는 정직한 빵’을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반세기가 넘도록 그 맛과 전통을 지켜왔다. 얇은 밀피 속에 단팥소를 가득 채운 단아한 형태는 마치 신라의 미학을 닮았고, 한입 베어물면 달콤함 속에 깊은 여운이 남는다. 이재명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에게 황남빵을 선물한 것은 단순한 ‘기념품 교환’의 차원을 넘어선 외교적 메시지로 해석된다. 그것은 ‘정성의 외교’, 즉 마음을 전하는 품격 있는 소통의 상징이었다. 황남빵은 화려하지 않지만, 그 안에 담긴 정직함과 꾸준함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지녔다. 이는 한중관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도 닮아 있다. 겉으로는 경쟁과 갈등의 구도가 존재하지만, 속으로는 오랜 시간 쌓아온 교류와 상호 신뢰의 뿌리가 있다. 시진핑 주석이 이 선물을 받으며 미소를 지었다는 후일담은 상징적이다. 그는 평소 역사와 전통에 깊은 의미를 두는 지도자다. 한국의 천년 수도 경주에서 태어난 황남빵은 그에게 단순한 디저트가 아니라, 문화유산의 향기를 품은 ‘한국의 진심’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한중 양국이 정치·경제적 현안을 논의하던 공식 자리에서조차, 이런 따뜻한 정성은 마음의 문을 여는 또 다른 외교의 품격이 된다. 이번 APEC 정상회의는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한중 관계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중요한 계기였다. 그 자리에서 황남빵은 작지만 강한 존재감을 발휘했다. 그것은 ‘작은 선물이 큰 신뢰를 만든다’는 외교의 기본을 다시금 일깨워준 순간이었다. 글로벌 경제의 파도가 거세질수록, 국가 간 관계는 점점 더 세밀한 감성과 문화적 이해 위에서 유지된다. 황남빵은 바로 그 ‘문화외교의 디테일’을 상징한다. 또 황남빵의 의미는 단순히 전통 음식의 차원을 넘어, 한국인의 정체성과 미학을 전한다. 겉은 단정하고 속은 따뜻한 이 간식은 ‘겸손한 품격’의 한국적 미덕을 표현한다. 인위적인 화려함 대신 진심으로 다가가는 방식, 그것이야말로 세계가 한국을 사랑하게 만드는 문화의 힘이다. 이번 선물은 한중 간의 상호 존중과 평화적 협력의 메시지를 담은 ‘달콤한 외교’였다. 한편, 중국은 차 문화와 과자 문화가 발달한 나라다. 시진핑 주석에게 황남빵은 중국의 월병(月饼)이나 전통과자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문화적 공감대를 형성한다. 서로의 전통 속에서 유사한 감성과 정서를 느낄 때, 정치적 거리감은 자연스레 좁혀진다. 문화는 언어보다 강한 외교의 수단이다. 황남빵은 바로 그 다리를 놓았다. 더 나아가 이번 선물은 한국 지방의 문화자원을 외교무대에 올려놓은 모범 사례이기도 하다. 글로벌 무대에서 지역의 브랜드가 국가의 품격을 상징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경주가 품은 역사와 문화, 그 속에서 태어난 황남빵은 한국이 가진 ‘시간의 깊이’를 증명한다. 세계가 한국을 단순한 경제 파트너가 아닌, 문화적 신뢰의 나라로 바라보게 하는 데 이만한 외교 아이콘도 드물다. ‘황제가 사랑한 간식’이라는 이름처럼, 황남빵은 시간과 정성을 넘어선 인간적 교류의 매개체가 되었다. 달콤함 속에 깃든 따뜻한 마음은, 국가 간의 냉철한 전략보다 더 오래 기억될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선물 외교는 겉으로는 작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황남빵 한 조각에는 한국의 역사와 예의, 그리고 우정이 함께 구워져 있다. 한중 양국이 다시 신뢰를 회복하고 미래로 나아가야 할 길목에서,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문화의 외교’였다. 결국 외교란,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만나는 일이다. 국경을 넘어, 언어를 넘어, 한 조각의 빵이 만들어낸 따뜻한 온기는 그 어떤 정치적 합의문보다 오래 남는다. 황남빵이야말로 오늘날 외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 진심으로 전하고, 따뜻하게 연결하는 ‘품격의 외교’를 보여준 상징이었다.
