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서정의 ‘충영’ 울산문학 26년 봄호
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32)송명화‘결핍의 재해석,공존의 발견’
박서정의 ‘충영’ 울산문학 26년 봄호
송명화/ 문학평론가
<충영>은 코털과 충영이라는 일상적이고 비문학적으로 보이는 소재를 통해 삶의 의미를 탐색한다. 치밀한 관찰력과 상상력, 깊이 있는 사유가 조화를 이루며, 우연한 발견을 존재론적 성찰로 승화시킨 성취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수필은 짧은 산문으로서 발견의 문학, 성찰의 문학, 공존의 문학이라는 지향점을 가진다. 이에 걸맞게 이 작품은 개인적 체험을 생태적 공존에 대한 성찰로 확장시키고 있다. 코털, 코감기, 충영 등 매우 사소하고 평범한 소재에서 출발하여 존재의 이유, 결핍과 충만, 공존과 관계성이라는 보편적 삶의 의미를 이끌어내었다.

작가는 나뭇잎을 자신의 몸 일부를 내어주어 다른 생명을 품는 존재, 달리 말해 타자를 수용하고 책임지는 존재로 본다. 충영을 나무가 벌레의 종족 번식을 위해 자신의 몸 일부를 제공해 주는 것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잎이 자신을 갉아 먹을 벌레의 산란까지도 품는 현상을 “의미 있는 생산적인 일”로 해석한다. 그런데 방어의 증표로 잎이 몸의 일부를 제공했다거나 잎에 털이 적어서 충영이 생기기 쉬웠다고 보는 입장은 생물학적인 면에서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이에 작가는 빈약한 코털로 인한 빈번한 코감기라는 자신의 체험을 소환하여 충영을 대비시킴으로써 자신이 의도하는 방향, 즉 공존이라는 큰 가치를 내세우는 데 성공하고 있다. 이러한 비약은 치밀한 경험의 축적과 자연스러운 사유의 전개를 통해 문학적 설득력을 획득한다. 마침내 잎은 고통을 감수하는 존재로 새롭게 의미화되며, 이는 ‘타자를 위한 자리를 내어줌’이라는 점에서 레비나스의 윤리학과 접점을 갖는다.
이 작품의 문장은 쉬우면서도 수필 특유의 서정적 정서가 살아 있다. “물소리를 들으니 그것이 씻겨 내려간 듯 시원했다” “잎들이 서로 맞닿으며 잔잔한 시니피앙을 빚어냈다” “낙엽이 되어서도 자랑스러운 훈장을 단 것처럼” 등의 표현은 산문에 시적 울림을 부여한다. 작은 보폭으로 관찰과 사유를 쌓아 올리는 차분한 진행은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얼마나 치밀한지를 드러내며, 절제된 문체는 작가가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와 사유의 방식을 문장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한다. 코털이 빈약한 신체적 결핍에서 출발한 사유는 충영을 통해 결핍과 취약함이 오히려 다른 생명을 품고 관계를 형성하는 조건이 될 수 있음을 발견하는 데 이른다. 결핍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한 작가의 시선은 제재와 어우러진 꾸밈없는 소박한 문장 속에서 더욱 빛난다.
작가는 충영을 품은 나뭇잎의 고단함에 주목한다. 거기서 가파른 벼랑을 몇 번이나 오르내려야 하는 우리네 고된 삶을 보는 것은 존재의 아픔을 감싸는 동류의식의 발로다. 이는 ‘충영의 유무와 수에 따라 인생의 무게들이 깊게 얕게 얹혔다’는 핵심 주제문장에 응축되어 독자의 심금을 울린다. 또한 “나뭇잎이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지 머리 가까이에서 하늘거렸다”에서 나뭇잎이 빚은 시니피앙을 해독하는 것은 작가의 역할이었다. 결국 작가는 ‘나뭇잎이 말하고 싶었던 것’을 충영이라는 존재를 통해 읽어낸다. 식물의 따뜻한 희생과 벌레의 안전한 기생이 생태계를 이어나가는 진리임을 찾아내고 이를 나뭇잎의 훈장으로 치환한것이다. 바위가 위로를 건네고, 나뭇잎이 말을 걸며, 충영이 삶의 의미를 품은 존재로 읽히는 것은 작가가 자연을 인간의 해석 대상이 아니라 함께 의미를 생성하는 생명의 동반자로 바라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수필 <충영>은 코털이라는 사소한 신체 경험을 충영이라는 자연 현상과 연결하여 결핍과 관계, 상호의존이라는 존재의 조건을 성찰하게 하는 작품이다. 일상의 체험을 생명의 관계성에 대한 철학으로 확장시키며, 작은 발견에서 큰 성찰을 길어 올리는 수필의 미학을유감없이 보여준다. 한마디로결핍을 생명의 본질적 조건으로 새롭게 해석한 이 작품은 평범한 일상을 존재론적 사유의 장으로 전환해낸 명수필이라고 하겠다.

