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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구일보] 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6) 권대근 '겪어야 비로소 보이는 삶의 가치'
    Ⅰ김홍신 에세이 <겪어보면 안다> 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6) 권대근 ‘겪어야 비로소 보이는 삶의 가치’ - 김홍신 에세이 <겪어보면 안다>를 읽다 권대근/문학평론가 김홍신 작가의 에세이 <겪어보면 안다>는 단순한 회고록이 아니라, 체험을 통해 길어 올린 인간학적 사유의 집약이라 할 수 있다. 이 에세이는 ‘안다’라는 동사의 의미를 인식이 아니라 체험으로 재정의하며, 인간이 무엇으로 살아가는 존재인가를 묻는다. 굶주림, 목마름, 호흡의 곤란, 실직, 질병, 상실, 이별, 고통, 불행, 그리고 죽음의 문턱 등 열 개의 문장들은 각각 독립된 에피소드이면서도, 하나의 거대한 삶의 계단을 이룬다. 독자는 이 계단을 오르며 자연스럽게 자기 삶을 되짚게 된다. 인문학적으로 볼 때 이 에세이는 몽테뉴의 “나는 나 자신을 연구한다”는 명제를 떠올리게 한다. 몽테뉴가 개인적 경험을 통해 보편을 탐구했듯, 김홍신은 지극히 사적인 체험에서 보편적 인간 조건을 길어 올린다. 동시에 빅터 프랭클의 “고통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인간의 마지막 자유”라는 통찰이 글의 저류를 관통한다. 고통은 파괴가 아니라 해석의 재료가 되고, 상처는 윤리적 성찰의 통로가 된다. 이 글에는 우여곡절 끝에 몸소 깨달은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 삶의 난관에 봉착한 사람들에게 건네는 구원의 메시지라 할 수 있다. 이 에세이의 맛은 품맛인데, 세 가지 층위에서 빛난다. 첫째 체험의 진정성이다. 굶주림의 기억, 사막의 갈증, 막힌 코의 숨막힘은 과장이나 수사가 아니라 몸의 기억에서 길어 올린 언어다. 문장은 화려하지 않지만 단단하고, 감정은 격앙되지 않지만 깊다. 둘째 윤리적 온도다. 그는 고통을 개인의 비극으로 닫아버리지 않고, 기초생활보장법 제정, 한센병 환자 돌봄, 청년 실업에 대한 연민으로 확장한다. 여기서 에세이는 사회적 책임을 품은 윤리적 장르가 된다. 셋째 관조의 균형이다. 절망에 침몰하지도, 교훈주의에 빠지지도 않는다. 카뮈가 말한 “부조리 속에서도 살아가는 품위”가 느껴진다. 에세이의 치료적 효과 또한 뚜렷하다. 이 글은 독자에게 “당신의 고통은 무의미하지 않다”고 속삭인다. 특히 ‘지나보면 안다, 고통이 추억인 걸’이라는 문장은 트라우마를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서사로 재구성할 가능성을 열어준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카타르시스, 연민과 공포를 통한 정화를 현대적 방식으로 구현한다. 작가는 후회 없는 삶을 살려면 우선 “비교와 계산으로 복잡해진 생각의 창고부터 비우라”고 조언함으로써,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이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희망의 메시지는 마지막 문단에서 정점에 이른다. 죽음의 위협 앞에서 깨닫는 “내가 세상의 주인”이라는 통찰은 나르시시즘이 아니라 존재론적 각성이다. 내가 사라지면 세계도 사라진다는 인식은, 역설적으로 타자와 세계를 더 사랑하게 만든다. 하이데거식의 ‘죽음을 향한 존재’가 아니라, ‘죽음을 넘어 삶을 품는 존재’에 가깝다. 이 에세이는 한 인간의 고백을 넘어 살아가는 법의 교본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있을 때 잘하라”는 평범한 격언을, 몸의 기억과 역사의 경험으로 다시 쓴다. 이 에세이의 문학적 성취는 무엇보다도 ‘체험의 진실’을 과장 없이 언어로 길어 올렸다는 데 있다. 김홍신의 문장은 화려한 수사나 기교에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몸의 기억과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밀도를 지닌다. 각각의 일화는 개별적 경험에 머물지 않고 보편적 인간 조건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되며, 독자는 저자의 삶을 따라가다 어느새 자신의 삶을 겹쳐 보게 된다. 특히 고통과 결핍을 비극적 서사로만 소비하지 않고, 성찰과 연대의 윤리로 전환하는 태도는 이 글에 드문 품위를 부여한다. 일상의 언어로 존재의 근원적 질문을 건드리는 힘, 그리고 개인적 회고를 사회적 기억과 윤리적 통찰로 승화시킨 점에서 이 작품은 한국 에세이가 지향할 수 있는 한 높은 기준을 보여준다. 또한 반복 구조, ‘~하면 안다’를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기억과 사유를 관통하는 리듬으로 승화시킨 점이 돋보인다. 개인의 고백을 역사적 사회적 맥락 속에 배치함으로써 에세이를 사적 기록이 아닌 공적 서사로 확장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무엇보다 이 글은 독자의 마음을 깊이 흔드는 절제된 서정성을 성취했다는 점에서 문학적 완성도가 높다. 이 에세이의 쾌미는 독자는 이 글을 덮으며 묻게 된다는 데 있다. 좋은 글은 질문을 던진다. 이 에세이는 다음과 같이 독자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는가? 무엇을 잃고 나서야 소중함을 알았는가? 그리고 무엇을 지키며 살아갈 것인가? 김홍신은 유명 작가답게 문장을 소리 높여 설교하지 않는다. 대신 겪어온 삶의 무게로 조용히 설득한다. 그래서 이 에세이는 읽히는 것이 아니라 스며드는 글이고,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게 하는 글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작품은 인간학이자 인문학이며, 무엇보다도 인생학이다. ▮권대근 주요 약력 △경남 남해 출생 △'동양문학' 수필 등단(1988) △'문예사조' 문학평론 △'경북신문' 문학평론 △미주 '중앙일보' 수필 신춘문예 당선 △현재 대신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한국본격문학가협회 회장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명예회장 △평론집 '수필은 사기다', 번역서 '한국의 명수필', 문학이론서 '문장가로 가는 길' △수필집 '고운 별 하나 가슴에 묻고' 등 28권 △부산수필문학상, 부산펜문학상, 월강문학상, 여산문학상, 정과정문학상, 부산pen번역문학상 등 수상 ▮ 김홍신의 <겪어보면 안다> 몇 해 전, 텔레비전 방송에서 제가 쓴 글 「겪어보면 안다」를 낭송한 적이 있습니다. 50초 남짓한 짧은 영상인데, 유튜브를 비롯한 각종 소셜미디어에 빠른 속도로 퍼지며 지금도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열 줄밖에 안 되는 짧은 글이지만, 사람들에게는 그럴듯하게 여겨졌나 봅니다. 세상이 변하고 세대가 달라도 사는 일에 대한 고민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내용을 한 줄 한 줄 되새기며 제 인생살이에서 느꼈던 것들을 다시 한 번 돌아보려 합니다. 굶어보면 안다, 밥이 하늘인 걸 국민학교 4학년 때 저희 집안은 금융 사고로 풍비박산이 되었습니다. 빚쟁이들 등쌀에 아버지는 집을 비웠고, 어머니는 오전 4시 통행금지 해제 사이렌이 울리기 전에 나갔다가 밤 12시 통행금지가 시작되면 집에 왔습니다. 홀로 남은 저는 굶주림에 지쳐 생쌀을 씹어 먹거나, 밖에 나가 삘기나 생미나리 따위를 뜯어 먹었습니다. 당시 20대 초반이던 옆집 누나가 담 너머로 밥 한 사발을 몰래 넘겨주면 그 밥이 하느님 같았습니다. 커서 그 은혜를 갚기 위해 TV 프로그램 등을 통해 누나를 찾아보았지만, 군의관인 형부를 따라 일찍 미국으로 이민 갔다는 소식만 전해 들었습니다. 지금은 나아진 세상살이에 대부분 끼니를 거르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굶는 사람이 여기저기에 있습니다. 제가 국회의원 시절에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악착같이 만든 까닭도 배곯던 시절을 떠올렸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모든 생명은 영양분을 섭취해야 살 수 있습니다. 먹지 못하면 죽습니다. 밥이 하늘입니다. 목마름에 지쳐보면 안다, 물이 생명인 걸 1982년 소설 집필을 위해 취재차 인도에 갔습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수돗물과 샘물을 그냥 마셨습니다. 그런데 인도에서 수돗물이나 강물을 마셨다가는 바로 병원으로 실려갈 수도 있다고 해서 할 수 없이 물을 사 먹었습니다. 유럽에 갔을 때도 석회질 때문에 물을 사서 마셔야 했으니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론 낙후되어 있지만 아직은 사람이 살 만한 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하라 사막에서도 물의 소중함을 절절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지프를 타고 사막을 횡단했는데, 한번은 깜빡하고 차에 마실 물을 싣지 못했습니다. 불구덩이 같은 사막 한가운데서 머리에 물수건을 얹고 그 위에 챙 넓은 모자를 써도 금세 수건이 말랐습니다. 지독한 목마름으로 말을 할 수가 없었고, 삭신이 녹아 흐물거리는 듯했습니다. 정신이 몽롱해질 무렵에야 목적지에 도착해 마신 물맛은 황홀경이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누구라도 지금 당장 물 없이 하루만 살아본다면 물이 곧 생명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코 막히면 안다, 숨 쉬는 것만도 행복인 걸 봄날에 산에 오르면 콧물이 흐르고 재채기가 심하게 납니다. 꽃가루 알레르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손수건이나 휴지로 해결할 수 있으니 다행입니다. 안나푸르나를 등반할 때는 폭설로 험난한 빙판길을 걷느라 몸살을 앓았습니다. 줄줄 쏟아지는 콧물을 손수건으로는 감당 못 할 지경이어서, 배낭 고리에 수건을 달아야 했습니다. 견디기 고통스러운 문제는 잘 때 생겼습니다. 콧물이 심하게 흘러 왼쪽과 오른쪽으로 번갈아 누워가며 겨우 숨을 몰아쉬어야 했습니다. 강행군으로 피곤했지만, 수면제를 먹어도 막힌 코 때문에 잠들 수가 없더군요. 평소에 저는 코로 숨 쉬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코가 막히니까 숨 쉴 수 있다는 게 엄청난 행복이란 걸 알았습니다. 어디 코뿐이겠습니까. 온몸을 내 인생의 보물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일이 없어 놀아보면 안다, 일터가 낙원인 걸 제가 20대였던 1970년대엔 취업하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셋방살이하는 부모님께 얹혀사는 게 죄송스러워 이곳저곳 일자리를 알아봤습니다. 학훈단 출신 장교로 제대했음에도, 전공이 국문학이다 보니 입사원서 낼 곳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은사인 대학 총장님께서 마침 취업을 알선해 주셨는데 한센병 환자를 돕는 기관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무서운 전염병이란 소문이 파다하여 염려되었지만 제 형편에 마다할 수 없었습니다. 