-
- 뉴스
- 문화
-
[지구일보] 황제가 사랑한 간식, 외교의 품격이 되다
-
-
[칼럼] 공자의 ‘의로움을 따르라’가 던지는 현대 경영의 길
- [지구일보] 군자유어의 소인유어리(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 군자는 의로움을 따르고, 소인은 이익을 따른다는 공자의 말이다. 2천5백 년 전의 언어이지만, 지금 이 시대의 기업과 경영자들에게 여전히 유효한 지침이다. 오늘날의 경영 환경은 변화의 속도가 숨 가쁘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사고를 대체하고, 글로벌 시장은 예측 불가능한 리스크로 요동친다. 이런 시대일수록 ‘의(義)’의 철학이 더욱 절실하다. ‘의로움’은 단순한 도덕적 수사가 아니다. 그것은 모든 경영 판단의 근본이자, 기업이 존재할 수 있는 윤리적 기반이다. 공자는 이익을 전적으로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이익이 ‘의로움’을 벗어날 때, 그것은 탐욕이 되어 공동체를 해친다고 보았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단기적 이익을 좇는 경영은 일시적 성과를 낳을 수 있지만, 그 끝에는 반드시 신뢰의 붕괴가 뒤따른다. 반대로 ‘의’를 바탕으로 한 경영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속가능한 성장으로 이어진다. 공자의 경영 철학은 ‘의’를 실천의 중심에 두는 데 있다. ‘의’는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끼는 마음이자, 공동체의 조화를 지키려는 책임이다. 오늘날 ESG 경영, 윤리 경영, 사회적 가치 창출이라는 말들이 강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진정한 지속 가능성은 기술이나 자본이 아니라 ‘도덕적 신뢰’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어떤 기업이 단기적 수익을 위해 환경을 훼손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무시한다면, 그 기업은 언젠가 시장의 신뢰를 잃는다. 반면, 공자의 ‘의’를 실천하는 기업은 위기 속에서도 지탱된다. 왜냐하면 그 기업은 이익보다 먼저 ‘정의롭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신뢰는 시간이 걸려도 결국 최고의 자산이 된다. 공자는 또 이렇게 말했다. 견리사의(見利思義), '이익을 보거든 그 안에서 의로움을 먼저 생각하라.' 이는 경영자가 결정을 내릴 때 가져야 할 기준이기도 하다. 기업의 목표는 이익 창출이지만, 그 이익이 공정한 과정에서 얻어진 것인지, 사회적 약자를 배려했는지, 다음 세대에게 피해를 남기지 않았는지를 끊임없이 자문해야 한다. 그 물음이 바로 ‘의’를 경영의 나침반으로 삼는 길이다. ‘의로운 경영’은 때로 손해처럼 보일 수 있다. 원가를 아끼기보다 안전을 강화하고, 단기 성과보다 직원의 성장에 투자하는 일은 당장의 이익을 줄인다. 그것이야말로 장기적으로 조직을 강하게 만든다. 공자는 의이위상(義以為上)이라 했다. 모든 판단의 첫 자리에 의로움을 두라는 뜻이다. 기업이 이 정신을 실천한다면, 위기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경영자는 단지 이익을 관리하는 관리자가 아니라, 가치와 신뢰를 지키는 지도자여야 한다. 조직의 방향은 결국 리더의 철학에서 비롯된다. 리더가 ‘의’를 중심에 두면 구성원은 신뢰를, 고객은 감동을, 사회는 존경을 보낸다. 그것이 진정한 리더십의 완성이다. 공자는 “정치는 덕으로 하는 것이다. 위정이덕(爲政以德)”이라고 했다. 이를 경영에 대입하면, ‘경영은 의로 하는 것이다’라 할 수 있다. 윤리와 이익의 균형이 무너진 시대, 공자의 ‘의’는 다시금 경영의 좌표를 정렬하게 한다. 기업은 단지 돈을 버는 기계가 아니라, 사회의 신뢰를 구축하는 공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이익을 위한 의’가 아니라, ‘의를 위한 이익’이다. 즉, 의로움이 이익을 낳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기업은 단순한 경제 주체를 넘어, 사회적 신뢰의 등불이 된다. 지금의 경영자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기술도, 더 큰 자본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의로움을 따르는 용기’다. 공자가 던진 이 한마디가 오늘의 기업과 사회에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군자는 의로움을 따르고, 소인은 이익을 따른다.” 이제 기업의 미래는 그 선택 위에 달려 있다. 이익을 좇을 것인가, 의로움을 따를 것인가. 답은 이미, 2천 년 전 공자가 남겨두었다.
