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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해양수산부 전재수 장관, 세월호 선체 거치현장 안전관리 상황 점검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은 11월 20일(목) 목포 신항만 세월호 거치현장을 방문하여 세월호 선체 안전관리 현황과 희생자 유류품, 선체 절단물 등의 보전?관리 상황을 점검했다. 전 장관은 세월호 선체가 인근 항만배후부지 내 영구 거치장소(가칭 국립세월호생명기억관)로 이전될 때까지 안전하게 관리될 수 있도록 정기적인 점검과 보수?보강을 통한 철저한 관리를 지시하였다. 전 장관은 “선체절단물, 차량 및 유류품 등 국립세월호생명기억관으로 이전 예정인 주요 선체 반출물 관리에 만전을 기해 줄 것”을 당부하며, “무엇보다 현장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수칙 이행에 힘써달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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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城市外交”助力中韩友好——邢海明大使会见釜山市长
[IUNnews Lee gang mon]2月26日,邢海明大使在釜山会见韩国釜山广域市市长朴亨埈。中国驻釜山总领事陈日彪陪同会见。 朴亨埈表示,欢迎邢大使访问釜山,衷心祝贺中国乒乓女团、男团在此次釜山世乒赛上先后夺冠。韩中两国是友好近邻,更是分不开的合作伙伴。两国建交三十余年来交流合作成果丰硕。面对当前复杂的国际地区形势,韩中应继续秉持同舟共济的精神,携手合作共谋发展。釜山和上海是姐妹城市,并同中国多个城市缔结了友好合作关系。釜山市愿积极开展“城市外交”,深化同中方友城的交流往来,就城市建设发展加强互学互鉴,为韩中关系发展和两国友好作出积极贡献。诚挚欢迎中国游客多多到访釜山,感受海滨城市的美丽风情。 邢海明表示,感谢釜山市为此次世乒赛成功举办提供的各项服务保障,为各国观众带来了一场精彩绝伦的世界级乒乓盛宴。中韩建交32年来,两国关系全面快速发展,双方相互成就、共同繁荣,已成为利益高度融合、产供链高度互嵌的合作伙伴。去年底举行的中央外事工作会议明确了推动构建人类命运共同体这一中国外交工作主线,中国将坚持自信自立、开放包容、公道正义、合作共赢,履行负责任大国责任,推动世界走向光明前景。釜山是韩国第二大城市,在韩国国家发展建设中占据重要地位和独特区位优势。中国在韩首家总领事馆就设在釜山,成立30年来为推动两国地方合作往来发挥了积极作用。中国驻韩国大使馆和驻釜山总领事馆愿同釜山市一道,坚守中韩建交初心,积极促进两国经贸、人文等各领域交流合作,助力中韩关系健康稳定发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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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 어르신 독감백신 3500명분 박언휘 원장 기부
사진: 박언휘 원장(대구·박언휘종합내과의원)이 대구노인복지시설협회에 3500명분의 독감백신(1억 5000만원 상당)을 기부했다. [국제연합뉴스 이강문 기자]=지난 20일 대구노인복지시설협회에 따르면 지난 19일 낮 12시 대구 수성구 박언휘종합내과에서 김정헌 대구노인복지시설협회 회장과 노인시설 관계자 등 2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독감 백신 전달식이 열렸다. 총 3,506인분의 백신은 전량 복지재단을 통해 대구경북 어르신들에게 접종된다. 이번에 기부된 백신은 사노피의 박시그리프테트로 코로나 백신 역할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언휘 원장이 대구노인복지시설협회에 3500명분의 독감백신(1억 5000만원 상당)을 기부했다. 지난 2004년 이후 20년째 이어지는 온정의 손길이다. 기부 총액은 20억원을 훌쩍 넘었다. 김정헌 대구노인복지시설협회 회장은 "우리 협회에만 7년간 12억원 넘는 독감백신을 지원해 준 박언휘 원장님께 감사드린다. 어르신들의 안전한 겨울나기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박언휘 원장(대구·박언휘종합내과의원)은 "코로나에다 독감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어 여느 때보다 독감 백신이 중요하다"면서 "지역 어르신들이 건강하게 겨울을 나시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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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안대교에 최첨단 LED 조명
부산의 랜드마크 광안대교가 최첨단 LED(발광다이오드) 조명으로 새롭게 변신한다. 부산광역시는 지난 5일 광안대교 경관조명사업 제안서평가위원회를 열어, 동영기업 컨소시엄의 ‘凞(빛날 희)’ 콘셉트의 ‘희망의 빛, 도약의 빛’을 선정했다. 국내 대기업을 비롯한 10개 업체가 치열한 경합을 벌여, 향토기업인 동영기업 컨소시엄이 1등을 차지한 것. 광안대교 경관조명사업은 국비 56억 등 96억원을 들여, 다음달까지 실시설계를 마치고 공사에 들어가 내년 부산국제영화제(BIFF)와 부산불꽃축제 행사 전까지 준공할 계획이다. 광안대교 새 경관조명 ‘희망의 빛, 도약의 빛’은 정지된 조명이 아닌 미디어 기능을 갖춘 ‘움직이는 조명’이라는 것이 특징. 광안대교의 앵커블록과 트러스 부분에 ‘미디어파사드’를 도입해 다양한 조명을 연출, 디자인의 독창성이 돋보인다는 평가다. ‘미디어 파사드’란 건축물 겉면에 LED 조명을 설치해 조명은 기본이고 문자, 영상 같은 미디어 기능을 구현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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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해양수산부 전재수 장관, 세월호 선체 거치현장 안전관리 상황 점검
-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은 11월 20일(목) 목포 신항만 세월호 거치현장을 방문하여 세월호 선체 안전관리 현황과 희생자 유류품, 선체 절단물 등의 보전?관리 상황을 점검했다. 전 장관은 세월호 선체가 인근 항만배후부지 내 영구 거치장소(가칭 국립세월호생명기억관)로 이전될 때까지 안전하게 관리될 수 있도록 정기적인 점검과 보수?보강을 통한 철저한 관리를 지시하였다. 전 장관은 “선체절단물, 차량 및 유류품 등 국립세월호생명기억관으로 이전 예정인 주요 선체 반출물 관리에 만전을 기해 줄 것”을 당부하며, “무엇보다 현장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수칙 이행에 힘써달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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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해양수산부 전재수 장관, 세월호 선체 거치현장 안전관리 상황 점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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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城市外交”助力中韩友好——邢海明大使会见釜山市长
- [IUNnews Lee gang mon]2月26日,邢海明大使在釜山会见韩国釜山广域市市长朴亨埈。中国驻釜山总领事陈日彪陪同会见。 朴亨埈表示,欢迎邢大使访问釜山,衷心祝贺中国乒乓女团、男团在此次釜山世乒赛上先后夺冠。韩中两国是友好近邻,更是分不开的合作伙伴。两国建交三十余年来交流合作成果丰硕。面对当前复杂的国际地区形势,韩中应继续秉持同舟共济的精神,携手合作共谋发展。釜山和上海是姐妹城市,并同中国多个城市缔结了友好合作关系。釜山市愿积极开展“城市外交”,深化同中方友城的交流往来,就城市建设发展加强互学互鉴,为韩中关系发展和两国友好作出积极贡献。诚挚欢迎中国游客多多到访釜山,感受海滨城市的美丽风情。 邢海明表示,感谢釜山市为此次世乒赛成功举办提供的各项服务保障,为各国观众带来了一场精彩绝伦的世界级乒乓盛宴。中韩建交32年来,两国关系全面快速发展,双方相互成就、共同繁荣,已成为利益高度融合、产供链高度互嵌的合作伙伴。去年底举行的中央外事工作会议明确了推动构建人类命运共同体这一中国外交工作主线,中国将坚持自信自立、开放包容、公道正义、合作共赢,履行负责任大国责任,推动世界走向光明前景。釜山是韩国第二大城市,在韩国国家发展建设中占据重要地位和独特区位优势。中国在韩首家总领事馆就设在釜山,成立30年来为推动两国地方合作往来发挥了积极作用。中国驻韩国大使馆和驻釜山总领事馆愿同釜山市一道,坚守中韩建交初心,积极促进两国经贸、人文等各领域交流合作,助力中韩关系健康稳定发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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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城市外交”助力中韩友好——邢海明大使会见釜山市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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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 어르신 독감백신 3500명분 박언휘 원장 기부
- 사진: 박언휘 원장(대구·박언휘종합내과의원)이 대구노인복지시설협회에 3500명분의 독감백신(1억 5000만원 상당)을 기부했다. [국제연합뉴스 이강문 기자]=지난 20일 대구노인복지시설협회에 따르면 지난 19일 낮 12시 대구 수성구 박언휘종합내과에서 김정헌 대구노인복지시설협회 회장과 노인시설 관계자 등 2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독감 백신 전달식이 열렸다. 총 3,506인분의 백신은 전량 복지재단을 통해 대구경북 어르신들에게 접종된다. 이번에 기부된 백신은 사노피의 박시그리프테트로 코로나 백신 역할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언휘 원장이 대구노인복지시설협회에 3500명분의 독감백신(1억 5000만원 상당)을 기부했다. 지난 2004년 이후 20년째 이어지는 온정의 손길이다. 기부 총액은 20억원을 훌쩍 넘었다. 김정헌 대구노인복지시설협회 회장은 "우리 협회에만 7년간 12억원 넘는 독감백신을 지원해 준 박언휘 원장님께 감사드린다. 어르신들의 안전한 겨울나기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박언휘 원장(대구·박언휘종합내과의원)은 "코로나에다 독감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어 여느 때보다 독감 백신이 중요하다"면서 "지역 어르신들이 건강하게 겨울을 나시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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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 어르신 독감백신 3500명분 박언휘 원장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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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안대교에 최첨단 LED 조명
- 부산의 랜드마크 광안대교가 최첨단 LED(발광다이오드) 조명으로 새롭게 변신한다. 부산광역시는 지난 5일 광안대교 경관조명사업 제안서평가위원회를 열어, 동영기업 컨소시엄의 ‘凞(빛날 희)’ 콘셉트의 ‘희망의 빛, 도약의 빛’을 선정했다. 국내 대기업을 비롯한 10개 업체가 치열한 경합을 벌여, 향토기업인 동영기업 컨소시엄이 1등을 차지한 것. 광안대교 경관조명사업은 국비 56억 등 96억원을 들여, 다음달까지 실시설계를 마치고 공사에 들어가 내년 부산국제영화제(BIFF)와 부산불꽃축제 행사 전까지 준공할 계획이다. 광안대교 새 경관조명 ‘희망의 빛, 도약의 빛’은 정지된 조명이 아닌 미디어 기능을 갖춘 ‘움직이는 조명’이라는 것이 특징. 광안대교의 앵커블록과 트러스 부분에 ‘미디어파사드’를 도입해 다양한 조명을 연출, 디자인의 독창성이 돋보인다는 평가다. ‘미디어 파사드’란 건축물 겉면에 LED 조명을 설치해 조명은 기본이고 문자, 영상 같은 미디어 기능을 구현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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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안대교에 최첨단 LED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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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36) 김정애 ‘몸이 세계를 탄주하는 시간‘
