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10-11(일)
 
  • 정선모의 ‘굽은 등으로 여는 생의 오아시스’ 에세이문학 26년 여름호

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39) 송명화 ‘소멸에서 생성으로, 굽은 등에서 세계로’

정선모의 ‘굽은 등으로 여는 생의 오아시스’


송명화/ 문학평론가

 


<굽은 등으로 여는 생의 오아시스>는 성찰의 깊이가 남다른 수필이다. 작가는 관찰자이면서 존재의 이면을 읽어내는 견자다. 노인의 굽은 등에서 돌봄을 보고, 키스투스의 발화에서 소멸 이후의 생성을 보고, 고래의 죽음에서 해양 생태계의 생성을 본다는 점에서 작가는 ‘보이는 현상 너머의 관계’를 보는 견자의 시선을 보여준다. 작가는 휠체어를 미는 노인의 굽은 등 곡선에서 돌봄의 시간을, 한 인간의 자기 소모 속에서 다른 생명의 지속을 발견한다. ‘생명이란 본디 소멸의 재를 먹고 자라는 법’이라는 표현이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작가의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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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모는 시선을 일상에서 자연으로, 자연에서 존재론으로 이동하며 대상을 하나의 의미체로 재구성해낸다. 노인의 구부러진 등을 ‘아내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굳어진, 고단하지만 숭고한 생의 훈장’이라 하였다. 그 등에서 작가는 ‘자신의 형태를 바꾸어 사랑하는 이의 생 속으로 더 깊이 스며드는 가장 적극적인 방식’을 본다. 키스투스의 불과 고래의 심해를 거쳐 노인의 돌봄을 하나의 생명 순환으로 연결한다. 작가는 식물과 동물의 생명 현상을 인간의 삶과 연결하고, 인간의 돌봄에서 자연의 생태적 순환으로 사유를 확장함으로써 존재의 상호의존성을 드러낸다.

 

이러한 사유의 확장은 키스투스와 고래, 노인의 돌봄이라는 세 모티프가 하나의 주제를 향해 수렴하는 과정에서 선명해진다. 이 작품의 중심 사유는 ‘소멸과 생성의 역설’이며, 소멸은 그 사유를 관통하는 핵심 모티프다. 키스투스와 고래에게서 소멸은 새로운 생명을 낳는 자연의 순환으로 나타나고, 노인에게서는 자기 소모를 통해 타자의 생명을 지속시키는 돌봄의 윤리로 나타난다. 고래의 죽음은 생태계의 생성과 보존이라는 결과를 불러오고, 신록은 새싹이라는 형태로 생명의 귀환을 알린다. 소멸이라는 하나의 모티프가 서로 다른 존재 영역을 횡단하며 의미를 변형하고 증식하는데, 모두가 중심생각을 지지하고 있어 통일성을 확보한다. 이런 구성은 작품에 구조적 완결성과 사유의 다층성을 동시에 부여한다. 반면 결말부에서 추상적이고 가치 판단적인 어휘를 거듭 사용하여 의미를 강하게 규정하는 방식은 작품의 주제를 부각시키며 독자가 스스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여백을 다소 좁히기도 한다.

 

소멸을 생명을 가능하게 하는 과정으로 전환하는 생태적 상상력 또한 이 작품을 남다르게 한다. 자연과 인간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생명 순환 안에 놓여 있다는 인식이 작품의 바탕에 깔려 있다. 키스투스는 불과 열을 통해 잠자던 씨앗을 깨우는 존재로, 고래는 자신의 사체로 바닷속 생태계를 먹여 살리는 오아시스로 형상화된다. 식물인 키스투스와 동물인 고래의 생명 현상을 찾아낸 것은 이 글을 본격수필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중요한 장치다. 지상에서 위로 솟구치는 불과 심해로 가라앉는 고래의 사체라는 상반된 운동이 모두 생명을 되살리는 힘으로 작동한다.

