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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겻불을 거부하는 자부심, 지금 우리에게 '선비 정신'은 있는가
[지구일보 이창호 발행인] 오늘날의 효율 지상주의와 실용주의 관점에서 보면 이 말은 고리타분한 고집이나 시대착오적인 결벽증으로 읽힐지 모른다. 당장 얼어 죽을 판에 겨를 태운 보잘것없는 불이면 어떻고, 남이 쓰다 버린 온기면 어떠냐는 반문이 뒤따른다. 하지만 이 서늘한 문장 속에 담긴 본질은 단순히 추위를 참는 인내심에 있지 않다. 그것은 '비루하게 사느니 나의 긍지를 지키겠다'는 자기 원칙이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결과 중심 사회를 향한 준엄한 경고다. ◇ 겻불의 유혹, 원칙을 팔아 치우는 시대 우리가 사는 작금의 현실은 어떠한가. '겻불'이 도처에 널려 있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과정의 정의로움 따위는 생략해도 좋다는 식의 결과론적 사고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권력이라는 겻불을 쬐기 위해 어제의 신념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정치인, 부(富)라는 온기를 얻기 위해 타인의 눈물을 외면하는 자본, 그리고 대중의 관심을 얻기 위해 가짜 뉴스와 혐오를 생산하는 미디어까지 말이다. 과연 이들에게 '선비의 지조'는 조롱의 대상일 뿐이다. "일단 살고 봐야지",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는 식의 타협안은 우리 시대의 알량한 기준이 되었다. 그러나 겻불은 잠깐의 온기만 줄 뿐, 몸속 깊은 곳의 한기를 몰아내지 못한다. 오히려 겻불에 몸을 녹이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옷'이 타들어 가는지도 모른 채 비굴한 안락함에 중독되고 만다. ◇ 선비 정신은 '자기 증명'의 기록이다 선비가 겻불을 거부한 이유는 그것이 '나의 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얻은 혜택, 구걸하듯 얻어낸 온기는, 결국 자신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행위임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주체적 자존감'의 문제와 직결된다. 진정한 리더와 깨어 있는 시민은 겻불 대신 스스로 장작을 패고 불을 지피는 고통을 선택한다. 비록 그 과정이 더디고 춥더라도, 스스로 일궈낸 온기만이 개인과 조직을 당당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원칙을 지키느라 겪는 고난은 '상처'가 아니라 위대한 '훈장'이다. 얼어 죽을지언정 겻불을 쬐지 않겠다는 결기는,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내면의 기둥을 세우는 작업이다. ◇ 타협의 미덕이라는 가면을 벗겨라 현대 사회는 갈등 조율이라는 명목하에 '타협'을 미화한다. 물론 민주주의 사회에서 합의는 중요하다. 그러나 결코 타협해서는 안 될 가치마저 겻불과 맞바꾸는 것은 합의가 아니라 '투항'이다.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는 수많은 부조리는 리더들이 '겻불의 유혹' 앞에 무릎을 꿇었을 때 발생했다. 공정의 도덕적 가치를 훼손하면서 얻은 성과, 정의를 외면하며 쌓아 올린 평화는 모두 겻불에 불과하다. 그것은 언젠가 재만 남기고 사라질 허상이며, 그 재는 결국 우리 사회의 눈을 멀게 할 것이다. 선비 정신은 바로 그 지점에서 빛을 발한다. 모두가 겻불 주위에 모여들어 서로의 등을 다독일 때, 홀로 찬 바람을 맞으며 '이 길은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그 용기가 우리 사회의 마지막 도덕적 규범이 되어야 한다. ◇ 다시, 겻불 앞에 서서 우리는 저마다의 추위 속에 살고 있다. 불확실한 미래, 치열한 경쟁, 생존의 위협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겻불을 쬐라고 유혹한다. 게다가 "딱 한 번만 눈 감으면 따뜻해질 수 있다"는 속삭임은 달콤하다. 그러나 기억해야 한다. 겻불을 쬐는 순간,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주인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조금 춥더라도, 조금 외롭더라도 자신의 불꽃을 지키며 꼿꼿이 서 있는 이들이 있을 때 사회는 비로소 품격을 갖춘다. 지금 당신의 눈앞에 놓인 그 온기는 정당한가? 혹시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한, 혹은 자신의 양심을 태워 만든 겻불은 아닌가? 얼어 죽을지언정 겻불은 쬐지 않겠다는 그 준엄한 기개가 있어야한다. 또 역설적으로는 우리 사회를 가장 따뜻하고 존엄하게 만드는 원동력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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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 이창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 ‘우리들의 이순신’을 다녀왔다.
[지구일보]= 『이순신 리더십』의 저자인 이창호는 이 전시를 단순한 역사 관람이 아니라, 오늘의 사회가 다시 묻고 답해야 할 리더십의 본질을 성찰하는 자리로 받아들였다. 박물관의 정제된 공간 속에서 이순신은 위대한 영웅의 초상으로만 서 있지 않았다. 그는 불확실성과 분열의 시대를 건너온 한 인간이자,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 자신을 낮추고 원칙을 지켜낸 지도자로 호흡하고 있었다. 전시는 익숙한 전공(戰功)의 서사보다, 기록과 생활의 결을 통해 이순신을 다시 불러낸다. 난중일기의 문장들은 과장 없는 언어로 고통과 책임의 무게를 전하고, 전술과 장비의 디테일은 승리의 조건이 기적이 아니라 준비와 절제였음을 증명한다. 이창호저자는 이 지점에서 리더십의 핵심을 읽는다. 위기는 우연히 극복되지 않으며, 신뢰는 말이 아니라 일상의 축적에서 형성된다는 사실이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우리들의’라는 복수형이 던지는 질문이다. 이순신은 과거의 인물이지만, 오늘의 시민과 조직, 국가가 함께 소환해야 할 가치의 총합으로 제시된다. 권한이 아니라 책임으로, 성과가 아니라 과정으로 리더를 평가하라는 메시지는 전시 전반에 잔잔히 흐른다. 이창호저자가 오래 천착해 온 ‘원칙의 리더십’은 이 전시에서 생생한 역사적 근거를 얻는다. 흔들리는 정국 속에서도 법과 질서를 버리지 않았던 선택, 공을 독점하지 않고 실패를 홀로 감내했던 태도는 지금도 유효하다. 전시는 또한 이순신을 신화화하지 않는다. 좌절과 오판의 흔적을 숨기지 않음으로써, 리더의 인간적 한계를 인정하는 성숙한 시선을 제시한다. 그 한계 위에서 더 단단해진 절제와 배려가 공동체를 지켜냈다는 서사는, 경쟁과 속도가 미덕이 된 오늘에 묵직한 반문을 던진다. 빠른 결정이 아닌 올바른 판단, 강한 통제가 아닌 공정한 신뢰가 위기의 파고를 넘는 힘이라는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이 전시는 과거를 기념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오늘의 언어로 번역된 이순신은 우리에게 선택을 요구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어떤 기준으로 결정할 것인가, 누구를 위해 책임질 것인가. 이창호의 발걸음이 오래 머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순신은 박물관 유리 진열장 속에 있지 않았다. 우리의 일상과 제도, 그리고 리더의 태도 속에서 다시 살아나야 할 현재진행형의 이름이었다. ‘우리들의 이순신’은 그래서 조용하지만 강하다. 영웅의 찬가가 아니라 시민의 교과서로서, 이 전시는 오늘의 한국 사회가 되새겨야 할 리더십의 좌표를 또렷이 찍는다. 역사는 기억될 때 힘을 얻고, 리더십은 실천될 때 증명된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난 이순신은 그 오래된 진실을 변함없이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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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광장] '가짜뉴스'의 독버섯 유튜버, 대한민국 법치는 살아있다… 무관용 원칙으로 엄단해야
[지구일보 이정대 기자] 대한민국이 '유언비어 공화국'으로 침몰하고 있다. 특히 유튜버라는 거대 플랫폼을 등에 업고 확인되지 않은 허위 사실을 마치 진실인 양 포장해 유포하는 '가짜 유튜버'들의 행태가 이미 임계점을 넘어섰다. 타인의 인격과 명예를 난도질하며 조회수를 갈취하고, 이를 통해 막대한 광고 수익을 챙기는 이들의 행태는 언론의 자유라는 신성한 가치를 더럽히는 '기생충적 범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는 이 시점에서 분명히 경고한다. 법은 결코 만만하지 않으며, 온라인상의 무법지대 또한 영원할 수 없다. 유언비어로 점철된 유튜브 영상을 제작·유포한 자들은 반드시 법의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현재 대한민국 법체계는 가짜 유튜버들을 응징하기 위한 다각적인 법적 수단을 완비하고 있다. 첫째, 형사처벌의 칼날… '정보통신망법'의 엄중함이다. 강력한 제재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 제70조다.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공연하게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이는 일반 형법상의 명예훼손보다 훨씬 무거운 처벌이다. 전파 속도가 무한대에 가깝고 파괴력이 치명적인 온라인의 특성을 고려한 입법 취지다.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폭로 뒤에 숨으려는 자들은 기억하라. 당신들이 누른 '업로드' 버튼은 스스로의 감옥 문을 여는 열쇠가 될 수 있다. 또, 특정인의 업무를 방해할 목적이 인정될 경우 '업무방해죄'로도 처단이 가능하다. 둘째, 경제적 파멸을 부르는 민사상 손해배상 형사처벌이 신체의 자유를 구속한다면, 민사 소송은 가짜뉴스로 벌어들인 부당한 이익을 환수하고 그 이상의 대가를 치르게 해야한다. 최근 우리나라 법원은 허위 사실 유포로 인한 피해에 대해 배상액을 현실화하는 추세다. 특히 악의적이고 반복적인 허위 사실 유포에 대해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의 논리가 강력하게 대처해야한다. 피해자는, 유튜버를 상대로 정신적 위자료는 물론, 그로 인해 발생한 경제적 손실 전액을 청구를 해야한다. "벌금 내고 말지"라는 안일한 생각은 큰 오산이다. 민사상 불법행위 책임은 파산 선고를 받더라도 면책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날조 유튜버의 평생을 따라다니는 '경제적 족쇄'가 될 것이다. 셋째, 플랫폼 제재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역할이다 국가 권력뿐만 아니라 플랫폼 자체의 제재도 강화되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통해 해당 영상의 삭제나 접속 차단을 요청할 수 있으며, 유튜브 본사에 대한 직접적인 신고를 통해 수익 창출을 중단시키거나 채널을 영구 폐쇄(계정 해지)하는 조치도 실효를 거두고 있다. 최근 수사기관은 해외에 서버를 둔 구글(유튜브)과의 공조를 통해 익명 뒤에 숨은 가해자의 신원을 특정하는 역량을 비약적으로 높였다. '익명의 그늘'은 이제 더 이상 도피처가 아니다. 국가적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타인의 삶을 파괴하면서 사익을 취하는 행위를 방치하는 것은 국가의 직무유기다. 수사당국은 이들 유언비어 유포자들을 반사회적 범죄자로 규정하고, 고소·고발이 없더라도 적극적인 인지수사에 나서야 한다. 법은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하에 관대한 처벌을 내리던 구태에서 벗어나, 일벌백계(一罰百戒)의 자세로 판결을 내려야 할 것이다. 독자 여러분 또한 경계해야 한다. 자극적인 썸네일과 검증되지 않은 폭로에 열광하는 순간, 당신 또한 가짜뉴스의 공범이 될 수 있다. 건강한 비판은 민주주의의 자양분이지만, 악의적인 날조는 인류공동체를 파괴하는 독약이다. 우리 사회가 가짜 유튜버라는 독버섯을 도려내고, 정의로운 법치를 확립하는 길로 가야한다. 피해를 입었다면 즉시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 증거를 채집하고 법적 대응에 나서라. 법은 잠자는 자를 보호하지 않으며, 동시에 정의를 위해 싸우는 자에게는 가장 강력한 방패가 되어줄 것이다. 가짜 유튜버들에게 다시 한번 경고한다. 거짓의 혀로 쌓은 성은 기필코 무너진다. 법의 심판대가 당신 앞에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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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이재명 대통령 2026년 신년사
[서울=지구일보] 이강문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은 2026년 병오년(丙午年) 새해 첫날 신년사를 통해 국정 운영의 분명한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국민주권 정부가 지향하는 목표는 명확하다”며 “붉은 말이 대지를 가르듯, 힘차게 전진하는 한 해를 만들어 2026년을 ‘대한민국 대도약의 출발점’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그동안 국민이 감내해 온 인내와 노력이 이제는 성과로 이어져야 할 시점임을 강조하며, “회복의 단계를 넘어 실질적인 결실을 거두는 시대로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이번 신년사는 취임 이후 처음으로 발표한 공식 신년 메시지로, 집권 2년 차를 맞아 국정 전반에 대한 책임 의식과 미래 비전을 함께 담아냈다는 평가다. 특히 그는 국가 정상화와 민생 안정에 머무르지 않고, 구조적 성장과 도약을 통해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 경로를 열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단기 성과에 그치지 않는 지속 가능한 발전, 그리고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가 2026년 국정 운영의 핵심이 될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다음은 이 대통령 신년사 전문. 사랑하고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붉은 말의 해, 병오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해 정부를 믿고, 함께 위기의 파도를 건너 주신 우리 국민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부터 전합니다. 허물을 벗고 다시 태어나는 ‘푸른 뱀’의 해, 을사년은 우리 모두에게 걱정과 불안을 이겨낸 회복과 정상화의 시간이었습니다. 내란으로 무너진 나라를 복구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했습니다. 신속한 추경, 민생 회복 소비 쿠폰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소비심리는 7년 7개월 만에 최고 수준을 회복했고, 경제성장률 또한 상승 추세입니다. 주식시장은 코스피 4,000을 돌파했고 수출은 연간 7,000억 달러의 새로운 기록을 세웠습니다. 우려 섞인 좌절이 기대 섞인 전망으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어렵게 확보한 GPU 26만 장, 150조 원에 달하는 국민성장펀드, 여야가 합의한 ‘AI시대의 첫 예산안’은 첨단산업과 중소벤처기업 발전을 뒷받침할 중요한 발판이 될 것입니다. ‘민주 대한민국’의 국제사회 복귀와 ‘국익 중심 실용 외교’는 성장과 도약을 향한 우리의 지평을 크게 넓혔습니다. 특히 미국과의 관세 협상 타결로 우리 경제를 짓누르던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해소되었다는 점도 고무적입니다. 핵 추진 잠수함 건조부터 우라늄 농축,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대까지, 르네상스를 맞이한 우리 한미동맹이 경제 부흥의 든든한 뒷받침이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희망적인 변화는 ‘빛의 혁명’으로 입증된 주권자의 집단지성이 국정 운영의 중심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국민추천제, 국민사서함, 타운홀미팅부터 국무회의와 업무보고의 생중계까지, 국민과의 직접 소통을 일상으로 만들고, 국정의 투명성을 높이는 혁신을 앞으로도 결코 멈추지 않겠습니다. 자랑스러운 국민 여러분, 여러분께서 마음을 모아주신 덕분에 무너진 민생경제와 민주주의를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겨우 출발선에 섰을 뿐입니다. 남들보다 늦은 만큼 이제 더 빠르게 달려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2026년 새해, 국민주권 정부의 목표는 분명합니다. 