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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론] 성직자의 정치 참여, '양심의 자유'와 '정교분리'의 외줄타기
[지구일보이창호 발행인] 종교와 정치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동반자이자 숙명의 라이벌이었다. 때로는 성스러움이 세속을 구원하기도 했고, 때로는 권력의 탐욕이 신성(神性)을 오염시키기도 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다시금 불붙고 있는 성직자의 정치 참여 논란은 헌법이 보장한 '정교분리'의 원칙과 개인의 '양심 및 표현의 자유'라는 두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에 서 있다. 이를 단순한 찬반의 논리로 재단하기에 앞서, 우리는 성직자라는 특수한 신분이 갖는 도덕적 무게와 그 영향력을 냉철하게 응시해야 한다. 성직자의 정치 참여를 옹호하는 측은, 성직자 또한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임을 강조한다. 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며 종교에 의해 정치적·사회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성직자가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거나, 보편적 인권과 정의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광장에 나서는 것을 '종교의 정치 개입'으로만 매도할 수는 없다는 논리다. 역사의 변곡점마다 종교계가 보여준 예언자적 비판 정신은 민주화와 인권 신장에 기여한 바가 크다. 그러나 문제는 '참여의 방식'과 '정치적 중립성'의 훼손에 있다. 성직자의 말 한마디는, 시민의 사회적 무게감이 다르다. 신도들에게는 신의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영적 권위를 지니기 때문이다.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지하거나, 종교적 교리를 이용해 정치적 적대감을 고취하는 행위는 종교의 본질인 화합과 사랑을 스스로 부정하는 처사다. 이는 신앙의 공동체를 이념의 전장(戰場)으로 변질시키고,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기보다 증폭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특히 한국 사회처럼 종교적 다양성이 공존하는 다종교 사회에서 특정 종교인의 편향된 정치 행보는 자칫 종교 간 갈등이나 사회적 분열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우리 헌법 제20조 제2항이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명시한 이유는 정치가 종교를 이용하거나, 종교가 국가 권력을 장악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비극을 막기 위함이다. 성직자가 강단에서 특정 정파의 논리를 전파하는 순간, 종교는 세속적 권력투쟁의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진정한 의미의 성직자의 정치 참여는 '정치 권력에의 편승'이 아니라 '시대적 가치의 수호'여야 한다. 특정 이념의 전사가 되기보다는, 우리 사회가 놓치고 있는 도덕적 가치와 공동체의 선(善)을 일깨우는 '사회의 빛과 소금'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되, 스스로 권력의 품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성직자의 정치 참여가 정당성을 얻으려면 엄격한 자기 절제와 성찰이 전제되어야 한다. 성직자의 옷을 입고 행하는 모든 정치적 언사는 개인의 자유를 넘어 종교 전체의 신뢰와 직결된다. 종교가 정치를 정화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가 종교를 오염시키는 현실을 목도하며, 우리는 다시금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성직자들이 서 있는 곳은 진정 낮은 곳을 향한 헌신의 자리인가, 아니면 세속의 권력을 탐하는 탐욕의 자리인가. 성직자는 정치적 사안에 대해 침묵할 의무는 없으나, 자신의 권위가 갖는 파괴력을 직시해야 한다. 정치가 증오와 배제의 언어로 가득 찬 시대일수록, 종교는 그 너머의 화해와 통합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것이 성직자에게 부여된 진정한 사회적 책무이자, 정치 참여의 한계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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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 천 년의 비단길에서 디지털 런웨이로... 중국 패션의 역사적 변천과 미래적 응시
[지구일보 김지윤 한중문화칼럼니스트] 패션은 단순히 몸을 감싸는 천의 조합이 아니다. 그것은 시대의 이데올로기, 기술의 진보, 그리고 한 민족의 자존감이 응축된 ‘입는 역사서’다. 특히 중국 패션은 황제의 권위를 상징하던 오색찬란한 비단에서부터, 혁명의 획일성을 상징하던 인민복을 거쳐, 이제는 전 세계 미학의 기준을 새롭게 정의하는 ‘신중국주의(New Chineseness)’에 이르기까지 극적인 파노라마를 그려왔다. 본 칼럼에서는 중국 패션의 역사적 흐름을 짚어보고, 현대 중국 패션이 나아가고 있는 방향성을 알아본다. ◈ 역사적 흐름, 권위와 혁명, 그리고 개방의 연대기 ① 제국의 영광, 복식으로 쓴 위계의 서사 전통 시대 중국 패션은 ‘예(禮)’의 산물이었다. 한푸(漢服)로 대표되는 고대 복식은 소매의 넓이, 허리띠의 색상, 수놓아진 문양 하나하나에 엄격한 계급적 질서를 담았다. 청나라 시대의 치파오(旗袍) 역시 본래 만주족 여인들의 헐렁한 의복에서 시작되어 왕실의 권위를 상징했다. 이 시기 중국 패션의 핵심은 ‘독보적 기법’이었다. 옷감 특유의 질감으로 경외감을 만들듯, 당시의 자수와 직조 기술은 그 자체로 국가적 IP(지식재산권)였다. ② 혁명의 시대, 획일화된 정체성, 인민복(中山裝) 20세기 중반, 중국 패션은 거대한 단절을 겪는다. 쑨원이 고안하고 마오쩌둥이 상징화한 인민복은 계급을 타파하고 평등을 지향하는 혁명의 유니폼이었다. 화려함은 거세되었고, 실용성과 통제된 질서만이 남았다. 이 시기는 패션이 개인의 개성이 아닌 집단의 미션을 수행하던 시기였다. ③ 개방과 모방, 서구 미학의 유입 1980년대 개혁개방 이후, 중국 패션은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서구의 유행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서 타인의 도상을 복제하며 상업적 성장을 이뤘으나, 작가적 주체성은 부재했다. ◈ 현대 패션의 향방, 궈차오(國潮)에서 신중식(新中式)으로 오늘날 중국 패션은 더 이상 서구의 추종자가 아니다. 현재 중국 현대 패션의 방향성은 크게 세 가지 축으로 요약된다. ① 국조(國潮, Guochao), 전통의 ‘힙’한 재해석 젊은 세대인 Z세대가 주도하는 ‘궈차오’ 열풍은 애국 소비를 넘어선 미학적 혁명이다. 이는 전통문화의 파편들을 스트릿 패션이라는 현대적 그릇에 담아내는 과정이다. 한자를 그래픽화하고, 사찰의 단청 색감을 스니커즈에 이식한다. 이는 예술경영의 ‘창조적 파괴’ 이론을 실천하는 현상으로, 낡은 전통을 가장 강력한 현대적 콘텐츠로 부활시켰다. ② 신중식(新中式), 절제와 포용의 미학 최근 트렌드는 자극적인 국조를 넘어 ‘신중식’이라는 고차원적 미학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는 치파오의 형태를 해체하여 현대적인 오버사이즈 실루엣에 녹여내거나, 도자기의 유려한 곡선을 의복의 패턴으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서구의 패션이 인체의 곡선을 드러내는 ‘강조’에 집중한다면, 신중식은 인체를 감싸고 품는 ‘여백’과 ‘흐름’에 집중한다. ③ 디지털 피지털(Phygital) 생태계 다니엘 아샴이 가상 고고학이라는 서사를 디지털 미디어로 전파하듯, 중국 패션은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IT 생태계를 적극 활용한다. 가상 의류(Digital Wear), 라이브 커머스를 통한 실시간 서사 전달은 중국 패션을 단순한 제조업이 아닌 ‘디지털 문화 IP 산업’으로 격상시켰다. ◈ 미래의 방향성, 지속 가능한 철학적 패션 미래 중국 패션이 나아갈 최종 종착지는 ‘정신적 안식처로서의 옷’이다. 첫째, 지속 가능성에 대한 집착이다. 전통적인 천연 염색 기법과 재생 소재의 결합은 전 세계적인 환경 위기 속에 중국 패션이 던지는 대안적 메시지다. 둘째, 포용적 디자인이다. 패션마저 글로벌세계관을 바탕으로 나이와 체형에 상관없이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는 형태의 의복이 주류를 이룰 것이다. 중국 패션의 역사는 권위에서 투쟁으로, 다시 모방에서 창조로 굽이쳐 왔다. 이제 중국 패션은 그릇에 흙의 결이 겹겹이 쌓여 단단해지듯, 수천 년의 시간을 겹겹이 쌓아 올려 세계라는 거대한 관객을 품으려 하고 있다. 따라서, 미래의 중국 패션은 현대인의 고단한 영혼을 따스하게 품어주는 ‘문화적 그릇’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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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 수기이안(修己以安)... 스스로를 닦아 세상을 품는 도리
[지구일보 이창호 칼럼니스트] 동양의 오랜 지혜는 인간의 성장을 단순히 기술의 습득이나 부의 축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수기(修己)', 즉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갈고닦아 본연의 빛을 찾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처럼,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는 것은 곧 천명(天命)을 완수하는 숭고한 여정입니다. 동아시아적 가치관에 입각하여 능력을 개발하는 세 가지 핵심 원리를 전합니다. ◈ 절차탁마(切磋琢磨)의 정신: 끊임없는 정진 옥(玉)은 본래 거친 돌 속에 숨어 있습니다. 그것이 찬란한 보석이 되기 위해서는 자르고(切), 갈고(磋), 쪼고(琢), 닦는(磨) 고통스러운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우리의 재능 또한 이와 같습니다. * 정성(誠)의 힘, 《중용》에서는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했습니다. 능력 개발의 시작은 화려한 기술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사소한 일에 마음을 다하는 '정성'에 있습니다. * 점진적 성취, 대나무가 마디를 만들며 자라듯, 성장은 한꺼번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매일 한 치의 진보를 귀하게 여기는 태도가 결국 천 리 길을 가는 힘이 됩니다. ◈ 온고이지신(溫故知新): 과거에서 길어 올리는 미래 새로운 것만을 쫓는 것은 뿌리 없는 나무와 같습니다. 동아시아의 지혜는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아는 데서 진정한 창조가 일어난다고 가르칩니다. * 근본의 확립, 기술(Skill) 이전에 도(道)가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분야의 역사와 철학을 깊이 이해하십시오. 근본이 바로 서야(本立), 방법이 생겨나는 법(道生)입니다. * 통섭적 사고, 문(文)·사(史)·철(哲)의 소양은 현대적 전문 지식과 결합할 때 비로소 독창적인 통찰로 변모합니다. 자신의 전공 분야를 넘어 인문학적 상상력을 더할 때, 비로소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 외유내강(外柔內剛)과 지행합일(知行合一) 능력은 밖으로 과시하기 위함이 아니라, 안으로 단단해지고 밖으로 이로움을 주기 위함입니다. * 실천의 중요성,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본래 하나입니다. 머리로만 익힌 지식은 살아있는 능력이 되지 못합니다.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얻은 경험만이 자신의 뼈와 살이 됩니다. * 겸손의 미덕,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은 무능함을 뜻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고수는 자신의 능력을 벼리되, 그것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는 지극히 겸허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주변의 도움을 이끌어내며, 더 큰 성장의 기회를 만듭니다. ◈ 대기만성(大器晩成)의 믿음 큰 그릇은 뒤늦게 완성됩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다고 해서 조급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땅속에서 수년간 뿌리를 내리는 모소 대나무처럼, 지금 당신이 보내는 인고의 시간은 훗날 하늘로 높이 치솟기 위한 준비 기간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수신(修身)'을 바탕으로 능력을 개발하십시오. 나아가 그 능력이 타인과 사회에 기여할 때, 당신의 삶은 비로소 완성에 가까워질 것입니다. "군자는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않고, 자신이 능력이 없음을 걱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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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현장탐방] 거친 파도 너머 ‘나란다’의 비원(悲願), 해운대 인어상에 깃든 천년의 향수
[부산=지구일보 이창호 대기자] 부산 해운대 동백섬 해안 산책로를 걷다 보면, 갯바위 위에 앉아 아스라이 수평선을 바라보는 황동빛 여인을 마주하게 된다. 부산 해운대의 상징 중 하나인 ‘인어상’이다. 단순히 관광객의 눈길을 붙잡기 위한 조형물이라 치부하기엔 그 눈망울에 담긴 서사가 예사롭지 않다. 이 인어상에는 바다 건너 미지의 나라에서 온 공주의 애틋한 망향가(望鄕歌)가 서려 있다. ● 고국을 향한 그리움, 황옥공주 전설 해운대 인어상의 주인공은 인어 나라 ‘나란다’에서 온 황옥공주(黃玉公主)다. 전설에 따르면, 아주 먼 옛날 인어들의 나라인 나란다의 황옥공주는 해운대 무궁나라의 은혜왕에게 시집을 오게 된다. 낯선 땅에서의 생활은 행복했으나, 공주는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떨칠 수 없었다고 한다. 공주가 가련해 보였던 것일까. 나란다의 대신들은 공주에게 신비로운 황옥(黃玉) 한 알을 건넸다. 보름달이 뜨는 밤, 그 황옥을 비추어 보면 고국인 나란다의 전경이 거울처럼 나타난다는 것이다. 공주는 매일 밤 동백섬 해안가 바위에 앉아 황옥을 들여다보며, 거친 파도 너머에 있을 부모님과 고향의 모습을 그리워했다. 이 이야기가 오늘날 해운대 인어상의 유래가 되었다. ■ 가락국 허황옥 신화와의 기묘한 연결고리 흥미로운 점은 이 전설이 가야의 시조 김수로왕의 비(妃)인 허황옥(許黃玉)의 신화와 맥을 같이한다는 점이다. 인도 아유타국에서 건너왔다는 허황옥의 이름 ‘황옥’과 인어 전설 속 ‘황옥공주’의 이름이 일치하는 것은 우연의 일치라 보기 어렵다. 학계와 지역 문화계에서는 이 전설을 두고 고대 해상 교류의 흔적이 구전 설화로 정착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먼 바다를 건너온 이주민들의 고독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던 이방인의 정서가 ‘인어’라는 신비로운 존재를 빌려 투영되었다는 분석이다. ● 시대의 부침을 견디며 지켜온 자취 현재 우리가 보는 인어상은 사실 두 번째 모습이다. 1974년에 처음 세워졌던 석재 인어상은 1987년 태풍 ‘셀마’의 위력에 휩쓸려 유실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1989년 청동으로 새롭게 제작된 것이 지금의 인어상이다. 유실된 첫 인어상의 파편은 현재 부산박물관에 보존되어 있어, 그 자체가 해운대의 현대사를 증언하는 유물이 되었다. ■ 현대인에게 던지는 ‘위로’의 메시지 해운대 인어상은 단순히 전설의 재현을 넘어, 고향을 떠나 대도시로 모여든 현대인들에게 묘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화려한 마린시티의 마천루와 대비되는 고요한 인어의 뒷모습은, 우리 모두가 마음속 한편에 간직한 '돌아가고 싶은 어딘가'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 오늘도 인어상은 '억겁의 세월'을 견디며 바다를 본다. 그 시선 끝에는 잃어버린 낙원 나란다가 있을까, 아니면 우리가 잊고 지낸 순수한 본연의 모습이 있을까. 동백섬의 파도 소리는 지금도 황옥공주의 전설을 실어 나르며 해운대를 찾는 이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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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윤 한중칼럼] 예술로 잇는 신(新) 실크로드, 허베이미술대학과 한국 문화예술의 교류 가치