- 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36) 김정애 ‘몸이 세계를 탄주하는 시간‘ 김희자의 '탄주' 김정애/ 문학평론가 소리는 어디에서 시작하여 어디로 건너가는가. 수필 「탄주」는 해금의 선율에서 시작하여 바다의 리듬으로, 다시 몸의 울림과 글쓰기의 운율로 의미를 확장해 나간다. ‘탄주’라는 하나의 동사가 자연과 몸, 언어를 관통하는 중심 은유로 기능하며 작품 전체의 의미망을 정교하게 조직한다. 이러한 구조적 일관성을 통해 미학적 응집력을 획득한 이 작품은, 세계의 파동이 어떻게 내면의 언어로 승화되고 그 언어를 써 내려가는 행위가 어떻게 신체적 연주가 되는지를 다채롭게 증명하는 몸의 현상학이자 미학적 선언이라 할 수 있다. 작품은 달빛 아래 울려 퍼지는 해금의 선율로 문을 연다. 연주자는 해금의 네 줄을 “떡 주무르듯이” 쥐고 손가락으로 음색을 조절한다. 관념이나 기계적 기교가 아닌, 순수한 손의 감각과 신체의 리듬으로 소리를 자아내는 것이다. 메를로퐁티가 말했듯 우리의 몸은 정신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도구가 아니라, 세계를 지각하고 관계를 맺는 주체다. 「탄주」 역시 몸을 단순한 감각기관에 누이지 않는다. 몸은 소리를 받아들이고 자연과 공명하며 마침내 언어를 생성하는 존재의 근원으로 작동한다. 이러한 신체성은 지각을 넘어 끊임없는 내적 변화로 이어진다. 수필학자 권대근이 에릭 프롬의 존재(being)와 소유(having)를 넘어 ‘생성(becoming)’을 강조했듯, 작가의 몸은 고정된 객체가 아니라 세계를 받아들이고 다듬어 내는 생성의 장(場)이다. 작가 김희자에게 해금 소리는 단순한 객관적 악기음에 그치지 않고, “그 소리를 탄주하는 사람의 몸 소리”로 변주되며 주체와 객체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해금과의 신체적 교감은 동해안 몽돌밭의 풍경에 이르러 거대한 우주적 탄주로 확장된다. 오랜 세월 파동에 닳아 동글동글해진 몽돌 위로 바닷물이 지나갈 때, 바다는 자신의 몸으로 몽돌이라는 건반을 두드린다. 그리고 작가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이 글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눈부신 통찰을 끌어올린다. “그때, 내 몸속에도 쓸쓸히 파도치는 건반이 있다는 걸 알았다.” 해금과 달빛, 파도와 몽돌의 이미지는 모두 이 한 문장을 향해 모여들며, 이후의 글쓰기에 대한 성찰 또한 여기서 싹을 틔운다. 외부에서 들려오던 바다의 소리는 작가의 신체 내부로 침투하여 내면의 건반을 두드린다. 소리와 몸이 하나로 포개어지는 순간이다. 바다라는 거대한 자연의 탄주를 받아내어 다시 자신의 언어로 울려내는 일, 작가의 몸은 이제 글을 구상하는 단순한 머리가 아니라 세계의 파동을 받아 울리는 하나의 ‘쓸쓸한 건반’이자 악기 그 자체가 된다. 외부의 소리가 내면의 언어로 이행하는 존재론적 전환점이 마련되는 셈이다. 세계의 파동이 내 몸의 건반을 두드릴 때, 글쓰기는 비로소 시작된다. 작가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몸속의 느낌으로 표현해내는 악보”를 그리는 일이며, “글이라는 건반을 소리 없이 연탄(連彈)하는” 무아지경의 행위다. 이는 니체가 강조한 “몸의 지혜”가 단단하게 빛을 발하는 현장이다. 니체에게 정신이나 의식은 몸이라는 거대한 주체가 사용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몸과 사유를 연결해야” 글로 옮길 수 있다고 고백하는 작가에게 글쓰기의 진정한 주체는 관념적인 머리가 아닌 온몸의 감각이다. 이는 생명의 리듬 속에 자신을 온전히 던지는 니체적 몰입과 온전히 맞닿아 있다. 작가 역시 “몰입의 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경지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도 경험했다”라고 토로한다. 결국 글쓰기란 관념의 조합이 아니라, 온몸을 밀어 올려 사유와 생명을 일치시키는 신체적 사건이다. 봄비 내리는 무심한 밤, 작가는 자신의 짧은 사유를 안타까워하며 하나의 문장을 우주로 만들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그 겸손한 안타까움 뒤에는 “내가 탄주하는 언어가 언젠가는 출렁출렁 가슴에서 울려 나와 세상이라는 바다를 건널 것이라 확신했다”라는 단단하고 묵직한 신뢰의 뿌리가 내려져 있다. 김희자의 문장에는 해금을 주무르는 연주자의 손길처럼, 몽돌을 위무하는 파도처럼, 온몸으로 밀어낸 생명의 숨결과 리듬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수필 「탄주」는 소리에서 파도로, 파도에서 몸으로, 마침내 몸에서 언어로 이행하는 숭고한 선율이다. 이성의 차가운 언어가 아닌, 몸속의 쓸쓸한 건반을 두드려 만든 이 생명력 있는 언어들은 누군가의 가슴속 바다를 향해 출렁출렁 건너갈 것이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읽는 이의 몸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쓸쓸한 건반 하나를 조용히, 그러나 깊게 깨워 울리는 명징한 수작(秀作)으로 남는다. ▮김정애 주요 약력 △부산 출생 △윤리교육학 석사 △문학언어치료학 박사 △‘에세이문예’ 수필 등단(2012), 평론 등단(2013) △(사)부산수필문학협회 회장 △다스림문학동인 회장 △(사)국제PEN한국본부부산지역위원회 수석부회장 △에세이문예 편집1부장 △설총문학상 △민들레수필문학상 △에세이문예문학상 △사유와언어문학상 △문학발전 유공 기념은장 △부산펜문학상 작품상 △한국에세이 작품상 △부산수필문학 작품상 △수필집 ‘내 마음의 엑스레이’, ‘탈춤’, ‘인연’, ‘고슴도치 사랑’ ▮김희자의 <탄주> 푸른 달빛이 무대 위에 흩어져 내린다. 무대 서편에는 초저녁 별이 반짝반짝 빛을 낸다. 애잔하면서도 슬픈 해금의 선율이 달빛 속으로 흐른다. 그 저녁 무렵부터 새벽이 올 때까지. 밤을 지새우고 서서히 밝아오는 새벽의 아름다움을 그린 곡이다. 밤의 몸짓이 달빛의 현을 탄주彈奏하듯 여인은 손으로 음을 주무른다. 오래전부터 내 안에 들리던 소리처럼 은은하게 젖어 든다. 해금 탄주이다. 여인은 왼손으로 해금의 현을 잡고 오른손으로 채를 붙들어 음을 탄다. 왼손으로 음정을 찾고 오른손에 쥔 활대로 줄을 마찰하여 소리를 낸다. 소금쟁이가 물의 현을 지나가듯 그녀의 손가락이 해금의 현을 스쳐 간다. 순간 현이 소리를 자아낸다. 사람의 손으로는 도저히 낼 수 없는, 현의 울림으로 나오는 그윽한 소리이다. 라일락 수줍게 만개한 봄밤에 귀를 열고 나직나직한 가락을 듣는다. 홀로 있는 시간을 위하여……. 해금 연주가 허공에 머무는 어둠을 둥글게 밀어낸다. 문득문득 물방울처럼 떠오르거나 생각난 것들이 이미 오래전 내 안에서 흐르던 것처럼 반짝이며 되살아난다. 달빛 속으로 흐르는 선율이 건조해진 가슴을 눅진하게 녹인다. 홀로 있는 시간이 좋다는 건 이렇게 무언가에 진 중히 빠질 수 있음이다. 깡깡이라고 불리는 해금은 대나무 통이라는 공명통에 두 줄이 걸려 있다. 위쪽 주아에는 약간 굵은 줄인 중현이, 아래쪽 주아에는 중현보다 약간 가는 줄인 유현이 걸려 있다. 이 두 줄은 한 손에 잡히도록 수평으로 입죽에 묶어 놓은 산성이 있을 따름이다. 볼품은 없지만, 음의 폭이 놀라울 정도이다. 여인은 왼손으로 해금의 네 줄을 싸 감아쥐고 떡 주무르듯이 소리를 낸다. 손가락으로 음색을 조절한다. 거칠게 꺾고 구부리면서 섬세한 것들을 아우른다. 해금의 소리는 그 소리를 탄주하는 사람의 몸 소리처럼 들린다. 몸이 느끼는 리듬을 손바닥으로 받아내어 세상으로 소리를 내보낸다. 며칠 전, 동해안에서 파도와 몽돌이 한 몸 되어 내는 소리를 들었다. 비가 막 그치고 햇살이 몽돌 위로 쏟아져 내렸다. 달이 끌어당기는 대로 물은 멀어졌다 다시 돌아왔다. 밀려온 바닷물이 오랜 세월 파도에 닳아 동글동글해진 몽돌을 나직나직 탄주했다. ‘쏴와, 자그락자그락……’ 흑진주 같은 몽돌을 바닷물이 위무하는 소리였다. 몽돌 위로 쓸려나가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내 몸은 전율했다. 비 그친 해안 길을 걸으며 들었던 바다의 탄주는 해금의 선율처럼 깊었다. 그 소리는 사람의 손으로는 도저히 낼 수 없는 바다의 심장 소리였다. 오직 파도의 손으로만 칠 수 있는 저음의 건반이었다. 그때, 내 몸속에도 쓸쓸히 파도치는 건반이 있다는 걸 알았다. 바다가 탄주하는 소리. 그 애절한 탄주를 들으며 내 몸도 날마다 글이라는 건반을 소리 없이 연탄 한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탄주하는 언어가 언젠가는 출렁출렁 가슴에서 울려 나와 세상이라는 바다를 건널 것이라 확신했다. 나는 글을 온몸으로 쓴다. 온몸으로 글을 밀고 나가는 느낌이 없으면 쓰지 못한다. 그만큼 몰입한다는 뜻일 것이다. 글쓰기의 무아지경에 들지 않으면 한 줄도 그려내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만 있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할 때 가장 많이 배운다고 했다. 그럴 때면 시간이 가는 것도 느끼지 못한다. 무언가에 푹 빠져 있을 때는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글에 몰두하다가 끼니를 잊을 때도 있고, 냄비를 새까맣게 태우기도 한다. 커피를 마시다가 식는 줄도 모른다. 몰입하면 잘하게 되고, 잘하게 되면 더 빠져들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좋아서 하는 것으로 글쓰기가 시작되었다. 글에 미쳐서 수년 동안 내 몸을 갉아먹기도 했다. 몰입의 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경지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도 경험했다. 문학의 경지에 이르는 길도 하지 않으면 알 수 없고, 가지 않으면 볼 수 없다. 조금씩 새로운 것을 시도하다 보면 해금을 탄주하는 여인처럼 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늘이 깊어야 향기도 깊어진다는 말처럼 내면에 쌓인 사유의 힘이 요동쳐 글을 무르익게 하리라. 무슨 일이든 일치, 하나가 되어야 깊어진다. 몸과 사유를 연결해야 글로 옮길 수 있다. 그것이 문학의 운율이다. 해금의 선율과 몽돌 위에서 내는 파도 소리 같은 리듬은 살아있는 생명 속에서 탄생한다. 탄주는 오직 몰입하는 시간 속에만 존재한다. 글을 창작할 때 나는 음악을 듣는다. 곡을 작곡하듯 음악을 들으며 창작을 꿈꾼다. 글은 몸속의 느낌으로 표현해내는 악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려내는 글도 음악처럼 리듬이 있어야 한다. 시 같은 운율이 아니라 사람이 호흡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리듬을 만들어야 한다. 현이 울릴 때마다 달빛이 물결친다. 해금 탄주를 들으며 나의 글이 해금의 소리를 닮았으면 좋겠다고 염원한다. 글은 내면의 뿌리에서 피는 꽃이다. 여인이 해금의 소리를 주물러 손바닥으로 반죽해 내듯 나도 내 문장을 맛깔나게 주물러 낼 수 있었으면. 하나 지금의 내 짧은 사유로는 깊디깊은 문장을 주물러 낼 수가 없다. 하나의 문장을 우주로 만들어보고 싶은 열망만 가득할 뿐 서툴기만 하다. 그래서 오늘같이 봄비 내리고 무심한 밤에는 해금 탄주에 귀를 기울인다. 저녁 무렵부터 새벽이 올 때까지…….<작품선집 차경(2026)>. ▮김희자 아호 연당蓮塘.남해 출신. 《수필세계》 등단(2011). 한국방송통신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 대구 범어도서관 수필 강사 역임, 유배문학관 운영위원, 화전도서관 수필 강사, 수필사랑문학회, 남해문학회 회원. 숙소 설흘재雪屹齋 운영 중. 저서: 《등피》 《꽃문이 열릴 때까지》 《바람의 지문》 《터》, 작품 선집 《차경》. 제1회 천강문학상 대상, 목포문학상, 근로자예술제 수필부문 금상 등 전국공모전 다수 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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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36) 김정애 ‘몸이 세계를 탄주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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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김필옥 수필가가 첫 수필집 『마음의 빈터에 빛이 들 때』 펴내다, 평범한 일상의 풍경을 존재와 관계, 그리고 자아에 대한 성찰로 확장
