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10-11(일)
 
  • ― 김영하 「무용의 용」, 산문집 『단 한 번의 삶』에서

평론가가 추천하는 명수필(40) 권대근 ‘2등철학의 역설, 살아남음의 미학’

― 김영하 「무용의 용」, 산문집 『단 한 번의 삶』에서

 

 

 

권대근

문학박사, 하북미술대 객좌교수

 

 

 

좋은 수필은 사소한 경험에서 출발하지만 결코 사소한 곳에 머물지 않는다. 한 사람의 기억이 자기 고백에 그치지 않고 인간과 세계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될 때, 체험은 비로소 문학적 사유가 된다. 소설가로 유명한 김영하의 산문집 『단 한 번의 삶』에 실린 수필 「무용의 용」은 바로 그러한 수필의 본령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라디오 프로그램의 프로듀서와 함께 통영으로 가는 승합차 안에서 벌어진 포커 한 판이 이 글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포커는 단순한 에피소드가 아니다. 그것은 작가가 인간의 생존 방식과 삶의 가치에 대해 사유하기 위해 선택한 하나의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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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필의 핵심 명제는 의외로 단순하다. “1등이 아니라 2등을 해야 돼요.” 그러나 이 문장은 경쟁사회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가치의 질서를 정면으로 거스른다. 우리는 1등을 성공으로, 2등을 실패에 가까운 것으로 배워왔다. 1등은 기억되고 2등은 잊힌다는 사회적 통념 속에서 살아왔다. 그런데 작가는 포커를 잘하는 한 프로듀서의 입을 빌려 오히려 “꾸준히 2등을 하는 게 최선”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수필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철학적 질문으로 전환된다. ‘무엇이 성공인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쓸모 있다는 것은 과연 좋은 것인가’, ‘눈에 띄지 않는 삶은 가치가 없는가’라는 질문이 포커판에서 장자의 철학으로, 다시 현대사회의 생존 경쟁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무용의 용」이 명수필로서 갖는 첫 번째 조건이다.

이 글의 문학적 출발점은 매우 구체적이다. 도수 높은 안경을 쓴 마산 출신의 프로듀서, 두 대의 검은 승합차, 카메라 박스로 만든 임시 테이블, 트럼프 카드와 바둑알 등 구체적인 사물과 인물이 차례로 등장한다. 특히 프로듀서를 “먹이를 찾아 어슬렁어슬렁 마을로 내려온 곰 같은 인상”이라고 묘사한 대목은 인물의 성격을 단번에 각인시킨다. 이처럼 구체적인 관찰은 수필의 중요한 미덕이다. 추상적인 철학을 먼저 들이밀지 않고 사람과 사물과 상황을 보여준 뒤 그 안에서 의미를 길어 올린다. 독자는 먼저 웃고, 흥미를 느끼고, 호기심을 갖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자신이 읽고 있던 것이 포커 이야기가 아니라 ‘삶의 게임’에 관한 이야기였음을 깨닫는다.

특히 프로듀서의 포커 실력은 단순한 재주가 아니라 그의 세계관을 드러내는 장치로 기능한다. 그는 패를 읽고, 상대를 관찰하고, 승부의 판을 판단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무조건 게임에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잘 모르겠는 판에는 함부로 끼지 마세요”라는 원칙이다. 이 문장은 포커의 기술을 넘어 삶의 기술이 된다. 수필의 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포커라는 특수한 경험이 독자의 일상적 삶으로 번져 나간다. 직장, 인간관계, 경쟁, 성공과 실패의 모든 영역에서 우리는 수많은 ‘판’에 참여한다. 그러나 그 판의 성격과 상대의 힘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뛰어드는 경우가 많다. 작가는 포커를 통해 삶의 경쟁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제시한다.