[지구일보 김지윤 한중문화칼럼니스트] 오늘날 국제 관계에서 ‘소프트 파워’의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다. 특히 지리적·역사적으로 밀접한 한중 관계에서 예술은 정치적 경직성을 완화하고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가장 세련된 외교 수단이다. 그 중심에 중국 최대 규모의 사립 예술 명문인 허베이미술대학(Hebei Academy of Fine Arts)이 있다. 독보적인 건축 양식과 거대한 인프라를 갖춘 허베이 미대와 창의적 콘텐츠 역량을 지닌 한국 문화예술의 만남은, 단순한 교육 협력을 넘어 아시아 예술의 외연을 세계로 확장하는 ‘예술 외교의 교두보’로서 막대한 가치를 지닌다. 융합과 상생, 예술로 그리는 미래 설계도, ‘미학적 융합’ 동양의 정신과 현대적 기술의 만남 허베이 미대는 전통 회화와 조형 예술에서 강점을 지니며, 한국은 K-아트와 디지털 미디어 분야에서 세계적인 감각을 보유하고 있다. 양국의 교류는 유교와 불교라는 공통된 문화적 자양분을 바탕으로 ‘아시아적 미학의 현대적 재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한국의 ICT 기반 미디어 아트와 허베이 미대의 조형 예술 역량이 결합한다면, 서구 중심의 현대 예술계에 새로운 대안적 가치를 제시하는 독창적인 콘텐츠를 탄생시킬 것이다. 인적·경제적 가치, 한중 청년 예술가를 위한 글로벌 플랫폼 예술 교육 기관 간의 교류는 미래 세대를 위한 실질적인 기회의 장을 마련한다. 허베이 미대가 조성 중인 대규모 예술 산업 클러스터는 한국의 기획력과 결합해 거대한 문화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 교수진과 학생들의 상호 방문, 워크숍, 공동 프로젝트는 청년 작가들에게 ‘글로벌 무대’를 제공하며, 이는 자연스럽게 일자리 창출과 산업적 성공 모델로 이어지는 실리 외교(Pragmatic Diplomacy)의 핵심이 된다. 예술 외교의 역할, 보이지 않는 장벽을 허무는 힘 국가 간 이해관계로 소통이 단절될 때, 예술은 가장 먼저 장벽을 허무는 역할을 수행한다. 대학이라는 공신력 있는 기관을 통한 교류는 영리적 목적을 넘어 학문적·정서적 신뢰를 쌓는 밑거름이 된다. 양국의 청년들이 함께 창작하며 쌓은 우정은 향후 어떤 외교적 마찰도 이겨낼 수 있는 강력한 인적 자산이 되어, 양국 관계의 지속 가능한 다리 역할을 할 것이다. 경제적 자생력 확보‘비즈니스 모델 구축’ 요컨대 후원에만 의존하는 교류는 한계가 있다. 스스로 수익을 내는 구조가 필요하다. 아트 커머스 플랫폼 연계, 교류전에서 발표된 우수 작품을 양국의 이커머스나 옥션 시장에 상설 노출하고 판매할 수 있는 온·오프라인 유통 채널을 구축해야 한다. 또 기업 콜라보레이션 유치, 예술가들의 창의력을 기업의 제품 디자인이나 마케팅에 접목하여 기업의 후원을 이끌어내고, 작가들에게는 실질적인 수익을 제공하는 비즈니스 매칭 시스템이 필요하다. 심정적 연결고리를 넘어 글로벌 허브로 결론적으로 허베이 미술대학과 한국 문화예술의 교류는 ‘심정적 연결고리(Heart-to-Heart)’이자 예술적 가치를 경제적 가치로 전환하는 ‘실용적 플랫폼’이 될 수 있다. 예술은 국경을 나눌 수 없으며, 예술은 국경을 넘어 새로운 길을 만든다. 허베이 미대가 주도하는 이 예술적 연대는 한중 관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마중물이 될 것이며, 나아가 동북아시아가 세계 문화 콘텐츠의 중심지로 도약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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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 ‘병오년 새해의 베이징 결단’, 한·중 관계 ‘정상화’를 넘어 ‘구조적 공존’으로
[지구일보 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2026년 1월, 베이징 인민대회당의 공기는 9년 전과는 사뭇 달랐다.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의 두 번째 정상회담, 그리고 이어지는 리창 총리·자오러지 상무위원장과의 연쇄 회담은 단순한 ‘관계 복원’의 선언을 넘어섰다. 이는 지난 몇 년간 한반도를 짓눌렀던 가치 외교의 피로감을 털어내고, 지정학적 현실에 기반한 ‘전천후(全天候) 파트너십’으로의 전환을 예고하는 선명한 지표다. 경색된 한·중 관계의 해빙을 넘어, 이번 연쇄 회담이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한국 외교가 미국 중심의 단선적 궤도에서 벗어나, 중국이라는 거대한 상수를 전략적으로 재해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 대통령이 언급한 ‘2026년 한·중 관계 전면 복원의 원년’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그것은 미·중 갈등의 틈바구니에서 한국이 취할 수 있는 ‘전략적 자율성’의 복원 선언이다. 특히 경제 사령탑 리창과 의회 수장인 자오러지, ‘다층적 신뢰’ 구축와 함께 이번 방중의 백미는 시진핑 주석과의 담판뿐만 아니라, 중국의 실질적 통치 메커니즘을 관장하는 영도자들을 잇달아 만나 ‘계층적 설득’에 이었다. 게다가 경제 사령탑인 리창 총리와의 회담에서 논의된 공급망 안정화와 서비스·디지털 무역 중심의 FTA 2단계 협상은 ‘포스트 차이나’를 외치던 일각의 우려를 실용주의적 상호의존으로 되돌려 놓았다. 반도체와 배터리 등 첨단 산업 분야에서 한국의 공정 기술과 중국의 시장·자원이 결합하는 ‘수평적 호혜 모델’은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또, 자오러지 상무위원장과의 회담을 통해 의회 차원의 소통 채널을 복원한 것은 한·중 관계를 정권의 향배에 따라 흔들리지 않는 ‘제도화된 관계’로 격상시키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한국의 전략적 미래를 위한 세 가지 제언 ■ ‘한미일’과 ‘한중’의 이분법적 사고는 이제 탈피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과거의 '안미경중' 프레임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이제는 '안보의 경제화'와 '경제의 안보화'가 교차하는 시대다. 이재명 정부는 이번 회담을 통해 한미 동맹의 공고함을 유지하면서도 중국과의 전략적 소통이, 동맹의 약화가 아닌 오히려 동맹의 가치를 높이는 ‘중재자적 지렛대’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중국 역할론’ 재점화 북한의 핵잠수함 및 미사일 도발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중국의 건설적 역할은 필수적이다. 시 주석과의 회담에서 합의된 고위급 전략 대화 채널 가동은 북한의 오판을 막는 강력한 억제력이 될 것이다. 중국을 압박의 대상이 아닌, 한반도 현상 유지와 비핵화를 위한 ‘공동 관리자’로 끌어들인 것은 대단히 실용적인 선택이다. ■ ‘민생 외교’를 통한 국민적 공감대 확산 한·중 관계의 아킬레스건은 ‘혐중’과 ‘반한’으로 대변되는 국민 정서의 괴리였다. 이번 회담에서 논의된 문화 콘텐츠 교환 확대와 미세먼지 등 환경 협력은 외교가 구름 위의 논쟁이 아니라 국민의 삶에 닿아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넷플릭스에 한국 드라마가 올라오는 것만큼이나, 중국의 OTT에 한국 콘텐츠가 다시 흐르게 하는 ‘소프트 파워의 복원’이 시급하다. 한편 주권적 실용주의의 시험대 오른, 이재명 대통령의 이번 베이징 방문은 한국 외교가 ‘가치’라는 명분에 갇혀 ‘국익’이라는 실리를 놓쳤던 과거에 관한 반성이자, 새로운 이정표다. 중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과 지정학적 야심은 분명 한국에 도전이다. 그 도전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대국의 심장부에서 당당히 한국의 적정성을 요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주권적 실용주의다. 이제 공은 서울로 넘어왔다. 이번 회담의 성과가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으려면, 후속 조치를 담보할 범정부 차원의'한중촉진미래기획위원회’의 상설화가 필요하다. 2026년, 한반도는 거대 문명의 충돌 지점이 아니라,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를 설계하는 ‘전략적 교차로’가 한국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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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론] 성직자의 정치 참여, '양심의 자유'와 '정교분리'의 외줄타기
- [지구일보이창호 발행인] 종교와 정치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동반자이자 숙명의 라이벌이었다. 때로는 성스러움이 세속을 구원하기도 했고, 때로는 권력의 탐욕이 신성(神性)을 오염시키기도 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다시금 불붙고 있는 성직자의 정치 참여 논란은 헌법이 보장한 '정교분리'의 원칙과 개인의 '양심 및 표현의 자유'라는 두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에 서 있다. 이를 단순한 찬반의 논리로 재단하기에 앞서, 우리는 성직자라는 특수한 신분이 갖는 도덕적 무게와 그 영향력을 냉철하게 응시해야 한다. 성직자의 정치 참여를 옹호하는 측은, 성직자 또한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임을 강조한다. 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며 종교에 의해 정치적·사회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성직자가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거나, 보편적 인권과 정의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광장에 나서는 것을 '종교의 정치 개입'으로만 매도할 수는 없다는 논리다. 역사의 변곡점마다 종교계가 보여준 예언자적 비판 정신은 민주화와 인권 신장에 기여한 바가 크다. 그러나 문제는 '참여의 방식'과 '정치적 중립성'의 훼손에 있다. 성직자의 말 한마디는, 시민의 사회적 무게감이 다르다. 신도들에게는 신의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영적 권위를 지니기 때문이다.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지하거나, 종교적 교리를 이용해 정치적 적대감을 고취하는 행위는 종교의 본질인 화합과 사랑을 스스로 부정하는 처사다. 이는 신앙의 공동체를 이념의 전장(戰場)으로 변질시키고,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기보다 증폭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특히 한국 사회처럼 종교적 다양성이 공존하는 다종교 사회에서 특정 종교인의 편향된 정치 행보는 자칫 종교 간 갈등이나 사회적 분열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우리 헌법 제20조 제2항이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명시한 이유는 정치가 종교를 이용하거나, 종교가 국가 권력을 장악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비극을 막기 위함이다. 성직자가 강단에서 특정 정파의 논리를 전파하는 순간, 종교는 세속적 권력투쟁의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진정한 의미의 성직자의 정치 참여는 '정치 권력에의 편승'이 아니라 '시대적 가치의 수호'여야 한다. 특정 이념의 전사가 되기보다는, 우리 사회가 놓치고 있는 도덕적 가치와 공동체의 선(善)을 일깨우는 '사회의 빛과 소금'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되, 스스로 권력의 품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성직자의 정치 참여가 정당성을 얻으려면 엄격한 자기 절제와 성찰이 전제되어야 한다. 성직자의 옷을 입고 행하는 모든 정치적 언사는 개인의 자유를 넘어 종교 전체의 신뢰와 직결된다. 종교가 정치를 정화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가 종교를 오염시키는 현실을 목도하며, 우리는 다시금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성직자들이 서 있는 곳은 진정 낮은 곳을 향한 헌신의 자리인가, 아니면 세속의 권력을 탐하는 탐욕의 자리인가. 성직자는 정치적 사안에 대해 침묵할 의무는 없으나, 자신의 권위가 갖는 파괴력을 직시해야 한다. 정치가 증오와 배제의 언어로 가득 찬 시대일수록, 종교는 그 너머의 화해와 통합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것이 성직자에게 부여된 진정한 사회적 책무이자, 정치 참여의 한계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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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론] 성직자의 정치 참여, '양심의 자유'와 '정교분리'의 외줄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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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 천 년의 비단길에서 디지털 런웨이로... 중국 패션의 역사적 변천과 미래적 응시