-
- 뉴스
- 정치
-
[칼럼] 공자의 ‘의로움을 따르라’가 던지는 현대 경영의 길
-
-
[지구일보=칼럼] 바야흐로 한중 시대다... 경주 한중정상회담이 남긴 메시지
- [지구일보 이창호 칼럼니스트] 2025년 가을, 천년의 고도 경주가 세계의 이목을 다시 한 번 끌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리는 그 자리에서 한국과 중국의 정상은 따로 또 함께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이름하여 ‘한중정상회담’. 이는 단순한 외교 행사가 아니라, 한중 관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상징적 신호였다. 양국 관계는 지난 몇 년간 얼어붙어 있었다. 사드(THAAD) 배치 이후 고조된 긴장, 미중 경쟁 속에서의 전략적 거리두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인적 교류의 단절까지. 다양한 요인들이 겹치면서 한중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한 궤적을 그려왔다. 이번 경주 한중정상회담은 “완전한 회복은 아니지만, 바야흐로 다시 시작하겠다”는 양국의 공감대는 분명해 졌다.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정상 회담은 경제와 문화, 인적 교류의 새로운 틀을 모색하면서 양 정상간 논의된 민생분야 실질 협력 구상을 구체화하기 위해 양국 중앙은행간 체결된 통화스왑 계약서 및 양국의 정부 부처간 체결된 6건의 MOU에 대한 교환식이 있었다. 발표문에서 ‘포괄적 협력 복원’이라는 문구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실질적인 복원 의지가 곳곳에서 읽혔다. 이 대통령은 “경제협력의 문을 다시 열고, 문화와 인적 교류를 통해 신뢰의 토대를 재건하겠다”고 언급했고, 시 주석 역시 “한중 양국은 이사 갈 수 없는 이웃으로서 서로의 발전을 존중하고, 함께 성장해야 한다”고 화답했다. 중국 측의 태도 변화는 특히 문화 분야에서 감지된다. 한때 한국 콘텐츠의 중국 내 유통이 사실상 차단되며 ‘한한령(限韓令)’이라는 말이 떠돌았다. 이는 어디까지나 민간이 만들어낸 관념적 용어일 뿐,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내린 정책은 아니었다. 시진핑 주석 또 이번 정상 회담에서 그 점을 에둘러 표현했다. “한한령을 푼다”는 식의 직접적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민간의 활발한 교류를 장려한다”는 말 속에 실질적인 변화를 예고했다. 다시 말해, 한한령은 행정 명령으로 ‘해제’되는 것이 아니라, 민간의 자율적 교류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는 메시지다. 실제 중국의 정책 흐름도 이를 뒷받침한다. 최근 베이징과 상하이, 광저우 등 대도시에서 K-콘텐츠 관련 전시, 공연, 공동 제작 프로젝트가 재개되고 있다. 중국 주요 방송 플랫폼에서도 한국 드라마와 예능이 점진적으로 복귀하고 있으며, 한국 배우와 감독들의 초청 행사도 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정치가 열어주지 못한 문을 문화가 다시 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경주는 이번 한중 정상 회담의 무대이자 상징이었다. 신라 천년의 수도였던 경주는 과거 동아시아 문명의 교류 중심지로서 한중 문화의 뿌리를 공유하는 도시다. 불국사와 석굴암, 황룡사의 옛터에 서린 문화적 기억은 양국이 과거를 되새기며 미래 협력의 방향을 모색하는 데 더할 나위 없는 장소였다. 이번 정상 회담이 경주에서 열린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역사의 길 위에서 미래를 설계한다’는 상징적 선택이었다. 게다가 경제 분야에서도 양국은 신중하지만 긍정적인 진전을 보였다. 한중간 양국 국민의 민생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미래지향적 협력을 추진해 나가기 위해 ‘실버산업’ 및 ‘혁신창업’ 분야 협력에 관한 MOU 및 우리 농산물의 중국 수출을 원활히 하는 MOU도 체결했다. 특히 ‘APEC AI 이니셔티브’ 채택을 계기로 한국이 제안한 인공지능 협력 플랫폼에 중국이 적극 동참하겠다는 뜻을 보이며 기술·산업 협력의 가능성을 넓혔다. 이는 한중 경제관계가 단순한 수출입 구조를 넘어, 새로운 협력 모델로 발전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양국 관계의 진정한 회복은 결국 ‘사람’에서 비롯된다. 정부 간 합의나 선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과 국민의 신뢰 회복이다. 