올 한 해를 붉은 말처럼 힘차게 달리는 해로, ‘대한민국 대도약의 원년’으로 만들겠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외교, 안보 등 모든 분야에서 대대적인 도약과 성장을 반드시 이뤄내겠습니다. 대도약을 통한 성장의 과실은 특정 소수가 독식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나눌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사회 곳곳에 남아있는 편법과 불공정을 확실히 없애고 ‘반칙과 특권 없는 사회’를 만드는 일에도 매진하겠습니다. 국가만 부강하고 국민은 가난한 것이 아니라 국가가 성장하는 만큼 국민 모두가 함께 성장하는 나라,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성장하는 대도약을 이뤄내겠습니다. 대도약의 유일한 기준은 오직 ‘국민의 삶’입니다. 우리 국민의 인내와 노력이 담긴 ‘회복의 시간’을 넘어, 본격적인 ‘결실의 시간’을 열어젖히겠습니다. 국민들께서 ‘작년보다 나은 올해’를 삶 속에서 직접 느끼실 수 있도록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쏟아붓겠습니다. 어둠을 물리친 K-민주주의의 찬란한 빛이 국민의 일상 속까지 따스하게 스며들 수 있도록 만들어 내겠습니다. 국민 한 분 한 분의 표정이 더 밝아지는 나라, 대한민국 위상에 걸맞은 삶의 질을 누리는 그런 나라를 향해, 더욱 속도를 높이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 대한민국은 그동안 초고속 산업화 시대의 ‘성공의 공식’을 따라 온 힘을 다해 압축 성장을 일궈냈습니다. 자원이 부족했던 대한민국은 특정 지역, 특정 기업, 특정 계층에 집중 투자하며 세계 10위 경제 대국의 빛나는 성취를 달성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성장전략의 한계가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고도성장을 이끈 ‘성공의 공식’이 우리의 발목을 잡는 ‘성공의 함정’이 되었습니다. 불평등과 격차가 성장을 가로막고 경쟁과 갈등이 격화되는 이 악순환 속에서 자원의 집중과 기회의 편중은 이제 성장의 디딤돌이 아니라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성장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야 합니다. 익숙한 옛길이 아니라 새로운 길로 대전환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대한민국을 대도약의 새로운 미래로 이끌 지름길입니다. 그래서, 다섯 가지 대전환의 길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수도권 중심 성장’에서 ‘지방 주도 성장’으로 대전환하겠습니다. `수도권 1극 체제‘에서 ‘5극 3특 체제’로의 대전환은 지방에 대한 시혜나 배려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재도약을 이끌 필수 전략입니다. 수도권에서 거리가 멀수록 더 두텁게, 더 과감하게 지원하겠습니다. 지난해 완료한 해수부 이전은 시작일 뿐입니다. 서울은 경제 수도로, 중부권은 행정수도로, 남부권은 해양 수도로 대한민국 국토를 다극 체제로 더욱 넓게 쓰겠습니다. 에너지가 풍부한 남부의 반도체 벨트부터 인공지능 실증도시와 재생에너지 집적단지까지, 첨단산업 발전이 지역의 발전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설계할 것입니다. 인재와 기술 양성을 위한 교육투자, 삶의 질을 높여줄 광역교통과 문화시설 투자, 여기에 관광 정책까지 하나로 잇는 집중 투자를 통해 ’지방 주도 성장‘의 기반을 촘촘하게 실현해 내겠습니다. 둘째, ‘일부 대기업 중심 성장’에서 기회와 과실을 고루 나누는 ‘모두의 성장’으로 대전환하겠습니다. 온 국민이 힘을 모아 관세 협상을 성공적으로 타결했지만, 그로 인한 혜택이 일부 대기업 위주로 돌아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연간 수십조 원 규모의 방산, 원전 수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공동체의 역량과 국민 전체의 노력으로 이뤄낸 공동의 경제적 성과가 중소·벤처 기업까지 흐르고, 국민들의 호주머니까지 채워줄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난해 출범한 ‘국민성장펀드’는 국민 누구나 나라의 성장 발전에 투자하고, 성장의 열매를 고루 나눌 수 있는 전환의 마중물이 될 것입니다. 70년대 한국 경제의 성장은 도전하는 기업가 정신이 이끌었고 2000년대 IT 강국으로의 도약은 혁신하는 벤처 정신이 이끌었습니다. AI시대부터 에너지 대전환까지, 기존의 질서가 흔들리는 지금이 ‘창조적 파괴’를 이끌 혁신가들에게는 무한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정부는 ‘고용 중심 사회’에서 ‘창업 중심 사회’로의 전환에 발맞춰 청년 기업인과 창업가들이 자유롭게 담대하게 도전하며 마음껏 혁신의 길을 개척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하겠습니다. 실패가 오히려 성공의 자산이 되어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나라, 어떤 아이디어도 창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스타트업·벤처기업 열풍 시대, 중소기업 전성시대를 열어가겠습니다. 셋째, 생명을 경시하고 위험을 당연시하는 성장에서 안전이 기본인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대전환하겠습니다. ‘산재 사망률 OECD 1위’라는 이 불명예스러운 기록 앞에서 세계 10위 경제 대국이라는 성취는 결코 자랑스러울 수 없습니다. 아침밥 먹여 보낸 가족이 저녁에 돌아오지 못하는 그런 나라에서 경제성장률이 아무리 높다 한들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생명 경시에 대한 비용과 대가를 지금보다 훨씬 비싸게 치를 수 있어야 합니다. 일하고 싶지 않은 위험한 일터로 가득한 나라에서는 기업의 지속적 성장도, 나라의 지속적 발전도 요원합니다. 근로감독관 2천 명 증원, 일터 지킴이 신설을 통해서 안전한 작업환경과 생명 존중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반드시 만들어 가겠습니다. 안전한 일터에서 이뤄낸 성장이야말로 국민 행복을 담보하는 지속 가능한 성장입니다. 네 번째로, 상품만 앞세우는 성장에서 문화가 이끄는 매력적인 성장으로 대전환하겠습니다. K-콘텐츠 수출이 이차전지도 전기차도 넘어서는 시대, 문화에 대한 투자는 사회공헌이 아니라 이제 필수 성장전략입니다. 문화가 곧 경제이자 미래 먹거리이며 국가경쟁력의 핵심 축이 됐습니다. K-팝 팬덤이 K-뷰티 매니아로 성장합니다. K-드라마 시청률이 K-푸드 판매율을 끌어올립니다. 문화를 매개로 산업이 성장하는 선순환이 일어납니다. K-컬처가 한때의 유행에 머무르지 않도록, 대중문화의 뿌리가 되는 기초예술을 비롯해 문화 생태계 전반을 풍성하게 만드는 일에 온 힘을 기울이겠습니다. 9조 6천억 원까지 대폭 증액한 문화 예산을 토대로, K-콘텐츠가 세계 속에 더 넓고 깊게 스며들도록 하겠습니다. 다섯째, 마지막으로 전쟁 위협을 안고 사는 이 불안한 성장에서 평화가 뒷받침하는 안정적인 성장으로 대전환하겠습니다. 굳건한 평화는 성장의 다른 말이고, 튼튼한 안보가 번영의 동력입니다. 적대로 인한 비용과 위험을, 평화가 뒷받침하는 성장으로 바꿔낸다면 지금의 ‘코리아 리스크’를 미래의 ‘코리아 프리미엄’으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남북 간 군사적인 긴장 완화와 신뢰 회복 조치를 일관되게 추진하고, 미국·중국 등 국제사회와 한반도 평화·안정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올해에도 ‘페이스메이커’로서 북미대화를 적극 지원하고 남북 관계 복원을 거듭 모색할 것입니다.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진화한 한미동맹, 강력한 자주국방을 토대로 한반도 평화 공존이 의미 있는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국익 중심 실용 외교’는 세계를 향해 더 넓게 뻗어나갈 것입니다. 글로벌 책임 강국으로서 대한민국의 리더십을 더욱 확고히 하고, 협력을 통한 공동번영의 모델을 세계의 모범으로 만들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앞에서 말씀드린 다섯 가지 대전환의 원칙은 낭만적 당위나 희망 사항이 아닙니다. 성장 발전 전략의 대전환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이 저성장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절박한 호소의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더 이상 머뭇거릴 여유도 없습니다. 이제 실천과 행동의 시간입니다. 2026년이 ‘대전환을 통한 대도약의 원년’으로 기록될 수 있도록, 오직 국민만 믿고 뚜벅뚜벅 나아가겠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지난해 외교무대를 누비며 ‘국력을 키워야겠다’라는 말씀을 자주 드렸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국력이 단지 경제력이나 군사력만을 뜻하진 않습니다. 굴곡진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가 증명하듯 국력의 원천은 언제나 국민이었습니다. 5,200만 국민 한 명 한 명이 행복해질수록, 저마다의 꿈과 희망, 도전이 넘쳐날수록 우리 대한민국의 국력은 더욱 커지는 것입니다. 올 한 해 국민주권정부는 ‘국가가 부강해지면 내 삶도 나아지느냐’는 우리 국민들의 절박한 질문에 더욱 성실하게 응답하겠습니다. 지나간 7개월보다 앞으로의 4년 5개월이 더 기대되는 정부가 되겠습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각오로 작은 변화의 성과들을 하나하나 눈덩이처럼 키워나가겠습니다. 당장의 성과가 보이지 않는 개혁의 과정도 피하지 않겠습니다. 미래를 위한 인내심과 진정성으로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으겠습니다. 이 모든 지난하고 위대한 과업이 국민 통합과 굳건한 국민의 신뢰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서 더욱 겸손한 자세로 국정에 임하겠습니다. 절망의 겨울을 희망의 봄으로 바꿔내신 우리 국민들의 그 저력을 믿습니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께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향한 여정에 함께해 주십시오. 지난해 힘을 모아 민주주의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워낸 것처럼, 이제 전 세계가 따라 배울 ‘성장과 도약의 새로운 표준’을 함께 만들어 냅시다. 대한민국 대도약, 결국 국민이 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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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인생은 리허설이 없다... ‘적토마’의 기세와 ‘적정선’의 지혜
[지구일보 이창호 칼럼니스트] 2025년의 한 해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다시금 '생의 유한함'을 마주한다. 러시아의 소설가 도스토옙스키는 사형대 위에서 집행 직전 사면을 받았던 5분간의 기억을 평생의 동력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에게 삶은 다시는 반복되지 않는 절박한 무대였다. 2026년 새해를 맞이하며 우리가 되새겨야 할 첫 번째 문장 역시 이것이다. "인생에는 기필코 리허설이 없다." 우리는 흔히 "준비가 되면 시작하겠다"거나 "다음 기회에 잘하겠다"는 말로 현재를 유예한다. 동서고금 삶은 연습 게임 없는 본 게임이며, 매 순간이 초연(初演)이자 종연(終演)이다. 다가오는 새해,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는 거침없이 대지를 가르는 '적토마(赤兎馬)'의 기개다. 동시에, 그 질주의 끝이 낭떠러지가 되지 않게 하는 '적정선(適正線)'의 철학이다. ■ 적토마의 기세, 주저함을 돌파하는 에너지 적토마는 하루에 천 리를 달리는 기개와 열정을 상징한다. 정체된 시대, 무력감에 빠진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자기 주도적 질주'다. 모범적인 사례로 언급되는 인물 중 하나가 파타고니아의 창업자 이본 쉬나드다. 그는 환경 보호라는 가치를 위해 기업의 이윤을 도구로 사용했다. "준비가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일단 올바른 방향이라면 뛰어들라"는 그의 철학은 적토마의 그것과 닮아 있다. 그는 인생을 리허설로 여기지 않았기에, 내일로 미루지 않고 당장 실천 가능한 환경 운동을 비즈니스에 이식했다.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완벽한 계획을 세우느라 시간을 허비하기보다, 적토마처럼 앞을 향해 발을 내딛는 용기가 필요하다. 망설임은 기회를 잠식하고, 지나간 시간은 결코 되돌아오지 않는다. ■ 적정선의 지혜, 멈춤이 아닌 ‘최적의 균형’ 우리는 무조건적인 질주가 미덕인 시대는 지났다. 적토마의 속도감을 유지하되, 나를 파괴하지 않는 '적정선'을 찾는 것이 더 멋진 삶을 위한 핵심이다. 여기서 말하는 적정선은 게으름이나 타협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한계를 인지하고,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지략적 멈춤'이다. 최근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 잡은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이나 '워라밸'에 대한 논의도 본질적으로는 이 적정선에 대한 탐구다. 하지만 진정으로 모범적인 사례는 북유럽의 '라곰(Lagom)'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너무 많지도, 너무 적지도 않은' 상태를 지향하는 이 가치는, 일터에서의 몰입과 가정에서의 휴식 사이에서 정교한 선을 긋는다. 예를 들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생활 양식을 보라. 그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 일정량의 글을 쓰고, 정해진 시간에 달리기를 한다. 더 쓸 수 있는 에너지가 남아 있어도 그는 '적정선'에서 멈춘다. 그 멈춤이 있기에 그는 수십 년간 현역으로 질주하는 적토마가 될 수 있었다. 과잉된 열정으로 스스로를 태워버리는 '번아웃'은 리허설 없는 인생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불상사다. ■ 더 멋진 삶을 위한 연대와 성찰 인생이 리허설이 아니라는 자각은 우리를 겸허하게 만든다. 내가 내뱉은 말, 내가 행한 선택이 곧 나의 역사(歷史)가 되기 때문이다. 2026년, 우리의 주권 사회는 각자도생의 시대를 넘어 서로의 적정선을 존중하는 인류 공동체적 감각이 절실하다. ▪︎나 자신에게는 적토마의 용기를, 실패를 두려워해 시도조차 하지 않는 패배주의를 걷어내야 한다. ▪︎타인에게는 적정선의 예의를, 타인의 삶에 과하게 개입하거나 나의 기준을 강요하지 않는 '관계의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사회적으로는 지속 가능한 속도를, 성과 지상주의에 매몰되어 구성원의 영혼을 갈아 넣는 구조를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인생이라는 위대한 무대 위에 선 주연 배우다. 관객은 바로 나 자신이며, 커튼콜은 단 한 번뿐이다. 적토마처럼 뜨겁게 달리되, 적정선을 아는 차가운 이성을 잃지 말자. ■ 뜨거운 심장과 냉철한 발걸음 새해는 단순히 달력의 숫자가 바뀌는 날이 아니다. 리허설 없는 우리 생의 새로운 막이 오르는 순간이다. "적당히 살자"는 말이 비겁한 변명이 아니라, "가장 나다운 속도를 유지하겠다"는 결단이 될 때 우리의 삶은 비로소 멋져진다. 맹목적인 속도전에서 벗어나 나만의 궤적을 그리는 적토마가 되자. 그 질주 속에 나를 돌보는 적정선이 살아 숨 쉴 때, 우리는 비로소 후회 없는 삶의 예술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026년, 당신의 무대는 이미 시작되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이 소중한 생의 현장에서, 당신만의 멋진 레이스를 펼치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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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정적(政敵)’까지 끌어안는 탕평, 공자의 ‘거현(擧賢)’ 정신으로 완성되어야
