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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론] 겻불을 거부하는 자부심, 지금 우리에게 '선비 정신'은 있는가
    [지구일보 이창호 발행인] 오늘날의 효율 지상주의와 실용주의 관점에서 보면 이 말은 고리타분한 고집이나 시대착오적인 결벽증으로 읽힐지 모른다. 당장 얼어 죽을 판에 겨를 태운 보잘것없는 불이면 어떻고, 남이 쓰다 버린 온기면 어떠냐는 반문이 뒤따른다. 하지만 이 서늘한 문장 속에 담긴 본질은 단순히 추위를 참는 인내심에 있지 않다. 그것은 '비루하게 사느니 나의 긍지를 지키겠다'는 자기 원칙이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결과 중심 사회를 향한 준엄한 경고다. ◇ 겻불의 유혹, 원칙을 팔아 치우는 시대 우리가 사는 작금의 현실은 어떠한가. '겻불'이 도처에 널려 있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과정의 정의로움 따위는 생략해도 좋다는 식의 결과론적 사고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권력이라는 겻불을 쬐기 위해 어제의 신념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정치인, 부(富)라는 온기를 얻기 위해 타인의 눈물을 외면하는 자본, 그리고 대중의 관심을 얻기 위해 가짜 뉴스와 혐오를 생산하는 미디어까지 말이다. 과연 이들에게 '선비의 지조'는 조롱의 대상일 뿐이다. "일단 살고 봐야지",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는 식의 타협안은 우리 시대의 알량한 기준이 되었다. 그러나 겻불은 잠깐의 온기만 줄 뿐, 몸속 깊은 곳의 한기를 몰아내지 못한다. 오히려 겻불에 몸을 녹이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옷'이 타들어 가는지도 모른 채 비굴한 안락함에 중독되고 만다. ◇ 선비 정신은 '자기 증명'의 기록이다 선비가 겻불을 거부한 이유는 그것이 '나의 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얻은 혜택, 구걸하듯 얻어낸 온기는, 결국 자신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행위임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주체적 자존감'의 문제와 직결된다. 진정한 리더와 깨어 있는 시민은 겻불 대신 스스로 장작을 패고 불을 지피는 고통을 선택한다. 비록 그 과정이 더디고 춥더라도, 스스로 일궈낸 온기만이 개인과 조직을 당당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원칙을 지키느라 겪는 고난은 '상처'가 아니라 위대한 '훈장'이다. 얼어 죽을지언정 겻불을 쬐지 않겠다는 결기는,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내면의 기둥을 세우는 작업이다. ◇ 타협의 미덕이라는 가면을 벗겨라 현대 사회는 갈등 조율이라는 명목하에 '타협'을 미화한다. 물론 민주주의 사회에서 합의는 중요하다. 그러나 결코 타협해서는 안 될 가치마저 겻불과 맞바꾸는 것은 합의가 아니라 '투항'이다.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는 수많은 부조리는 리더들이 '겻불의 유혹' 앞에 무릎을 꿇었을 때 발생했다. 공정의 도덕적 가치를 훼손하면서 얻은 성과, 정의를 외면하며 쌓아 올린 평화는 모두 겻불에 불과하다. 그것은 언젠가 재만 남기고 사라질 허상이며, 그 재는 결국 우리 사회의 눈을 멀게 할 것이다. 선비 정신은 바로 그 지점에서 빛을 발한다. 모두가 겻불 주위에 모여들어 서로의 등을 다독일 때, 홀로 찬 바람을 맞으며 '이 길은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그 용기가 우리 사회의 마지막 도덕적 규범이 되어야 한다. ◇ 다시, 겻불 앞에 서서 우리는 저마다의 추위 속에 살고 있다. 불확실한 미래, 치열한 경쟁, 생존의 위협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겻불을 쬐라고 유혹한다. 게다가 "딱 한 번만 눈 감으면 따뜻해질 수 있다"는 속삭임은 달콤하다. 그러나 기억해야 한다. 겻불을 쬐는 순간,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주인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조금 춥더라도, 조금 외롭더라도 자신의 불꽃을 지키며 꼿꼿이 서 있는 이들이 있을 때 사회는 비로소 품격을 갖춘다. 지금 당신의 눈앞에 놓인 그 온기는 정당한가? 혹시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한, 혹은 자신의 양심을 태워 만든 겻불은 아닌가? 얼어 죽을지언정 겻불은 쬐지 않겠다는 그 준엄한 기개가 있어야한다. 또 역설적으로는 우리 사회를 가장 따뜻하고 존엄하게 만드는 원동력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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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05
  • [지구일보] 이창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 ‘우리들의 이순신’을 다녀왔다.
    [지구일보]= 『이순신 리더십』의 저자인 이창호는 이 전시를 단순한 역사 관람이 아니라, 오늘의 사회가 다시 묻고 답해야 할 리더십의 본질을 성찰하는 자리로 받아들였다. 박물관의 정제된 공간 속에서 이순신은 위대한 영웅의 초상으로만 서 있지 않았다. 그는 불확실성과 분열의 시대를 건너온 한 인간이자,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 자신을 낮추고 원칙을 지켜낸 지도자로 호흡하고 있었다. 전시는 익숙한 전공(戰功)의 서사보다, 기록과 생활의 결을 통해 이순신을 다시 불러낸다. 난중일기의 문장들은 과장 없는 언어로 고통과 책임의 무게를 전하고, 전술과 장비의 디테일은 승리의 조건이 기적이 아니라 준비와 절제였음을 증명한다. 이창호저자는 이 지점에서 리더십의 핵심을 읽는다. 위기는 우연히 극복되지 않으며, 신뢰는 말이 아니라 일상의 축적에서 형성된다는 사실이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우리들의’라는 복수형이 던지는 질문이다. 이순신은 과거의 인물이지만, 오늘의 시민과 조직, 국가가 함께 소환해야 할 가치의 총합으로 제시된다. 권한이 아니라 책임으로, 성과가 아니라 과정으로 리더를 평가하라는 메시지는 전시 전반에 잔잔히 흐른다. 이창호저자가 오래 천착해 온 ‘원칙의 리더십’은 이 전시에서 생생한 역사적 근거를 얻는다. 흔들리는 정국 속에서도 법과 질서를 버리지 않았던 선택, 공을 독점하지 않고 실패를 홀로 감내했던 태도는 지금도 유효하다. 전시는 또한 이순신을 신화화하지 않는다. 좌절과 오판의 흔적을 숨기지 않음으로써, 리더의 인간적 한계를 인정하는 성숙한 시선을 제시한다. 그 한계 위에서 더 단단해진 절제와 배려가 공동체를 지켜냈다는 서사는, 경쟁과 속도가 미덕이 된 오늘에 묵직한 반문을 던진다. 빠른 결정이 아닌 올바른 판단, 강한 통제가 아닌 공정한 신뢰가 위기의 파고를 넘는 힘이라는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이 전시는 과거를 기념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오늘의 언어로 번역된 이순신은 우리에게 선택을 요구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어떤 기준으로 결정할 것인가, 누구를 위해 책임질 것인가. 이창호의 발걸음이 오래 머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순신은 박물관 유리 진열장 속에 있지 않았다. 우리의 일상과 제도, 그리고 리더의 태도 속에서 다시 살아나야 할 현재진행형의 이름이었다. ‘우리들의 이순신’은 그래서 조용하지만 강하다. 영웅의 찬가가 아니라 시민의 교과서로서, 이 전시는 오늘의 한국 사회가 되새겨야 할 리더십의 좌표를 또렷이 찍는다. 역사는 기억될 때 힘을 얻고, 리더십은 실천될 때 증명된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난 이순신은 그 오래된 진실을 변함없이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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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09
  • [지구일보=광장] '가짜뉴스'의 독버섯 유튜버, 대한민국 법치는 살아있다… 무관용 원칙으로 엄단해야
    [지구일보 이정대 기자] 대한민국이 '유언비어 공화국'으로 침몰하고 있다. 특히 유튜버라는 거대 플랫폼을 등에 업고 확인되지 않은 허위 사실을 마치 진실인 양 포장해 유포하는 '가짜 유튜버'들의 행태가 이미 임계점을 넘어섰다. 타인의 인격과 명예를 난도질하며 조회수를 갈취하고, 이를 통해 막대한 광고 수익을 챙기는 이들의 행태는 언론의 자유라는 신성한 가치를 더럽히는 '기생충적 범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는 이 시점에서 분명히 경고한다. 법은 결코 만만하지 않으며, 온라인상의 무법지대 또한 영원할 수 없다. 유언비어로 점철된 유튜브 영상을 제작·유포한 자들은 반드시 법의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현재 대한민국 법체계는 가짜 유튜버들을 응징하기 위한 다각적인 법적 수단을 완비하고 있다. 첫째, 형사처벌의 칼날… '정보통신망법'의 엄중함이다. 강력한 제재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 제70조다.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공공연하게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이는 일반 형법상의 명예훼손보다 훨씬 무거운 처벌이다. 전파 속도가 무한대에 가깝고 파괴력이 치명적인 온라인의 특성을 고려한 입법 취지다.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폭로 뒤에 숨으려는 자들은 기억하라. 당신들이 누른 '업로드' 버튼은 스스로의 감옥 문을 여는 열쇠가 될 수 있다. 또, 특정인의 업무를 방해할 목적이 인정될 경우 '업무방해죄'로도 처단이 가능하다. 둘째, 경제적 파멸을 부르는 민사상 손해배상 형사처벌이 신체의 자유를 구속한다면, 민사 소송은 가짜뉴스로 벌어들인 부당한 이익을 환수하고 그 이상의 대가를 치르게 해야한다. 최근 우리나라 법원은 허위 사실 유포로 인한 피해에 대해 배상액을 현실화하는 추세다. 특히 악의적이고 반복적인 허위 사실 유포에 대해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의 논리가 강력하게 대처해야한다. 