- [지구일보] 김필옥 수필가가 첫 수필집 『마음의 빈터에 빛이 들 때』를 펴내며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오랜 시간 삶의 현장에서 길어 올린 따뜻한 체험과 깊은 사유를 담아낸 이번 수필집은 평범한 일상의 풍경을 존재와 관계, 그리고 자아에 대한 성찰로 확장시키며, 현대 수필의 새로운 미학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필옥의 수필은 익숙한 일상을 단순히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그는 일상의 작은 사건과 감각을 통해 독자가 자신과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도록 이끈다. 평범한 풍경 속에 숨은 존재의 의미를 길어 올리고, 인간관계의 따뜻함 속에 내재한 균열과 화해의 가능성을 함께 드러내며, 상실과 결핍을 통해 자기 인식의 깊이를 확장해 간다. 특히 이번 수필집은 감각 존재형, 관계 연대형, 내면 성찰형이라는 세 층위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하나의 사유 체계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감각에서 출발한 인식은 관계로 확장되고, 관계 속에서 드러난 갈등과 화해는 다시 내면의 성찰로 이어진다. 이러한 순환 구조는 개별 작품들을 하나의 문학적 세계로 묶어내며, 독자에게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삶을 새롭게 해석하는 인식의 경험을 선사한다. 김필옥의 문장은 과장되지 않는다. 담백하고 절제된 언어는 오히려 삶의 진실을 더욱 깊게 드러낸다. 화려한 수사 대신 구체적인 체험을 통해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그 공감은 다시 삶의 본질을 성찰하게 하는 힘으로 이어진다. 그의 수필은 설명보다 체험을, 주장보다 울림을 선택하며, 독자를 수동적인 감상자가 아닌 능동적인 사유자로 이끈다. 문학평론가 권대근 교수는 이번 수필집에 대해 "김필옥의 수필은 현실의 거울이 아니라 현실이 균열되는 순간을 포착하는 문학"이라며 "익숙한 세계를 낯설게 바라보게 하는 그의 문장은 독자의 인식을 흔들고, 읽는 행위 자체를 하나의 철학적 사건으로 전환시킨다"고 평가했다. 이어 "감각의 밀도와 관계의 윤리, 그리고 내면 성찰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이번 수필집은 일상의 언어로 존재의 본질을 탐색한 의미 있는 성과"라고 밝혔다. 경남 창원 출신인 김필옥 수필가는 경남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2016년 계간 『에세이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2022년 제19회 에세이문예작가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현재 한국본격문학가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에세이문예창작대학원 문학평론반에서 꾸준히 문학적 역량을 쌓아왔다. 스스로를 "동화 읽기를 좋아하는 주부"라고 소개하는 그는 순수한 시선으로 사람과 삶을 바라보는 작가다. 소박한 일상에서 발견한 작은 빛을 따뜻한 언어로 길어 올리는 그의 글은 독자의 마음속 빈터에도 조용한 위로와 희망을 심어준다. 첫 수필집 『마음의 빈터에 빛이 들 때』는 삶의 사소한 순간들이 어떻게 존재의 의미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집이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 속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자신과 타인, 그리고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이 책은 깊이 있는 문학성과 따뜻한 인간미를 함께 품은 수작으로 오래도록 독자들의 사랑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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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김필옥 수필가가 첫 수필집 『마음의 빈터에 빛이 들 때』 펴내다, 평범한 일상의 풍경을 존재와 관계, 그리고 자아에 대한 성찰로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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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 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34) 최순덕 ‘흐름의 재해석, 비움과 채움의 미학 ’
- 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34) 최순덕 ‘흐름의 재해석, 비움과 채움의 미학 ’ 오인순 ‘정방폭포, 그 삶의 숨결’ 최순덕 / 수필가, 평론가 기행수필의 핵심은 '선택과 집중'이다. 작가 오인순이 역사기행에서 선택한 정방폭포는 수많은 관광객이 스쳐 지나가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개인의 기억을 넘어 우리 민족사의 깊은 상처를 간직한 애증의 공간이다. 4·3사건으로 두 아들을 잃고 통곡하던 외할머니의 애끓는 한이 소환되는 장소이기에, 작가는 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집중한다. 「정방폭포, 그 삶의 숨결」에서 흐르는 것은 폭포의 물줄기만이 아니다. 고통과 영광이라는 역사의 두 얼굴이 긴 세월을 따라 묵묵히 흐르고, 그 속에는 결코 지워질 수 없는 개인의 눈물 또한 함께 흐른다. 덮거나 지울 수 없는 선조들의 눈물을 기억하고, 그것을 닦아주고 다독여야 할 후손의 책무가 작품 전체를 묵직하게 관통한다. 멈추지 않고 흐르는 물은 소통과 변화, 그리고 희망의 가능성을 상징한다. 이 작품은 짧은 수필이라는 형식 속에서도 깊이를 확보하기 위해 '액자구성법(frame narrative)'을 효과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높은 문학적 성취를 이룬다. 영국 수필의 아버지라 불리는 찰스 램의 ‘액자구성법’은 현재의 이야기 속에 과거의 기억이나 또 다른 경험을 삽입하여 의미를 확장하는 서술 방식이다. 이를 통해 독자는 하나의 시점이 아니라 겹겹의 시간과 시선 속에서 작품의 의미를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정방폭포 앞에 선 작가는 역사기행이라는 현재의 시간에서 4·3사건이라는 과거로 건너가며 시간의 균열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이 균열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다. 잊힌 기억을 현재로 소환하여 삶의 상처와 그리움을 되살리고 인간 존재의 깊이를 드러내는 문학적 장치이다. 조금의 망설임도 허락되지 않은 채 폭포 아래로 뛰어내려야 했던 희생자들의 절박한 시간, 이유도 모른 채 즉결 처형으로 생을 마감한 사람들의 과거와 빼앗긴 미래가 여러 개의 프레임으로 현재의 이야기 속에 삽입된다. 여기에 '침묵으로 뒤척이던 수많은 아픔의 기억'은 억겁의 세월 동안 상처를 삭이며 둥글게 다듬어진 몽돌의 시간과 포개지면서 또 다른 시선을 열어주고, 역사적 상처의 깊이를 더욱 증폭시킨다. 외할머니에 대한 회상 역시 단순한 그리움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또 하나의 프레임이 되어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를 하나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준다. 여러 층위의 시간과 시각을 겹겹이 배치한 구성의 묘미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4·3사건으로 두 아들을 잃고 미친 듯 절규하던 외할머니의 시간은 세월에 닳아 둥글어진 몽돌처럼 삭아가며, 아들이 좋아했던 빙떡을 굽는 일상의 시간으로 전환된다. 이 기억은 다시 정방폭포와 몽돌의 이미지로 치환되면서 4·3이라는 역사적 비극의 의미를 더욱 깊고 절절하게 드러낸다.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여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절규는 인간 보편의 정서에 닿으며 독자의 감응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낸다. 찰스 램의 액자구성법은 현재에서 과거로,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구조 속에서 성찰과 깨달음을 통해 존재 인식의 변화를 완성한다. 이 작품 역시 역사기행이라는 현재의 시간 속에 4·3사건의 기억과 정방폭포, 몽돌, 외할머니의 삶을 차례로 포개어 놓은 뒤 다시 현재로 복귀한다. 그 과정에서 화자는 삶을 짓눌러 온 어두운 그림자를 털어내고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로 거듭난다. 현재와 과거, 미래가 서로 긴밀하게 호응하며 의식의 전환과 인식의 확장을 이루고, 마침내 존재의 재구성이라는 입체적인 성취에 이른다. 이 수필의 문장은 어렵지 않으면서도 몽돌처럼 세월에 다듬어진 단단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뼛속까지 들어찬 아픈 울음을 견디고 참아낸 폭포의 삶이 바닷속 영혼으로 스며든다."라는 결말의 문장은 4·3의 상처를 품고도 끝내 화해의 넓은 바다로 흘러가는 역사의식을 보여준다. 또한 "걸어온 길은 바다에 묻고 걸어갈 길을 바다에 내며 정방폭포의 시원한 언어로 풀어낸다."라는 문장은 작품의 처음과 끝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수미상관을 완성하면서, 아픈 역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려는 미래의 희망으로 독자를 이끈다. 정방폭포의 수직 낙하에 담긴 숙명적 체념과 비움은 몽돌이 품어온 억겁의 시간과 만나 4·3의 눈물로 흘러내리고, 까맣게 타들어 가던 서러운 멍울을 비워낸 자리에는 화해와 상생이라는 새로운 미래가 꽃처럼 피어난다. 이처럼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비움과 채움의 미학은 역사적 기억을 존재론적 성찰로 승화시키며 인식의 지평을 넓혀가는 뛰어난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 ▮최순덕 △2003년 《문예시대》 수필 등단, 2025년 《에세이문예》 평론 등단. △국제PEN한국본부부산지부 부회장, 부산문인협회수필분과 이사, 부산수필문인협회 부회장, 부산여류문인협회 회장 역임, 부산가톨릭문인협회 부회장 역임, 부산수필문학협회 부회장, 에세이문예 편집3부장 △풀꽃수필문학상, 한국해양문학상 우수상, 부산PEN문학 작품상, 부산가톨릭문학 본상, 부산수필문학 작품상, 부산수필문인협회 ‘올해의 작품상’, 제2회 한영문학상, 부산PEN문학상 본상 수상 △수필집 『껍질 벗는 나무』 『사라예보의 붉은 강물』 『잃어버린 도시』 『고등어의 눈물』 『박제된 나비가 내게 말을 걸어올 때』 ❚오인순의 <정방폭포, 그 삶의 숨결> 오수에 빠진 정방폭포 앞바다가 기지개를 켠다. 질퍽한 갯내가 쏟아진다. 바람 없는 굼뉘는 광목 치마를 펼친 듯한 해안선을 따라 일렁일렁한다. 경계가 사라진 수평선 물띠가 허공을 부둥켜안고 대답 없는 고요를 흔들어 댄다. 배롱나무 붉게 피었던 꽃자리의 숨결이 소리를 죽이고 바다로 흐른다. 역사 기행 나들이하던 날, 임철우 소설가 「돌담에 속삭이는」 작품 속 배경 장소인 정방폭포에 머물렀다. 계단 입구 ‘정방폭포 4ㆍ3 학살터’ 안내판이 또렷하다. 잠시 머뭇거리다 발을 멈춘다. 군부대 정보과에서 취조받던 주민 중 즉결 처형 대상자 255명이 무고하게 이 아름다운 해안절벽에서 스러졌다니. 온몸에 얼음 같은 소름이 확 돋는다. 놀란 내 심장이 물고기처럼 팔딱팔딱 뛴다. 코로 역겨운 피비린내가 솔바람 사이로 스며드는 듯하다. 굽이치는 파도 소리에 잊지 못하는 이름들이 너울거린다. 영문조차도 알지 못하고 죽어간 영혼의 끔찍한 장면을 생각하니 가슴이 시려 무너진다. 침묵으로 뒤척이던 수많은 아픈 기억의 흔적들이 몽돌에 내려선다. 몽돌의 문양에서 억겁의 풍화가 느껴진다. 어둠의 심해에서 잠들었던 시간, 유구한 세풍에 뭉개 짓이기며 많은 상처를 안으로 삭인 몽돌. 비릿한 젓갈처럼 절규하던 4ㆍ3 영혼과 절인 세월이 얼마나 깊었을까. 지난 시간의 무늬가 바다 울림소리로 들린다. 그 울림은 바닷속에서 뒤척이며 다 들려주지 못한 숨비소리 같은 애절한 노래이리라. 몽돌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물 밖 세상을 그리워한 생채기가 내 몸에서 털어내지 못한 멍 자국처럼 애처롭다. 잔물결 춤추듯 밀려오는 파도가 몽돌 위에 짜디짠 하얀 물거품을 게워놓는다. 몽돌은 멍든 가슴을 열어놓고 초연한 듯 고요하게 받아들인다. 어찌할까. 몽돌은 서글픈 영령처럼 견디며 살아내야 하는 게 숙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4ㆍ3사태로 두 아들을 잃은 외할머니의 초점을 잃어버린 얼굴이 떠오른다. 어느 날 홀연히 사라져 버린 두 아들. 젖은 맨발로 미친 듯 찾아다니시던 할머니의 애끓는 그 심정이 오죽했을까. 자식도 잃고 고향도 잃어 숨죽이며 “속솜ᄒᆞ라” 통곡하던 그 눈물이 정방폭포에 젖는다. 가슴에 터진 구멍은 무엇으로 메우며 흐르던 눈물은 누가 닦아 주랴. 시절을 원망할 수도 없고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원망할 수도 없었다. 그날을 잊지 않으려고 아들이 좋아하던 빙떡 지지던 할머니가 아픔으로 다가선다. 비단 같은 폭포수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다로 거침없이 떨어진다. 병풍 같은 천상만태의 검은 절벽이 정방폭포를 품으며 칼로 벤 듯 속살을 드러낸 채 침묵으로 서 있다. 수천 년 전 들끓던 마그마 분화구가 솟구쳐 시뻘겋게 요동치던 흔적인 주상절리다. 미끈하게 깎아지른 수직 암벽이 수려하다. 