[지구일보 이창호 발행인] 이재명 기획예산처의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으로 국민의힘 출신 이혜훈 전 의원이 거론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는 진영 논리에 매몰되어 ‘코드 인사’와 ‘보은 인사’가 횡행하던 우리 정치사에서, 야당 중진 출신의 경제 전문가를 국정의 핵심 보직에 기용하려는 시도는 그 자체로 파격이자 신선한 충격이다. 공자(孔子)는 일찍이 논어(論語) ‘자로(子路)’ 편에서 정치를 묻는 제자에게 “먼저 유관 부서의 관리를 살피고, 작은 과실을 용서하며, 현명한 인재를 등용하라(先有司, 赦小過, 擧賢才)”고 답했다. 여기서 핵심은 ‘거현재(擧賢才)’, 즉 진영과 계파를 떠나 오직 실력과 덕망을 갖춘 인재를 뽑아 쓰는 데 있다. 이혜훈 전 의원은 자타가 공인하는 ‘경제통’이다. KDI 연구위원을 거쳐 국회에서 예결위와 기재위 등 경제 관련 핵심 상임위에서 잔뼈가 굵었다. 특히 합리적 보수의 가치를 지키면서도 시장의 원리와 복지의 균형을 고민해 온 인물이다. 국가 재정의 건전성을 수호하면서도 민생의 고통을 덜어내야 하는 기획예산처의 수장으로서 전문성만큼은 부족함이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이번 인사가 단순한 ‘보여주기식 협치’나 야당 세력 약화를 위한 ‘진영 흔들기’에 그쳐선 안 된다. 공자는 “군자는 화합하되 동화되지 않고, 소인은 동화되되 화합하지 못한다(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고 했다. 진정한 탕평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데려다가 내 편으로 만드는 ‘동(同)’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국가적 대업을 위해 머리를 맞대는 ‘화(和)’여야 한다. 이 전 의원의 등용이 현실화된다면, 이는 이재명 정부가 추구하는 이념적 지평이 단순히 ‘좌(左)’에 머물지 않고 국익이라는 거대한 바다로 나아가겠다는 신호탄이 되어야 한다. 기획예산처는 국가의 곳간을 관리하는 곳이다. 인기영합주의적 포퓰리즘을 경계하고,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위한 예산 배분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인사보다, 정권의 실책을 직언할 수 있는 ‘반대편의 인재’가 더 절실할 수 있다. 야당 또한 이를 ‘배신’이나 ‘야합’의 프레임으로만 바라볼 일이 아니다. 인재가 국가를 위해 쓰이는 것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 공자는 “현자를 등용하면 백성이 복종한다(擧直錯諸枉, 則民服)”고 했다. 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은 결국 누가 더 국가의 위기를 해결할 적임자를 내세우느냐에 달려 있다. 이재명 정부는 이번 인사가 정략적 수사가 아닌, 진정한 ‘거현(擧賢)’의 실천임을 증명해야 한다. 인재를 얻는 것은 천하를 얻는 것과 같다. 만약 이 전 의원이 초대 장관으로서 소신 있게 예산의 기틀을 잡을 수 있는 환경을 보장받는다면, 그것이야말로 갈등의 정치를 끝내고 ‘대화와 상생’의 정치를 여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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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겻불을 거부하는 자부심, 지금 우리에게 '선비 정신'은 있는가
- [지구일보 이창호 발행인] 오늘날의 효율 지상주의와 실용주의 관점에서 보면 이 말은 고리타분한 고집이나 시대착오적인 결벽증으로 읽힐지 모른다. 당장 얼어 죽을 판에 겨를 태운 보잘것없는 불이면 어떻고, 남이 쓰다 버린 온기면 어떠냐는 반문이 뒤따른다. 하지만 이 서늘한 문장 속에 담긴 본질은 단순히 추위를 참는 인내심에 있지 않다. 그것은 '비루하게 사느니 나의 긍지를 지키겠다'는 자기 원칙이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결과 중심 사회를 향한 준엄한 경고다. ◇ 겻불의 유혹, 원칙을 팔아 치우는 시대 우리가 사는 작금의 현실은 어떠한가. '겻불'이 도처에 널려 있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과정의 정의로움 따위는 생략해도 좋다는 식의 결과론적 사고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권력이라는 겻불을 쬐기 위해 어제의 신념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정치인, 부(富)라는 온기를 얻기 위해 타인의 눈물을 외면하는 자본, 그리고 대중의 관심을 얻기 위해 가짜 뉴스와 혐오를 생산하는 미디어까지 말이다. 과연 이들에게 '선비의 지조'는 조롱의 대상일 뿐이다. "일단 살고 봐야지",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는 식의 타협안은 우리 시대의 알량한 기준이 되었다. 그러나 겻불은 잠깐의 온기만 줄 뿐, 몸속 깊은 곳의 한기를 몰아내지 못한다. 오히려 겻불에 몸을 녹이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옷'이 타들어 가는지도 모른 채 비굴한 안락함에 중독되고 만다. ◇ 선비 정신은 '자기 증명'의 기록이다 선비가 겻불을 거부한 이유는 그것이 '나의 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얻은 혜택, 구걸하듯 얻어낸 온기는, 결국 자신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행위임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주체적 자존감'의 문제와 직결된다. 진정한 리더와 깨어 있는 시민은 겻불 대신 스스로 장작을 패고 불을 지피는 고통을 선택한다. 비록 그 과정이 더디고 춥더라도, 스스로 일궈낸 온기만이 개인과 조직을 당당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원칙을 지키느라 겪는 고난은 '상처'가 아니라 위대한 '훈장'이다. 얼어 죽을지언정 겻불을 쬐지 않겠다는 결기는,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내면의 기둥을 세우는 작업이다. ◇ 타협의 미덕이라는 가면을 벗겨라 현대 사회는 갈등 조율이라는 명목하에 '타협'을 미화한다. 물론 민주주의 사회에서 합의는 중요하다. 그러나 결코 타협해서는 안 될 가치마저 겻불과 맞바꾸는 것은 합의가 아니라 '투항'이다.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는 수많은 부조리는 리더들이 '겻불의 유혹' 앞에 무릎을 꿇었을 때 발생했다. 공정의 도덕적 가치를 훼손하면서 얻은 성과, 정의를 외면하며 쌓아 올린 평화는 모두 겻불에 불과하다. 그것은 언젠가 재만 남기고 사라질 허상이며, 그 재는 결국 우리 사회의 눈을 멀게 할 것이다. 선비 정신은 바로 그 지점에서 빛을 발한다. 모두가 겻불 주위에 모여들어 서로의 등을 다독일 때, 홀로 찬 바람을 맞으며 '이 길은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그 용기가 우리 사회의 마지막 도덕적 규범이 되어야 한다. ◇ 다시, 겻불 앞에 서서 우리는 저마다의 추위 속에 살고 있다. 불확실한 미래, 치열한 경쟁, 생존의 위협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겻불을 쬐라고 유혹한다. 게다가 "딱 한 번만 눈 감으면 따뜻해질 수 있다"는 속삭임은 달콤하다. 그러나 기억해야 한다. 겻불을 쬐는 순간,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주인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조금 춥더라도, 조금 외롭더라도 자신의 불꽃을 지키며 꼿꼿이 서 있는 이들이 있을 때 사회는 비로소 품격을 갖춘다. 지금 당신의 눈앞에 놓인 그 온기는 정당한가? 혹시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한, 혹은 자신의 양심을 태워 만든 겻불은 아닌가? 얼어 죽을지언정 겻불은 쬐지 않겠다는 그 준엄한 기개가 있어야한다. 또 역설적으로는 우리 사회를 가장 따뜻하고 존엄하게 만드는 원동력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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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겻불을 거부하는 자부심, 지금 우리에게 '선비 정신'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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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 이창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 ‘우리들의 이순신’을 다녀왔다.
- [지구일보]= 『이순신 리더십』의 저자인 이창호는 이 전시를 단순한 역사 관람이 아니라, 오늘의 사회가 다시 묻고 답해야 할 리더십의 본질을 성찰하는 자리로 받아들였다. 박물관의 정제된 공간 속에서 이순신은 위대한 영웅의 초상으로만 서 있지 않았다. 그는 불확실성과 분열의 시대를 건너온 한 인간이자,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 자신을 낮추고 원칙을 지켜낸 지도자로 호흡하고 있었다. 전시는 익숙한 전공(戰功)의 서사보다, 기록과 생활의 결을 통해 이순신을 다시 불러낸다. 난중일기의 문장들은 과장 없는 언어로 고통과 책임의 무게를 전하고, 전술과 장비의 디테일은 승리의 조건이 기적이 아니라 준비와 절제였음을 증명한다. 이창호저자는 이 지점에서 리더십의 핵심을 읽는다. 위기는 우연히 극복되지 않으며, 신뢰는 말이 아니라 일상의 축적에서 형성된다는 사실이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우리들의’라는 복수형이 던지는 질문이다. 이순신은 과거의 인물이지만, 오늘의 시민과 조직, 국가가 함께 소환해야 할 가치의 총합으로 제시된다. 권한이 아니라 책임으로, 성과가 아니라 과정으로 리더를 평가하라는 메시지는 전시 전반에 잔잔히 흐른다. 이창호저자가 오래 천착해 온 ‘원칙의 리더십’은 이 전시에서 생생한 역사적 근거를 얻는다. 흔들리는 정국 속에서도 법과 질서를 버리지 않았던 선택, 공을 독점하지 않고 실패를 홀로 감내했던 태도는 지금도 유효하다. 전시는 또한 이순신을 신화화하지 않는다. 좌절과 오판의 흔적을 숨기지 않음으로써, 리더의 인간적 한계를 인정하는 성숙한 시선을 제시한다. 그 한계 위에서 더 단단해진 절제와 배려가 공동체를 지켜냈다는 서사는, 경쟁과 속도가 미덕이 된 오늘에 묵직한 반문을 던진다. 빠른 결정이 아닌 올바른 판단, 강한 통제가 아닌 공정한 신뢰가 위기의 파고를 넘는 힘이라는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이 전시는 과거를 기념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오늘의 언어로 번역된 이순신은 우리에게 선택을 요구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어떤 기준으로 결정할 것인가, 누구를 위해 책임질 것인가. 이창호의 발걸음이 오래 머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순신은 박물관 유리 진열장 속에 있지 않았다. 우리의 일상과 제도, 그리고 리더의 태도 속에서 다시 살아나야 할 현재진행형의 이름이었다. ‘우리들의 이순신’은 그래서 조용하지만 강하다. 영웅의 찬가가 아니라 시민의 교과서로서, 이 전시는 오늘의 한국 사회가 되새겨야 할 리더십의 좌표를 또렷이 찍는다. 역사는 기억될 때 힘을 얻고, 리더십은 실천될 때 증명된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난 이순신은 그 오래된 진실을 변함없이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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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 이창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 ‘우리들의 이순신’을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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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광장] '가짜뉴스'의 독버섯 유튜버, 대한민국 법치는 살아있다… 무관용 원칙으로 엄단해야
- [지구일보 이정대 기자] 대한민국이 '유언비어 공화국'으로 침몰하고 있다. 특히 유튜버라는 거대 플랫폼을 등에 업고 확인되지 않은 허위 사실을 마치 진실인 양 포장해 유포하는 '가짜 유튜버'들의 행태가 이미 임계점을 넘어섰다. 타인의 인격과 명예를 난도질하며 조회수를 갈취하고, 이를 통해 막대한 광고 수익을 챙기는 이들의 행태는 언론의 자유라는 신성한 가치를 더럽히는 '기생충적 범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는 이 시점에서 분명히 경고한다. 법은 결코 만만하지 않으며, 온라인상의 무법지대 또한 영원할 수 없다. 유언비어로 점철된 유튜브 영상을 제작·유포한 자들은 반드시 법의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현재 대한민국 법체계는 가짜 유튜버들을 응징하기 위한 다각적인 법적 수단을 완비하고 있다. 첫째, 형사처벌의 칼날… '정보통신망법'의 엄중함이다. 강력한 제재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 제70조다.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공연하게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이는 일반 형법상의 명예훼손보다 훨씬 무거운 처벌이다. 전파 속도가 무한대에 가깝고 파괴력이 치명적인 온라인의 특성을 고려한 입법 취지다.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폭로 뒤에 숨으려는 자들은 기억하라. 당신들이 누른 '업로드' 버튼은 스스로의 감옥 문을 여는 열쇠가 될 수 있다. 또, 특정인의 업무를 방해할 목적이 인정될 경우 '업무방해죄'로도 처단이 가능하다. 둘째, 경제적 파멸을 부르는 민사상 손해배상 형사처벌이 신체의 자유를 구속한다면, 민사 소송은 가짜뉴스로 벌어들인 부당한 이익을 환수하고 그 이상의 대가를 치르게 해야한다. 최근 우리나라 법원은 허위 사실 유포로 인한 피해에 대해 배상액을 현실화하는 추세다. 특히 악의적이고 반복적인 허위 사실 유포에 대해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의 논리가 강력하게 대처해야한다. 피해자는, 유튜버를 상대로 정신적 위자료는 물론, 그로 인해 발생한 경제적 손실 전액을 청구를 해야한다. "벌금 내고 말지"라는 안일한 생각은 큰 오산이다. 민사상 불법행위 책임은 파산 선고를 받더라도 면책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날조 유튜버의 평생을 따라다니는 '경제적 족쇄'가 될 것이다. 셋째, 플랫폼 제재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역할이다 국가 권력뿐만 아니라 플랫폼 자체의 제재도 강화되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통해 해당 영상의 삭제나 접속 차단을 요청할 수 있으며, 유튜브 본사에 대한 직접적인 신고를 통해 수익 창출을 중단시키거나 채널을 영구 폐쇄(계정 해지)하는 조치도 실효를 거두고 있다. 최근 수사기관은 해외에 서버를 둔 구글(유튜브)과의 공조를 통해 익명 뒤에 숨은 가해자의 신원을 특정하는 역량을 비약적으로 높였다. '익명의 그늘'은 이제 더 이상 도피처가 아니다. 국가적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타인의 삶을 파괴하면서 사익을 취하는 행위를 방치하는 것은 국가의 직무유기다. 수사당국은 이들 유언비어 유포자들을 반사회적 범죄자로 규정하고, 고소·고발이 없더라도 적극적인 인지수사에 나서야 한다. 법은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하에 관대한 처벌을 내리던 구태에서 벗어나, 일벌백계(一罰百戒)의 자세로 판결을 내려야 할 것이다. 독자 여러분 또한 경계해야 한다. 자극적인 썸네일과 검증되지 않은 폭로에 열광하는 순간, 당신 또한 가짜뉴스의 공범이 될 수 있다. 건강한 비판은 민주주의의 자양분이지만, 악의적인 날조는 인류공동체를 파괴하는 독약이다. 우리 사회가 가짜 유튜버라는 독버섯을 도려내고, 정의로운 법치를 확립하는 길로 가야한다. 피해를 입었다면 즉시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 증거를 채집하고 법적 대응에 나서라. 법은 잠자는 자를 보호하지 않으며, 동시에 정의를 위해 싸우는 자에게는 가장 강력한 방패가 되어줄 것이다. 가짜 유튜버들에게 다시 한번 경고한다. 거짓의 혀로 쌓은 성은 기필코 무너진다. 법의 심판대가 당신 앞에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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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광장] '가짜뉴스'의 독버섯 유튜버, 대한민국 법치는 살아있다… 무관용 원칙으로 엄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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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이재명 대통령 2026년 신년사