 

작가는 휠체어를 미는 노인의 등을 보고 있다. 노인의 ‘심하게 구부러진 등’에서 노인의 헌신과 사랑을 읽어내고 그것을 숭고한 가치로 의미화한다. 이 수필에서 작가가 돌봄을 숭고한 헌신으로 받아들이게 된 배경은 ’몹시도 굽어‘, ‘하루도 빠짐없이’, ‘손길에 정성이’로 간단히 다뤄지고 있다. 이러한 생략은 돌봄과 자기소진이 어떻게 생명을 잉태하는 책임 윤리로 전환되는지를 독자가 상상하게 하는 한편, 주인공의 삶을 좀 더 가까이에서 체험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작품은 노인의 굽은 등을 돌봄의 숭고함으로 해석하는 데 성공하지만, 그 숭고함이 너무 빨리 부여되면서 돌봄의 고통과 피로, 인간적 갈등의 층위가 다소 지워진다.

 

평자는 <굽은 등으로 여는 생의 오아시스>를 ‘헌신적인 부부애’를 다룬 수필이라기보다, 소멸을 단순한 상실이 아니라 다른 생명을 가능하게 하는 생성의 과정으로 사유한 작품으로 읽었다. 이 글은 자연의 생태적 순환과 인간의 희생 윤리를 동일한 생명원리로 묶어 생명과 소멸, 헌신의 가치를 되묻게 한다. 등이 굽은 이웃 노인이 병든 아내를 산책시키는 장면을 본 구체적 경험을 생명과 소멸에 관한 보편적 사유로 확장하고 조직한 데서 이 수필의 문학적 성취가 빛난다. 한마디로 평범한 관찰을 생명과 소멸에 관한 존재론적 사유로 확장한 본격수필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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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명화 주요 약력

 

△수필가, 문학평론가, 문학언어치료학 박사 

△경남 남해 출신  △전남일보 신춘문예 수필(2005) △에세이문예 문학평론(2010) △제8대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회장, 초대 한국본격수필비평가협회 회장 △한국도서비평가협회 부회장, 계간 [에세이문예] 주간, 사)부산광역시문인협회 부이사장, 부산교대 평생교육원 문예창작반 지도교수 △수필집 <순장소녀>(세종도서), <꽃은 소리 내어 웃지 않는다>(문학나눔), <나무의 응시 풀의 주름>(아르코창작기금) 등 7권 △이론서 <본격수필 창작이론과 적용> △김만중문학상(수필), 우하박문하문학상(평론), 한국에세이평론상(평론), 평사리문학대상(수필), 신격호샤롯데문학상 대상(수필) 등 수상



굽은 등으로 여는 생의 오아시스

 

정선모

 

온 천지가 신록으로 출렁이는 계절이다. 마른 나뭇가지의 침묵을 뚫고 솟아오른 연둣빛 새싹들이 햇살을 머금고 반짝이는 양을 보고 있으면, 생명이란 본래 소멸의 재를 먹고 자라는 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죽음 같은 겨울을 견뎌낸 저 여린 것들의 기척은, 세상의 모든 생이 빛을 향해 고개를 치켜들 때 누군가는 기꺼이 바닥으로 내려앉아 토양이 되었음을 말해준다.

매일 아침 베란다 창 너머로 한 폭의 풍경화를 마주한다. 하루도 빠짐없이 아픈 아내를 휠체어에 태우고 느릿느릿 산책길을 나서는 이웃 할아버지의 뒷모습이다. 휠체어를 미는 노인의 등은 몹시도 굽어 있다. 그 구부정한 곡선은 오랜 세월 투병하는 아내의 무게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굳어진, 고단하지만 숭고한 생의 훈장이다. 그분의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지중해의 척박한 바위틈에 사는 키스투스라는 나무가 떠오른다. ‘바위장미’라고도 부르는데 향료와 약제로 쓰이기도 한다.

