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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창호칼럼] 중동의 포화와 한반도의 선택,‘이재명 정부’의 실용 외교가 시험대에 서다
    [지구일보 이창호 칼럼니스트] 2026년 현재, 지구촌은 중동발(發) 거대한 화약고 위에 서 있다. 미국ㆍ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로 격화된 중동 전쟁은 미국의 전략적 자산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문제는 미국의 시선이 테헤란과 중동에 고정될수록, 한반도를 향한 ‘전략적 인내’는 사실상 ‘전략적 방치’로 변질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강한 국방에 기초한 평화’를 강조해 왔으나, 미·중 갈등에 중동 전쟁이라는 변수까지 겹치며 '외교적 공간'이 상당히 위축되고 있다. 미국 내 정치적 공세가, 전비 부담은 물론 우리에게 '안보 비용의 전가'라는 청구서를 내밀 수 있고, 이는 곧 한반도 평화 시계의 역행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 북·러 밀착의 틈새, ‘진영 외교’의 덫을 경계하라 중동의 전운은 북한에 유례없는 지정학적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이 중동 늪에 빠진 사이, 북한은 러시아와의 군사·경제 동맹을 공고히 하며 대북 제재망을 사실상 무력화할 것이다. 특히 우려스러운 대목은 과거 정부가 고착시킨 ‘한·미·일 대 북·중·러’의 냉전적 구도다. 이재명 정부가 지향하는 ‘실용적 국익 외교’는 바로 이 대목에서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가치 중심의 편 가르기 외교에 매몰되어, 한반도가 강대국 패권 다툼의 ‘대리 전장’이 되도록 방치해서는 절대 안 된다.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이 진정한 평화를 가져왔는가? 또 중동의 비극은 우리에게 자문하게 한다. 한반도 전쟁 억제력은 생존의 최소 조건일 뿐, 대화 없는 ‘힘의 과시’는 결국 끝없는 군비 경쟁과 우발적 충돌의 위험만을 증폭시킬 뿐이다. ● 이재명 정부의 제언, ‘평화가 곧 경제’라는 실용적 접근 미국의 개입이 되는 작금의 상황에서, 이재명 정부는 다음과 같은 ‘전략적 자율성’을 발휘해야 한다. ▪︎동북아 다자주의 평화 체제의 주도 진영 논리를 넘어 중국과 러시아를 한반도 관리의 파트너로 적정하게 끌어들여야 한다. 북핵 문제를 '이념'이 아닌 '지역 생존'의 문제로 재규정하는 틈새 다자 외교가 절실하다. ▪︎남북 핫라인 및 위기 관리 복원 북한의 ‘적대적 국가’ 선언에도 불구하고, 우발적 충돌을 막기 위한 군사적 소통 창구는 기필코 가동되어야 한다. 또 9·19 군사합의의 정신을 계승하되, 변화된 현실에 맞는 ‘한국형 평화 프로세스’를 재설계해야 한다. ▪︎에너지·공급망 안보의 선제적 대응 중동 전쟁으로 인한 유가 폭등과 공급망 교란은 민생 경제에 직격탄이다. 이재명 정부의 핵심 철학인 ‘민생 우선’을 위해 중동 리스크를 관리하며 동북아 에너지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한다. ● 평화는 ‘관리’를 넘어 ‘창출’하는 것 평화는 상대의 굴복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상태가 아니다. 서로의 생존을 인정하고 갈등을 조정해 나가는 적극적인 행위다. 미국이 중동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동안, 우리마저 강대국의 전략적 셈법에만 운명을 맡긴다면 그 결과는 자명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비싼 무기 체계가 아니라, ‘평화가 곧 밥’이라는 냉철한 현실 인식과 이를 현실로 만드는 외교적 상상력이다. 끝으로 이재명 정부는 중동의 비극을 반면교사 삼아, 한반도를 동북아 평화 경제의 허브로 되살리기 위한 유연하고 능동적인 실용 외교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 글/사진: 이창호(李昌虎)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겸 국제다자외교평의회 대표(의장), 한중기자연맹 회장, 중국 곡부사범대학 겸직교수, 위해직업대학 객좌교수, 허베이미술대학 명예/종신교수, Marquis Who’s Who 등재 저자, 《새 시대를 이끄는 시진핑과 한중관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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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03
  • [토요분석] 윤석열, 책임의 언어와 설득의 정치...국민은 무엇을 판단해야 하는가
    [지구일보이창호 대기자]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입장문은 한 개인의 해명이라기보다 권력과 책임, 또 민주주의 해석을 둘러싼 정치적 선언문에 가깝다. 그는 비상계엄을 “국가를 위한 결단”으로 규정하면서도, 결과적으로 고통에 대해서는 사과했다. 이 두 문장은 우리나라 정치가 오랫동안 반복해 온 구조적 모순을 드러낸다. 지도자는 의도를 강조하고, 국민은 결과를 평가한다. 국민의 시선에서 판단 기준은 단순하다. 동기가 아니라 삶에 미친 영향이다. 정치적 정당성은 법률적 판단과 별개로 사회적 신뢰를 통해 완성된다. 사과가 진정성을 얻으려면 원인의 정당화가 아니라 결과의 책임 인정이 먼저여야 한다. 따라서 이번 입장문은 일부 지지층에게는 결단의 서사로 받아들여지겠지만, 중도층에게는 여전히 설득이 부족한 ‘자기 확신의 언어’로 들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 여야의 해석도 분명히 갈린다. 야권은 국가 위기 대응이라는 판단의 영역을 강조하며 역사적 평가를 주장하고, 여권은 절차와 헌정질서 훼손의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가 장기적으로 안정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승패의 확정이 아니라 '기준의 합의'다. 권력 행위의 정당성은 '목적·절차·결과' 세 요소가 동시에 충족될 때만 확보된다. 이번 본질은 특정 인물의 유무죄를 넘어선다. 위기 상황에서 국가 권력이 어디까지 허용되는가라는 '헌법 원칙'의 문제다. 우리 사회는 반복적으로 ‘정치적 판단’을 ‘역사적 평가’에 미뤄왔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미래의 평가가 아니라 현재의 기준으로 유지된다. 