이 작품의 압권은 “1등이 아니라 2등을 해야 돼요”이다. 이것은 단순한 처세술이 아니라 가치의 전복을 일으키는 역설적 문장이다. 프로듀서에게 1등은 위험하다. 한 번의 압도적인 승리는 사람들의 눈에 띄게 하고, 지속적인 경쟁을 불러오며, 결국 자신을 위험에 노출시킨다. 반면 2등은 눈에 잘 띄지 않으면서도 꾸준히 실속을 챙길 수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2등은 패배가 아니라 하나의 생존 전략이다. 작가는 이 역설을 삼성그룹의 유명한 광고 문구와 연결한다.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습니다”라는 사회적 명제에 대해 작품 속 프로듀서는 정반대의 논리를 제시한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2등이 최고”라는 것이다. 여기서 수필은 개인적 체험을 넘어 사회문화적 비판으로 확장된다.

이는 미셸 푸코식으로 말하면 사회가 인간에게 요구하는 규율과 정상성에 대한 작은 저항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 수필의 문학적 가치는 이 상식을 깨는 인식에서 찾을 수 있다. 사회는 끊임없이 순위를 매기고, 서열화하고, 누가 앞섰는지를 기록한다. 1등을 표준으로 만들어 놓고 나머지를 그 표준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로 평가한다. 그런데 작가는 그 질서 자체를 의심한다. 수필가는 여기서 “왜 1등이어야 하는가?”라고 묻는다. 이 질문은 1등을 부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1등이라는 하나의 가치만을 절대적인 가치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2등’은 숫자가 아니라 하나의 철학적 태도가 된다.

작품의 후반부에서 포커 이야기는 장자의 ‘무용지용(無用之用)’으로 이동한다. 이것이 제목 「무용의 용」의 사상적 근거다. 장자의 철학에서 쓸모없음은 단순한 결핍이 아니다. 오히려 쓸모가 없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고, 쓸모가 없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다. 작가는 이를 나무의 비유로 설명한다. 쓸모 있는 나무는 그 쓸모 때문에 베어지지만, 쓸모없는 나무는 베어지지 않고 천수를 누린다. 이 역설은 포커판의 2등과 정확하게 연결된다. 이 작품에서 ‘2등’과 ‘무용’은 서로 다른 이야기가 아니다. 둘 다 사회가 정해놓은 가치의 중심에서 벗어난 존재 방식이다. 1등이 되지 않는 것, 가장 유능한 존재가 되지 않는 것, 모두에게 기억되는 사람이 되지 않는 것, 때로는 쓸모없는 존재로 남는 것이 오히려 삶을 보존하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작품은 장자의 철학을 단순히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장자의 사상을 자신의 체험 속에 다시 작동시킨다. 이것이 중요한 문학적 성취다. 철학이 인용문으로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경험을 해석하는 사유의 도구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작품 후반부의 중요한 변화는 사람을 나무로 바라보기 시작하는 대목이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크고 우람한 나무처럼 도드라지는 이가 있다. 그런 사람은 그늘도 크다. 그 그늘 속에 존재감 없이 묵묵히 앉아 있는 이도 있다.” 이 부분은 「무용의 용」에서 가장 아름다운 환유적 장면 가운데 하나다. 나무는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사회적 위치를 보여주는 이미지가 된다. 큰 나무와 그늘, 드러나는 사람과 드러나지 않는 사람의 관계가 겹쳐진다.

작가는 이제 ‘2등’을 단순히 포커의 순위로 바라보지 않는다. 자신의 주변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새롭게 발견한다. 이것은 작가의 시선이 변화한 순간이다. “그후로 사람을 보는 관점도 조금 바뀌었다”는 문장은 짧지만 작품 전체의 전환점이다. 좋은 수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건 자체보다 사건 이후 달라진 ‘보는 방식’이다. 체험 전의 세계와 체험 후의 세계가 달라져야 한다. 「무용의 용」은 이 변화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포커를 치기 전의 작가는 2등을 패배의 위치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프로듀서의 말을 들은 뒤에는 보이지 않는 2등, 존재감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치를 보기 시작한다. 작가의 이런 가치관과 세계관이 자신이 살아가는 지침으로 여러 산문을 관통하며 흐르고 있음을 볼 때, 작가는 누구보다도 진실한 삶의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것 같다.

