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지하거나, 종교적 교리를 이용해 정치적 적대감을 고취하는 행위는 종교의 본질인 화합과 사랑을 스스로 부정하는 처사다.
[지구일보이창호 발행인] 종교와 정치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동반자이자 숙명의 라이벌이었다.
때로는 성스러움이 세속을 구원하기도 했고, 때로는 권력의 탐욕이 신성(神性)을 오염시키기도 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다시금 불붙고 있는 성직자의 정치 참여 논란은 헌법이 보장한 '정교분리'의 원칙과 개인의 '양심 및 표현의 자유'라는 두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에 서 있다.
이를 단순한 찬반의 논리로 재단하기에 앞서, 우리는 성직자라는 특수한 신분이 갖는 도덕적 무게와 그 영향력을 냉철하게 응시해야 한다.
성직자의 정치 참여를 옹호하는 측은, 성직자 또한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임을 강조한다.
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며 종교에 의해 정치적·사회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성직자가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거나, 보편적 인권과 정의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광장에 나서는 것을 '종교의 정치 개입'으로만 매도할 수는 없다는 논리다.
역사의 변곡점마다 종교계가 보여준 예언자적 비판 정신은 민주화와 인권 신장에 기여한 바가 크다.
그러나 문제는 '참여의 방식'과 '정치적 중립성'의 훼손에 있다. 성직자의 말 한마디는, 시민의 사회적 무게감이 다르다.
신도들에게는 신의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영적 권위를 지니기 때문이다.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지하거나, 종교적 교리를 이용해 정치적 적대감을 고취하는 행위는 종교의 본질인 화합과 사랑을 스스로 부정하는 처사다.
이는 신앙의 공동체를 이념의 전장(戰場)으로 변질시키고,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기보다 증폭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특히 한국 사회처럼 종교적 다양성이 공존하는 다종교 사회에서 특정 종교인의 편향된 정치 행보는 자칫 종교 간 갈등이나 사회적 분열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우리 헌법 제20조 제2항이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명시한 이유는 정치가 종교를 이용하거나, 종교가 국가 권력을 장악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비극을 막기 위함이다.
성직자가 강단에서 특정 정파의 논리를 전파하는 순간, 종교는 세속적 권력투쟁의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진정한 의미의 성직자의 정치 참여는 '정치 권력에의 편승'이 아니라 '시대적 가치의 수호'여야 한다.
특정 이념의 전사가 되기보다는, 우리 사회가 놓치고 있는 도덕적 가치와 공동체의 선(善)을 일깨우는 '사회의 빛과 소금'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되, 스스로 권력의 품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성직자의 정치 참여가 정당성을 얻으려면 엄격한 자기 절제와 성찰이 전제되어야 한다.
성직자의 옷을 입고 행하는 모든 정치적 언사는 개인의 자유를 넘어 종교 전체의 신뢰와 직결된다.
종교가 정치를 정화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가 종교를 오염시키는 현실을 목도하며, 우리는 다시금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성직자들이 서 있는 곳은 진정 낮은 곳을 향한 헌신의 자리인가, 아니면 세속의 권력을 탐하는 탐욕의 자리인가.
성직자는 정치적 사안에 대해 침묵할 의무는 없으나, 자신의 권위가 갖는 파괴력을 직시해야 한다.
정치가 증오와 배제의 언어로 가득 찬 시대일수록, 종교는 그 너머의 화해와 통합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것이 성직자에게 부여된 진정한 사회적 책무이자, 정치 참여의 한계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