일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뻐하며 2년간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았습니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유준 교수님께서 6개월 동안 한센병 환자들이 복용하는 DDS를 처방해 주어 그 독한 약을 먹었습니다. 그 경험 덕분에 한센병 환자가 주인공인, 제 첫 번째 장편소설 『해방영장』을 집필할 수 있었습니다. 더 치열해진 취업전선을 뚫기 위해 젊음을 불사르는 요즘 청년들을 보면 그 시절이 떠오릅니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20~2022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던 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사람에겐 일터가 낙원입니다. 아파보면 안다, 건강이 가장 큰 재산인 걸 정치를 접고 한동안 거의 두문불출한 채 소설을 썼습니다. 우리의 잃어버린 역사, 발해에 대한 글을 쓰며 여러 가지 병고를 겪었습니다. 3년간 햇빛을 거의 안 보고, 물을 적게 마시고, 하루 열두 시간 가까이 책상 앞에 앉았다가 그만 요로결석으로 큰 고생을 했습니다. 결석 제거 시술을 하고 나서 바로 생활 습관을 고쳐야 했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얼마 후 왼쪽 옆구리 뒤편에서 그 무시무시한 통증이 또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요로결석인 걸 대번에 알아차리고 병원을 예약했습니다. 하루 동안 통증완화제를 복용하고 척추 마취를 하고 시술을 받았습니다. 몸속에 있던 돌이 빠져나왔을 때의 안도감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때 의사 선생님이 한 말씀이 아직도 귀에 쟁쟁합니다. “아플 때는 건강이 큰 재산인 걸 알면서도 낫자마자 바로 잊어버리는 게 사람입니다. 사람은 움직이는 존재입니다. 잘 먹고 잘 배설해야 합니다. 잃은 뒤에 안다, 그것이 참 소중한 걸 저는 아직도 만년필로 원고를 씁니다. 어느 날 만년필을 가지고 외출했다가 그만 잃어버렸습니다. 새 만년필에 익숙해지려면 매일 이것저것 쓰며 몇 달을 지내야 합니다. 그러는 동안 손가락에 쥐가 나고 손목도 굳습니다. 글씨체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만년필을 단지 글 쓰는 도구로 여겼는데, 잃고 나니 그 존재가 무척 크게 다가왔습니다. 한동안 제 불찰을 탓했고,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쓰던 원고를 다른 종이 뭉치와 함께 쓰레기통에 버리는 바람에 글을 새로 쓴 적도 있습니다. 다시 쓰긴 했지만 먼저 쓴 글과 달라 마음에 들지 않아 속상했습니다. 사랑, 품성, 배려, 포용 등을 잊는 무형의 ‘영혼 분실’을 비롯하여 지금까지 잃은 게 어디 한두 가지겠습니까. 가진 것을, 옆에 있는 사람의 존재를 당연시하다가 잃었을 때에야 비로소 그것이, 또 그가 참 소중한 존재임을 압니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있지요. 지금 자신이 가진 것의 소중함을 느껴보세요. 결국 그것이 나 자신을 소중하게 만듭니다. 이별하면 안다, 그이가 천사인 걸 저는 쉰 줄에 ‘고아’가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 먼저 이승을 하직하고, 2년 뒤에 아버지께서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일곱 살이나 어린 아내와 오누이같이 의지하며 살았는데 아내는 어린 시절부터 허약했고, 결혼할 무렵에도 건강이 나빴습니다. 아픈 몸으로 아들과 딸을 낳은 건 기적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내마저 마흔아홉 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내가 살아 있을 때는 건강이 좋지 않아 가족여행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제가 우여곡절이 많은 사람이어서 어지간히 아내를 애태웠습니다. 아내가 떠날 때, 딸아이는 엄마를 끌어안고 “엄마, 이다음에는 아프지 마”라고 했습니다.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저는 아내의 휴대폰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라는 목소리만 들었을 뿐입니다. 사랑은 햇살처럼 왔다가 달빛처럼 스러져간다고 했던가요. 제 곁에 있어주던 부모님과 아내가 떠나고서야 그들이 저를 존재하게 해준 하늘의 천사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나보면 안다, 고통이 추억인 걸 군사정권 시절, 콩트집 『도둑놈과 도둑님』을 발표한 저는 계엄 당국의 보안대에 끌려가 소설 속 ‘도둑님’이 누군지 대라는 취조를 받았습니다. 국가원수 모독, 국가 체제 부정, 군 모독이라는 어마어마한 죄목으로 조사를 받았습니다. 풀려난 저는 오기를 품고 『인간시장』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총을 차고 한판 붙어보자’는 의미에서 주인공 이름을 ‘장총찬’으로 짓고, 사회 부조리와 비리를 고발하는 소설을 썼습니다. 그 바람에 『인간시장』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밀리언셀러로 역사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런저런 우여곡절과 고난이 없었다면 『인간시장』은 태어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고난과 시련을 관통한 자만이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는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고통은 훗날 추억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행해지면 안다, 아주 작은 게 행복인 걸 불행의 반대말은 행복입니다. 행복이란 엄청나고 화려한 게 아니라 평범하고 소박한 일상에서 누리는 것입니다. 어쩌면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는 것만도 행복인지 모릅니다. 교통사고가 나서 차도 사람도 다치고 병원에 갈 때는, 버스 타거나 멀쩡하게 걸어 다니는 사람이 부럽습니다. 크고 작은 사업을 하다가 실패한 사람들은 수입이 적다고 투덜대는 월급쟁이가 몹시 부럽습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당연한 것들이, 환자에게는 꿈같은 일이 되기도 합니다. 친구들과의 만남, 가족들과의 평범한 일상이 남의 얘기로만 여겨집니다. 매일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환자들에겐 오늘 하루가 전부입니다. 우리나라 10대 재벌 그룹의 어느 회장님과 그분이 돌아가실 때까지 친밀하게 ‘형님’, ‘아우’ 하며 지냈습니다. 외환위기 때 회장님의 그룹은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해체되었으며 갖가지 고난을 겪었습니다. 괴로움을 달래려고 그랬는지 회장님은 저를 자주 불러 억울한 사연들을 쏟아놓곤 했습니다. 지금도 제 책장에 그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억울한 사연을 낱낱이 기록한 두툼한 자료집 두 권이 꽂혀 있습니다.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하는 건 “자유롭게 나다니는 평범한 사람들이 한없이 부럽다”고 했던 그분의 말씀입니다. 천하에 누릴 건 다 누렸다는 소릴 들었지만, 고난과 시련을 겪으며 ‘평범한 것이 진짜 행복’이란 걸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평소 건강한 분이었으니 그런 변고를 겪지 않고 평범하게 살았더라면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아 계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저 또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애쓰게 되었습니다. 나로 인해 누군가 행복해할 때, 나 자신도 행복해지며 존재가치가 높아집니다. 사랑하는 이들이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함께 있는 시간의 소중함을 모르고, 자신이 행복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 자신이 소중한 사람인 것도 모릅니다. 하루하루가 평범한 일상의 반복일지라도 아무 탈 없이 하루를 보내고 가족과 마주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행복입니다. 죽음이 닥치면 안다, 내가 세상의 주인인 걸 1980년대 중반, 리비아의 국가원수 카다피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면담 뒤에 벵가지 근교의 바닷가 경치에 반해 산책을 하게 되었습니다. 홀로 큰 바위 사이를 거닐었는데, 어느 순간 제 가슴에 자동소총 총구가 맞닿았습니다. 그때 총을 겨눈 리비아의 국경수비대원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며 시건장치를 풀었습니다. 숨이 멎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묻고 답할 수도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지요. 자동소총의 성능을 잘 알기에 그 순간 목숨을 구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과 함께 오만가지 생각이 한꺼번에 떠올랐습니다. 바로 그때 하늘이 도왔는지 한 남자가 “세리카, 동가(친구, 동아)!”라고 소리치며 달려왔습니다. 저를 안내하던 동아그룹의 홍보요원이었습니다. 당시에 동아그룹은 리비아의 대수로 공사를 맡아 사막 한가운데서 물줄기를 찾아 사막을 적셔주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리비아 사람들이 ‘세리카, 동가’라는 말로 동아그룹과 한국에 대한 신뢰를 표현하곤 했습니다. 풀려나는 순간, ‘내가 없으면 세상 모든 것도 없다’는 경고음이 가슴을 건드렸습니다. 내가 없으면 지구와 햇빛도, 물과 밥도, 부모 형제와 사랑하는 이도 모두 소용없습니다. 죽을 고비를 넘겨본 사람은 알게 됩니다. 