부서지고 찢기면서도 바람으로 말하고 밀려온 하얀 물거품을 받아내며 외롭게 서 있다. 어느 조각가가 저리 거대한 작품을 경이롭게 빚어낼 수 있을까. 주변을 둘러싼 소남머리 풍경까지 어우러지니, 마치 자연이 빚어낸 야외 미술관에 온 듯하다. 폭포는 소남머리 절벽 아래로 따스했던 봄의 시절을 기다리며 역동적으로 쏟아낸다. 해안 절벽 위에 소나무가 많아서일까. 폭포의 물줄기가 붓끝에서 단숨에 내려그은 듯 세차게 귓전을 때린다. 우렁찬 우렛소리 물줄기가 정령들의 통곡하는 울음처럼 강렬하다. 마치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연주하는 듯 심장을 두드리며 전율한다. 가슴 밑바닥에서 풀무의 불씨 같은 동계(動悸)가 서서히 일기 시작한다. 조용한 배경음악이 아니라 운명에 굴복할 수 없는 듯 두려움 없이 토해내고 있다. 깊은 내면을 두드리며 포기할 수 없는 운명과 정면으로 맞서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살이 고통과 슬픔이야 어디인들 없으랴. 정방폭포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바라보노라니 가슴이 먹먹해 온다. 어둠과 절망뿐이었던 소남머리가 푸른 바다를 응시한다. 언젠가 읽었던 기사 내용이 스쳐 지나간다. ‘부모님이 마지막 죽기 전 주먹밥을 건네주던 곳, 소남머리.’ 비애가 차고 넘치는 칭원함이야 어찌 다 말로 다 할 수 있겠는가. 통한의 세월을 폭포에 묻은 채 살아온 날들이 매운 바닷바람처럼 쓰고 아리다. 그토록 긴 세월 동안 물떠러지가 왜 아프지 않았겠는가. 뼛속까지 들어찬 아픈 울음을 견디고 참아낸 폭포의 삶이 바닷속 영혼으로 스며든다. 그래서일까. 비단처럼 고운 물빛이 애련하다. 빗살무늬 번지는 해안선을 걸어가는 무리의 여자들을 본다.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 청색 물감을 풀어놓은 바다를 걷고 있다. 양팔을 벌리고 깔깔거리며 얽어매던 삶의 고통과 어두운 그림자를 털어내고 있다. 딸의 죽음으로 아파하던 어머니의 슬픔을 푸른 바다색으로 희망을 불어넣고자 했던 피카소처럼, 바람을 가르듯 고개를 젖히고 하늘을 보며 걷고 있다. 걸어온 길은 바다에 묻고 걸어갈 길을 바다에 내며 정방폭포의 시원한 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하늘을 태우며 붉게 물드는 까치놀이 수평선에 걸쳐진다. 간물때에도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던 너울에서 할머니의 마음도 읽힌다. 정방폭포는 까맣게 타들어 가던 서러운 멍울도 보듬고 비워내며 물 한 방울조차도 흘리지 않고 바다로 떠나보낸다. 행인들 놀던 자리의 물거품이 꽃처럼 피어나며 등불 켠 밤이 가만가만 드리워진다. 비경의 정방폭포에 서린 아픔을 물줄기 털어내고 나니 소남머리에서 솔바람 향기가 날아든다. <한국산문 2026년 4월호> ❚오인순 △《문학청춘》신인상(2017년), △《에세이문학》추천완료(2020년) △탐라문화제 전국글짓기공모전‘한라상’, △한국해양재단 주최‘해양문학상’은상 수상 △<제주헤럴드>‘화요에세이’, △‘오여사의 수랏간, 그 유혹‘ 필진 △수필집 『서리달에 부르는 노래』,『그날은 빙떡도 웃었다』,공저『흔들리는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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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 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34) 최순덕 ‘흐름의 재해석, 비움과 채움의 미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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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 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33) 김정애 ‘찰나의 정지에서 길어 올린 존재론적 비상'
- 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33) 김정애 ‘찰나의 정지에서 길어 올린 존재론적 비상‘ 홍정현의 '나비의 결심' 김정애/ 문학평론가 홍정현의 수필 「나비의 결심」은 미물의 미세한 몸짓에서 존재론적 진동을 길어 올리는 고도의 정신적 사건을 보여준다. 이 작품의 심층 구조를 관통하는 핵심은 "나는 나비의 생각을 본 것이다"라는 선언적 도약에 있다. 작가는 시적 텍스트(박형준의 시)라는 매개를 통해 6년 전 공원에서 목격한 네발나비의 ‘찰나의 멈춤’을 소환하는데, 이 멈춤은 물리적 정지가 아니라 존재의 내면에서 일어난 격렬한 사유의 소용돌이이자 실존적 결단이다. 이 작품을 입체적이고 신선하게 만드는 매력은 구조적 양식에 있다. 작가는 영국의 수필가 찰스 램(Charles Lamb)이 즐겨 썼던 ‘액자구성(Frame Narrative)’의 묘미를 영리하게 변주한다. 램이 현재의 자아가 과거의 기억이나 환상 속 인물과 내밀하게 대화하며 서사의 깊이를 더했듯, 이 수필 역시 외부 액자인 ‘현재(박형준의 시를 읽는 서재)’가 내부 액자인 ‘과거(6년 전 나비를 목격한 공원)’를 감싸 안는 형태를 취한다. 박형준의 시 속 토끼의 멈춤은 6년 동안 작가의 무의식에 안착해 있던 네발나비의 멈춤을 깨우는 서사적 열쇠(Trigger)가 된다. 외부 액자의 시적 각성은 내부 액자의 기억을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존재론적 사건'으로 변모시킨다. 이러한 중첩 구조는 작품의 서사적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하는 힘이 된다. 이러한 액자의 중심부에서 작동하는 첫 번째 축이 바로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의 ‘지속(Durée)’의 미학이다. 내부 액자 속 나비가 방향을 바꾸기 직전 리모컨의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듯 멈추었던 순간은 불과 몇 초에 지나지 않는 ‘시계의 시간(물리적 시간)’이다. 그러나 작가에게 이 시간은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포마다 생생하게 살아 숨 쉬며 본질을 확장해 가는 ‘내적 지속의 시간’이다. 베르그송은 대상을 외부에서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내부로 들어가 그 유일무이한 생명력과 동화되는 것을 ‘직관’이라 불렀다. 작가는 나비의 외형적 궤적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관을 통해 나비의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 그 짧은 머뭇거림 속에 응축된 생의 무게를 함께 짊어진다. “나는 나비의 생각을 보았다.” 이 문장은 작품 전체를 여는 열쇠다. 방향을 잃고 머뭇거리는 시간, 계속 나아갈 것인지 되돌아설 것인지 결정되지 않은 순간, 존재는 이미 생각의 형식 속에 들어간다. 하강은 욕망이고, 정지는 사유이며, 상승은 결심이다. 이 지점에서 작품은 존재론적 비유를 구축한다.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에 의하면 상승은 단순히 물리적 위치의 이동이 아니라, 영혼이 물질적 한계를 극복하려는 초월적 의지다. 쓰레기와 나비라는 불협화음의 공간 속에서, 나비는 중력에 순응하는 낙하를 거부하고 제 힘으로 상승을 선택한다. 이 ‘어려운 결심’의 정경은 독자에게 짜릿한 존재론적 해방감과 깊은 정화의 체험을 안겨준다. 이러한 초월이 개인의 독백으로 끝나지 않고 보편적 울림을 획득하는 배경에는 아담 스미스(Adam Smith)의 ‘동감(Sympathy)’ 이론을 빌릴 수 있다. 스미스는 인간이 상상력을 통해 타인의 처지 속으로 들어가 그의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고 보았다. 작가의 시선은 아기의 아장아장 걷는 걸음(인간의 세계)에서 시작해 네발나비의 낙하(자연의 세계)로 이동하고, 마침내 외부 액자로 돌아와 ‘망설임’과 ‘외로움’이라는 실존적 감정에서 나비와 완벽하게 합치된다. “걸어온 길에서 문득 멈춰 망설일 수밖에 없는 순간“의 외로움을 나비에게서 읽어내는 동감 능력을 통해, 나비는 단순한 곤충이 아니라 인생의 기로에서 고독한 결단을 내려야하는 인간 주체의 은유로 격상된다. 결국 홍정현의 「나비의 결심」은 인간 중심적인 지각의 틀을 깨고, 세계의 미세한 틈새에 깃든 존재들의 사유를 포착해 낸 수작이다. 작가는 찰스 램 식의 유연한 액자 구조 속에서 나비의 찰나적 망설임을 내면의 지속으로 붙잡아 두고, 하강의 현실을 상승의 결심으로 돌려세우는 존재론적 구성을 정교하게 완성해냈다. 이 수필이 남기는 깊은 진동은 나비의 날갯짓 속에서 자신의 외로운 발걸음을 발견하는 순간 우리 모두가 함께 비상하게 되는 실존적 공명이다. ▮김정애 주요 약력 △부산 출생 △윤리교육학 석사 △문학언어치료학 박사 △‘에세이문예’ 수필 등단(2012), 평론 등단(2013) △(사)부산수필문학협회 회장 △다스림 강학회 회장 △(사)국제PEN한국본부부산지역위원회 수석부회장 △에세이문예 편집1부장 △설총문학상 △민들레수필문학상 △에세이문예문학상 △사유와언어문학상 △문학발전 유공 기념은장 △부산펜문학상 작품상 △한국에세이 작품상 △부산수필문학 작품상 △수필집 ‘내 마음의 엑스레이’, ‘탈춤’, ‘인연’, ‘고슴도치 사랑’ ▮홍정현의 「나비의 결심」 박형준의 시 〈토끼의 서성거림에 대하여〉을 읽다 불현듯 공원의 나비가 떠올랐다. 뛰다가 멈춘다 토끼는 몇 걸음 걷다가/ 고개를 제 발등을 향해 숙이고 한참을 멈추어 있다/ 저런 걸 생각이라고 하나/ 산책로에 나와서까지 뛰어야 하는/ 나 같은 사람도 그 순간 토끼처럼 생각이란 걸 하게 된다 그날의 나비는 쓰레기통을 향해 빠르게 내려가고 있었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가을 공원에는 소풍을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쓰레기통 바로 옆에도 한 가족이 돗자리 위에 도시락을 한가득 펼쳐놓고 아장아장 걷고 있는 아기를 보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아기의 걸음을 따라가던 내 눈길에 걸린 나비의 모습이 이상했다. 살아 움직이는 것의 낙하는 그게 무엇이든 가슴을 쓸어내리며 보게 된다. 물론 나비는 날개가 있으니 괜찮겠지만 새도 아니고 벌도 아닌 나비의 낙하라니. 새나 벌의 날쌘 비행과 방향 변화는 익숙하지만, 나비는 아니지 않은가. 꽃잎처럼 여린 날개로 살랑살랑 유영하는 모습은 ‘속도’라든지 ‘급회전’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나비의 날갯짓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시인의 마음을 움직였던가. ‘때로 아아 오오 우우 그런 비명들이 짊어진 세계여/ 때로 아련함이여’ 허수경의 시 〈저 나비〉라든가, ‘먼지처럼 가볍고/ 물방울처럼 애틋해/ 비로소 몸이 영혼 같아’라고 말하는 김선우의 〈나비 한 마리로 앉아〉 등. 시는 나비의 가벼운 몸짓이 결코 가볍지 않은 생을 안고 있다고 말한다. 공원의 나비도 그랬으리라. 얇은 날개의 움직임 속에 어떤 은유의 무게가 담겨 있는 듯했다. 쓰레기통을 향해 추락하듯이 내려가던 나비는 네발나비였다. 네발나비는 철제 쓰레기통의 녹슨 부분처럼 탁한 갈색 날개를 나풀거리고 있었다. 분명 쓰레기통 안에는 나비의 먹이가 될 만한 것이 있었을 거다. 마시다 만 음료수 같은 것들. 아, 쓰레기와 나비라…. 두 단어가 내 안에서 버석거리고 있던 그때, 급하게 하강하던 나비가 돌연 제 자리에서 멈칫거렸다. 리모컨의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모든 것이 정지했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나비는 갑자기 방향을 바꿔 팔랑팔랑 위로 올라가더니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6년 전 일인데도 생생하다. 기억 속 시간은 절대성을 상실해 나비가 그린 궤적에서 정지의 순간만 길어졌다. 거기에 나는 머물고 있었다. 그날의 나비가 내 기억에 안착해 때때로 나를 건드렸던 건 왜일까? 그 질문을 마음 한편에 두고 지냈다. 그러다 박형준 시를 읽고 깨달았다. 그건 ‘생각’이었다고. 시인이 토끼의 멈춤을 ‘생각’이라고 했듯이 그날 나는 공원 벤치에 앉아 나비의 ‘생각’을 보았다고. 성충으로 긴 겨울을 견뎌야 하는 네발나비는 늦가을의 만찬을 꿈꾸며 아래로 아래로 하강하다 쓰레기통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망설였다. 공중에 있는 나비의 망설임은 토끼나 사람처럼 오래 끌 수 없었다, 길게 멈출 수가 없었다. 찰나의 머뭇거림 끝에 나비는 다시 날아올랐다. 중력에 거슬러 올라가는 건 분명 내려가는 것보다 더 어려울 터. 애잔한 날개를 한 번 퍼덕거리고 또 퍼덕거려 하늘로 비상했다. 그 어려운 결심의 정경, 나는 나비의 생각을 본 것이다. 걸어온 길에서 문뜩 멈춰 망설일 수밖에 없는 순간. ‘계속 갈 것인가 아니면 뒤로 돌아갈 것인가’의 결정은 오직 혼자만이 할 수 있다. 멈춘 발걸음의 외로움. 그 아득한 순간이 그날 나비에게도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내 마음이 닿았다. <에세이문학 2025년 여름호> ▮홍정현 《한국산문》 2013년 등단. 《한국산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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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 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33) 김정애 ‘찰나의 정지에서 길어 올린 존재론적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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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32) 송명화 ‘결핍의 재해석, 공존의 발견’
