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정현의 '나비의 결심'
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33) 김정애 ‘찰나의 정지에서 길어 올린 존재론적 비상‘
홍정현의 '나비의 결심'
김정애/ 문학평론가
홍정현의 수필 「나비의 결심」은 미물의 미세한 몸짓에서 존재론적 진동을 길어 올리는 고도의 정신적 사건을 보여준다. 이 작품의 심층 구조를 관통하는 핵심은 "나는 나비의 생각을 본 것이다"라는 선언적 도약에 있다. 작가는 시적 텍스트(박형준의 시)라는 매개를 통해 6년 전 공원에서 목격한 네발나비의 ‘찰나의 멈춤’을 소환하는데, 이 멈춤은 물리적 정지가 아니라 존재의 내면에서 일어난 격렬한 사유의 소용돌이이자 실존적 결단이다.
이 작품을 입체적이고 신선하게 만드는 매력은 구조적 양식에 있다. 작가는 영국의 수필가 찰스 램(Charles Lamb)이 즐겨 썼던 ‘액자구성(Frame Narrative)’의 묘미를 영리하게 변주한다. 램이 현재의 자아가 과거의 기억이나 환상 속 인물과 내밀하게 대화하며 서사의 깊이를 더했듯, 이 수필 역시 외부 액자인 ‘현재(박형준의 시를 읽는 서재)’가 내부 액자인 ‘과거(6년 전 나비를 목격한 공원)’를 감싸 안는 형태를 취한다. 박형준의 시 속 토끼의 멈춤은 6년 동안 작가의 무의식에 안착해 있던 네발나비의 멈춤을 깨우는 서사적 열쇠(Trigger)가 된다. 외부 액자의 시적 각성은 내부 액자의 기억을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존재론적 사건'으로 변모시킨다. 이러한 중첩 구조는 작품의 서사적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하는 힘이 된다.
이러한 액자의 중심부에서 작동하는 첫 번째 축이 바로 앙리 베르그송(Henri Bergson)의 ‘지속(Durée)’의 미학이다. 내부 액자 속 나비가 방향을 바꾸기 직전 리모컨의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듯 멈추었던 순간은 불과 몇 초에 지나지 않는 ‘시계의 시간(물리적 시간)’이다. 그러나 작가에게 이 시간은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포마다 생생하게 살아 숨 쉬며 본질을 확장해 가는 ‘내적 지속의 시간’이다. 베르그송은 대상을 외부에서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내부로 들어가 그 유일무이한 생명력과 동화되는 것을 ‘직관’이라 불렀다. 작가는 나비의 외형적 궤적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관을 통해 나비의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 그 짧은 머뭇거림 속에 응축된 생의 무게를 함께 짊어진다.
“나는 나비의 생각을 보았다.” 이 문장은 작품 전체를 여는 열쇠다. 방향을 잃고 머뭇거리는 시간, 계속 나아갈 것인지 되돌아설 것인지 결정되지 않은 순간, 존재는 이미 생각의 형식 속에 들어간다. 하강은 욕망이고, 정지는 사유이며, 상승은 결심이다. 이 지점에서 작품은 존재론적 비유를 구축한다.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에 의하면 상승은 단순히 물리적 위치의 이동이 아니라, 영혼이 물질적 한계를 극복하려는 초월적 의지다. 쓰레기와 나비라는 불협화음의 공간 속에서, 나비는 중력에 순응하는 낙하를 거부하고 제 힘으로 상승을 선택한다. 이 ‘어려운 결심’의 정경은 독자에게 짜릿한 존재론적 해방감과 깊은 정화의 체험을 안겨준다.
이러한 초월이 개인의 독백으로 끝나지 않고 보편적 울림을 획득하는 배경에는 아담 스미스(Adam Smith)의 ‘동감(Sympathy)’ 이론을 빌릴 수 있다. 스미스는 인간이 상상력을 통해 타인의 처지 속으로 들어가 그의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고 보았다. 작가의 시선은 아기의 아장아장 걷는 걸음(인간의 세계)에서 시작해 네발나비의 낙하(자연의 세계)로 이동하고, 마침내 외부 액자로 돌아와 ‘망설임’과 ‘외로움’이라는 실존적 감정에서 나비와 완벽하게 합치된다. “걸어온 길에서 문득 멈춰 망설일 수밖에 없는 순간“의 외로움을 나비에게서 읽어내는 동감 능력을 통해, 나비는 단순한 곤충이 아니라 인생의 기로에서 고독한 결단을 내려야하는 인간 주체의 은유로 격상된다.
결국 홍정현의 「나비의 결심」은 인간 중심적인 지각의 틀을 깨고, 세계의 미세한 틈새에 깃든 존재들의 사유를 포착해 낸 수작이다. 작가는 찰스 램 식의 유연한 액자 구조 속에서 나비의 찰나적 망설임을 내면의 지속으로 붙잡아 두고, 하강의 현실을 상승의 결심으로 돌려세우는 존재론적 구성을 정교하게 완성해냈다. 이 수필이 남기는 깊은 진동은 나비의 날갯짓 속에서 자신의 외로운 발걸음을 발견하는 순간 우리 모두가 함께 비상하게 되는 실존적 공명이다.