- [서울=지구일보] 이강문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은 2026년 병오년(丙午年) 새해 첫날 신년사를 통해 국정 운영의 분명한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국민주권 정부가 지향하는 목표는 명확하다”며 “붉은 말이 대지를 가르듯, 힘차게 전진하는 한 해를 만들어 2026년을 ‘대한민국 대도약의 출발점’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그동안 국민이 감내해 온 인내와 노력이 이제는 성과로 이어져야 할 시점임을 강조하며, “회복의 단계를 넘어 실질적인 결실을 거두는 시대로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이번 신년사는 취임 이후 처음으로 발표한 공식 신년 메시지로, 집권 2년 차를 맞아 국정 전반에 대한 책임 의식과 미래 비전을 함께 담아냈다는 평가다. 특히 그는 국가 정상화와 민생 안정에 머무르지 않고, 구조적 성장과 도약을 통해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 경로를 열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단기 성과에 그치지 않는 지속 가능한 발전, 그리고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가 2026년 국정 운영의 핵심이 될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다음은 이 대통령 신년사 전문. 사랑하고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붉은 말의 해, 병오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해 정부를 믿고, 함께 위기의 파도를 건너 주신 우리 국민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부터 전합니다. 허물을 벗고 다시 태어나는 ‘푸른 뱀’의 해, 을사년은 우리 모두에게 걱정과 불안을 이겨낸 회복과 정상화의 시간이었습니다. 내란으로 무너진 나라를 복구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했습니다. 신속한 추경, 민생 회복 소비 쿠폰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소비심리는 7년 7개월 만에 최고 수준을 회복했고, 경제성장률 또한 상승 추세입니다. 주식시장은 코스피 4,000을 돌파했고 수출은 연간 7,000억 달러의 새로운 기록을 세웠습니다. 우려 섞인 좌절이 기대 섞인 전망으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어렵게 확보한 GPU 26만 장, 150조 원에 달하는 국민성장펀드, 여야가 합의한 ‘AI시대의 첫 예산안’은 첨단산업과 중소벤처기업 발전을 뒷받침할 중요한 발판이 될 것입니다. ‘민주 대한민국’의 국제사회 복귀와 ‘국익 중심 실용 외교’는 성장과 도약을 향한 우리의 지평을 크게 넓혔습니다. 특히 미국과의 관세 협상 타결로 우리 경제를 짓누르던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해소되었다는 점도 고무적입니다. 핵 추진 잠수함 건조부터 우라늄 농축,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대까지, 르네상스를 맞이한 우리 한미동맹이 경제 부흥의 든든한 뒷받침이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희망적인 변화는 ‘빛의 혁명’으로 입증된 주권자의 집단지성이 국정 운영의 중심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국민추천제, 국민사서함, 타운홀미팅부터 국무회의와 업무보고의 생중계까지, 국민과의 직접 소통을 일상으로 만들고, 국정의 투명성을 높이는 혁신을 앞으로도 결코 멈추지 않겠습니다. 자랑스러운 국민 여러분, 여러분께서 마음을 모아주신 덕분에 무너진 민생경제와 민주주의를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겨우 출발선에 섰을 뿐입니다. 남들보다 늦은 만큼 이제 더 빠르게 달려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2026년 새해, 국민주권 정부의 목표는 분명합니다. 올 한 해를 붉은 말처럼 힘차게 달리는 해로, ‘대한민국 대도약의 원년’으로 만들겠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외교, 안보 등 모든 분야에서 대대적인 도약과 성장을 반드시 이뤄내겠습니다. 대도약을 통한 성장의 과실은 특정 소수가 독식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나눌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사회 곳곳에 남아있는 편법과 불공정을 확실히 없애고 ‘반칙과 특권 없는 사회’를 만드는 일에도 매진하겠습니다. 국가만 부강하고 국민은 가난한 것이 아니라 국가가 성장하는 만큼 국민 모두가 함께 성장하는 나라,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성장하는 대도약을 이뤄내겠습니다. 대도약의 유일한 기준은 오직 ‘국민의 삶’입니다. 우리 국민의 인내와 노력이 담긴 ‘회복의 시간’을 넘어, 본격적인 ‘결실의 시간’을 열어젖히겠습니다. 국민들께서 ‘작년보다 나은 올해’를 삶 속에서 직접 느끼실 수 있도록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쏟아붓겠습니다. 어둠을 물리친 K-민주주의의 찬란한 빛이 국민의 일상 속까지 따스하게 스며들 수 있도록 만들어 내겠습니다. 국민 한 분 한 분의 표정이 더 밝아지는 나라, 대한민국 위상에 걸맞은 삶의 질을 누리는 그런 나라를 향해, 더욱 속도를 높이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 대한민국은 그동안 초고속 산업화 시대의 ‘성공의 공식’을 따라 온 힘을 다해 압축 성장을 일궈냈습니다. 자원이 부족했던 대한민국은 특정 지역, 특정 기업, 특정 계층에 집중 투자하며 세계 10위 경제 대국의 빛나는 성취를 달성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성장전략의 한계가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고도성장을 이끈 ‘성공의 공식’이 우리의 발목을 잡는 ‘성공의 함정’이 되었습니다. 불평등과 격차가 성장을 가로막고 경쟁과 갈등이 격화되는 이 악순환 속에서 자원의 집중과 기회의 편중은 이제 성장의 디딤돌이 아니라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성장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야 합니다. 익숙한 옛길이 아니라 새로운 길로 대전환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대한민국을 대도약의 새로운 미래로 이끌 지름길입니다. 그래서, 다섯 가지 대전환의 길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수도권 중심 성장’에서 ‘지방 주도 성장’으로 대전환하겠습니다. `수도권 1극 체제‘에서 ‘5극 3특 체제’로의 대전환은 지방에 대한 시혜나 배려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재도약을 이끌 필수 전략입니다. 수도권에서 거리가 멀수록 더 두텁게, 더 과감하게 지원하겠습니다. 지난해 완료한 해수부 이전은 시작일 뿐입니다. 서울은 경제 수도로, 중부권은 행정수도로, 남부권은 해양 수도로 대한민국 국토를 다극 체제로 더욱 넓게 쓰겠습니다. 에너지가 풍부한 남부의 반도체 벨트부터 인공지능 실증도시와 재생에너지 집적단지까지, 첨단산업 발전이 지역의 발전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설계할 것입니다. 인재와 기술 양성을 위한 교육투자, 삶의 질을 높여줄 광역교통과 문화시설 투자, 여기에 관광 정책까지 하나로 잇는 집중 투자를 통해 ’지방 주도 성장‘의 기반을 촘촘하게 실현해 내겠습니다. 둘째, ‘일부 대기업 중심 성장’에서 기회와 과실을 고루 나누는 ‘모두의 성장’으로 대전환하겠습니다. 온 국민이 힘을 모아 관세 협상을 성공적으로 타결했지만, 그로 인한 혜택이 일부 대기업 위주로 돌아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연간 수십조 원 규모의 방산, 원전 수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공동체의 역량과 국민 전체의 노력으로 이뤄낸 공동의 경제적 성과가 중소·벤처 기업까지 흐르고, 국민들의 호주머니까지 채워줄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난해 출범한 ‘국민성장펀드’는 국민 누구나 나라의 성장 발전에 투자하고, 성장의 열매를 고루 나눌 수 있는 전환의 마중물이 될 것입니다. 70년대 한국 경제의 성장은 도전하는 기업가 정신이 이끌었고 2000년대 IT 강국으로의 도약은 혁신하는 벤처 정신이 이끌었습니다. AI시대부터 에너지 대전환까지, 기존의 질서가 흔들리는 지금이 ‘창조적 파괴’를 이끌 혁신가들에게는 무한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정부는 ‘고용 중심 사회’에서 ‘창업 중심 사회’로의 전환에 발맞춰 청년 기업인과 창업가들이 자유롭게 담대하게 도전하며 마음껏 혁신의 길을 개척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하겠습니다. 실패가 오히려 성공의 자산이 되어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나라, 어떤 아이디어도 창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스타트업·벤처기업 열풍 시대, 중소기업 전성시대를 열어가겠습니다. 셋째, 생명을 경시하고 위험을 당연시하는 성장에서 안전이 기본인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대전환하겠습니다. ‘산재 사망률 OECD 1위’라는 이 불명예스러운 기록 앞에서 세계 10위 경제 대국이라는 성취는 결코 자랑스러울 수 없습니다. 아침밥 먹여 보낸 가족이 저녁에 돌아오지 못하는 그런 나라에서 경제성장률이 아무리 높다 한들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생명 경시에 대한 비용과 대가를 지금보다 훨씬 비싸게 치를 수 있어야 합니다. 일하고 싶지 않은 위험한 일터로 가득한 나라에서는 기업의 지속적 성장도, 나라의 지속적 발전도 요원합니다. 근로감독관 2천 명 증원, 일터 지킴이 신설을 통해서 안전한 작업환경과 생명 존중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반드시 만들어 가겠습니다. 안전한 일터에서 이뤄낸 성장이야말로 국민 행복을 담보하는 지속 가능한 성장입니다. 네 번째로, 상품만 앞세우는 성장에서 문화가 이끄는 매력적인 성장으로 대전환하겠습니다. K-콘텐츠 수출이 이차전지도 전기차도 넘어서는 시대, 문화에 대한 투자는 사회공헌이 아니라 이제 필수 성장전략입니다. 문화가 곧 경제이자 미래 먹거리이며 국가경쟁력의 핵심 축이 됐습니다. K-팝 팬덤이 K-뷰티 매니아로 성장합니다. K-드라마 시청률이 K-푸드 판매율을 끌어올립니다. 문화를 매개로 산업이 성장하는 선순환이 일어납니다. K-컬처가 한때의 유행에 머무르지 않도록, 대중문화의 뿌리가 되는 기초예술을 비롯해 문화 생태계 전반을 풍성하게 만드는 일에 온 힘을 기울이겠습니다. 9조 6천억 원까지 대폭 증액한 문화 예산을 토대로, K-콘텐츠가 세계 속에 더 넓고 깊게 스며들도록 하겠습니다. 다섯째, 마지막으로 전쟁 위협을 안고 사는 이 불안한 성장에서 평화가 뒷받침하는 안정적인 성장으로 대전환하겠습니다. 굳건한 평화는 성장의 다른 말이고, 튼튼한 안보가 번영의 동력입니다. 적대로 인한 비용과 위험을, 평화가 뒷받침하는 성장으로 바꿔낸다면 지금의 ‘코리아 리스크’를 미래의 ‘코리아 프리미엄’으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남북 간 군사적인 긴장 완화와 신뢰 회복 조치를 일관되게 추진하고, 미국·중국 등 국제사회와 한반도 평화·안정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올해에도 ‘페이스메이커’로서 북미대화를 적극 지원하고 남북 관계 복원을 거듭 모색할 것입니다.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진화한 한미동맹, 강력한 자주국방을 토대로 한반도 평화 공존이 의미 있는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국익 중심 실용 외교’는 세계를 향해 더 넓게 뻗어나갈 것입니다. 글로벌 책임 강국으로서 대한민국의 리더십을 더욱 확고히 하고, 협력을 통한 공동번영의 모델을 세계의 모범으로 만들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앞에서 말씀드린 다섯 가지 대전환의 원칙은 낭만적 당위나 희망 사항이 아닙니다. 성장 발전 전략의 대전환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이 저성장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절박한 호소의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더 이상 머뭇거릴 여유도 없습니다. 이제 실천과 행동의 시간입니다. 2026년이 ‘대전환을 통한 대도약의 원년’으로 기록될 수 있도록, 오직 국민만 믿고 뚜벅뚜벅 나아가겠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지난해 외교무대를 누비며 ‘국력을 키워야겠다’라는 말씀을 자주 드렸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국력이 단지 경제력이나 군사력만을 뜻하진 않습니다. 굴곡진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가 증명하듯 국력의 원천은 언제나 국민이었습니다. 5,200만 국민 한 명 한 명이 행복해질수록, 저마다의 꿈과 희망, 도전이 넘쳐날수록 우리 대한민국의 국력은 더욱 커지는 것입니다. 올 한 해 국민주권정부는 ‘국가가 부강해지면 내 삶도 나아지느냐’는 우리 국민들의 절박한 질문에 더욱 성실하게 응답하겠습니다. 지나간 7개월보다 앞으로의 4년 5개월이 더 기대되는 정부가 되겠습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각오로 작은 변화의 성과들을 하나하나 눈덩이처럼 키워나가겠습니다. 당장의 성과가 보이지 않는 개혁의 과정도 피하지 않겠습니다. 미래를 위한 인내심과 진정성으로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으겠습니다. 이 모든 지난하고 위대한 과업이 국민 통합과 굳건한 국민의 신뢰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서 더욱 겸손한 자세로 국정에 임하겠습니다. 절망의 겨울을 희망의 봄으로 바꿔내신 우리 국민들의 그 저력을 믿습니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께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향한 여정에 함께해 주십시오. 지난해 힘을 모아 민주주의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워낸 것처럼, 이제 전 세계가 따라 배울 ‘성장과 도약의 새로운 표준’을 함께 만들어 냅시다. 대한민국 대도약, 결국 국민이 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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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이재명 대통령 2026년 신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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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인생은 리허설이 없다... ‘적토마’의 기세와 ‘적정선’의 지혜