피해자는, 유튜버를 상대로 정신적 위자료는 물론, 그로 인해 발생한 경제적 손실 전액을 청구를 해야한다. "벌금 내고 말지"라는 안일한 생각은 큰 오산이다. 민사상 불법행위 책임은 파산 선고를 받더라도 면책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날조 유튜버의 평생을 따라다니는 '경제적 족쇄'가 될 것이다. 셋째, 플랫폼 제재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역할이다 국가 권력뿐만 아니라 플랫폼 자체의 제재도 강화되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통해 해당 영상의 삭제나 접속 차단을 요청할 수 있으며, 유튜브 본사에 대한 직접적인 신고를 통해 수익 창출을 중단시키거나 채널을 영구 폐쇄(계정 해지)하는 조치도 실효를 거두고 있다. 최근 수사기관은 해외에 서버를 둔 구글(유튜브)과의 공조를 통해 익명 뒤에 숨은 가해자의 신원을 특정하는 역량을 비약적으로 높였다. '익명의 그늘'은 이제 더 이상 도피처가 아니다. 국가적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타인의 삶을 파괴하면서 사익을 취하는 행위를 방치하는 것은 국가의 직무유기다. 수사당국은 이들 유언비어 유포자들을 반사회적 범죄자로 규정하고, 고소·고발이 없더라도 적극적인 인지수사에 나서야 한다. 법은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하에 관대한 처벌을 내리던 구태에서 벗어나, 일벌백계(一罰百戒)의 자세로 판결을 내려야 할 것이다. 독자 여러분 또한 경계해야 한다. 자극적인 썸네일과 검증되지 않은 폭로에 열광하는 순간, 당신 또한 가짜뉴스의 공범이 될 수 있다. 건강한 비판은 민주주의의 자양분이지만, 악의적인 날조는 인류공동체를 파괴하는 독약이다. 우리 사회가 가짜 유튜버라는 독버섯을 도려내고, 정의로운 법치를 확립하는 길로 가야한다. 피해를 입었다면 즉시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 증거를 채집하고 법적 대응에 나서라. 법은 잠자는 자를 보호하지 않으며, 동시에 정의를 위해 싸우는 자에게는 가장 강력한 방패가 되어줄 것이다. 가짜 유튜버들에게 다시 한번 경고한다. 거짓의 혀로 쌓은 성은 기필코 무너진다. 법의 심판대가 당신 앞에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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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05
  • [전문]이재명 대통령 2026년 신년사
    [서울=지구일보] 이강문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은 2026년 병오년(丙午年) 새해 첫날 신년사를 통해 국정 운영의 분명한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국민주권 정부가 지향하는 목표는 명확하다”며 “붉은 말이 대지를 가르듯, 힘차게 전진하는 한 해를 만들어 2026년을 ‘대한민국 대도약의 출발점’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그동안 국민이 감내해 온 인내와 노력이 이제는 성과로 이어져야 할 시점임을 강조하며, “회복의 단계를 넘어 실질적인 결실을 거두는 시대로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이번 신년사는 취임 이후 처음으로 발표한 공식 신년 메시지로, 집권 2년 차를 맞아 국정 전반에 대한 책임 의식과 미래 비전을 함께 담아냈다는 평가다. 특히 그는 국가 정상화와 민생 안정에 머무르지 않고, 구조적 성장과 도약을 통해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 경로를 열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단기 성과에 그치지 않는 지속 가능한 발전, 그리고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가 2026년 국정 운영의 핵심이 될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다음은 이 대통령 신년사 전문. 사랑하고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붉은 말의 해, 병오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해 정부를 믿고, 함께 위기의 파도를 건너 주신 우리 국민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부터 전합니다. 허물을 벗고 다시 태어나는 ‘푸른 뱀’의 해, 을사년은 우리 모두에게 걱정과 불안을 이겨낸 회복과 정상화의 시간이었습니다. 내란으로 무너진 나라를 복구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했습니다. 신속한 추경, 민생 회복 소비 쿠폰이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소비심리는 7년 7개월 만에 최고 수준을 회복했고, 경제성장률 또한 상승 추세입니다. 주식시장은 코스피 4,000을 돌파했고 수출은 연간 7,000억 달러의 새로운 기록을 세웠습니다. 우려 섞인 좌절이 기대 섞인 전망으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어렵게 확보한 GPU 26만 장, 150조 원에 달하는 국민성장펀드, 여야가 합의한 ‘AI시대의 첫 예산안’은 첨단산업과 중소벤처기업 발전을 뒷받침할 중요한 발판이 될 것입니다. ‘민주 대한민국’의 국제사회 복귀와 ‘국익 중심 실용 외교’는 성장과 도약을 향한 우리의 지평을 크게 넓혔습니다. 특히 미국과의 관세 협상 타결로 우리 경제를 짓누르던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해소되었다는 점도 고무적입니다. 핵 추진 잠수함 건조부터 우라늄 농축,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대까지, 르네상스를 맞이한 우리 한미동맹이 경제 부흥의 든든한 뒷받침이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희망적인 변화는 ‘빛의 혁명’으로 입증된 주권자의 집단지성이 국정 운영의 중심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국민추천제, 국민사서함, 타운홀미팅부터 국무회의와 업무보고의 생중계까지, 국민과의 직접 소통을 일상으로 만들고, 국정의 투명성을 높이는 혁신을 앞으로도 결코 멈추지 않겠습니다. 자랑스러운 국민 여러분, 여러분께서 마음을 모아주신 덕분에 무너진 민생경제와 민주주의를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겨우 출발선에 섰을 뿐입니다. 남들보다 늦은 만큼 이제 더 빠르게 달려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2026년 새해, 국민주권 정부의 목표는 분명합니다. 올 한 해를 붉은 말처럼 힘차게 달리는 해로, ‘대한민국 대도약의 원년’으로 만들겠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외교, 안보 등 모든 분야에서 대대적인 도약과 성장을 반드시 이뤄내겠습니다. 대도약을 통한 성장의 과실은 특정 소수가 독식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나눌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사회 곳곳에 남아있는 편법과 불공정을 확실히 없애고 ‘반칙과 특권 없는 사회’를 만드는 일에도 매진하겠습니다. 국가만 부강하고 국민은 가난한 것이 아니라 국가가 성장하는 만큼 국민 모두가 함께 성장하는 나라,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성장하는 대도약을 이뤄내겠습니다. 대도약의 유일한 기준은 오직 ‘국민의 삶’입니다. 우리 국민의 인내와 노력이 담긴 ‘회복의 시간’을 넘어, 본격적인 ‘결실의 시간’을 열어젖히겠습니다. 국민들께서 ‘작년보다 나은 올해’를 삶 속에서 직접 느끼실 수 있도록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쏟아붓겠습니다. 어둠을 물리친 K-민주주의의 찬란한 빛이 국민의 일상 속까지 따스하게 스며들 수 있도록 만들어 내겠습니다. 국민 한 분 한 분의 표정이 더 밝아지는 나라, 대한민국 위상에 걸맞은 삶의 질을 누리는 그런 나라를 향해, 더욱 속도를 높이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 대한민국은 그동안 초고속 산업화 시대의 ‘성공의 공식’을 따라 온 힘을 다해 압축 성장을 일궈냈습니다. 자원이 부족했던 대한민국은 특정 지역, 특정 기업, 특정 계층에 집중 투자하며 세계 10위 경제 대국의 빛나는 성취를 달성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성장전략의 한계가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고도성장을 이끈 ‘성공의 공식’이 우리의 발목을 잡는 ‘성공의 함정’이 되었습니다. 불평등과 격차가 성장을 가로막고 경쟁과 갈등이 격화되는 이 악순환 속에서 자원의 집중과 기회의 편중은 이제 성장의 디딤돌이 아니라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성장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야 합니다. 익숙한 옛길이 아니라 새로운 길로 대전환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대한민국을 대도약의 새로운 미래로 이끌 지름길입니다. 그래서, 다섯 가지 대전환의 길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수도권 중심 성장’에서 ‘지방 주도 성장’으로 대전환하겠습니다. `수도권 1극 체제‘에서 ‘5극 3특 체제’로의 대전환은 지방에 대한 시혜나 배려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재도약을 이끌 필수 전략입니다. 수도권에서 거리가 멀수록 더 두텁게, 더 과감하게 지원하겠습니다. 지난해 완료한 해수부 이전은 시작일 뿐입니다. 서울은 경제 수도로, 중부권은 행정수도로, 남부권은 해양 수도로 대한민국 국토를 다극 체제로 더욱 넓게 쓰겠습니다. 에너지가 풍부한 남부의 반도체 벨트부터 인공지능 실증도시와 재생에너지 집적단지까지, 첨단산업 발전이 지역의 발전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설계할 것입니다. 인재와 기술 양성을 위한 교육투자, 삶의 질을 높여줄 광역교통과 문화시설 투자, 여기에 관광 정책까지 하나로 잇는 집중 투자를 통해 ’지방 주도 성장‘의 기반을 촘촘하게 실현해 내겠습니다. 둘째, ‘일부 대기업 중심 성장’에서 기회와 과실을 고루 나누는 ‘모두의 성장’으로 대전환하겠습니다. 