- [지구일보 김지윤 한중문화칼럼니스트] 패션은 단순히 몸을 감싸는 천의 조합이 아니다. 그것은 시대의 이데올로기, 기술의 진보, 그리고 한 민족의 자존감이 응축된 ‘입는 역사서’다. 특히 중국 패션은 황제의 권위를 상징하던 오색찬란한 비단에서부터, 혁명의 획일성을 상징하던 인민복을 거쳐, 이제는 전 세계 미학의 기준을 새롭게 정의하는 ‘신중국주의(New Chineseness)’에 이르기까지 극적인 파노라마를 그려왔다. 본 칼럼에서는 중국 패션의 역사적 흐름을 짚어보고, 현대 중국 패션이 나아가고 있는 방향성을 알아본다. ◈ 역사적 흐름, 권위와 혁명, 그리고 개방의 연대기 ① 제국의 영광, 복식으로 쓴 위계의 서사 전통 시대 중국 패션은 ‘예(禮)’의 산물이었다. 한푸(漢服)로 대표되는 고대 복식은 소매의 넓이, 허리띠의 색상, 수놓아진 문양 하나하나에 엄격한 계급적 질서를 담았다. 청나라 시대의 치파오(旗袍) 역시 본래 만주족 여인들의 헐렁한 의복에서 시작되어 왕실의 권위를 상징했다. 이 시기 중국 패션의 핵심은 ‘독보적 기법’이었다. 옷감 특유의 질감으로 경외감을 만들듯, 당시의 자수와 직조 기술은 그 자체로 국가적 IP(지식재산권)였다. ② 혁명의 시대, 획일화된 정체성, 인민복(中山裝) 20세기 중반, 중국 패션은 거대한 단절을 겪는다. 쑨원이 고안하고 마오쩌둥이 상징화한 인민복은 계급을 타파하고 평등을 지향하는 혁명의 유니폼이었다. 화려함은 거세되었고, 실용성과 통제된 질서만이 남았다. 이 시기는 패션이 개인의 개성이 아닌 집단의 미션을 수행하던 시기였다. ③ 개방과 모방, 서구 미학의 유입 1980년대 개혁개방 이후, 중국 패션은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서구의 유행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서 타인의 도상을 복제하며 상업적 성장을 이뤘으나, 작가적 주체성은 부재했다. ◈ 현대 패션의 향방, 궈차오(國潮)에서 신중식(新中式)으로 오늘날 중국 패션은 더 이상 서구의 추종자가 아니다. 현재 중국 현대 패션의 방향성은 크게 세 가지 축으로 요약된다. ① 국조(國潮, Guochao), 전통의 ‘힙’한 재해석 젊은 세대인 Z세대가 주도하는 ‘궈차오’ 열풍은 애국 소비를 넘어선 미학적 혁명이다. 이는 전통문화의 파편들을 스트릿 패션이라는 현대적 그릇에 담아내는 과정이다. 한자를 그래픽화하고, 사찰의 단청 색감을 스니커즈에 이식한다. 이는 예술경영의 ‘창조적 파괴’ 이론을 실천하는 현상으로, 낡은 전통을 가장 강력한 현대적 콘텐츠로 부활시켰다. ② 신중식(新中式), 절제와 포용의 미학 최근 트렌드는 자극적인 국조를 넘어 ‘신중식’이라는 고차원적 미학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는 치파오의 형태를 해체하여 현대적인 오버사이즈 실루엣에 녹여내거나, 도자기의 유려한 곡선을 의복의 패턴으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서구의 패션이 인체의 곡선을 드러내는 ‘강조’에 집중한다면, 신중식은 인체를 감싸고 품는 ‘여백’과 ‘흐름’에 집중한다. ③ 디지털 피지털(Phygital) 생태계 다니엘 아샴이 가상 고고학이라는 서사를 디지털 미디어로 전파하듯, 중국 패션은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IT 생태계를 적극 활용한다. 가상 의류(Digital Wear), 라이브 커머스를 통한 실시간 서사 전달은 중국 패션을 단순한 제조업이 아닌 ‘디지털 문화 IP 산업’으로 격상시켰다. ◈ 미래의 방향성, 지속 가능한 철학적 패션 미래 중국 패션이 나아갈 최종 종착지는 ‘정신적 안식처로서의 옷’이다. 첫째, 지속 가능성에 대한 집착이다. 전통적인 천연 염색 기법과 재생 소재의 결합은 전 세계적인 환경 위기 속에 중국 패션이 던지는 대안적 메시지다. 둘째, 포용적 디자인이다. 패션마저 글로벌세계관을 바탕으로 나이와 체형에 상관없이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는 형태의 의복이 주류를 이룰 것이다. 중국 패션의 역사는 권위에서 투쟁으로, 다시 모방에서 창조로 굽이쳐 왔다. 이제 중국 패션은 그릇에 흙의 결이 겹겹이 쌓여 단단해지듯, 수천 년의 시간을 겹겹이 쌓아 올려 세계라는 거대한 관객을 품으려 하고 있다. 따라서, 미래의 중국 패션은 현대인의 고단한 영혼을 따스하게 품어주는 ‘문화적 그릇’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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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 천 년의 비단길에서 디지털 런웨이로... 중국 패션의 역사적 변천과 미래적 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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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 수기이안(修己以安)... 스스로를 닦아 세상을 품는 도리
- [지구일보 이창호 칼럼니스트] 동양의 오랜 지혜는 인간의 성장을 단순히 기술의 습득이나 부의 축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수기(修己)', 즉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갈고닦아 본연의 빛을 찾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처럼,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는 것은 곧 천명(天命)을 완수하는 숭고한 여정입니다. 동아시아적 가치관에 입각하여 능력을 개발하는 세 가지 핵심 원리를 전합니다. ◈ 절차탁마(切磋琢磨)의 정신: 끊임없는 정진 옥(玉)은 본래 거친 돌 속에 숨어 있습니다. 그것이 찬란한 보석이 되기 위해서는 자르고(切), 갈고(磋), 쪼고(琢), 닦는(磨) 고통스러운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우리의 재능 또한 이와 같습니다. * 정성(誠)의 힘, 《중용》에서는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했습니다. 능력 개발의 시작은 화려한 기술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사소한 일에 마음을 다하는 '정성'에 있습니다. * 점진적 성취, 대나무가 마디를 만들며 자라듯, 성장은 한꺼번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매일 한 치의 진보를 귀하게 여기는 태도가 결국 천 리 길을 가는 힘이 됩니다. ◈ 온고이지신(溫故知新): 과거에서 길어 올리는 미래 새로운 것만을 쫓는 것은 뿌리 없는 나무와 같습니다. 동아시아의 지혜는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아는 데서 진정한 창조가 일어난다고 가르칩니다. * 근본의 확립, 기술(Skill) 이전에 도(道)가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분야의 역사와 철학을 깊이 이해하십시오. 근본이 바로 서야(本立), 방법이 생겨나는 법(道生)입니다. * 통섭적 사고, 문(文)·사(史)·철(哲)의 소양은 현대적 전문 지식과 결합할 때 비로소 독창적인 통찰로 변모합니다. 자신의 전공 분야를 넘어 인문학적 상상력을 더할 때, 비로소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 외유내강(外柔內剛)과 지행합일(知行合一) 능력은 밖으로 과시하기 위함이 아니라, 안으로 단단해지고 밖으로 이로움을 주기 위함입니다. * 실천의 중요성,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본래 하나입니다. 머리로만 익힌 지식은 살아있는 능력이 되지 못합니다.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얻은 경험만이 자신의 뼈와 살이 됩니다. * 겸손의 미덕,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은 무능함을 뜻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고수는 자신의 능력을 벼리되, 그것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는 지극히 겸허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주변의 도움을 이끌어내며, 더 큰 성장의 기회를 만듭니다. ◈ 대기만성(大器晩成)의 믿음 큰 그릇은 뒤늦게 완성됩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다고 해서 조급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땅속에서 수년간 뿌리를 내리는 모소 대나무처럼, 지금 당신이 보내는 인고의 시간은 훗날 하늘로 높이 치솟기 위한 준비 기간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수신(修身)'을 바탕으로 능력을 개발하십시오. 나아가 그 능력이 타인과 사회에 기여할 때, 당신의 삶은 비로소 완성에 가까워질 것입니다. "군자는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않고, 자신이 능력이 없음을 걱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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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 수기이안(修己以安)... 스스로를 닦아 세상을 품는 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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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현장탐방] 거친 파도 너머 ‘나란다’의 비원(悲願), 해운대 인어상에 깃든 천년의 향수
- [부산=지구일보 이창호 대기자] 부산 해운대 동백섬 해안 산책로를 걷다 보면, 갯바위 위에 앉아 아스라이 수평선을 바라보는 황동빛 여인을 마주하게 된다. 부산 해운대의 상징 중 하나인 ‘인어상’이다. 단순히 관광객의 눈길을 붙잡기 위한 조형물이라 치부하기엔 그 눈망울에 담긴 서사가 예사롭지 않다. 이 인어상에는 바다 건너 미지의 나라에서 온 공주의 애틋한 망향가(望鄕歌)가 서려 있다. ● 고국을 향한 그리움, 황옥공주 전설 해운대 인어상의 주인공은 인어 나라 ‘나란다’에서 온 황옥공주(黃玉公主)다. 전설에 따르면, 아주 먼 옛날 인어들의 나라인 나란다의 황옥공주는 해운대 무궁나라의 은혜왕에게 시집을 오게 된다. 낯선 땅에서의 생활은 행복했으나, 공주는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떨칠 수 없었다고 한다. 공주가 가련해 보였던 것일까. 나란다의 대신들은 공주에게 신비로운 황옥(黃玉) 한 알을 건넸다. 보름달이 뜨는 밤, 그 황옥을 비추어 보면 고국인 나란다의 전경이 거울처럼 나타난다는 것이다. 공주는 매일 밤 동백섬 해안가 바위에 앉아 황옥을 들여다보며, 거친 파도 너머에 있을 부모님과 고향의 모습을 그리워했다. 이 이야기가 오늘날 해운대 인어상의 유래가 되었다. ■ 가락국 허황옥 신화와의 기묘한 연결고리 흥미로운 점은 이 전설이 가야의 시조 김수로왕의 비(妃)인 허황옥(許黃玉)의 신화와 맥을 같이한다는 점이다. 인도 아유타국에서 건너왔다는 허황옥의 이름 ‘황옥’과 인어 전설 속 ‘황옥공주’의 이름이 일치하는 것은 우연의 일치라 보기 어렵다. 학계와 지역 문화계에서는 이 전설을 두고 고대 해상 교류의 흔적이 구전 설화로 정착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먼 바다를 건너온 이주민들의 고독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던 이방인의 정서가 ‘인어’라는 신비로운 존재를 빌려 투영되었다는 분석이다. ● 시대의 부침을 견디며 지켜온 자취 현재 우리가 보는 인어상은 사실 두 번째 모습이다. 1974년에 처음 세워졌던 석재 인어상은 1987년 태풍 ‘셀마’의 위력에 휩쓸려 유실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1989년 청동으로 새롭게 제작된 것이 지금의 인어상이다. 유실된 첫 인어상의 파편은 현재 부산박물관에 보존되어 있어, 그 자체가 해운대의 현대사를 증언하는 유물이 되었다. ■ 현대인에게 던지는 ‘위로’의 메시지 해운대 인어상은 단순히 전설의 재현을 넘어, 고향을 떠나 대도시로 모여든 현대인들에게 묘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화려한 마린시티의 마천루와 대비되는 고요한 인어의 뒷모습은, 우리 모두가 마음속 한편에 간직한 '돌아가고 싶은 어딘가'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 오늘도 인어상은 '억겁의 세월'을 견디며 바다를 본다. 그 시선 끝에는 잃어버린 낙원 나란다가 있을까, 아니면 우리가 잊고 지낸 순수한 본연의 모습이 있을까. 동백섬의 파도 소리는 지금도 황옥공주의 전설을 실어 나르며 해운대를 찾는 이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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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현장탐방] 거친 파도 너머 ‘나란다’의 비원(悲願), 해운대 인어상에 깃든 천년의 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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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윤 한중칼럼] 예술로 잇는 신(新) 실크로드, 허베이미술대학과 한국 문화예술의 교류 가치
- [지구일보 김지윤 한중문화칼럼니스트] 오늘날 국제 관계에서 ‘소프트 파워’의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다. 특히 지리적·역사적으로 밀접한 한중 관계에서 예술은 정치적 경직성을 완화하고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가장 세련된 외교 수단이다. 그 중심에 중국 최대 규모의 사립 예술 명문인 허베이미술대학(Hebei Academy of Fine Arts)이 있다. 독보적인 건축 양식과 거대한 인프라를 갖춘 허베이 미대와 창의적 콘텐츠 역량을 지닌 한국 문화예술의 만남은, 단순한 교육 협력을 넘어 아시아 예술의 외연을 세계로 확장하는 ‘예술 외교의 교두보’로서 막대한 가치를 지닌다. 융합과 상생, 예술로 그리는 미래 설계도, ‘미학적 융합’ 동양의 정신과 현대적 기술의 만남 허베이 미대는 전통 회화와 조형 예술에서 강점을 지니며, 한국은 K-아트와 디지털 미디어 분야에서 세계적인 감각을 보유하고 있다. 양국의 교류는 유교와 불교라는 공통된 문화적 자양분을 바탕으로 ‘아시아적 미학의 현대적 재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한국의 ICT 기반 미디어 아트와 허베이 미대의 조형 예술 역량이 결합한다면, 서구 중심의 현대 예술계에 새로운 대안적 가치를 제시하는 독창적인 콘텐츠를 탄생시킬 것이다. 인적·경제적 가치, 한중 청년 예술가를 위한 글로벌 플랫폼 예술 교육 기관 간의 교류는 미래 세대를 위한 실질적인 기회의 장을 마련한다. 허베이 미대가 조성 중인 대규모 예술 산업 클러스터는 한국의 기획력과 결합해 거대한 문화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 교수진과 학생들의 상호 방문, 워크숍, 공동 프로젝트는 청년 작가들에게 ‘글로벌 무대’를 제공하며, 이는 자연스럽게 일자리 창출과 산업적 성공 모델로 이어지는 실리 외교(Pragmatic Diplomacy)의 핵심이 된다. 예술 외교의 역할, 보이지 않는 장벽을 허무는 힘 국가 간 이해관계로 소통이 단절될 때, 예술은 가장 먼저 장벽을 허무는 역할을 수행한다. 대학이라는 공신력 있는 기관을 통한 교류는 영리적 목적을 넘어 학문적·정서적 신뢰를 쌓는 밑거름이 된다. 양국의 청년들이 함께 창작하며 쌓은 우정은 향후 어떤 외교적 마찰도 이겨낼 수 있는 강력한 인적 자산이 되어, 양국 관계의 지속 가능한 다리 역할을 할 것이다. 경제적 자생력 확보‘비즈니스 모델 구축’ 요컨대 후원에만 의존하는 교류는 한계가 있다. 스스로 수익을 내는 구조가 필요하다. 아트 커머스 플랫폼 연계, 교류전에서 발표된 우수 작품을 양국의 이커머스나 옥션 시장에 상설 노출하고 판매할 수 있는 온·오프라인 유통 채널을 구축해야 한다. 또 기업 콜라보레이션 유치, 예술가들의 창의력을 기업의 제품 디자인이나 마케팅에 접목하여 기업의 후원을 이끌어내고, 작가들에게는 실질적인 수익을 제공하는 비즈니스 매칭 시스템이 필요하다. 심정적 연결고리를 넘어 글로벌 허브로 결론적으로 허베이 미술대학과 한국 문화예술의 교류는 ‘심정적 연결고리(Heart-to-Heart)’이자 예술적 가치를 경제적 가치로 전환하는 ‘실용적 플랫폼’이 될 수 있다. 예술은 국경을 나눌 수 없으며, 예술은 국경을 넘어 새로운 길을 만든다. 허베이 미대가 주도하는 이 예술적 연대는 한중 관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마중물이 될 것이며, 나아가 동북아시아가 세계 문화 콘텐츠의 중심지로 도약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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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윤 한중칼럼] 예술로 잇는 신(新) 실크로드, 허베이미술대학과 한국 문화예술의 교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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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 ‘병오년 새해의 베이징 결단’, 한·중 관계 ‘정상화’를 넘어 ‘구조적 공존’으로
