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수부 작가는 고려대와 동국대 대학원, 육군대학 졸업, 2003년 순수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수생반 회원, 순수문학 우수상, 2004년 전쟁문학상, 제20회 순순문학상 대상 수상
불안의 구름 속에서
고수부/ 수필가
오래전에 아내와 함께 제주도 여행을 간 일이 있다. 평생 직장에 얽매여 있다가 퇴직한 후 모처럼 여행을 가기에 비행기라고는 처음 타 보는 아내는 비행기 창문으로 보이는 날개를 보며 금방 추락할 것만 같다면서 걱정이 태산 같았다. 아내는 손에 땀을 쥐고 창밖을 보며 겁에 질려 있었다. “이거 진짜 괜찮은 거야” 몇 번을 되묻고는 날개가 금방 떨어질 것 같다며 고개를 푹 수그리고 머리를 들지 못한 채 서울에서 제주도에 갈 때까지 공포 속에 떨었다. 아내뿐만 아니라 바로 옆에 함께 탄 아주머니도 똑같은 두려움을 억누르지 못하고 불안에 떨고 있었다.
대부분 사람은 항공기가 추락할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믿어왔다. 외국 여행을 떠날 때 누가 비행기 사고가 있으리라고 추호만큼이라도 걱정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여행을 떠날 때는 누구나 들뜬 마음으로 비행기에 탑승한다. 나도 해외여행을 많이 해보았지만 한 번도 비행기가 추락한다거나 화재 사고가 일어나리라고는 상상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요즈음은 많이 달라졌다. 항공기 사고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얼마 전에 무안비행장에서의 사고로 197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생명이 희생되었다. 그 사고가 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또다시 에어부산 여객기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출발 직전에 구사일생으로 160여 명의 탑승자가 비상구 등으로 탈출하였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이제는 해외여행도 안심할 단계가 아니다. 나만은 예외일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때 사고를 당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자기만은 결코 사고가 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기에 그 비행기에 탑승했을 것이다. 겨울방학을 맞이하여 딸네 가족 4명이 미국여행을 떠났다. 학교 교사인 딸 내외는 이번이 아들 둘과 함께 다 같이 갈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로 생각하고 오래전부터 준비했다. 엊그제 뉴욕 여행을 마치고 워싱턴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간다는 문자가 온 바로 그다음 날 워싱턴 부근에서 군용헬기와 충돌사고가 발생했다는 뉴스가 떴다. 그 뉴스를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딸의 이름을 되뇌며 휴대폰을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요즈음 글로벌 시대에는 태평양 건너 미국 워싱턴에서 일어난 여객기 사고도 남의 일이 아니다. 만에 하나 딸 가족이 그 여객기에 탑승하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비행기 추락할까 봐 해외여행을 안 갈 수는 없다. 오래전 하나투어 패키지여행을 가기 위해 터키로 출발할 날짜 바로 하루 전에 그 나라 서북부에서 커다란 지진이 발생했다는 뉴스가 떴다. 우리 일행은 이미 여행사와 예약을 해놓았기 때문에 가느냐 마느냐 걱정이 되어 연락해봤더니 계획대로 떠난다고 했다. 할 수 없이 여행을 단행했다. 다행히 여행 도중 9일 동안 아무 일 없었다. 한쪽에서는 땅이 갈라져 수십 수백 명이 피 흘리며 죽어가는데도 한편에서는 신나게 여행을 즐기고 있다. 참으로 냉혹한 세상이다.
실제로 언제 사고가 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공황장애에 걸려 시달리는 사람들도 있다. 고소 공포증에 걸린 사람은 지붕에만 올라가도 오금이 저려 꼼짝 못 하는 사람도 있다. 지인 중에는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도 무서워 타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몇 년 전에 나도 공황장애로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심장이 쿵 내려앉고 아찔한 순간이 있었다. 전신의 피가 아래에서부터 머리끝까지 거꾸로 도는 듯한 충격이 일어났다. 병원에 갔더니 생전 처음 들어보는 공황장애가 의심스러우니 검사해보라고 했다. 신사동에 있는 멘탈클리닉 병원에서 정밀검사 결과 공황장애로 판명되어 치료를 받았다. 왜 그런 병에 걸렸는지 원인은 의사도 정확히 밝히지 못했다.
그때 나와 비슷한 증세로 치료를 받는 환자들을 한곳에 모아놓고 심리치료를 받았는데 나만 70대이고 나머지는 전부 젊은 청년이거나 30대 여성들이었다. 젊고 발랄한 청년이며 멋진 여성들이 공황장애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한 젊은 여성은 버스 전철을 타지 못해서 치료를 받으러 왔다. 버스나 전철만 타면 금방 충돌사고가 날 것만 같은 공포 때문에 타지를 못한다. 그러니 걷는 것 이외에는 이동을 못 하니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또 다른 청년은 비행기가 추락할까 봐 탑승을 못 하여 여행을 하지 못한다. 그러니 세상 살아가는 데 얼마나 불편하겠는가. 나는 그 정도는 아닌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사건·사고 소식이 그칠 날이 없다.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우리의 삶은 마치 파리 목숨처럼 가볍고 위태롭게 느껴진다. 그럴 때면 문득 떠오르는 찬송가 한 구절이 있다. “내일 일은 난 몰라요/하루하루 살아요/불행이나 요행함도 내 뜻대로 못해요”라는 이 가사는 삶의 불확실함 속에서 느끼는 불안의 무력감을 고스란히 남아낸다. 그러나 곧 이어지는 다음 구절은 작은 위안과 희망을 건넨다. “험한 이 길 가도 가도/ 끝은 없고 곤해요/주님 예수 손 내미사/내 손 잡아 주소서“ 라는 이 찬송가를 교회에서 수없이 부를 때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설명하기 힘든 평안함이 찾아오곤 했다.
꼭 기독교인이 아니어도 이 노래의 마음은 함께 나눌 수 있지 않을까. 불확실한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건 누군가 내미는 손 한 번 그리고 하루를 견디게 해주는 작은 노래 한 소절일지 모른다. 모든 좋은 노래에는 인간의 쓸쓸한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시적인 울림이 있으니까.
▼고수부 약력
ROTC 3기로 월남 맹호부대 참전했으며, 고려대와 동국대 대학원, 육군대학을 졸업하고 국방부 관리정보실에서 육군 중령으로 예편했다. 2003년 순수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수생반 회원, 순수문학 우수상, 2004년 전쟁문학상, 제20회 순수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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