게다가 국민은 영웅도 악인도 아닌, 설득이 가능한 권력을 원한다. 결국 이 입장문은 결론이 아니라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지도자의 의도를 믿을 것인가, 제도를 지킬 것인가. 답은 어느 진영이 아니라 국민의 판단 속에서만 완성될 것이다. [원문=윤석열 전 대통령, 국민에게 드리는 글]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12.3 비상계엄을 선포한 저의 판단과 결정은 오직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 진정성과 목적에 대해서는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국가를 위한 구국의 결단을 내란 몰이로 음해하고 정치적 공세를 넘어 반대파의 숙청과 제거의 계기로 삼으려는 세력들은 앞으로도 더욱 기승을 부릴 것입니다. 구국의 결단이었으나 저의 부족함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많은 좌절과 고난을 겪게 해 드린 것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립니다. 사법부는 거짓과 선동의 정치권력을 완벽하게 배척하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장기집권을 위해 여건을 조성하려다 의도대로 되지 않아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특검의 소설과 망상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러나 제 진정성을 인정하면서도, 단순히 군이 국회에 갔기 때문에 내란이라는 논리는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사법부의 독립을 담보할 수 없고, 법과 양심에 의한 판결을 기대하기 곤란한 상황에서 항소를 통한 법적 다툼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지 깊은 회의가 듭니다. 대한민국에 자유민주주의가 굳건히 서고 법치주의가 바로 서는 날 제 판단과 결단에 대한 재평가를 다시 기대하겠습니다. 이제는 저에 대한 사법부의 예정된 결론과 정치권력의 핍박에 개의치 않습니다. 다만, 많은 군인과 경찰들, 공직자들이 수사와 재판을 받으며 어려움을 겪고 있고 그 가족들까지 그 고통에 좌절하는 현실이 너무도 가슴 아픕니다. 결단의 과정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제게 있습니다. 부디 그들에게 더 이상의 가혹한 시련과 핍박은 멈춰주길 바랍니다. 정치보복은 저에 대한 것으로 족합니다. 수사와 특검, 그리고 2차 특검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숙청하고 국가안보를 송두리째 무너뜨리려 하는 것입니까? 더는 민주주의를 훼손하지 말고 국민의 삶을 돌아보길 바랍니다. 저 윤석열은 광장의 재판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모든 책임을 짊어지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위대한 국민 여러분은 자유민주주의의 기치 아래 다시금 정의를 세워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끝이 아닙니다. 뭉치고 일어서야 합니다. 패배가 아닌 희망의 전진으로 대한민국을 다시 세우길 기도합니다. ● 읽고 끝내기보다 확인까지 이어지는 기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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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21
  • [이창호 視線] 큰 별이 지다, 한국 민주주의의 거산(巨山) 이해찬을 보내며...,
    “시대의 정수리를 꿰뚫던 그 서슬 퍼런 원칙주의, 이제는 영면의 길로” [지구일보 이창호 대기자] 한국 현대사의 굽이마다 거대한 이정표를 세웠던 '강철의 전략가'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유명을 달리했다. 한 시대의 마감을 알리는 비보 앞에 우리는 단순히 한 정치인의 죽음을 넘어, 한국 민주주의의 한 축이 무너져 내리는 비통함을 금할 길 없다. 그는 민주화의 야성을 간직한 채 제도권의 경륜을 완성한, 실로 우리 시대가 낳은 '민주주의의 산 증인'이었다. ● 1987년 체제의 설계자, 그리고 '송곳' 같았던 열정 그의 삶은 곧 한국 민주주의의 투쟁사와 궤를 같이한다. 유신 독재에 맞선 학생 운동가에서 출발해 김대중ㆍ노무현ㆍ문재인ㆍ이재명 대통령을 만든 전략의 킹메이커로, 스스로는 행정의 수반으로서 국가의 기틀을 다졌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송곳'이라 불렀다. 타협 없는 원칙, 상대의 허점을 꿰뚫는 예리한 논리, 그리고 국가 운영에 대한 방대한 지식은 그를 대체 불가능한 정치적 거목으로 만들었다. 지구일보가 주목하는 그의 가치는 단순히 '승리의 기록'에 있지 않다. 그는 정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시스템'으로 정립하려 했던 드문 정치가였다. 5공 청문회에서의 활약은 권력의 부조리를 단죄하는 의회의 권위를 세웠고, 교육부 장관 시절의 개혁은 기득권의 저항 속에서도 공공성의 가치를 지키려는 고독한 결단이었다. ● 책임 총리의 전형, 행정의 품격을 높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그는 '책임 총리'라는 생소한 개념을 헌법적 가치로 현실화했다. 대통령의 신뢰를 바탕으로 국정 전반을 아우르는 그의 통찰력은 행정부의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비록 그 엄격함이 때로는 독선으로 비치기도 했으나, 그것은 사익이 아닌 공적 가치를 수호하려는 완고한 책임감의 발로였다. 그는 정치를 '세력을 모으는 기술'이 아니라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도구'로 여겼다. 게다가 민주당의 20년 집권론을 주창했던 것도 권력욕이 아닌, 자신이 믿는 민주적 가치가 뿌리내리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물리적 시간을 확보하려 했던 고심의 결과였다. ● 거인이 남긴 숙제... 민주주의는 아직도 길 위에 있다 이제 그 '큰 별'은 졌다. 하지만 그가 남긴 궤적은 밤하늘의 북극성처럼 우리 앞에 남았다. 그가 평생을 바쳐 지키려 했던 민주주의는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갈고 닦아야 할 과정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해찬이라는 이름 석 자는 우리에게 묻는다. 