내 존재 가치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김홍신 에세이집 <겪어보면 안다> ▮김홍신 주요 약력 △건국대 국문과 졸업 △건국대학교 문학박사 취득 △건국대학교 명예정치학 박사 취득 △1991~1995 경제정의시민실천연합 상임집행위원 △1995~1997 (MBC재단)방송문화진흥회 이사 △1996~2000 제15대 국회의원 △2000~2003 제16대 국회의원 △2002~2004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집행위원장 △2004~2019 평화재단 이사 △2006~2008 건국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 초빙교수 △2008~2014 건국대학교 석좌교수 △2010~현재 동서문학상 운영위원장△2013~현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민주시민정치아카데미 원장 △2014~2017 통일의병 대표 △2016~현재 홍상문화재단(김홍신문학관) 이사장△2019~2025 (사)동의난달 이사장 △2024~현재 세계한글작가대회 조직위원장 △1976 현대문학에 ‘물살’로 소설가 데뷔 △1986 제12회 한국소설문학상 수상 (장편소설「풍객」) △1987 제6회 소설문학작품상 수상 (장편소설「내륙풍」)/ 제1회 건국인상 수상 △1994 자랑스러운 서울시민 600인 선정 △2001 제1회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 수상 △2007 제4회 통일문화대상 수상 (통일문화연구원, 한국일보사 주최) △2009 제14회 현대불교문학상 수상 (대한불교조계종 주최) △2009 제2회 한민족대상 수상 (한국신문기자연합회, 시사뉴스투데이) △2015 제52회 한국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단한번의 사랑」) △2022 자랑스런 충청인 대상 수상 △ 장편소설집 「해방영장」,「인간시장」,「 바람바람바람」,「난장판」,「청춘공화국」,「대곡」,「또 다른 늪」,「여신의 늪」,「우리들의 고해성사」,「야망의 땅」,「파문놀이」,「걸신」, 「풍객」,「제4계급」,「귀공자」,「여자세상」,「갈증 그리고 또 갈증」,「내륙풍」,「비틀거리는 도시」,「바람개비」,「뚝딱 애들 모여라」,「벌거숭이들」,「장보고」,「야심」,「도시에 갇힌 새」,「역마살」,「그대 영혼 훔치다」,「사랑의 장난」,「사랑은 죽음보다」,「칼날 위의 전쟁」,「우리들의 건달신부」,「초한지(전7권)」,「김홍신의 대발해(전10권)」,「단한번의 사랑」,「바람으로 그린 그림」,「죽어나간 시간을 위한 애도」 △창작집 「무죄증명」,「수녀와 늑대」,「가면의 춤」,「허수아비와 벙거지」 △수필집 「하나님과 쬐그만 악마」,「아침에 못한 말」,「인간수첩」,「아직도 그럭저럭 사십니까」,「가슴을 열어 사랑을」,「흔들려도 너는 세상의 중심에 있다」,「인생을 맛있게 사는 지혜」,「발끝으로 오래 설 수 없고 큰 걸음으로 오래 걷지 못하네」, 「인생사용설명서」, 「인생사용설명서 두 번째 이야기」,「그게 뭐 어쨌다고」,「인생견문록」,「하루사용설명서」,「자박자박 걸어요」,「겪어보면 안다」 △컬럼집 「대통령 정신차리소」,「도둑과 장물애비」 △꽁트집 「도둑놈과 도둑님」,「제법 노는 사람들」,「요즘 윗분들」,「좀 봐줘유 씨」 △시집 「한 잎의 사랑」 「그냥 살자」 △동화집 「뚝딱 애들 모여라」「노랑나비의 춤」「사랑을 배워요」「수업이 끝나면 미래로 갈 거야」 △中國古典 評譯 「삼국지(전10권)」,「수호지(전10권)」,「청소년 삼국지 (전5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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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
    2026-02-01
  • [지구일보] 김월강 대종사 제9대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회장 취임식 개최
    [지구일보] 김월강 시인(대종사)이 제9대 사)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회장으로 취임했다. 김월강 회장은 2026년 1월 26일 11시 솔내음 한정식에서 제9대 회장 취임식을 갖고, 임원 임명장 수여식과 아울러 운영이사회도 개최하였다. 이날 김월강 회장의 취임사와 송명화 제8대 회장의 이임사가 큰 울림을 안겨주었다. 범어사 방장 정여 대종사님, 범어사 주지 정오스님, 재원스님, 문수사 지원스님, 김석규 고문 등이 축사를, 통도사 재원 큰스님이 축하패를 전달했다. 심상옥 국제펜한국본부이사장, 부산광역시장 박형준, 동래구청장 장준용 등이 축전을 보내주었고, 김석규 고문, 박송죽 고문, 양은순 상임고문 권대근 상임고문 등 70여 분이 참석해서 회장 취임을 축하해 주었다. ■ 사)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단체사진 시인 월강 대종사는 1963년 출가입산, 1986년 대한불교조계종총본산 서울 조계사 입승, 1980년 동국대학교 승가학과 졸업, 부산동래차밭골 금어사 주지, 1994년 공동선실천부산종교지도자협의회 공동대표, 1995년 부산불교연합회 상임부회장, 2005년 대한민국 청곡예술문화상 수상, 2009년 문예시대 신인상(시), 2023년 월강문학상 제정 이사장, 사)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회장, 시집으로 ‘차 한잔 듬세’ ‘달 그림자’ ‘차밭골 사랑’ ‘마음의 샘’ ‘홍두깨에 꽃이 피다’ 등이 있다. ■ 고문단 및 부회장단 임명장 수여 국제PEN한국본부부산지역위윈회 제9대 회장 김월강 대종사 취임식 2026년 1월 26일(월) 11:00-14:00 솔내음 한정식 서면점 수석부회장 김정애 위 서명자 46명, 서명 안 된 분 24명. 참석자: 번 성명 직위 번 성명 직위 번 성명 직위 번 성명 직위 1 정여스님 축하객 13 김월강 회장 25 백소율 이사 37 김미화 구의원 2 재원스님 축하객 14 김정애 수석부회장 26 박경애 이사 38 손계정 시낭송 3 산해정오 축하객 15 최순덕 부회장 27 김숙자 이사 39 송혜정 시낭송 4 지원스님 축하객 16 이종래 부회장 28 김정권 이사 40 신경숙 시낭송 5 석보스님 축하객 17 윤교숙 부회장 29 김숙자 이사 41 외 4인 시낭송 6 미상스님 축하객 18 황인숙 사무국장 30 김예순 이사 42 〃 시낭송 7 강석정목사님 축하객 19 김정열 편집주간 31 김성관 이사 43 〃 시낭송 8 양은순 상임고문 20 선경숙 편집국장 32 이태종 이사 44 〃 시낭송 9 권대근 상임고문 21 탁영완 자문위원 33 유상순 회원 45 조영춘 웃음공연 10 송명화 상임고문 22 김미순 자문위원 34 오지영 회원 46 김학용 사진촬영 11 김석규 고문 23 김희영 자문위원 35 박정숙 회원 12 박송죽 고문 24 박혜경 이사 36 김현숙 명인명장 총 70명 1 단체사진촬영 김학용 차방넷 대표 2 개회사 이종래 부회장 1) 개회 선언 2) 국민의례 3) 고인 선배 작가님들께 추모 묵념 3 회장인사 월 강 대종사 회장단 및 주요 축하객 소개, 전 회원 인사. ‘시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주제 말씀 4 내빈소개 김석규 고문, 박송죽 고문, 변종환 고문, 양은순상임고문(5, 6대 회장), 권대근 상임고문(7대 회장), 송명화 상임고문(8대 회장) 5 이임사 송명화 전임 회장(8대) 기틀을 잡으신 양은순 고문님, 비약적 발전을 이루신 권대근 고문님의 뜻을...(중략) 새 사업으로 번역문학상, 도슨트투어, 부산펜단독문학기행&세미나 등...(하략) 6 회장인사 (취임사) 월 강 대종사(9대) 문학을 사랑하고 문심을 이어오신 전 회장님과 회원님들께 공약함. 1)쓰는 즐거움 2)함께 걷는 문학공동체 3) 지역 문학의 중심 약속 7 축하패 증 정 통도사 재원 큰스님 축하패/ 월강 대종사/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동문이신 월강 대종사께서 제9대 부산펜... 8 축시낭송 손계정 외 7인 디카시 아카데미 회장 및 회원 일동 9 축사 범어사 방장 정여 대종사님, 범어사 주지 정오스님, 재원스님, 지원스님, 김석규 고문 10 축전소개 심상옥 국제펜한국본부이사장, 부산광역시장 박형준, 동래구청장 장준용 11 화환, 화 분, 족자 소개 및 증정식 국제펜한국본부이사장 심상옥,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산해정오, 범어사 방장 여산정여, 부산수필문학협회장 김정애, 이삭문학협회장 이광성, 이상 화환/ 대한불교조계종 문수사 주지 지원, 국가원로회 김계춘 신부, 부산디카시아카데미 원장 손계정, 편집장 선경숙, 문화와 문학타임 부회장 김숙자, 부회장 윤교숙, 이상 화분/ 정여 대종사 축하 친필 족자 12 임명장수여 김석규 고문 외 22명(고문, 상임고문, 자문위원, 이사, 회장단) ▶운영위원회, 이사회 안건(26년 사업 계획 추인 등)은 현 집행부에게 위임함. ▶2026년 사업계획은 문서로 대신 제출함.(시화전, 문학기행, 부산펜문학23호 발간, 제14회 부산펜문학상 운영, 총회, 시상식, 출판기념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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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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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구일보] 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6) 권대근 '겪어야 비로소 보이는 삶의 가치'
    Ⅰ김홍신 에세이 <겪어보면 안다> 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6) 권대근 ‘겪어야 비로소 보이는 삶의 가치’ - 김홍신 에세이 <겪어보면 안다>를 읽다 권대근/문학평론가 김홍신 작가의 에세이 <겪어보면 안다>는 단순한 회고록이 아니라, 체험을 통해 길어 올린 인간학적 사유의 집약이라 할 수 있다. 이 에세이는 ‘안다’라는 동사의 의미를 인식이 아니라 체험으로 재정의하며, 인간이 무엇으로 살아가는 존재인가를 묻는다. 굶주림, 목마름, 호흡의 곤란, 실직, 질병, 상실, 이별, 고통, 불행, 그리고 죽음의 문턱 등 열 개의 문장들은 각각 독립된 에피소드이면서도, 하나의 거대한 삶의 계단을 이룬다. 독자는 이 계단을 오르며 자연스럽게 자기 삶을 되짚게 된다. 인문학적으로 볼 때 이 에세이는 몽테뉴의 “나는 나 자신을 연구한다”는 명제를 떠올리게 한다. 몽테뉴가 개인적 경험을 통해 보편을 탐구했듯, 김홍신은 지극히 사적인 체험에서 보편적 인간 조건을 길어 올린다. 동시에 빅터 프랭클의 “고통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인간의 마지막 자유”라는 통찰이 글의 저류를 관통한다. 고통은 파괴가 아니라 해석의 재료가 되고, 상처는 윤리적 성찰의 통로가 된다. 이 글에는 우여곡절 끝에 몸소 깨달은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 삶의 난관에 봉착한 사람들에게 건네는 구원의 메시지라 할 수 있다. 이 에세이의 맛은 품맛인데, 세 가지 층위에서 빛난다. 첫째 체험의 진정성이다. 굶주림의 기억, 사막의 갈증, 막힌 코의 숨막힘은 과장이나 수사가 아니라 몸의 기억에서 길어 올린 언어다. 문장은 화려하지 않지만 단단하고, 감정은 격앙되지 않지만 깊다. 둘째 윤리적 온도다. 그는 고통을 개인의 비극으로 닫아버리지 않고, 기초생활보장법 제정, 한센병 환자 돌봄, 청년 실업에 대한 연민으로 확장한다. 여기서 에세이는 사회적 책임을 품은 윤리적 장르가 된다. 셋째 관조의 균형이다. 절망에 침몰하지도, 교훈주의에 빠지지도 않는다. 카뮈가 말한 “부조리 속에서도 살아가는 품위”가 느껴진다. 에세이의 치료적 효과 또한 뚜렷하다. 이 글은 독자에게 “당신의 고통은 무의미하지 않다”고 속삭인다. 특히 ‘지나보면 안다, 고통이 추억인 걸’이라는 문장은 트라우마를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서사로 재구성할 가능성을 열어준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카타르시스, 연민과 공포를 통한 정화를 현대적 방식으로 구현한다. 작가는 후회 없는 삶을 살려면 우선 “비교와 계산으로 복잡해진 생각의 창고부터 비우라”고 조언함으로써,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이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희망의 메시지는 마지막 문단에서 정점에 이른다. 죽음의 위협 앞에서 깨닫는 “내가 세상의 주인”이라는 통찰은 나르시시즘이 아니라 존재론적 각성이다. 내가 사라지면 세계도 사라진다는 인식은, 역설적으로 타자와 세계를 더 사랑하게 만든다. 하이데거식의 ‘죽음을 향한 존재’가 아니라, ‘죽음을 넘어 삶을 품는 존재’에 가깝다. 이 에세이는 한 인간의 고백을 넘어 살아가는 법의 교본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있을 때 잘하라”는 평범한 격언을, 몸의 기억과 역사의 경험으로 다시 쓴다. 