- [지구일보 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2026년 1월, 베이징 인민대회당의 공기는 9년 전과는 사뭇 달랐다.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의 두 번째 정상회담, 그리고 이어지는 리창 총리·자오러지 상무위원장과의 연쇄 회담은 단순한 ‘관계 복원’의 선언을 넘어섰다. 이는 지난 몇 년간 한반도를 짓눌렀던 가치 외교의 피로감을 털어내고, 지정학적 현실에 기반한 ‘전천후(全天候) 파트너십’으로의 전환을 예고하는 선명한 지표다. 경색된 한·중 관계의 해빙을 넘어, 이번 연쇄 회담이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한국 외교가 미국 중심의 단선적 궤도에서 벗어나, 중국이라는 거대한 상수를 전략적으로 재해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 대통령이 언급한 ‘2026년 한·중 관계 전면 복원의 원년’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그것은 미·중 갈등의 틈바구니에서 한국이 취할 수 있는 ‘전략적 자율성’의 복원 선언이다. 특히 경제 사령탑 리창과 의회 수장인 자오러지, ‘다층적 신뢰’ 구축와 함께 이번 방중의 백미는 시진핑 주석과의 담판뿐만 아니라, 중국의 실질적 통치 메커니즘을 관장하는 영도자들을 잇달아 만나 ‘계층적 설득’에 이었다. 게다가 경제 사령탑인 리창 총리와의 회담에서 논의된 공급망 안정화와 서비스·디지털 무역 중심의 FTA 2단계 협상은 ‘포스트 차이나’를 외치던 일각의 우려를 실용주의적 상호의존으로 되돌려 놓았다. 반도체와 배터리 등 첨단 산업 분야에서 한국의 공정 기술과 중국의 시장·자원이 결합하는 ‘수평적 호혜 모델’은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또, 자오러지 상무위원장과의 회담을 통해 의회 차원의 소통 채널을 복원한 것은 한·중 관계를 정권의 향배에 따라 흔들리지 않는 ‘제도화된 관계’로 격상시키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한국의 전략적 미래를 위한 세 가지 제언 ■ ‘한미일’과 ‘한중’의 이분법적 사고는 이제 탈피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과거의 '안미경중' 프레임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이제는 '안보의 경제화'와 '경제의 안보화'가 교차하는 시대다. 이재명 정부는 이번 회담을 통해 한미 동맹의 공고함을 유지하면서도 중국과의 전략적 소통이, 동맹의 약화가 아닌 오히려 동맹의 가치를 높이는 ‘중재자적 지렛대’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중국 역할론’ 재점화 북한의 핵잠수함 및 미사일 도발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중국의 건설적 역할은 필수적이다. 시 주석과의 회담에서 합의된 고위급 전략 대화 채널 가동은 북한의 오판을 막는 강력한 억제력이 될 것이다. 중국을 압박의 대상이 아닌, 한반도 현상 유지와 비핵화를 위한 ‘공동 관리자’로 끌어들인 것은 대단히 실용적인 선택이다. ■ ‘민생 외교’를 통한 국민적 공감대 확산 한·중 관계의 아킬레스건은 ‘혐중’과 ‘반한’으로 대변되는 국민 정서의 괴리였다. 이번 회담에서 논의된 문화 콘텐츠 교환 확대와 미세먼지 등 환경 협력은 외교가 구름 위의 논쟁이 아니라 국민의 삶에 닿아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넷플릭스에 한국 드라마가 올라오는 것만큼이나, 중국의 OTT에 한국 콘텐츠가 다시 흐르게 하는 ‘소프트 파워의 복원’이 시급하다. 한편 주권적 실용주의의 시험대 오른, 이재명 대통령의 이번 베이징 방문은 한국 외교가 ‘가치’라는 명분에 갇혀 ‘국익’이라는 실리를 놓쳤던 과거에 관한 반성이자, 새로운 이정표다. 중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과 지정학적 야심은 분명 한국에 도전이다. 그 도전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대국의 심장부에서 당당히 한국의 적정성을 요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주권적 실용주의다. 이제 공은 서울로 넘어왔다. 이번 회담의 성과가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으려면, 후속 조치를 담보할 범정부 차원의'한중촉진미래기획위원회’의 상설화가 필요하다. 2026년, 한반도는 거대 문명의 충돌 지점이 아니라,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를 설계하는 ‘전략적 교차로’가 한국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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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 ‘병오년 새해의 베이징 결단’, 한·중 관계 ‘정상화’를 넘어 ‘구조적 공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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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7) 송명화 ‘소멸에 대한 애도와 기억의 기록
- |박소현 제2수필집 『내 안의 윤슬이 빛날 때』 [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7) 송명화 ‘소멸에 대한 애도와 기억의 기록’ 박소현의 ‘해 질 무렵 송명화/ 문학평론가 예술은 기억이 아니라 생성이다. 문학은 기억을 말하는 곳이 아니라 기억이 머무는 장소다. 닫힌 장소가 아니라 반복적으로 드나들며 기억을 소환하고 확장하며 재구성할 수 있는 열린 장소다. 이런 면에서 박소현의 수필 <해 질 무렵>은 소멸해가는 것에 대한 애도와 기록의 비문이라 할 만하다. 이 수필은 1인칭 화자인 작가적 삶의 주름에 층층이 접혀있는 기억들을 펼치며 과거의 사물, 사건, 사람을 소환한다. 그것은 이푸 투안이 제시한 토포필리아에 기반한 체험들이며, 시간을 통과했지만 여전히 기억 속의 한 자리를 차지하거나 현재를 꾸리는 행위소로 작용하고 있는 것들이다. 작가는 경남 남해의 작은 바닷가 마을 출신이다. 학창시절에 떠나왔던 고향을 찾아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외삼촌 집 마루에서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외삼촌 내외가 죽고 집은 비었다. 인구가 줄어든 마을은 쇠락한 상태다. 이 작품에서 빈집은 정동과 정서를 발생시키는 장소적 조건, 새로운 해석과 감응을 낳는 살아있는 장으로 작동한다. 여기서 토포필리아는 그저 고향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라기보다 얼마나 많은 체험이 중첩되어 있는지를 전제하는 체감의 문제로 읽을 수 있다. 마당과 항아리들만이 지키고 있는 빈집은 고유의 기능을 잃었고, 결국 소멸로 가는 과정에 있다. 멸치잡이 산업으로 분주하던 선창가 옆 자갈밭도 모두 사라졌다. 살아있던 방식이 더 이상 재생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구조물들을 작가는 수필 속에 배치한다. 좋은 작품은 끝난 것이 아니라, 계속 새로운 감응과 의미를 낳는 또 다른 잠재성의 출발점이 된다. ‘해 질 무렵’은 수필의 마지막 문장 ‘붉디붉은 노을이 소리 없이 내려앉고 있다’에만 거론되는 시간적 배경이지만 쇠락하는 것, 사라지는 것을 함의하는 멋진 제목이다. 이 제목이 가지는 분위기는 이 수필 전체의 분위기와 통일성있게 어울리며, 작가의 깊이 있는 사유와, 예화를 제시하는 간결한 문장들과도 맥을 같이 한다. 또한 구조의 단단함은 작가의 글쓰기 내공을 짐작하게 한다. 소설적 구성으로 개인서사와 지역사회 서사를 교차하고, 현재의 서사와 과거의 회상을 교직하였다. 외삼촌과 외숙모의 투병과 죽음은 이 작품에서 작가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공동체 쇠락의 증거로 쓰였다. 이는 마을의 세대교체를 기대하게 하는 사건이다. 바다를 생업의 터로 삼아 고군분투하던 어른들은 세상을 떠나고, 자식들은 더 나은 삶을 위해 도시로 떠났다. 동네에는 소수의 토박이 독거노인들이 여생을 붙잡고 있다. 학교는 폐교 위기에 처하고, 인구절벽과 고령화로 마을이 문을 닫는 지경까지 상상한다. 작가는 세대교체, 떠나는 자로부터 배턴을 이어받아야 할 자들의 부재를 예리하게 지목한다. 사라져가는 풍습도 애도의 대상이다. 동제는 전통으로 남아 있게 되는 것이 아니라 세대가 더 이상 이어받지 않기로 한 의식이다. 무당의 신들린 춤과 징 소리, 당산나무 아래서 벌이는 굿판에는 바닷가 사람들의 간절한 바람과 애환이 깃들었지만 마을에는 이제 동제의 효험을 바랄 사건이 별로 없다. 조난예방이나 만선, 손의 보존이나 마을의 번성 같은 것을 빌 사람도 빌어야 할 이유까지도 사라져 간다. 청산가리로 꿩잡이라는 공동체의 놀이 또한 기억의 흔적으로만 남았다. 들뢰즈는 예술을 지각과 감각의 블록이라고 했다. “누가 느끼는가”가 아니라 “느낌 그 자체가 작품 속에 독립적으로 존재”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작가는 기다림을 말하지 않고 배치한다. ‘기다림’을 공간에 깔린 정동의 상태로 둔다. 이는 도입부의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긴 목을 늘어뜨린 채’ 졸고 있는 빈집, 결말부의 ‘능소화가 앞다투어 피어날 것이다. 능소화의 꽃말이 기다림’으로 수미상관적으로 호응됨으로써 주제의 통일성과 구조의 안정성을 견인한다. 들뢰즈에게 문학은 감응의 기계다. 사람과 사건과 사물이 점차 사라져가는 지역사회의 쇠락을 설명으로 이해시키기보다 기억해야 할 것으로 느끼게 하는 정동적 배치가 이 작품을 읽는 쾌미다. 우리는 작품을 이해하기 전에 먼저 감응한다. “누구든지 고향을 찾을 일 있으면 우리 집에서 자고 가세요.”라는 외사촌의 제안으로 비감함을 넘어설 미래를 제안하고 있음 또한 이 수필의 남다른 미학이다. 수필 <해 질 무렵>은 잔잔한 톤으로 우리가 겪는 사회문제에 대해 독자들의 감응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하였다. 작가는 상실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상실이 아무 의미도 없이 지나도록 두지 않으려 한다. 안달하지도, 한탄하지도 않고 장소애를 바탕으로 삶의 흔적을 기억의 층위에 저장하여 순간의 지각과 감각을 굳혀서 덩어리로 만든느 데 성공했다. 쇠락해가는 시골의 정보를 주는 게 아니라 어떤 온기와 고요의 감각덩어리를 만든 것이다. 따라서 이 수필은 애도와 기록의 문학적 재구성, 사라짐을 막지는 못하지만 사라짐을 잊히지 않게 하는 아카이브로서의 가치가 문예미학적으로 구현된 본격수필이라 하겠다. ■송명화 주요 약력 △수필가, 문학평론가, 문학언어치료학 박사 △경남 남해 출신 △전남일보 신춘문예 수필(2005) △에세이문예 문학평론(2010) △전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회장, 전 한국본격수필비평가협회 회장 △계간 [에세이문예] 주간, 사)부산문인협회 부이사장, 부산교대 평생교육원 문예창작반 지도교수 △수필집 <순장소녀>(세종도서), <꽃은 소리 내어 웃지 않는다>(문학나눔), <나무의 응시 풀의 주름>(아르코창작기금) 등 6권 △이론서 <본격수필 창작이론과 적용> △김만중문학상(수필), 우하박문하문학상(평론), 한국에세이평론상(평론), 평사리문학대상(수필), 신격호샤롯데문학상(수필) 등 수상 ■박소현 <해 질 무렵> 인적 없는 마당에 흐드러지게 핀 영산홍 무더기가 애잔하다. 병풍처럼 집을 감싸고 있던 뒤란의 대나무 숲도, 도시로 나간 자식들 집으로 퍼 나르던 된장, 고추장 항아리들도 예전 그대로다. 오랜 세월, 세심한 손길로 어루만져졌을 저것들은 주인의 부재를 알기나 할까? 어린 시절 내 마음속에 따스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젊디젊은 막내 외삼촌과 외숙모는 지금 어디쯤에서 지친 육신을 누이고 있을까? 나는 주인 없는 빈집 마루에 걸터앉아 켜켜이 쌓인 이 집의 전설들을 떠올리고 있다.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 금빛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주인 잃은 집 한 채가 무심히 졸고 있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긴 목을 늘어뜨린 채…. 2년 전, 앙상한 팔에 링거를 꽂은 채 외숙모가 핏기 없는 얼굴로 눈을 감고 있었다. 우리 집 지척에 있는 종합병원 암 병동이었다. 코에는 호흡 보조기를 낀 채 잠인지 실신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미동이 없었다. 외숙모는 거미줄 같은 희망을 안고 천리 길을 달려 의료 시설이 좋다는 서울까지 왔을 것이다. 외숙모의 얼굴에선 똬리를 튼 죽음의 그림자가 일렁거렸고, 병실엔 깊은 정적이 흘렀다. 창밖에는 봄꽃들이 힘차게 새 움을 틔우고 있던 3월이었다. “니 결혼식 날 보고 처음이구나.” 한참 시간이 지난 후 간신히 눈을 뜬 외숙모가 내 손을 쓰다듬었다. 물기라곤 없는 까칠한 손이었다. 30여 년 만이었다. 얼굴이 참 고왔던 40대 외숙모는 70 중반의 병든 노인이 되어 나와 마주했다. 육체와 정신의 거리는 지구의 끝과 끝처럼 멀기만 했다. 몸은 태풍 앞의 오막살이처럼 위태위태해 보였으나 정신은 명징해 오래전 일들을 어제처럼 생생하게 기억해내고 있었다. 외삼촌이 폐암에 걸리자 남편을 살려보겠다는 일념으로 정신없이 간호를 하느라 정작 당신이 중병에 걸린 줄도 몰랐다고 했다. 눈가엔 촉촉이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외숙모는 결국 내가 싸간 음식들을 하나도 입에 대지 못했다. 저 멀리 바다 한가운데 죽방렴 옆에는 조그만 배 한 척이 한가로이 떠 있다. 풍어로 한껏 부풀어 올랐던 어부들의 분주했던 손길과 그 많던 멸치잡이 배들을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대낮인데도 마을엔 지나가는 사람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그물에 걸린 멸치들을 털어 큰 가마솥에 삶아서 말리던 선창가 옆 자갈밭도 보이지 않는다. 간간히 들려오는 파도 소리에 흘러간 삶의 흔적들만 살며시 고개를 들고 있을 뿐…. 노동에 지쳐 벌컥벌컥 막걸리를 들이켜던 어부들의 불콰한 얼굴도 빛바랜 사진처럼 옛 추억이 되어버렸다. 외숙모는 끝내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화장되어 한 줌 가루로 남았다가 두 달 후 돌아가신 외삼촌과 함께 국립묘지에 묻혔다. 그 후 이 집은 빈집이 되고 말았다. 능소화가 흐드러지게 피던 초여름이었다. 엄마의 아홉 형제 중 살아 있던 유일한 피붙이였던 막내 외삼촌을 이 마을에서만 80년을 살았다. 평생을 허심, 무심 욕심 없이 살다 간 삶이었다. 나도 어릴 땐 이 동네에 살았다. 100여 호 가까운 가구가 올망졸망 머리를 맞대고 살던 마을, 아침이면 200명도 넘는 아이들이 왁자지껄 떼를 지어 학교를 가던 곳, 나와 같은 학년의 친구들만도 32명이었던 큰 마을이었다. 누구 집 큰아들이 행정고시에 붙었다거나, 누구네 딸이 명문 여고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들리면 아이들은 순식간에 제 꿈의 높이를 한 단계씩 올렸다. 그러곤 저마다의 꿈을 좇아 도시로, 도시로 떠나서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외삼촌과 외숙모가 돌아가시던 그해에 이 마을에는 일곱 명의 독거노인이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 숫자만큼 마을엔 빈집도 늘었을 것이다. 지척에 있는 초등학교와 중, 고등학교도 전교생이 100명도 채 안 돼 폐교 위기에 처했다. 인구 절벽과 고령화로 30년 후면 30%가 넘는 지방자치단체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몇십 년 후 이곳도 아무도 살지 않는 유령 마을이 되는 건 아닐까. 정초가 되면 바닷가 옆 당산나무 아래서는 한바탕 굿판이 벌어졌다. 동제洞祭였다. 당산나무 가지엔 형형색색의 끈들이 묶여 바람에 나부끼었고, 무당의 신들린 춤과 징 소리는 온 마을과 바다를 뒤흔들고 있었다. 무당의 입에서는 봇물처럼 사설이 쏟아져 나왔다. 마을 사람들도 모두가 당산나무 아래에 모여 두 손을 모으고 연신 허리를 숙이며 마을의 안녕을 빌었다. 굿판에는 바닷가 사람들의 간절한 바람과 애환이 깃들어 있었다. 축제였다. 먹을거리에 굶주린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그저 신이 났다. 동제 뒤에 얻어먹을 고사떡이나 과일들을 생각하며 풍선처럼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모두가 가난했던 날들이었다. 겨울이면 마을 오빠들은 꿩 잡이에 나섰다. 메주콩에 구멍을 뚫어 그 속에 청산가리를 넣고는 촛농으로 구멍을 막았다. 그렇게 만든 미끼를 꿩이 잘 다닐 만한 곳에 뿌려놓고는 다음날 그걸 먹고 죽은 꿩들을 잡아서 내장을 걷어내고 국을 끓이거나 백숙을 해 먹기도 했다. 그렇게 위험천만한 일을 하면서도 아무도 그게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랬다. 꿩을 먹고 죽었다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던 걸 보면 동제의 효험으로 천지신명이 도우신 건지? 슬프도록 순수했던 시절이었다. “친척들 누구든지 고향 올 일 있으면 우리 집에서 자고 가세요.” 내 유년의 기억들이 봄날의 벚꽃 이파리만큼이나 무성한 이곳. 도시에 살면서도 수시로 찾아 와 부지런히 빈집을 보살피는 동갑내기 외사촌 덕분에 아직도 이 집에서 사람의 온기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쏴아~. 파도가 갈 길을 재촉하고 있다. 이 봄이 지나면 마당 넓은 이 집에도 수국과 능소화가 앞다투어 피어날 것이다. 능소화 꽃말이 기다림이라 했던가. 붉디붉은 저녁노을이 소리 없이 내려앉고 있다. <수필집『내 안의 윤슬이 빛날 때』> ■박소현 2002년 『책과 인생』등단.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 아르코문학창작기금 2회 수혜(2008년, 2020년). 경북문화체험전국수필대전 대상, 계간문예수필문학상, 권대근문학상 등 수상. 국제PEN한국본부, 한국문인협회, 한국산문작가협회, 철학수필가협회 회원. 수필집 『별들은 나이를 세지 않는다』『내 안의 윤슬이 빛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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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7) 송명화 ‘소멸에 대한 애도와 기억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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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윤의 예술경영 칼럼] 예술가여, '사업'이 아닌 '세계관'을 확장하라, 예술 창업의 철학적 패러다임 전환