온 국민이 힘을 모아 관세 협상을 성공적으로 타결했지만, 그로 인한 혜택이 일부 대기업 위주로 돌아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연간 수십조 원 규모의 방산, 원전 수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공동체의 역량과 국민 전체의 노력으로 이뤄낸 공동의 경제적 성과가 중소·벤처 기업까지 흐르고, 국민들의 호주머니까지 채워줄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난해 출범한 ‘국민성장펀드’는 국민 누구나 나라의 성장 발전에 투자하고, 성장의 열매를 고루 나눌 수 있는 전환의 마중물이 될 것입니다. 70년대 한국 경제의 성장은 도전하는 기업가 정신이 이끌었고 2000년대 IT 강국으로의 도약은 혁신하는 벤처 정신이 이끌었습니다. AI시대부터 에너지 대전환까지, 기존의 질서가 흔들리는 지금이 ‘창조적 파괴’를 이끌 혁신가들에게는 무한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정부는 ‘고용 중심 사회’에서 ‘창업 중심 사회’로의 전환에 발맞춰 청년 기업인과 창업가들이 자유롭게 담대하게 도전하며 마음껏 혁신의 길을 개척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하겠습니다. 실패가 오히려 성공의 자산이 되어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나라, 어떤 아이디어도 창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스타트업·벤처기업 열풍 시대, 중소기업 전성시대를 열어가겠습니다. 셋째, 생명을 경시하고 위험을 당연시하는 성장에서 안전이 기본인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대전환하겠습니다. ‘산재 사망률 OECD 1위’라는 이 불명예스러운 기록 앞에서 세계 10위 경제 대국이라는 성취는 결코 자랑스러울 수 없습니다. 아침밥 먹여 보낸 가족이 저녁에 돌아오지 못하는 그런 나라에서 경제성장률이 아무리 높다 한들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생명 경시에 대한 비용과 대가를 지금보다 훨씬 비싸게 치를 수 있어야 합니다. 일하고 싶지 않은 위험한 일터로 가득한 나라에서는 기업의 지속적 성장도, 나라의 지속적 발전도 요원합니다. 근로감독관 2천 명 증원, 일터 지킴이 신설을 통해서 안전한 작업환경과 생명 존중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반드시 만들어 가겠습니다. 안전한 일터에서 이뤄낸 성장이야말로 국민 행복을 담보하는 지속 가능한 성장입니다. 네 번째로, 상품만 앞세우는 성장에서 문화가 이끄는 매력적인 성장으로 대전환하겠습니다. K-콘텐츠 수출이 이차전지도 전기차도 넘어서는 시대, 문화에 대한 투자는 사회공헌이 아니라 이제 필수 성장전략입니다. 문화가 곧 경제이자 미래 먹거리이며 국가경쟁력의 핵심 축이 됐습니다. K-팝 팬덤이 K-뷰티 매니아로 성장합니다. K-드라마 시청률이 K-푸드 판매율을 끌어올립니다. 문화를 매개로 산업이 성장하는 선순환이 일어납니다. K-컬처가 한때의 유행에 머무르지 않도록, 대중문화의 뿌리가 되는 기초예술을 비롯해 문화 생태계 전반을 풍성하게 만드는 일에 온 힘을 기울이겠습니다. 9조 6천억 원까지 대폭 증액한 문화 예산을 토대로, K-콘텐츠가 세계 속에 더 넓고 깊게 스며들도록 하겠습니다. 다섯째, 마지막으로 전쟁 위협을 안고 사는 이 불안한 성장에서 평화가 뒷받침하는 안정적인 성장으로 대전환하겠습니다. 굳건한 평화는 성장의 다른 말이고, 튼튼한 안보가 번영의 동력입니다. 적대로 인한 비용과 위험을, 평화가 뒷받침하는 성장으로 바꿔낸다면 지금의 ‘코리아 리스크’를 미래의 ‘코리아 프리미엄’으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정부는 남북 간 군사적인 긴장 완화와 신뢰 회복 조치를 일관되게 추진하고, 미국·중국 등 국제사회와 한반도 평화·안정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올해에도 ‘페이스메이커’로서 북미대화를 적극 지원하고 남북 관계 복원을 거듭 모색할 것입니다.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진화한 한미동맹, 강력한 자주국방을 토대로 한반도 평화 공존이 의미 있는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국익 중심 실용 외교’는 세계를 향해 더 넓게 뻗어나갈 것입니다. 글로벌 책임 강국으로서 대한민국의 리더십을 더욱 확고히 하고, 협력을 통한 공동번영의 모델을 세계의 모범으로 만들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앞에서 말씀드린 다섯 가지 대전환의 원칙은 낭만적 당위나 희망 사항이 아닙니다. 성장 발전 전략의 대전환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이 저성장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절박한 호소의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더 이상 머뭇거릴 여유도 없습니다. 이제 실천과 행동의 시간입니다. 2026년이 ‘대전환을 통한 대도약의 원년’으로 기록될 수 있도록, 오직 국민만 믿고 뚜벅뚜벅 나아가겠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지난해 외교무대를 누비며 ‘국력을 키워야겠다’라는 말씀을 자주 드렸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국력이 단지 경제력이나 군사력만을 뜻하진 않습니다. 굴곡진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가 증명하듯 국력의 원천은 언제나 국민이었습니다. 5,200만 국민 한 명 한 명이 행복해질수록, 저마다의 꿈과 희망, 도전이 넘쳐날수록 우리 대한민국의 국력은 더욱 커지는 것입니다. 올 한 해 국민주권정부는 ‘국가가 부강해지면 내 삶도 나아지느냐’는 우리 국민들의 절박한 질문에 더욱 성실하게 응답하겠습니다. 지나간 7개월보다 앞으로의 4년 5개월이 더 기대되는 정부가 되겠습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각오로 작은 변화의 성과들을 하나하나 눈덩이처럼 키워나가겠습니다. 당장의 성과가 보이지 않는 개혁의 과정도 피하지 않겠습니다. 미래를 위한 인내심과 진정성으로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으겠습니다. 이 모든 지난하고 위대한 과업이 국민 통합과 굳건한 국민의 신뢰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서 더욱 겸손한 자세로 국정에 임하겠습니다. 절망의 겨울을 희망의 봄으로 바꿔내신 우리 국민들의 그 저력을 믿습니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께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향한 여정에 함께해 주십시오. 지난해 힘을 모아 민주주의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워낸 것처럼, 이제 전 세계가 따라 배울 ‘성장과 도약의 새로운 표준’을 함께 만들어 냅시다. 대한민국 대도약, 결국 국민이 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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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
    2026-01-01
  • [시론] 인생은 리허설이 없다... ‘적토마’의 기세와 ‘적정선’의 지혜
    [지구일보 이창호 칼럼니스트] 2025년의 한 해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다시금 '생의 유한함'을 마주한다. 러시아의 소설가 도스토옙스키는 사형대 위에서 집행 직전 사면을 받았던 5분간의 기억을 평생의 동력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에게 삶은 다시는 반복되지 않는 절박한 무대였다. 2026년 새해를 맞이하며 우리가 되새겨야 할 첫 번째 문장 역시 이것이다. "인생에는 기필코 리허설이 없다." 우리는 흔히 "준비가 되면 시작하겠다"거나 "다음 기회에 잘하겠다"는 말로 현재를 유예한다. 동서고금 삶은 연습 게임 없는 본 게임이며, 매 순간이 초연(初演)이자 종연(終演)이다. 다가오는 새해,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는 거침없이 대지를 가르는 '적토마(赤兎馬)'의 기개다. 동시에, 그 질주의 끝이 낭떠러지가 되지 않게 하는 '적정선(適正線)'의 철학이다. ■ 적토마의 기세, 주저함을 돌파하는 에너지 적토마는 하루에 천 리를 달리는 기개와 열정을 상징한다. 정체된 시대, 무력감에 빠진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자기 주도적 질주'다. 모범적인 사례로 언급되는 인물 중 하나가 파타고니아의 창업자 이본 쉬나드다. 그는 환경 보호라는 가치를 위해 기업의 이윤을 도구로 사용했다. "준비가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일단 올바른 방향이라면 뛰어들라"는 그의 철학은 적토마의 그것과 닮아 있다. 그는 인생을 리허설로 여기지 않았기에, 내일로 미루지 않고 당장 실천 가능한 환경 운동을 비즈니스에 이식했다.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완벽한 계획을 세우느라 시간을 허비하기보다, 적토마처럼 앞을 향해 발을 내딛는 용기가 필요하다. 망설임은 기회를 잠식하고, 지나간 시간은 결코 되돌아오지 않는다. ■ 적정선의 지혜, 멈춤이 아닌 ‘최적의 균형’ 우리는 무조건적인 질주가 미덕인 시대는 지났다. 적토마의 속도감을 유지하되, 나를 파괴하지 않는 '적정선'을 찾는 것이 더 멋진 삶을 위한 핵심이다. 여기서 말하는 적정선은 게으름이나 타협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한계를 인지하고,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지략적 멈춤'이다. 최근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 잡은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이나 '워라밸'에 대한 논의도 본질적으로는 이 적정선에 대한 탐구다. 하지만 진정으로 모범적인 사례는 북유럽의 '라곰(Lagom)'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너무 많지도, 너무 적지도 않은' 상태를 지향하는 이 가치는, 일터에서의 몰입과 가정에서의 휴식 사이에서 정교한 선을 긋는다. 예를 들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생활 양식을 보라. 그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 일정량의 글을 쓰고, 정해진 시간에 달리기를 한다. 