이 에세이의 문학적 성취는 무엇보다도 ‘체험의 진실’을 과장 없이 언어로 길어 올렸다는 데 있다. 김홍신의 문장은 화려한 수사나 기교에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몸의 기억과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밀도를 지닌다. 각각의 일화는 개별적 경험에 머물지 않고 보편적 인간 조건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되며, 독자는 저자의 삶을 따라가다 어느새 자신의 삶을 겹쳐 보게 된다. 특히 고통과 결핍을 비극적 서사로만 소비하지 않고, 성찰과 연대의 윤리로 전환하는 태도는 이 글에 드문 품위를 부여한다. 일상의 언어로 존재의 근원적 질문을 건드리는 힘, 그리고 개인적 회고를 사회적 기억과 윤리적 통찰로 승화시킨 점에서 이 작품은 한국 에세이가 지향할 수 있는 한 높은 기준을 보여준다. 또한 반복 구조, ‘~하면 안다’를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기억과 사유를 관통하는 리듬으로 승화시킨 점이 돋보인다. 개인의 고백을 역사적 사회적 맥락 속에 배치함으로써 에세이를 사적 기록이 아닌 공적 서사로 확장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무엇보다 이 글은 독자의 마음을 깊이 흔드는 절제된 서정성을 성취했다는 점에서 문학적 완성도가 높다. 이 에세이의 쾌미는 독자는 이 글을 덮으며 묻게 된다는 데 있다. 좋은 글은 질문을 던진다. 이 에세이는 다음과 같이 독자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는가? 무엇을 잃고 나서야 소중함을 알았는가? 그리고 무엇을 지키며 살아갈 것인가? 김홍신은 유명 작가답게 문장을 소리 높여 설교하지 않는다. 대신 겪어온 삶의 무게로 조용히 설득한다. 그래서 이 에세이는 읽히는 것이 아니라 스며드는 글이고,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게 하는 글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작품은 인간학이자 인문학이며, 무엇보다도 인생학이다. ▮권대근 주요 약력 △경남 남해 출생 △'동양문학' 수필 등단(1988) △'문예사조' 문학평론 △'경북신문' 문학평론 △미주 '중앙일보' 수필 신춘문예 당선 △현재 대신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한국본격문학가협회 회장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명예회장 △평론집 '수필은 사기다', 번역서 '한국의 명수필', 문학이론서 '문장가로 가는 길' △수필집 '고운 별 하나 가슴에 묻고' 등 28권 △부산수필문학상, 부산펜문학상, 월강문학상, 여산문학상, 정과정문학상, 부산pen번역문학상 등 수상 ▮ 김홍신의 <겪어보면 안다> 몇 해 전, 텔레비전 방송에서 제가 쓴 글 「겪어보면 안다」를 낭송한 적이 있습니다. 50초 남짓한 짧은 영상인데, 유튜브를 비롯한 각종 소셜미디어에 빠른 속도로 퍼지며 지금도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열 줄밖에 안 되는 짧은 글이지만, 사람들에게는 그럴듯하게 여겨졌나 봅니다. 세상이 변하고 세대가 달라도 사는 일에 대한 고민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내용을 한 줄 한 줄 되새기며 제 인생살이에서 느꼈던 것들을 다시 한 번 돌아보려 합니다. 굶어보면 안다, 밥이 하늘인 걸 국민학교 4학년 때 저희 집안은 금융 사고로 풍비박산이 되었습니다. 빚쟁이들 등쌀에 아버지는 집을 비웠고, 어머니는 오전 4시 통행금지 해제 사이렌이 울리기 전에 나갔다가 밤 12시 통행금지가 시작되면 집에 왔습니다. 홀로 남은 저는 굶주림에 지쳐 생쌀을 씹어 먹거나, 밖에 나가 삘기나 생미나리 따위를 뜯어 먹었습니다. 당시 20대 초반이던 옆집 누나가 담 너머로 밥 한 사발을 몰래 넘겨주면 그 밥이 하느님 같았습니다. 커서 그 은혜를 갚기 위해 TV 프로그램 등을 통해 누나를 찾아보았지만, 군의관인 형부를 따라 일찍 미국으로 이민 갔다는 소식만 전해 들었습니다. 지금은 나아진 세상살이에 대부분 끼니를 거르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굶는 사람이 여기저기에 있습니다. 제가 국회의원 시절에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악착같이 만든 까닭도 배곯던 시절을 떠올렸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모든 생명은 영양분을 섭취해야 살 수 있습니다. 먹지 못하면 죽습니다. 밥이 하늘입니다. 목마름에 지쳐보면 안다, 물이 생명인 걸 1982년 소설 집필을 위해 취재차 인도에 갔습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수돗물과 샘물을 그냥 마셨습니다. 그런데 인도에서 수돗물이나 강물을 마셨다가는 바로 병원으로 실려갈 수도 있다고 해서 할 수 없이 물을 사 먹었습니다. 유럽에 갔을 때도 석회질 때문에 물을 사서 마셔야 했으니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론 낙후되어 있지만 아직은 사람이 살 만한 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하라 사막에서도 물의 소중함을 절절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지프를 타고 사막을 횡단했는데, 한번은 깜빡하고 차에 마실 물을 싣지 못했습니다. 불구덩이 같은 사막 한가운데서 머리에 물수건을 얹고 그 위에 챙 넓은 모자를 써도 금세 수건이 말랐습니다. 지독한 목마름으로 말을 할 수가 없었고, 삭신이 녹아 흐물거리는 듯했습니다. 정신이 몽롱해질 무렵에야 목적지에 도착해 마신 물맛은 황홀경이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누구라도 지금 당장 물 없이 하루만 살아본다면 물이 곧 생명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코 막히면 안다, 숨 쉬는 것만도 행복인 걸 봄날에 산에 오르면 콧물이 흐르고 재채기가 심하게 납니다. 꽃가루 알레르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손수건이나 휴지로 해결할 수 있으니 다행입니다. 안나푸르나를 등반할 때는 폭설로 험난한 빙판길을 걷느라 몸살을 앓았습니다. 줄줄 쏟아지는 콧물을 손수건으로는 감당 못 할 지경이어서, 배낭 고리에 수건을 달아야 했습니다. 견디기 고통스러운 문제는 잘 때 생겼습니다. 콧물이 심하게 흘러 왼쪽과 오른쪽으로 번갈아 누워가며 겨우 숨을 몰아쉬어야 했습니다. 강행군으로 피곤했지만, 수면제를 먹어도 막힌 코 때문에 잠들 수가 없더군요. 평소에 저는 코로 숨 쉬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코가 막히니까 숨 쉴 수 있다는 게 엄청난 행복이란 걸 알았습니다. 어디 코뿐이겠습니까. 온몸을 내 인생의 보물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일이 없어 놀아보면 안다, 일터가 낙원인 걸 제가 20대였던 1970년대엔 취업하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셋방살이하는 부모님께 얹혀사는 게 죄송스러워 이곳저곳 일자리를 알아봤습니다. 학훈단 출신 장교로 제대했음에도, 전공이 국문학이다 보니 입사원서 낼 곳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은사인 대학 총장님께서 마침 취업을 알선해 주셨는데 한센병 환자를 돕는 기관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무서운 전염병이란 소문이 파다하여 염려되었지만 제 형편에 마다할 수 없었습니다. 일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뻐하며 2년간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았습니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유준 교수님께서 6개월 동안 한센병 환자들이 복용하는 DDS를 처방해 주어 그 독한 약을 먹었습니다. 그 경험 덕분에 한센병 환자가 주인공인, 제 첫 번째 장편소설 『해방영장』을 집필할 수 있었습니다. 더 치열해진 취업전선을 뚫기 위해 젊음을 불사르는 요즘 청년들을 보면 그 시절이 떠오릅니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20~2022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던 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사람에겐 일터가 낙원입니다. 아파보면 안다, 건강이 가장 큰 재산인 걸 정치를 접고 한동안 거의 두문불출한 채 소설을 썼습니다. 우리의 잃어버린 역사, 발해에 대한 글을 쓰며 여러 가지 병고를 겪었습니다. 3년간 햇빛을 거의 안 보고, 물을 적게 마시고, 하루 열두 시간 가까이 책상 앞에 앉았다가 그만 요로결석으로 큰 고생을 했습니다. 결석 제거 시술을 하고 나서 바로 생활 습관을 고쳐야 했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얼마 후 왼쪽 옆구리 뒤편에서 그 무시무시한 통증이 또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요로결석인 걸 대번에 알아차리고 병원을 예약했습니다. 하루 동안 통증완화제를 복용하고 척추 마취를 하고 시술을 받았습니다. 몸속에 있던 돌이 빠져나왔을 때의 안도감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때 의사 선생님이 한 말씀이 아직도 귀에 쟁쟁합니다. “아플 때는 건강이 큰 재산인 걸 알면서도 낫자마자 바로 잊어버리는 게 사람입니다. 사람은 움직이는 존재입니다. 잘 먹고 잘 배설해야 합니다. 잃은 뒤에 안다, 그것이 참 소중한 걸 저는 아직도 만년필로 원고를 씁니다. 어느 날 만년필을 가지고 외출했다가 그만 잃어버렸습니다. 새 만년필에 익숙해지려면 매일 이것저것 쓰며 몇 달을 지내야 합니다. 그러는 동안 손가락에 쥐가 나고 손목도 굳습니다. 글씨체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만년필을 단지 글 쓰는 도구로 여겼는데, 잃고 나니 그 존재가 무척 크게 다가왔습니다. 한동안 제 불찰을 탓했고,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쓰던 원고를 다른 종이 뭉치와 함께 쓰레기통에 버리는 바람에 글을 새로 쓴 적도 있습니다. 다시 쓰긴 했지만 먼저 쓴 글과 달라 마음에 들지 않아 속상했습니다. 사랑, 품성, 배려, 포용 등을 잊는 무형의 ‘영혼 분실’을 비롯하여 지금까지 잃은 게 어디 한두 가지겠습니까. 가진 것을, 옆에 있는 사람의 존재를 당연시하다가 잃었을 때에야 비로소 그것이, 또 그가 참 소중한 존재임을 압니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있지요. 지금 자신이 가진 것의 소중함을 느껴보세요. 결국 그것이 나 자신을 소중하게 만듭니다. 이별하면 안다, 그이가 천사인 걸 저는 쉰 줄에 ‘고아’가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 먼저 이승을 하직하고, 2년 뒤에 아버지께서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일곱 살이나 어린 아내와 오누이같이 의지하며 살았는데 아내는 어린 시절부터 허약했고, 결혼할 무렵에도 건강이 나빴습니다. 