정치의 본령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 공동체를 꿈꾸는가. 진영의 논리가 민생을 압도하고, 대화보다는 혐오가 난무하는 오늘의 현실에서 그의 부재는 더욱 크게 다가온다. 그가 가졌던 원칙과 국가를 향한 뜨거운 애정이 새삼 그리워지는 이유다. "정치는 허업(虛業)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실업(實業)이어야 한다." 그가 생전에 몸소 보여주었던 이 평범하고도 위대한 진리를 가슴에 새긴다.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이자, 영원한 전략가 이해찬. 당신이 일구어 놓은 옥토 위에서 후대들은 다시금 민주주의의 꽃을 피울 것이다. 거산(巨山)의 안식을 빈다.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안고 갔던 당신, 이제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평안히 잠드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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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26
  • [지구일보] 신뢰를 얻는 길, 공자가 말한 리더의 조건
    [지구일보 이창호 칼럼니스트] 우리는 흔히 신뢰를 결과로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평판, 혹은 지위와 성과가 쌓이며 얻어지는 부수적 산물처럼 여긴다. 공자는 신뢰를 결과가 아니라 출발점으로 보았다. 『논어』에서 그는 “사람이 믿음이 없으면 그가 무엇으로 설 수 있겠는가(人而無信 不知其可也)”라고 했다. 신뢰는 관계의 장식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를 지탱하는 기둥이라는 뜻이다. 신뢰의 첫 출발은 정직과 투명함이다. 공자는 “군자는 속이지 않고, 소인은 숨긴다”고 보았다. 말과 행동이 다르고, 과정이 불분명한 사람에게 신뢰가 쌓일 수는 없다. 투명함은 단순한 도덕적 미덕이 아니라 조직과 공동체를 안정시키는 실질적 자산이다. 오늘의 사회에서 정직은 더 이상 순진함이 아니라, 가장 전략적인 선택이다. 그러나 정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신뢰는 결국 진짜 실력에서 완성된다. 공자는 “말은 신중하고, 일은 민첩해야 한다(君子欲訥於言 而敏於行)”고 했다. 과장된 언변보다 묵묵히 결과로 증명하는 태도, 이것이 신뢰의 핵심이다. 실력 없는 도덕은 공허하고, 실력 없는 진정성은 오래가지 못한다. 또 하나 중요한 요소는 결과에 대한 책임이다. 공자는 지도자의 덕목으로 ‘책임지는 용기’를 중시했다. 잘못을 남에게 돌리지 않고, 성과와 실패 모두를 감당하는 자세는 신뢰를 쌓는 가장 빠른 길이다. 책임을 회피하는 순간, 신뢰는 즉시 균열을 일으킨다. 신뢰는 말로 쌓이지만, 책임으로 유지된다. 신뢰는 현재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미래를 만들어내는 능력과 직결된다. 대전공자는 “먼 장래를 생각하지 않으면 가까운 근심이 반드시 생긴다(不慮遠者 必有近憂)”고 경고했다. 신뢰받는 사람은 오늘의 이익보다 내일의 가치를 본다. 단기 성과에 집착하지 않고, 지속 가능한 방향을 제시할 때 사람들은 그를 믿고 따라온다. 그래서 시간은 신뢰받는 사람의 편이다. 조급한 사람은 성과를 앞당기려 신뢰를 깎아 먹지만, 신뢰받는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단단해진다. 공자가 말한 군자는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 간다. 정직하고, 실력이 있으며, 책임을 지고, 미래를 설계하는 사람. 그 사람 곁에는 결국 사람이 남고, 시간은 그를 증명한다. 오늘 우리가 묻는 질문은 단순하다. 어떻게 하면 신뢰를 얻을 수 있는가. 공자의 답은 명확하다. 신뢰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이며, 전략이 아니라 인격의 총합이다. 그리고 그 인격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신뢰를 쌓는 길을 선택한 사람에게, 시간은 반드시 우군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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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21
  • [이창호正論]이재명 정부의 한일 셔틀 외교... '실용적 동반자'를 향한 전략적 대전환
    [지구일보 이창호 대기자] 2026년 벽두, 한일 관계는 거대한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과거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 윤석열 전 정부의 대일 정책을 '제로 셔틀 외교'라 칭하며 강하게 비판했던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후 보여주고 있는 행보는 가히 파격적입니다. 그는 "과거를 직시하되 미래를 향해 손을 잡아야 한다"는 원칙 아래, 한일 셔틀 외교의 복원을 넘어 이를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로 재정의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한일 셔틀 외교의 다층적 의미와 그것이 그려낼 동북아의 미래를 새롭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 셔틀 외교의 재해석, '굴욕'에서 '실용'으로의 이동 이재명 대통령의 대일 외교 기조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전략적 유연성'입니다. 과거 야당 시절의 강경했던 목소리는 집권 후 국정 운영의 책임감과 맞물려 정교한 실용주의로 진화했습니다. 이 대통령이 추진하는 한일셔틀 외교는 단순한 회담의 복원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는 한미일 삼각 공조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한국의 '목소리'를 키우기 위한 지렛대이자,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지정학적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한 철저한 포석입니다. 