작품은 마지막에 ‘생존’이라는 거대한 문제로 나아간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도 아니고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도 아니다.” 이 문장은 작품의 사유를 압축하는 결정적 문장이다. 생존은 능력이나 우월성의 단순한 결과가 아니다.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하나의 사건이며, 그 이유와 방법을 당사자조차 정확히 알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작품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불러온다. 브레히트의 시가 던지는 죄의식과 생존자의 자의식은 김영하의 수필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과거에는 살아남은 것이 오히려 부끄러움의 대상이었다면, 오늘날에는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이 최고의 가치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이를 오늘날의 서바이벌 게임과 연결한다. “오직 단 한 명만이 살아남는다는 ‘오징어 게임’, 서바이벌 게임의 세계관”은 극단적인 경쟁사회의 은유가 된다. 여기서 작품은 개인의 회고를 넘어 현대사회의 경쟁 구조를 바라보는 사회철학적 수필로 확장된다. 그러나 작가는 끝내 냉소로 마무리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음과 같은 믿음을 남긴다. “액정화면 밖 진짜 세상은 다르다고. 거기에는 조용히, 그러나 치열하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남아 어떻게든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싸우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이 결말이야말로 작품을 단순한 성공론이나 처세론과 구별한다. 작가는 1등을 포기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기 방식으로 삶을 견디고 살아가는 인간의 존엄을 말한다.

「무용의 용」은 포커라는 작은 사건에서 출발해 2등의 철학, 장자의 무용지용, 생존의 의미, 현대사회의 경쟁 구조까지 사유의 폭을 넓혀가는 수필이다. 무엇보다 이 글의 미덕은 철학을 앞세우지 않는 데 있다. 작가는 처음부터 장자를 말하지 않는다. 먼저 곰 같은 프로듀서를 보여주고, 승합차를 보여주고, 포커판을 보여주고, 그가 하는 말을 들려준다. 그리고 독자가 충분히 이야기 속으로 들어왔을 때 장자의 ‘무용지용’을 끌어들인다. 이것은 본격수필이 지녀야 할 ‘체험에서 사유로, 사유에서 존재론으로 나아가는 구조’를 정확히 보여준다. 사건은 사유의 재료이고, 사유는 다시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으로 돌아온다.

문학적으로도 이 작품은 역설과 대비의 힘이 강하다. 1등과 2등, 쓸모와 무용, 강자와 생존자, 드러난 사람과 보이지 않는 사람, 경쟁과 생존이 끊임없이 대립한다. 그러나 작가는 어느 한쪽을 단순하게 선택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이의 틈에서 인간의 삶을 바라본다. 이것이 작품의 철학적 깊이를 만든다. 특히 제목 「무용의 용」은 작품 전체를 압축하는 탁월한 역설이다. ‘쓸모없음의 쓸모’라는 장자의 사유가 현대인의 삶 속에서 새롭게 번역된 것이다. 사회가 쓸모 있다고 규정한 사람만이 가치 있는 것이 아니며, 1등으로 기록되는 사람만이 성공한 것도 아니다. 때로는 눈에 띄지 않는 2등이 가장 오래 살아남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나무가 천수를 누린다.