키스투스는 화려한 꽃을 피우거나 무성한 그늘을 만드는 일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저 지독한 건조함을 견디며 제 몸 안에 불타는 물질을 채운다. 마침내 모든 것이 바싹 마른 여름날, 키스투스는 스스로 불타오른다. 나무기 한 줌 재가 되어 흩어지면 그 열로 씨앗이 열린다. 무엇에도 열리지 않는, 단단하게 잠겨 있던 씨앗의 빗장을 푸는 유일한 열쇠는 바로 제 몸을 태운 열인 셈이다.

휠체어를 미는 할아버지의 굽은 등 역시 자신을 태워 아내의 남은 생을 지키는 처연한 불꽃과 닮았다. 자신의 기력을 소진하며 아내에게 바깥세상의 공기와 햇살을 수혈하는 그 행위는, 소멸을 통해 다음 생의 문을 여는 키스투스의 산고(産苦)와 다르지 않다.

대지의 불꽃이 소멸의 시작이라면, 푸른 바다의 심연에는 또 다른 형태의 숭고한 몰락이 존재한다. 수명을 다한 거대한 고래가 빛조차 닿지 않는 어둠의 영토로 가라앉는 순간, 불모의 심해는 축제의 장으로 변한다. 고래의 사체는 수십 년간 수백 종의 생명을 먹여 살리는 거대한 오아시스가 되어준다. 자신의 육신을 허물어 깊은 바다의 생태계를 지탱하는 기둥이 되는 고래처럼, 할아버지의 지극한 간병은 아내라는 작은 우주를 지탱하는 든든한 안식처가 된다.

노부부가 지나간 자리에는 왠지 모를 따뜻함이 감돈다. 눈부실까 예쁜 모자도 씌워주고, 추울세라 꽃무늬 담요도 무릎에 덮어주는 손길에 정성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의 구부정한 등은 키스투스의 그을린 밑동이며, 아내를 향해 쏟아붓는 헌신은 심해의 생명들을 먹여 살리는 고래의 뼈와 같다. 할아버지는 조금씩 작아지고 스러져가고 있지만, 그것은 허무로 돌아가는 무의미한 몸짓이 아니다. 자신의 형태를 바꾸어 사랑하는 이의 생 속으로 더 깊이 스며드는 가장 적극적인 방식이다.

우리는 흔히 삶이란 무엇인가 끊임없이 채워가는 일이고, 죽음이란 그릇이 깨져 모든 것을 잃는 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휠체어 바퀴가 구르는 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생과 사의 경계는 안개처럼 뒤섞인다. 타버린 자리가 비어 있기에 새로운 싹이 돋고, 거대한 존재가 내려앉았기에 작은 생명들이 둥지를 튼다. 노인의 등 뒤로 펼쳐진 신록이 유독 눈부신 이유는, 그곳에 자신을 기꺼이 허락한 존재의 아름다운 소멸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비워지는 고통은 결국 채워지기 위한 거룩한 준비다. 지금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불꽃을 태우고 있거나 끝을 알 수 없는 추락의 무게를 견디는 이가 있다면 잊지 말 일이다. 자신을 깎아내리는 그 중력은 누군가에게 가장 깊은 안식처가 되기 위한 성스러운 과정일 수도 있음을. 잿더미 위에서 돋아나는 연초록 새순처럼 나의 소멸은 누군가의 생을 긷는 숭고한 사랑의 시작이 될 수도 있음을. 장엄하게 가라앉아 오아시스가 된 고래처럼, 우리네 고통 또한 누군가에게는 희망의 싹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다시 일어설 단단한 대지가 된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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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모 주요 약력

 

 

△ 1989년 월간 《한국시》 등단 △ 현재 도서출판 SUN 대표. 한국디지털문인협회 부회장△ 한국수필문학상(2003년), 신곡문학상(2013년), 한국산문문학상(2014년), 현대수필문학상(2019년) 수상△ 수필집 《빛으로 여는 길》, 《지휘자의 왼손》, 《바람의 선물》, 《너를 위한 노래》, 《우는 방》, 수필선집 《아버지의 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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