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한국산문인 봄호
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37) 최혜영 ‘흔들림 속에서 생성되는 삶의 평형’
조자영의 ‘평형수를 생각하다’
최혜영/문학평론가
수필은 흔히 일상의 경험을 바탕으로 삶의 깨달음을 이끌어내는 고백의 문학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조자영의 수필 <평형수를 생각하다>는 그러한 안일한 통찰의 단계를 넘어, 삶의 근원적인 흔들림과 주체의 균열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깊은 사유의 지평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단순한 감상적 고백을 넘어, 흔들리는 인간 존재의 본질과 삶의 균형을 성찰하는 깊이 있는 사유의 텍스트이다.
이 작품의 도입부를 여는 것은 풍랑이 몰아치는 바다 위에서 요동치는 배의 풍경이다. 저녁을 먹다 마주한 TV 화면 속 선박의 모습은 작가에게 삶의 균형이라는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배가 균형과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평형수를 조절하듯, 인간의 삶 역시 역경이라는 거친 파도를 마주할 때 내면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장면은 일상의 사물을 단순한 비유에 머물게 하지 않고, 존재의 균형이라는 보편적 문제로 확장시키는 핵심 장치가 된다.
그러나 화자가 바라본 자신의 내면은 안정적이지 않다. “나의 평형수, 그것은 가끔 너무나 허술해서 비워야 할 때 차 있고 채워야 할 때 비어 있기 일쑤다”라는 구절은 자기 성찰의 출발점이 된다. 화자는 비워야 할 자리에 아집과 오만이 들어차 있고, 편견이라는 짐 때문에 타인의 마음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토로한다. 또한 “균형 잃은 일엽편주가 되어 하루를 버텨내기에 급급하다가 끝내 난파되고 마는 밤도 있다”는 진술은 삶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불완전성과 내면의 흔들림을 여실히 드러낸다.
이러한 자기 성찰은 가족과의 관계 속에서 더욱 구체화된다. 배우자를 “신이 결핍과 나머지를 적절히 맞추기 위해 보내신 스승”이라는 대목은, 동반자가 단순한 삶의 짝을 넘어 자신의 부족함과 한계를 깨닫게 하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이렇듯 인간관계는 자신의 결핍을 발견하고 타인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변화와 성장을 이루는 계기가 된다. 이를 통해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가는 과정 자체가 인간을 성숙하게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삶의 무게중심은 스스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조율되어 간다.
화자의 이러한 성찰과 변화의 과정은 에리히 프롬이 제시한 ‘소유(To Have)’와 ‘존재(To Be)’의 삶의 양식과 맞닿아 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 가치관을 움켜쥔 채 타인을 수용하지 못하는 태도는 프롬이 말한 ‘소유’의 삶에 가깝다. 반면 가족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타인과 함께 성장하려는 모습은 ‘존재’의 삶을 지향하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작품이 지닌 문학적 깊이는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문학평론가 권대근 박사는 프롬이 제시한 ‘소유’와 ‘존재’의 틀을 바탕으로, 인간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 ‘생성(Becoming)’의 차원까지 확장해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인간은 고정된 틀에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 삶의 경험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형성해 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화자가 삶의 갈등과 흔들림 속에서도 자신을 새롭게 조율해 가는 모습은 인간 존재의 역동성과 형성 과정을 드러내는 생성의 사유와 맞닿아 있다.
작품 후반부에서 화자는 부모와 형제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다시금 내면의 균형이 흔들리는 순간을 맞는다. “하루에도 열두 번 동요하는 감정의 평형을 유지하며 고요한 바다와 같은 마음으로 살 수 있는 날이 올까”라는 고백은 완성된 인간을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흔들림 속에서 자신을 성찰하며 스스로를 만들어 가는 ‘생성’의 과정을 보여준다. 이러한 흔들림은 실패의 징표가 아니라, 내면의 성숙을 이끌어가는 여정이다. 결국 이 작품의 핵심 제재인 평형수는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 물리적 장치를 넘어, 자신을 조율하며 끊임없이 형성되는 주체를 드러내는 ‘생성’의 은유로 기능한다.
흔들리지 않는 삶이 어디 있으랴. 중요한 것은 흔들림이 없는 삶이 아니라, 그 흔들림 속에서도 자신의 중심을 찾아가는 여정일 것이다. 조자영의 <평형수를 생각하다>는 일상의 경험을 철학적 사유로 확장하고, ‘평형수’라는 독창적인 상징을 통해 삶 속에서 자신을 조율하며 살아가는 인간 존재의 모습을 성찰한다는 점에서 수필적 성취를 이룬 작품이다. 특히 삶의 균형을 ‘생성’의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인간의 존재 방식과 변화의 의미를 깊이 성찰하게 하는 수작(秀作)이라 할 만하다.
