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소현의 ‘해 질 무렵
|박소현 제2수필집 『내 안의 윤슬이 빛날 때』
[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7) 송명화 ‘소멸에 대한 애도와 기억의 기록’
박소현의 ‘해 질 무렵
송명화/ 문학평론가
예술은 기억이 아니라 생성이다. 문학은 기억을 말하는 곳이 아니라 기억이 머무는 장소다. 닫힌 장소가 아니라 반복적으로 드나들며 기억을 소환하고 확장하며 재구성할 수 있는 열린 장소다. 이런 면에서 박소현의 수필 <해 질 무렵>은 소멸해가는 것에 대한 애도와 기록의 비문이라 할 만하다. 이 수필은 1인칭 화자인 작가적 삶의 주름에 층층이 접혀있는 기억들을 펼치며 과거의 사물, 사건, 사람을 소환한다. 그것은 이푸 투안이 제시한 토포필리아에 기반한 체험들이며, 시간을 통과했지만 여전히 기억 속의 한 자리를 차지하거나 현재를 꾸리는 행위소로 작용하고 있는 것들이다.

작가는 경남 남해의 작은 바닷가 마을 출신이다. 학창시절에 떠나왔던 고향을 찾아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외삼촌 집 마루에서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외삼촌 내외가 죽고 집은 비었다. 인구가 줄어든 마을은 쇠락한 상태다. 이 작품에서 빈집은 정동과 정서를 발생시키는 장소적 조건, 새로운 해석과 감응을 낳는 살아있는 장으로 작동한다. 여기서 토포필리아는 그저 고향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라기보다 얼마나 많은 체험이 중첩되어 있는지를 전제하는 체감의 문제로 읽을 수 있다. 마당과 항아리들만이 지키고 있는 빈집은 고유의 기능을 잃었고, 결국 소멸로 가는 과정에 있다. 멸치잡이 산업으로 분주하던 선창가 옆 자갈밭도 모두 사라졌다. 살아있던 방식이 더 이상 재생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구조물들을 작가는 수필 속에 배치한다.
좋은 작품은 끝난 것이 아니라, 계속 새로운 감응과 의미를 낳는 또 다른 잠재성의 출발점이 된다. ‘해 질 무렵’은 수필의 마지막 문장 ‘붉디붉은 노을이 소리 없이 내려앉고 있다’에만 거론되는 시간적 배경이지만 쇠락하는 것, 사라지는 것을 함의하는 멋진 제목이다. 이 제목이 가지는 분위기는 이 수필 전체의 분위기와 통일성있게 어울리며, 작가의 깊이 있는 사유와, 예화를 제시하는 간결한 문장들과도 맥을 같이 한다. 또한 구조의 단단함은 작가의 글쓰기 내공을 짐작하게 한다. 소설적 구성으로 개인서사와 지역사회 서사를 교차하고, 현재의 서사와 과거의 회상을 교직하였다.
외삼촌과 외숙모의 투병과 죽음은 이 작품에서 작가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공동체 쇠락의 증거로 쓰였다. 이는 마을의 세대교체를 기대하게 하는 사건이다. 바다를 생업의 터로 삼아 고군분투하던 어른들은 세상을 떠나고, 자식들은 더 나은 삶을 위해 도시로 떠났다. 동네에는 소수의 토박이 독거노인들이 여생을 붙잡고 있다. 학교는 폐교 위기에 처하고, 인구절벽과 고령화로 마을이 문을 닫는 지경까지 상상한다. 작가는 세대교체, 떠나는 자로부터 배턴을 이어받아야 할 자들의 부재를 예리하게 지목한다.
사라져가는 풍습도 애도의 대상이다. 동제는 전통으로 남아 있게 되는 것이 아니라 세대가 더 이상 이어받지 않기로 한 의식이다. 무당의 신들린 춤과 징 소리, 당산나무 아래서 벌이는 굿판에는 바닷가 사람들의 간절한 바람과 애환이 깃들었지만 마을에는 이제 동제의 효험을 바랄 사건이 별로 없다. 조난예방이나 만선, 손의 보존이나 마을의 번성 같은 것을 빌 사람도 빌어야 할 이유까지도 사라져 간다. 청산가리로 꿩잡이라는 공동체의 놀이 또한 기억의 흔적으로만 남았다.
들뢰즈는 예술을 지각과 감각의 블록이라고 했다. “누가 느끼는가”가 아니라 “느낌 그 자체가 작품 속에 독립적으로 존재”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작가는 기다림을 말하지 않고 배치한다. ‘기다림’을 공간에 깔린 정동의 상태로 둔다. 이는 도입부의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긴 목을 늘어뜨린 채’ 졸고 있는 빈집, 결말부의 ‘능소화가 앞다투어 피어날 것이다. 능소화의 꽃말이 기다림’으로 수미상관적으로 호응됨으로써 주제의 통일성과 구조의 안정성을 견인한다. 들뢰즈에게 문학은 감응의 기계다. 사람과 사건과 사물이 점차 사라져가는 지역사회의 쇠락을 설명으로 이해시키기보다 기억해야 할 것으로 느끼게 하는 정동적 배치가 이 작품을 읽는 쾌미다. 우리는 작품을 이해하기 전에 먼저 감응한다. “누구든지 고향을 찾을 일 있으면 우리 집에서 자고 가세요.”라는 외사촌의 제안으로 비감함을 넘어설 미래를 제안하고 있음 또한 이 수필의 남다른 미학이다.
