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제는 사회가 이 역량을 ‘완성된 자산’이 아니라 ‘소진된 자원’으로 바라봐 왔다는 데 있다. 정년퇴직과 함께 역할이 종료되고,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무대 뒤로 물러나야 한다는 인식은 시니어의 가능성을 스스로 축소시킨다.
[지구일보 이창호 칼럼니스트] 고령화는 더 이상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사회는 이미 ‘초고령사회’의 문턱을 넘어섰다.
시니어 세대는 복지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다시 정의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질문이 있다. “시니어에게 과연 역량이 있는가”라는 물음이다.
이 질문은 방향부터 다시 잡아야 한다.
시니어의 역량은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궤적 속에서 축적되고 다듬어지며, 다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역량이란 단순한 체력이나 기술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경험을 해석하는 능력이며, 관계를 조정하는 지혜이고, 위기를 통과해온 시간의 총합이다.
시니어는 이미 수십 년간 사회와 조직, 가정의 중심에서 책임을 감당해 온 세대다.
산업화와 민주화, 외환위기와 디지털 전환을 거치며 수많은 변화의 파고를 직접 견뎌왔다. 이 경험 자체가 역량의 토대다.
문제는 사회가 이 역량을 ‘완성된 자산’이 아니라 ‘소진된 자원’으로 바라봐 왔다는 데 있다.
정년퇴직과 함께 역할이 종료되고,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무대 뒤로 물러나야 한다는 인식은 시니어의 가능성을 스스로 축소시킨다.
역량은 사용되지 않으면 퇴화하지만, 다시 요구되고 훈련되면 얼마든지 확장된다.
시니어의 역량이 약해 보이는 이유는 부족해서가 아니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시니어에게 필요한 것은 보호가 아니라 설계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사회적 역할을 재정의하며, 자신의 경험을 다른 세대와 연결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평생학습, 재교육, 사회공헌 활동, 지역 기반의 공공 역할 등은 시니어 역량을 다시 만드는 중요한 장치다.
특히 공공 영역과 시민사회는 시니어를 ‘지원 대상’이 아닌 ‘참여 주체’로 인식해야 한다.
시니어 역량의 핵심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젊은 세대가 민첩성과 혁신으로 움직인다면, 시니어는 안정성과 판단력으로 균형을 잡는다.
갈등을 중재하고, 성급한 결정을 경계하며, 장기적 관점에서 사안을 바라보는 힘은 오랜 시간 축적된 경험에서 나온다.
이는 어떤 매뉴얼로도 단기간에 습득할 수 없는 자산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니어 스스로의 인식 변화다.
나이는 물러남의 이유가 아니라, 새로운 역할을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이다.
역량은 “이미 늦었다”는 체념에서 자라지 않는다.
배우려는 태도, 사회와 다시 연결되려는 의지, 자신의 경험을 의미로 전환하려는 노력이 있을 때 역량은 계속해서 만들어진다.
시니어의 역량을 키우는 일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과제다.
고령화 사회에서 시니어가 활력을 잃는다는 것은 곧 사회 전체가 경험과 지혜를 잃는다는 뜻이다.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시니어에게 역량이 있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시니어의 역량이 만들어질 환경을 갖추고 있는가”다.
시니어의 역량은 과거의 일이 아니다. 현재 진행형이며, 준비된 사회 속에서 다시 빛을 발하는 미래 자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