▮최혜영 주요 약력
△에세이문예 평론 등단(2007) △문학평론가 △문학언어치료학박사 △한국본격수필비평가협회 회장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회장 △에세이문예 부주간 △에세이문예 수필계간평 집필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감사 △부산문인협회 이사 △권대근문학상 자문위원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 연구교수 역임 △한국에세이 평론상 △부산수필문학협회 작품상 △부산북구문인협회 작가상 수상 △공저, 『오늘의 수필 비평1,2,3』
▮조자영<평형수를 생각하다>
풍랑이 몰아치는 바다 위, 배가 흔들린다.
저녁을 먹다 말고 TV 화면 속에 눈길이 머문다. 속수무책 요동치는 배를 보고 있노라니 문득 ‘평형수’가 떠오른다. 배의 균형과 안전을 위해 존재하는 바닥짐, 평형수. 물건을 실으면 그만큼 덜어내고 내릴 땐 다시 채워 무게중심을 잡는다. 거친 파도를 만나 역경에 처할수록 평형수의 역할은 지대하다.
나의 평형수, 그것은 가끔 너무나 허술해서 비워야 할 때 차 있고 채워야 할 때 비어 있기 일쑤다. 쓸데없는 아집과 오만이 들앉아 있어 새로운 것들을 채울 공간이 없기에 늘 흔들린다. 편견이라는 짐을 미리 채워버린 탓으로 내 감정에만 충실해 다른 이의 마음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균형 잃은 일엽편주가 되어 하루 버텨내기에 급급하다가 끝내 난파되고 마는 밤도 있다.
신은 결핍과 나머지를 적절히 맞추기 위해 배우자라는 스승을 보내셨단다. 어쩌다 어른이 된 나는 남편으로 하여 단련되고 자식으로 인해 모가 깎이며 진짜 어른이 되어간다. 자식은 때론 자부심이 되고 가끔은 아킬레스건이 되기도 하며 사랑을 가르치고 인내와 겸손까지도 알게 한다.
제 한 몸 살아가는 것도 힘이 드는 시대라고 한다. 가족이 힘이 아니라 짐이 되는 세상이라고도 한다. “각자 알아서 잘 살자. 늙어서도 절대 짐이 되지 않을 테니 너희도 행여 기댈 생각 말아라.” 두 아들이 어릴 적부터 귀에 못이 박이도록 되뇌던 남편의 말에 “사람 일 어찌 될 줄 모르는데 너무 인정머리 없다.” 하며 타박하던 나. 속절없이 흔들리는 집안의 어른들을 보며 요즘 들어 그의 말에 자꾸만 머리를 끄덕이고 있는 내 안의 평형수는 과연 안전한 것일까.
균형감이란 늘채 쌓인 조화로움의 산물일 것이다. 언젠가 어느 초등학교 건물에서 보았던 문구가 떠오른다.
‘밝고 맑고 조화로운 인간’
교훈으로 보이는 그 말은 한동안 뇌리에 남아 떠나질 않았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평생 이루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과 함께. 하늘의 명을 알아차리는 나이, 지천명(知天命)을 넘어서며 내게 가장 부족한 덕목이 바로 ‘조화’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모임이나 단체 생활에서 간혹 조화로운 사람을 만나면 보석처럼 귀하게 여겨진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카리스마까지 갖추었다면 말 그대로 군계일학(群鷄一鶴), 낭중지추(囊中之錐)인 존재다. 좌도 우도 아닌 중간 어디쯤의 균형 잡힌 관점과 쉬이 달뜨지 않는 평정심으로 깊은 물처럼 파도에 휩쓸리지 않는 사람. 다만 그와 정반대의 인간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여전히 부조화투성이인 나다.
더욱이 요 며칠, 감정에 과부하가 걸리는 일이 잦다. 갱년기인지 멋대로 오르락내리락하는 것도 언짢은데 의도치 않게 부모, 형제의 마음을 중재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탓이다. 진실은 늘 존재하기 마련일진대 가까운 사이일수록 바른말을 한다는 건 세상 가장 어려운 일이 되고 만다. ‘진실한 게 늘 답은 아니야.’ 하며 이리 휩쓸리고 저리 휩쓸리다 보면 중재는커녕 내 몸 하나 중심 잡기도 힘들 때가 있다. 마음이란 게 늘 합리적이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상대가 그리 받아들이지 못함에 화가 나고, 어느 편도 녹록지 않아 스스로 고달프기만 한 걸 보면 난 한참 멀었다는 생각도 든다.
하루에도 열두 번 동요하는 감정의 평형을 맞추어 고요한 바다와 같은 마음으로 살 수 있는 날이 올까. 아니, 매일 파도처럼 출렁일지라도 부단히 바닥짐을 덜고 더하며 태연한 척 사는 게 인생인 건가.
인간의 삶에 신은 교묘하고도 시의적절하게 개입해 살 수 있는 만큼의 평형수를 맞춰놓는다고 믿는다. 정신없이 흔들리다가도 어느새 또 중심을 잡으며 삶이 이어지는 걸 보면. 살다 보면 또 살아지는 걸 보면….
<2026년 한국산문인 봄호>

▮조자영
대한문학 등단(2016년), 광주문인협회,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필집 <시들지 마라 피어있으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