- [지구일보 김지윤 한중문화칼럼니스트] 전통적으로 예술과 경영은 물과 기름처럼 여겨져 왔습니다. 예술은 '순수한 정신의 산물'로, 경영은 '차디찬 자본의 논리'로 치부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대 미술 생태계에서 예술가에게 창업은 단순히 생계를 위한 보조 수단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의 예술적 철학을 사회라는 거대한 캔버스에 투사하는 확장된 창작 활동'입니다. 예술 전공자들이 창업을 기술적 절차가 아닌 철학적 확장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와 그 구체적인 전략적 방안을 제시합니다. ◈ 창업을 '철학적 확장'으로 보아야 하는 이유 작가적 정체성(Identity)의 보존과 강화입니다. 특히 기술적 관점, 즉 '무엇을 팔 것인가'에만 매몰된 창업은 시장의 유행에 휩쓸리기 쉽습니다. 이는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파편화하고 결국 '창작의 고갈'을 초래합니다. 반면, 창업을 자신의 철학적 결과물로 인식할 때,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 됩니다. 이 경우 상업적 활동은 예술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새로운 매체가 되어 작가의 세계관을 더욱 공고히 합니다. 관객과의 '철학적 공명'을 통한 팬덤 형성입니다. 현대 소비자는 상품의 기능보다 브랜드가 가진 '서사(Narrative)'와 '철학'에 반응합니다. 미술 전공자가 자신의 미학적 가치를 비즈니스 언어로 번역하여 제안할 때, 관객은 단순한 구매자를 넘어 작가의 철학에 동참하는 '후원자'이자 '팬'이 됩니다. 이러한 정서적 유대는 기술적 마케팅이 결코 따라올 수 없는 지속 가능한 경쟁력이 됩니다. 예술적 실천의 사회적 영토 확장입니다. 캔버스나 조각대 앞에 머물던 예술가의 사유가 경영이라는 도구를 만나면 전시장을 넘어 도시의 거리, 사람들의 일상, 사회적 문제 해결의 현장으로 뻗어 나갑니다. 창업은 예술가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을 혁신하고, 자신의 예술적 신념을 현실 세계에서 구현하는 가장 능동적인 실천입니다. ◈ 철학적 확장을 위한 전략적 방안 예술경영 컨설팅의 관점에서 미술 전공자들이 취해야 할 전략은 '가치(Value)'에서 출발하여 '시스템(System)'으로 귀결되어야 합니다. 첫 번째, '가치 제안(Value Proposition)'의 미학적 재정의 가장 먼저 수행해야 할 작업은 자신의 작업을 '제품'이 아닌 '가치의 경험'으로 재정의하는 것입니다. • 전략, 비즈니스 모델 캔버스의 중심에 '작가 선언문(Artist Statement)'을 배치하십시오. "나는 회화를 판매한다"가 아니라 "나는 바쁜 현대인에게 0.1mm의 정밀함이 주는 평온의 미학을 제공한다"는 식의 가치 제안이 필요합니다. 이 철학적 뿌리가 단단할 때 제품은 그림에서 오브제, 서비스, 공간 기획으로 무한히 변주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관계의 미학'을 적용한 서비스 디자인 현대 미술의 '관계적 미학(Relational Aesthetics)' 이론을 경영 프로세스에 도입하십시오. • 전략, 단순히 완성된 결과물을 판매하는 시스템을 넘어, 관객이 작가의 사유 방식에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설계해야 합니다. 제작 과정의 서사를 공유하는 멤버십 모델, 작가의 철학을 기반으로 한 커뮤니티형 워크숍 등이 그 예입니다. 이는 경영을 '거래'가 아닌 '관계의 창출'로 인식하는 철학적 접근입니다. 세 번째, STP 전략: '철학적 공명층'의 세분화와 타겟팅 모두를 만족시키려는 노력은 예술적 색채를 흐리게 합니다. • 전략, * Segmentation, 인구통계학적 구분이 아닌, 나의 미학적 메시지에 반응할 '정서적/철학적 집단'을 세분화하십시오. • Targeting,그중 나의 예술적 위로 혹은 질문이 가장 절실한 타겟을 선정하십시오. • Positioning, 관객의 머릿속에 "이 브랜드는 나의 실존적 고민을 예술적으로 해결해 주는 유일한 창구"라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네 번째, '린 스타트업(Lean Startup)'을 통한 예술적 실험 창업의 과정을 실험 미술의 연장선으로 이해하고 접근하십시오. • 전략: 거창한 사업 자금과 대규모 시설에 집착하기보다, 자신의 철학적 아이템을 최소 단위로 구현하여 단기간에 제품을 만들어 시장의 반응을 다음 제품에 반영하ㅇ는 것을 반복하시고 살피십시오. SNS를 통한 작업 일지 공유, 팝업 전시 등을 통해 대중의 피드백을 수집하고, 이를 다시 자신의 예술 철학과 버무려 비즈니스 모델을 정교화해 나가는 '예술적 피드백 루프'를 구축해야 합니다. ◈ 창의성을 경영하는 혁신가로서의 예술가 정부가 1인 창업을 지원하는 이 시점은 예술가들에게 위기가 아닌 기회입니다. 경영은 예술의 순수성을 해치는 독이 아니라, 예술이 사회라는 척박한 땅에서 시들지 않고 꽃피울 수 있게 돕는 '양분'입니다. 미술 전공자 여러분, 여러분의 창의성을 골방에 가두지 마십시오. 경영이라는 캔버스 위에 여러분의 철학을 그리십시오. 기술적 절차는 전문가에게 맡기거나 학습하면 되지만, 여러분이 가진 고유한 '철학적 씨앗'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세계관을 비즈니스로 확장하는 순간, 여러분은 단순한 예술가를 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문화 혁신가(Cultural Entrepreneur)'가 될 것입니다. [붙임] 이 기사가 마음에 닿으셨다면, 주변의 작은 광고 한 번 눌러 주시면 힘이 됩니다. 독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더 나은 기사와 정직한 보도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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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윤의 예술경영 칼럼] 예술가여, '사업'이 아닌 '세계관'을 확장하라, 예술 창업의 철학적 패러다임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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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 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6) 권대근 '겪어야 비로소 보이는 삶의 가치'
- Ⅰ김홍신 에세이 <겪어보면 안다> 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6) 권대근 ‘겪어야 비로소 보이는 삶의 가치’ - 김홍신 에세이 <겪어보면 안다>를 읽다 권대근/문학평론가 김홍신 작가의 에세이 <겪어보면 안다>는 단순한 회고록이 아니라, 체험을 통해 길어 올린 인간학적 사유의 집약이라 할 수 있다. 이 에세이는 ‘안다’라는 동사의 의미를 인식이 아니라 체험으로 재정의하며, 인간이 무엇으로 살아가는 존재인가를 묻는다. 굶주림, 목마름, 호흡의 곤란, 실직, 질병, 상실, 이별, 고통, 불행, 그리고 죽음의 문턱 등 열 개의 문장들은 각각 독립된 에피소드이면서도, 하나의 거대한 삶의 계단을 이룬다. 독자는 이 계단을 오르며 자연스럽게 자기 삶을 되짚게 된다. 인문학적으로 볼 때 이 에세이는 몽테뉴의 “나는 나 자신을 연구한다”는 명제를 떠올리게 한다. 몽테뉴가 개인적 경험을 통해 보편을 탐구했듯, 김홍신은 지극히 사적인 체험에서 보편적 인간 조건을 길어 올린다. 동시에 빅터 프랭클의 “고통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인간의 마지막 자유”라는 통찰이 글의 저류를 관통한다. 고통은 파괴가 아니라 해석의 재료가 되고, 상처는 윤리적 성찰의 통로가 된다. 이 글에는 우여곡절 끝에 몸소 깨달은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 삶의 난관에 봉착한 사람들에게 건네는 구원의 메시지라 할 수 있다. 이 에세이의 맛은 품맛인데, 세 가지 층위에서 빛난다. 첫째 체험의 진정성이다. 굶주림의 기억, 사막의 갈증, 막힌 코의 숨막힘은 과장이나 수사가 아니라 몸의 기억에서 길어 올린 언어다. 문장은 화려하지 않지만 단단하고, 감정은 격앙되지 않지만 깊다. 둘째 윤리적 온도다. 그는 고통을 개인의 비극으로 닫아버리지 않고, 기초생활보장법 제정, 한센병 환자 돌봄, 청년 실업에 대한 연민으로 확장한다. 여기서 에세이는 사회적 책임을 품은 윤리적 장르가 된다. 셋째 관조의 균형이다. 절망에 침몰하지도, 교훈주의에 빠지지도 않는다. 카뮈가 말한 “부조리 속에서도 살아가는 품위”가 느껴진다. 에세이의 치료적 효과 또한 뚜렷하다. 이 글은 독자에게 “당신의 고통은 무의미하지 않다”고 속삭인다. 특히 ‘지나보면 안다, 고통이 추억인 걸’이라는 문장은 트라우마를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서사로 재구성할 가능성을 열어준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카타르시스, 연민과 공포를 통한 정화를 현대적 방식으로 구현한다. 작가는 후회 없는 삶을 살려면 우선 “비교와 계산으로 복잡해진 생각의 창고부터 비우라”고 조언함으로써,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이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희망의 메시지는 마지막 문단에서 정점에 이른다. 죽음의 위협 앞에서 깨닫는 “내가 세상의 주인”이라는 통찰은 나르시시즘이 아니라 존재론적 각성이다. 내가 사라지면 세계도 사라진다는 인식은, 역설적으로 타자와 세계를 더 사랑하게 만든다. 하이데거식의 ‘죽음을 향한 존재’가 아니라, ‘죽음을 넘어 삶을 품는 존재’에 가깝다. 이 에세이는 한 인간의 고백을 넘어 살아가는 법의 교본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있을 때 잘하라”는 평범한 격언을, 몸의 기억과 역사의 경험으로 다시 쓴다. 이 에세이의 문학적 성취는 무엇보다도 ‘체험의 진실’을 과장 없이 언어로 길어 올렸다는 데 있다. 김홍신의 문장은 화려한 수사나 기교에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몸의 기억과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밀도를 지닌다. 각각의 일화는 개별적 경험에 머물지 않고 보편적 인간 조건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되며, 독자는 저자의 삶을 따라가다 어느새 자신의 삶을 겹쳐 보게 된다. 특히 고통과 결핍을 비극적 서사로만 소비하지 않고, 성찰과 연대의 윤리로 전환하는 태도는 이 글에 드문 품위를 부여한다. 일상의 언어로 존재의 근원적 질문을 건드리는 힘, 그리고 개인적 회고를 사회적 기억과 윤리적 통찰로 승화시킨 점에서 이 작품은 한국 에세이가 지향할 수 있는 한 높은 기준을 보여준다. 또한 반복 구조, ‘~하면 안다’를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기억과 사유를 관통하는 리듬으로 승화시킨 점이 돋보인다. 개인의 고백을 역사적 사회적 맥락 속에 배치함으로써 에세이를 사적 기록이 아닌 공적 서사로 확장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무엇보다 이 글은 독자의 마음을 깊이 흔드는 절제된 서정성을 성취했다는 점에서 문학적 완성도가 높다. 이 에세이의 쾌미는 독자는 이 글을 덮으며 묻게 된다는 데 있다. 좋은 글은 질문을 던진다. 이 에세이는 다음과 같이 독자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는가? 무엇을 잃고 나서야 소중함을 알았는가? 그리고 무엇을 지키며 살아갈 것인가? 김홍신은 유명 작가답게 문장을 소리 높여 설교하지 않는다. 대신 겪어온 삶의 무게로 조용히 설득한다. 그래서 이 에세이는 읽히는 것이 아니라 스며드는 글이고,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게 하는 글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작품은 인간학이자 인문학이며, 무엇보다도 인생학이다. ▮권대근 주요 약력 △경남 남해 출생 △'동양문학' 수필 등단(1988) △'문예사조' 문학평론 △'경북신문' 문학평론 △미주 '중앙일보' 수필 신춘문예 당선 △현재 대신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한국본격문학가협회 회장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명예회장 △평론집 '수필은 사기다', 번역서 '한국의 명수필', 문학이론서 '문장가로 가는 길' △수필집 '고운 별 하나 가슴에 묻고' 등 28권 △부산수필문학상, 부산펜문학상, 월강문학상, 여산문학상, 정과정문학상, 부산pen번역문학상 등 수상 ▮ 김홍신의 <겪어보면 안다> 몇 해 전, 텔레비전 방송에서 제가 쓴 글 「겪어보면 안다」를 낭송한 적이 있습니다. 50초 남짓한 짧은 영상인데, 유튜브를 비롯한 각종 소셜미디어에 빠른 속도로 퍼지며 지금도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열 줄밖에 안 되는 짧은 글이지만, 사람들에게는 그럴듯하게 여겨졌나 봅니다. 세상이 변하고 세대가 달라도 사는 일에 대한 고민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내용을 한 줄 한 줄 되새기며 제 인생살이에서 느꼈던 것들을 다시 한 번 돌아보려 합니다. 굶어보면 안다, 밥이 하늘인 걸 국민학교 4학년 때 저희 집안은 금융 사고로 풍비박산이 되었습니다. 빚쟁이들 등쌀에 아버지는 집을 비웠고, 어머니는 오전 4시 통행금지 해제 사이렌이 울리기 전에 나갔다가 밤 12시 통행금지가 시작되면 집에 왔습니다. 홀로 남은 저는 굶주림에 지쳐 생쌀을 씹어 먹거나, 밖에 나가 삘기나 생미나리 따위를 뜯어 먹었습니다. 당시 20대 초반이던 옆집 누나가 담 너머로 밥 한 사발을 몰래 넘겨주면 그 밥이 하느님 같았습니다. 커서 그 은혜를 갚기 위해 TV 프로그램 등을 통해 누나를 찾아보았지만, 군의관인 형부를 따라 일찍 미국으로 이민 갔다는 소식만 전해 들었습니다. 지금은 나아진 세상살이에 대부분 끼니를 거르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굶는 사람이 여기저기에 있습니다. 제가 국회의원 시절에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악착같이 만든 까닭도 배곯던 시절을 떠올렸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모든 생명은 영양분을 섭취해야 살 수 있습니다. 먹지 못하면 죽습니다. 밥이 하늘입니다. 목마름에 지쳐보면 안다, 물이 생명인 걸 1982년 소설 집필을 위해 취재차 인도에 갔습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수돗물과 샘물을 그냥 마셨습니다. 그런데 인도에서 수돗물이나 강물을 마셨다가는 바로 병원으로 실려갈 수도 있다고 해서 할 수 없이 물을 사 먹었습니다. 유럽에 갔을 때도 석회질 때문에 물을 사서 마셔야 했으니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론 낙후되어 있지만 아직은 사람이 살 만한 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하라 사막에서도 물의 소중함을 절절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지프를 타고 사막을 횡단했는데, 한번은 깜빡하고 차에 마실 물을 싣지 못했습니다. 불구덩이 같은 사막 한가운데서 머리에 물수건을 얹고 그 위에 챙 넓은 모자를 써도 금세 수건이 말랐습니다. 지독한 목마름으로 말을 할 수가 없었고, 삭신이 녹아 흐물거리는 듯했습니다. 