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일보 이창호 칼럼니스트] 오늘날 우리 사회의 리더십은 심각한 ‘확증 편향’의 늪에 빠져 있다.
정치는 진영 논리에 갇혀 반대편의 목소리를 ‘악(惡)’으로 규정하고, 기업과 조직은 효율이라는 미명 하에 상명하복의 침묵을 강요한다.
그러나 분명히 직시해야 할 사실이 있다. 찬성만 가득한 회의실은 리더의 유능함을 증명하는 장소가 아니라, 조직이 서서히 침몰하고 있음을 알리는 선명한 경고등이라는 점이다.
◇ 반대는 ‘불온한 도전’이 아닌 ‘최후의 보루’다
권위주의적 관성에 젖은 리더들은 반대 의견을 자신의 집정력에 괸한 도전이나 조직의 화합을 깨뜨리는 ‘불온한 잡음’으로 치부한다.
하지만 이는 본말이 전도된 시각이다. 조직을 진정으로 위협하는 것은 날카로운 반대가 아니라, 리더의 오판을 보고도 입을 닫는 ‘굴종적 침묵’이다.
역사의 비극은 언제나 리더의 귀를 즐겁게 하는 ‘예스맨’들의 합창 속에서 잉태되었다.
반대 목소리는 조직의 눈을 가리는 안개를 걷어내고, 리더의 독단이 낭떠러지로 향하지 않도록 붙잡는 최후의 안전장치다.
이 장치를 스스로 제거하는 리더는 스스로를 고립된 성벽 안에 가두는 격이며, 결국 그 성은 안으로부터 썩어 문드러지기 마련이다.
◇ 겸손함이 없는 리더십은 폭력이다
훌륭한 리더와 무능한 리더를 가르는 결정적 한 끗은 ‘지적 겸손함’에 있다.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지 않는 지도력은 소통이 아니라 폭력이다.
자신의 경험과 직관만을 절대 선으로 믿고, 또 반대 의견을 주장하는 구성원을 수동적인 ‘부속품’으로 전락시킨다.
게다가 생각의 차이를 견디지 못하는 리더는 결국 자신보다 무능한 사람들만 곁에 두게 된다.
반면, 훌륭한 리더는 자신보다 뛰어난 반대자의 논리를 즐기며, 그 갈등의 에너지를 동력으로 삼는다.
반대를 두려워하는 리더는 자신의 약함을 숨기려 애쓰는 겁쟁이에 불과하지만, 반대를 경청하는 리더는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 조직의 완성도를 높이는 전략가다.
◇ ‘심리적 안전감’이 혁신의 본령이다
혁신은 결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나오지 않는다. 혁신은 치열한 성찰과 자기 비판, 그리고 대안의 충돌이라는 용광로를 거쳐야만 그 형체를 드러낸다.
리더의 역할은 구성원들이 비판받을 두려움 없이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을 보장하는 것이다.
반대 의견을 냈을 때 불이익을 걱정해야 하는 조직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다.
리더는 구성원들의 입을 막는 ‘권위의 칼’을 내려놓고, 누구나 자유롭게 논쟁할 수 있는 ‘광장의 자리’를 깔아야 한다.
반대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일그러진 전략을 끊임없이 수정하는 리더만이 조직을 지속 가능한 미래로 견인할 수 있다.
◇ 기필코, 반대자를 동반자로 삼으라
지금 시대가 갈망하는 리더는 무결점의 초인이 아니다.
반대 의견 속에서 보석 같은 통찰을 발견할 줄 아는 혜안을 가진 사람, 그리고 자신을 향한 비판을 혁신의 자양분으로 삼을 줄 아는 역량을 가진 사람이다.
리더여, 당신의 결정에 토를 다는 이들을 곁에 두라.
당신의 확신에 찬물을 끼얹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당신을 불편하게 만드는 그 ‘반대’야말로, 당신과 당신의 조직을 파멸에서 구할 유일한 명약이다.
반대라는 거울을 깨뜨리는 리더에게는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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