- [지구일보 이창호 칼럼니스트] 2025년의 한 해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다시금 '생의 유한함'을 마주한다. 러시아의 소설가 도스토옙스키는 사형대 위에서 집행 직전 사면을 받았던 5분간의 기억을 평생의 동력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에게 삶은 다시는 반복되지 않는 절박한 무대였다. 2026년 새해를 맞이하며 우리가 되새겨야 할 첫 번째 문장 역시 이것이다. "인생에는 기필코 리허설이 없다." 우리는 흔히 "준비가 되면 시작하겠다"거나 "다음 기회에 잘하겠다"는 말로 현재를 유예한다. 동서고금 삶은 연습 게임 없는 본 게임이며, 매 순간이 초연(初演)이자 종연(終演)이다. 다가오는 새해,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는 거침없이 대지를 가르는 '적토마(赤兎馬)'의 기개다. 동시에, 그 질주의 끝이 낭떠러지가 되지 않게 하는 '적정선(適正線)'의 철학이다. ■ 적토마의 기세, 주저함을 돌파하는 에너지 적토마는 하루에 천 리를 달리는 기개와 열정을 상징한다. 정체된 시대, 무력감에 빠진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자기 주도적 질주'다. 모범적인 사례로 언급되는 인물 중 하나가 파타고니아의 창업자 이본 쉬나드다. 그는 환경 보호라는 가치를 위해 기업의 이윤을 도구로 사용했다. "준비가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일단 올바른 방향이라면 뛰어들라"는 그의 철학은 적토마의 그것과 닮아 있다. 그는 인생을 리허설로 여기지 않았기에, 내일로 미루지 않고 당장 실천 가능한 환경 운동을 비즈니스에 이식했다.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완벽한 계획을 세우느라 시간을 허비하기보다, 적토마처럼 앞을 향해 발을 내딛는 용기가 필요하다. 망설임은 기회를 잠식하고, 지나간 시간은 결코 되돌아오지 않는다. ■ 적정선의 지혜, 멈춤이 아닌 ‘최적의 균형’ 우리는 무조건적인 질주가 미덕인 시대는 지났다. 적토마의 속도감을 유지하되, 나를 파괴하지 않는 '적정선'을 찾는 것이 더 멋진 삶을 위한 핵심이다. 여기서 말하는 적정선은 게으름이나 타협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한계를 인지하고,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지략적 멈춤'이다. 최근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 잡은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이나 '워라밸'에 대한 논의도 본질적으로는 이 적정선에 대한 탐구다. 하지만 진정으로 모범적인 사례는 북유럽의 '라곰(Lagom)'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너무 많지도, 너무 적지도 않은' 상태를 지향하는 이 가치는, 일터에서의 몰입과 가정에서의 휴식 사이에서 정교한 선을 긋는다. 예를 들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생활 양식을 보라. 그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 일정량의 글을 쓰고, 정해진 시간에 달리기를 한다. 더 쓸 수 있는 에너지가 남아 있어도 그는 '적정선'에서 멈춘다. 그 멈춤이 있기에 그는 수십 년간 현역으로 질주하는 적토마가 될 수 있었다. 과잉된 열정으로 스스로를 태워버리는 '번아웃'은 리허설 없는 인생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불상사다. ■ 더 멋진 삶을 위한 연대와 성찰 인생이 리허설이 아니라는 자각은 우리를 겸허하게 만든다. 내가 내뱉은 말, 내가 행한 선택이 곧 나의 역사(歷史)가 되기 때문이다. 2026년, 우리의 주권 사회는 각자도생의 시대를 넘어 서로의 적정선을 존중하는 인류 공동체적 감각이 절실하다. ▪︎나 자신에게는 적토마의 용기를, 실패를 두려워해 시도조차 하지 않는 패배주의를 걷어내야 한다. ▪︎타인에게는 적정선의 예의를, 타인의 삶에 과하게 개입하거나 나의 기준을 강요하지 않는 '관계의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사회적으로는 지속 가능한 속도를, 성과 지상주의에 매몰되어 구성원의 영혼을 갈아 넣는 구조를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인생이라는 위대한 무대 위에 선 주연 배우다. 관객은 바로 나 자신이며, 커튼콜은 단 한 번뿐이다. 적토마처럼 뜨겁게 달리되, 적정선을 아는 차가운 이성을 잃지 말자. ■ 뜨거운 심장과 냉철한 발걸음 새해는 단순히 달력의 숫자가 바뀌는 날이 아니다. 리허설 없는 우리 생의 새로운 막이 오르는 순간이다. "적당히 살자"는 말이 비겁한 변명이 아니라, "가장 나다운 속도를 유지하겠다"는 결단이 될 때 우리의 삶은 비로소 멋져진다. 맹목적인 속도전에서 벗어나 나만의 궤적을 그리는 적토마가 되자. 그 질주 속에 나를 돌보는 적정선이 살아 숨 쉴 때, 우리는 비로소 후회 없는 삶의 예술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026년, 당신의 무대는 이미 시작되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이 소중한 생의 현장에서, 당신만의 멋진 레이스를 펼치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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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인생은 리허설이 없다... ‘적토마’의 기세와 ‘적정선’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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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정적(政敵)’까지 끌어안는 탕평, 공자의 ‘거현(擧賢)’ 정신으로 완성되어야
- [지구일보 이창호 발행인] 이재명 기획예산처의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으로 국민의힘 출신 이혜훈 전 의원이 거론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는 진영 논리에 매몰되어 ‘코드 인사’와 ‘보은 인사’가 횡행하던 우리 정치사에서, 야당 중진 출신의 경제 전문가를 국정의 핵심 보직에 기용하려는 시도는 그 자체로 파격이자 신선한 충격이다. 공자(孔子)는 일찍이 논어(論語) ‘자로(子路)’ 편에서 정치를 묻는 제자에게 “먼저 유관 부서의 관리를 살피고, 작은 과실을 용서하며, 현명한 인재를 등용하라(先有司, 赦小過, 擧賢才)”고 답했다. 여기서 핵심은 ‘거현재(擧賢才)’, 즉 진영과 계파를 떠나 오직 실력과 덕망을 갖춘 인재를 뽑아 쓰는 데 있다. 이혜훈 전 의원은 자타가 공인하는 ‘경제통’이다. KDI 연구위원을 거쳐 국회에서 예결위와 기재위 등 경제 관련 핵심 상임위에서 잔뼈가 굵었다. 특히 합리적 보수의 가치를 지키면서도 시장의 원리와 복지의 균형을 고민해 온 인물이다. 국가 재정의 건전성을 수호하면서도 민생의 고통을 덜어내야 하는 기획예산처의 수장으로서 전문성만큼은 부족함이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이번 인사가 단순한 ‘보여주기식 협치’나 야당 세력 약화를 위한 ‘진영 흔들기’에 그쳐선 안 된다. 공자는 “군자는 화합하되 동화되지 않고, 소인은 동화되되 화합하지 못한다(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고 했다. 진정한 탕평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데려다가 내 편으로 만드는 ‘동(同)’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국가적 대업을 위해 머리를 맞대는 ‘화(和)’여야 한다. 이 전 의원의 등용이 현실화된다면, 이는 이재명 정부가 추구하는 이념적 지평이 단순히 ‘좌(左)’에 머물지 않고 국익이라는 거대한 바다로 나아가겠다는 신호탄이 되어야 한다. 기획예산처는 국가의 곳간을 관리하는 곳이다. 인기영합주의적 포퓰리즘을 경계하고,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위한 예산 배분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인사보다, 정권의 실책을 직언할 수 있는 ‘반대편의 인재’가 더 절실할 수 있다. 야당 또한 이를 ‘배신’이나 ‘야합’의 프레임으로만 바라볼 일이 아니다. 인재가 국가를 위해 쓰이는 것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 공자는 “현자를 등용하면 백성이 복종한다(擧直錯諸枉, 則民服)”고 했다. 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은 결국 누가 더 국가의 위기를 해결할 적임자를 내세우느냐에 달려 있다. 이재명 정부는 이번 인사가 정략적 수사가 아닌, 진정한 ‘거현(擧賢)’의 실천임을 증명해야 한다. 인재를 얻는 것은 천하를 얻는 것과 같다. 만약 이 전 의원이 초대 장관으로서 소신 있게 예산의 기틀을 잡을 수 있는 환경을 보장받는다면, 그것이야말로 갈등의 정치를 끝내고 ‘대화와 상생’의 정치를 여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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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정적(政敵)’까지 끌어안는 탕평, 공자의 ‘거현(擧賢)’ 정신으로 완성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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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칼럼=자기계발] 비전과 실행의 함수, 기적을 만드는 행동의 메커니즘
- [지구일보]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폴 부르제의 이 말은 현대인들에게 단순하지만 강렬한 진리를 시사합니다. 우리가 가슴 속에 품은 원대한 '비전'이 단순한 공상에 머물지 않고 현실의 '기적'으로 치환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사이를 잇는 강력한 촉매제인 '행동'이 필요합니다. ● 비전, 뇌에 새기는 미래의 설계도 비전은 단순히 "부자가 되고 싶다"거나 "유명해지고 싶다"는 막연한 욕망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상태를 구체적으로 시각화하고, 그 가치를 명확히 규정하는 정신적 이정표입니다. 심리학적으로 비전을 갖는다는 것은 우리 뇌의 '망상활성계(RAS)'를 활성화하는 작업입니다. RAS는 수많은 정보 중 우리에게 중요한 정보만을 필터링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명확한 비전을 세우는 순간, 우리 주변에 널려 있던 기회와 자원들이 비로소 유의미하게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운'이나 '기적'의 첫 번째 단추입니다. ● 행동, 관성을 깨는 임계점의 돌파 많은 이들이 비전을 세우는 단계에서 멈춥니다. 하지만 기적은 책상 위가 아니라 현장에서 일어납니다. 요컨대 물이 99도에서 100도가 되는 순간 끓기 시작하듯, 현실의 변화를 끌어내는 데는 반드시 '행동의 임계점'을 넘어서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저항의 최소화,거창한 시작보다는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실행해야 합니다. 행동이 반복되면 습관이 되고, 습관은 뇌의 에너지를 덜 쓰게 하여 지속 가능성을 높입니다. ▪︎피드백의 루프, 행동은 곧 데이터를 생성합니다. 계획만 세울 때는 알 수 없었던 문제점과 해결책이 행동을 통해 드러납니다. 이 수정 과정이 반복될 때 비전은 더욱 견고해집니다. ● 왜 '반드시' 기적이 일어나는가? 우리가 '기적'이라 부르는 현상은 사실 축적된 노력과 우연의 일치(Serendipity)가 만나는 지점에서 발생합니다. 비전을 갖고 행동하는 사람은 단순히 한 방향으로 걷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과 연결되고 새로운 변수를 창출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확률이 '0'이지만, 행동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작은 가능성이라도 존재합니다. 또 그 행동이 지속될 때, 확률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으로 상승하며 마침내 우리가 기적이라 부르는 결과에 도달하게 됩니다. ● 지금 당신의 발끝을 보십시오 비전은 먼 하늘에 있지만, 발은 땅을 딛고 있어야 합니다. 거창한 담론에 매몰되어 오늘 할 일을 미루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적은 준비된 자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자에게 찾아오는 선물입니다. 오늘 당신이 내딛는 작은 한 걸음은 내일의 거대한 파동을 만드는 시작점이 될 것입니다. 당신의 비전이 살아 숨 쉬는 행동으로 이어질 때, 세상은 당신을 돕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기적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비전과 실행이 결합한 필연적 결과입니다. ▲ 글/사진: 이창호(李昌虎)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겸 국제다자외교평의회 대표(의장), 한중기자연맹 회장, 중국 곡부사범대학 겸직교수, 위해직업대학 객좌교수, 허베이미술대학 명예/종신교수, Marquis Who’s Who 등재 저자, 《새 시대를 이끄는 시진핑과 한중관계》 저자. [붙임] 이 기사가 마음에 닿으셨다면, 주변의 작은 광고 한 번 눌러 주시면 힘이 됩니다. 독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더 나은 기사와 정직한 보도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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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칼럼=자기계발] 비전과 실행의 함수, 기적을 만드는 행동의 메커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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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획] 억겁의 시간 너머 맞닿은 ‘한 뿌리 다른 꽃’, 설과 춘절의 사회학
- [지구일보 이창호 eorlwk] 입춘대길(立春大吉)의 묵향이 채 가시기도 전, 동아시아의 대지는 다시 한번 거대한 이동의 물결에 요동친다. 한국의 ‘설’과 중국의 ‘춘절(春节)’. 달의 주기를 따라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이 두 명절은 유교적 문화권이라는 거대한 자장(磁場) 안에서 태동했으나, 각기 다른 역사적 토양 위에서 서로 다른 빛깔의 꽃을 피워냈다. 단순히 ‘쉬는 날’을 넘어 한 민족의 정체성과 가족 공동체의 원형을 확인하는 이 두 명절의 이면에는 어떤 문화적 기호가 숨겨져 있을까. ● 고요한 성찰의 시간, 한국의 ‘설’ 한국의 설은 ‘삼가다’라는 뜻의 ‘사리다’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새해의 첫날을 그저 들뜬 축제로 맞이하기보다, 몸가짐을 정돈하고 경거망동을 삼가며 한 해의 운수를 경건히 맞이하려는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한국 설의 핵심은 ‘수직적 결합’과 ‘내면적 위로’에 있다. 이른 아침, 정갈하게 차려낸 차례상 앞에서 조상을 기리는 마음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정신적 가교'다.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올리는 세배는 단순한 용돈 벌이가 아닌, 세대 간의 내밀한 축복이자 질서의 확인이다. 음식에서도 그 성격이 드러난다. 흰 떡국 한 그릇은 지난날의 묵은 때를 벗고 백지 위에 새로운 일기를 써 내려가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다. 한국의 설은 왁자지껄한 소음보다는 가족들이 둘러앉아 덕담을 나누는 낮은 목소리의 온기로 채워진다. 이는 농경 사회의 공동체 의식을 유지하면서도 개별 가문의 가풍을 중시했던 한국 특유의 유교 문화가 투영된 결과다. ● 거대한 생명력의 폭발, 중국의 ‘춘절’ 반면 중국의 춘절은 ‘수평적 확장’과 ‘역동적 환희’의 무대다. 고대 전설 속 괴물 ‘년(年)’을 쫓아내기 위해 붉은 종이를 붙이고 폭죽을 터뜨리던 풍습에서 기원한 만큼, 춘절의 기운은 강렬하고 뜨겁다. 중국인들에게 춘절은 겨울의 끝과 봄의 시작을 알리는 거대한 선언이다. 집집마다 붙이는 ‘춘련(春联)’과 거리를 수놓는 홍등(紅燈)은 복(福)이 들어오길 바라는 적극적인 염원의 산물이다. 한국의 설이 차분한 묵조(默照)의 시간이라면, 중국의 춘절은 온 세상이 붉게 타오르는 축제의 시간이다. 특히 춘절 음식인 ‘교자(饺子)’는 그 형태가 옛 화폐인 원보(元寶)를 닮아 부(富)를 기원하는 세속적이고도 솔직한 욕망을 담고 있다. 가족이 모여 만두를 빚으며 밤을 지새우는 ‘수세(守歲)’ 풍습은 거대한 대륙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확인하고 서로의 생존을 축하하는 강인한 생명력의 표출이기도 하다. ● 자본주의와 만난 전통, 그리고 변치 않는 가치 21세기에 들어서며 '설과 춘절'은 거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한국의 ‘명절 증후군’과 중국의 ‘춘운(春運, 춘절 대이동)’은 현대 사회가 전통 명절에 부과한 피로도를 여실히 보여준다. 작금 핵가족화를 넘어 1인 가구가 보편화된 시대, "가족이 반드시 모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사회적 화두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전히 설과 춘절을 기다리는 이유는 명확하다. 속도와 효율만이 강조되는 무한 경쟁의 궤도에서 잠시 내려와, 나의 뿌리를 확인하고 타인(가족)의 안부를 묻는 '인간적인 시간'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떡국 한 그릇과 중국의 교자 한 접시는 결국 같은 메시지를 던진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며, 다시 시작할 기회가 있다"는 위로 말이다. 설과 춘절은 단순한 역법상의 날짜가 아니다. 그것은 '억겁의 세월' 동안 동아시아인의 DNA에 각인된 '회귀(回歸)'의 본능이며, 차가운 겨울을 뚫고 올라오는 봄의 전령사다. 형상은 다르되 본질은 하나인 이 두 명절을 통해, 우리는 다시금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 글/사진: 이창호(李昌虎)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겸 국제다자외교평의회 대표(의장), 한중기자연맹 회장, 중국 곡부사범대학 겸직교수, 위해직업대학 객좌교수, 허베이미술대학 명예/종신교수, Marquis Who’s Who 등재 저자, 《새 시대를 이끄는 시진핑과 한중관계》 저자. [붙임] 이 기사가 마음에 닿으셨다면, 주변의 작은 광고 한 번 눌러 주시면 힘이 됩니다. 독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더 나은 기사와 정직한 보도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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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획] 억겁의 시간 너머 맞닿은 ‘한 뿌리 다른 꽃’, 설과 춘절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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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 질문 능력이 곧 경쟁력인 이유