따라서 이 수필에서 ‘2등’은 패배가 아니다. 그것은 과도한 경쟁과 과시의 욕망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생존의 미학이며, ‘무용’은 무가치함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존재 가능성이다. 명수필은 독자에게 정답을 가르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당연하다고 믿어온 것을 낯설게 만든다. 「무용의 용」은 바로 그런 작품이다. 우리는 이 글을 읽고 난 뒤 1등을 바라보던 눈으로 2등을 바라보게 되고, 큰 나무만 보던 눈으로 그늘 속의 작은 나무를 보게 된다. 무엇보다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결국 이 작품이 말하는 것은 2등이 되라는 처세술이 아니다. 남보다 앞서는 삶보다 자기 방식으로 끝까지 살아가는 삶이 더 깊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세상이 기억하지 않는 존재들에게도 자기만의 생존과 존엄의 서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무용의 용」은 포커에 관한 수필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를 묻는 생존의 철학이며, 보이지 않는 인간들을 발견하게 하는 시선의 문학이다. 사소한 여행담 하나를 장자의 무용지용과 현대사회의 서바이벌 구조까지 확장한 이 작품은 체험과 사유, 이야기와 철학, 유머와 성찰을 균형 있게 결합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명수필의 반열에 놓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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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근 주요 약력

 

△경남 남해 출생 △'동양문학' 수필 등단(1988) △'문예사조' 문학평론 △'경북신문' 문학평론 △미주 '중앙일보' 수필 신춘문예 당선 △현재 대신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중)하북미술대 객좌교수 △한국본격문학가협회 회장 △국제PEN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명예회장 △평론집 '수필은 사기다', 번역서 '한국의 명수필', 문학이론서 '문장가로 가는 길' △수필집 '고운 별 하나 가슴에 묻고' 등 28권 △부산수필문학상, 부산펜문학상, 월강문학상, 여산문학상, 정과정문학상, 부산pen번역문학상 등 수상

 

 

 

 

 

 

무용의 용

 

 

 

김영하

 

 

삼십대 중반에 나는 이 년 정도 라디오 책 소개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았다. 생방송이어서 매일 방송국에 출근했고 여러 분야의 저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메인 프로듀서는 도수 높은 안경을 쓴 마산 출신의 사십대 남자로, 먹이를 찾아 어슬렁어슬렁 마을로 내려온 곰 같은 인상을 풍겼다. 늘 미소를 잃지 않았으나 승부욕이 강하고 집요했다. 라디오 진행이라니 말도 안 된다며 손사래를 치는 소설가들을 여럿 붙잡아 진행을 맡겼고, 출연하지 않겠다는 저자가 있으면 어떻게든 설득해 방송국까지 오게 만들었다.

여름이 되자 그는 통영으로 프로그램 MT를 가자고 했다. 좀 멀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진행자인 내가 안 갈 수는 없어 가겠다고 했고, 고정 패널, 보조 프로듀서와 방송작가까지 거의 전원이 참여했다. 이른 아침에 울긋불긋한 옷을 입고 방송국에 모인 우리는 그래도 여행은 여행이라 다들 조금 들떠 있었고, 방송국 마크가 찍힌 두 대의 검은 승합차에 나눠 타 통영을 향해 출발했다. 출발 전 곰 프로듀서는 2열의 의자를 뒤로 돌려 3열과 마주보도록 만들었다. 차가 경부고속도로에 올라서자 그는 나에게 포커를 할 줄 아냐고 물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해본 적이 있다고 하니 가는 동안 재미삼아 치자면서 카메라 박스를 가운데 놓아 테이블처럼 만들더니 그 위에 트럼프 카드를 올려놓았다.

제작진들은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닌지 주섬주섬 자세를 잡고 포커를 칠 준비를 했다. 돈을 걸고 하는 것은 아니었다. 곰 피디는 준비해 온 바둑알을 모두에게 분배해주었다. 갑자기 무슨 도박인가 싶어 몸을 움츠렸던 나와 다른 출연자들도 바둑알을 보고는 긴장을 풀었다. 포커는 통영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되었는데 곰 피디의 원맨쇼였다. “아, 스페이드 킹은 영하씨가 들고 있구나.” 그는 다른 사람이 들고 있는 패를 투시하듯 다 알았고, 판에 깔린 바둑알을 모두 거둬들였다가 나눠주기를 반복했다. 자기 주머니에 넣었다 빼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좁은 승합차 안에서 불편한 자세로 끝없이 계속되는 포커에 다들 조금씩 지쳐갔지만 그의 눈만은 반짝였다. 그는 우리에게 포커가 얼마나 재미있는 세계인지를 알려주고 싶어했다. 그에게 포커는 과학이면서 심리학이고, 인생 학교였다.

