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3-13(금)
 
  • 종신직은 역사적으로 권력 집중과 권위주의의 상징이었다. 이를 국제 질서의 핵심 가치인 평화와 결합시키는 순간, 평화는 더 이상 중립적 개념이 아니라 특정 인물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수단으로 전락한다.

[지구일보 이창호 대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도한 이른바 평화위원회19개국의 참여를 확보하며 국제 무대에 등장했다. 겉으로는 분쟁 해소와 안정적 평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그 실체를 들여다보면 이는 국제 질서를 보완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오히려 기존 질서를 우회하고 재편하려는 정치적 실험에 가깝다.

 

특히 문제의 핵심은 트럼프 본인이 이 기구의 종신 의장을 자임했다는 점이다. 국제 평화를 다룬다는 조직의 수장이 임기 제한도, 견제 장치도 없는 영구적 권력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 자체가 국제 협력의 기본 원칙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는 유엔을 중심으로 형성돼 온 다자주의 체계에 대한 도전이며, 국제 공공재로서의 평화를 개인의 정치 브랜드로 전유하려는 위험한 발상이다.

 

평화의 사유화, 민주주의에 대한 역주행

 

평화는 특정 국가나 정치인의 소유물이 아니다. 인류가 수차례의 전쟁과 참화를 거치며 어렵게 합의해 온 보편적 가치다. 그럼에도 종신이라는 개념을 국제 평화 기구의 수장 직함에 결합시킨 것은, 민주주의적 통제와 합의의 원리를 철저히 무시한 처사다.

 

종신직은 역사적으로 권력 집중과 권위주의의 상징이었다. 이를 국제 질서의 핵심 가치인 평화와 결합시키는 순간, 평화는 더 이상 중립적 개념이 아니라 특정 인물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수단으로 전락한다. 트럼프식 평화위원회가 말하는 평화는 국제적 합의에 기반한 평화가 아니라, 자신을 중심으로 재편된 위계 질서를 전제한 일종의 트럼프식 안정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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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이창호(李昌虎)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 국제다자외교평의회 대표의장

 

유엔을 우회하는 또 하나의 권력 축

 

국제 분쟁의 조정과 평화 유지라는 기능은 이미 유엔과 그 산하 기구들이 담당해 왔다. 물론 유엔의 한계와 비효율성에 대한 비판은 정당하다. 그러나 그 해법은 유엔을 무력화하는 별도의 기구를 만드는 데 있지 않다. 개혁과 보완, 그리고 회원국 간 책임 있는 협력이 유일한 해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새로운 평화 기구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다자주의의 느린 합의 구조를 우회해 자신의 정치적 판단을 국제 문제에 직접 투영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이는 국제 질서를 공동 관리의 영역에서 개인 주도의 무대로 바꾸려는 시도이며, 결과적으로 국제 사회의 분열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규범을 말해온 미국, 규범을 흔들다

 

미국은 유엔 창설을 주도한 국가이자, 국제 규범을 수호해야 할 가장 큰 책임을 지닌 상임이사국이다. 국제 평화와 안전의 유지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핵심 책무라는 점은 유엔헌장에 명확히 규정돼 있다.

 

그럼에도 미국의 대통령이 개인적 권위를 앞세운 평화 기구를 통해 국제 문제에 개입하려는 것은, 미국이 그동안 강조해 온 규범에 기반한 국제 질서를 스스로 훼손하는 행위다. 이는 국제법을 선택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해 온 미국의 이중적 태도를 다시 한 번 드러내는 사례이기도 하다.

 

참여 국가의 숫자가 정당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19개국의 서명은 결코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다. 그러나 참여국의 수가 곧 정당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단기적 외교 이익이나 힘의 논리에 따라 형성된 연합은 언제든 균열될 수 있으며, 민주적 통제 장치가 부재한 국제 기구는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는 도구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국제기구의 신뢰는 투명한 의사결정 구조와 공동 책임의 원칙에서 나온다. 특정 인물의 판단에 종속된 평화는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다.

 

평화는 원칙 위에서만 가능하다

 

트럼프는 종신 의장이라는 상징적 장치를 내려놓아야 한다. 미국 또한 국제 사회의 책임 있는 구성원으로서, 독자적 질서 구축이 아닌 기존 다자 체제의 강화라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

 

역사는 반복해서 증명해 왔다. 힘과 독점으로 만들어진 평화는 오래가지 못한다. 절차와 규범, 그리고 상호 존중 위에 세워진 평화만이 지속 가능한 질서로 남는다. ‘평화라는 이름으로 국제 규범을 흔드는 시도는, 결국 세계사에서 또 하나의 실패한 권력 실험으로 기록될 뿐이다.

 

평화를 파괴하는 가장 위험한 방식은, 바로 평화를 말하는 것이다.

이창호 대표칼럼니스트 기자 iunews88@gmail.com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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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칼럼] ‘평화’의 간판을 단 권력 실험, 트럼프식 세계질서는 어디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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