- [지구이창호 소통전문가] 시장은 더 이상 정답을 빨리 찾는 사람에게 보상을 주지 않는다. 이미 알려진 답은 값이 싸지고, 복제는 순식간에 이뤄진다. 오늘날 경쟁력을 가르는 기준은‘얼마나 많이 아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묻느냐’에 있다. 질문의 수준이 사고의 깊이를 결정하고, 그 깊이가 곧 수익의 구조를 바꾼다. 성공한 비즈니스의 출발점을 거슬러 올라가면, 대부분 하나의 질문에 닿는다. “이걸 더 싸게 만들 수 있을까?”가 아니라 “사람들은 왜 불편함을 참고 있을까?”, “고객은 진짜로 무엇을 포기하고 있는가?” 같은 질문이다. 창의적 사고란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남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전제를 의심하는 능력에 가깝다. 질문을 잘하는 사람은 문제를 다르게 정의한다. 같은 시장을 보더라도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하는 사람과 ‘아직 충족되지 않은 틈이 있다’고 묻는 사람의 결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돈은 노력의 양보다 문제 설정의 정확도에 반응한다. 그래서 질문은 곧 전략이 된다. 교육 현장과 조직 문화에서도 질문은 종종 불편한 존재다. 질문은 속도를 늦추고, 기존 질서를 흔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질문이 사라진 조직은 곧 혁신을 잃는다. 상명하달식 보고는 유지될지 몰라도, 새로운 수익 모델은 태어나기 어렵다. 질문을 허용하지 않는 구조에서는 창의성도, 성장도 지속되기 힘들다. 개인에게도 마찬가지다. “무엇을 더 배워야 할까”보다 “이 배움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가”를 묻는 순간, 공부는 비용이 아니라 투자로 바뀐다. 질문이 명확해질수록 선택은 줄어들고, 집중은 깊어진다. 이것이 질문이 돈이 되는 이유다. 결국 질문 능력은 타고나는 재능이 아니라 훈련의 결과다. 매일 접하는 정보 앞에서 한 번 더 묻는 습관, 당연함에 잠시 멈춰 서는 용기다. 그리고 불편한 질문을 회피하지 않는 태도. 이 작은 차이가 장기적으로는 경쟁력의 격차를 만든다. 답은 누구나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좋은 질문은 언제나 희소하다. 그리고 시장은 늘 희소한 것에 값을 매긴다. 글/사진 : 이창호 이창호스피치리더십연구소 대표, 대한명인(연설학), 스피치마스터의 생산적 말하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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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 질문 능력이 곧 경쟁력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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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겻불을 거부하는 자부심, 지금 우리에게 '선비 정신'은 있는가
- [지구일보 이창호 발행인] 오늘날의 효율 지상주의와 실용주의 관점에서 보면 이 말은 고리타분한 고집이나 시대착오적인 결벽증으로 읽힐지 모른다. 당장 얼어 죽을 판에 겨를 태운 보잘것없는 불이면 어떻고, 남이 쓰다 버린 온기면 어떠냐는 반문이 뒤따른다. 하지만 이 서늘한 문장 속에 담긴 본질은 단순히 추위를 참는 인내심에 있지 않다. 그것은 '비루하게 사느니 나의 긍지를 지키겠다'는 자기 원칙이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결과 중심 사회를 향한 준엄한 경고다. ◇ 겻불의 유혹, 원칙을 팔아 치우는 시대 우리가 사는 작금의 현실은 어떠한가. '겻불'이 도처에 널려 있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과정의 정의로움 따위는 생략해도 좋다는 식의 결과론적 사고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권력이라는 겻불을 쬐기 위해 어제의 신념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정치인, 부(富)라는 온기를 얻기 위해 타인의 눈물을 외면하는 자본, 그리고 대중의 관심을 얻기 위해 가짜 뉴스와 혐오를 생산하는 미디어까지 말이다. 과연 이들에게 '선비의 지조'는 조롱의 대상일 뿐이다. "일단 살고 봐야지",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는 식의 타협안은 우리 시대의 알량한 기준이 되었다. 그러나 겻불은 잠깐의 온기만 줄 뿐, 몸속 깊은 곳의 한기를 몰아내지 못한다. 오히려 겻불에 몸을 녹이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옷'이 타들어 가는지도 모른 채 비굴한 안락함에 중독되고 만다. ◇ 선비 정신은 '자기 증명'의 기록이다 선비가 겻불을 거부한 이유는 그것이 '나의 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얻은 혜택, 구걸하듯 얻어낸 온기는, 결국 자신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행위임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주체적 자존감'의 문제와 직결된다. 진정한 리더와 깨어 있는 시민은 겻불 대신 스스로 장작을 패고 불을 지피는 고통을 선택한다. 비록 그 과정이 더디고 춥더라도, 스스로 일궈낸 온기만이 개인과 조직을 당당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원칙을 지키느라 겪는 고난은 '상처'가 아니라 위대한 '훈장'이다. 얼어 죽을지언정 겻불을 쬐지 않겠다는 결기는,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내면의 기둥을 세우는 작업이다. ◇ 타협의 미덕이라는 가면을 벗겨라 현대 사회는 갈등 조율이라는 명목하에 '타협'을 미화한다. 물론 민주주의 사회에서 합의는 중요하다. 그러나 결코 타협해서는 안 될 가치마저 겻불과 맞바꾸는 것은 합의가 아니라 '투항'이다.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는 수많은 부조리는 리더들이 '겻불의 유혹' 앞에 무릎을 꿇었을 때 발생했다. 공정의 도덕적 가치를 훼손하면서 얻은 성과, 정의를 외면하며 쌓아 올린 평화는 모두 겻불에 불과하다. 그것은 언젠가 재만 남기고 사라질 허상이며, 그 재는 결국 우리 사회의 눈을 멀게 할 것이다. 선비 정신은 바로 그 지점에서 빛을 발한다. 모두가 겻불 주위에 모여들어 서로의 등을 다독일 때, 홀로 찬 바람을 맞으며 '이 길은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그 용기가 우리 사회의 마지막 도덕적 규범이 되어야 한다. ◇ 다시, 겻불 앞에 서서 우리는 저마다의 추위 속에 살고 있다. 불확실한 미래, 치열한 경쟁, 생존의 위협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겻불을 쬐라고 유혹한다. 게다가 "딱 한 번만 눈 감으면 따뜻해질 수 있다"는 속삭임은 달콤하다. 그러나 기억해야 한다. 겻불을 쬐는 순간,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주인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조금 춥더라도, 조금 외롭더라도 자신의 불꽃을 지키며 꼿꼿이 서 있는 이들이 있을 때 사회는 비로소 품격을 갖춘다. 지금 당신의 눈앞에 놓인 그 온기는 정당한가? 혹시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한, 혹은 자신의 양심을 태워 만든 겻불은 아닌가? 얼어 죽을지언정 겻불은 쬐지 않겠다는 그 준엄한 기개가 있어야한다. 또 역설적으로는 우리 사회를 가장 따뜻하고 존엄하게 만드는 원동력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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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겻불을 거부하는 자부심, 지금 우리에게 '선비 정신'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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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 이창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 ‘우리들의 이순신’을 다녀왔다.
- [지구일보]= 『이순신 리더십』의 저자인 이창호는 이 전시를 단순한 역사 관람이 아니라, 오늘의 사회가 다시 묻고 답해야 할 리더십의 본질을 성찰하는 자리로 받아들였다. 박물관의 정제된 공간 속에서 이순신은 위대한 영웅의 초상으로만 서 있지 않았다. 그는 불확실성과 분열의 시대를 건너온 한 인간이자,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 자신을 낮추고 원칙을 지켜낸 지도자로 호흡하고 있었다. 전시는 익숙한 전공(戰功)의 서사보다, 기록과 생활의 결을 통해 이순신을 다시 불러낸다. 난중일기의 문장들은 과장 없는 언어로 고통과 책임의 무게를 전하고, 전술과 장비의 디테일은 승리의 조건이 기적이 아니라 준비와 절제였음을 증명한다. 이창호저자는 이 지점에서 리더십의 핵심을 읽는다. 위기는 우연히 극복되지 않으며, 신뢰는 말이 아니라 일상의 축적에서 형성된다는 사실이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우리들의’라는 복수형이 던지는 질문이다. 이순신은 과거의 인물이지만, 오늘의 시민과 조직, 국가가 함께 소환해야 할 가치의 총합으로 제시된다. 권한이 아니라 책임으로, 성과가 아니라 과정으로 리더를 평가하라는 메시지는 전시 전반에 잔잔히 흐른다. 이창호저자가 오래 천착해 온 ‘원칙의 리더십’은 이 전시에서 생생한 역사적 근거를 얻는다. 흔들리는 정국 속에서도 법과 질서를 버리지 않았던 선택, 공을 독점하지 않고 실패를 홀로 감내했던 태도는 지금도 유효하다. 전시는 또한 이순신을 신화화하지 않는다. 좌절과 오판의 흔적을 숨기지 않음으로써, 리더의 인간적 한계를 인정하는 성숙한 시선을 제시한다. 그 한계 위에서 더 단단해진 절제와 배려가 공동체를 지켜냈다는 서사는, 경쟁과 속도가 미덕이 된 오늘에 묵직한 반문을 던진다. 빠른 결정이 아닌 올바른 판단, 강한 통제가 아닌 공정한 신뢰가 위기의 파고를 넘는 힘이라는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이 전시는 과거를 기념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오늘의 언어로 번역된 이순신은 우리에게 선택을 요구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어떤 기준으로 결정할 것인가, 누구를 위해 책임질 것인가. 이창호의 발걸음이 오래 머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순신은 박물관 유리 진열장 속에 있지 않았다. 우리의 일상과 제도, 그리고 리더의 태도 속에서 다시 살아나야 할 현재진행형의 이름이었다. ‘우리들의 이순신’은 그래서 조용하지만 강하다. 영웅의 찬가가 아니라 시민의 교과서로서, 이 전시는 오늘의 한국 사회가 되새겨야 할 리더십의 좌표를 또렷이 찍는다. 역사는 기억될 때 힘을 얻고, 리더십은 실천될 때 증명된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난 이순신은 그 오래된 진실을 변함없이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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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 이창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 ‘우리들의 이순신’을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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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광장] '가짜뉴스'의 독버섯 유튜버, 대한민국 법치는 살아있다… 무관용 원칙으로 엄단해야
- [지구일보 이정대 기자] 대한민국이 '유언비어 공화국'으로 침몰하고 있다. 특히 유튜버라는 거대 플랫폼을 등에 업고 확인되지 않은 허위 사실을 마치 진실인 양 포장해 유포하는 '가짜 유튜버'들의 행태가 이미 임계점을 넘어섰다. 타인의 인격과 명예를 난도질하며 조회수를 갈취하고, 이를 통해 막대한 광고 수익을 챙기는 이들의 행태는 언론의 자유라는 신성한 가치를 더럽히는 '기생충적 범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는 이 시점에서 분명히 경고한다. 법은 결코 만만하지 않으며, 온라인상의 무법지대 또한 영원할 수 없다. 유언비어로 점철된 유튜브 영상을 제작·유포한 자들은 반드시 법의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현재 대한민국 법체계는 가짜 유튜버들을 응징하기 위한 다각적인 법적 수단을 완비하고 있다. 첫째, 형사처벌의 칼날… '정보통신망법'의 엄중함이다. 강력한 제재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 제70조다.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공연하게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이는 일반 형법상의 명예훼손보다 훨씬 무거운 처벌이다. 전파 속도가 무한대에 가깝고 파괴력이 치명적인 온라인의 특성을 고려한 입법 취지다.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폭로 뒤에 숨으려는 자들은 기억하라. 당신들이 누른 '업로드' 버튼은 스스로의 감옥 문을 여는 열쇠가 될 수 있다. 또, 특정인의 업무를 방해할 목적이 인정될 경우 '업무방해죄'로도 처단이 가능하다. 둘째, 경제적 파멸을 부르는 민사상 손해배상 형사처벌이 신체의 자유를 구속한다면, 민사 소송은 가짜뉴스로 벌어들인 부당한 이익을 환수하고 그 이상의 대가를 치르게 해야한다. 최근 우리나라 법원은 허위 사실 유포로 인한 피해에 대해 배상액을 현실화하는 추세다. 특히 악의적이고 반복적인 허위 사실 유포에 대해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의 논리가 강력하게 대처해야한다. 피해자는, 유튜버를 상대로 정신적 위자료는 물론, 그로 인해 발생한 경제적 손실 전액을 청구를 해야한다. "벌금 내고 말지"라는 안일한 생각은 큰 오산이다. 민사상 불법행위 책임은 파산 선고를 받더라도 면책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날조 유튜버의 평생을 따라다니는 '경제적 족쇄'가 될 것이다. 셋째, 플랫폼 제재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역할이다 국가 권력뿐만 아니라 플랫폼 자체의 제재도 강화되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통해 해당 영상의 삭제나 접속 차단을 요청할 수 있으며, 유튜브 본사에 대한 직접적인 신고를 통해 수익 창출을 중단시키거나 채널을 영구 폐쇄(계정 해지)하는 조치도 실효를 거두고 있다. 최근 수사기관은 해외에 서버를 둔 구글(유튜브)과의 공조를 통해 익명 뒤에 숨은 가해자의 신원을 특정하는 역량을 비약적으로 높였다. '익명의 그늘'은 이제 더 이상 도피처가 아니다. 국가적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타인의 삶을 파괴하면서 사익을 취하는 행위를 방치하는 것은 국가의 직무유기다. 수사당국은 이들 유언비어 유포자들을 반사회적 범죄자로 규정하고, 고소·고발이 없더라도 적극적인 인지수사에 나서야 한다. 법은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하에 관대한 처벌을 내리던 구태에서 벗어나, 일벌백계(一罰百戒)의 자세로 판결을 내려야 할 것이다. 독자 여러분 또한 경계해야 한다. 자극적인 썸네일과 검증되지 않은 폭로에 열광하는 순간, 당신 또한 가짜뉴스의 공범이 될 수 있다. 건강한 비판은 민주주의의 자양분이지만, 악의적인 날조는 인류공동체를 파괴하는 독약이다. 우리 사회가 가짜 유튜버라는 독버섯을 도려내고, 정의로운 법치를 확립하는 길로 가야한다. 피해를 입었다면 즉시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 증거를 채집하고 법적 대응에 나서라. 법은 잠자는 자를 보호하지 않으며, 동시에 정의를 위해 싸우는 자에게는 가장 강력한 방패가 되어줄 것이다. 가짜 유튜버들에게 다시 한번 경고한다. 거짓의 혀로 쌓은 성은 기필코 무너진다. 법의 심판대가 당신 앞에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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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광장] '가짜뉴스'의 독버섯 유튜버, 대한민국 법치는 살아있다… 무관용 원칙으로 엄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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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건강 칼럼] 스마트폰이 주치의? ‘디지털 헬스’가 시니어의 소외가 되지 않으려면...