- 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32)송명화‘결핍의 재해석,공존의 발견’ 박서정의 ‘충영’ 울산문학 26년 봄호 송명화/ 문학평론가 <충영>은 코털과 충영이라는 일상적이고 비문학적으로 보이는 소재를 통해 삶의 의미를 탐색한다. 치밀한 관찰력과 상상력, 깊이 있는 사유가 조화를 이루며, 우연한 발견을 존재론적 성찰로 승화시킨 성취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수필은 짧은 산문으로서 발견의 문학, 성찰의 문학, 공존의 문학이라는 지향점을 가진다. 이에 걸맞게 이 작품은 개인적 체험을 생태적 공존에 대한 성찰로 확장시키고 있다. 코털, 코감기, 충영 등 매우 사소하고 평범한 소재에서 출발하여 존재의 이유, 결핍과 충만, 공존과 관계성이라는 보편적 삶의 의미를 이끌어내었다. 작가는 나뭇잎을 자신의 몸 일부를 내어주어 다른 생명을 품는 존재, 달리 말해 타자를 수용하고 책임지는 존재로 본다. 충영을 나무가 벌레의 종족 번식을 위해 자신의 몸 일부를 제공해 주는 것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잎이 자신을 갉아 먹을 벌레의 산란까지도 품는 현상을 “의미 있는 생산적인 일”로 해석한다. 그런데 방어의 증표로 잎이 몸의 일부를 제공했다거나 잎에 털이 적어서 충영이 생기기 쉬웠다고 보는 입장은 생물학적인 면에서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이에 작가는 빈약한 코털로 인한 빈번한 코감기라는 자신의 체험을 소환하여 충영을 대비시킴으로써 자신이 의도하는 방향, 즉 공존이라는 큰 가치를 내세우는 데 성공하고 있다. 이러한 비약은 치밀한 경험의 축적과 자연스러운 사유의 전개를 통해 문학적 설득력을 획득한다. 마침내 잎은 고통을 감수하는 존재로 새롭게 의미화되며, 이는 ‘타자를 위한 자리를 내어줌’이라는 점에서 레비나스의 윤리학과 접점을 갖는다. 이 작품의 문장은 쉬우면서도 수필 특유의 서정적 정서가 살아 있다. “물소리를 들으니 그것이 씻겨 내려간 듯 시원했다” “잎들이 서로 맞닿으며 잔잔한 시니피앙을 빚어냈다” “낙엽이 되어서도 자랑스러운 훈장을 단 것처럼” 등의 표현은 산문에 시적 울림을 부여한다. 작은 보폭으로 관찰과 사유를 쌓아 올리는 차분한 진행은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얼마나 치밀한지를 드러내며, 절제된 문체는 작가가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와 사유의 방식을 문장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한다. 코털이 빈약한 신체적 결핍에서 출발한 사유는 충영을 통해 결핍과 취약함이 오히려 다른 생명을 품고 관계를 형성하는 조건이 될 수 있음을 발견하는 데 이른다. 결핍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한 작가의 시선은 제재와 어우러진 꾸밈없는 소박한 문장 속에서 더욱 빛난다. 작가는 충영을 품은 나뭇잎의 고단함에 주목한다. 거기서 가파른 벼랑을 몇 번이나 오르내려야 하는 우리네 고된 삶을 보는 것은 존재의 아픔을 감싸는 동류의식의 발로다. 이는 ‘충영의 유무와 수에 따라 인생의 무게들이 깊게 얕게 얹혔다’는 핵심 주제문장에 응축되어 독자의 심금을 울린다. 또한 “나뭇잎이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지 머리 가까이에서 하늘거렸다”에서 나뭇잎이 빚은 시니피앙을 해독하는 것은 작가의 역할이었다. 결국 작가는 ‘나뭇잎이 말하고 싶었던 것’을 충영이라는 존재를 통해 읽어낸다. 식물의 따뜻한 희생과 벌레의 안전한 기생이 생태계를 이어나가는 진리임을 찾아내고 이를 나뭇잎의 훈장으로 치환한것이다. 바위가 위로를 건네고, 나뭇잎이 말을 걸며, 충영이 삶의 의미를 품은 존재로 읽히는 것은 작가가 자연을 인간의 해석 대상이 아니라 함께 의미를 생성하는 생명의 동반자로 바라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수필 <충영>은 코털이라는 사소한 신체 경험을 충영이라는 자연 현상과 연결하여 결핍과 관계, 상호의존이라는 존재의 조건을 성찰하게 하는 작품이다. 일상의 체험을 생명의 관계성에 대한 철학으로 확장시키며, 작은 발견에서 큰 성찰을 길어 올리는 수필의 미학을유감없이 보여준다. 한마디로결핍을 생명의 본질적 조건으로 새롭게 해석한 이 작품은 평범한 일상을 존재론적 사유의 장으로 전환해낸 명수필이라고 하겠다. ■송명화 주요 약력 △수필가, 문학평론가, 문학언어치료학 박사 △경남 남해 출신 △전남일보 신춘문예 수필(2005) △에세이문예 문학평론(2010) △제8대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회장, 초대 한국본격수필비평가협회 회장 △한국도서비평가협회 부회장, 계간 [에세이문예] 주간, 사)부산광역시문인협회 부이사장, 부산교대 평생교육원 문예창작반 지도교수 △수필집 <순장소녀>(세종도서), <꽃은 소리 내어 웃지 않는다>(문학나눔), <나무의 응시 풀의 주름>(아르코창작기금) 등 6권 △이론서 <본격수필 창작이론과 적용> △김만중문학상(수필), 우하박문하문학상(평론), 한국에세이평론상(평론), 평사리문학대상(수필), 신격호샤롯데문학상 대상(수필) 등 수상 충영 박서정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이유 없는 것이 없다는 것을 더욱 실감하는 요즘이다. 코안에 있는 털 한 올까지도 그렇다. 나는 코감기에 자주 걸리는 편이다. 의사는 그곳을 들여다보고 병에 걸리기 쉽게 생겼다고 했다. 이유를 물으려다 얼마 전 거울을 통해 본 콧속이 생각나 스스로 답을 내렸다. 코털이 빈약해서일 것이라고. 며칠 전에는 또 코 밖으로 삐죽 나온 털까지 뽑았으니, 허점을 노린 세균이 재빨리 침범해 붓고 염증도 생겼을 것이라는 추측이 된다. 봄이 익어갈 무렵 코감기에 걸린 채 지인 몇 명과 인근 계곡으로 갔다. 물이 한들한들 흘러가는 그곳에는 우리가 다리 뻗고 쉴 수 있는 넓적 바위가 있었다. 여기에 도착하기 전 차선 변경을 하다 뒤차가 경적을 크게 울려 멈칫 놀랐었는데 이제야 후유증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안전거리를 유지하지 않은 채 급히 이동하던 우리의 잘못이 컸지만, 성난 기계음으로 세차게 협박을 받아, 식도에 음식이 걸린 듯했었다. 이곳에서 걸림돌 없이 순조롭게 흘러가는 물소리를 들으니, 그것이 씻겨 내려간 듯 시원했다. 일행과 물 흐름을 더욱 느끼고 싶어 바위에 귀를 대고 모두 누웠다. 차가운 느낌의 바위가 먼저 느껴졌지만, 그런 자세로 물소리를 들으니 더욱 자연과의 내밀한 소통을 하는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세상사에 지친 마음을 바위에 풀어놓으니, 그게 바로 삶이라고 딱딱하면서도 단단한 말로 위로해 주었다. 엎드려 있던 자세에서 다시 바로 누웠다. 참 오랜만에 마주 대하는 하늘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림 속에서 사진 속에서 자주 만났던 구름은 흩어져 있기도 하고 뭉쳐 있기도 했다. 우리는 그동안 각자 자신의 삶터를 지키다 이번에 저 구름처럼 뭉치게 되었다. 누우니 좋다는 지인은 더 누워 있겠다고 했다. 바위에 다시 앉은 나는 지인의 코안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거기에는 무성한 까만 털이 가득했다. 먼지 한 톨도 점막에 닿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빈틈없는 방어막처럼 보였다. 순간 코안의 털조차도 사람마다 다름을 알고 또 다른 세계를 만난 기분이었다. 나에게 부족한 게 상대에게 있고 상대에게 부족한 게 나에게 있다는 것을 다시 인지했다. 머리털이 많은 나를 지인은 늘 부러워했는데 지금은 그녀의 치밀한 코털로 인해 상황이 역전되고 있었다. 지인은 빽빽한 털 덕분인지 코감기에 잘 걸리지 않는다고 했다. 안이 헐빈한 나는 비포장도로를 지날 때면 코를 막는다. 청소기를 돌릴 때면 미세먼지가 들어갈까 봐 마스크로 방어한다. 하지만 마스크가 귀찮을 땐 숨을 참아가면서 힘들게 청소를 끝내기도 한다. 먼지로 인해 점막 보호를 위한 재채기가 곧바로 나온다. 털이 많은 사람에 비해 나의 재채기 반응은 빠른 편이다. 계곡 주변으로 나무들이 우거져 있다. 햇살을 피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거기 아래에 바짝 앉았다. 나뭇잎이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지 머리 가까이에서 하늘거렸다. 잎들이 서로 맞닿으며 잔잔한 시니피앙을 빚어냈다. 잠시 눈을 감고 음미하다 다시 눈을 뜨고 나뭇잎을 바라봤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잎에 툭툭 불거진 혹들이 보였다. 그것은 충영蟲癭이었다. 평소에는 녹색의 나뭇잎에 봉긋봉긋하게 돋아난 것을 보고 잎에도 열매가 달리나 하고 의아해했는데 그것이 나뭇잎을 살려내기 위한 방어의 증표라니 아이러니했다. 식물체에 곤충이나 진드기가 산란 기생하여 그 결과로 이상 발육된 것을 벌레혹이라고도 한다. 생물의 종족 번식을 위해 자신의 몸 일부를 제공해 주는 나무의 마음이 크게 다가왔다. 세균에게 자리를 내준 콧속이나 곤충과 진드기를 위해 터전을 마련해준 나뭇잎은 같은 듯하면서 분명 다른 점이 있었다. 어떤 나뭇잎에는 충영이 다섯 개도 있었고 더 많게도 있었다. 나뭇잎이 벌레에게 자신의 몸 일부를 빌려주는 게 자연의 섭리이겠지만 식물에 대해 알면 알수록 신비롭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마다 이 세상에 남기는 흔적이 다르듯 나뭇잎 또한 그랬다. 모든 잎에 충영이 있는 건 아니었다. 곤충에 의해 선택이 된 것에만 수를 달리하면서 부풀어 있었다. 한 잎에 유난히 많은 충영으로 인해 그 잎의 고단함이 짐작되었다. 가파른 벼랑을 몇 번이나 오르내려야 하는 우리네 고된 삶을 보는 듯해 마음이 쓰였다. 충영의 유무와 수에 따라 인생의 무게들이 깊게 얕게 얹혔다. 코털 같은 털이 나뭇잎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면 빈틈을 찾지 못한 곤충들은 산란을 할 수가 없다. 잎이 매끈하고 평평하기에 알을 낳고 기생을 한다. 털이 빈약해 이물질 침범이 잘 되는 나의 코가 이 나뭇잎과 비슷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뭇잎에는 털이 없어 벌레의 산란 장소로 적합하고 나에게는 코털이 적어 세균의 침입이 쉽다. 나뭇잎의 장점으로 벌레들의 서식처가 되고, 내 콧속의 단점으로 세균이 자란다. 이렇게 보면 서로의 장점과 단점은 결과적으로 닮은꼴이 된다. 다른 게 있다면 나뭇잎은 의미 있는 일, 다른 생명을 키워내는 생산적인 일을 한다는 거다. 혹이 돋아난 잎과 멀쩡한 잎은 차원이 다르다. 무거운 등짐을 진 채 한 생을 살아냈는지 오롯이 자신만을 위해 가뿐한 삶을 살아냈는지, 눈으로 바로 파악이 된다. 생태계에 유익한 일조를 하고, 갈 때가 되어 홀연히 떠나는 나뭇잎들은 얼마나 위풍당당할까. 뭔가를 이루어냈다는 성취감으로 인해 뒷모습까지도 의기양양할 것 같다. 끝까지 소임을 다하고 낙엽이 되어서도 자랑스러운 훈장을 단 것처럼 떳떳한 모습을 잃지 않을 것이다. 너럭바위에서 충영이 있는 나뭇잎을 살짝 매만진다. 푸른 충영은 가을이 되면 언제나 그렇듯 또 갈색으로 변할 것이다. 충영에는 식물의 따듯한 희생과 벌레의 안전한 기생이 함께 공존한다. 답답한 나의 콧속과 달리 혹 안에서의 호흡은 걸림돌 없이 평화롭다. ▮박서정 주요 약력 △ 2007년 《문학세계》 수필, 2024년 《월간문학》 소설 등단 △ 시흥문학상, 백교문학상, 함월문학상 수상 △ 한국문인협회, 울산문인협회, 울산수필가협회, 울산중구문학회 회원△ 수필집 <숨긴 말을 해> <격상> <통하니 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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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32) 송명화 ‘결핍의 재해석, 공존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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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 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30), 최순덕 ‘오방색의 이미지를 통한 눈물의 미학’