정신이 몽롱해질 무렵에야 목적지에 도착해 마신 물맛은 황홀경이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누구라도 지금 당장 물 없이 하루만 살아본다면 물이 곧 생명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코 막히면 안다, 숨 쉬는 것만도 행복인 걸 봄날에 산에 오르면 콧물이 흐르고 재채기가 심하게 납니다. 꽃가루 알레르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손수건이나 휴지로 해결할 수 있으니 다행입니다. 안나푸르나를 등반할 때는 폭설로 험난한 빙판길을 걷느라 몸살을 앓았습니다. 줄줄 쏟아지는 콧물을 손수건으로는 감당 못 할 지경이어서, 배낭 고리에 수건을 달아야 했습니다. 견디기 고통스러운 문제는 잘 때 생겼습니다. 콧물이 심하게 흘러 왼쪽과 오른쪽으로 번갈아 누워가며 겨우 숨을 몰아쉬어야 했습니다. 강행군으로 피곤했지만, 수면제를 먹어도 막힌 코 때문에 잠들 수가 없더군요. 평소에 저는 코로 숨 쉬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코가 막히니까 숨 쉴 수 있다는 게 엄청난 행복이란 걸 알았습니다. 어디 코뿐이겠습니까. 온몸을 내 인생의 보물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일이 없어 놀아보면 안다, 일터가 낙원인 걸 제가 20대였던 1970년대엔 취업하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셋방살이하는 부모님께 얹혀사는 게 죄송스러워 이곳저곳 일자리를 알아봤습니다. 학훈단 출신 장교로 제대했음에도, 전공이 국문학이다 보니 입사원서 낼 곳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은사인 대학 총장님께서 마침 취업을 알선해 주셨는데 한센병 환자를 돕는 기관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무서운 전염병이란 소문이 파다하여 염려되었지만 제 형편에 마다할 수 없었습니다. 일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뻐하며 2년간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았습니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유준 교수님께서 6개월 동안 한센병 환자들이 복용하는 DDS를 처방해 주어 그 독한 약을 먹었습니다. 그 경험 덕분에 한센병 환자가 주인공인, 제 첫 번째 장편소설 『해방영장』을 집필할 수 있었습니다. 더 치열해진 취업전선을 뚫기 위해 젊음을 불사르는 요즘 청년들을 보면 그 시절이 떠오릅니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20~2022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던 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사람에겐 일터가 낙원입니다. 아파보면 안다, 건강이 가장 큰 재산인 걸 정치를 접고 한동안 거의 두문불출한 채 소설을 썼습니다. 우리의 잃어버린 역사, 발해에 대한 글을 쓰며 여러 가지 병고를 겪었습니다. 3년간 햇빛을 거의 안 보고, 물을 적게 마시고, 하루 열두 시간 가까이 책상 앞에 앉았다가 그만 요로결석으로 큰 고생을 했습니다. 결석 제거 시술을 하고 나서 바로 생활 습관을 고쳐야 했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얼마 후 왼쪽 옆구리 뒤편에서 그 무시무시한 통증이 또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요로결석인 걸 대번에 알아차리고 병원을 예약했습니다. 하루 동안 통증완화제를 복용하고 척추 마취를 하고 시술을 받았습니다. 몸속에 있던 돌이 빠져나왔을 때의 안도감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때 의사 선생님이 한 말씀이 아직도 귀에 쟁쟁합니다. “아플 때는 건강이 큰 재산인 걸 알면서도 낫자마자 바로 잊어버리는 게 사람입니다. 사람은 움직이는 존재입니다. 잘 먹고 잘 배설해야 합니다. 잃은 뒤에 안다, 그것이 참 소중한 걸 저는 아직도 만년필로 원고를 씁니다. 어느 날 만년필을 가지고 외출했다가 그만 잃어버렸습니다. 새 만년필에 익숙해지려면 매일 이것저것 쓰며 몇 달을 지내야 합니다. 그러는 동안 손가락에 쥐가 나고 손목도 굳습니다. 글씨체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만년필을 단지 글 쓰는 도구로 여겼는데, 잃고 나니 그 존재가 무척 크게 다가왔습니다. 한동안 제 불찰을 탓했고,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쓰던 원고를 다른 종이 뭉치와 함께 쓰레기통에 버리는 바람에 글을 새로 쓴 적도 있습니다. 다시 쓰긴 했지만 먼저 쓴 글과 달라 마음에 들지 않아 속상했습니다. 사랑, 품성, 배려, 포용 등을 잊는 무형의 ‘영혼 분실’을 비롯하여 지금까지 잃은 게 어디 한두 가지겠습니까. 가진 것을, 옆에 있는 사람의 존재를 당연시하다가 잃었을 때에야 비로소 그것이, 또 그가 참 소중한 존재임을 압니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있지요. 지금 자신이 가진 것의 소중함을 느껴보세요. 결국 그것이 나 자신을 소중하게 만듭니다. 이별하면 안다, 그이가 천사인 걸 저는 쉰 줄에 ‘고아’가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 먼저 이승을 하직하고, 2년 뒤에 아버지께서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일곱 살이나 어린 아내와 오누이같이 의지하며 살았는데 아내는 어린 시절부터 허약했고, 결혼할 무렵에도 건강이 나빴습니다. 아픈 몸으로 아들과 딸을 낳은 건 기적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내마저 마흔아홉 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내가 살아 있을 때는 건강이 좋지 않아 가족여행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제가 우여곡절이 많은 사람이어서 어지간히 아내를 애태웠습니다. 아내가 떠날 때, 딸아이는 엄마를 끌어안고 “엄마, 이다음에는 아프지 마”라고 했습니다.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저는 아내의 휴대폰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라는 목소리만 들었을 뿐입니다. 사랑은 햇살처럼 왔다가 달빛처럼 스러져간다고 했던가요. 제 곁에 있어주던 부모님과 아내가 떠나고서야 그들이 저를 존재하게 해준 하늘의 천사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나보면 안다, 고통이 추억인 걸 군사정권 시절, 콩트집 『도둑놈과 도둑님』을 발표한 저는 계엄 당국의 보안대에 끌려가 소설 속 ‘도둑님’이 누군지 대라는 취조를 받았습니다. 국가원수 모독, 국가 체제 부정, 군 모독이라는 어마어마한 죄목으로 조사를 받았습니다. 풀려난 저는 오기를 품고 『인간시장』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총을 차고 한판 붙어보자’는 의미에서 주인공 이름을 ‘장총찬’으로 짓고, 사회 부조리와 비리를 고발하는 소설을 썼습니다. 그 바람에 『인간시장』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밀리언셀러로 역사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런저런 우여곡절과 고난이 없었다면 『인간시장』은 태어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고난과 시련을 관통한 자만이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는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고통은 훗날 추억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행해지면 안다, 아주 작은 게 행복인 걸 불행의 반대말은 행복입니다. 행복이란 엄청나고 화려한 게 아니라 평범하고 소박한 일상에서 누리는 것입니다. 어쩌면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는 것만도 행복인지 모릅니다. 교통사고가 나서 차도 사람도 다치고 병원에 갈 때는, 버스 타거나 멀쩡하게 걸어 다니는 사람이 부럽습니다. 크고 작은 사업을 하다가 실패한 사람들은 수입이 적다고 투덜대는 월급쟁이가 몹시 부럽습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당연한 것들이, 환자에게는 꿈같은 일이 되기도 합니다. 친구들과의 만남, 가족들과의 평범한 일상이 남의 얘기로만 여겨집니다. 매일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환자들에겐 오늘 하루가 전부입니다. 우리나라 10대 재벌 그룹의 어느 회장님과 그분이 돌아가실 때까지 친밀하게 ‘형님’, ‘아우’ 하며 지냈습니다. 외환위기 때 회장님의 그룹은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해체되었으며 갖가지 고난을 겪었습니다. 괴로움을 달래려고 그랬는지 회장님은 저를 자주 불러 억울한 사연들을 쏟아놓곤 했습니다. 지금도 제 책장에 그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억울한 사연을 낱낱이 기록한 두툼한 자료집 두 권이 꽂혀 있습니다.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하는 건 “자유롭게 나다니는 평범한 사람들이 한없이 부럽다”고 했던 그분의 말씀입니다. 천하에 누릴 건 다 누렸다는 소릴 들었지만, 고난과 시련을 겪으며 ‘평범한 것이 진짜 행복’이란 걸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평소 건강한 분이었으니 그런 변고를 겪지 않고 평범하게 살았더라면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아 계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저 또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애쓰게 되었습니다. 나로 인해 누군가 행복해할 때, 나 자신도 행복해지며 존재가치가 높아집니다. 사랑하는 이들이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함께 있는 시간의 소중함을 모르고, 자신이 행복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 자신이 소중한 사람인 것도 모릅니다. 하루하루가 평범한 일상의 반복일지라도 아무 탈 없이 하루를 보내고 가족과 마주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행복입니다. 죽음이 닥치면 안다, 내가 세상의 주인인 걸 1980년대 중반, 리비아의 국가원수 카다피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면담 뒤에 벵가지 근교의 바닷가 경치에 반해 산책을 하게 되었습니다. 홀로 큰 바위 사이를 거닐었는데, 어느 순간 제 가슴에 자동소총 총구가 맞닿았습니다. 그때 총을 겨눈 리비아의 국경수비대원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며 시건장치를 풀었습니다. 숨이 멎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묻고 답할 수도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지요. 자동소총의 성능을 잘 알기에 그 순간 목숨을 구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과 함께 오만가지 생각이 한꺼번에 떠올랐습니다. 바로 그때 하늘이 도왔는지 한 남자가 “세리카, 동가(친구, 동아)!”라고 소리치며 달려왔습니다. 저를 안내하던 동아그룹의 홍보요원이었습니다. 당시에 동아그룹은 리비아의 대수로 공사를 맡아 사막 한가운데서 물줄기를 찾아 사막을 적셔주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리비아 사람들이 ‘세리카, 동가’라는 말로 동아그룹과 한국에 대한 신뢰를 표현하곤 했습니다. 풀려나는 순간, ‘내가 없으면 세상 모든 것도 없다’는 경고음이 가슴을 건드렸습니다. 내가 없으면 지구와 햇빛도, 물과 밥도, 부모 형제와 사랑하는 이도 모두 소용없습니다. 죽을 고비를 넘겨본 사람은 알게 됩니다. 내 존재 가치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김홍신 에세이집 <겪어보면 안다> ▮김홍신 주요 약력 △건국대 국문과 졸업 △건국대학교 문학박사 취득 △건국대학교 명예정치학 박사 취득 △1991~1995 경제정의시민실천연합 상임집행위원 △1995~1997 (MBC재단)방송문화진흥회 이사 △1996~2000 제15대 국회의원 △2000~2003 제16대 국회의원 △2002~2004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집행위원장 △2004~2019 평화재단 이사 △2006~2008 건국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 초빙교수 △2008~2014 건국대학교 석좌교수 △2010~현재 동서문학상 운영위원장△2013~현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민주시민정치아카데미 원장 △2014~2017 통일의병 대표 △2016~현재 홍상문화재단(김홍신문학관) 이사장△2019~2025 (사)동의난달 이사장 △2024~현재 세계한글작가대회 조직위원장 △1976 현대문학에 ‘물살’로 소설가 데뷔 △1986 제12회 한국소설문학상 수상 (장편소설「풍객」) △1987 제6회 소설문학작품상 수상 (장편소설「내륙풍」)/ 제1회 건국인상 수상 △1994 자랑스러운 서울시민 600인 선정 △2001 제1회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 수상 △2007 제4회 통일문화대상 수상 (통일문화연구원, 한국일보사 주최) △2009 제14회 현대불교문학상 수상 (대한불교조계종 주최) △2009 제2회 한민족대상 수상 (한국신문기자연합회, 시사뉴스투데이) △2015 제52회 한국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단한번의 사랑」) △2022 자랑스런 충청인 대상 수상 △ 장편소설집 「해방영장」,「인간시장」,「 바람바람바람」,「난장판」,「청춘공화국」,「대곡」,「또 다른 늪」,「여신의 늪」,「우리들의 고해성사」,「야망의 땅」,「파문놀이」,「걸신」, 「풍객」,「제4계급」,「귀공자」,「여자세상」,「갈증 그리고 또 갈증」,「내륙풍」,「비틀거리는 도시」,「바람개비」,「뚝딱 애들 모여라」,「벌거숭이들」,「장보고」,「야심」,「도시에 갇힌 새」,「역마살」,「그대 영혼 훔치다」,「사랑의 장난」,「사랑은 죽음보다」,「칼날 위의 전쟁」,「우리들의 건달신부」,「초한지(전7권)」,「김홍신의 대발해(전10권)」,「단한번의 사랑」,「바람으로 그린 그림」,「죽어나간 시간을 위한 애도」 △창작집 「무죄증명」,「수녀와 늑대」,「가면의 춤」,「허수아비와 벙거지」 △수필집 「하나님과 쬐그만 악마」,「아침에 못한 말」,「인간수첩」,「아직도 그럭저럭 사십니까」,「가슴을 열어 사랑을」,「흔들려도 너는 세상의 중심에 있다」,「인생을 맛있게 사는 지혜」,「발끝으로 오래 설 수 없고 큰 걸음으로 오래 걷지 못하네」, 「인생사용설명서」, 「인생사용설명서 두 번째 이야기」,「그게 뭐 어쨌다고」,「인생견문록」,「하루사용설명서」,「자박자박 걸어요」,「겪어보면 안다」 △컬럼집 「대통령 정신차리소」,「도둑과 장물애비」 △꽁트집 「도둑놈과 도둑님」,「제법 노는 사람들」,「요즘 윗분들」,「좀 봐줘유 씨」 △시집 「한 잎의 사랑」 「그냥 살자」 △동화집 「뚝딱 애들 모여라」「노랑나비의 춤」「사랑을 배워요」「수업이 끝나면 미래로 갈 거야」 △中國古典 評譯 「삼국지(전10권)」,「수호지(전10권)」,「청소년 삼국지 (전5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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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 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6) 권대근 '겪어야 비로소 보이는 삶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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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론] 성직자의 정치 참여, '양심의 자유'와 '정교분리'의 외줄타기