- [지구일보 이강문 건강리포터] 65세, 통계청이 정의하는 고령층의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대면하게 되는 현실은 생각보다 냉혹하다. 몸의 여기저기서 보내는 이상 신호는 '노화'라는 이름의 불가항력적인 통지서처럼 날아든다. 과거의 노년이 단순히 쇠락을 견디는 시간이었다면, 2026년 현재의 노년은 기술의 힘을 빌려 그 쇠락의 속도를 제어하고 삶의 질을 재정의하는 ‘능동적 관리’의 시대로 진입했다. 그 중심에는 우리 손 안의 작은 기기, 스마트폰이 있다. ■ ‘근육 연금’만큼 중요한 ‘데이터 저축’의 시대 최근 의료계와 IT 업계가 주목하는 것은 ‘디지털 헬스케어’다. 특히 65세 이상의 시니어들에게 손목 위의 스마트워치는 단순한 시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24시간 심박수를 체크하고, 수면의 질을 분석하며, 예기치 못한 넘어짐을 감지해 긴급 메시지를 보낸다. 이제 건강 관리는 병원 문턱을 넘을 때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모든 움직임이 데이터로 기록되는 과정에서 완성된다. 스마트 기기를 활용한 건강 관리는 이른바 ‘건강의 민주화’를 가져올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과거에는 고가의 정밀 검사를 통해서만 알 수 있었던 신체 변화를 이제는 누구나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전송되는 활동량 리포트는 시니어들에게 “오늘 30분만 더 걸어보자”는 구체적인 동기를 부여한다. 기록된 데이터가 쌓여 '나만의 건강 지도'가 만들어질 때, 노년의 불안은 관리가능한 통제권 안으로 들어온다. ■ ‘디지털 격차’라는 새로운 건강 불평등 하지만 기술의 장밋빛 전망 뒤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이를 향유하는 층과 소외되는 층 사이의 이른바 ‘디지털 헬스 디바이드(Digital Health Divide)’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스마트폰 앱의 복잡한 UI(사용자 환경) 앞에서 좌절하는 시니어들에게 “스마트워치로 혈압을 관리하라”는 조언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대한기자신문이 주목해야 할 지점도 바로 여기다. 건강관리의 주도권이 디지털로 옮겨가면서, 기기 숙련도가 낮은 빈곤층이나 소외계층 시니어들은 보건의료 서비스의 사각지대로 더 깊숙이 밀려나고 있다. 최신 스마트워치가 고독사를 방지하고 만성질환을 예방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는 그저 '비싸고 다루기 힘든 시계'에 머물러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개인의 정보 습득 능력을 넘어, 국가가 해결해야 할 새로운 형태의 건강 불평등 문제다. ■ 기술은 도구일 뿐, 핵심은 ‘연결’과 ‘돌봄’ 결국 스마트폰이 진정한 주치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기술의 인간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단순히 기기를 보급하는 것을 넘어, 시니어들이 자신의 데이터를 스스로 해석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 디지털 문해력(Literacy) 교육이 공공 서비스 차원에서 강화되어야 한다. 또, 기기가 내뱉는 수치보다 중요한 것은 그 수치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대면 돌봄’과의 결합이다. 스마트워치가 심장 이상을 감지했을 때 이를 즉각적으로 해석해 줄 지역사회 보건소의 전담 인력이 있고, 이상 수치가 발견되었을 때 안부를 물어줄 이웃이 존재할 때 기술은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다. 65세 이후의 삶은 더 이상 뒷방으로 물러나는 시간이 아니다. 스마트 기기를 통해 내 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데이터로 증명되는 활기찬 일상을 영위하는 것은 시니어의 권리다. 기술은 차가운 금속과 회로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것이 지향하는 바는 인간의 존엄한 노년이어야 한다. '스마트한 65세'는 단순히 기기를 잘 다루는 사람이 아니라, 기술을 도구 삼아 자신의 삶을 끝까지 책임지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이제 고령층의 손에 스마트폰을 쥐여주는 것을 넘어, 그 안의 데이터가 그들의 생명을 지키는 실질적인 안전망이 될 수 있도록 촘촘한 ‘디지털 복지’ 설계를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꿈꾸는 100세 시대의 건강한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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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건강 칼럼] 스마트폰이 주치의? ‘디지털 헬스’가 시니어의 소외가 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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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이재명 대통령 2026년 신년사
- [서울=지구일보] 이강문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은 2026년 병오년(丙午年) 새해 첫날 신년사를 통해 국정 운영의 분명한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국민주권 정부가 지향하는 목표는 명확하다”며 “붉은 말이 대지를 가르듯, 힘차게 전진하는 한 해를 만들어 2026년을 ‘대한민국 대도약의 출발점’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그동안 국민이 감내해 온 인내와 노력이 이제는 성과로 이어져야 할 시점임을 강조하며, “회복의 단계를 넘어 실질적인 결실을 거두는 시대로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이번 신년사는 취임 이후 처음으로 발표한 공식 신년 메시지로, 집권 2년 차를 맞아 국정 전반에 대한 책임 의식과 미래 비전을 함께 담아냈다는 평가다. 특히 그는 국가 정상화와 민생 안정에 머무르지 않고, 구조적 성장과 도약을 통해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 경로를 열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단기 성과에 그치지 않는 지속 가능한 발전, 그리고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가 2026년 국정 운영의 핵심이 될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다음은 이 대통령 신년사 전문. 사랑하고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붉은 말의 해, 병오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해 정부를 믿고, 함께 위기의 파도를 건너 주신 우리 국민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부터 전합니다. 허물을 벗고 다시 태어나는 ‘푸른 뱀’의 해, 을사년은 우리 모두에게 걱정과 불안을 이겨낸 회복과 정상화의 시간이었습니다. 내란으로 무너진 나라를 복구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했습니다. 신속한 추경, 민생 회복 소비 쿠폰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소비심리는 7년 7개월 만에 최고 수준을 회복했고, 경제성장률 또한 상승 추세입니다. 주식시장은 코스피 4,000을 돌파했고 수출은 연간 7,000억 달러의 새로운 기록을 세웠습니다. 우려 섞인 좌절이 기대 섞인 전망으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어렵게 확보한 GPU 26만 장, 150조 원에 달하는 국민성장펀드, 여야가 합의한 ‘AI시대의 첫 예산안’은 첨단산업과 중소벤처기업 발전을 뒷받침할 중요한 발판이 될 것입니다. ‘민주 대한민국’의 국제사회 복귀와 ‘국익 중심 실용 외교’는 성장과 도약을 향한 우리의 지평을 크게 넓혔습니다. 특히 미국과의 관세 협상 타결로 우리 경제를 짓누르던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해소되었다는 점도 고무적입니다. 핵 추진 잠수함 건조부터 우라늄 농축,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대까지, 르네상스를 맞이한 우리 한미동맹이 경제 부흥의 든든한 뒷받침이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희망적인 변화는 ‘빛의 혁명’으로 입증된 주권자의 집단지성이 국정 운영의 중심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국민추천제, 국민사서함, 타운홀미팅부터 국무회의와 업무보고의 생중계까지, 국민과의 직접 소통을 일상으로 만들고, 국정의 투명성을 높이는 혁신을 앞으로도 결코 멈추지 않겠습니다. 자랑스러운 국민 여러분, 여러분께서 마음을 모아주신 덕분에 무너진 민생경제와 민주주의를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겨우 출발선에 섰을 뿐입니다. 남들보다 늦은 만큼 이제 더 빠르게 달려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2026년 새해, 국민주권 정부의 목표는 분명합니다. 올 한 해를 붉은 말처럼 힘차게 달리는 해로, ‘대한민국 대도약의 원년’으로 만들겠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외교, 안보 등 모든 분야에서 대대적인 도약과 성장을 반드시 이뤄내겠습니다. 대도약을 통한 성장의 과실은 특정 소수가 독식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나눌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사회 곳곳에 남아있는 편법과 불공정을 확실히 없애고 ‘반칙과 특권 없는 사회’를 만드는 일에도 매진하겠습니다. 국가만 부강하고 국민은 가난한 것이 아니라 국가가 성장하는 만큼 국민 모두가 함께 성장하는 나라,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성장하는 대도약을 이뤄내겠습니다. 대도약의 유일한 기준은 오직 ‘국민의 삶’입니다. 우리 국민의 인내와 노력이 담긴 ‘회복의 시간’을 넘어, 본격적인 ‘결실의 시간’을 열어젖히겠습니다. 국민들께서 ‘작년보다 나은 올해’를 삶 속에서 직접 느끼실 수 있도록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쏟아붓겠습니다. 어둠을 물리친 K-민주주의의 찬란한 빛이 국민의 일상 속까지 따스하게 스며들 수 있도록 만들어 내겠습니다. 국민 한 분 한 분의 표정이 더 밝아지는 나라, 대한민국 위상에 걸맞은 삶의 질을 누리는 그런 나라를 향해, 더욱 속도를 높이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 대한민국은 그동안 초고속 산업화 시대의 ‘성공의 공식’을 따라 온 힘을 다해 압축 성장을 일궈냈습니다. 자원이 부족했던 대한민국은 특정 지역, 특정 기업, 특정 계층에 집중 투자하며 세계 10위 경제 대국의 빛나는 성취를 달성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성장전략의 한계가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고도성장을 이끈 ‘성공의 공식’이 우리의 발목을 잡는 ‘성공의 함정’이 되었습니다. 불평등과 격차가 성장을 가로막고 경쟁과 갈등이 격화되는 이 악순환 속에서 자원의 집중과 기회의 편중은 이제 성장의 디딤돌이 아니라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성장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야 합니다. 익숙한 옛길이 아니라 새로운 길로 대전환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대한민국을 대도약의 새로운 미래로 이끌 지름길입니다. 그래서, 다섯 가지 대전환의 길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수도권 중심 성장’에서 ‘지방 주도 성장’으로 대전환하겠습니다. `수도권 1극 체제‘에서 ‘5극 3특 체제’로의 대전환은 지방에 대한 시혜나 배려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재도약을 이끌 필수 전략입니다. 수도권에서 거리가 멀수록 더 두텁게, 더 과감하게 지원하겠습니다. 지난해 완료한 해수부 이전은 시작일 뿐입니다. 서울은 경제 수도로, 중부권은 행정수도로, 남부권은 해양 수도로 대한민국 국토를 다극 체제로 더욱 넓게 쓰겠습니다. 에너지가 풍부한 남부의 반도체 벨트부터 인공지능 실증도시와 재생에너지 집적단지까지, 첨단산업 발전이 지역의 발전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설계할 것입니다. 인재와 기술 양성을 위한 교육투자, 삶의 질을 높여줄 광역교통과 문화시설 투자, 여기에 관광 정책까지 하나로 잇는 집중 투자를 통해 ’지방 주도 성장‘의 기반을 촘촘하게 실현해 내겠습니다. 둘째, ‘일부 대기업 중심 성장’에서 기회와 과실을 고루 나누는 ‘모두의 성장’으로 대전환하겠습니다. 온 국민이 힘을 모아 관세 협상을 성공적으로 타결했지만, 그로 인한 혜택이 일부 대기업 위주로 돌아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연간 수십조 원 규모의 방산, 원전 수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공동체의 역량과 국민 전체의 노력으로 이뤄낸 공동의 경제적 성과가 중소·벤처 기업까지 흐르고, 국민들의 호주머니까지 채워줄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난해 출범한 ‘국민성장펀드’는 국민 누구나 나라의 성장 발전에 투자하고, 성장의 열매를 고루 나눌 수 있는 전환의 마중물이 될 것입니다. 70년대 한국 경제의 성장은 도전하는 기업가 정신이 이끌었고 2000년대 IT 강국으로의 도약은 혁신하는 벤처 정신이 이끌었습니다. AI시대부터 에너지 대전환까지, 기존의 질서가 흔들리는 지금이 ‘창조적 파괴’를 이끌 혁신가들에게는 무한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정부는 ‘고용 중심 사회’에서 ‘창업 중심 사회’로의 전환에 발맞춰 청년 기업인과 창업가들이 자유롭게 담대하게 도전하며 마음껏 혁신의 길을 개척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하겠습니다. 실패가 오히려 성공의 자산이 되어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나라, 어떤 아이디어도 창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스타트업·벤처기업 열풍 시대, 중소기업 전성시대를 열어가겠습니다. 셋째, 생명을 경시하고 위험을 당연시하는 성장에서 안전이 기본인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대전환하겠습니다. ‘산재 사망률 OECD 1위’라는 이 불명예스러운 기록 앞에서 세계 10위 경제 대국이라는 성취는 결코 자랑스러울 수 없습니다. 