이 대통령은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의 정신을 계승하면서도, 이를 인공지능(AI)시대에 걸맞게 업그레이드한 '영리한 공동선언'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는 과거사 문제로 인한 감정적 소모를 최소화하고, 반도체·배터리·AI 등 첨단 산업에서의 공급망 협력과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가입과 같은 경제 실익을 최우선시하겠다는 의지의 발현입니다. ● 과거사와 미래 가치의 병행, '투트랙(Two-Track)'의 정착 이재명표 한일셔틀 외교의 또 다른 특징은 과거사 문제를 회피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이 미래의 발목을 잡지 않게 관리하는 '분리 대응'에 있습니다. 최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 피해자 신원 확인을 위한 실무 협의에 합의한 것은 매우 상징적입니다. 이는 강경 일변도의 민족주의적 접근에서 벗어나, 인도주의적이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통해 일본으로부터 성의 있는 조치를 이끌어내려는 세련된 외교술의 결과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행보가 국내 보수층과 진보층 모두를 설득할 수 있는 '중도적 합리성'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역사를 잊지 않되, 그 아픔을 미래지향적인 에너지로 치환하려는 시도는 한일 관계의 고질적인 '냉온탕' 악순환을 끊어낼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 동북아 질서의 설계자, 한·중·일 협력의 교량 역할 이재명 정부의 한일셔틀 외교는 단지 일본만을 향해 있지 않습니다. 이 대통령은 방일 직전, 중국을 방문하여 시진핑 주석과 한중 관계의 전면 복원을 선언했습니다. 이는 한일 셔틀 외교를 통해 다져진 신뢰를 바탕으로 '한·중·일 3각 협력' 체제를 주도하겠다는 거대한 구상을 담고 있습니다. 일본과 미국에 편중된 외교가 아닌, 중국과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까지 아우르는 '전략적 자율성' 확보야말로 이재명 실용외교의 진면목입니다. 향후 일본과의 긴밀한 소통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한국의 가치를 높이는 동시에, 중국과의 관계 설정에서도 안정적인 핵심을 확보하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 지속 가능한 신뢰의 시대로 이재명 대통령이 그리는 한일 관계의 미래는 '앞마당을 공유하는 이웃'과 같습니다. 저출생, 고령화, 지방 소멸 등 양국이 공통으로 직면한 사회적 난제에 공동 대응하고, 미래 세대가 편견 없이 교류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한일 셔틀 외교의 궁극적인 지향점입니다. 물론 일본 정계의 우경화와 여전한 역사 인식 차이는 여전히 불안 요소입니다. 이념에 매몰되지 않고 '국익'이라는 냉철한 잣대로 일본을 상대하는 이재명 정부의 행보는 과거 어느 정부보다 견고하고 안정적인 한일 관계를 구축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일 셔틀 외교의 미래는 단순히 정상들이 오가는 횟수에 있지 않습니다. 그 여정 속에 얼마나 많은 실질적 협력의 결실을 채워넣느냐가 향후 동북아 평화와 번영의 향배를 결정지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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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15
  • [지구시평] 헌법 위에 군림한 권력, 그 책임을 묻다
    [지구일보 이정대기자]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해 법정 최고형인 사형이 구형됐다. 조은석 내란 특별검사팀은 13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5부(부장판사 지귀연)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에서, 국가 헌정질서를 중대하게 훼손한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다며 재판부에 최고 수준의 엄벌을 선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사형 구형은 단순한 형벌 논쟁을 넘어, 헌법 질서 수호라는 근본적 질문을 우리 사회에 던진다. 헌법은 국가 권력의 한계를 규정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한 최상위 규범이다. 그 헌법을 수호해야 할 위치에 있던 대통령이 오히려 이를 훼손하거나 무력화했다는 판단이 내려진다면, 그 책임은 일반 범죄와는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다. 헌법 파괴 행위는 단기간의 정책 실패나 정치적 실책과 구별된다. 이는 권력 분립, 법치주의, 민주적 정당성이라는 국가 운영의 토대를 흔드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특히 국가의 최고 권력자가 헌법 정신을 무시하거나 권한을 남용했다면, 그 파장은 사회 전반에 걸쳐 신뢰 붕괴로 이어진다. 법이 권력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인식이 확산될 경우, 민주주의는 형식만 남은 껍데기로 전락한다. 사형 구형이라는 선택이 거론되는 배경에는 바로 이러한 헌법적 위기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이는 개인에 대한 보복이 아니라, 헌법 질서에 대한 중대한 침해는 어떤 경우에도 용인될 수 없다는 의미를 지닌다. 다만 동시에 우리는 형벌의 목적, 사법 정의의 한계, 인권의 보편성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성찰해야 한다. 결국 이 사안의 본질은 특정 인물의 생사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헌법 위에 누구도 군림할 수 없다는 원칙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는가에 있다. 헌법 파괴자에 대한 엄정한 책임 추궁은 민주공화국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며, 이는 미래 세대를 위한 최소한의 책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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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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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요칼럼]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전쟁을 멈춰라