아픈 몸으로 아들과 딸을 낳은 건 기적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내마저 마흔아홉 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내가 살아 있을 때는 건강이 좋지 않아 가족여행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제가 우여곡절이 많은 사람이어서 어지간히 아내를 애태웠습니다. 아내가 떠날 때, 딸아이는 엄마를 끌어안고 “엄마, 이다음에는 아프지 마”라고 했습니다.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저는 아내의 휴대폰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라는 목소리만 들었을 뿐입니다. 사랑은 햇살처럼 왔다가 달빛처럼 스러져간다고 했던가요. 제 곁에 있어주던 부모님과 아내가 떠나고서야 그들이 저를 존재하게 해준 하늘의 천사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나보면 안다, 고통이 추억인 걸 군사정권 시절, 콩트집 『도둑놈과 도둑님』을 발표한 저는 계엄 당국의 보안대에 끌려가 소설 속 ‘도둑님’이 누군지 대라는 취조를 받았습니다. 국가원수 모독, 국가 체제 부정, 군 모독이라는 어마어마한 죄목으로 조사를 받았습니다. 풀려난 저는 오기를 품고 『인간시장』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총을 차고 한판 붙어보자’는 의미에서 주인공 이름을 ‘장총찬’으로 짓고, 사회 부조리와 비리를 고발하는 소설을 썼습니다. 그 바람에 『인간시장』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밀리언셀러로 역사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런저런 우여곡절과 고난이 없었다면 『인간시장』은 태어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고난과 시련을 관통한 자만이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는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고통은 훗날 추억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행해지면 안다, 아주 작은 게 행복인 걸 불행의 반대말은 행복입니다. 행복이란 엄청나고 화려한 게 아니라 평범하고 소박한 일상에서 누리는 것입니다. 어쩌면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는 것만도 행복인지 모릅니다. 교통사고가 나서 차도 사람도 다치고 병원에 갈 때는, 버스 타거나 멀쩡하게 걸어 다니는 사람이 부럽습니다. 크고 작은 사업을 하다가 실패한 사람들은 수입이 적다고 투덜대는 월급쟁이가 몹시 부럽습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당연한 것들이, 환자에게는 꿈같은 일이 되기도 합니다. 친구들과의 만남, 가족들과의 평범한 일상이 남의 얘기로만 여겨집니다. 매일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환자들에겐 오늘 하루가 전부입니다. 우리나라 10대 재벌 그룹의 어느 회장님과 그분이 돌아가실 때까지 친밀하게 ‘형님’, ‘아우’ 하며 지냈습니다. 외환위기 때 회장님의 그룹은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해체되었으며 갖가지 고난을 겪었습니다. 괴로움을 달래려고 그랬는지 회장님은 저를 자주 불러 억울한 사연들을 쏟아놓곤 했습니다. 지금도 제 책장에 그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억울한 사연을 낱낱이 기록한 두툼한 자료집 두 권이 꽂혀 있습니다.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하는 건 “자유롭게 나다니는 평범한 사람들이 한없이 부럽다”고 했던 그분의 말씀입니다. 천하에 누릴 건 다 누렸다는 소릴 들었지만, 고난과 시련을 겪으며 ‘평범한 것이 진짜 행복’이란 걸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평소 건강한 분이었으니 그런 변고를 겪지 않고 평범하게 살았더라면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아 계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저 또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애쓰게 되었습니다. 나로 인해 누군가 행복해할 때, 나 자신도 행복해지며 존재가치가 높아집니다. 사랑하는 이들이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함께 있는 시간의 소중함을 모르고, 자신이 행복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 자신이 소중한 사람인 것도 모릅니다. 하루하루가 평범한 일상의 반복일지라도 아무 탈 없이 하루를 보내고 가족과 마주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행복입니다. 죽음이 닥치면 안다, 내가 세상의 주인인 걸 1980년대 중반, 리비아의 국가원수 카다피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면담 뒤에 벵가지 근교의 바닷가 경치에 반해 산책을 하게 되었습니다. 홀로 큰 바위 사이를 거닐었는데, 어느 순간 제 가슴에 자동소총 총구가 맞닿았습니다. 그때 총을 겨눈 리비아의 국경수비대원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며 시건장치를 풀었습니다. 숨이 멎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묻고 답할 수도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지요. 자동소총의 성능을 잘 알기에 그 순간 목숨을 구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과 함께 오만가지 생각이 한꺼번에 떠올랐습니다. 바로 그때 하늘이 도왔는지 한 남자가 “세리카, 동가(친구, 동아)!”라고 소리치며 달려왔습니다. 저를 안내하던 동아그룹의 홍보요원이었습니다. 당시에 동아그룹은 리비아의 대수로 공사를 맡아 사막 한가운데서 물줄기를 찾아 사막을 적셔주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리비아 사람들이 ‘세리카, 동가’라는 말로 동아그룹과 한국에 대한 신뢰를 표현하곤 했습니다. 풀려나는 순간, ‘내가 없으면 세상 모든 것도 없다’는 경고음이 가슴을 건드렸습니다. 내가 없으면 지구와 햇빛도, 물과 밥도, 부모 형제와 사랑하는 이도 모두 소용없습니다. 죽을 고비를 넘겨본 사람은 알게 됩니다. 내 존재 가치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김홍신 에세이집 <겪어보면 안다> ▮김홍신 주요 약력 △건국대 국문과 졸업 △건국대학교 문학박사 취득 △건국대학교 명예정치학 박사 취득 △1991~1995 경제정의시민실천연합 상임집행위원 △1995~1997 (MBC재단)방송문화진흥회 이사 △1996~2000 제15대 국회의원 △2000~2003 제16대 국회의원 △2002~2004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집행위원장 △2004~2019 평화재단 이사 △2006~2008 건국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 초빙교수 △2008~2014 건국대학교 석좌교수 △2010~현재 동서문학상 운영위원장△2013~현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민주시민정치아카데미 원장 △2014~2017 통일의병 대표 △2016~현재 홍상문화재단(김홍신문학관) 이사장△2019~2025 (사)동의난달 이사장 △2024~현재 세계한글작가대회 조직위원장 △1976 현대문학에 ‘물살’로 소설가 데뷔 △1986 제12회 한국소설문학상 수상 (장편소설「풍객」) △1987 제6회 소설문학작품상 수상 (장편소설「내륙풍」)/ 제1회 건국인상 수상 △1994 자랑스러운 서울시민 600인 선정 △2001 제1회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 수상 △2007 제4회 통일문화대상 수상 (통일문화연구원, 한국일보사 주최) △2009 제14회 현대불교문학상 수상 (대한불교조계종 주최) △2009 제2회 한민족대상 수상 (한국신문기자연합회, 시사뉴스투데이) △2015 제52회 한국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단한번의 사랑」) △2022 자랑스런 충청인 대상 수상 △ 장편소설집 「해방영장」,「인간시장」,「 바람바람바람」,「난장판」,「청춘공화국」,「대곡」,「또 다른 늪」,「여신의 늪」,「우리들의 고해성사」,「야망의 땅」,「파문놀이」,「걸신」, 「풍객」,「제4계급」,「귀공자」,「여자세상」,「갈증 그리고 또 갈증」,「내륙풍」,「비틀거리는 도시」,「바람개비」,「뚝딱 애들 모여라」,「벌거숭이들」,「장보고」,「야심」,「도시에 갇힌 새」,「역마살」,「그대 영혼 훔치다」,「사랑의 장난」,「사랑은 죽음보다」,「칼날 위의 전쟁」,「우리들의 건달신부」,「초한지(전7권)」,「김홍신의 대발해(전10권)」,「단한번의 사랑」,「바람으로 그린 그림」,「죽어나간 시간을 위한 애도」 △창작집 「무죄증명」,「수녀와 늑대」,「가면의 춤」,「허수아비와 벙거지」 △수필집 「하나님과 쬐그만 악마」,「아침에 못한 말」,「인간수첩」,「아직도 그럭저럭 사십니까」,「가슴을 열어 사랑을」,「흔들려도 너는 세상의 중심에 있다」,「인생을 맛있게 사는 지혜」,「발끝으로 오래 설 수 없고 큰 걸음으로 오래 걷지 못하네」, 「인생사용설명서」, 「인생사용설명서 두 번째 이야기」,「그게 뭐 어쨌다고」,「인생견문록」,「하루사용설명서」,「자박자박 걸어요」,「겪어보면 안다」 △컬럼집 「대통령 정신차리소」,「도둑과 장물애비」 △꽁트집 「도둑놈과 도둑님」,「제법 노는 사람들」,「요즘 윗분들」,「좀 봐줘유 씨」 △시집 「한 잎의 사랑」 「그냥 살자」 △동화집 「뚝딱 애들 모여라」「노랑나비의 춤」「사랑을 배워요」「수업이 끝나면 미래로 갈 거야」 △中國古典 評譯 「삼국지(전10권)」,「수호지(전10권)」,「청소년 삼국지 (전5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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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01
  • [지구일보] 김월강 대종사 제9대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회장 취임식 개최