더 쓸 수 있는 에너지가 남아 있어도 그는 '적정선'에서 멈춘다. 그 멈춤이 있기에 그는 수십 년간 현역으로 질주하는 적토마가 될 수 있었다. 과잉된 열정으로 스스로를 태워버리는 '번아웃'은 리허설 없는 인생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불상사다. ■ 더 멋진 삶을 위한 연대와 성찰 인생이 리허설이 아니라는 자각은 우리를 겸허하게 만든다. 내가 내뱉은 말, 내가 행한 선택이 곧 나의 역사(歷史)가 되기 때문이다. 2026년, 우리의 주권 사회는 각자도생의 시대를 넘어 서로의 적정선을 존중하는 인류 공동체적 감각이 절실하다. ▪︎나 자신에게는 적토마의 용기를, 실패를 두려워해 시도조차 하지 않는 패배주의를 걷어내야 한다. ▪︎타인에게는 적정선의 예의를, 타인의 삶에 과하게 개입하거나 나의 기준을 강요하지 않는 '관계의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사회적으로는 지속 가능한 속도를, 성과 지상주의에 매몰되어 구성원의 영혼을 갈아 넣는 구조를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인생이라는 위대한 무대 위에 선 주연 배우다. 관객은 바로 나 자신이며, 커튼콜은 단 한 번뿐이다. 적토마처럼 뜨겁게 달리되, 적정선을 아는 차가운 이성을 잃지 말자. ■ 뜨거운 심장과 냉철한 발걸음 새해는 단순히 달력의 숫자가 바뀌는 날이 아니다. 리허설 없는 우리 생의 새로운 막이 오르는 순간이다. "적당히 살자"는 말이 비겁한 변명이 아니라, "가장 나다운 속도를 유지하겠다"는 결단이 될 때 우리의 삶은 비로소 멋져진다. 맹목적인 속도전에서 벗어나 나만의 궤적을 그리는 적토마가 되자. 그 질주 속에 나를 돌보는 적정선이 살아 숨 쉴 때, 우리는 비로소 후회 없는 삶의 예술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026년, 당신의 무대는 이미 시작되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이 소중한 생의 현장에서, 당신만의 멋진 레이스를 펼치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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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30
  • [논평] ‘정적(政敵)’까지 끌어안는 탕평, 공자의 ‘거현(擧賢)’ 정신으로 완성되어야
    [지구일보 이창호 발행인] 이재명 기획예산처의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으로 국민의힘 출신 이혜훈 전 의원이 거론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는 진영 논리에 매몰되어 ‘코드 인사’와 ‘보은 인사’가 횡행하던 우리 정치사에서, 야당 중진 출신의 경제 전문가를 국정의 핵심 보직에 기용하려는 시도는 그 자체로 파격이자 신선한 충격이다. 공자(孔子)는 일찍이 논어(論語) ‘자로(子路)’ 편에서 정치를 묻는 제자에게 “먼저 유관 부서의 관리를 살피고, 작은 과실을 용서하며, 현명한 인재를 등용하라(先有司, 赦小過, 擧賢才)”고 답했다. 여기서 핵심은 ‘거현재(擧賢才)’, 즉 진영과 계파를 떠나 오직 실력과 덕망을 갖춘 인재를 뽑아 쓰는 데 있다. 이혜훈 전 의원은 자타가 공인하는 ‘경제통’이다. KDI 연구위원을 거쳐 국회에서 예결위와 기재위 등 경제 관련 핵심 상임위에서 잔뼈가 굵었다. 특히 합리적 보수의 가치를 지키면서도 시장의 원리와 복지의 균형을 고민해 온 인물이다. 국가 재정의 건전성을 수호하면서도 민생의 고통을 덜어내야 하는 기획예산처의 수장으로서 전문성만큼은 부족함이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이번 인사가 단순한 ‘보여주기식 협치’나 야당 세력 약화를 위한 ‘진영 흔들기’에 그쳐선 안 된다. 공자는 “군자는 화합하되 동화되지 않고, 소인은 동화되되 화합하지 못한다(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고 했다. 진정한 탕평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데려다가 내 편으로 만드는 ‘동(同)’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국가적 대업을 위해 머리를 맞대는 ‘화(和)’여야 한다. 이 전 의원의 등용이 현실화된다면, 이는 이재명 정부가 추구하는 이념적 지평이 단순히 ‘좌(左)’에 머물지 않고 국익이라는 거대한 바다로 나아가겠다는 신호탄이 되어야 한다. 기획예산처는 국가의 곳간을 관리하는 곳이다. 인기영합주의적 포퓰리즘을 경계하고,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위한 예산 배분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인사보다, 정권의 실책을 직언할 수 있는 ‘반대편의 인재’가 더 절실할 수 있다. 야당 또한 이를 ‘배신’이나 ‘야합’의 프레임으로만 바라볼 일이 아니다. 인재가 국가를 위해 쓰이는 것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 공자는 “현자를 등용하면 백성이 복종한다(擧直錯諸枉, 則民服)”고 했다. 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은 결국 누가 더 국가의 위기를 해결할 적임자를 내세우느냐에 달려 있다. 이재명 정부는 이번 인사가 정략적 수사가 아닌, 진정한 ‘거현(擧賢)’의 실천임을 증명해야 한다. 인재를 얻는 것은 천하를 얻는 것과 같다. 만약 이 전 의원이 초대 장관으로서 소신 있게 예산의 기틀을 잡을 수 있는 환경을 보장받는다면, 그것이야말로 갈등의 정치를 끝내고 ‘대화와 상생’의 정치를 여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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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2-30

실시간 사회 기사

  • [지구일보] 길은 걷는 사람에게 열리고, 신뢰는 실천하는 사람에게 쌓인다
    [지구일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성공을 꿈꾼다. 더 높은 자리, 더 넓은 무대, 더 큰 성취를 바라며 미래를 설계한다. 그러나 정작 많은 사람들이 잊고 있는 사실이 있다. 길은 생각하는 사람에게 열리는 것이 아니라 걷는 사람에게 열리고, 신뢰는 말하는 사람에게 쌓이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사람에게 쌓인다는 점이다. 인생에는 수많은 갈림길이 존재한다. 어떤 이는 준비만 하다가 기회를 놓치고, 어떤 이는 완벽한 조건이 갖춰지기를 기다리다가 출발조차 하지 못한다. 그러나 역사를 움직인 사람들은 달랐다. 그들은 모든 것이 준비된 뒤에 움직인 것이 아니라 부족함 속에서도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 한 걸음이 또 다른 길을 만들었고, 결국 시대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길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도전과 용기가 반복되면서 길이 만들어진다. 산길도 사람이 다니기 시작하면서 생기고, 강을 건너는 다리도 누군가의 필요와 결단에서 시작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가만히 서 있는 사람에게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걸어가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풍경이 나타나고 새로운 기회가 찾아온다. 신뢰 역시 같다. 우리는 흔히 신뢰를 얻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신뢰는 단기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화려한 언변이나 그럴듯한 약속으로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신뢰는 작은 약속을 지키는 과정에서 서서히 쌓인다. 한 번의 행동이 아니라 수많은 실천이 축적될 때 비로소 신뢰라는 자산이 형성된다. 오늘날 사회가 어려움을 겪는 이유 중 하나도 신뢰의 부족에 있다. 정치도, 경제도, 인간관계도 결국 신뢰 위에서 움직인다. 신뢰가 무너지면 협력은 사라지고 갈등이 커진다. 반대로 신뢰가 살아 있으면 위기 속에서도 함께 손을 잡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래서 신뢰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장 귀한 자산이며, 사회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힘이다. 신뢰를 쌓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약속한 시간을 지키고, 맡은 일을 책임 있게 수행하며, 어려운 순간에도 원칙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행동이 반복될 때 사람들은 그 사람을 믿기 시작한다. 결국 신뢰란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꾸준함의 결과이며 성실함의 결실이다. 필자는 한중 교류 현장에서도 같은 원리를 발견하게 된다. 국가 간 관계도 신뢰가 기반이 되어야 지속될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정책과 제도가 마련되어도 서로를 믿지 못하면 협력은 오래가지 못한다. 반면 작은 교류와 약속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때 신뢰는 깊어지고, 그 신뢰는 미래 협력의 토대가 된다. 민간 외교의 힘도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종종 큰 성과만 바라본다. 그러나 큰 성과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매일의 작은 실천이 모여 인생을 바꾸고 사회를 변화시킨다. 오늘의 한 걸음이 내일의 길이 되고, 오늘의 성실함이 미래의 신뢰가 된다. 인생은 기다림의 예술이 아니라 실천의 역사다. 길은 걷는 사람에게 열리고, 신뢰는 실천하는 사람에게 쌓인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묵묵한 행동이다. 말보다 실천이 앞설 때, 약속보다 행동이 먼저일 때, 우리는 비로소 새로운 길을 만나고 더 큰 신뢰를 얻게 된다. 결국 인생의 진정한 성공은 얼마나 많은 길을 걸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신뢰를 쌓았는가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 신뢰는 오늘도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땀과 성실함 속에서 조용히 자라고 있다. 그것이 세상을 움직이는 가장 강한 힘이며, 미래를 여는 가장 확실한 열쇠다. 이창호(李昌虎) 칼럼니스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 대한기자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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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6-02