■송명화 주요 약력
△수필가, 문학평론가, 문학언어치료학 박사
△경남 남해 출신 △전남일보 신춘문예 수필(2005) △에세이문예 문학평론(2010) △제8대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회장, 초대 한국본격수필비평가협회 회장 △한국도서비평가협회 부회장, 계간 [에세이문예] 주간, 사)부산광역시문인협회 부이사장, 부산교대 평생교육원 문예창작반 지도교수 △수필집 <순장소녀>(세종도서), <꽃은 소리 내어 웃지 않는다>(문학나눔), <나무의 응시 풀의 주름>(아르코창작기금) 등 6권 △이론서 <본격수필 창작이론과 적용> △김만중문학상(수필), 우하박문하문학상(평론), 한국에세이평론상(평론), 평사리문학대상(수필), 신격호샤롯데문학상 대상(수필) 등 수상
충영
박서정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이유 없는 것이 없다는 것을 더욱 실감하는 요즘이다. 코안에 있는 털 한 올까지도 그렇다. 나는 코감기에 자주 걸리는 편이다. 의사는 그곳을 들여다보고 병에 걸리기 쉽게 생겼다고 했다. 이유를 물으려다 얼마 전 거울을 통해 본 콧속이 생각나 스스로 답을 내렸다. 코털이 빈약해서일 것이라고. 며칠 전에는 또 코 밖으로 삐죽 나온 털까지 뽑았으니, 허점을 노린 세균이 재빨리 침범해 붓고 염증도 생겼을 것이라는 추측이 된다.
봄이 익어갈 무렵 코감기에 걸린 채 지인 몇 명과 인근 계곡으로 갔다. 물이 한들한들 흘러가는 그곳에는 우리가 다리 뻗고 쉴 수 있는 넓적 바위가 있었다. 여기에 도착하기 전 차선 변경을 하다 뒤차가 경적을 크게 울려 멈칫 놀랐었는데 이제야 후유증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안전거리를 유지하지 않은 채 급히 이동하던 우리의 잘못이 컸지만, 성난 기계음으로 세차게 협박을 받아, 식도에 음식이 걸린 듯했었다.
이곳에서 걸림돌 없이 순조롭게 흘러가는 물소리를 들으니, 그것이 씻겨 내려간 듯 시원했다. 일행과 물 흐름을 더욱 느끼고 싶어 바위에 귀를 대고 모두 누웠다. 차가운 느낌의 바위가 먼저 느껴졌지만, 그런 자세로 물소리를 들으니 더욱 자연과의 내밀한 소통을 하는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세상사에 지친 마음을 바위에 풀어놓으니, 그게 바로 삶이라고 딱딱하면서도 단단한 말로 위로해 주었다. 엎드려 있던 자세에서 다시 바로 누웠다. 참 오랜만에 마주 대하는 하늘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림 속에서 사진 속에서 자주 만났던 구름은 흩어져 있기도 하고 뭉쳐 있기도 했다.
우리는 그동안 각자 자신의 삶터를 지키다 이번에 저 구름처럼 뭉치게 되었다. 누우니 좋다는 지인은 더 누워 있겠다고 했다. 바위에 다시 앉은 나는 지인의 코안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거기에는 무성한 까만 털이 가득했다. 먼지 한 톨도 점막에 닿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빈틈없는 방어막처럼 보였다. 순간 코안의 털조차도 사람마다 다름을 알고 또 다른 세계를 만난 기분이었다. 나에게 부족한 게 상대에게 있고 상대에게 부족한 게 나에게 있다는 것을 다시 인지했다. 머리털이 많은 나를 지인은 늘 부러워했는데 지금은 그녀의 치밀한 코털로 인해 상황이 역전되고 있었다.
지인은 빽빽한 털 덕분인지 코감기에 잘 걸리지 않는다고 했다. 안이 헐빈한 나는 비포장도로를 지날 때면 코를 막는다. 청소기를 돌릴 때면 미세먼지가 들어갈까 봐 마스크로 방어한다. 하지만 마스크가 귀찮을 땐 숨을 참아가면서 힘들게 청소를 끝내기도 한다. 먼지로 인해 점막 보호를 위한 재채기가 곧바로 나온다. 털이 많은 사람에 비해 나의 재채기 반응은 빠른 편이다.