    [지구일보] 김월강 시인(대종사)이 제9대 사)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회장으로 취임했다. 김월강 회장은 2026년 1월 26일 11시 솔내음 한정식에서 제9대 회장 취임식을 갖고, 임원 임명장 수여식과 아울러 운영이사회도 개최하였다. 이날 김월강 회장의 취임사와 송명화 제8대 회장의 이임사가 큰 울림을 안겨주었다. 범어사 방장 정여 대종사님, 범어사 주지 정오스님, 재원스님, 문수사 지원스님, 김석규 고문 등이 축사를, 통도사 재원 큰스님이 축하패를 전달했다. 심상옥 국제펜한국본부이사장, 부산광역시장 박형준, 동래구청장 장준용 등이 축전을 보내주었고, 김석규 고문, 박송죽 고문, 양은순 상임고문 권대근 상임고문 등 70여 분이 참석해서 회장 취임을 축하해 주었다. ■ 사)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단체사진 시인 월강 대종사는 1963년 출가입산, 1986년 대한불교조계종총본산 서울 조계사 입승, 1980년 동국대학교 승가학과 졸업, 부산동래차밭골 금어사 주지, 1994년 공동선실천부산종교지도자협의회 공동대표, 1995년 부산불교연합회 상임부회장, 2005년 대한민국 청곡예술문화상 수상, 2009년 문예시대 신인상(시), 2023년 월강문학상 제정 이사장, 사)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회장, 시집으로 ‘차 한잔 듬세’ ‘달 그림자’ ‘차밭골 사랑’ ‘마음의 샘’ ‘홍두깨에 꽃이 피다’ 등이 있다. ■ 고문단 및 부회장단 임명장 수여 국제PEN한국본부부산지역위윈회 제9대 회장 김월강 대종사 취임식 2026년 1월 26일(월) 11:00-14:00 솔내음 한정식 서면점 수석부회장 김정애 위 서명자 46명, 서명 안 된 분 24명. 참석자: 번 성명 직위 번 성명 직위 번 성명 직위 번 성명 직위 1 정여스님 축하객 13 김월강 회장 25 백소율 이사 37 김미화 구의원 2 재원스님 축하객 14 김정애 수석부회장 26 박경애 이사 38 손계정 시낭송 3 산해정오 축하객 15 최순덕 부회장 27 김숙자 이사 39 송혜정 시낭송 4 지원스님 축하객 16 이종래 부회장 28 김정권 이사 40 신경숙 시낭송 5 석보스님 축하객 17 윤교숙 부회장 29 김숙자 이사 41 외 4인 시낭송 6 미상스님 축하객 18 황인숙 사무국장 30 김예순 이사 42 〃 시낭송 7 강석정목사님 축하객 19 김정열 편집주간 31 김성관 이사 43 〃 시낭송 8 양은순 상임고문 20 선경숙 편집국장 32 이태종 이사 44 〃 시낭송 9 권대근 상임고문 21 탁영완 자문위원 33 유상순 회원 45 조영춘 웃음공연 10 송명화 상임고문 22 김미순 자문위원 34 오지영 회원 46 김학용 사진촬영 11 김석규 고문 23 김희영 자문위원 35 박정숙 회원 12 박송죽 고문 24 박혜경 이사 36 김현숙 명인명장 총 70명 1 단체사진촬영 김학용 차방넷 대표 2 개회사 이종래 부회장 1) 개회 선언 2) 국민의례 3) 고인 선배 작가님들께 추모 묵념 3 회장인사 월 강 대종사 회장단 및 주요 축하객 소개, 전 회원 인사. ‘시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주제 말씀 4 내빈소개 김석규 고문, 박송죽 고문, 변종환 고문, 양은순상임고문(5, 6대 회장), 권대근 상임고문(7대 회장), 송명화 상임고문(8대 회장) 5 이임사 송명화 전임 회장(8대) 기틀을 잡으신 양은순 고문님, 비약적 발전을 이루신 권대근 고문님의 뜻을...(중략) 새 사업으로 번역문학상, 도슨트투어, 부산펜단독문학기행&세미나 등...(하략) 6 회장인사 (취임사) 월 강 대종사(9대) 문학을 사랑하고 문심을 이어오신 전 회장님과 회원님들께 공약함. 1)쓰는 즐거움 2)함께 걷는 문학공동체 3) 지역 문학의 중심 약속 7 축하패 증 정 통도사 재원 큰스님 축하패/ 월강 대종사/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동문이신 월강 대종사께서 제9대 부산펜... 8 축시낭송 손계정 외 7인 디카시 아카데미 회장 및 회원 일동 9 축사 범어사 방장 정여 대종사님, 범어사 주지 정오스님, 재원스님, 지원스님, 김석규 고문 10 축전소개 심상옥 국제펜한국본부이사장, 부산광역시장 박형준, 동래구청장 장준용 11 화환, 화 분, 족자 소개 및 증정식 국제펜한국본부이사장 심상옥,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산해정오, 범어사 방장 여산정여, 부산수필문학협회장 김정애, 이삭문학협회장 이광성, 이상 화환/ 대한불교조계종 문수사 주지 지원, 국가원로회 김계춘 신부, 부산디카시아카데미 원장 손계정, 편집장 선경숙, 문화와 문학타임 부회장 김숙자, 부회장 윤교숙, 이상 화분/ 정여 대종사 축하 친필 족자 12 임명장수여 김석규 고문 외 22명(고문, 상임고문, 자문위원, 이사, 회장단) ▶운영위원회, 이사회 안건(26년 사업 계획 추인 등)은 현 집행부에게 위임함. ▶2026년 사업계획은 문서로 대신 제출함.(시화전, 문학기행, 부산펜문학23호 발간, 제14회 부산펜문학상 운영, 총회, 시상식, 출판기념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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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예가소식
    2026-01-27

지역뉴스 검색결과

  • [지구일보] 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6) 권대근 '겪어야 비로소 보이는 삶의 가치'
    Ⅰ김홍신 에세이 <겪어보면 안다> 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6) 권대근 ‘겪어야 비로소 보이는 삶의 가치’ - 김홍신 에세이 <겪어보면 안다>를 읽다 권대근/문학평론가 김홍신 작가의 에세이 <겪어보면 안다>는 단순한 회고록이 아니라, 체험을 통해 길어 올린 인간학적 사유의 집약이라 할 수 있다. 이 에세이는 ‘안다’라는 동사의 의미를 인식이 아니라 체험으로 재정의하며, 인간이 무엇으로 살아가는 존재인가를 묻는다. 굶주림, 목마름, 호흡의 곤란, 실직, 질병, 상실, 이별, 고통, 불행, 그리고 죽음의 문턱 등 열 개의 문장들은 각각 독립된 에피소드이면서도, 하나의 거대한 삶의 계단을 이룬다. 독자는 이 계단을 오르며 자연스럽게 자기 삶을 되짚게 된다. 인문학적으로 볼 때 이 에세이는 몽테뉴의 “나는 나 자신을 연구한다”는 명제를 떠올리게 한다. 몽테뉴가 개인적 경험을 통해 보편을 탐구했듯, 김홍신은 지극히 사적인 체험에서 보편적 인간 조건을 길어 올린다. 동시에 빅터 프랭클의 “고통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인간의 마지막 자유”라는 통찰이 글의 저류를 관통한다. 고통은 파괴가 아니라 해석의 재료가 되고, 상처는 윤리적 성찰의 통로가 된다. 이 글에는 우여곡절 끝에 몸소 깨달은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 삶의 난관에 봉착한 사람들에게 건네는 구원의 메시지라 할 수 있다. 이 에세이의 맛은 품맛인데, 세 가지 층위에서 빛난다. 첫째 체험의 진정성이다. 굶주림의 기억, 사막의 갈증, 막힌 코의 숨막힘은 과장이나 수사가 아니라 몸의 기억에서 길어 올린 언어다. 문장은 화려하지 않지만 단단하고, 감정은 격앙되지 않지만 깊다. 둘째 윤리적 온도다. 그는 고통을 개인의 비극으로 닫아버리지 않고, 기초생활보장법 제정, 한센병 환자 돌봄, 청년 실업에 대한 연민으로 확장한다. 여기서 에세이는 사회적 책임을 품은 윤리적 장르가 된다. 셋째 관조의 균형이다. 절망에 침몰하지도, 교훈주의에 빠지지도 않는다. 카뮈가 말한 “부조리 속에서도 살아가는 품위”가 느껴진다. 에세이의 치료적 효과 또한 뚜렷하다. 이 글은 독자에게 “당신의 고통은 무의미하지 않다”고 속삭인다. 특히 ‘지나보면 안다, 고통이 추억인 걸’이라는 문장은 트라우마를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서사로 재구성할 가능성을 열어준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카타르시스, 연민과 공포를 통한 정화를 현대적 방식으로 구현한다. 작가는 후회 없는 삶을 살려면 우선 “비교와 계산으로 복잡해진 생각의 창고부터 비우라”고 조언함으로써,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이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희망의 메시지는 마지막 문단에서 정점에 이른다. 죽음의 위협 앞에서 깨닫는 “내가 세상의 주인”이라는 통찰은 나르시시즘이 아니라 존재론적 각성이다. 내가 사라지면 세계도 사라진다는 인식은, 역설적으로 타자와 세계를 더 사랑하게 만든다. 하이데거식의 ‘죽음을 향한 존재’가 아니라, ‘죽음을 넘어 삶을 품는 존재’에 가깝다. 이 에세이는 한 인간의 고백을 넘어 살아가는 법의 교본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있을 때 잘하라”는 평범한 격언을, 몸의 기억과 역사의 경험으로 다시 쓴다. 이 에세이의 문학적 성취는 무엇보다도 ‘체험의 진실’을 과장 없이 언어로 길어 올렸다는 데 있다. 김홍신의 문장은 화려한 수사나 기교에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몸의 기억과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밀도를 지닌다. 각각의 일화는 개별적 경험에 머물지 않고 보편적 인간 조건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되며, 독자는 저자의 삶을 따라가다 어느새 자신의 삶을 겹쳐 보게 된다. 특히 고통과 결핍을 비극적 서사로만 소비하지 않고, 성찰과 연대의 윤리로 전환하는 태도는 이 글에 드문 품위를 부여한다. 일상의 언어로 존재의 근원적 질문을 건드리는 힘, 그리고 개인적 회고를 사회적 기억과 윤리적 통찰로 승화시킨 점에서 이 작품은 한국 에세이가 지향할 수 있는 한 높은 기준을 보여준다. 또한 반복 구조, ‘~하면 안다’를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기억과 사유를 관통하는 리듬으로 승화시킨 점이 돋보인다. 개인의 고백을 역사적 사회적 맥락 속에 배치함으로써 에세이를 사적 기록이 아닌 공적 서사로 확장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무엇보다 이 글은 독자의 마음을 깊이 흔드는 절제된 서정성을 성취했다는 점에서 문학적 완성도가 높다. 이 에세이의 쾌미는 독자는 이 글을 덮으며 묻게 된다는 데 있다. 좋은 글은 질문을 던진다. 이 에세이는 다음과 같이 독자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는가? 무엇을 잃고 나서야 소중함을 알았는가? 그리고 무엇을 지키며 살아갈 것인가? 김홍신은 유명 작가답게 문장을 소리 높여 설교하지 않는다. 대신 겪어온 삶의 무게로 조용히 설득한다. 그래서 이 에세이는 읽히는 것이 아니라 스며드는 글이고,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게 하는 글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작품은 인간학이자 인문학이며, 무엇보다도 인생학이다. ▮권대근 주요 약력 △경남 남해 출생 △'동양문학' 수필 등단(1988) △'문예사조' 문학평론 △'경북신문' 문학평론 △미주 '중앙일보' 수필 신춘문예 당선 △현재 대신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한국본격문학가협회 회장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명예회장 △평론집 '수필은 사기다', 번역서 '한국의 명수필', 문학이론서 '문장가로 가는 길' △수필집 '고운 별 하나 가슴에 묻고' 등 28권 △부산수필문학상, 부산펜문학상, 월강문학상, 여산문학상, 정과정문학상, 부산pen번역문학상 등 수상 ▮ 김홍신의 <겪어보면 안다> 몇 해 전, 텔레비전 방송에서 제가 쓴 글 「겪어보면 안다」를 낭송한 적이 있습니다. 50초 남짓한 짧은 영상인데, 유튜브를 비롯한 각종 소셜미디어에 빠른 속도로 퍼지며 지금도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열 줄밖에 안 되는 짧은 글이지만, 사람들에게는 그럴듯하게 여겨졌나 봅니다. 세상이 변하고 세대가 달라도 사는 일에 대한 고민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내용을 한 줄 한 줄 되새기며 제 인생살이에서 느꼈던 것들을 다시 한 번 돌아보려 합니다. 굶어보면 안다, 밥이 하늘인 걸 국민학교 4학년 때 저희 집안은 금융 사고로 풍비박산이 되었습니다. 빚쟁이들 등쌀에 아버지는 집을 비웠고, 어머니는 오전 4시 통행금지 해제 사이렌이 울리기 전에 나갔다가 밤 12시 통행금지가 시작되면 집에 왔습니다. 홀로 남은 저는 굶주림에 지쳐 생쌀을 씹어 먹거나, 밖에 나가 삘기나 생미나리 따위를 뜯어 먹었습니다. 당시 20대 초반이던 옆집 누나가 담 너머로 밥 한 사발을 몰래 넘겨주면 그 밥이 하느님 같았습니다. 