  • [대한칼럼] AI가 바꾸는 세상, 변하지 않는 가치
    [지구일보 이정대 기자] 인공지능(AI)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 속 기술로 여겨졌던 AI는 이제 우리의 일상과 산업 전반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AI는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들고, 영상을 제작하며, 의료와 금융, 교육과 제조업까지 혁신하고 있다. 변화의 속도는 과거 산업혁명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을 만큼 빠르다. 그러나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인간의 가치다. AI는 수많은 데이터를 분석하고 최적의 답을 제시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하거나 삶의 무게를 함께 짊어질 수는 없다. 인간만이 가진 공감과 배려, 신뢰와 책임은 알고리즘으로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기술의 발전은 늘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증기기관은 산업혁명을 이끌었고, 인터넷은 지구촌을 하나로 연결했다. 하지만 기술 그 자체가 인류를 행복하게 만든 것은 아니었다.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가치관과 윤리가 사회의 방향을 결정했다. 같은 기술도 어떤 사람의 손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축복이 되기도 하고 위협이 되기도 한다. AI 시대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AI가 제공하는 편리함과 효율성을 누리고 있지만, 동시에 새로운 고민도 마주하고 있다. 가짜뉴스의 확산, 개인정보 침해, 일자리 구조 변화, 인간 소외 현상 등이 그것이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역할은 오히려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는 단순히 지식을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다.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타인과 협력하며,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다. AI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지만 꿈을 꾸지는 못한다. 계산은 할 수 있지만 희망을 만들지는 못한다. 인간의 상상력과 도전정신, 그리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능력은 여전히 인간만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교육의 방향도 달라져야 한다. 이제는 정답을 외우는 시대가 아니라 질문을 만드는 시대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생각하는 힘이다. AI를 경쟁 상대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함께 활용할 수 있는 도구로 이해해야 한다. 결국 미래를 이끌어 갈 사람은 기술을 잘 다루는 사람이 아니라 기술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다. 국가 경쟁력 역시 기술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신뢰가 있는 사회, 서로 존중하는 문화, 협력과 소통이 가능한 공동체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끌 수 있다. 경제 규모가 아무리 커져도 신뢰가 무너지면 사회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반대로 신뢰와 품격이 살아 있는 사회는 위기 속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오늘날 세계는 AI를 중심으로 새로운 경쟁에 돌입했다. 하지만 진정한 승자는 가장 뛰어난 기술을 가진 나라가 아니라 기술과 인간의 가치를 조화롭게 발전시키는 나라가 될 것이다. 인간 중심의 기술, 윤리와 책임이 함께하는 혁신이야말로 미래 사회의 핵심 경쟁력이다. AI는 분명 세상을 바꾸고 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기에 우리는 미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신뢰와 공감, 책임과 배려, 그리고 인간에 대한 존중은 어떤 시대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이러한 가치들은 더욱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결국 미래를 만드는 것은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다. AI가 바꾸는 세상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지켜 나갈 때 우리는 더 행복하고 더 품격 있는 미래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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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6-01
  • [대한기자신문] 얼굴 안에 7천 개의 ‘인생’이 있다
    "얼굴 안에 7천 개의 인생이 있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한 사람의 얼굴에는 수많은 만남과 이별, 기쁨과 슬픔, 성공과 실패, 사랑과 용서가 켜켜이 쌓여 있다. 하루를 살아도 표정은 변하고, 십 년을 살아도 눈빛은 달라진다. 그렇게 축적된 시간이 얼굴이라는 캔버스 위에 자연스럽게 새겨지는 것이다. [대한기자신문 이정대 기자]사람의 얼굴은 단순한 외형이 아니다.얼굴은 살아온 시간의 기록이며,마음의 지도이고,인생의 역사책이다.누군가는 얼굴을 보고 첫인상을 말하지만,세월을 살아본 사람은 얼굴을 보고 그 사람의 삶을 읽는다. "얼굴 안에7천 개의 인생이 있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한 사람의 얼굴에는 수많은 만남과 이별,기쁨과 슬픔,성공과 실패,사랑과 용서가 켜켜이 쌓여 있다.하루를 살아도 표정은 변하고,십 년을 살아도 눈빛은 달라진다.그렇게 축적된 시간이 얼굴이라는 캔버스 위에 자연스럽게 새겨지는 것이다. 젊은 시절의 얼굴은 부모가 주지만,중년 이후의 얼굴은 자신이 만든다는 말이 있다.실제로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느냐에 따라 표정이 달라진다.늘 불평과 원망 속에 사는 사람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감사와 배려를 품고 사는 사람의 얼굴에는 따뜻한 빛이 흐른다. 특히 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말은 꾸밀 수 있어도 눈빛은 속일 수 없다.오랜 세월 사람을 상대해 온 이들은 상대의 눈빛만 보아도 마음의 상태를 어느 정도 읽어낸다.선한 마음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나타나고,성숙한 인격은 안정된 표정으로 드러난다. 주름 역시 단순한 노화의 흔적이 아니다.웃음이 많았던 사람은 눈가에 따뜻한 주름이 남고,고난을 이겨낸 사람은 이마에 깊은 인내의 흔적이 새겨진다.그래서 인생을 오래 산 사람의 얼굴에는 그 어떤 화장품으로도 만들 수 없는 품격이 존재한다. 우리 사회는 때때로 젊음만을 가치 있게 평가한다.하지만 진정한 아름다움은 나이를 먹지 않는 얼굴이 아니라 세월을 품은 얼굴에 있다.수많은 역경을 견디고도 미소를 잃지 않은 얼굴,상처를 받았지만 타인을 용서할 줄 아는 얼굴,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은 얼굴은 그 자체로 한 권의 감동적인 책이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수천 명을 만나고 수만 번의 선택을 한다.그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지혜는 결국 얼굴에 스며든다.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외모보다 인상이 중요해지고,인상보다 품격이 중요해진다.품격은 돈으로 살 수 없고 권력으로 만들 수도 없다.오직 삶의 태도와 인격의 결과로 만들어진다. 오늘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자.그 안에는 어린 시절의 꿈이 있고,청춘의 열정이 있으며,가족을 위해 흘린 땀과 눈물이 담겨 있다.또한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선 용기와 누군가를 사랑했던 따뜻한 기억도 함께 살아 있다. 얼굴은 결코 현재의 모습만을 보여주지 않는다.그 안에는 지나온 과거와 현재,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미래까지 담겨 있다.그래서 얼굴 안에는 단 하나의 인생이 아니라 수천 개의 인생이 존재한다. 결국 사람의 얼굴은 그 사람의 가장 정직한 자서전이다.세월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르지만,어떤 얼굴로 남을 것인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오늘도 좋은 생각을 품고,따뜻한 말을 건네며,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우리의 얼굴은 더욱 아름다운 인생의 기록으로 빛나게 될 것이다. 얼굴 안에7천 개의 인생이 있다.그리고 그7천 개의 이야기는 오늘도 새로운 한 페이지를 써 내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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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5-31
  • [토요칼럼] 수신제가(修身齊家)가 곧 치국(治國)의 본령이다. 어느 기업가의 ‘골드 룰’