    [지구일보 이창호 칼럼니스트] 중동은 오랜 세월 세계의 화약고였다. 최근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의 군사적 긴장은 다시 미국과 함께 전쟁을 치루고 있다. 작금, 미국이 깊숙이 개입하면서 전쟁은 단순한 지역 분쟁을 넘어 국제 질서를 뒤흔드는 중대한 위기로 확대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승패를 겨루는 군사적 대응이 아니라 전쟁을 멈추고 외교적 공간을 되살리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갈등은 단순한 영토 문제를 넘어 정치·종교·안보가 복합적으로 얽힌 구조적 충돌이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개발과 지역 영향력 확대를 자국의 생존 위협으로 인식한다. 반면 이란은 중동에서의 미국과 이스라엘 중심 질서에 맞서며 자국의 전략적 공간을 넓히려 한다. 이런 구조 속에서 군사적 충돌은 위험한 균형 위에 놓여 있다. 문제는 이 갈등이 국지전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미국이 군사적 지원을 확대하고 이란이 이에 강하게 대응할 경우 중동 전체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이미 빠져 있다. 더 나아가 에너지 수송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이 이미 봉쇄되어 세계 경제는 심각한 충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석유 가격 급등과 글로벌 공급망 붕괴는 곧바로 세계 각국의 경제와 민생을 흔들 수 있다. 전쟁의 불길은 결국 국경을 넘어 인류 전체에 피해를 남긴다. 세계 역사는 군사력만으로 갈등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보여 주었다. 중동 분쟁 역시 마찬가지다. 강경 대응은 일시적인 억지 효과를 낼 수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갈등은 다시 되살아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군사적 우위를 과시하는 경쟁이 아니라 신뢰를 회복하는 정치적 상상력이다. 첫째, 미국은 이란에서 군사적 행동을 멈추고, 적극적인 중재자로 나서야 한다. 동맹국의 안보를 지원하되 더 이상 무력 충돌이 확대되지 않도록 외교적 해법을 병행해야 한다. 둘째, 이란 역시 핵개발 문제와 지역 군사 활동에 대해 국제사회와 보다 투명한 협력 자세를 보여야 한다.상호 불신을 줄이지 않는 한 긴장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셋째, 국제사회는 다자 외교를 통해 갈등 완화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유엔과 주요 국가들이 참여하는 새로운 중동 안보 협의체를 구축해 군사 충돌 방지와 신뢰 구축 조치를 신속히 추진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핵 문제, 미사일 문제, 지역 안보 문제를 동시에 논의하는 포괄적 협상 틀이 필요하다. 넷째, 경제 협력과 인도적 교류를 확대해 적대 구조를 완화해야 한다.역사적으로 경제적 상호 의존이 높아질수록 전쟁 가능성은 낮아졌다. 갈등의 고리를 끊는 길은 상대를 고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협력의 공간을 넓히는 데 있다. 전쟁은 언제나 시작은 쉬워도 끝내기는 어렵다. 그리고 그 대가는 늘 민간인과 다음 세대가 치른다. 중동의 긴장은 단순히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평화와 직결된 문제다. 지금 국제사회가 이 순간 냉정한 판단과 책임 있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작은 불씨가 걷잡을 수 없는 인류의 화염으로 번질 수 있다. 지금은 전쟁의 북소리를 키울 때가 아니라 멈출 용기를 보여야 할 때다. ‘미국과 이스라엘, 이란’ 모두가 군사적 계산을 넘어 인류 공동의 미래를 바라보아야 한다. 총성이 멈추는 곳에서만 외교가 시작되고, 외교가 살아날 때 비로소 평화의 길이 열린다. 중동의 평화는 힘의 균형이 아니라 협상의 균형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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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07
  • [이창호칼럼] 중동의 포화와 한반도의 선택,‘이재명 정부’의 실용 외교가 시험대에 서다
    [지구일보 이창호 칼럼니스트] 2026년 현재, 지구촌은 중동발(發) 거대한 화약고 위에 서 있다. 미국ㆍ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로 격화된 중동 전쟁은 미국의 전략적 자산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문제는 미국의 시선이 테헤란과 중동에 고정될수록, 한반도를 향한 ‘전략적 인내’는 사실상 ‘전략적 방치’로 변질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강한 국방에 기초한 평화’를 강조해 왔으나, 미·중 갈등에 중동 전쟁이라는 변수까지 겹치며 '외교적 공간'이 상당히 위축되고 있다. 미국 내 정치적 공세가, 전비 부담은 물론 우리에게 '안보 비용의 전가'라는 청구서를 내밀 수 있고, 이는 곧 한반도 평화 시계의 역행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 북·러 밀착의 틈새, ‘진영 외교’의 덫을 경계하라 중동의 전운은 북한에 유례없는 지정학적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미국이 중동 늪에 빠진 사이, 북한은 러시아와의 군사·경제 동맹을 공고히 하며 대북 제재망을 사실상 무력화할 것이다. 특히 우려스러운 대목은 과거 정부가 고착시킨 ‘한·미·일 대 북·중·러’의 냉전적 구도다. 