커서 그 은혜를 갚기 위해 TV 프로그램 등을 통해 누나를 찾아보았지만, 군의관인 형부를 따라 일찍 미국으로 이민 갔다는 소식만 전해 들었습니다. 지금은 나아진 세상살이에 대부분 끼니를 거르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굶는 사람이 여기저기에 있습니다. 제가 국회의원 시절에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악착같이 만든 까닭도 배곯던 시절을 떠올렸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모든 생명은 영양분을 섭취해야 살 수 있습니다. 먹지 못하면 죽습니다. 밥이 하늘입니다. 목마름에 지쳐보면 안다, 물이 생명인 걸 1982년 소설 집필을 위해 취재차 인도에 갔습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수돗물과 샘물을 그냥 마셨습니다. 그런데 인도에서 수돗물이나 강물을 마셨다가는 바로 병원으로 실려갈 수도 있다고 해서 할 수 없이 물을 사 먹었습니다. 유럽에 갔을 때도 석회질 때문에 물을 사서 마셔야 했으니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론 낙후되어 있지만 아직은 사람이 살 만한 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하라 사막에서도 물의 소중함을 절절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지프를 타고 사막을 횡단했는데, 한번은 깜빡하고 차에 마실 물을 싣지 못했습니다. 불구덩이 같은 사막 한가운데서 머리에 물수건을 얹고 그 위에 챙 넓은 모자를 써도 금세 수건이 말랐습니다. 지독한 목마름으로 말을 할 수가 없었고, 삭신이 녹아 흐물거리는 듯했습니다. 정신이 몽롱해질 무렵에야 목적지에 도착해 마신 물맛은 황홀경이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누구라도 지금 당장 물 없이 하루만 살아본다면 물이 곧 생명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코 막히면 안다, 숨 쉬는 것만도 행복인 걸 봄날에 산에 오르면 콧물이 흐르고 재채기가 심하게 납니다. 꽃가루 알레르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손수건이나 휴지로 해결할 수 있으니 다행입니다. 안나푸르나를 등반할 때는 폭설로 험난한 빙판길을 걷느라 몸살을 앓았습니다. 줄줄 쏟아지는 콧물을 손수건으로는 감당 못 할 지경이어서, 배낭 고리에 수건을 달아야 했습니다. 견디기 고통스러운 문제는 잘 때 생겼습니다. 콧물이 심하게 흘러 왼쪽과 오른쪽으로 번갈아 누워가며 겨우 숨을 몰아쉬어야 했습니다. 강행군으로 피곤했지만, 수면제를 먹어도 막힌 코 때문에 잠들 수가 없더군요. 평소에 저는 코로 숨 쉬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코가 막히니까 숨 쉴 수 있다는 게 엄청난 행복이란 걸 알았습니다. 어디 코뿐이겠습니까. 온몸을 내 인생의 보물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일이 없어 놀아보면 안다, 일터가 낙원인 걸 제가 20대였던 1970년대엔 취업하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셋방살이하는 부모님께 얹혀사는 게 죄송스러워 이곳저곳 일자리를 알아봤습니다. 학훈단 출신 장교로 제대했음에도, 전공이 국문학이다 보니 입사원서 낼 곳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은사인 대학 총장님께서 마침 취업을 알선해 주셨는데 한센병 환자를 돕는 기관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무서운 전염병이란 소문이 파다하여 염려되었지만 제 형편에 마다할 수 없었습니다. 일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뻐하며 2년간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았습니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유준 교수님께서 6개월 동안 한센병 환자들이 복용하는 DDS를 처방해 주어 그 독한 약을 먹었습니다. 그 경험 덕분에 한센병 환자가 주인공인, 제 첫 번째 장편소설 『해방영장』을 집필할 수 있었습니다. 더 치열해진 취업전선을 뚫기 위해 젊음을 불사르는 요즘 청년들을 보면 그 시절이 떠오릅니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20~2022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던 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사람에겐 일터가 낙원입니다. 아파보면 안다, 건강이 가장 큰 재산인 걸 정치를 접고 한동안 거의 두문불출한 채 소설을 썼습니다. 우리의 잃어버린 역사, 발해에 대한 글을 쓰며 여러 가지 병고를 겪었습니다. 3년간 햇빛을 거의 안 보고, 물을 적게 마시고, 하루 열두 시간 가까이 책상 앞에 앉았다가 그만 요로결석으로 큰 고생을 했습니다. 결석 제거 시술을 하고 나서 바로 생활 습관을 고쳐야 했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얼마 후 왼쪽 옆구리 뒤편에서 그 무시무시한 통증이 또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요로결석인 걸 대번에 알아차리고 병원을 예약했습니다. 하루 동안 통증완화제를 복용하고 척추 마취를 하고 시술을 받았습니다. 몸속에 있던 돌이 빠져나왔을 때의 안도감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때 의사 선생님이 한 말씀이 아직도 귀에 쟁쟁합니다. “아플 때는 건강이 큰 재산인 걸 알면서도 낫자마자 바로 잊어버리는 게 사람입니다. 사람은 움직이는 존재입니다. 잘 먹고 잘 배설해야 합니다. 잃은 뒤에 안다, 그것이 참 소중한 걸 저는 아직도 만년필로 원고를 씁니다. 어느 날 만년필을 가지고 외출했다가 그만 잃어버렸습니다. 새 만년필에 익숙해지려면 매일 이것저것 쓰며 몇 달을 지내야 합니다. 그러는 동안 손가락에 쥐가 나고 손목도 굳습니다. 글씨체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만년필을 단지 글 쓰는 도구로 여겼는데, 잃고 나니 그 존재가 무척 크게 다가왔습니다. 한동안 제 불찰을 탓했고,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쓰던 원고를 다른 종이 뭉치와 함께 쓰레기통에 버리는 바람에 글을 새로 쓴 적도 있습니다. 다시 쓰긴 했지만 먼저 쓴 글과 달라 마음에 들지 않아 속상했습니다. 사랑, 품성, 배려, 포용 등을 잊는 무형의 ‘영혼 분실’을 비롯하여 지금까지 잃은 게 어디 한두 가지겠습니까. 가진 것을, 옆에 있는 사람의 존재를 당연시하다가 잃었을 때에야 비로소 그것이, 또 그가 참 소중한 존재임을 압니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있지요. 지금 자신이 가진 것의 소중함을 느껴보세요. 결국 그것이 나 자신을 소중하게 만듭니다. 이별하면 안다, 그이가 천사인 걸 저는 쉰 줄에 ‘고아’가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 먼저 이승을 하직하고, 2년 뒤에 아버지께서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일곱 살이나 어린 아내와 오누이같이 의지하며 살았는데 아내는 어린 시절부터 허약했고, 결혼할 무렵에도 건강이 나빴습니다. 아픈 몸으로 아들과 딸을 낳은 건 기적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내마저 마흔아홉 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내가 살아 있을 때는 건강이 좋지 않아 가족여행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제가 우여곡절이 많은 사람이어서 어지간히 아내를 애태웠습니다. 아내가 떠날 때, 딸아이는 엄마를 끌어안고 “엄마, 이다음에는 아프지 마”라고 했습니다.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저는 아내의 휴대폰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라는 목소리만 들었을 뿐입니다. 사랑은 햇살처럼 왔다가 달빛처럼 스러져간다고 했던가요. 제 곁에 있어주던 부모님과 아내가 떠나고서야 그들이 저를 존재하게 해준 하늘의 천사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나보면 안다, 고통이 추억인 걸 군사정권 시절, 콩트집 『도둑놈과 도둑님』을 발표한 저는 계엄 당국의 보안대에 끌려가 소설 속 ‘도둑님’이 누군지 대라는 취조를 받았습니다. 국가원수 모독, 국가 체제 부정, 군 모독이라는 어마어마한 죄목으로 조사를 받았습니다. 풀려난 저는 오기를 품고 『인간시장』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총을 차고 한판 붙어보자’는 의미에서 주인공 이름을 ‘장총찬’으로 짓고, 사회 부조리와 비리를 고발하는 소설을 썼습니다. 그 바람에 『인간시장』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밀리언셀러로 역사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런저런 우여곡절과 고난이 없었다면 『인간시장』은 태어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고난과 시련을 관통한 자만이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는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고통은 훗날 추억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행해지면 안다, 아주 작은 게 행복인 걸 불행의 반대말은 행복입니다. 행복이란 엄청나고 화려한 게 아니라 평범하고 소박한 일상에서 누리는 것입니다. 어쩌면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는 것만도 행복인지 모릅니다. 교통사고가 나서 차도 사람도 다치고 병원에 갈 때는, 버스 타거나 멀쩡하게 걸어 다니는 사람이 부럽습니다. 크고 작은 사업을 하다가 실패한 사람들은 수입이 적다고 투덜대는 월급쟁이가 몹시 부럽습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당연한 것들이, 환자에게는 꿈같은 일이 되기도 합니다. 친구들과의 만남, 가족들과의 평범한 일상이 남의 얘기로만 여겨집니다. 매일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환자들에겐 오늘 하루가 전부입니다. 우리나라 10대 재벌 그룹의 어느 회장님과 그분이 돌아가실 때까지 친밀하게 ‘형님’, ‘아우’ 하며 지냈습니다. 외환위기 때 회장님의 그룹은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해체되었으며 갖가지 고난을 겪었습니다. 괴로움을 달래려고 그랬는지 회장님은 저를 자주 불러 억울한 사연들을 쏟아놓곤 했습니다. 지금도 제 책장에 그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억울한 사연을 낱낱이 기록한 두툼한 자료집 두 권이 꽂혀 있습니다.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하는 건 “자유롭게 나다니는 평범한 사람들이 한없이 부럽다”고 했던 그분의 말씀입니다. 