    [지구일보 이창호 대기자] 구한말부터 현대사까지, 우리 민족의 굴곡진 역사를 지켜본 선각자들은 입을 모아 말하곤 했다. "나라를 바로 세우려면 먼저 집안을 다스려야 한다." 이 낡은 듯한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교훈이 4차 산업혁명과 초연결 시대를 살아가는 2026년 오늘날, 다시금 경영의 핵심 가치로 부상하고 있다. 작은 가정을 화목하게 꾸려나가는 힘과, 수만 명의 임직원이 포진한 대기업 및 거대 공동체를 이끄는 동력은 그 뿌리가 같다. 본지는 최근 재계에서 회자되는 한 중견 기업가 A 회장의 사례를 통해, 그가 말하는 '핵심 기본(Core Basics)' 즉, 경영의 '골드 룰'을 추적해 보았다. 첫 번째 골드 룰,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성실 A 회장은 매일 아침 5시, 손수 이부자리를 정리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누군가는 "회장님쯤 되면 가사 도우미를 쓰면 되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그는 단호하다. "자신이 머문 자리를 스스로 정리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수만 명의 생계가 달린 기업의 미래를 정리하겠는가." 그는 가정 내에서의 작은 규율이 곧 조직의 기강으로 이어진다고 믿는다. 가족 간의 약속을 어기지 않는 태도가 기업의 신뢰 경영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실제로 A 회장은 지난 30년간 단 한 번의 납기 지연이나 결재 누락을 허용하지 않았다. '작은 가정의 화목'을 지탱하는 것은 거창한 사랑의 고백이 아니라, 서로의 시간을 존중하는 사소한 성실함에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두 번째 골드 룰, 경청과 수용, '식탁의 철학' 공동체를 이끄는 리더십의 본질은 '소통'에 있다. A 회장은 매주 일요일 저녁, 온 가족이 모이는 식사 자리를 '비판 없는 대화의 장'으로 활용한다. 여기서 그는 가장 나이 어린 손자의 이야기도 끝까지 경청한다. 이 '식탁의 철학'은 기업 현장으로 고스란히 옮겨졌다. 그는 현장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수시로 공장을 찾는다. "회장님, 이 나사 하나가 공정을 늦춥니다"라는 말 한마디에 즉각 설비를 개선하는 결단력은, 가정 내에서 길러진 '수용의 근육' 덕분이다. 큰 공동체를 잘 끌어가는 힘은 군림하는 권위가 아니라, 가장 낮은 곳의 이야기를 귀담아듣는 태도에서 나온다. 세 번째 골드 룰, 원칙을 지키는 '엄격한 공정' 가정을 잘 꾸리는 이는 자녀를 편애하지 않는다. 공동체를 이끄는 이 역시 측근을 우대하지 않는다. A 회장은 자신의 친인척일지라도 실력이 없으면 경영 일선에 배치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는 "가정에서 자녀에게 정직을 가르쳤다면, 기업에서도 공정을 실천해야 한다"는 확고한 원칙 때문이다. 과거 그가 경영 위기에 처했을 때, 임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임금 동결에 동의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평소 회장이 보여준 사심 없는 경영과 공정한 보상 체계가 두터운 신뢰의 벽을 쌓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기본을 지키는 것, 즉 '상벌의 공정성'이야말로 대규모 공동체를 유지하는 황금 열쇠다. 다시 '기본'이 이끄는 시대로..., 현대 경영학은 복잡한 알고리즘과 데이터 분석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 모든 기법의 밑바닥에는 결국 '사람'이 있다. 작은 가정을 다스리는 마음으로 구성원을 대하고,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듯 조직의 기본을 살피는 리더가 우리 시대에는 절실하다. A 회장의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큰 기업을 일구고 공동체를 번영시키는 비책은 멀리 있지 않다. 오늘 아침 당신의 거실을 정리했는가? 가족의 목소리에 진심으로 응답했는가? 그 작은 '골드 룰'의 실천이 곧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거대한 기업가 정신의 시작이다. ▲ 글/사진: 이창호(李昌虎)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겸 국제다자외교평의회 대표(의장), 한중기자연맹 회장, 중국 곡부사범대학 겸직교수, 위해직업대학 객좌교수, 허베이미술대학 명예•종신교수, Marquis Who’s Who 등재 저자, 《우리가 아는 중국 우리가 모르는 중국》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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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25
  • [이창호칼럼] 빵, 빵, 빵, 그리고 삶
    [지구일보이창호 칼럼니스트] 사람의 삶은 때때로 한 조각의 빵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손에 쥐는 빵은 단순한 음식이지만, 그 안에는 인간의 역사와 노동, 그리고 삶의 의미가 함께 담겨 있다.그래서 빵은 늘 인간의 삶과 가까이 있었다. 고대 문명에서부터 빵은 생존의 상징이었다. 곡식을 갈고 반죽을 만들고 불에 구워내는 과정은 단순한 요리가 아니라 공동체의 협력과 기술의 산물이었다. 빵이 만들어지는 과정에는 땅을 일구는 농부의 땀, 밀을 가는 사람의 노동, 불을 지키는 사람의 인내가 함께 들어 있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먹는 한 조각의 빵은 사실 수많은 손길이 모여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그래서 빵은 단순한 식량이 아니라 삶의 은유가 된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자라듯 인간의 삶 역시 보이지 않는 시간과 노력 속에서 조금씩 익어 간다. 반죽이 발효되기 위해 기다림이 필요하듯, 사람의 인생 또한 서두른다고 해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삶에는 늘 시간이 필요하다. 도시의 아침 풍경을 떠올려 보면 그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른 새벽 문을 여는 작은 빵집 앞에는 언제나 따뜻한 냄새가 흐른다. 사람들은 출근길에 잠시 들러 빵 한 봉지를 들고 나선다. 그 빵은 단순한 아침 식사가 아니라 하루를 시작하는 작은 위로이기도 하다. 바쁜 도시 속에서 사람들은 그렇게 빵을 통해 잠시 숨을 고른다. 빵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그것은 나눔이다. 빵은 혼자 먹기보다 함께 나눌 때 더 큰 의미를 가진다. 오래전부터 공동체에서는 빵을 나누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마음을 전했다. 가족이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빵을 찢어 나누는 모습은 인간 사회의 가장 오래된 풍경 가운데 하나다. 나눔이 사라진 사회는 아무리 풍요로워도 어딘가 허전하다. 현대 사회는 점점 풍요로워지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의 마음은 더 자주 허기를 느낀다. 물질은 많아졌지만 삶의 온기는 줄어들었다는 말도 들린다. 이런 시대일수록 빵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단지 배를 채우는 음식이 아니라,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최소한의 온기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인생은 거창한 사건들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시간은 아주 평범한 순간들로 채워진다. 아침에 빵을 먹고 하루를 시작하고, 저녁에는 가족과 함께 식탁을 나누는 일상 속에서 삶은 조금씩 완성된다. 그 평범한 순간들이 모여 한 사람의 인생을 만든다. 그래서 어떤 철학자는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빵만이 아니라고 말했다. 인간에게는 빵과 함께 삶의 의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빵이 몸을 살린다면, 의미는 마음을 살린다. 이 둘이 함께할 때 인간의 삶은 비로소 균형을 찾는다. 결국 빵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그것은 노동의 결과이며 나눔의 상징이고, 인간의 삶을 비추는 하나의 거울이다. 우리가 매일 먹는 한 조각의 빵 속에는 삶을 버티게 하는 힘이 들어 있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하나의 빵과 같을지 모른다. 서두르지 않고 시간을 견디며, 때로는 서로의 온기를 나누면서 조금씩 익어 가는 것.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삶의 맛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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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11
  • [이창호칼럼] 새벽을 깨우는 황금시간, '나'라는 전략가의 탄생