▮김정애 주요 약력
△부산 출생 △윤리교육학 석사 △문학언어치료학 박사 △‘에세이문예’ 수필 등단(2012), 평론 등단(2013) △(사)부산수필문학협회 회장 △다스림 강학회 회장 △(사)국제PEN한국본부부산지역위원회 수석부회장 △에세이문예 편집1부장 △설총문학상 △민들레수필문학상 △에세이문예문학상 △사유와언어문학상 △문학발전 유공 기념은장 △부산펜문학상 작품상 △한국에세이 작품상 △부산수필문학 작품상 △수필집 ‘내 마음의 엑스레이’, ‘탈춤’, ‘인연’, ‘고슴도치 사랑’
▮홍정현의 「나비의 결심」
박형준의 시 〈토끼의 서성거림에 대하여〉을 읽다 불현듯 공원의 나비가 떠올랐다.
뛰다가 멈춘다 토끼는 몇 걸음 걷다가/ 고개를 제 발등을 향해 숙이고 한참을 멈추어 있다/ 저런 걸 생각이라고 하나/ 산책로에 나와서까지 뛰어야 하는/ 나 같은 사람도 그 순간 토끼처럼 생각이란 걸 하게 된다
그날의 나비는 쓰레기통을 향해 빠르게 내려가고 있었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가을 공원에는 소풍을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쓰레기통 바로 옆에도 한 가족이 돗자리 위에 도시락을 한가득 펼쳐놓고 아장아장 걷고 있는 아기를 보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아기의 걸음을 따라가던 내 눈길에 걸린 나비의 모습이 이상했다. 살아 움직이는 것의 낙하는 그게 무엇이든 가슴을 쓸어내리며 보게 된다. 물론 나비는 날개가 있으니 괜찮겠지만 새도 아니고 벌도 아닌 나비의 낙하라니. 새나 벌의 날쌘 비행과 방향 변화는 익숙하지만, 나비는 아니지 않은가. 꽃잎처럼 여린 날개로 살랑살랑 유영하는 모습은 ‘속도’라든지 ‘급회전’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나비의 날갯짓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시인의 마음을 움직였던가.
‘때로 아아 오오 우우 그런 비명들이 짊어진 세계여/ 때로 아련함이여’ 허수경의 시 〈저 나비〉라든가, ‘먼지처럼 가볍고/ 물방울처럼 애틋해/ 비로소 몸이 영혼 같아’라고 말하는 김선우의 〈나비 한 마리로 앉아〉 등.
시는 나비의 가벼운 몸짓이 결코 가볍지 않은 생을 안고 있다고 말한다. 공원의 나비도 그랬으리라. 얇은 날개의 움직임 속에 어떤 은유의 무게가 담겨 있는 듯했다.
쓰레기통을 향해 추락하듯이 내려가던 나비는 네발나비였다. 네발나비는 철제 쓰레기통의 녹슨 부분처럼 탁한 갈색 날개를 나풀거리고 있었다. 분명 쓰레기통 안에는 나비의 먹이가 될 만한 것이 있었을 거다. 마시다 만 음료수 같은 것들. 아, 쓰레기와 나비라…. 두 단어가 내 안에서 버석거리고 있던 그때, 급하게 하강하던 나비가 돌연 제 자리에서 멈칫거렸다. 리모컨의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모든 것이 정지했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나비는 갑자기 방향을 바꿔 팔랑팔랑 위로 올라가더니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6년 전 일인데도 생생하다. 기억 속 시간은 절대성을 상실해 나비가 그린 궤적에서 정지의 순간만 길어졌다. 거기에 나는 머물고 있었다. 그날의 나비가 내 기억에 안착해 때때로 나를 건드렸던 건 왜일까? 그 질문을 마음 한편에 두고 지냈다.
그러다 박형준 시를 읽고 깨달았다. 그건 ‘생각’이었다고. 시인이 토끼의 멈춤을 ‘생각’이라고 했듯이 그날 나는 공원 벤치에 앉아 나비의 ‘생각’을 보았다고.
성충으로 긴 겨울을 견뎌야 하는 네발나비는 늦가을의 만찬을 꿈꾸며 아래로 아래로 하강하다 쓰레기통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망설였다. 공중에 있는 나비의 망설임은 토끼나 사람처럼 오래 끌 수 없었다, 길게 멈출 수가 없었다. 찰나의 머뭇거림 끝에 나비는 다시 날아올랐다. 중력에 거슬러 올라가는 건 분명 내려가는 것보다 더 어려울 터. 애잔한 날개를 한 번 퍼덕거리고 또 퍼덕거려 하늘로 비상했다. 그 어려운 결심의 정경, 나는 나비의 생각을 본 것이다.
걸어온 길에서 문뜩 멈춰 망설일 수밖에 없는 순간. ‘계속 갈 것인가 아니면 뒤로 돌아갈 것인가’의 결정은 오직 혼자만이 할 수 있다. 멈춘 발걸음의 외로움. 그 아득한 순간이 그날 나비에게도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내 마음이 닿았다. <에세이문학 2025년 여름호>
▮홍정현
《한국산문》 2013년 등단. 《한국산문》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