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답 찾는 기계의 시대, 인간의 가치는 ‘경계 너머’를 묻는 힘에서 나온다 익숙함과 결별하고 ‘성찰적 실천가’로 거듭나야 할 때
[지구일보 이창호 대표칼럼니스트]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지능을 추월했다는 경고음이 도처에서 들려오는 시대다. 기술은 소통의 속도를 광속으로 높였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삶의 밀도와 사유의 깊이는 그 어느 때보다 얄팍해졌다.
모든 정보가 손끝에서 정답의 형태로 제시되는 오늘날, 역설적으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 하나를 마주하게 된다. “기술이 인간을 대체할 때, 인간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류 최후의 보루는 ‘질문을 던지는 능력’에 있다. 지식의 양으로는 결코 기계를 이길 수 없지만, 지혜의 정수인 질문을 창조하는 능력은 여전히 인간 고유의 영역이다.
이제 정답을 찾아내는 숙련도는 경쟁력을 잃었다. 질문자의 수준이 답의 수준을 결정하며, 기계가 대답할 수 없는 모호함과 본질의 경계에서 날카로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미래의 핵심 역량이다.
◆ 마침표의 안락함을 버리고 물음표의 불편함을 택하라
성장의 정체는 언어에서 시작된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일수록 우리 대화에는 ‘당연히’, ‘원래’ 같은 단정적인 마침표가 늘어난다. 호기심의 물음표가 사라진 자리는 고정관념이 채운다.
하지만 진정한 혁신은 익숙한 사유 체계를 흔드는 불편한 질문에서 싹튼다. 관련 없어 보이는 두 세계를 연결하고 한계를 돌파하려는 의지는 “왜 안 되는가?”라는 단 한 줄의 문장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좋은 질문은 안락한 책상이 아니라 낯선 환경과의 충돌에서 나온다. 가보지 않은 길을 걷고, 읽어보지 않은 책을 펼치며, 타자의 사유 체계에 접속할 때 비로소 ‘나만의 관점’이 형성된다.
남이 요약해 준 지식을 섭취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 메시지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집요하게 되묻는 주체적 사유가 필요하다. 어제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기보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더 나은 실수’를 하겠다는 태도가 질문의 질을 높인다.
◆ 지시하는 리더에서 질문하는 리더로
사회적 관계와 리더십의 패러다임도 변해야 한다. 과거의 리더가 정답을 지시하고 명령하는 존재였다면, 미래의 리더는 질문을 통해 구성원의 잠재력을 깨우는 존재다.
실패한 이를 질책하기보다 “이 경험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가?”라고 묻는 리더십이 조직을 유연하게 만든다.
우리는 이제 완벽을 기하며 계획만 세우는 ‘완벽주의자’가 아니라, 현장에서 부딪히며 지혜를 얻는 ‘경험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발명은 천재의 영역일지 몰라도, 어제와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은 성실하게 묻고 관찰하는 이의 몫이다.
실패가 없다는 것은 현실에 안주했다는 방증일 뿐이다. 걸림돌을 디딤돌로 바꾸는 힘 역시 “어떻게 다시 시작할 것인가”라는 희망 섞인 질문에서 비롯된다.
◆ 자기다움, 가장 독창적인 질문의 결과물
결국 모든 질문의 종착지는‘자기다운 삶’이다. 남들처럼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현대인의 불행은 스스로에게 질문하기를 멈췄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은 차별화된 독특함에서 나오고, 그 독특함은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는 성찰적 물음에서 완성된다.
주어진 목표를 기계적으로 달성하는 ‘기술적 숙련가’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 우리는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지 끊임없이 묻고 실천하는 ‘성찰적 실천가’로 변신해야 한다.
인류가 잃어가는 두 가지 선물,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을 되찾는 것. 그것이 AI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품격이자 진정한 경쟁력이다. 정답을 찾는 이가 아니라, 세상을 향해 쉼 없이 질문을 던지는 자만이 미래라는 미지의 지도를 그려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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