그러고 보니 그는 평소 오목도 잘했다. 오목을 애들 장난쯤으로 비웃는 사람들을 만나면 바로 가방에서 휴대용 바둑판과 자석 바둑알을 꺼내 한 판 둬보자고 졸랐고, 됐다 하면 이겼다. 방송국 휴게실에서도 그는 틈만 나면 몸을 웅크리고 오목을 두었는데 그를 꺾었다는 사람을 못 봤다. 오목에도 바둑처럼 15급부터 9단까지 급수가 있다는 것 역시 그를 통해 처음 알았다. 승합차 안에서 그는 포커의 ‘과학’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지만 나는 거의 이해하지 못했고, 사실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들어보니 포커라는 게 치밀한 계산이 필요한 것 같았는데 차가 흔들려 자꾸 멀미 기운도 올라오고 해서 나의 뇌는 생각을 거부했다. 그래도 운이 좋으면 한 판이라도 이기겠지 싶어 터무니없는 블러핑도 해보고,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았으나 전혀 먹히지 않았다.

포커는 승합차가 지리산 어딘가의 휴게소로 들어서면서 끝났다. 함께 화장실로 걸어가면서 나는 그에게 도대체 어떻게 이 정도로 포커 실력을 키웠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독학이라고 답했다. 오목처럼 포커도 하나의 기술이며 그래서 열심히 연습하면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진담인지 농담인지 모호한 표정으로, 용돈이 좀 필요하면 포커를 하러 가고, 적당히 따면 큰 욕심 부리지 않고 물러난다고도 했다. “영하씨, 포커에서 제일 중요한 거 하나 알려줄까요?” 그러지 않아도 나는 원래 누구에게든 이런 질문을 잘 던지는 편이다. 예를 들어 바리스타를 만나면 커피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뭔가요, 라고 묻고, 건축가를 만나면 집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뭐예요, 라고 묻는다. 로스팅을 하는 바리스타는 무엇보다 생두의 품질이라고 말했고, 건축가는 물과의 싸움이라고 했다.

그가 포커에서 제일 중요한 것 하나를 스스로 알려준다니 비록 포커를 계속할 것은 아니었지만 솔깃했다. “뭔데요?” “잘 모르겠는 판에는 함부로 끼지 마세요.” “왜요?” “나보다 고수가 있을 수 있거든. 처음 보는 사람이 앉아 있는 포커판에 어쩌다 끼게 되면 나도 그냥 학교만 가요. 절대 크게 걸지 않아요.” 기본 판돈만 걸고 포기한다는 뜻이었다. “운이 좋으면 고수를 이길 수도 있잖아요? ‘초심자의 운’, 그런 것도 있고.”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없어요. 장기전으로 가면 절대 못 이겨요.” 통영까지 가는 내내 판판이 깨진 터라 그의 장담이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먼저 그 판에 나보다 고수가 있는지를 살피고, 없다 싶으면 그때부터 제대로 게임을 해요.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어요.”

나는 이런 게임을 이렇게 진지하게 하는 사람은 처음 접했고, 그래서인지 그의 말은 어딘가 무시무시하게 들렸다. “아, 그리고 하나 더.” 내가 열심히 들어주자 그는 자기만의 비밀을 보너스로 하나 더 알려주었다. “포커판에서는,” 그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1등이 아니라 2등을 해야 돼요.” “왜요? 1등이 제일 많이 벌잖아요? 영화 같은 데 보면 한 사람이 싹 다 쓸어가던데요?” “그거야 영화니까 그런 거고, 1등 크게 한 번 하는 것보다 꾸준히 2등을 하는 게 최선이에요. 2등은 사람들 눈에 잘 띄지도 않고, 개평 달라고 보채는 사람도 없고…….”

