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2-14(토)
 
  • 이 대통령이 강조한 미래지향은 과거를 덮는 망각이 아니라, 과거를 직시하는 용기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에서 유교적 ‘정명(正名)’의 태도에 가깝다.

[지구일보 이창호 대기자] 오는 13,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은 외교 의제의 나열을 넘어, 동아시아 질서의 윤리적 토대를 어떻게 재정립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자리다.

 

이 회담에서 한국이 제기한 주장과 중국이 간접적으로 전달한 메시지를 유교적 시각에서 읽어내면, 동아시아 외교의 오래된 문법이 여전히 유효함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의 주장은 원칙 있는 신뢰에 방점이다.

 

과거사 문제에 대한 진정성 있는 성찰과 책임 있는 조치, 안보 협력의 실질화, 경제·기술 협력의 상호성은 모두 신()과 의()의 스피커로 설명된다.

 

유교에서 신뢰는 관계의 출발점이자 지속 조건이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신뢰는 오래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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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이창호(李昌虎)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국제다자외교평의회 의장 한중기자연맹 창시인

 

이 대통령이 강조한 미래지향은 과거를 덮는 망각이 아니라, 과거를 직시하는 용기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에서 유교적 정명(正名)’의 태도에 가깝다.

 

이름을 바로 세우지 않으면 제도가 바로 설 수 없고, 제도가 바로 서지 않으면 관계는 공허해진다.

 

또 한국은 실용외교와 협력의 확장을 말하면서도 배타적 진영 논리를 경계한다.

 

이는 중용(中庸)의 정치철학과 맞닿아 있다. 강대국 경쟁의 파고 속에서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균형은 우유부단이 아니라 절제된 선택이다.

 

중용은 양비론이 아니라, 과도함을 경계하고 적정선을 찾는 실천적 윤리다.

 

한일 협력이 지역 안정에 기여하려면 투명성과 개방성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한국의 입장은 바로 이 중용의 외교다.

 

중국의 전달 내용은 직접적인 발언보다 맥락의 스피커로 읽힌다.

 

한일 관계 개선을 환영하되, 그것이 배타적 안보 구도로 귀결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논리다.

 

조화는 추구하되 동일화를 강요하지 말라는 고전의 가르침은 오늘의 외교에서도 유효하다.

 

중국은 상호존중과 내정불간섭, 지역의 평형을 강조하며, 경쟁을 관리하는 덕치(德治)의 필요성을 에둘러 전했다.

 

힘의 과시가 아니라 덕의 축적이 질서를 만든다는 인식은 유교 정치관의 핵심이다.

 

이 지점에서 일본의 선택이 중요해진다. ()는 상대를 존중하는 형식이자, 책임을 담는 내용이다.

 

예가 형식에 그칠 때 외교는 의례로 소진된다. 과거사에 대한 성찰이 예로 구현될 때 신뢰는 회복되고, 그 신뢰 위에서만 안보·경제 협력은 지속 가능해진다.

 

한국이 요구한 것은 굴욕적 양보가 아니라 상호존중의 규범화였다.

 

결국 이번 정상회담은 동아시아 외교가 다시 윤리의 언어를 회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시험대였다.

 

신뢰와 의, 중용과 화이부동, 예와 덕이라는 유교적 가치들은 추상적 수사가 아니다.

 

그것은 갈등을 관리하고 협력을 제도화하는 현실의 기술이다. 이재명 정부의 대일 메시지와 중국의 간접적 신호가 교차한 지점은 분명하다.

 

강요 없는 조화, 원칙 있는 협력, 책임 있는 미래. 동아시아가 나아갈 길은 여전히 고전의 문장 속에 있다.

 

이창호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은 이번 한·일 정상회담은 힘의 외교가 아닌 관계의 윤리를 되묻는 자리다.""유교가 말하는 신뢰와 예, 그리고 화이부동의 정신은 오늘날 동아시아 외교가 다시 붙잡아야 할 기준이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이 제시한 원칙 있는 협력과 중국이 전한 조화의 메시지는 대립이 아니라 관리된 공존을 지향한다.

 

역사에 대한 성찰 위에서만 미래 협력은 지속될 수 있으며, 덕과 절제가 외교의 중심에 설 때 지역의 안정도 가능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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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일보] 화이부동의 스피커로 읽는 한·일 정상외교...신뢰와 중용의 동아시아 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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