시 주석이 직접 ‘한한령 해제’를 언급하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식 발언으로 규정하는 순간, 그 자체가 정치적 해석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민간이 서로 마음을 열고 교류를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한중 관계의 다음 단계가 정부 주도의 협력에서 민간 중심의 상호 신뢰 회복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필자는 바야흐로 한중 관계는 ‘포스트 경주 시대’로 접어들었다. 완전한 회복을 선언하기엔 이르지만, 흐름은 분명히 바뀌었다. 정치적 이견이 남아 있더라도 경제적 실익과 문화적 공감대는 양국을 다시 묶는 끈이 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경주의 한중 정상 회담은 과거를 넘어, 상생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상징한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키워드를 꼽는다면 ‘평화, 복원’이다. ‘냉정과 온정’이 교차하는 국제무대에서, 한중이 다시 손을 맞잡는다면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은 현실이 될 것이다. 천년의 도시 경주가 그랬듯, 새로운 한중 시대는 과거의 기억 위에 미래의 희망을 쌓아 올리는 여정이다. 정치가 닫은 문을 문화가 열고, 경쟁이 만든 거리를 교류가 메운다. 이제부터 진정한 한중 시대가 시작됐다. 글/사진 : 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
- 뉴스
- 정치
-
[지구일보=칼럼] 바야흐로 한중 시대다... 경주 한중정상회담이 남긴 메시지
-
-
[지구일보] 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GWICC,만리장성국제전파센터(The Great Wall International Communication Center) 인터뷰
- [지구일보 이강문 기자] APEC 정상회의 주제인 “모든 이를 위한 회복력 있고 지속가능한 미래”는 한국과 중국이 포용적 성장과 녹색전환을 중심으로 협력할 수 있는 전략적 틀을 제시한다. 양국은 탄소중립, 디지털 전환, 공급망 안정 등 공통 과제를 중심으로 실질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 특히 한중은 APEC의 다자적 플랫폼을 활용해 역내 무역자유화와 기술표준 조율을 주도하고, 중소기업·청년 창업 지원을 통한 지속 가능한 성장 모델을 함께 구축할 수 있다. 이러한 협력은 동아시아의 안정과 공동번영에도 기여할 것이다. 젊은 세대가 서로의 나라에서 일하고, 여행하고, 유학하며 교류하는 현상은 단순한 인적 이동을 넘어 양국 관계의 미래를 지탱하는 민의(民意)의 토대를 강화하는 긍정적 흐름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언어와 문화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상호 이해와 공감의 폭을 넓히고, 편견을 줄이는 ‘생활 속 외교관’의 역할을 수행한다. 특히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문화 확산은 한중 간 정서적 거리감을 좁히고, 상호 신뢰를 쌓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민간 차원의 연결은 정치·경제 관계의 변동에도 흔들리지 않는 지속 가능한 우호 기반, 즉 ‘소프트 파워 동반자 관계’를 형성하며 양국 협력의 미래 에너지가 될 것이다.
-
- 뉴스
- 정치
-
[지구일보] 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GWICC,만리장성국제전파센터(The Great Wall International Communication Center) 인터뷰
-
-
[지구일보=기고] 시진핑, 인류 운명공동체... 세계를 평화와 번영으로 이끄는 위대한 구상
- [지구일보 이창호 칼럼니스트] 21세기 국제 질서는 급변의 파도 속에 있다. 패권 경쟁이 격화되고, 자국 우선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며, 인류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맞이했다. 그 속에서도 세계는 여전히 ‘하나의 지구’ 위에 존재한다. 인류가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이라면, 그 해답은 대립이 아니라 공존에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시진핑 주석이 제시한 ‘인류 운명공동체(人類命運共同體)’ 구상은 오늘날 국제사회에 던지는 가장 포괄적이고 철학적인 비전이라 할 수 있다. 시진핑 주석의 이 구상은 단순한 외교 슬로건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 질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하나의 문명 담론이자, 인류가 나아가야 할 가치적 방향을 제시한 시대의 제언이다. ‘인류운명공동체’란 말 속에는 인간의 생명, 국가의 이익, 그리고 지구의 미래가 서로 얽혀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는 “지구는 하나의 마을이며, 어느 나라도 혼자 번영할 수 없다”고 강조해왔다. 