    [지구일보 이창호 칼럼니스트] 모두가 잠든 시간, 창밖은 여전히 짙은 어둠에 잠겨 있다. 세상의 소음이 잦아든 고요한 새벽, 누군가는 이 시간을 ‘정제된 고립’이라 부르지만, 누군가는 ‘완벽한 자유’라 정의한다. 이른바 ‘아침형 인간’이라 불리는 이들이다. 그들은 단순히 잠이 적은 사람들이 아니다. 세상보다 한 발 먼저 깨어나 하루의 주도권을 쥐는 영리한 전략가들이다. 흔히 아침형 인간을 성실함의 척도로만 본다. 하지만 진정한 핵심은 ‘무작정 잠을 줄이는 고통’에 있지 않다. 그것은 차라리 어제의 절제를 통해 오늘 아침의 활력을 선택하는, 고도의 자기 경영에 가깝다. 늦은 밤의 유혹을 뿌리치고 침대에 눕는 행위는 단순히 수면을 위한 것이 아니다. 내일의 나에게 ‘최상의 컨디션’이라는 선물을 주기 위한 확고한 자기 약속이다. 쫓기듯 일어나는 7시와 내가 설계한 시간에 눈을 뜨는 5시는 질적으로 다르다. 알람 소리에 놀라 허둥지둥 출근 준비를 하는 아침에는 수동적인 태도가 깃든다. 반면, 모두가 잠든 정적 속에서 스스로 눈을 뜨는 경험은 하루 전체를 관통하는 자신감의 씨앗이 된다. 내가 시간을 이끌고 가는가, 아니면 시간에 끌려가는가. 이 미묘한 차이가 평범한 일상과 자기 삶의 주인 사이의 경계를 가른다. 새벽의 공기는 밀도가 다르다. 스마트폰의 알림도, 예기치 못한 업무 연락도 침입하지 못하는 이 시간은 오로지 나 자신에게만 몰입할 수 있는 ‘성소(聖所)’다. 누군가는 운동화를 신고 새벽 찬바람을 가르고, 누군가는 명상을 하며 마음의 결을 고른다. 그리고 필자는, 이 황금 같은 시간에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쓴다. 글쓰기는 나를 마주하는 가장 정직한 의식이다. 어제 흘려보낸 감정의 찌꺼기를 걸러내고, 오늘 채워야 할 희망의 문장들을 적어 내려간다. 하얀 백지 위에 잉크가 번지는 소리만이 들리는 이 시간, 나는 비로소 세상의 요구가 아닌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남들보다 앞서간다는 성취감보다 더 달콤한 것은, 나를 소중히 대접하고 있다는 그 고요한 충만함이다. 아침형 인간이 되기 위해 거창한 결심은 필요 없다. 내일 아침, 평소보다 딱 15분만 먼저 일어나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겨보는 것부터 시작하면 충분하다. 그 짧은 시간이 주는 위로는 생각보다 강력하다. 남들이 깨어나기 전,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김을 바라보며 갖는 고요한 사색은 당신의 일상을 이전보다 훨씬 단단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새벽은 어둠을 걷어내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내 안의 빛을 발견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당신의 아침은 어떤 색깔인가. 내일 새벽, 당신만의 황금시간을 깨워보길 권한다.그것이 비록 짧은 문장 한 줄일지라도, 그 시간은 당신의 하루를, 나아가 인생을 바꿀 힘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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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06
  • [이창호칼럼] 운명의 조각도는 일상의 사소한 습관이다. 도덕성이 빚어내는 삶의 기적
    [지구일보 이창호 칼럼니스트]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운명이라는 거대한 강줄기는 하늘에서 갑자기 쏟아진 폭우가 아니라, 산기슭에서 스며 나온 작은 샘물들이 모여 형성된다. 우리는 흔히 거창한 행운이나 가혹한 불운이 우리의 삶을 결정짓는다고 믿지만, 사실 운명의 밑그림을 그리는 것은 ‘성격’이며, 그 성격의 결을 다듬는 것은 우리가 매일 반복하는 ‘일상의 습관’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결과' 중심의 서사에 매몰되어 있다.성공한 자의 화려한 조명 아래 감춰진 과정은 생략되고, 운 좋은 이들의 우연만이 부각된다. 그러나 삶을 깊이 응시해 본 이들은 안다. 한 사람의 성격은 그가 아침에 눈을 떠 잠들기 전까지 행하는 아주 사소한 선택들의 총합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 선택의 중심에는 언제나 '도덕성'이라는 나침반이 놓여 있어야 한다. ● 습관이 성격이 되고, 성격이 운명이 되는 원리 성격은 타고난 기질만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그것은 후천적으로 학습되고 강화된 '반응의 양식'이다. 타인에게 건네는 따뜻한 인사 한마디, 약속 시간을 지키려는 정성, 자신이 머문 자리를 정돈하는 마음가짐 같은 작은 습관들이 층층이 쌓여 한 사람의 인격을 이룬다. 성격이 운명을 만든다는 말은 곧, 그 사람이 위기에 대처하는 방식과 기회를 포착하는 안목이 평소의 습관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매사에 성실하고 정직한 습관을 지닌 이는 신뢰라는 자산을 얻고, 그 신뢰는 결정적인 순간에 그를 구원하는 운명의 손길로 변한다. 반면, 요행을 바라고 타인을 기만하는 사소한 습관은 결국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불운의 구렁텅이로 자신을 밀어 넣는다. ● 도덕성, 삶의 품격을 결정짓는 마지막 한 조각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바로 도덕적 습관이다. 도덕성은 거창한 윤리 담론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양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습관, 나의 이익보다 공동체의 안녕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의 근육이 바로 도덕성이다. 도덕적인 성격은 그 사람을 단단하게 만든다. 비바람이 불어도 뿌리 깊은 나무가 흔들리지 않듯, 도덕적 습관이 내면화된 사람은 외부의 유혹이나 시련 앞에서도 자존감을 잃지 않는다. 이러한 내면의 힘은 결국 고귀한 운명을 이끄는 동력이 된다. 남을 돕는 것이 습관이 된 사람에게는 주변에 사람이 모이고, 그 선한 영향력은 부메랑처럼 돌아와 그의 삶을 풍요롭게 채운다. 이것은 미신이 아니라, 인과응보의 과학이자 삶의 섭리다. ● 마침내, 감동은 일상의 축적에서 온다 우리가 위인들의 삶에서 감동을 느끼는 이유는 그들이 이룬 업적 때문만은 아니다. 그 업적을 이루기까지 그들이 견뎌온 고독한 습관과 도덕적 결단에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매일 같은 시간에 책상 앞에 앉았던 작가의 성실함, 매 순간 정직을 택했던 기업가의 고집,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며 손을 내밀었던 활동가의 다정함. 이 모든 것은 습관이었고, 성격이었으며, 끝내 그들의 위대한 운명이 되었다. 당신의 오늘은 어떠한가. 혹시 거창한 미래를 꿈꾸면서도, 오늘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작은 도덕적 습관들을 간과하고 있지는 않은가. 길가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 마음, 타인의 실수를 너그럽게 품어주는 관용, 정직하게 하루를 채우려는 노력들이 모여 당신의 성격이 되고, 그 성격이 당신의 앞길을 밝히는 등불이 될 것이다. "성격은 운명의 부름에 답하는 방식이다." 운명은 정해진 결론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써 내려가는 일기장의 합계다. 도덕이라는 잉크로 일상의 습관을 정갈하게 기록해 나갈 때,우리의 운명은 비로소 가장 아름다운 문장으로 완성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이 선택하는 사소한 행동 하나가 이미 당신의 위대한 운명을 조각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 글/사진: 이창호(李昌虎)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겸 국제다자외교평의회 대표(의장), 한중기자연맹 회장, 중국 곡부사범대학 겸직교수, 위해직업대학 객좌교수, 허베이미술대학 명예/종신교수, Marquis Who’s Who 등재 저자, 《새 시대를 이끄는 시진핑과 한중관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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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05
  • [지구일보] 잘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다섯 가지 태도
    [지구일보 이창호 칼럼니스트] 우리는 종종 ‘성공의 비결을 묻는다. 특별한 재능이나 배경, 혹은 결정적 기회를 떠올리지만, 사실은 훨씬 단순한 데에 답이 있다.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은 거창한 전략이 아니라 반복되는 태도다. “잘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는 공통된 마음가짐이 있다. 새롭지 않지만, 좀처럼 지키기 어려운 다섯 가지 원칙이다. 첫째, 지난 일에 연연하지 않는다. 후회는 인간적인 감정이지만, 거기에 머무는 순간 현재는 힘을 잃는다. 이미 지나간 선택과 실패를 곱씹는 일은 배움으로 끝날 때 그 의미가 있다. 과거를 반성하되, 거기에 묶이지 않는 태도. 이것이 삶을 앞으로 밀어가는 첫걸음이다. 인생은 복기가 아니라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용기다. 둘째,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다. 사람의 미움은 상대보다 먼저 자신을 좀먹는다. 타인의 허물에 마음을 붙들어 매는 동안, 우리는 스스로의 시간을 소모한다. 인간관계 속에서 상처를 피할 수는 없지만, 미움에 오래 머물 필요는 없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놓아줄 수는 있다. 결국 인생의 폭은 타인을 대하는 태도에서 결정된다. 셋째, 작은 일에 화내지 않는다. 일상의 사소한 균열은 어디에나 있다. 약속의 지연, 예상치 못한 변수, 말 한마디의 오해. 그때마다 감정이 요동친다면 하루가 금세 소진된다. 큰 목표를 향하는 사람일수록 사소한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다. 감정을 절제하는 힘은 단순한 인내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무엇에 반응하고 무엇을 흘려보낼 것인지, 스스로 정하는 일이다. 넷째, 현재를 즐긴다. 우리는 종종 ‘언젠가’를 말하며 오늘을 유예한다. 더 나은 조건, 더 완벽한 준비, 더 안정된 상황을 기다린다. 그러나 삶은 늘 지금뿐이다. 현재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사람은 미래에서도 만족하기 어렵다. 오늘의 기쁨을 인색하게 다루지 않는 태도, 그것이 지속 가능한 행복의 토대다. 다섯째, 미래는 신에게 맡긴다. 여기서 말하는 ‘맡김(위탁)’은 무책임이 아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뒤, 결과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자세다.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을 인정하는 순간, 불안은 줄어든다. 계획은 치밀하게 세우되, 결과는 겸허히 받아들이는 태도. 그 여백이 삶을 단단하게 만든다. 사실 이 다섯 가지는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오래전부터 수없이 반복되어온 삶의 지혜다. 그럼에도 우리는 번번이 잊는다. 그래서 다시 꺼내어 읽고, 다시 마음에 새겨야 한다. 거창한 성공 담론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매일의 태도다. 잘될 수밖에 없는 사람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이가 아니라,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다. 과거를 놓고, 미움을 덜고, 사소함에 흔들리지 않으며, 오늘을 살고, 내일을 내려놓는 사람. 그 단순한 원칙이 결국 인생의 방향을 결정한다. 성공은 멀리 있는 목표가 아니라, 이미 선택된 태도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 글/사진: 이창호(李昌虎)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겸 국제다자외교평의회 대표(의장), 한중기자연맹 회장, 중국 곡부사범대학 겸직교수, 위해직업대학 객좌교수, 허베이미술대학 명예/종신교수, Marquis Who’s Who 등재 저자, 《새 시대를 이끄는 시진핑과 한중관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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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27