이재명 정부가 지향하는 ‘실용적 국익 외교’는 바로 이 대목에서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가치 중심의 편 가르기 외교에 매몰되어, 한반도가 강대국 패권 다툼의 ‘대리 전장’이 되도록 방치해서는 절대 안 된다.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이 진정한 평화를 가져왔는가? 또 중동의 비극은 우리에게 자문하게 한다. 한반도 전쟁 억제력은 생존의 최소 조건일 뿐, 대화 없는 ‘힘의 과시’는 결국 끝없는 군비 경쟁과 우발적 충돌의 위험만을 증폭시킬 뿐이다. ● 이재명 정부의 제언, ‘평화가 곧 경제’라는 실용적 접근 미국의 개입이 되는 작금의 상황에서, 이재명 정부는 다음과 같은 ‘전략적 자율성’을 발휘해야 한다. ▪︎동북아 다자주의 평화 체제의 주도 진영 논리를 넘어 중국과 러시아를 한반도 관리의 파트너로 적정하게 끌어들여야 한다. 북핵 문제를 '이념'이 아닌 '지역 생존'의 문제로 재규정하는 틈새 다자 외교가 절실하다. ▪︎남북 핫라인 및 위기 관리 복원 북한의 ‘적대적 국가’ 선언에도 불구하고, 우발적 충돌을 막기 위한 군사적 소통 창구는 기필코 가동되어야 한다. 또 9·19 군사합의의 정신을 계승하되, 변화된 현실에 맞는 ‘한국형 평화 프로세스’를 재설계해야 한다. ▪︎에너지·공급망 안보의 선제적 대응 중동 전쟁으로 인한 유가 폭등과 공급망 교란은 민생 경제에 직격탄이다. 이재명 정부의 핵심 철학인 ‘민생 우선’을 위해 중동 리스크를 관리하며 동북아 에너지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한다. ● 평화는 ‘관리’를 넘어 ‘창출’하는 것 평화는 상대의 굴복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상태가 아니다. 서로의 생존을 인정하고 갈등을 조정해 나가는 적극적인 행위다. 미국이 중동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동안, 우리마저 강대국의 전략적 셈법에만 운명을 맡긴다면 그 결과는 자명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비싼 무기 체계가 아니라, ‘평화가 곧 밥’이라는 냉철한 현실 인식과 이를 현실로 만드는 외교적 상상력이다. 끝으로 이재명 정부는 중동의 비극을 반면교사 삼아, 한반도를 동북아 평화 경제의 허브로 되살리기 위한 유연하고 능동적인 실용 외교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 글/사진: 이창호(李昌虎)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겸 국제다자외교평의회 대표(의장), 한중기자연맹 회장, 중국 곡부사범대학 겸직교수, 위해직업대학 객좌교수, 허베이미술대학 명예/종신교수, Marquis Who’s Who 등재 저자, 《새 시대를 이끄는 시진핑과 한중관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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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03
  • [토요분석] 윤석열, 책임의 언어와 설득의 정치...국민은 무엇을 판단해야 하는가
    [지구일보이창호 대기자]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입장문은 한 개인의 해명이라기보다 권력과 책임, 또 민주주의 해석을 둘러싼 정치적 선언문에 가깝다. 그는 비상계엄을 “국가를 위한 결단”으로 규정하면서도, 결과적으로 고통에 대해서는 사과했다. 이 두 문장은 우리나라 정치가 오랫동안 반복해 온 구조적 모순을 드러낸다. 지도자는 의도를 강조하고, 국민은 결과를 평가한다. 국민의 시선에서 판단 기준은 단순하다. 동기가 아니라 삶에 미친 영향이다. 정치적 정당성은 법률적 판단과 별개로 사회적 신뢰를 통해 완성된다. 사과가 진정성을 얻으려면 원인의 정당화가 아니라 결과의 책임 인정이 먼저여야 한다. 따라서 이번 입장문은 일부 지지층에게는 결단의 서사로 받아들여지겠지만, 중도층에게는 여전히 설득이 부족한 ‘자기 확신의 언어’로 들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 여야의 해석도 분명히 갈린다. 야권은 국가 위기 대응이라는 판단의 영역을 강조하며 역사적 평가를 주장하고, 여권은 절차와 헌정질서 훼손의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가 장기적으로 안정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승패의 확정이 아니라 '기준의 합의'다. 권력 행위의 정당성은 '목적·절차·결과' 세 요소가 동시에 충족될 때만 확보된다. 이번 본질은 특정 인물의 유무죄를 넘어선다. 위기 상황에서 국가 권력이 어디까지 허용되는가라는 '헌법 원칙'의 문제다. 우리 사회는 반복적으로 ‘정치적 판단’을 ‘역사적 평가’에 미뤄왔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미래의 평가가 아니라 현재의 기준으로 유지된다. 게다가 국민은 영웅도 악인도 아닌, 설득이 가능한 권력을 원한다. 결국 이 입장문은 결론이 아니라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지도자의 의도를 믿을 것인가, 제도를 지킬 것인가. 답은 어느 진영이 아니라 국민의 판단 속에서만 완성될 것이다. [원문=윤석열 전 대통령, 국민에게 드리는 글]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12.3 비상계엄을 선포한 저의 판단과 결정은 오직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 진정성과 목적에 대해서는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국가를 위한 구국의 결단을 내란 몰이로 음해하고 정치적 공세를 넘어 반대파의 숙청과 제거의 계기로 삼으려는 세력들은 앞으로도 더욱 기승을 부릴 것입니다. 구국의 결단이었으나 저의 부족함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많은 좌절과 고난을 겪게 해 드린 것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립니다. 사법부는 거짓과 선동의 정치권력을 완벽하게 배척하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장기집권을 위해 여건을 조성하려다 의도대로 되지 않아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특검의 소설과 망상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러나 제 진정성을 인정하면서도, 단순히 군이 국회에 갔기 때문에 내란이라는 논리는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사법부의 독립을 담보할 수 없고, 법과 양심에 의한 판결을 기대하기 곤란한 상황에서 항소를 통한 법적 다툼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지 깊은 회의가 듭니다. 