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순히 관광객의 눈길을 붙잡기 위한 조형물이라 치부하기엔 그 눈망울에 담긴 서사가 예사롭지 않다.
[부산=지구일보 이창호 대기자] 부산 해운대 동백섬 해안 산책로를 걷다 보면, 갯바위 위에 앉아 아스라이 수평선을 바라보는 황동빛 여인을 마주하게 된다.
부산 해운대의 상징 중 하나인 ‘인어상’이다.
단순히 관광객의 눈길을 붙잡기 위한 조형물이라 치부하기엔 그 눈망울에 담긴 서사가 예사롭지 않다.
이 인어상에는 바다 건너 미지의 나라에서 온 공주의 애틋한 망향가(望鄕歌)가 서려 있다.
● 고국을 향한 그리움, 황옥공주 전설
해운대 인어상의 주인공은 인어 나라 ‘나란다’에서 온 황옥공주(黃玉公主)다.
전설에 따르면, 아주 먼 옛날 인어들의 나라인 나란다의 황옥공주는 해운대 무궁나라의 은혜왕에게 시집을 오게 된다.
낯선 땅에서의 생활은 행복했으나, 공주는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떨칠 수 없었다고 한다.
공주가 가련해 보였던 것일까. 나란다의 대신들은 공주에게 신비로운 황옥(黃玉) 한 알을 건넸다.
보름달이 뜨는 밤, 그 황옥을 비추어 보면 고국인 나란다의 전경이 거울처럼 나타난다는 것이다.
공주는 매일 밤 동백섬 해안가 바위에 앉아 황옥을 들여다보며, 거친 파도 너머에 있을 부모님과 고향의 모습을 그리워했다.
이 이야기가 오늘날 해운대 인어상의 유래가 되었다.
■ 가락국 허황옥 신화와의 기묘한 연결고리
흥미로운 점은 이 전설이 가야의 시조 김수로왕의 비(妃)인 허황옥(許黃玉)의 신화와 맥을 같이한다는 점이다.
인도 아유타국에서 건너왔다는 허황옥의 이름 ‘황옥’과 인어 전설 속 ‘황옥공주’의 이름이 일치하는 것은 우연의 일치라 보기 어렵다.
학계와 지역 문화계에서는 이 전설을 두고 고대 해상 교류의 흔적이 구전 설화로 정착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먼 바다를 건너온 이주민들의 고독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던 이방인의 정서가 ‘인어’라는 신비로운 존재를 빌려 투영되었다는 분석이다.
● 시대의 부침을 견디며 지켜온 자취
현재 우리가 보는 인어상은 사실 두 번째 모습이다.
1974년에 처음 세워졌던 석재 인어상은 1987년 태풍 ‘셀마’의 위력에 휩쓸려 유실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1989년 청동으로 새롭게 제작된 것이 지금의 인어상이다.
유실된 첫 인어상의 파편은 현재 부산박물관에 보존되어 있어, 그 자체가 해운대의 현대사를 증언하는 유물이 되었다.
■ 현대인에게 던지는 ‘위로’의 메시지
해운대 인어상은 단순히 전설의 재현을 넘어, 고향을 떠나 대도시로 모여든 현대인들에게 묘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화려한 마린시티의 마천루와 대비되는 고요한 인어의 뒷모습은, 우리 모두가 마음속 한편에 간직한 '돌아가고 싶은 어딘가'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
오늘도 인어상은 '억겁의 세월'을 견디며 바다를 본다.
그 시선 끝에는 잃어버린 낙원 나란다가 있을까, 아니면 우리가 잊고 지낸 순수한 본연의 모습이 있을까.
동백섬의 파도 소리는 지금도 황옥공주의 전설을 실어 나르며 해운대를 찾는 이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