1995년에 삼성그룹은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습니다”라는 유명한 카피를 유행시킨 시리즈 광고를 내놓았다. 달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닐 암스트롱이나 최초로 대서양을 횡단한 찰스 린드버그 등을 내세워 오직 세계 일류만이 살아남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2002년의 곰 피디는 삼성그룹의 슬로건에 맞서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2등이 최고’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후 1등으로 잘나가던 이들이 법적으로 또는 정치적으로 시련을 겪고 이카로스처럼 추락할 때마다 나는 지리산 어귀의 휴게소에서 2등이 최고라고 말하던 프로듀서를 떠올리곤 했다. 그리고 남들 눈에 띄지 않은 채 조용히 실속을 챙기는, 최선을 다해 2등을 하고 있을 얼굴 없는 고수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후로 사람을 보는 관점도 조금 바뀌었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크고 우람한 나무처럼 도드라지는 이가 있다. 그런 사람은 그늘도 크다. 그 그늘 속에 존재감 없이 묵묵히 앉아 있는 이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2등 지향의 곰 프로듀서보다 더 멀리 가면 아예 쓸모 자체가 없어야 좋다는, 이른바 ‘무용(無用)의 용(用)’을 주창하는 장자莊子가 있다. 장자는 쓸모 있는 나무는 그 쓸모 때문에 일찍 벌목되므로, 쓸모가 오히려 제 몸에 해를 입힌다고 말했다. 가지가 무성한 나무를 자르지 않은 나무꾼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잘라봐야 아무 소용이 없는 나무라 자르지 않았다는 나무꾼의 말에 장자는, 이 나무는 쓸모가 없어 천수를 다할 수 있었다고 제자에게 설명하기도 한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도 아니고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도 아니다. 살아남은 자는 그냥 살아남은 자이고, 그 이유와 방법도 어쩌면 자신만 알거나 아니면 자기도 모를 것이다.

우리는 많은 사람과 어울려 살아가지만 그들이 인생이라는 게임을 어떻게 풀어나가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남아 여기까지 와 있는지 속속들이 알 도리가 없다. 일부러 2등에 머물거나, 확고한 신념으로 ‘잘라봐야 아무 소용이 없는 나무’로 존재하는 이들이 내 주변 어딘가에 숨어 있을지 모른다는 것에 대하여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나의 이십대는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로 시작하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외우는 이들과 함께였다. 그 시는 이렇게 끝난다. “그러나 지난밤 꿈속에서/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강한 자는 살아남는다”/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살아남은 자들이 부끄러워하던 시대는 가고, 곧 1등이든 2등이든 무조건 살아남는 것이 최선이라는 시대가 왔다.

지금은 너를 떨어뜨리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오직 단 한 명만이 살아남는다는 ‘오징어 게임’, 서바이벌 게임의 세계관이 스크린을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은밀히 믿고 있다. 액정화면 밖 진짜 세상은 다르다고. 거기에는 조용히, 그러나 치열하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남아 어떻게든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싸우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 수필 「무용의 용」, 산문집 <단 한 번의 삶>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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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하

                                                                                   사진 출처 <나무위키>

 

 

소설가. 1995년에 작품 활동을 시작, 장편소설로 『작별인사』, 『살인자의 기억법』, 『검은 꽃』,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빛의 제국』, 『아랑은 왜』, 『너의 목소리가 들려』, 『퀴즈쇼』, 소설집으로 『오직 두 사람』, 『오빠가 돌아왔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호출』이 있고, 산문 『여행의 이유』, 『오래 준비해온 대답』, 『다다다』 등을 냈다.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 현대문학상, 만해문학상, 김유정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독일과 일본에서 각각 독립출판사문학상과 번역대상을 받았다. 30여 개국에 작품이 번역 출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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