계곡 주변으로 나무들이 우거져 있다. 햇살을 피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거기 아래에 바짝 앉았다. 나뭇잎이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지 머리 가까이에서 하늘거렸다. 잎들이 서로 맞닿으며 잔잔한 시니피앙을 빚어냈다. 잠시 눈을 감고 음미하다 다시 눈을 뜨고 나뭇잎을 바라봤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잎에 툭툭 불거진 혹들이 보였다. 그것은 충영蟲癭이었다. 평소에는 녹색의 나뭇잎에 봉긋봉긋하게 돋아난 것을 보고 잎에도 열매가 달리나 하고 의아해했는데 그것이 나뭇잎을 살려내기 위한 방어의 증표라니 아이러니했다.
식물체에 곤충이나 진드기가 산란 기생하여 그 결과로 이상 발육된 것을 벌레혹이라고도 한다. 생물의 종족 번식을 위해 자신의 몸 일부를 제공해 주는 나무의 마음이 크게 다가왔다. 세균에게 자리를 내준 콧속이나 곤충과 진드기를 위해 터전을 마련해준 나뭇잎은 같은 듯하면서 분명 다른 점이 있었다.
어떤 나뭇잎에는 충영이 다섯 개도 있었고 더 많게도 있었다. 나뭇잎이 벌레에게 자신의 몸 일부를 빌려주는 게 자연의 섭리이겠지만 식물에 대해 알면 알수록 신비롭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마다 이 세상에 남기는 흔적이 다르듯 나뭇잎 또한 그랬다. 모든 잎에 충영이 있는 건 아니었다. 곤충에 의해 선택이 된 것에만 수를 달리하면서 부풀어 있었다. 한 잎에 유난히 많은 충영으로 인해 그 잎의 고단함이 짐작되었다. 가파른 벼랑을 몇 번이나 오르내려야 하는 우리네 고된 삶을 보는 듯해 마음이 쓰였다. 충영의 유무와 수에 따라 인생의 무게들이 깊게 얕게 얹혔다.
코털 같은 털이 나뭇잎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면 빈틈을 찾지 못한 곤충들은 산란을 할 수가 없다. 잎이 매끈하고 평평하기에 알을 낳고 기생을 한다. 털이 빈약해 이물질 침범이 잘 되는 나의 코가 이 나뭇잎과 비슷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뭇잎에는 털이 없어 벌레의 산란 장소로 적합하고 나에게는 코털이 적어 세균의 침입이 쉽다. 나뭇잎의 장점으로 벌레들의 서식처가 되고, 내 콧속의 단점으로 세균이 자란다. 이렇게 보면 서로의 장점과 단점은 결과적으로 닮은꼴이 된다. 다른 게 있다면 나뭇잎은 의미 있는 일, 다른 생명을 키워내는 생산적인 일을 한다는 거다.
혹이 돋아난 잎과 멀쩡한 잎은 차원이 다르다. 무거운 등짐을 진 채 한 생을 살아냈는지 오롯이 자신만을 위해 가뿐한 삶을 살아냈는지, 눈으로 바로 파악이 된다. 생태계에 유익한 일조를 하고, 갈 때가 되어 홀연히 떠나는 나뭇잎들은 얼마나 위풍당당할까. 뭔가를 이루어냈다는 성취감으로 인해 뒷모습까지도 의기양양할 것 같다. 끝까지 소임을 다하고 낙엽이 되어서도 자랑스러운 훈장을 단 것처럼 떳떳한 모습을 잃지 않을 것이다.
너럭바위에서 충영이 있는 나뭇잎을 살짝 매만진다. 푸른 충영은 가을이 되면 언제나 그렇듯 또 갈색으로 변할 것이다. 충영에는 식물의 따듯한 희생과 벌레의 안전한 기생이 함께 공존한다. 답답한 나의 콧속과 달리 혹 안에서의 호흡은 걸림돌 없이 평화롭다.

▮박서정 주요 약력
△ 2007년 《문학세계》 수필, 2024년 《월간문학》 소설 등단 △ 시흥문학상, 백교문학상, 함월문학상 수상 △ 한국문인협회, 울산문인협회, 울산수필가협회, 울산중구문학회 회원△ 수필집 <숨긴 말을 해> <격상> <통하니 동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