- [지구일보이창호 발행인] 종교와 정치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동반자이자 숙명의 라이벌이었다. 때로는 성스러움이 세속을 구원하기도 했고, 때로는 권력의 탐욕이 신성(神性)을 오염시키기도 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다시금 불붙고 있는 성직자의 정치 참여 논란은 헌법이 보장한 '정교분리'의 원칙과 개인의 '양심 및 표현의 자유'라는 두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에 서 있다. 이를 단순한 찬반의 논리로 재단하기에 앞서, 우리는 성직자라는 특수한 신분이 갖는 도덕적 무게와 그 영향력을 냉철하게 응시해야 한다. 성직자의 정치 참여를 옹호하는 측은, 성직자 또한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임을 강조한다. 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며 종교에 의해 정치적·사회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성직자가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거나, 보편적 인권과 정의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광장에 나서는 것을 '종교의 정치 개입'으로만 매도할 수는 없다는 논리다. 역사의 변곡점마다 종교계가 보여준 예언자적 비판 정신은 민주화와 인권 신장에 기여한 바가 크다. 그러나 문제는 '참여의 방식'과 '정치적 중립성'의 훼손에 있다. 성직자의 말 한마디는, 시민의 사회적 무게감이 다르다. 신도들에게는 신의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영적 권위를 지니기 때문이다.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지하거나, 종교적 교리를 이용해 정치적 적대감을 고취하는 행위는 종교의 본질인 화합과 사랑을 스스로 부정하는 처사다. 이는 신앙의 공동체를 이념의 전장(戰場)으로 변질시키고,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기보다 증폭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특히 한국 사회처럼 종교적 다양성이 공존하는 다종교 사회에서 특정 종교인의 편향된 정치 행보는 자칫 종교 간 갈등이나 사회적 분열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우리 헌법 제20조 제2항이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명시한 이유는 정치가 종교를 이용하거나, 종교가 국가 권력을 장악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비극을 막기 위함이다. 성직자가 강단에서 특정 정파의 논리를 전파하는 순간, 종교는 세속적 권력투쟁의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진정한 의미의 성직자의 정치 참여는 '정치 권력에의 편승'이 아니라 '시대적 가치의 수호'여야 한다. 특정 이념의 전사가 되기보다는, 우리 사회가 놓치고 있는 도덕적 가치와 공동체의 선(善)을 일깨우는 '사회의 빛과 소금'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되, 스스로 권력의 품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성직자의 정치 참여가 정당성을 얻으려면 엄격한 자기 절제와 성찰이 전제되어야 한다. 성직자의 옷을 입고 행하는 모든 정치적 언사는 개인의 자유를 넘어 종교 전체의 신뢰와 직결된다. 종교가 정치를 정화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가 종교를 오염시키는 현실을 목도하며, 우리는 다시금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성직자들이 서 있는 곳은 진정 낮은 곳을 향한 헌신의 자리인가, 아니면 세속의 권력을 탐하는 탐욕의 자리인가. 성직자는 정치적 사안에 대해 침묵할 의무는 없으나, 자신의 권위가 갖는 파괴력을 직시해야 한다. 정치가 증오와 배제의 언어로 가득 찬 시대일수록, 종교는 그 너머의 화해와 통합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것이 성직자에게 부여된 진정한 사회적 책무이자, 정치 참여의 한계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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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론] 성직자의 정치 참여, '양심의 자유'와 '정교분리'의 외줄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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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 천 년의 비단길에서 디지털 런웨이로... 중국 패션의 역사적 변천과 미래적 응시
- [지구일보 김지윤 한중문화칼럼니스트] 패션은 단순히 몸을 감싸는 천의 조합이 아니다. 그것은 시대의 이데올로기, 기술의 진보, 그리고 한 민족의 자존감이 응축된 ‘입는 역사서’다. 특히 중국 패션은 황제의 권위를 상징하던 오색찬란한 비단에서부터, 혁명의 획일성을 상징하던 인민복을 거쳐, 이제는 전 세계 미학의 기준을 새롭게 정의하는 ‘신중국주의(New Chineseness)’에 이르기까지 극적인 파노라마를 그려왔다. 본 칼럼에서는 중국 패션의 역사적 흐름을 짚어보고, 현대 중국 패션이 나아가고 있는 방향성을 알아본다. ◈ 역사적 흐름, 권위와 혁명, 그리고 개방의 연대기 ① 제국의 영광, 복식으로 쓴 위계의 서사 전통 시대 중국 패션은 ‘예(禮)’의 산물이었다. 한푸(漢服)로 대표되는 고대 복식은 소매의 넓이, 허리띠의 색상, 수놓아진 문양 하나하나에 엄격한 계급적 질서를 담았다. 청나라 시대의 치파오(旗袍) 역시 본래 만주족 여인들의 헐렁한 의복에서 시작되어 왕실의 권위를 상징했다. 이 시기 중국 패션의 핵심은 ‘독보적 기법’이었다. 옷감 특유의 질감으로 경외감을 만들듯, 당시의 자수와 직조 기술은 그 자체로 국가적 IP(지식재산권)였다. ② 혁명의 시대, 획일화된 정체성, 인민복(中山裝) 20세기 중반, 중국 패션은 거대한 단절을 겪는다. 쑨원이 고안하고 마오쩌둥이 상징화한 인민복은 계급을 타파하고 평등을 지향하는 혁명의 유니폼이었다. 화려함은 거세되었고, 실용성과 통제된 질서만이 남았다. 이 시기는 패션이 개인의 개성이 아닌 집단의 미션을 수행하던 시기였다. ③ 개방과 모방, 서구 미학의 유입 1980년대 개혁개방 이후, 중국 패션은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서구의 유행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서 타인의 도상을 복제하며 상업적 성장을 이뤘으나, 작가적 주체성은 부재했다. ◈ 현대 패션의 향방, 궈차오(國潮)에서 신중식(新中式)으로 오늘날 중국 패션은 더 이상 서구의 추종자가 아니다. 현재 중국 현대 패션의 방향성은 크게 세 가지 축으로 요약된다. ① 국조(國潮, Guochao), 전통의 ‘힙’한 재해석 젊은 세대인 Z세대가 주도하는 ‘궈차오’ 열풍은 애국 소비를 넘어선 미학적 혁명이다. 이는 전통문화의 파편들을 스트릿 패션이라는 현대적 그릇에 담아내는 과정이다. 한자를 그래픽화하고, 사찰의 단청 색감을 스니커즈에 이식한다. 이는 예술경영의 ‘창조적 파괴’ 이론을 실천하는 현상으로, 낡은 전통을 가장 강력한 현대적 콘텐츠로 부활시켰다. ② 신중식(新中式), 절제와 포용의 미학 최근 트렌드는 자극적인 국조를 넘어 ‘신중식’이라는 고차원적 미학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는 치파오의 형태를 해체하여 현대적인 오버사이즈 실루엣에 녹여내거나, 도자기의 유려한 곡선을 의복의 패턴으로 사용하는 방식이다. 서구의 패션이 인체의 곡선을 드러내는 ‘강조’에 집중한다면, 신중식은 인체를 감싸고 품는 ‘여백’과 ‘흐름’에 집중한다. ③ 디지털 피지털(Phygital) 생태계 다니엘 아샴이 가상 고고학이라는 서사를 디지털 미디어로 전파하듯, 중국 패션은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IT 생태계를 적극 활용한다. 가상 의류(Digital Wear), 라이브 커머스를 통한 실시간 서사 전달은 중국 패션을 단순한 제조업이 아닌 ‘디지털 문화 IP 산업’으로 격상시켰다. ◈ 미래의 방향성, 지속 가능한 철학적 패션 미래 중국 패션이 나아갈 최종 종착지는 ‘정신적 안식처로서의 옷’이다. 첫째, 지속 가능성에 대한 집착이다. 전통적인 천연 염색 기법과 재생 소재의 결합은 전 세계적인 환경 위기 속에 중국 패션이 던지는 대안적 메시지다. 둘째, 포용적 디자인이다. 패션마저 글로벌세계관을 바탕으로 나이와 체형에 상관없이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는 형태의 의복이 주류를 이룰 것이다. 중국 패션의 역사는 권위에서 투쟁으로, 다시 모방에서 창조로 굽이쳐 왔다. 이제 중국 패션은 그릇에 흙의 결이 겹겹이 쌓여 단단해지듯, 수천 년의 시간을 겹겹이 쌓아 올려 세계라는 거대한 관객을 품으려 하고 있다. 따라서, 미래의 중국 패션은 현대인의 고단한 영혼을 따스하게 품어주는 ‘문화적 그릇’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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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 천 년의 비단길에서 디지털 런웨이로... 중국 패션의 역사적 변천과 미래적 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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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적토마는 봄을 기다리며
- [詩] 적토마는 봄을 기다리며 李昌虎 붉은 흙을 뒤집어쓴 적토마는 마구간의 어둠 속에서도 발굽을 멈추지 않는다 숨결마다 김이 오르고 땅은 이미 달릴 준비를 끝냈다 겨울은 고삐를 잡아당기지만 근육은 기억한다, 들판의 넓이를 핏줄처럼 번지는 붉은 기운 눈발 아래서도 심장은 앞을 향한다 채찍이 없어도 적토마는 안다 기다림이란 멈춤이 아니라는 것을 땅속에서 싹이 몸을 비틀 때 시간은 이미 출발선에 서 있다 마침내 봄, 문이 열리는 소리 적토마는 온몸으로 바람을 깨뜨린다 흙은 튀고 하늘은 낮아지며 달림은 곧 생의 선언이 된다 ● 해설 이 시에서 적토마는 단순한 말이 아니라, 억눌린 시간 속에서도 스스로를 단련해 온 의지의 형상이다. 겨울은 현실의 제약이자 정체의 은유이며, 봄은 도래할 변화와 행동의 순간을 뜻한다. 이 시는 기다림을 수동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적토마는 멈춰 있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몸과 마음을 달리게 한다. 붉은 흙과 김 오르는 숨결, 터져 오르는 발굽의 이미지는 ‘가열찬 준비 상태’를 강조한다. 결국 봄은 우연히 오지 않는다. 준비된 존재에게만 열리는 문이며, 적토마의 질주는 그 자체로 삶을 향한 결연한 선언이다. ▲ 詩/사진: 이창호(李昌虎)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겸 국제다자외교평의회 의장, 한중기자연맹 회장, 중국 곡부사범대학 겸직교수, 위해직업대학 객좌교수, 허베이미술대학 명예/종신교수.《새 시대를 이끄는 시진핑과 한중관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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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 김월강 대종사 제9대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회장 취임식 개최
- [지구일보] 김월강 시인(대종사)이 제9대 사)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회장으로 취임했다. 김월강 회장은 2026년 1월 26일 11시 솔내음 한정식에서 제9대 회장 취임식을 갖고, 임원 임명장 수여식과 아울러 운영이사회도 개최하였다. 이날 김월강 회장의 취임사와 송명화 제8대 회장의 이임사가 큰 울림을 안겨주었다. 범어사 방장 정여 대종사님, 범어사 주지 정오스님, 재원스님, 문수사 지원스님, 김석규 고문 등이 축사를, 통도사 재원 큰스님이 축하패를 전달했다. 심상옥 국제펜한국본부이사장, 부산광역시장 박형준, 동래구청장 장준용 등이 축전을 보내주었고, 김석규 고문, 박송죽 고문, 양은순 상임고문 권대근 상임고문 등 70여 분이 참석해서 회장 취임을 축하해 주었다. ■ 사)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단체사진 시인 월강 대종사는 1963년 출가입산, 1986년 대한불교조계종총본산 서울 조계사 입승, 1980년 동국대학교 승가학과 졸업, 부산동래차밭골 금어사 주지, 1994년 공동선실천부산종교지도자협의회 공동대표, 1995년 부산불교연합회 상임부회장, 2005년 대한민국 청곡예술문화상 수상, 2009년 문예시대 신인상(시), 2023년 월강문학상 제정 이사장, 사)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회장, 시집으로 ‘차 한잔 듬세’ ‘달 그림자’ ‘차밭골 사랑’ ‘마음의 샘’ ‘홍두깨에 꽃이 피다’ 등이 있다. ■ 고문단 및 부회장단 임명장 수여 국제PEN한국본부부산지역위윈회 제9대 회장 김월강 대종사 취임식 2026년 1월 26일(월) 11:00-14:00 솔내음 한정식 서면점 수석부회장 김정애 위 서명자 46명, 서명 안 된 분 24명. 참석자: 번 성명 직위 번 성명 직위 번 성명 직위 번 성명 직위 1 정여스님 축하객 13 김월강 회장 25 백소율 이사 37 김미화 구의원 2 재원스님 축하객 14 김정애 수석부회장 26 박경애 이사 38 손계정 시낭송 3 산해정오 축하객 15 최순덕 부회장 27 김숙자 이사 39 송혜정 시낭송 4 지원스님 축하객 16 이종래 부회장 28 김정권 이사 40 신경숙 시낭송 5 석보스님 축하객 17 윤교숙 부회장 29 김숙자 이사 41 외 4인 시낭송 6 미상스님 축하객 18 황인숙 사무국장 30 김예순 이사 42 〃 시낭송 7 강석정목사님 축하객 19 김정열 편집주간 31 김성관 이사 43 〃 시낭송 8 양은순 상임고문 20 선경숙 편집국장 32 이태종 이사 44 〃 시낭송 9 권대근 상임고문 21 탁영완 자문위원 33 유상순 회원 45 조영춘 웃음공연 10 송명화 상임고문 22 김미순 자문위원 34 오지영 회원 46 김학용 사진촬영 11 김석규 고문 23 김희영 자문위원 35 박정숙 회원 12 박송죽 고문 24 박혜경 이사 36 김현숙 명인명장 총 70명 1 단체사진촬영 김학용 차방넷 대표 2 개회사 이종래 부회장 1) 개회 선언 2) 국민의례 3) 고인 선배 작가님들께 추모 묵념 3 회장인사 월 강 대종사 회장단 및 주요 축하객 소개, 전 회원 인사. ‘시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주제 말씀 4 내빈소개 김석규 고문, 박송죽 고문, 변종환 고문, 양은순상임고문(5, 6대 회장), 권대근 상임고문(7대 회장), 송명화 상임고문(8대 회장) 5 이임사 송명화 전임 회장(8대) 기틀을 잡으신 양은순 고문님, 비약적 발전을 이루신 권대근 고문님의 뜻을...(중략) 새 사업으로 번역문학상, 도슨트투어, 부산펜단독문학기행&세미나 등...(하략) 6 회장인사 (취임사) 월 강 대종사(9대) 문학을 사랑하고 문심을 이어오신 전 회장님과 회원님들께 공약함. 1)쓰는 즐거움 2)함께 걷는 문학공동체 3) 지역 문학의 중심 약속 7 축하패 증 정 통도사 재원 큰스님 축하패/ 월강 대종사/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동문이신 월강 대종사께서 제9대 부산펜... 8 축시낭송 손계정 외 7인 디카시 아카데미 회장 및 회원 일동 9 축사 범어사 방장 정여 대종사님, 범어사 주지 정오스님, 재원스님, 지원스님, 김석규 고문 10 축전소개 심상옥 국제펜한국본부이사장, 부산광역시장 박형준, 동래구청장 장준용 11 화환, 화 분, 족자 소개 및 증정식 국제펜한국본부이사장 심상옥,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산해정오, 범어사 방장 여산정여, 부산수필문학협회장 김정애, 이삭문학협회장 이광성, 이상 화환/ 대한불교조계종 문수사 주지 지원, 국가원로회 김계춘 신부, 부산디카시아카데미 원장 손계정, 편집장 선경숙, 문화와 문학타임 부회장 김숙자, 부회장 윤교숙, 이상 화분/ 정여 대종사 축하 친필 족자 12 임명장수여 김석규 고문 외 22명(고문, 상임고문, 자문위원, 이사, 회장단) ▶운영위원회, 이사회 안건(26년 사업 계획 추인 등)은 현 집행부에게 위임함. ▶2026년 사업계획은 문서로 대신 제출함.(시화전, 문학기행, 부산펜문학23호 발간, 제14회 부산펜문학상 운영, 총회, 시상식, 출판기념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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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 김월강 대종사 제9대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회장 취임식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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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 신춘문예 출신 음악학 박사 유선이 교수 에세이문예 봄호 문학(음악)평론가 등단
