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3-13(금)
 
  • "선비는 얼어 죽어도 겻불은 쬐지 않는다."

[지구일보 이창호 발행인] 오늘날의 효율 지상주의와 실용주의 관점에서 보면 이 말은 고리타분한 고집이나 시대착오적인 결벽증으로 읽힐지 모른다.

 

당장 얼어 죽을 판에 겨를 태운 보잘것없는 불이면 어떻고, 남이 쓰다 버린 온기면 어떠냐는 반문이 뒤따른다.

 

하지만 이 서늘한 문장 속에 담긴 본질은 단순히 추위를 참는 인내심에 있지 않다.

 

그것은 '비루하게 사느니 나의 긍지를 지키겠다'는 자기 원칙이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결과 중심 사회를 향한 준엄한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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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호 필자, 세 족자를 하나로 읽으면 요렇게 연결된다. 험한 세상과 파도를 건너 한 단계 도약하면 마침내 이상과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다. 一跳逢萊閣,(일도봉내각), 波間烏峠子(파간오령자)

 

겻불의 유혹, 원칙을 팔아 치우는 시대

 

우리가 사는 작금의 현실은 어떠한가. '겻불'이 도처에 널려 있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과정의 정의로움 따위는 생략해도 좋다는 식의 결과론적 사고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권력이라는 겻불을 쬐기 위해 어제의 신념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정치인, ()라는 온기를 얻기 위해 타인의 눈물을 외면하는 자본, 그리고 대중의 관심을 얻기 위해 가짜 뉴스와 혐오를 생산하는 미디어까지 말이다.

 

과연 이들에게 '선비의 지조'는 조롱의 대상일 뿐이다. "일단 살고 봐야지",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는 식의 타협안은 우리 시대의 알량한 기준이 되었다.

 

그러나 겻불은 잠깐의 온기만 줄 뿐, 몸속 깊은 곳의 한기를 몰아내지 못한다.

 

오히려 겻불에 몸을 녹이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옷'이 타들어 가는지도 모른 채 비굴한 안락함에 중독되고 만다.

 

선비 정신은 '자기 증명'의 기록이다

 

선비가 겻불을 거부한 이유는 그것이 '나의 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얻은 혜택, 구걸하듯 얻어낸 온기는, 결국 자신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행위임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주체적 자존감'의 문제와 직결된다.

 

진정한 리더와 깨어 있는 시민은 겻불 대신 스스로 장작을 패고 불을 지피는 고통을 선택한다.

 

비록 그 과정이 더디고 춥더라도, 스스로 일궈낸 온기만이 개인과 조직을 당당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원칙을 지키느라 겪는 고난은 '상처'가 아니라 위대한 '훈장'이다.

 

얼어 죽을지언정 겻불을 쬐지 않겠다는 결기는,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내면의 기둥을 세우는 작업이다.

 

타협의 미덕이라는 가면을 벗겨라

 

현대 사회는 갈등 조율이라는 명목하에 '타협'을 미화한다.

 

물론 민주주의 사회에서 합의는 중요하다. 그러나 결코 타협해서는 안 될 가치마저 겻불과 맞바꾸는 것은 합의가 아니라 '투항'이다.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는 수많은 부조리는 리더들이 '겻불의 유혹' 앞에 무릎을 꿇었을 때 발생했다.

 

공정의 도덕적 가치를 훼손하면서 얻은 성과, 정의를 외면하며 쌓아 올린 평화는 모두 겻불에 불과하다.

 

그것은 언젠가 재만 남기고 사라질 허상이며, 그 재는 결국 우리 사회의 눈을 멀게 할 것이다.

 

선비 정신은 바로 그 지점에서 빛을 발한다.

 

모두가 겻불 주위에 모여들어 서로의 등을 다독일 때, 홀로 찬 바람을 맞으며 '이 길은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그 용기가 우리 사회의 마지막 도덕적 규범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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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사진: 이창호(李昌虎)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국제다자외교평의회 대표의장,한중기자연맹 창시인, Marquis Who’s Who 등재 저자.

 

다시, 겻불 앞에 서서

 

우리는 저마다의 추위 속에 살고 있다.

 

불확실한 미래, 치열한 경쟁, 생존의 위협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겻불을 쬐라고 유혹한다.

 

게다가 "딱 한 번만 눈 감으면 따뜻해질 수 있다"는 속삭임은 달콤하다.

 

그러나 기억해야 한다. 겻불을 쬐는 순간,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주인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조금 춥더라도, 조금 외롭더라도 자신의 불꽃을 지키며 꼿꼿이 서 있는 이들이 있을 때 사회는 비로소 품격을 갖춘다.

 

지금 당신의 눈앞에 놓인 그 온기는 정당한가? 혹시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한, 혹은 자신의 양심을 태워 만든 겻불은 아닌가?

 

얼어 죽을지언정 겻불은 쬐지 않겠다는 그 준엄한 기개가 있어야한다.

 

또 역설적으로는 우리 사회를 가장 따뜻하고 존엄하게 만드는 원동력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창호 대표칼럼니스트 기자 iunews88@gmail.com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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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겻불을 거부하는 자부심, 지금 우리에게 '선비 정신'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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