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3-13(금)
 
  •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송곳'이라 불렀다. 타협 없는 원칙, 상대의 허점을 꿰뚫는 예리한 논리, 그리고 국가 운영에 대한 방대한 지식은 그를 대체 불가능한 정치적 거목으로 만들었다.

시대의 정수리를 꿰뚫던 그 서슬 퍼런 원칙주의, 이제는 영면의 길로

 

[지구일보 이창호 대기자] 한국 현대사의 굽이마다 거대한 이정표를 세웠던 '강철의 전략가'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유명을 달리했다.

 

한 시대의 마감을 알리는 비보 앞에 우리는 단순히 한 정치인의 죽음을 넘어, 한국 민주주의의 한 축이 무너져 내리는 비통함을 금할 길 없다.

 

그는 민주화의 야성을 간직한 채 제도권의 경륜을 완성한, 실로 우리 시대가 낳은 '민주주의의 산 증인'이었다.

 

1987년 체제의 설계자, 그리고 '송곳' 같았던 열정

 

그의 삶은 곧 한국 민주주의의 투쟁사와 궤를 같이한다. 유신 독재에 맞선 학생 운동가에서 출발해 김대중ㆍ노무현ㆍ문재인ㆍ이재명 대통령을 만든 전략의 킹메이커로, 스스로는 행정의 수반으로서 국가의 기틀을 다졌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송곳'이라 불렀다. 타협 없는 원칙, 상대의 허점을 꿰뚫는 예리한 논리, 그리고 국가 운영에 대한 방대한 지식은 그를 대체 불가능한 정치적 거목으로 만들었다.

 

지구일보가 주목하는 그의 가치는 단순히 '승리의 기록'에 있지 않다. 그는 정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시스템'으로 정립하려 했던 드문 정치가였다.

 

5공 청문회에서의 활약은 권력의 부조리를 단죄하는 의회의 권위를 세웠고, 교육부 장관 시절의 개혁은 기득권의 저항 속에서도 공공성의 가치를 지키려는 고독한 결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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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해찬 전 총리/나무위키

 책임 총리의 전형, 행정의 품격을 높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그는 '책임 총리'라는 생소한 개념을 헌법적 가치로 현실화했다.

 

대통령의 신뢰를 바탕으로 국정 전반을 아우르는 그의 통찰력은 행정부의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비록 그 엄격함이 때로는 독선으로 비치기도 했으나, 그것은 사익이 아닌 공적 가치를 수호하려는 완고한 책임감의 발로였다.

 

그는 정치를 '세력을 모으는 기술'이 아니라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도구'로 여겼다.

 

게다가 민주당의 20년 집권론을 주창했던 것도 권력욕이 아닌, 자신이 믿는 민주적 가치가 뿌리내리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물리적 시간을 확보하려 했던 고심의 결과였다.

 

거인이 남긴 숙제... 민주주의는 아직도 길 위에 있다

 

이제 그 '큰 별'은 졌다. 하지만 그가 남긴 궤적은 밤하늘의 북극성처럼 우리 앞에 남았다.

 

그가 평생을 바쳐 지키려 했던 민주주의는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갈고 닦아야 할 과정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해찬이라는 이름 석 자는 우리에게 묻는다.

 

정치의 본령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 공동체를 꿈꾸는가. 진영의 논리가 민생을 압도하고, 대화보다는 혐오가 난무하는 오늘의 현실에서 그의 부재는 더욱 크게 다가온다.

 

그가 가졌던 원칙과 국가를 향한 뜨거운 애정이 새삼 그리워지는 이유다.

 

"정치는 허업(虛業)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실업(實業)이어야 한다."

 

그가 생전에 몸소 보여주었던 이 평범하고도 위대한 진리를 가슴에 새긴다.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이자, 영원한 전략가 이해찬. 당신이 일구어 놓은 옥토 위에서 후대들은 다시금 민주주의의 꽃을 피울 것이다.

 

거산(巨山)의 안식을 빈다.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안고 갔던 당신, 이제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평안히 잠드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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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 視線] 큰 별이 지다, 한국 민주주의의 거산(巨山) 이해찬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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