- 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 (30) 최순덕 ‘오방색의 이미지를 통한 눈물의 미학’ 최남미 ‘색色; 65일간의 기록’ 최순덕 / 수필가, 평론가 눈물의 색은 무슨 색일까. 최남미 작가는 수필 「색; 65일간의 기록」에서 말기 암 판정을 받은 어머니의 사그라지는 생명의 불꽃을 지켜보며, 끝내 쏟아내지 못한 눈물을 다섯 가지 색으로 그려낸다. 작가의 눈물은 곧 오방색이다. 그는 슬픔을 직접 진술하기보다 색채라는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형상화함으로써 독자의 정서를 환기하고 내면에 새로운 경험을 형성한다. 그 결과 독자는 단순한 공감을 넘어 깊은 미적 울림을 체험하게 된다. 이는 좋은 문학이 사건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미지를 통해 독자의 내면에서 새롭게 탄생한다는 가스통 바슐라르의 상상력 이론과도 맞닿아 있다. 수필은 인식과 형상의 복합체다. 경험과 사유가 표현의 대상이라면, 그것을 배열하고 형상화하는 과정이 곧 구성이다. 최남미의 「색; 65일간의 기록」은 투병과 사별의 시간을 검을 현(玄), 붉을 주(朱), 누를 황(黃), 푸를 청(靑), 흰 백(白)의 오방색으로 풀어낸 구성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만약 이 글이 하루하루의 사실만 기록한 글이었다면 단순한 간병기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어머니의 혼령이 부디 좋은 곳으로 춤추듯 떠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음양오행의 오방색을 의도적으로 작품 구조에 접목하였다. 이를 통해 미학성과 철학성을 동시에 확보하며 문학적 깊이를 더한다. 어머니의 투병과 죽음이라는 무거운 제재를 치밀하게 성찰하고 충분히 숙성시킨 끝에, 작가는 오방색이라는 전통적 색채 체계를 통해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였다. 이러한 구성은 메타수필적 성격을 띠며 독자의 감동을 효과적으로 견인한다. 문학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어떻게 형상화하느냐에 있다. 상상력은 현실을 벗어나는 능력이 아니라 현실을 더욱 깊이 경험하게 하는 힘이다. 문학은 상상력을 통해 세계를 새롭게 드러내고, 독자는 그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과 존재를 확장한다. 최남미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한 생명이 서서히 꺼져가는 과정을 색채 이미지로 형상화함으로써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작품의 첫 문장인 "말갛기만 하던 하늘에 먹구름이 드리우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에서 '먹구름'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발병으로 가족에게 드리운 불안과 절망의 상징이다. 검은색의 시각적 이미지는 무거운 슬픔의 정조를 형성하며 독자를 작품의 정서 속으로 끌어들인다. 베르그송의 지속(durée) 개념에 비추어 보면, 문장의 의미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의미는 앞뒤 문맥과 독서의 시간 속에서 점차 확장되고 심화된다. 따라서 뒤이어 제시되는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라는 문장에서 '비'는 단순한 비가 아니라 어머니와 가족의 눈물로 읽힌다. 동시에 평온했던 일상을 무너뜨리고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거대한 변화를 암시하는 징후로도 작용한다. 독자는 이 이미지를 통해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비극을 예감하며 작품 속 시간의 흐름을 함께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비의 이미지는 이후 몸속에서 번져가는 암세포의 형상과 겹쳐진다. 검게 번져가는 병마의 기운은 참깨가 썩어가며 검은 자국을 넓혀가는 모습으로 전이되며, 검은색의 이미지를 더욱 심화시킨다. 또한 "잉걸불처럼 타오르는 열정", "붉은 울음을 토했다"와 같은 표현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가족을 위해 가을걷이와 월동 준비를 서두르는 어머니의 모성과 사랑을 상징한다. 꺼져가는 생명의 불꽃 속에서도 끝까지 타오르는 의지를 붉은색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이어지는 "누렇게 뜬 얼굴과 귤", "청색으로 변한 손발톱과 파랗게 질린 얼굴" 등의 표현은 색채의 대비를 통해 육체적 고통과 정서적 비애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러한 색채 이미지는 독자로 하여금 단순히 이해하는 차원을 넘어 감각적으로 체험하게 만드는 힘을 지닌다. 작품의 마지막 문장인 "허망하게 떠난 엄마를 품어주려고 하얀 눈이 사락사락 내리나 보다."는 특히 인상적이다. 이 문장은 떠나는 어머니를 향한 딸의 간절한 기도이자 남겨진 자의 사랑을 담고 있다. 작품은 검은색으로 시작하여 흰색으로 끝난다. 죽음의 어둠으로 시작된 이야기가 마침내 정화와 위안의 흰빛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65일 동안 어머니의 마지막을 지켜보며 함께 눈물의 강을 건너온 시간은 결국 희망과 화해의 색으로 승화된다. 베르그송이 말한 지속과 의식의 흐름이 오방색의 이미지 속에서 자연스럽게 구현되며, 독자는 그 흐름을 따라 슬픔과 사랑, 상실과 위안의 과정을 함께 경험하게 된다. 최남미의 「색; 65일간의 기록」은 어머니의 투병과 죽음에 이르는 시간을 오방색이라는 상징 체계로 치밀하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색채 이미지를 통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정서적 공감을 이끌어냄으로써, 수필이 도달할 수 있는 문학적 성취를 보여준 수작이라 할 만하다. ▮최순덕 △2003년 《문예시대》 수필 등단, 2025년 《에세이문예》 평론 등단. △국제PEN한국본부부산지부 부회장, 부산문인협회수필분과 이사, 부산수필문인협회 부회장, 부산여류문인협회 회장 역임, 부산가톨릭문인협회 부회장 역임, 부산수필문학협회 부회장, 에세이문예 편집3부장 △풀꽃수필문학상, 한국해양문학상 우수상, 부산PEN문학 작품상, 부산가톨릭문학 본상, 부산수필문학 작품상, 부산수필문인협회 ‘올해의 작품상’, 제2회 한영문학상, 부산PEN문학상 본상 수상 △수필집 『껍질 벗는 나무』 『사라예보의 붉은 강물』 『잃어버린 도시』 『고등어의 눈물』 『박제된 나비가 내게 말을 걸어올 때』 ▮최남미의 <색(色): 65일간의 기록> 1. 玄 말갛기만 하던 하늘에 먹구름이 드리우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는 지독했던 가뭄의 흔적을 씻어내려는 듯 종일토록 내렸다. 사람이 쓸 물도 부족한데 농작물에 물을 주면 어떻게 하냐며 지청구를 하는 사람들 눈을 피해 가면서 애면글면 돌보던 엄마의 텃밭에도 빗물이 스며들어 질퍽해졌다. “비가 너무 많이 내리면 안 되는데….” 엄마는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시시각각 기억을 잃어가는 아버지를 돌보느라 검불처럼 말라가면서도, 피붙이들에게 나눠줄 먹거리를 가꾸느라 텃밭에서 살았던 엄마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입원했다. 병실에 갇힌 엄마는 병명에 대한 궁금증은 미뤄둔 채 들깨밭에만 마음을 쏟았다. 수확을 앞둔 깨가 썩어버릴까 봐 걱정하던 엄마는 집에 가게 해달라고 노래를 불렀다. 보름 만에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들깨밭부터 둘러보았다. 뙤약볕 아래에서 여덟 번이나 김을 매고 물을 주면서 돌보았던 들깨는 때아닌 가을장마에 썩어가고 있었다. 엄마 몸 안에서 자라고 있는 암세포처럼 그렇게 검은색을 띠며 자리를 넓히는 중이었다. 2. 朱 식욕촉진제, 진통제, 소독제, 거즈, 마약성 패치 등 퇴원 길에 한 보따리 챙겨온 약도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진통을 잡아주지 못했다. 그래서였을까? 엄마는 겨울맞이 준비를 서두르기 시작했다. 사위에게 들깨를 꺾어서 비닐하우스 안에 들여놓게 하고, 말려놓은 고추를 빻으러 방앗간을 다녀왔다. 집에 들른 아들과 딸에게는 들깨 타작을 시켰다. 털어놓은 깨는 병문안을 온 시누이의 손을 빌려서 키질을 해놓았다. 들깨를 거두어들이고 나자 엄마는 김장을 서둘렀다. 배추 한 포기를 들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지만, 김장을 진두지휘하는 엄마는 열정으로 붉게 타올랐다. 하지만 잉걸불처럼 타오르는 열정과는 달리, 기력을 다한 엄마의 몸은 재티를 날리며 사그라드는 불처럼 맥없이 스러지고 있었다. 진통이 심하여 좋아하던 음식도 두 숟가락 이상 먹는 것을 힘들어하였고, 진통은 점점 심해져만 갔다. 암세포가 자라고 있는 부위는 물론 발까지 붓기 시작했고, 걸음이 더뎌지면서 화장실 문을 열기도 전에 배변을 보기도 했다. 별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깔끔했던 엄마는 딸의 손을 빌려서 뒤처리를 하는 내내 붉은 울음을 토했다. 3. 黃 호스피스 병원인 갈바리의원에서 빈자리가 났다며 입원 의사를 물어왔다. 입원 신청한 지 열흘만이었다. 엄마는 과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입안이 마르는 일이 잦자 귤을 수시로 찾았으므로 입원 가방에 귤도 몇 개 챙겨 넣었다. 갈바리의원은 말기 암 환자만 받는다. 그래서인지 환자들 모두 대소변을 받아냈지만, 엄마는 극구 화장실을 이용했다. 그런데 화장실을 한 번 다녀올 때마다 체력 소모가 엄청났으며, 급기야 먹은 것을 모두 올리더니 탈진 상태가 되었다. 금식 처방이 내려졌고, 기저귀를 사용해야만 했다. 진통제를 투여하는 시간 간격이 점점 좁혀졌으며,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의식이 흐려졌다. 입을 다물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엄마는 한 시간 간격으로 물을 달라고 했다. 물에 적신 거즈로 입 주위를 닦아줘도 별 소용이 없었다. “나를 귤 하나만 줘요.” 갈증을 견디다 못한 엄마는 귤을 달라고 외쳤다. 간절한 외침이었으나 물 이외에 아무것도 주면 안 된다는 의사 선생님 말씀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혀가 안으로 말린 채 신음하는 엄마 얼굴이 누렇게 떴다. 4. 靑 눈을 뜨지도 못한 채 신음하는 엄마의 손과 발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엄마의 배도 더욱더 딴딴해졌다. 바스러질 것처럼 바싹 마른 엄마의 몸속 곳곳으로 암세포가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손톱과 발톱, 그리고 부풀어 오른 손발은 청색을 띠기 시작했다. 엄마 상태를 체크 하던 간호사 선생님이 작별인사를 나눌 사람들한테 연락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파랗게 질린 자식들과 손주들이 속속 도착해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의식이 선명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고맙습니다”를 입에 달고 지내던 엄마를 닮은 피붙이들이 엄마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수녀님은 거친 숨을 몰아쉬는 엄마를 위해 기도를 올려주었다. 호흡이 불규칙해지자 간호사들도 수시로 들어와서 산소포화도를 측정하였다. 2025년 11월 30일 새벽 2시, 내가 일을 마친 지 십 여분 만에 엄마는 숨을 거두었다. 의식이 없는 중에도 딸이 하는 일에 지장을 주지 않으려고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일감을 치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거짓말처럼 눈을 감았다. 5. 白 엄마 장례식 날은 포근했다. 엄마는 석 달 전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 곁에 묻혔다. 삼우제 날은 칼바람이 사정없이 몰아쳤다. 바람이 된 엄마가 그만 슬퍼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라고 등이라도 떠미는 걸까? 정을 떼려고 야멸차게 몰아치는 걸까?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맵다. 바람의 길을 좇아 대관령을 바라보았다. 엄마의 유년 시절 추억이 어린 그곳이 뿌옇다. 눈이라도 내리는 걸까?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고 손을 써보지도 못한 채 허망하게 떠난 엄마를 품어주려고 하얀 눈이 사락사락 내리나 보다. <한국산문 2026년 5월호> ▮최남미 △『한국문인』 수필 등단(2003) △『수필문학』 평론 등단(2022) △문학박사(건국대학교 문학‧예술치료학과 졸업) △現 가톨릭관동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강사, 디딤돌 인문학 강사 한국문인협회, 수필문학추천작가회, 영동수필문학회 회원 △『고드랫돌 소리』, 『씨앗』, 『수필과 문학치유』 △수필문학상, 백교문학상 우수상, 강원여성문학상 우수상, 강릉문학작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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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 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30), 최순덕 ‘오방색의 이미지를 통한 눈물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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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 지구일보 신춘문예 출신 송정자 수필가의 '미조의 남자'