대한민국에 자유민주주의가 굳건히 서고 법치주의가 바로 서는 날 제 판단과 결단에 대한 재평가를 다시 기대하겠습니다. 이제는 저에 대한 사법부의 예정된 결론과 정치권력의 핍박에 개의치 않습니다. 다만, 많은 군인과 경찰들, 공직자들이 수사와 재판을 받으며 어려움을 겪고 있고 그 가족들까지 그 고통에 좌절하는 현실이 너무도 가슴 아픕니다. 결단의 과정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제게 있습니다. 부디 그들에게 더 이상의 가혹한 시련과 핍박은 멈춰주길 바랍니다. 정치보복은 저에 대한 것으로 족합니다. 수사와 특검, 그리고 2차 특검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숙청하고 국가안보를 송두리째 무너뜨리려 하는 것입니까? 더는 민주주의를 훼손하지 말고 국민의 삶을 돌아보길 바랍니다. 저 윤석열은 광장의 재판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모든 책임을 짊어지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위대한 국민 여러분은 자유민주주의의 기치 아래 다시금 정의를 세워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끝이 아닙니다. 뭉치고 일어서야 합니다. 패배가 아닌 희망의 전진으로 대한민국을 다시 세우길 기도합니다. ● 읽고 끝내기보다 확인까지 이어지는 기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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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21
  • [사설] '계엄 심판'이 남긴 과제, 이제 양극단 정치를 넘어 미래로 나아가야...
    [지구일보] 2024년 12월 3일, 민주주의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갔던 그 참혹한 밤으로부터 443일이 흘렀다. 단 한 명의 '오판과 망상'에서 비롯된 비상계엄이라는 반헌법적 폭거는 우리 사회에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겼다. 국민은 불안에 떨었고, 군과 공무원들은 항명과 복종의 갈림길에서 고통받았다. 최근 내려진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중형 선고는 단순히 개인에 대한 처벌을 넘어, 권력을 가졌다는 이유로 '법과 절차'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시대가 끝났음을 선포하는 준엄한 역사적 심판이다. 하지만 사법적 단죄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치른 막대한 대가의 본질을 들여다봐야 한다. 지난 443일간 대한민국은 분열과 갈등의 늪에서 허덕였다. 한쪽에서는 과거의 퇴행적 권위주의를 옹호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분노를 동력 삼아 상대를 섬멸의 대상으로만 간주했다. 이제 우리는 이 비극적 사건을 매듭짓고, 그간 우리 정치를 지배해 온 '양극단의 진영 논리'라는 구체제와 결별해야 할 전환점에 서 있다. 지금의 대한민국 정치는 양 끝단에 서 있는 강성 지열들에 의해 과잉 대표되고 있다. 합리적인 '토론과 타협'이 사라진 자리에는 혐오와 낙인찍기만 남았다. 한쪽 극단은 헌법적 가치를 훼손한 세력을 비호하며 국가의 근간을 흔들고, 다른 쪽 극단은 개혁을 명분 삼아 또 다른 독단과 배제의 정치를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양극단의 정치는 결국 민생을 외면하게 만들고,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도 정쟁에만 몰두하게 하는 '정치의 실종'을 초래했다.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핵심 이익은 분명하다. 그것은 '헌법 정신의 회복'과 '중도·통합의 민주주의'를 복원하는 것이다. 권력자의 독단을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더욱 공고히 하는 동시에, 정당 정치가 특정 세력의 전유물이 아닌 보편적 시민의 삶을 대변하는 본연의 궤도로 돌아와야 한다. 증오를 먹고 사는 정치는 결코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과거의 어둠을 걷어내고 '새롭고 또 새롭게' 나아가야 한다. 이번 판결이 분열의 끝이 아닌, 사회적 대타협과 통합의 시작점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정치권은 상대 진영을 궤멸시키는 데 에너지를 쏟을 것이 아니라, 계엄 사태와 같은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보완하고 무너진 민생 경제를 살리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국민은 더 이상 양극단의 적대적 공생 관계에 이용당하지 않을 것이다. 443일의 긴 고통 끝에 확인한 것은 '법치와 민주주의는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가치'라는 사실이다. 이제 이 확고한 원칙 위에서 좌우의 진영 논리를 넘어, 상식이 통하고 다양성이 존중받는 성숙한 민주 공화국을 향한 발걸음을 재촉해야 한다. 그것이 '비상계엄'이라는 거대한 희생을 치른 우리 사회가 역사의 법정 앞에 내놓아야 할 진정한 답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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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20
