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자는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고 했고, 퇴계 이황은 사람보다 책과 더 오래 마주한 선비였다. 링컨은 외로운 청년 시절, 책을 통해 사유의 근육을 키웠고, 처칠은 전쟁의 고독 속에서도 독서를 놓지 않았다.
[지구일보 이창호 칼럼니스트] 사람은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인생의 많은 순간은 뜻밖에도 고독 속에서 건너가야 한다.
가까운 벗이 늘 곁에 있는 사람은 드물고, 말이 통하던 이들도 세월과 처지의 차이 앞에서 자연스레 멀어진다.
그럴 때 인간은 두 갈래 길 앞에 선다. 고독을 소모적으로 견디거나, 고독을 사유의 시간으로 바꾸는 길이다.
이때 조용히 손을 내미는 존재가 있다. 바로 책이다.
‘벗이 없으면 책이 벗이다’라는 말은 단순한 위안의 문장이 아니다.
이는 인간 관계의 결핍을 대체하겠다는 소극적 태도가 아니라, 사유와 성찰의 깊이를 통해 스스로를 벗으로 만드는 적극적 선택에 가깝다.
책은 말을 걸지 않지만, 독자가 질문할 때마다 응답한다.
감정을 강요하지 않지만, 읽는 이의 마음 상태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같은 책을 다시 펼칠 때마다 문장이 달리 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동서고금 누구나 막론하고 많은 사상가와 지도자들은 책을 벗으로 삼았다.
공자는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고 했고, 퇴계 이황은 사람보다 책과 더 오래 마주한 선비였다.
링컨은 외로운 청년 시절, 책을 통해 사유의 근육을 키웠고, 처칠은 전쟁의 고독 속에서도 독서를 놓지 않았다.
이들에게 책은 지식의 저장고가 아니라, 생각을 벼리는 대화 상대였다.
책이 친구가 되는 순간은, 우리가 외로움을 회피하지 않을 때 찾아온다.
요즘처럼 관계가 과잉된 시대에도 역설적으로 깊은 대화는 사라지고 있다.
짧은 말, 즉각적인 반응, 가벼운 공감은 넘치지만, 생각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대화는 드물다.
책은 이 결핍을 메운다. 책은 서두르지 않고, 결론을 강요하지 않으며, 독자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 준다.
인간 관계에서는 좀처럼 허락되지 않는 ‘사유의 속도’를 보장해 주는 셈이다.
또 책은 이해관계가 없다. 칭찬도, 비난도 계산하지 않는다.
그저 저자의 사유를 정직하게 펼쳐 보일 뿐이다. 독자는 그 앞에서 스스로를 속일 수 없다.
그래서 책과 마주하는 시간은 곧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다.
진정한 친구란 듣기 좋은 말만 해주는 존재가 아니라,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지 않게 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책은 가장 엄격하면서도 성실한 친구다.
물론 책이 인간 관계를 대체할 수는 없다. 인간 관계가 흔들릴 때, 책은 삶의 중심을 지켜 준다.
사람에게 실망할 수는 있어도, 사유 자체에 실망하지 않도록 붙잡아 준다.
그래서 친구가 없을 때 책을 드는 행위는 도피가 아니라, 삶을 다시 세우는 준비다.
고독한 시대일수록 책의 가치는 더 또렷해진다.
벗이 없다고 느껴지는 날, 책을 펼치는 사람은 이미 혼자가 아니다.
책 속에는 수백 년을 건너온 사유와, 시대를 넘어 살아 숨 쉬는 인간의 목소리가 있다.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에게 고독은 더 이상 공백이 아니다. 그것은 사유가 시작되는 자리다.
결국 ‘친구가 없으면 책이 친구다’라는 말은 이렇게 완성된다.
책을 친구로 삼을 줄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 사람으로 뜻을 펼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