- 미조의 남자 송정자/ 수필가 방금 비설거지를 끝낸 앞마당인가. 달빛 아래 미조항의 신수가 훤하다. 바람기를 걸러낸 초가을 밤공기가 시간마저 삼켰다. 잠시 멈추는 자만이 밤바다의 정취에 머무를 수 있을 터, 여유를 수렴하는 미조 앞바다는 다시 찾아온다 해도 반겨줄 낯빛이다. 한적하고 살갑기 그지없는 남해 미조항의 보름날은 특별하다. 더 이상 들킬 낭만조차 없이 둥실한 보름달은 바다 표면에 부서지는 투명한 잔물결까지 퍼 올리느라 혼자 분주하다. 데크 난간에 기대어 달을 바라본다. 달그림자가 뿜어내는 물빛 윤슬에 내 몸도 같이 반짝거린다. 미륵이 도운 마을이라는 미조리는 어장이 풍성하다는 소문이 났을까. 낚시꾼들은 보름달 아래서도 달빛 품은 대를 쑥쑥 끌어당기고 있다. 미조항에는 한국문학관협회 등록된 ‘권대근작은문학관’이 있다. 문학을 비추는 보름달 같은 문학평론가, 권대근 교수는 미조마을에서 태어났다. 마을 초입 ‘회썰어주는집’ 건너편에서 모퉁이를 돌면 좁은 돌담길 끝집이 나온다. 하얀 페인트칠을 한 낮은 대문 너머로 착한 어부였던 아버지의 속내처럼 마당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어릴 적, 남의 집 우물가에 열린 빨간 앵두가 먹고 싶었던 한을 풀고자 문학관 마당에 제일 먼저 심었다는 앵두나무가 수돗가 옆에서 새초롬하게 밖을 내다보고 있다. 황금 같은 청소년 시기에 칠 남매의 가장인 아버지가 덜컥 병석에 드셨다. 그는 책가방 대신 쟁기를 들어야 했다. 미조 앞바다를 보며 푸른 날갯짓을 퍼덕거려 보기도 전에 줄줄이 딸린 동생들을 위해 거름 지게를 졌다. 고구마 두어 개 쪄서 봇짐을 메고 수십 리 길을 걸어 내산까지 올라가 군불에 지필 불땀 좋은 나무를 키만큼 지고 날랐다. 밭골에 뿌릴 똥지게를 지고 뒤뚱거리며 출렁대는 똥물을 맛보기도 했던 고향이다. 질곡의 시절에 그는 도시로 나갔다. 가난한 수재들만 간다는 부산기계공고를 졸업하고 대학은 영문학을, 대학원에서는 국문학을 전공해 교육자의 길을 걸었다. 이어지는 삶 그대로 평탄한 고속도로를 직진했다면, 심하게 요동치는 문학의 급물살을 만나 유도선을 벗어나지 않았다면, 수필문학계에 변곡의 물꼬는 누가 틔웠을까. 수필의 이중층위론의 매력적인 장르는 어찌 만났을 것이며, 본격수필의 새로운 장은 또 누가 열었을까. K-수필을 향한 영문번역 저서는 누가 감당했을까. 악셀 호네트의 인정투쟁에 관심이나 가졌을까. 저서 발간을 통한 표현의 욕구를 실현하고파 하는 많은 무명작가들에게 권대근 교수가 아니면 누가 그들의 갈망에 바람을 실어 글밭으로 떠밀었을까. 그는 88년도 이른 이십 대에 수필로 등단을 하고 이어서 신춘문예에 수필, 평론까지 당선되는 쾌거를 이루어낸다. 지금까지 평론집, 글쓰기지침서, 번역서 등 삼십여 권에 임박한 저서를 연이어 출간한 무서운 집중력의 학자이다. 돈도 안 되고 밥도 안 나오는 문학의 길을 40년 외길 인생으로 묵묵히 수필에 살고 수필에 죽는다는 ‘수생수사’를 외치고 있다. 모태근육의 힘인가. 아버지의 고구마와 마늘밭이 키워 올린 찐찐한 부성의 힘줄이며, 바다 바람에 연마된 근육의 끈기인가. 그의 집념이 계속되는 한, 기존 글쓰기를 파괴한 수많은 그 만의 어록은 현재의 수필계를 거쳐 미래의 문학에까지도 그 통섭은 고스란히 진리로 남으리라. 마릴린 몬로가 말했다. 유머를 모르는 남자를 상대하는 일은 날 감자를 먹는 것과 같다고, 아인슈타인은 혀를 내밀고 눈을 크게 뜨면서 나의 천재성은 유머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했다. 수필보다 수필 쓰는 사람이 좋다는 그는 수필 강의를 할 때면 펄펄 신이 난다. 유머까지 곁들인 강의는 잠시도 한눈 팔 겨를을 주지 않는다. 심장을 휘어잡던 그 강의에 매료되어 나는 밀쳐두었던 수필에 불을 지폈고 교수님의 서평을 받아 첫 수필집을 발간하게 되었다. 그의 바람은 삶이 다 할 때까지 한껏 목청을 높이다가 강단에서 쓰러지는 것이라 한다. 그는 남해 농가섬 바다 한가운데에 물길을 박차고 공중으로 튀어 오르는 유월의 힘찬 숭어다. 펄떡거리는 그에게서 지느러미에 붙은 비늘 한 조각이라도 놓쳐선 안 된다. 하나 급할 것 없는 삶이라 할지라도 그 생을 도정하는 과정이 글쓰기라면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아야 할 이유라 해줄까. 오래된 작은 성당이 있는 바다도 섬도 항구도 돌담도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 미조리 (중략) 착하디착한 어부인 대근이 아버지가 마당가에서 작은 성당 앞 계단밭 가에 옮겨 심은 새들의 겨울 빵나무 권대근 교수의 친구, 공광규 시인이 쓴 ‘새들의 겨울 빵나무’다. 미조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무민사 아래, 그의 아버지가 마련해두신 밭뙈기가 있다. 그 땅에 심은 유자나무를 그린 시다. 그 곳에 곧 ‘권대근문학비’가 세워질 것이라 한다. 푸른 꿈을 키우던 고향 언덕에 문학의 말뚝을 세우고, 작은 성당 옆에서 종일 햇볕을 품는 새들의 빵나무와 나란히 서서, 날마다 저 바다를 바라볼까. 미조바다의 별은 칠흑 속에서 제 몸을 태우고 있다. 그 어둠을 가르고 은빛 보름달이 둥싯거리며 떠오른다. 저 보름달을 채우기 위해 밀물과 썰물의 힘만 보탰을까. 고춧가루 서 말 먹고 바닷길 삼십 리를 헤엄친다는 남해 사람들, 그 유전자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그의 오직 한길 걷기가 오늘의 그를 있게 한 근간이지 싶다. 외롭고 고달프지 않는 삶이 어디 있으랴. 문학의 외길만 달리느라 잃은 것도 있을 것이요 놓친 것도 있을 터, 그의 외로운 등을 고향 남해만은 토닥거려 주지 않을까. 그의 생이 곧 미조이며 그의 문학이 곧 숭어가 펄떡이는 남해바다 깊은 물속이기 때문이리라. (스승의 날 헌정수필) ▼송정자 작가는 경남 밀양 출생으로 한국수필가협회, 한국수필작가회 회원이며, 미미래수필문학회 사무장, 동대문문인협회 감사 및 편집위원, 정독수필다스림 회장 등을 맡아 활발한 문단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한국문인협회 서울지회 이사로 활동 중이다. 그는 『한국수필』 등단 이후 제43회 강원경제신문 코벤트가든문학상, 제4회 설총문학상, 제7회 동대문문학상, 제3회 권대근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아 왔다. 2026년에는 지구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다시 한번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첫 수필집 『f홀의 위로』에 이어 두 번째 작품집 『누에나비의 척수가 되어』를 통해 송정자 작가는 인간 존재의 내면과 삶의 흔적을 더욱 깊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길어 올리고 있다. 그의 수필은 단순한 감상의 차원을 넘어, 상처 입은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조용한 위로와 성찰의 시간을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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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 지구일보 신춘문예 출신 송정자 수필가의 '미조의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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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 아침을 여는 한 편의 시, 이도연 '물의 기억'
- 물의 기억 이도연/ 시인 밝은 티셔츠의 주름 사이 묵은 여름이 다시 스민다 식은 땀 냄새가 몸의 기억을 흔든다 회전의 심연, 세탁통의 별들 속에서 나는 돌고, 헹구어지고, 지워진다 거품의 입김이 내 이름을 덮는다 무언의 물이 나를 건너갈 때 하루의 그림자가 희미해진다 깨끗해진 것은 옷일까 말갛게 사라진 나일까 탈수의 진동 끝에서 나는 한 겹의 바람이 되어 물의 기억 속으로 스며든다. ▼이도연 시인은 부산여자대학교 졸업, 2013년 계간 '문화와 문학타임' 시 등단, 2026년 지구일보 신춘문예 당선, 전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부회장, 한국세계문학협회, 이어도문학회 부회장, 국제문화예술명인, 현대차시명인, 부산펜문학상 작가상, 문화와 문학타임 작가상, 문화와 문학타임 작품상, 한국문화예술대상(차문화교육대상) 수상, 시집 ‘희망으로 가는 길’ ‘그대에게 가는 인생길’ ‘꽃비 쏟아지는 날’ ‘나는 사물의 다음 문장이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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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 아침을 여는 한 편의 시, 이도연 '물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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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 아침을 여는 이 한 편의 시, 이도연 '순천만 저녁노을'
- 순천만 저녁노을 이도연/ 시인 갈대바람은 스윽, 쓰윽 갯벌의 친구들이 뛰놀고 망둥어와 게가 춤을 춘다 사람들은 줄지어 걷는다 개미 산책처럼 길게 이어지고 갈대의 느림에 몸을 맡긴다 추억은 갈대숲 숨결에 묻어두고 발걸음은 전망대로 향한다 황금빛 옷이 곳곳에 흩어진다 구름은 숨바꼭질을 하고 노을은 희망의 약속을 건넨다 모기들의 윙윙은 작은 방해일 뿐 고지를 향해 걷고 또 걷는다 바다는 금빛으로 물들고 뻘 위로 황홀함이 쏟아진다 저녁노을 넋을 빼앗고 순천만은 희망을 품는다 ▼이도연 시인은 부산여자대학교 졸업, 2013년 계간 '문화와 문학타임' 시 등단, 2026년 지구일보 신춘문예 당선, 전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부회장, 한국세계문학협회, 이어도문학회 부회장, 국제문화예술명인, 현대차시명인, 부산펜문학상 작가상, 문화와 문학타임 작가상, 문화와 문학타임 작품상, 한국문화예술대상(차문화교육대상) 수상, 시집 ‘희망으로 가는 길’ ‘그대에게 가는 인생길’ ‘꽃비 쏟아지는 날’ ‘나는 사물의 다음 문장이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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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 아침을 여는 이 한 편의 시, 이도연 '순천만 저녁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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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 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28) 최혜영 ’활시위에 응축된 물질 상상력‘