아침밥 먹여 보낸 가족이 저녁에 돌아오지 못하는 그런 나라에서 경제성장률이 아무리 높다 한들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생명 경시에 대한 비용과 대가를 지금보다 훨씬 비싸게 치를 수 있어야 합니다. 일하고 싶지 않은 위험한 일터로 가득한 나라에서는 기업의 지속적 성장도, 나라의 지속적 발전도 요원합니다. 근로감독관 2천 명 증원, 일터 지킴이 신설을 통해서 안전한 작업환경과 생명 존중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반드시 만들어 가겠습니다. 안전한 일터에서 이뤄낸 성장이야말로 국민 행복을 담보하는 지속 가능한 성장입니다. 네 번째로, 상품만 앞세우는 성장에서 문화가 이끄는 매력적인 성장으로 대전환하겠습니다. K-콘텐츠 수출이 이차전지도 전기차도 넘어서는 시대, 문화에 대한 투자는 사회공헌이 아니라 이제 필수 성장전략입니다. 문화가 곧 경제이자 미래 먹거리이며 국가경쟁력의 핵심 축이 됐습니다. K-팝 팬덤이 K-뷰티 매니아로 성장합니다. K-드라마 시청률이 K-푸드 판매율을 끌어올립니다. 문화를 매개로 산업이 성장하는 선순환이 일어납니다. K-컬처가 한때의 유행에 머무르지 않도록, 대중문화의 뿌리가 되는 기초예술을 비롯해 문화 생태계 전반을 풍성하게 만드는 일에 온 힘을 기울이겠습니다. 9조 6천억 원까지 대폭 증액한 문화 예산을 토대로, K-콘텐츠가 세계 속에 더 넓고 깊게 스며들도록 하겠습니다. 다섯째, 마지막으로 전쟁 위협을 안고 사는 이 불안한 성장에서 평화가 뒷받침하는 안정적인 성장으로 대전환하겠습니다. 굳건한 평화는 성장의 다른 말이고, 튼튼한 안보가 번영의 동력입니다. 적대로 인한 비용과 위험을, 평화가 뒷받침하는 성장으로 바꿔낸다면 지금의 ‘코리아 리스크’를 미래의 ‘코리아 프리미엄’으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남북 간 군사적인 긴장 완화와 신뢰 회복 조치를 일관되게 추진하고, 미국·중국 등 국제사회와 한반도 평화·안정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올해에도 ‘페이스메이커’로서 북미대화를 적극 지원하고 남북 관계 복원을 거듭 모색할 것입니다.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진화한 한미동맹, 강력한 자주국방을 토대로 한반도 평화 공존이 의미 있는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국익 중심 실용 외교’는 세계를 향해 더 넓게 뻗어나갈 것입니다. 글로벌 책임 강국으로서 대한민국의 리더십을 더욱 확고히 하고, 협력을 통한 공동번영의 모델을 세계의 모범으로 만들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앞에서 말씀드린 다섯 가지 대전환의 원칙은 낭만적 당위나 희망 사항이 아닙니다. 성장 발전 전략의 대전환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이 저성장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절박한 호소의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더 이상 머뭇거릴 여유도 없습니다. 이제 실천과 행동의 시간입니다. 2026년이 ‘대전환을 통한 대도약의 원년’으로 기록될 수 있도록, 오직 국민만 믿고 뚜벅뚜벅 나아가겠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지난해 외교무대를 누비며 ‘국력을 키워야겠다’라는 말씀을 자주 드렸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국력이 단지 경제력이나 군사력만을 뜻하진 않습니다. 굴곡진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가 증명하듯 국력의 원천은 언제나 국민이었습니다. 5,200만 국민 한 명 한 명이 행복해질수록, 저마다의 꿈과 희망, 도전이 넘쳐날수록 우리 대한민국의 국력은 더욱 커지는 것입니다. 올 한 해 국민주권정부는 ‘국가가 부강해지면 내 삶도 나아지느냐’는 우리 국민들의 절박한 질문에 더욱 성실하게 응답하겠습니다. 지나간 7개월보다 앞으로의 4년 5개월이 더 기대되는 정부가 되겠습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각오로 작은 변화의 성과들을 하나하나 눈덩이처럼 키워나가겠습니다. 당장의 성과가 보이지 않는 개혁의 과정도 피하지 않겠습니다. 미래를 위한 인내심과 진정성으로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으겠습니다. 이 모든 지난하고 위대한 과업이 국민 통합과 굳건한 국민의 신뢰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서 더욱 겸손한 자세로 국정에 임하겠습니다. 절망의 겨울을 희망의 봄으로 바꿔내신 우리 국민들의 그 저력을 믿습니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께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향한 여정에 함께해 주십시오. 지난해 힘을 모아 민주주의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워낸 것처럼, 이제 전 세계가 따라 배울 ‘성장과 도약의 새로운 표준’을 함께 만들어 냅시다. 대한민국 대도약, 결국 국민이 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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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이재명 대통령 2026년 신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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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인생은 리허설이 없다... ‘적토마’의 기세와 ‘적정선’의 지혜
- [지구일보 이창호 칼럼니스트] 2025년의 한 해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다시금 '생의 유한함'을 마주한다. 러시아의 소설가 도스토옙스키는 사형대 위에서 집행 직전 사면을 받았던 5분간의 기억을 평생의 동력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에게 삶은 다시는 반복되지 않는 절박한 무대였다. 2026년 새해를 맞이하며 우리가 되새겨야 할 첫 번째 문장 역시 이것이다. "인생에는 기필코 리허설이 없다." 우리는 흔히 "준비가 되면 시작하겠다"거나 "다음 기회에 잘하겠다"는 말로 현재를 유예한다. 동서고금 삶은 연습 게임 없는 본 게임이며, 매 순간이 초연(初演)이자 종연(終演)이다. 다가오는 새해,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는 거침없이 대지를 가르는 '적토마(赤兎馬)'의 기개다. 동시에, 그 질주의 끝이 낭떠러지가 되지 않게 하는 '적정선(適正線)'의 철학이다. ■ 적토마의 기세, 주저함을 돌파하는 에너지 적토마는 하루에 천 리를 달리는 기개와 열정을 상징한다. 정체된 시대, 무력감에 빠진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자기 주도적 질주'다. 모범적인 사례로 언급되는 인물 중 하나가 파타고니아의 창업자 이본 쉬나드다. 그는 환경 보호라는 가치를 위해 기업의 이윤을 도구로 사용했다. "준비가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일단 올바른 방향이라면 뛰어들라"는 그의 철학은 적토마의 그것과 닮아 있다. 그는 인생을 리허설로 여기지 않았기에, 내일로 미루지 않고 당장 실천 가능한 환경 운동을 비즈니스에 이식했다.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완벽한 계획을 세우느라 시간을 허비하기보다, 적토마처럼 앞을 향해 발을 내딛는 용기가 필요하다. 망설임은 기회를 잠식하고, 지나간 시간은 결코 되돌아오지 않는다. ■ 적정선의 지혜, 멈춤이 아닌 ‘최적의 균형’ 우리는 무조건적인 질주가 미덕인 시대는 지났다. 적토마의 속도감을 유지하되, 나를 파괴하지 않는 '적정선'을 찾는 것이 더 멋진 삶을 위한 핵심이다. 여기서 말하는 적정선은 게으름이나 타협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한계를 인지하고,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지략적 멈춤'이다. 최근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 잡은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이나 '워라밸'에 대한 논의도 본질적으로는 이 적정선에 대한 탐구다. 하지만 진정으로 모범적인 사례는 북유럽의 '라곰(Lagom)'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너무 많지도, 너무 적지도 않은' 상태를 지향하는 이 가치는, 일터에서의 몰입과 가정에서의 휴식 사이에서 정교한 선을 긋는다. 예를 들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생활 양식을 보라. 그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 일정량의 글을 쓰고, 정해진 시간에 달리기를 한다. 더 쓸 수 있는 에너지가 남아 있어도 그는 '적정선'에서 멈춘다. 그 멈춤이 있기에 그는 수십 년간 현역으로 질주하는 적토마가 될 수 있었다. 과잉된 열정으로 스스로를 태워버리는 '번아웃'은 리허설 없는 인생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불상사다. ■ 더 멋진 삶을 위한 연대와 성찰 인생이 리허설이 아니라는 자각은 우리를 겸허하게 만든다. 내가 내뱉은 말, 내가 행한 선택이 곧 나의 역사(歷史)가 되기 때문이다. 2026년, 우리의 주권 사회는 각자도생의 시대를 넘어 서로의 적정선을 존중하는 인류 공동체적 감각이 절실하다. ▪︎나 자신에게는 적토마의 용기를, 실패를 두려워해 시도조차 하지 않는 패배주의를 걷어내야 한다. ▪︎타인에게는 적정선의 예의를, 타인의 삶에 과하게 개입하거나 나의 기준을 강요하지 않는 '관계의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사회적으로는 지속 가능한 속도를, 성과 지상주의에 매몰되어 구성원의 영혼을 갈아 넣는 구조를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인생이라는 위대한 무대 위에 선 주연 배우다. 관객은 바로 나 자신이며, 커튼콜은 단 한 번뿐이다. 적토마처럼 뜨겁게 달리되, 적정선을 아는 차가운 이성을 잃지 말자. ■ 뜨거운 심장과 냉철한 발걸음 새해는 단순히 달력의 숫자가 바뀌는 날이 아니다. 리허설 없는 우리 생의 새로운 막이 오르는 순간이다. "적당히 살자"는 말이 비겁한 변명이 아니라, "가장 나다운 속도를 유지하겠다"는 결단이 될 때 우리의 삶은 비로소 멋져진다. 맹목적인 속도전에서 벗어나 나만의 궤적을 그리는 적토마가 되자. 그 질주 속에 나를 돌보는 적정선이 살아 숨 쉴 때, 우리는 비로소 후회 없는 삶의 예술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026년, 당신의 무대는 이미 시작되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이 소중한 생의 현장에서, 당신만의 멋진 레이스를 펼치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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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인생은 리허설이 없다... ‘적토마’의 기세와 ‘적정선’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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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정적(政敵)’까지 끌어안는 탕평, 공자의 ‘거현(擧賢)’ 정신으로 완성되어야
- [지구일보 이창호 발행인] 이재명 기획예산처의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으로 국민의힘 출신 이혜훈 전 의원이 거론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는 진영 논리에 매몰되어 ‘코드 인사’와 ‘보은 인사’가 횡행하던 우리 정치사에서, 야당 중진 출신의 경제 전문가를 국정의 핵심 보직에 기용하려는 시도는 그 자체로 파격이자 신선한 충격이다. 공자(孔子)는 일찍이 논어(論語) ‘자로(子路)’ 편에서 정치를 묻는 제자에게 “먼저 유관 부서의 관리를 살피고, 작은 과실을 용서하며, 현명한 인재를 등용하라(先有司, 赦小過, 擧賢才)”고 답했다. 여기서 핵심은 ‘거현재(擧賢才)’, 즉 진영과 계파를 떠나 오직 실력과 덕망을 갖춘 인재를 뽑아 쓰는 데 있다. 이혜훈 전 의원은 자타가 공인하는 ‘경제통’이다. KDI 연구위원을 거쳐 국회에서 예결위와 기재위 등 경제 관련 핵심 상임위에서 잔뼈가 굵었다. 특히 합리적 보수의 가치를 지키면서도 시장의 원리와 복지의 균형을 고민해 온 인물이다. 국가 재정의 건전성을 수호하면서도 민생의 고통을 덜어내야 하는 기획예산처의 수장으로서 전문성만큼은 부족함이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이번 인사가 단순한 ‘보여주기식 협치’나 야당 세력 약화를 위한 ‘진영 흔들기’에 그쳐선 안 된다. 공자는 “군자는 화합하되 동화되지 않고, 소인은 동화되되 화합하지 못한다(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고 했다. 진정한 탕평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데려다가 내 편으로 만드는 ‘동(同)’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국가적 대업을 위해 머리를 맞대는 ‘화(和)’여야 한다. 이 전 의원의 등용이 현실화된다면, 이는 이재명 정부가 추구하는 이념적 지평이 단순히 ‘좌(左)’에 머물지 않고 국익이라는 거대한 바다로 나아가겠다는 신호탄이 되어야 한다. 기획예산처는 국가의 곳간을 관리하는 곳이다. 인기영합주의적 포퓰리즘을 경계하고,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위한 예산 배분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인사보다, 정권의 실책을 직언할 수 있는 ‘반대편의 인재’가 더 절실할 수 있다. 야당 또한 이를 ‘배신’이나 ‘야합’의 프레임으로만 바라볼 일이 아니다. 인재가 국가를 위해 쓰이는 것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 공자는 “현자를 등용하면 백성이 복종한다(擧直錯諸枉, 則民服)”고 했다. 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은 결국 누가 더 국가의 위기를 해결할 적임자를 내세우느냐에 달려 있다. 이재명 정부는 이번 인사가 정략적 수사가 아닌, 진정한 ‘거현(擧賢)’의 실천임을 증명해야 한다. 인재를 얻는 것은 천하를 얻는 것과 같다. 만약 이 전 의원이 초대 장관으로서 소신 있게 예산의 기틀을 잡을 수 있는 환경을 보장받는다면, 그것이야말로 갈등의 정치를 끝내고 ‘대화와 상생’의 정치를 여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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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 ‘정적(政敵)’까지 끌어안는 탕평, 공자의 ‘거현(擧賢)’ 정신으로 완성되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