  • [토요칼럼=자기계발] 비전과 실행의 함수, 기적을 만드는 행동의 메커니즘
    [지구일보]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폴 부르제의 이 말은 현대인들에게 단순하지만 강렬한 진리를 시사합니다. 우리가 가슴 속에 품은 원대한 '비전'이 단순한 공상에 머물지 않고 현실의 '기적'으로 치환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사이를 잇는 강력한 촉매제인 '행동'이 필요합니다. ● 비전, 뇌에 새기는 미래의 설계도 비전은 단순히 "부자가 되고 싶다"거나 "유명해지고 싶다"는 막연한 욕망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상태를 구체적으로 시각화하고, 그 가치를 명확히 규정하는 정신적 이정표입니다. 심리학적으로 비전을 갖는다는 것은 우리 뇌의 '망상활성계(RAS)'를 활성화하는 작업입니다. RAS는 수많은 정보 중 우리에게 중요한 정보만을 필터링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명확한 비전을 세우는 순간, 우리 주변에 널려 있던 기회와 자원들이 비로소 유의미하게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운'이나 '기적'의 첫 번째 단추입니다. ● 행동, 관성을 깨는 임계점의 돌파 많은 이들이 비전을 세우는 단계에서 멈춥니다. 하지만 기적은 책상 위가 아니라 현장에서 일어납니다. 요컨대 물이 99도에서 100도가 되는 순간 끓기 시작하듯, 현실의 변화를 끌어내는 데는 반드시 '행동의 임계점'을 넘어서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저항의 최소화,거창한 시작보다는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실행해야 합니다. 행동이 반복되면 습관이 되고, 습관은 뇌의 에너지를 덜 쓰게 하여 지속 가능성을 높입니다. ▪︎피드백의 루프, 행동은 곧 데이터를 생성합니다. 계획만 세울 때는 알 수 없었던 문제점과 해결책이 행동을 통해 드러납니다. 이 수정 과정이 반복될 때 비전은 더욱 견고해집니다. ● 왜 '반드시' 기적이 일어나는가? 우리가 '기적'이라 부르는 현상은 사실 축적된 노력과 우연의 일치(Serendipity)가 만나는 지점에서 발생합니다. 비전을 갖고 행동하는 사람은 단순히 한 방향으로 걷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과 연결되고 새로운 변수를 창출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확률이 '0'이지만, 행동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작은 가능성이라도 존재합니다. 또 그 행동이 지속될 때, 확률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으로 상승하며 마침내 우리가 기적이라 부르는 결과에 도달하게 됩니다. ● 지금 당신의 발끝을 보십시오 비전은 먼 하늘에 있지만, 발은 땅을 딛고 있어야 합니다. 거창한 담론에 매몰되어 오늘 할 일을 미루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적은 준비된 자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자에게 찾아오는 선물입니다. 오늘 당신이 내딛는 작은 한 걸음은 내일의 거대한 파동을 만드는 시작점이 될 것입니다. 당신의 비전이 살아 숨 쉬는 행동으로 이어질 때, 세상은 당신을 돕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기적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비전과 실행이 결합한 필연적 결과입니다. ▲ 글/사진: 이창호(李昌虎)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겸 국제다자외교평의회 대표(의장), 한중기자연맹 회장, 중국 곡부사범대학 겸직교수, 위해직업대학 객좌교수, 허베이미술대학 명예/종신교수, Marquis Who’s Who 등재 저자, 《새 시대를 이끄는 시진핑과 한중관계》 저자. [붙임] 이 기사가 마음에 닿으셨다면, 주변의 작은 광고 한 번 눌러 주시면 힘이 됩니다. 독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더 나은 기사와 정직한 보도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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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14
  • [특별 기획] 억겁의 시간 너머 맞닿은 ‘한 뿌리 다른 꽃’, 설과 춘절의 사회학
    [지구일보 이창호 eorlwk] 입춘대길(立春大吉)의 묵향이 채 가시기도 전, 동아시아의 대지는 다시 한번 거대한 이동의 물결에 요동친다. 한국의 ‘설’과 중국의 ‘춘절(春节)’. 달의 주기를 따라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이 두 명절은 유교적 문화권이라는 거대한 자장(磁場) 안에서 태동했으나, 각기 다른 역사적 토양 위에서 서로 다른 빛깔의 꽃을 피워냈다. 단순히 ‘쉬는 날’을 넘어 한 민족의 정체성과 가족 공동체의 원형을 확인하는 이 두 명절의 이면에는 어떤 문화적 기호가 숨겨져 있을까. ● 고요한 성찰의 시간, 한국의 ‘설’ 한국의 설은 ‘삼가다’라는 뜻의 ‘사리다’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새해의 첫날을 그저 들뜬 축제로 맞이하기보다, 몸가짐을 정돈하고 경거망동을 삼가며 한 해의 운수를 경건히 맞이하려는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한국 설의 핵심은 ‘수직적 결합’과 ‘내면적 위로’에 있다. 이른 아침, 정갈하게 차려낸 차례상 앞에서 조상을 기리는 마음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정신적 가교'다.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올리는 세배는 단순한 용돈 벌이가 아닌, 세대 간의 내밀한 축복이자 질서의 확인이다. 음식에서도 그 성격이 드러난다. 흰 떡국 한 그릇은 지난날의 묵은 때를 벗고 백지 위에 새로운 일기를 써 내려가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다. 한국의 설은 왁자지껄한 소음보다는 가족들이 둘러앉아 덕담을 나누는 낮은 목소리의 온기로 채워진다. 이는 농경 사회의 공동체 의식을 유지하면서도 개별 가문의 가풍을 중시했던 한국 특유의 유교 문화가 투영된 결과다. ● 거대한 생명력의 폭발, 중국의 ‘춘절’ 반면 중국의 춘절은 ‘수평적 확장’과 ‘역동적 환희’의 무대다. 고대 전설 속 괴물 ‘년(年)’을 쫓아내기 위해 붉은 종이를 붙이고 폭죽을 터뜨리던 풍습에서 기원한 만큼, 춘절의 기운은 강렬하고 뜨겁다. 중국인들에게 춘절은 겨울의 끝과 봄의 시작을 알리는 거대한 선언이다. 집집마다 붙이는 ‘춘련(春联)’과 거리를 수놓는 홍등(紅燈)은 복(福)이 들어오길 바라는 적극적인 염원의 산물이다. 한국의 설이 차분한 묵조(默照)의 시간이라면, 중국의 춘절은 온 세상이 붉게 타오르는 축제의 시간이다. 특히 춘절 음식인 ‘교자(饺子)’는 그 형태가 옛 화폐인 원보(元寶)를 닮아 부(富)를 기원하는 세속적이고도 솔직한 욕망을 담고 있다. 가족이 모여 만두를 빚으며 밤을 지새우는 ‘수세(守歲)’ 풍습은 거대한 대륙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확인하고 서로의 생존을 축하하는 강인한 생명력의 표출이기도 하다. ● 자본주의와 만난 전통, 그리고 변치 않는 가치 21세기에 들어서며 '설과 춘절'은 거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한국의 ‘명절 증후군’과 중국의 ‘춘운(春運, 춘절 대이동)’은 현대 사회가 전통 명절에 부과한 피로도를 여실히 보여준다. 작금 핵가족화를 넘어 1인 가구가 보편화된 시대, "가족이 반드시 모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사회적 화두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전히 설과 춘절을 기다리는 이유는 명확하다. 속도와 효율만이 강조되는 무한 경쟁의 궤도에서 잠시 내려와, 나의 뿌리를 확인하고 타인(가족)의 안부를 묻는 '인간적인 시간'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떡국 한 그릇과 중국의 교자 한 접시는 결국 같은 메시지를 던진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며, 다시 시작할 기회가 있다"는 위로 말이다. 설과 춘절은 단순한 역법상의 날짜가 아니다. 그것은 '억겁의 세월' 동안 동아시아인의 DNA에 각인된 '회귀(回歸)'의 본능이며, 차가운 겨울을 뚫고 올라오는 봄의 전령사다. 형상은 다르되 본질은 하나인 이 두 명절을 통해, 우리는 다시금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 글/사진: 이창호(李昌虎)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겸 국제다자외교평의회 대표(의장), 한중기자연맹 회장, 중국 곡부사범대학 겸직교수, 위해직업대학 객좌교수, 허베이미술대학 명예/종신교수, Marquis Who’s Who 등재 저자, 《새 시대를 이끄는 시진핑과 한중관계》 저자. [붙임] 이 기사가 마음에 닿으셨다면, 주변의 작은 광고 한 번 눌러 주시면 힘이 됩니다. 독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더 나은 기사와 정직한 보도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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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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