- 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28) 최혜영 ’활시위에 응축된 물질 상상력‘ 김예순의 ‘활시위’ 최혜영/문학평론가 문학은 상상력의 예술이다. 그것은 현실을 넘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힘이며, 인간 존재를 깊이 인식하게 하는 근원적 동력이다. 임마누엘 칸트는 상상력을 “흩어진 감각의 파편들을 종합하여 의미 있는 형식을 구성하는 자발적 능력”으로 보았다. 우리가 한 편의 수필에서 깊은 울림을 느끼는 순간은 바로 그러한 창조적 사유가 작동하는 때다. 또한 가스통 바슐라르는 상상력을 현실의 단순한 모사가 아니라 세계를 새롭게 변주하는 창조적 힘으로 규정하였다. 문학에서 상상력은 감각과 경험을 하나의 미학적 형상으로 통합하는 인식의 가교이다. 김예순의 「활시위」는 이러한 물질적 상상력이 역사적 체험과 결합하여 깊은 수필적 감동으로 승화된 작품이다. 작가는 청령포라는 역사적 공간에서 단종의 비극적 운명을 마주한다. 그러나 청령포는 단순한 답사의 장소가 아니다. 이 작품에서 청령포는 인간 존재의 고독과 상실이 응축된 상징적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작품의 중심에는 바슐라르가 말한 물의 상상력이 자리한다. 삼면을 감싸고 흐르는 서강은 세상과 단절된 어린 왕의 운명을 상징하는 물줄기이다. 작가는 단종의 눈물과 탄식, 그리고 왕방연의 시조를 강물 위에 포개 놓음으로써 인간의 슬픔을 자연 속에 스며들게 한다. 바슐라르에게 물은 흐름과 침잠, 기억과 정화의 원소이다. 작품 속 강물 또한 역사의 상처를 품은 채 흐르며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매개체로 기능한다. 물의 상상력은 세조의 피 묻은 적삼과 정순왕후의 자줏빛 염색 이야기로 확장된다. 적삼의 핏자국은 권력욕이 남긴 죄의 흔적이자 인간 탐욕의 비극적 결과를 상징한다. 반면 정순왕후가 붉은 치마를 물들인 자줏빛 염색은 상실과 고통을 견디며 살아가는 인간 의지의 표상이다. 작가는 단종의 눈물과 세조의 핏자국, 정순왕후의 자줏빛 물을 하나의 이미지 계열로 연결함으로써 액체가 지닌 기억의 힘을 드러낸다. 이로써 역사적 비극은 추상적 관념에 머물지 않고 구체적인 물질 이미지로 형상화되어 독자의 감각 속에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이와 함께 작품을 떠받치는 또 하나의 축은 대지의 상상력이다. 청령포를 둘러싼 육육봉의 험준한 산세와 어소, 그리고 망향탑은 모두 운명의 무게를 드러내는 상징적 존재들이다. 바슐라르에게 흙은 존재를 지탱하는 근원이자 인간을 붙드는 무거운 물질이다. 특히 망향탑은 단순한 돌무더기가 아니다. 그것은 고향을 향한 단종의 그리움과 절망이 응축된 존재의 흔적이다. 작가는 돌과 산이라는 물질을 통해 유배된 왕의 실존적 고독을 공간 속에 새겨 넣는다. 흐르는 강물이 시간의 지속을 상징한다면, 침묵하는 대지는 그 비극을 오래도록 기억하는 저장소가 된다. 그러나 작품은 비극의 무게에만 머물지 않는다. 육백 년의 세월을 견뎌온 관음송과 노산대는 단종의 슬픔을 품어주는 자연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깊게 뿌리내린 관음송은 고난 속에서도 삶을 견디는 존재의 의지를 보여주고, 노산대는 그리움과 희망이 머무는 정신적 공간으로 기능한다. 작가는 자연과 인간의 교감을 통해 역사적 비극을 단순한 상실의 서사가 아니라 존재에 대한 성찰의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인간의 권력 투쟁은 결국 역사 속 한순간의 흔적으로 사라지지만, 그 슬픔을 묵묵히 품어주는 자연은 오랜 시간 기억을 간직한다. 작품은 바로 이 지점에서 유한한 인간과 지속하는 자연 사이의 실존적 역설을 드러낸다. 이러한 물질적 사유의 여정은 작품의 마지막 문장에서 강렬하게 응축된다. “슬픈 역사가 강물 따라 흐르는 청령포에서 숨을 멈추게 하는 하루의 아련함이 당겨진 활시위처럼 팽팽해진다.” 여기서 ‘활시위’는 단종의 비극과 역사의 상처,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작가의 사유가 응축된 미학적 결정체이다. 시위를 당기는 순간의 팽팽한 긴장감은 역사를 단순히 관조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과거의 슬픔을 현재의 감각으로 전환하여 독자의 내면을 향해 화살처럼 날아든다. 작품 제목인 「활시위」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역사와 인간, 기억과 사유를 하나로 묶는 핵심 상징인 셈이다. 김예순의 「활시위」는 역사적 공간인 청령포를 물과 대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하여 인간 운명의 비애와 생명의 지속성을 탁월하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특히 물질 이미지들이 마지막 ‘활시위’의 상징으로 수렴되면서 작품 전체에 강한 응집력을 부여한다. 그 결과 역사는 과거의 사건을 넘어 현재의 감각으로 되살아나고, 수필은 단순한 체험의 기록을 넘어 고도의 미학적 성취를 이룬 예술로 승화된다. 이는 수필이 지닌 상상력의 힘과 문학적 가능성을 새삼 확인하게 하는 수작이라 할 수 있다. ▮최혜영 주요 약력 △에세이문예 평론 등단(2007) △문학평론가 △문학언어치료학박사 △한국본격수필비평가협회 회장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에세이문예 부주간 △에세이문예 수필계간평 집필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감사 △부산문인협회 이사 △권대근문학상 자문위원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 연구교수 역임 △한국에세이 평론상 △부산수필문학협회 작품상 △부산북구문인협회 작가상 수상 △공저, 『오늘의 수필 비평1,2,3』 ▮김예순 <활시위> 하늘은 맑고 푸르기만 해 서강을 비추는 햇살에 눈이 부시다. 강원도 영월로 역사 속 어린 단종의 삶에서 죽음까지 사유해 보는 문우들과의 기행이다. 경자년 오월의 넷째 토요일, 강원도 영월로 조선의 6대 왕 단종을 만나러 간다.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의 꽁무니가 아직도 감춰지지 않았다. 조심스러운 가운데 버스를 타고 또 나룻배를 타고 역사의 현장인 청령포에 들어서니 단종의 그 애타던 그리움이 온몸을 휘감아 온다. 세종의 손자인 단종. 세종은 아들을 열여덟이나 두었으나 맏아들인 세자에게 원손이 없어 애를 태우던 차에 현덕빈 권씨에게서 원손을 얻었다. 단종은 태어난 지 이틀 만에 어머니를 잃고 쓸쓸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왕실의 어여쁨은 독차지했다. 세종은 어린 세손의 장래를 근심하여 성삼문과 박팽년, 신숙주 등에 세손을 잘 보살필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단종이 12세 되던 해 아버지 문종이 재위 3년 만에 병으로 세상을 뜨자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작은아버지 수양대군은 ‘계유정난’을 일으켜 정인지, 한명회, 권남 등과 결탁하여 이듬해 단종을 보필하던 영의정 황보인과 좌의정 김종서 등을 암살한다. 동생인 안평대군을, 누명을 씌워 강화도로 유배 보내고는 얼마 후 사약을 내린다. 곧 수양대군은 최고 권력자가 되니 단종은 허수아비 왕이 되어 버렸다. 수양대군을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결국 단종은 3년 만에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니 수양대군이 7대 왕인 세조다. 다음 해 성삼문, 박팽년, 이 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 등이 단종의 복위를 계획하였지만, 합류했던 김질의 배반으로 발각되어 처참히 죽게 되니 이들이 사육신이다. 이 사건으로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봉되고 영월 청령포에 유배된다. 30여 년 전 역사의 현장을 보기 위해 오대천 계곡을 끼고 오대산 상원사로 향하던 일이 생각난다. 예고 없이 내린 눈에 발이 푹푹 빠져 걸음을 걷지 못할 정도의 어려움 속에서 동행한 스님의 기지로 양말을 껴 신기도 하고, 또 새끼줄로 신발을 옥여 매어 간신히 상원사에 도착했다. 거기서 단종을 폐위시킨 세조에게 내린 천벌을 보았다. 법당의 한편에 속죄하듯 누워있는 피고름 묻은 세조의 명주 적삼은 내내 지워지지 않는 역사의 한 장면이었다. 권력이 무엇인지 권력 앞에서는 친구도 조카도 없는 소용돌이 속 역사는 알면 알수록 깊어지는 느낌이다. 단종 유배지 청령포는 아픈 역사와 절경으로 1971년 12월 16일 강원도 기념물 15호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12월 26일 명승 제50호로 변경되었다. 청령포는 영월군 남면 광천지 남한강 상류에 있다. 강의 지류인 서강이 휘돌아 흘러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한쪽으로는 육육봉의 험준한 암벽이 있어 마치 한반도처럼 생긴 지형이다. 17세 어린 단종이 그 시절 한양에서 영월 이곳까지 머나먼 길을 쫓겨 내려갈 때의 슬픈 심정은 어찌 글로 다 표현하겠는가. 첩첩으로 서서 길을 막는 산중의 소나무와 빙 둘러싼 서강은 무슨 말로 단종에게 인사를 했을까. 그러나 이곳 생활도 잠시 경상도 순흥에 유배되어 있던 넷째 작은아버지 금성대군이 다시 단종 복위를 꾀하다 실패하니 노산군은 다시 서인으로 강등되었으며 단종의 나이 17세인 1457년 10월 죽임을 당하였다. 몇 년 전 원도심 B 서원 인문학 카페에서 수신인은 상관없이 편지글 쓰기가 있었다. 나의 마음도 이별의 아픔을 겪은 뒤라 그리움에 젖은 설음까지 구구절절이 정순왕후에게 쓴 편지 생각이 난다. 단종의 비 정순왕후는 판돈령부사 여량부원군 송현수의 딸로 1454년 왕비로 책봉되었다. 삼 년 뒤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유배되자 정순왕후도 궁궐에서 쫓겨나 부인으로 강봉 되었고 그 후 단종을 영영 만나지 못하였다. 단종의 죽음을 알게 된 정순왕후는 매일 정업원 지금의 청룡사의 뒤 산봉우리 동망봉에 올라 영월을 바라보며 통곡했다고 한다. 정순왕후가 산봉우리에 올라 곡을 하면 백성들도 따라 울었다. 양반 가문의 딸로 또 왕비로 살았지만, 궁을 떠난 후에는 스스로 일을 해서 생계를 이을 수밖에 없었다. 손재주가 있은 덕에 옷감에 자줏물을 들이는 염색 일을 도우면서 입에 풀칠이나마 할 수 있었고, 그런 생활 속에서도 모진 목숨이 여든을 넘게 살았다. 1698년 노산으로 강봉 되었던 단종이 복위되자 정순왕후도 부인에서 왕후로 복위되었다. 죽은 지 200년 만의 일이었다. 그런 애절함이 있었기에 능호도 사능思陵이라고 하였을까. 사필귀정이듯 조선 왕릉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까지 되었다. 지금도 육지의 섬인 청령포는 나룻배 없이 갈 수 없는 곳이다. 우리 일행이 오랜 세월을 이고 선 소나무 길과 낮은 담장을 지나 단종의 어소에 다다르니 곳곳에 단종의 흔적이 그의 눈물처럼 서려 있다. 두고 온 왕비 송 씨를 생각하며 주변에 있던 막돌을 하나씩 주워 만들었다는 망향탑이다. 지금은 600년도 넘은 천연기념물인 관음송은 우리나라 소나무 중에서 키가 가장 크다고 한다. 하늘을 향해 양쪽으로 뻗은 가지에 앉아 시름을 달래기도 했다는 단종. 밤이며 구슬픈 단종의 울음소리를 들었다는 관음송이다. 우리 일행은 계단으로 된 가파른 산길을 한참 오른다. 청령포에서 제일 높은 곳이라 했다. 여기는 노산대로 단종이 자주 올라와 서쪽 하늘을 바라보며 한양과 두고 온 정순왕후를 그리워하였다고 한다. 생각만으로도 뼛속 깊은 서러움이 서린다. 560여 년 전 단종이 지은 ‘자규시’의 구절이다. 한 마리 원한 맺힌 새가/ 궁중에서 나온 뒤로/ 외로운 몸 짝없는 그림자가 푸른 산속을 헤맨다.⋯⋯하늘은 귀머거린가 애달픈 이 하소연 어이 듣지 못하는지 어찌 수심 많은/ 이 사람의 귀만 홀로 밝은가 이런 어린 단종에게 형을 집행하려고 사약을 가지고 온 의금부도사 왕방연도 차마 고하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이를 보다 못해 평상시 단종을 모시던 이가 목을 졸라 죽이고, 그것도 모자라 옥체는 동강에 버렸다. 이에 왕방연은 하늘이 부끄러워 한양으로 떠나지 못하고 강가에서 시조 한 수를 남겼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맘 같아서 울며 밤길을 흐르누나’ 누구라도 옥체를 거두면 삼족을 멸한다는 어명에도 영월의 호장 엄홍도가 단종의 장사를 지내겠다고 강에 떠 있는 옥체를 수습해 산에 몰래 매장한 덕택에 단종은 다행히 장릉에 모셔졌다. 중종 11년 단종의 묘를 찾고 25년 후 영월 군수 박충원이 봉분을 만들어 제사를 지냈다. 단종이 돌아가신 뒤 241년 만의 일이었다. 2007년 4월, 단종을 추모하는 단종문화제 기간에 그를 보내는 국장을 550년 만에 치렀다. 해마다 영월에는 단종제를 지낸다. 올해는 세계적인 재앙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단종제는 열리지 않는다고 했다. 정순왕후처럼 애절한 마음이 되어 청령포에서 글을 읽고 있는 단종과 만난 날이다. 슬픈 역사가 강물 따라 흐르는 청령포에서 숨을 멈추게 하는 하루의 아련함이 당겨진 활시위처럼 팽팽해진다. <김예순 수필집 『움직이는 시간의 순간들』중에서> ▮김예순 주요 약력 △‘시와 수필’ 시 등단 △ ‘에세이문예’ 수필 등단 △(사)부산문인협회 회원 △(사)국제PEN한국본부부산지역위원회 이사 △신서정문학회 부회장 △부산수필문학협회 감사 △부산남구문인협회 이사 △한국본격문학가협회 회원 △부산수필문학 작가상 △부산신서정문학회 작품상 △부산남구문인협회 작가상 △부산펜문학 작품상 △한국에세이 작가상 △수필집 ‘내 마음의 정원’, ‘움직이는 기억의 시간들’ △시집 ‘시 속에 피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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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 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28) 최혜영 ’활시위에 응축된 물질 상상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