수필 <해 질 무렵>은 잔잔한 톤으로 우리가 겪는 사회문제에 대해 독자들의 감응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하였다. 작가는 상실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상실이 아무 의미도 없이 지나도록 두지 않으려 한다. 안달하지도, 한탄하지도 않고 장소애를 바탕으로 삶의 흔적을 기억의 층위에 저장하여 순간의 지각과 감각을 굳혀서 덩어리로 만든느 데 성공했다. 쇠락해가는 시골의 정보를 주는 게 아니라 어떤 온기와 고요의 감각덩어리를 만든 것이다. 따라서 이 수필은 애도와 기록의 문학적 재구성, 사라짐을 막지는 못하지만 사라짐을 잊히지 않게 하는 아카이브로서의 가치가 문예미학적으로 구현된 본격수필이라 하겠다.
■송명화 주요 약력
△수필가, 문학평론가, 문학언어치료학 박사
△경남 남해 출신 △전남일보 신춘문예 수필(2005) △에세이문예 문학평론(2010) △전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회장, 전 한국본격수필비평가협회 회장 △계간 [에세이문예] 주간, 사)부산문인협회 부이사장, 부산교대 평생교육원 문예창작반 지도교수 △수필집 <순장소녀>(세종도서), <꽃은 소리 내어 웃지 않는다>(문학나눔), <나무의 응시 풀의 주름>(아르코창작기금) 등 6권 △이론서 <본격수필 창작이론과 적용> △김만중문학상(수필), 우하박문하문학상(평론), 한국에세이평론상(평론), 평사리문학대상(수필), 신격호샤롯데문학상(수필) 등 수상
■박소현 <해 질 무렵>
인적 없는 마당에 흐드러지게 핀 영산홍 무더기가 애잔하다. 병풍처럼 집을 감싸고 있던 뒤란의 대나무 숲도, 도시로 나간 자식들 집으로 퍼 나르던 된장, 고추장 항아리들도 예전 그대로다. 오랜 세월, 세심한 손길로 어루만져졌을 저것들은 주인의 부재를 알기나 할까? 어린 시절 내 마음속에 따스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젊디젊은 막내 외삼촌과 외숙모는 지금 어디쯤에서 지친 육신을 누이고 있을까? 나는 주인 없는 빈집 마루에 걸터앉아 켜켜이 쌓인 이 집의 전설들을 떠올리고 있다.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 금빛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주인 잃은 집 한 채가 무심히 졸고 있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긴 목을 늘어뜨린 채….
2년 전, 앙상한 팔에 링거를 꽂은 채 외숙모가 핏기 없는 얼굴로 눈을 감고 있었다. 우리 집 지척에 있는 종합병원 암 병동이었다. 코에는 호흡 보조기를 낀 채 잠인지 실신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미동이 없었다. 외숙모는 거미줄 같은 희망을 안고 천리 길을 달려 의료 시설이 좋다는 서울까지 왔을 것이다. 외숙모의 얼굴에선 똬리를 튼 죽음의 그림자가 일렁거렸고, 병실엔 깊은 정적이 흘렀다. 창밖에는 봄꽃들이 힘차게 새 움을 틔우고 있던 3월이었다.
“니 결혼식 날 보고 처음이구나.”
한참 시간이 지난 후 간신히 눈을 뜬 외숙모가 내 손을 쓰다듬었다. 물기라곤 없는 까칠한 손이었다. 30여 년 만이었다. 얼굴이 참 고왔던 40대 외숙모는 70 중반의 병든 노인이 되어 나와 마주했다.
육체와 정신의 거리는 지구의 끝과 끝처럼 멀기만 했다. 몸은 태풍 앞의 오막살이처럼 위태위태해 보였으나 정신은 명징해 오래전 일들을 어제처럼 생생하게 기억해내고 있었다. 외삼촌이 폐암에 걸리자 남편을 살려보겠다는 일념으로 정신없이 간호를 하느라 정작 당신이 중병에 걸린 줄도 몰랐다고 했다. 눈가엔 촉촉이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외숙모는 결국 내가 싸간 음식들을 하나도 입에 대지 못했다.