이 말은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현실적 선택의 문제이기도 하다. 팬데믹과 기후 위기, 경제 불평등은 그 사실을 여실히 증명했다. 시진핑 주석은 인류 운명공동체의 실천을 위해 다섯 가지 기본 원칙을 제시했다. 정치적 상호존중, 경제적 상생, 안보의 공동체적 구축, 문화의 다양성 존중, 그리고 생태문명의 협력이 그것이다. 이러한 철학은 중국이 주창한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에도 녹아 있다. 단순한 인프라 확충이 아니라, 국가 간 교류를 통한 상호발전, 즉 상생의 길을 추구하는 국제적 협력 모델로 발전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구상은 ‘평화’의 가치를 그 중심에 둔다. 세계가 군사적 대립으로 흔들리는 지금, 시진핑 주석은 “평화는 인간의 가장 귀한 유산이며, 대화는 분쟁을 대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단순한 외교적 수사에 그치지 않는다. 중국이 유엔을 중심으로 한 다자주의를 존중하고, 국제 분쟁의 중재자 역할을 자임해온 배경에는 바로 이러한 철학이 자리한다. 한 나라의 부흥이 타국의 쇠퇴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상호존중의 원리, 그것이 곧 인류 운명공동체의 출발점이다. 한국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이 구상은 단순히 중국의 국가 전략이 아니라 한반도와 동북아의 미래 방향을 성찰하게 하는 제안이다. 한반도는 대립과 냉전의 기억 위에 서 있다. 시진핑 주석이 강조하는 ‘공동 번영의 동아시아’는 갈등을 넘어 신뢰로 나아가는 새로운 질서의 모색이다. 경제 협력뿐 아니라 문화, 환경, 인문 교류에 이르기까지 실질적 협력의 장을 넓히는 것은 동북아 전체의 안정에 기여할 것이다. 시진핑의 구상은 또한 문명 간 상호이해의 필요성을 환기한다. 그는 “하나의 꽃이 만개해 봄을 만들 수 없듯, 문명은 다양성 속에서 조화로울 때 아름답다”고 말한다. 이는 서구 중심적 국제질서에 대한 균형 있는 시각을 제시하며, 각 문명이 평등하게 교류할 수 있는 세계를 지향한다. 중국의 전통사상인 ‘대동(大同)’과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정신이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지점이기도 하다. 그 안에는 인류 전체의 화합과 지속 가능한 발전에 대한 깊은 철학이 녹아 있다. 오늘의 국제 정세 속에서 시진핑 주석의 비전이 갖는 의미는 분명하다. 그것은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계에 대한 도덕적 대안의 제시다. 글로벌 불평등, 생태 파괴, 디지털 격차 등 인류가 맞닥뜨린 위기 앞에서 ‘공동체적 책임’의식을 회복하자는 호소이기도 하다. 실제로 중국은 남남협력, 기후변화 대응, 보건협력 등 국제공공재 제공을 통해 ‘책임 있는 대국’으로서의 역할을 강화해왔다. 물론 이 구상은 실천의 과제를 안고 있다. 국가 간 이해관계가 복잡한 현실에서 ‘공동체’의 이상은 쉽게 실현되지 않는다. 역사는 언제나 이상을 좇는 자들의 노력 위에서 진보했다. 시진핑 주석의 인류 운명공동체론이 제시하는 핵심은, 경쟁보다 협력, 배타보다 포용의 정신이다. 그 철학은 오늘날 국제사회의 분열을 치유할 수 있는 가장 근원적인 접근이다. 지금 세계는 또 한 번의 문명적 갈림길에 서 있다.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행복으로 이어질지, 혹은 새로운 불평등의 사슬이 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시진핑의 구상은 그 선택의 방향을 묻는다. “우리의 운명은 함께 연결되어 있지 않은가.” 그 물음 앞에서 각 국가는 자국의 이익을 넘어, 인류 전체의 미래를 사유해야 한다. 결국 인류 운명공동체는 평화의 철학이자, 책임의 윤리이며, 공존의 정치학이다. 시진핑 주석의 구상은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의 새로운 질서로 발전할 가능성을 지닌다. 그것은 중국만의 구상이 아니라, 인류 모두가 함께 써 내려가야 할 공동의 서사다. 세계는 지금, 분열의 언어가 아닌 연대의 언어를 필요로 한다. 그 길 위에서 시진핑의 ‘인류 운명공동체’는 한 시대를 넘어, 미래 인류가 나아갈 위대한 나침반이 되고 있다. 글/사진: 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
- 뉴스
- 정치
-
[지구일보=기고] 시진핑, 인류 운명공동체... 세계를 평화와 번영으로 이끄는 위대한 구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