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대 졸업, 미국 미주리대학교 자원경제학 박사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 수필로 등단,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고려대 학생처장, 고려대 노동대학원 원장 역임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학습효과
김 봉 구/ 수필가. 고려대 명예교수
나는 열정적으로 강의를 한다. 내용이 복잡한 경우에는 핵심변수를 중심으로 내용을 단순화시켜 문제의 본질을 이해시킨다. 그다음에 주요 변수들 간의 관계를 분석하고 인과관계를 설명한다. 내용을 서술적으로 단조로운 톤으로 설명하는 것은 대단위 강의에서는 금물이다. 강조할 때는 개념을 명확히 하고 적절한 사례를 들어 설명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주제를 열정적으로 설명하다 보면 멈출 수 없어서 강의시간을 10여 분을 초과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시간이 지나면 자리를 뜨는 학생이 있었으나 차츰 내 강의 특성을 알게 된 후부터는 진지하게 머물러 수강했다.
특강이 있는 날은 학생들의 경청하는 분위기가 진지하다 못해 후끈 달아오르는 느낌 마져 든다. 학생들이 교실에 들어오기 바쁘게 앞자리를 차지하려는 경쟁이라도 하는 것 같은 분위기다. 바른 자세를 잡고 시선을 집중하면서 열중하는 모습이 숙연하다. 문제분석을 통해 주제를 깔끔하게 정리하면 흥미를 갖기 시작한다. 실제 데이터를 활용해서 주제를 분석하고 결론을 도출해 내면 학생들은 흥분을 넘어 감격에 젖어 들게 된다. 학생들은 필기하느라 정신이 없다. 강의가 끝난 후에도 여러 학생이 앞으로 나와 많은 질문을 제기하면서 관심을 표시한다.
강의를 잘하려면 전문분야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고 인접 학문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야 한다. 다음으로 외부강연에 대한 경험도 필수다. 명강의는 아는 것에 더해서 강의 경험이 잘 어우러져야 가능하다. 이것은 오랫동안 내가 대학강의에서 경험한 견해이다. 내가 맡은 핵심교양 두 과목은 강의 계획서의 내용 중에는 정부의 고위공직자들에게 강연한 주제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 부분이 대학가에서 큰 인기를 얻는 요인이 됐다. 한 주제에 대하여 이론 역사 정책을 종합적으로 분석함으로써 학생들은 흥미를 느끼게 된다. 대학가에서 항상 토막전문지식 위주의 강의를 벗어나지 못한 대학생들에게는 매우 신선한 접근이다. 특히 현실응용에 목말라 하던 학생들에게는 가뭄에 단비와 같이 받아들여 진다.
‘사회의 이해’ 영역은 K대 전체로 보면 300여 명의 교수가 관련되는데 그들이 강의하는 900여 전공과목의 내용과는 다르다. 달리 말하면 300여 명의 교수가 법학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경영학 등 사회과학과 내용이 중복되지 않으면서 교양과목의 특성을 아우르도록 설계해야 한다. 해마다 많은 교수가 다양한 핵심교양과목을 개설하지만 성공 여부는 학생들의 수강신청에서 결정된다. 학생들의 평가내용은 SNS 등 미디어에 소개되고 이는 결국 수강신청에 영향을 미친다. 학생들의 몫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성공하는 개설과목이 있는가 하면 추풍낙엽처럼 사라지는 과목들도 많다. 자유경쟁이다.
내가 담당하는 ‘자연자원과 경제생활’ ‘시장경제와 공공선택’의 두 과목은 처음에 한 학생이 ‘그 선생님은 말만 잘하지 내용은 평범하다’는 댓글을 올렸다. 그러자 법대생들이 ‘한 주제를 이론, 역사, 정책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결론을 제시하면서 강의하는 교수님이 고려대에 누가 있느냐고 지적하는 글이 올라왔다. 체계적으로 종합분석하여 결과까지 도출해 내는 분이 김 교수 외에 누가 있느냐는 내용이 이어졌다. 많은 지지 반응이 일어났고 뒤 따라 오는 법대 경영대 학생들의 주장에 처음 올렸던 글이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면서 내 강의가 학생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대학강의에서 학생들과의 신뢰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는 두 시간 동안 100% 무언으로 강의한 적이 있다. 그 날은 몸 컨디션이 매우 좋지 않았다. 나는 휴강할 수 없었다. 학생들의 800시간을 허공에 날려 보낼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강의실에 들어섰다. 대형칠판을 네 단원으로 구획한 후 차분히 필기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내용을 잘 파악해서 깔끔하게 정리했다. 400명이 수강하면서도 강당 내는 조용하게 필기하는 분위기였다. 나는 한 단원씩 차례대로 강의 노트를 칠판에 써 내려갔다. 누구도 의의제기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학습효과 때문이 아닌가. 그전에는 시간을 초과해가면서 열심히 강의했던 모습이 오늘은 완전히 바뀌었다. 강의가 끝났다. 왼손을 들면서 평소에 하던 그만, It’s over.라는 소리도 내지 않은 체 강당을 나왔다.
핵심교양 개설 초기에는 경험 미숙으로 과목에 신청한 학생 모두를 수강생으로 받아들인 때가 있었다. 핵심교양의 ‘사회의 이해’ 영역은 전교생을 대상으로 한 강의인데 사회의 변화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비판적 사고력을 배양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 나는 핵심교양 두 과목을 학기별로 두 반씩 번갈아 강의했다. 연간 수강생이 1600명이었다. 본교 캠퍼스에서는 가장 많은 인원이 수강하는 과목이었다. 나는 핵심교양과목을 강의할 때는 매우 긴장한다. 매 학기 철저히 강의안을 개선하고 새로운 사례 발굴 노력도 한다. 성적평가는 엄격하다. 나는 교양과목에서 C 이하의 성적은 졸업 후 취업이나 진학에 장애가 된다고 지적한다. 성적관리의 기준은 D 또는 그 이하 등급을 받은 5-7% 학생들에게는 F 학점으로 처리한다고 주지시킨다.
내가 느끼는 것은 강의 주제가 신선해야 하고, 이론 역사 정책 함의를 내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핵심교양 강의가 나에게 준 의미는 열정을 쏟아부은 결과 학생들의 호응이 긍정적이었다는 점이다. 수강신청 시작 5분 내에 등록이 마감된다. 다른 하나는 학교 당국을 안심시킨다는 사실이다. 성적을 후하게 주어서 학생들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열정적인 강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겠는가.
▼김봉구 약력
고려대 졸업, 미국 미주리대학교 자원경제학 박사
계간 에세이문예 신인상 수필로 등단,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고려대 학생처장, 고려대 노동대학원 원장 역임
현) 고려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