저 멀리 바다 한가운데 죽방렴 옆에는 조그만 배 한 척이 한가로이 떠 있다. 풍어로 한껏 부풀어 올랐던 어부들의 분주했던 손길과 그 많던 멸치잡이 배들을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대낮인데도 마을엔 지나가는 사람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그물에 걸린 멸치들을 털어 큰 가마솥에 삶아서 말리던 선창가 옆 자갈밭도 보이지 않는다. 간간히 들려오는 파도 소리에 흘러간 삶의 흔적들만 살며시 고개를 들고 있을 뿐…. 노동에 지쳐 벌컥벌컥 막걸리를 들이켜던 어부들의 불콰한 얼굴도 빛바랜 사진처럼 옛 추억이 되어버렸다.
외숙모는 끝내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화장되어 한 줌 가루로 남았다가 두 달 후 돌아가신 외삼촌과 함께 국립묘지에 묻혔다. 그 후 이 집은 빈집이 되고 말았다. 능소화가 흐드러지게 피던 초여름이었다.
엄마의 아홉 형제 중 살아 있던 유일한 피붙이였던 막내 외삼촌을 이 마을에서만 80년을 살았다. 평생을 허심, 무심 욕심 없이 살다 간 삶이었다. 나도 어릴 땐 이 동네에 살았다. 100여 호 가까운 가구가 올망졸망 머리를 맞대고 살던 마을, 아침이면 200명도 넘는 아이들이 왁자지껄 떼를 지어 학교를 가던 곳, 나와 같은 학년의 친구들만도 32명이었던 큰 마을이었다. 누구 집 큰아들이 행정고시에 붙었다거나, 누구네 딸이 명문 여고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들리면 아이들은 순식간에 제 꿈의 높이를 한 단계씩 올렸다. 그러곤 저마다의 꿈을 좇아 도시로, 도시로 떠나서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외삼촌과 외숙모가 돌아가시던 그해에 이 마을에는 일곱 명의 독거노인이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 숫자만큼 마을엔 빈집도 늘었을 것이다. 지척에 있는 초등학교와 중, 고등학교도 전교생이 100명도 채 안 돼 폐교 위기에 처했다. 인구 절벽과 고령화로 30년 후면 30%가 넘는 지방자치단체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몇십 년 후 이곳도 아무도 살지 않는 유령 마을이 되는 건 아닐까.
정초가 되면 바닷가 옆 당산나무 아래서는 한바탕 굿판이 벌어졌다. 동제洞祭였다. 당산나무 가지엔 형형색색의 끈들이 묶여 바람에 나부끼었고, 무당의 신들린 춤과 징 소리는 온 마을과 바다를 뒤흔들고 있었다. 무당의 입에서는 봇물처럼 사설이 쏟아져 나왔다. 마을 사람들도 모두가 당산나무 아래에 모여 두 손을 모으고 연신 허리를 숙이며 마을의 안녕을 빌었다. 굿판에는 바닷가 사람들의 간절한 바람과 애환이 깃들어 있었다. 축제였다. 먹을거리에 굶주린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그저 신이 났다. 동제 뒤에 얻어먹을 고사떡이나 과일들을 생각하며 풍선처럼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모두가 가난했던 날들이었다.
겨울이면 마을 오빠들은 꿩 잡이에 나섰다. 메주콩에 구멍을 뚫어 그 속에 청산가리를 넣고는 촛농으로 구멍을 막았다. 그렇게 만든 미끼를 꿩이 잘 다닐 만한 곳에 뿌려놓고는 다음날 그걸 먹고 죽은 꿩들을 잡아서 내장을 걷어내고 국을 끓이거나 백숙을 해 먹기도 했다. 그렇게 위험천만한 일을 하면서도 아무도 그게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랬다. 꿩을 먹고 죽었다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던 걸 보면 동제의 효험으로 천지신명이 도우신 건지? 슬프도록 순수했던 시절이었다.
“친척들 누구든지 고향 올 일 있으면 우리 집에서 자고 가세요.”
내 유년의 기억들이 봄날의 벚꽃 이파리만큼이나 무성한 이곳. 도시에 살면서도 수시로 찾아 와 부지런히 빈집을 보살피는 동갑내기 외사촌 덕분에 아직도 이 집에서 사람의 온기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쏴아~.
파도가 갈 길을 재촉하고 있다. 이 봄이 지나면 마당 넓은 이 집에도 수국과 능소화가 앞다투어 피어날 것이다. 능소화 꽃말이 기다림이라 했던가. 붉디붉은 저녁노을이 소리 없이 내려앉고 있다. <수필집『내 안의 윤슬이 빛날 때』>

■박소현
2002년 『책과 인생』등단.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 아르코문학창작기금 2회 수혜(2008년, 2020년). 경북문화체험전국수필대전 대상, 계간문예수필문학상, 권대근문학상 등 수상. 국제PEN한국본부, 한국문인협회, 한국산문작가협회, 철학수필가협회 회원. 수필집 『별들은 나이를 세지 않는다』『내 안의 윤슬이 빛날 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