- [지구일보=이산 대기자]유선이 작가가 유네스코부산 선정 우수잡지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 문학(음악)평론, "잠재태의 현실화와 순수사건으로서의 합주, - 플루트 앙상블과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배치미학"의 당선으로 문학(음악)평론가로 등단한다. 계간 에세이문예(주간 송명화)에 따르면, 유선이 교수는 당선작 <잠재태의 현실화와 순수사건으로서의 합주, - 플루트 앙상블과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배치미학> 외 1편으로 제86회 에세이문예신인상 당선으로 2026년 봄호(통권86호)로 등단한다고 밝혔다. 문학평론가 권대근 교수는 유선이 신인상 심사평에서, “본 평론 '잠재태의 현실화와 순수사건으로서의 합주'는 무엇보다도 비평의 언어가 지닌 사유의 밀도와 논리적 조직력이 돋보이는 글이다. 필자는 들뢰즈의 개념을 단순한 이론적 장식으로 차용하지 않고, 플루트 앙상블과 심포니 오케스트라라는 구체적 음악 경험 속에서 능동적으로 재사유한다. 특히 ‘잠재태-현실화’, ‘사건’, ‘다양체’, ‘기계적 배치’와 같은 개념을 음악적 장면과 긴밀히 접속시키는 방식은, 추상 이론과 감각적 체험 사이의 간극을 설득력 있게 메운다. 이 글은 이론을 설명하는 평론이 아니라, 음악을 매개로 사유를 생성하는 평론이라는 점에서 신인답지 않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이 글의 가장 큰 미덕은 음악을 해석의 대상이 아니라 사건의 장으로 읽어낸다는 점이다. 플루트 앙상블을 ‘동질적 배치 속 차이의 반복’으로,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이질적 다양체의 기계적 배치’로 분석하는 대목은 단순한 음악 분석을 넘어 존재론적 사유에 이른다. 특히 베토벤 교향곡의 미약한 고음을 ‘순수사건’으로 읽어내는 부분은 탁월하다. 필자는 음의 구조, 화성, 형식 분석에 머무르지 않고, 그 소리가 발생시키는 정동과 시간의 균열을 포착한다. 이 지점에서 이 평론은 전문적인 음악평론의 정밀성과 문학평론의 사유성을 동시에 획득한다. 장르적 측면에서도 이 글은 주목할 만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본 평론은 전통적 의미의 음악평론, 작품해설, 연주평가, 형식분석에 머물지 않으며, 동시에 문학평론처럼 텍스트, 은유, 사건, 주체의 변형을 다룬다. ‘연주자는 주체가 아니라 사건의 통로가 된다’는 서술이나, 객석을 ‘감각이 재조직되는 집합적 장’으로 보는 시각은 분명 문학적 감수성에서 나온다. 그러나 그 사유는 언제나 음악적 구체성, 호흡, 음색, 접속, 배치에 뿌리를 두고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이 글은 문학평론이면서 동시에 음악평론일 수 있는 드문 사례를 보여준다. 향후 필자의 비평이 기대되는 이유는, 이 글이 이미 하나의 완성된 방법론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론을 빌려오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문제의식을 구축하며, 음악을 통해 세계를 사유하는 독자적 비평 언어를 만들어가고 있다. 다만 이후의 작업에서는 더 다양한 음악 장르, 현대음악, 즉흥음악, 전자음악 등으로 분석 대상을 확장한다면, 지금의 방법론이 더욱 풍부해질 것이다. 이 평론은 신인의 첫 성취이면서도, 이미 다음 단계의 비평을 예감하게 하는 글이다. 본 심사위원회는 이 글이 한국 문학평론과 음악평론의 경계를 새롭게 열어줄 가능성을 지녔다고 판단하며, 등단작으로 추천한다.”고 썼다. 한편 유선이 당선자는 당선소감에서, “이번 『에세이문예』 봄호 평론 당선과 문학평론가로서의 첫걸음은 제게 단순한 성취의 기록이 아니라, 오랜 시간 예술의 현장에서 축적해 온 사유가 문학의 언어로 비로소 응답받은 순간이라 느껴집니다. 연주자로서 무대 위에서 마주했던 생성의 순간들, 그리고 교육자이자 연구자로서 그 경험을 성찰해 온 시간들이 평론이라는 형식 안에서 하나로 이어졌습니다. 저는 예술을 고정된 결과물로 보기보다, 매 순간 새롭게 생성되고 변화하는 과정으로 이해해 왔습니다. 작품은 완성된 의미를 전달하는 대상이 아니라, 독자의 감각과 시대적 조건이 만나는 자리에서 매번 다르게 현실화되는 사건이라 생각합니다. 이번 평론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예술이 잠재된 가능성의 상태를 지나 어떤 조건과 배치 속에서 구체적인 의미와 감각으로 출현하는지를 따라가 보고자 했습니다. 특정 장르의 기술적 분석에 머무르기보다, 예술 전반에 작동하는 생성과 배치, 그리고 ‘차이와 반복’의 구조를 비평적 사유로 확장하고자 노력했습니다. 평론은 작품의 의미를 하나로 고정하는 결론이기보다, 텍스트가 지닌 다양한 결을 드러내며 독자와 함께 새로운 사유의 장을 여는 과정이라 믿습니다. 고정된 해석을 넘어 작품이 매번 새로운 사건으로 발생하는 지점을 탐구하는 비평, 그것이 제가 지향하는 문학평론의 방향입니다. 이번 당선은 현장에서 체득한 감각적 경험이 이론적 성찰과 만날 때 비로소 평론의 힘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삶의 구체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질문들이 철학적 사유를 거쳐 보다 보편적인 문제로 확장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앞으로의 평론 작업에 큰 방향성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실험적인 시도와 학제적 접근을 열린 시선으로 받아들여 주신 심사위원 여러분과 『에세이문예』 편집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 기회는 한 편의 글에 대한 평가를 넘어, 새로운 비평의 지평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안겨 주었습니다. 앞으로 저는 음악과 문학, 예술과 철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작품을 사유하는 평론가로 성장하고자 합니다. 예술을 단순한 감상의 대상으로 한정하지 않고, 삶의 감각을 변화시키고 세계를 새롭게 인식하게 하는 힘으로 읽어내는 작업을 이어가겠습니다. 작품 속에 잠재된 가능성이 어떻게 현실의 감동과 의미로 출현하는지, 그 과정에서 독자와 사회가 어떤 변화를 경험하는지를 성실히 기록하고자 합니다. 이 소중한 출발점에서 예술이 지닌 생성의 힘을 믿으며, 보다 깊고 넓은 사유로 독자들과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저의 가능성을 믿고 격려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라고 밝혔다. ▼유선이 연주학 학사, 석사 음악학 석사, 박사 문화행정기획 박사수료 경북신문 신춘문예 수필 당선 경성대, 동의대, 창신대 출강 두루지야앙상블 대표 두루지야플루트앙상블 예술감독 알마스앙상블 단장 사)유니세프경남후원회 이사 사)유라시아친선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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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 신춘문예 출신 음악학 박사 유선이 교수 에세이문예 봄호 문학(음악)평론가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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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 독서는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강한 힘이다
- [지구일보 이창호 칼럼니스트] 독서는 언제나 소리 없이 이루어진다. 책장을 넘기는 손짓은 작고, 읽는 사람의 얼굴은 고요하다. 그 조용함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어떤 소란스러운 사건보다 깊고 오래간다. 독서는 개인의 사고를 바꾸고, 판단의 기준을 세우며, 결국 사회의 방향까지 서서히 이동시킨다. 그래서 독서는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강한 힘이다. 전문가의 관점에서 볼 때 독서의 핵심 가치는 정보 습득에 있지 않다. 정보는 이제 클릭 몇 번이면 얻을 수 있다. 독서의 진짜 힘은 정보를 해석하고 연결하는 능력, 즉 사고의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한 권의 책을 끝까지 읽는 과정에서 우리는 저자의 논리를 따라가고, 동의와 반박을 반복하며 자신의 생각을 점검한다. 이 훈련이 쌓일수록 사람은 즉각적인 반응보다 숙고된 판단을 하게 된다. 정책 결정, 경영 전략, 외교 협상처럼 복합적인 이해관계가 얽힌 영역에서 독서의 힘은 더욱 분명해진다. 단편적 지식에 의존하는 사람은 순간의 여론이나 감정에 휘둘리기 쉽다. 반면 꾸준한 독서를 통해 축적된 사고의 깊이는 문제를 장기적 맥락에서 바라보게 한다. 역사서를 읽은 사람은 현재를 절대화하지 않고, 철학서를 읽은 사람은 옳고 그름을 단순화하지 않는다. 이것이 독서가 전문가를 만드는 방식이다. 독서는 또 언어를 단련한다. 말과 글은 생각의 그릇이다. 그릇이 얕으면 생각도 넘쳐흐르고, 그릇이 단단하면 생각은 정제된다. 꾸준히 책을 읽는 사람의 언어는 불필요한 공격성을 줄이고, 대신 정확성과 설득력을 갖춘다. 이는 공적 영역에서 특히 중요하다. 지도자나 전문가의 한 문장은 사회적 파장을 낳기 때문이다. 독서는 언어의 폭력을 줄이고, 책임 있는 표현을 가능하게 한다. 오늘날 독서의 가치는 오히려 더 과소평가되고 있다. 영상과 숏폼 콘텐츠가 사고의 속도를 지배하면서, 깊이 있는 읽기는 비효율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속도가 빠를수록 방향 감각은 중요해진다. 독서는 속도를 늦추는 행위가 아니라, 방향을 바로잡는 행위다. 천천히 읽은 한 문장이 성급한 판단 열 번을 막는다. 전문가에게 독서는 선택이 아니라 기본기다. 현장을 아는 경험과 책을 통해 얻은 통찰이 결합될 때 비로소 균형 잡힌 판단이 나온다. 경험만 있고 독서가 없는 전문성은 독단으로 흐르기 쉽고, 독서만 있고 경험이 없는 지식은 공허해지기 쉽다. 독서는 이 둘을 잇는 가장 안정적인 매개다. 결국 독서는 즉각적인 성과를 약속하지 않는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사람의 품격을 만들고, 조직의 문화와 사회의 수준을 끌어올린다. 조용히 읽는 사람들이 결국 역사를 움직여 왔다. 독서는 눈에 띄지 않지만, 가장 오래 남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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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 독서는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강한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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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사유의 지평을 넓히는 힘...왜 성인에게 ‘어휘력’이 곧 ‘생존력’인가
- [지구일보 이창호 소통전문가] 이 짧은 문장은 우리가 세상을 인지하고 해석하는 방식의 핵심을 찌릅니다. 요리사가 가진 식재료가 빈약하면 일류 요리를 만들 수 없듯, 우리가 보유한 어휘가 빈약하면 우리의 사고 역시 빈곤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성인이 된 이후의 독서가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행위를 넘어, ‘사고의 영토’를 확장하는 필수적인 과정이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어휘의 빈곤은 사고의 한계를 만든다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감정이나 상황을 명명할 단어를 갖고 있지 못할 때, 그 현상은 우리 머릿속에서 안개처럼 모호하게 머뭅니다. 예를 들어, ‘슬프다’라는 단어 하나로 모든 감정을 퉁치는 사람과 ‘비창하다’, ‘애잔하다’, ‘먹먹하다’, ‘울적하다’의 차이를 섬세하게 구분해 사용하는 사람의 내면 풍경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전자가 감정의 덩어리를 그저 견뎌낸다면, 후자는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진단하고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됩니다. 성인에게 어휘력이란 단순히 말을 잘하는 기술이 아니라, 복잡한 세상을 정교하게 읽어내는 해독 장치인 셈입니다. ■ 왜 ‘어른의 독서’는 달라야 하는가 학창 시절의 독서가 시험과 성적을 위한 ‘입력’이었다면, 성인의 독서는 삶의 맥락을 짚어내기 위한 ‘재구성’의 과정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며 마주하는 수많은 갈등, 인간관계의 피로도, 그리고 정체성의 혼란은 대부분 ‘적절한 언어’를 찾지 못해 발생합니다. 독서는 타인의 정제된 ‘생각의 재료’를 나의 창고에 채워 넣는 가장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입니다. 고전을 읽으며 시대를 관통하는 통찰을 배우고, 인문 서적을 통해 현상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어휘를 익히는 과정은 뇌의 근육을 단련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휘가 풍부해질수록 우리는 현상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관점으로 세상을 재정의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 문해력 저하의 시대, 다시 ‘텍스트’로 돌아가야 할 때 영상 매체가 지배하는 시대입니다. 30초 내외의 숏폼 콘텐츠는 즉각적인 즐거움을 주지만, 우리의 사고를 ‘수동적 수용’ 상태에 머물게 합니다. 영상은 이미지를 통해 결론을 바로 보여주지만, 텍스트는 독자가 스스로 머릿속에서 이미지를 구현하고 논리를 세우게 만듭니다. 이 ‘사유의 간극’이야말로 생각이 자라나는 핵심적인 공간입니다.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되는 ‘성인 문해력 저하’ 문제는 단순히 단어 뜻을 모르는 수준에 그치지 않습니다. 긴 글의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고, 타인의 의도를 오해하며, 논리적 비약에 쉽게 빠지는 현상은 모두 ‘생각의 재료’인 어휘력과 독서량의 부족에서 기인합니다. 지적인 성숙을 원하는 성인이라면, 이제 다시 활자의 세계로 돌아와 사유의 밀도를 높여야 합니다. ■ 사유의 풍요를 위한 제언... ‘어휘의 결’을 살리는 독서법 그렇다면 어떻게 독서해야 할까요? 단순히 많이 읽는 ‘다독’보다 중요한 것은 ‘숙독(熟讀)’과 ‘필사(筆寫)’입니다. ▪︎낯선 단어를 수집하십시오. 책을 읽다 마주친 생소하지만 울림이 있는 단어를 메모하십시오. 그 단어가 내 일상에 들어오는 순간, 그 단어만큼의 세계가 당신의 것이 됩니다. ▪︎맥락을 곱씹으십시오. 저자가 왜 이 상황에서 이 단어를 선택했는지 고민하며 읽는 습관은 공감 능력과 비판적 사고력을 동시에 길러줍니다. ▪︎나의 언어로 출력하십시오. 읽은 내용을 바탕으로 단 세 줄이라도 자신의 생각을 적어보는 연습을 하십시오. 재료(어휘)를 가지고 직접 요리(글쓰기)를 해볼 때 사유는 비로소 완성됩니다. ■ 언어는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준다 우리가 구사하는 언어는 곧 우리 존재의 격(格)을 결정합니다. 빈곤한 생각은 빈곤한 삶으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풍성한 식탁을 차리기 위해 좋은 식재료를 고르듯, 풍요로운 삶을 위해 매일 독서를 통해 생각의 재료를 다듬으십시오. 오늘 당신이 읽은 한 페이지, 당신의 머릿속에 남은 한 단어가 내일의 당신을 더 깊고 넓은 사람으로 만들어줄 것입니다. 언어라는 재료가 풍성해질 때, 당신의 인생이라는 작품 또한 비로소 깊은 맛을 내기 시작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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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사유의 지평을 넓히는 힘...왜 성인에게 ‘어휘력’이 곧 ‘생존력’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