천하에 누릴 건 다 누렸다는 소릴 들었지만, 고난과 시련을 겪으며 ‘평범한 것이 진짜 행복’이란 걸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평소 건강한 분이었으니 그런 변고를 겪지 않고 평범하게 살았더라면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아 계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저 또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애쓰게 되었습니다. 나로 인해 누군가 행복해할 때, 나 자신도 행복해지며 존재가치가 높아집니다. 사랑하는 이들이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함께 있는 시간의 소중함을 모르고, 자신이 행복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 자신이 소중한 사람인 것도 모릅니다. 하루하루가 평범한 일상의 반복일지라도 아무 탈 없이 하루를 보내고 가족과 마주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행복입니다. 죽음이 닥치면 안다, 내가 세상의 주인인 걸 1980년대 중반, 리비아의 국가원수 카다피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면담 뒤에 벵가지 근교의 바닷가 경치에 반해 산책을 하게 되었습니다. 홀로 큰 바위 사이를 거닐었는데, 어느 순간 제 가슴에 자동소총 총구가 맞닿았습니다. 그때 총을 겨눈 리비아의 국경수비대원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며 시건장치를 풀었습니다. 숨이 멎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묻고 답할 수도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지요. 자동소총의 성능을 잘 알기에 그 순간 목숨을 구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과 함께 오만가지 생각이 한꺼번에 떠올랐습니다. 바로 그때 하늘이 도왔는지 한 남자가 “세리카, 동가(친구, 동아)!”라고 소리치며 달려왔습니다. 저를 안내하던 동아그룹의 홍보요원이었습니다. 당시에 동아그룹은 리비아의 대수로 공사를 맡아 사막 한가운데서 물줄기를 찾아 사막을 적셔주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리비아 사람들이 ‘세리카, 동가’라는 말로 동아그룹과 한국에 대한 신뢰를 표현하곤 했습니다. 풀려나는 순간, ‘내가 없으면 세상 모든 것도 없다’는 경고음이 가슴을 건드렸습니다. 내가 없으면 지구와 햇빛도, 물과 밥도, 부모 형제와 사랑하는 이도 모두 소용없습니다. 죽을 고비를 넘겨본 사람은 알게 됩니다. 내 존재 가치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김홍신 에세이집 <겪어보면 안다> ▮김홍신 주요 약력 △건국대 국문과 졸업 △건국대학교 문학박사 취득 △건국대학교 명예정치학 박사 취득 △1991~1995 경제정의시민실천연합 상임집행위원 △1995~1997 (MBC재단)방송문화진흥회 이사 △1996~2000 제15대 국회의원 △2000~2003 제16대 국회의원 △2002~2004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집행위원장 △2004~2019 평화재단 이사 △2006~2008 건국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 초빙교수 △2008~2014 건국대학교 석좌교수 △2010~현재 동서문학상 운영위원장△2013~현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민주시민정치아카데미 원장 △2014~2017 통일의병 대표 △2016~현재 홍상문화재단(김홍신문학관) 이사장△2019~2025 (사)동의난달 이사장 △2024~현재 세계한글작가대회 조직위원장 △1976 현대문학에 ‘물살’로 소설가 데뷔 △1986 제12회 한국소설문학상 수상 (장편소설「풍객」) △1987 제6회 소설문학작품상 수상 (장편소설「내륙풍」)/ 제1회 건국인상 수상 △1994 자랑스러운 서울시민 600인 선정 △2001 제1회 자랑스러운 한국인 대상 수상 △2007 제4회 통일문화대상 수상 (통일문화연구원, 한국일보사 주최) △2009 제14회 현대불교문학상 수상 (대한불교조계종 주최) △2009 제2회 한민족대상 수상 (한국신문기자연합회, 시사뉴스투데이) △2015 제52회 한국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단한번의 사랑」) △2022 자랑스런 충청인 대상 수상 △ 장편소설집 「해방영장」,「인간시장」,「 바람바람바람」,「난장판」,「청춘공화국」,「대곡」,「또 다른 늪」,「여신의 늪」,「우리들의 고해성사」,「야망의 땅」,「파문놀이」,「걸신」, 「풍객」,「제4계급」,「귀공자」,「여자세상」,「갈증 그리고 또 갈증」,「내륙풍」,「비틀거리는 도시」,「바람개비」,「뚝딱 애들 모여라」,「벌거숭이들」,「장보고」,「야심」,「도시에 갇힌 새」,「역마살」,「그대 영혼 훔치다」,「사랑의 장난」,「사랑은 죽음보다」,「칼날 위의 전쟁」,「우리들의 건달신부」,「초한지(전7권)」,「김홍신의 대발해(전10권)」,「단한번의 사랑」,「바람으로 그린 그림」,「죽어나간 시간을 위한 애도」 △창작집 「무죄증명」,「수녀와 늑대」,「가면의 춤」,「허수아비와 벙거지」 △수필집 「하나님과 쬐그만 악마」,「아침에 못한 말」,「인간수첩」,「아직도 그럭저럭 사십니까」,「가슴을 열어 사랑을」,「흔들려도 너는 세상의 중심에 있다」,「인생을 맛있게 사는 지혜」,「발끝으로 오래 설 수 없고 큰 걸음으로 오래 걷지 못하네」, 「인생사용설명서」, 「인생사용설명서 두 번째 이야기」,「그게 뭐 어쨌다고」,「인생견문록」,「하루사용설명서」,「자박자박 걸어요」,「겪어보면 안다」 △컬럼집 「대통령 정신차리소」,「도둑과 장물애비」 △꽁트집 「도둑놈과 도둑님」,「제법 노는 사람들」,「요즘 윗분들」,「좀 봐줘유 씨」 △시집 「한 잎의 사랑」 「그냥 살자」 △동화집 「뚝딱 애들 모여라」「노랑나비의 춤」「사랑을 배워요」「수업이 끝나면 미래로 갈 거야」 △中國古典 評譯 「삼국지(전10권)」,「수호지(전10권)」,「청소년 삼국지 (전5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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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01
  • [지구일보] 김월강 대종사 제9대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회장 취임식 개최
    [지구일보] 김월강 시인(대종사)이 제9대 사)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회장으로 취임했다. 김월강 회장은 2026년 1월 26일 11시 솔내음 한정식에서 제9대 회장 취임식을 갖고, 임원 임명장 수여식과 아울러 운영이사회도 개최하였다. 이날 김월강 회장의 취임사와 송명화 제8대 회장의 이임사가 큰 울림을 안겨주었다. 범어사 방장 정여 대종사님, 범어사 주지 정오스님, 재원스님, 문수사 지원스님, 김석규 고문 등이 축사를, 통도사 재원 큰스님이 축하패를 전달했다. 심상옥 국제펜한국본부이사장, 부산광역시장 박형준, 동래구청장 장준용 등이 축전을 보내주었고, 김석규 고문, 박송죽 고문, 양은순 상임고문 권대근 상임고문 등 70여 분이 참석해서 회장 취임을 축하해 주었다. ■ 사)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단체사진 시인 월강 대종사는 1963년 출가입산, 1986년 대한불교조계종총본산 서울 조계사 입승, 1980년 동국대학교 승가학과 졸업, 부산동래차밭골 금어사 주지, 1994년 공동선실천부산종교지도자협의회 공동대표, 1995년 부산불교연합회 상임부회장, 2005년 대한민국 청곡예술문화상 수상, 2009년 문예시대 신인상(시), 2023년 월강문학상 제정 이사장, 사)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회장, 시집으로 ‘차 한잔 듬세’ ‘달 그림자’ ‘차밭골 사랑’ ‘마음의 샘’ ‘홍두깨에 꽃이 피다’ 등이 있다. ■ 고문단 및 부회장단 임명장 수여 국제PEN한국본부부산지역위윈회 제9대 회장 김월강 대종사 취임식 2026년 1월 26일(월) 11:00-14:00 솔내음 한정식 서면점 수석부회장 김정애 위 서명자 46명, 서명 안 된 분 24명. 참석자: 번 성명 직위 번 성명 직위 번 성명 직위 번 성명 직위 1 정여스님 축하객 13 김월강 회장 25 백소율 이사 37 김미화 구의원 2 재원스님 축하객 14 김정애 수석부회장 26 박경애 이사 38 손계정 시낭송 3 산해정오 축하객 15 최순덕 부회장 27 김숙자 이사 39 송혜정 시낭송 4 지원스님 축하객 16 이종래 부회장 28 김정권 이사 40 신경숙 시낭송 5 석보스님 축하객 17 윤교숙 부회장 29 김숙자 이사 41 외 4인 시낭송 6 미상스님 축하객 18 황인숙 사무국장 30 김예순 이사 42 〃 시낭송 7 강석정목사님 축하객 19 김정열 편집주간 31 김성관 이사 43 〃 시낭송 8 양은순 상임고문 20 선경숙 편집국장 32 이태종 이사 44 〃 시낭송 9 권대근 상임고문 21 탁영완 자문위원 33 유상순 회원 45 조영춘 웃음공연 10 송명화 상임고문 22 김미순 자문위원 34 오지영 회원 46 김학용 사진촬영 11 김석규 고문 23 김희영 자문위원 35 박정숙 회원 12 박송죽 고문 24 박혜경 이사 36 김현숙 명인명장 총 70명 1 단체사진촬영 김학용 차방넷 대표 2 개회사 이종래 부회장 1) 개회 선언 2) 국민의례 3) 고인 선배 작가님들께 추모 묵념 3 회장인사 월 강 대종사 회장단 및 주요 축하객 소개, 전 회원 인사. ‘시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주제 말씀 4 내빈소개 김석규 고문, 박송죽 고문, 변종환 고문, 양은순상임고문(5, 6대 회장), 권대근 상임고문(7대 회장), 송명화 상임고문(8대 회장) 5 이임사 송명화 전임 회장(8대) 기틀을 잡으신 양은순 고문님, 비약적 발전을 이루신 권대근 고문님의 뜻을...(중략) 새 사업으로 번역문학상, 도슨트투어, 부산펜단독문학기행&세미나 등...(하략) 6 회장인사 (취임사) 월 강 대종사(9대) 문학을 사랑하고 문심을 이어오신 전 회장님과 회원님들께 공약함. 1)쓰는 즐거움 2)함께 걷는 문학공동체 3) 지역 문학의 중심 약속 7 축하패 증 정 통도사 재원 큰스님 축하패/ 월강 대종사/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동문이신 월강 대종사께서 제9대 부산펜... 8 축시낭송 손계정 외 7인 디카시 아카데미 회장 및 회원 일동 9 축사 범어사 방장 정여 대종사님, 범어사 주지 정오스님, 재원스님, 지원스님, 김석규 고문 10 축전소개 심상옥 국제펜한국본부이사장, 부산광역시장 박형준, 동래구청장 장준용 11 화환, 화 분, 족자 소개 및 증정식 국제펜한국본부이사장 심상옥, 금정총림 범어사 주지 산해정오, 범어사 방장 여산정여, 부산수필문학협회장 김정애, 이삭문학협회장 이광성, 이상 화환/ 대한불교조계종 문수사 주지 지원, 국가원로회 김계춘 신부, 부산디카시아카데미 원장 손계정, 편집장 선경숙, 문화와 문학타임 부회장 김숙자, 부회장 윤교숙, 이상 화분/ 정여 대종사 축하 친필 족자 12 임명장수여 김석규 고문 외 22명(고문, 상임고문, 자문위원, 이사, 회장단) ▶운영위원회, 이사회 안건(26년 사업 계획 추인 등)은 현 집행부에게 위임함. ▶2026년 사업계획은 문서로 대신 제출함.(시화전, 문학기행, 부산펜문학23호 발간, 제14회 부산펜문학상 운영, 총회, 시상식, 출판기념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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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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