  • [병오년 첫날] 멈출 줄 모르는 욕망의 전차, '지족(知足)'이라는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지구일보 이창호 발행인] "만족을 아는 사람은 가난해도 즐겁고, 만족을 모르는 사람은 부유해도 근심한다." 고 명심보감(明心寶鑑)에 밝혔다.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더 많이', '더 높이'를 외친다. 자본주의의 거대한 수레바퀴는 우리의 소유욕을 동력 삼아 굴러가고, 미디어는 남들과 비교하며 끊임없이 결핍을 느끼게 만든다. 하지만 우리는 한 번쯤 멈춰 서서 자문해 보아야 한다. 과연 얼마나 더 가져야 우리는 비로소 '만족'이라는 종착역에 도달할 수 있을까? 노자(老子)의 도덕경에는 '지족불욕 지지불태(知足不辱 知止不殆)'라는 명언이 등장한다. 만족함을 알면 욕을 당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다. 이 고전의 지혜는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정신적 빈곤을 겪는 우리에게 매서운 죽비 소리와 같이 다가온다. ■ 소유의 역설, 가질수록 커지는 갈증 심리학에는 '쾌락의 쳇바퀴(Hedonic Treadmill)'라는 용어가 있다. 새로운 물건을 사거나 성취를 이뤘을 때의 기쁨은 잠시뿐, 곧 그 상태에 적응되어 더 큰 자극을 원하게 된다는 법칙이다. 만족할 줄 모르는 마음은 마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다. 아무리 넓은 집에 살고, 최고급 차를 타며, 통장의 잔고가 늘어나도 마음의 중심에 '지족(知足)'이 자리 잡지 못하면 그 모든 것은 결핍의 증거가 될 뿐이다. 100을 가진 사람은 200을 가진 사람을 보며 불행해하고, 200을 가진 사람은 1000을 가진 사람을 보며 자신의 초라함을 한탄한다. 결국 만족을 모르는 삶은 타인의 시선에 저당 잡힌 채 끝없는 비교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삶이다. ■ 지족(知足), 무기력함이 아닌 '마음의 선택' 흔히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발전 없는 안주'나 '포기'로 오해하곤 한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지족은 성장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가진 것의 가치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마음의 근력'이다. 외부의 기준이 아닌 내면의 기준에 따라 현재의 삶을 긍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얻는다.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해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주변을 돌볼 여유가 생긴다. 반면, 늘 부족함에 시달리는 사람은 자신의 결핍을 채우느라 타인의 고통을 살필 겨를이 없다. 인성(人性)의 완성은 바로 이 '여유'에서 시작된다. 나를 채우고 남은 에너지가 타인을 향해 흐를 때, 우리 사회는 비로소 따뜻한 공동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족함'을 아는 삶을 위한 실천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만족의 미학을 삶에 적용할 수 있을까? ▪︎비교의 창을 닫고 성찰의 거울을 보라 SNS 속 화려한 타인의 삶은 편집된 단면일 뿐이다. 타인의 하이라이트와 나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비교하는 어리석음을 멈춰야 한다. ▪︎ '감사'의 구체화 막연한 감사가 아니라, 오늘 내가 누린 사소한 것들...따뜻한 커피 한 잔, 동료의 미소, 건강한 숨 가쁨에 구체적으로 이름을 붙여보자. ▪︎소유보다 존재에 집중하라 '무엇을 가졌는가'가 나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어가는가'에서 행복의 근거를 찾아야 한다. ■ 행복의 열쇠는 내 안에 있다 탐욕은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같아서 마실수록 갈증이 심해진다. "만족할 줄 모르면 아무리 많이 가져도 부족하다"는 말은 단순한 경구가 아니라 인류가 체득한 생존의 지혜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풍요는 창고에 쌓인 물건의 양이 아니라, 마음의 평온과 자족하는 태도에 있다. 오늘 하루, 내가 이미 손에 쥐고 있는 소중한 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자. 이미 충분하다는 깨달음이 올 때, 비로소 우리는 세상 그 누구보다 부유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진 우리 모두가 소유의 노예가 아닌, 지족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품격 있는 사회를 꿈꿔본다. [붙임] 이 기사가 마음에 닿으셨다면, 주변의 작은 광고 한 번 눌러 주시면 힘이 됩니다. 독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더 나은 기사와 정직한 보도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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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17
  • [李昌虎 政論] 이준석-전한길의 ‘맞장 토론’, 음모론의 유령을 걷어내는 계기 돼야...,
    [지구일보 이창호 대기자]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 제도를 향한 근거 없는 불신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다. 개혁신당 이준석 국회의원과 한국사 강사 전한길(본명 전유관)씨가 ‘부정선거’ 의혹을 두고 공개 토론을 벌이기로 한 것이다. 이 의원은 "부정선거론자들의 추태를 끝내겠다"며 강한 의지를 피력했고, 전 씨 또한 토론에 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를 단순히 정치인과 유명 강사 사이의 ‘설전’으로 치부하기에는, 우리 사회가 치러온 사회적 비용과 민주주의의 훼손 정도가 너무나 깊다. ■ 반복되는 ‘부정선거’ 괴담, 민주주의를 갉아먹는 독소 선거가 끝날 때마다 반복되는 부정선거 음모론은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병폐다. 통계적 수치의 미세한 차이를 근거로 들거나, 투표지 분류기 조작설 등 이미 수차례 검증을 통해 허구로 판명된 주장들이 유령처럼 배회한다. 이러한 음모론의 위험성은 단순히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국민들이 투표라는 신성한 행위를 통해 표출한 민의를 부정하게 만들고, 국가 기관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을 조장하며, 국민 공동체의 통합을 저해한다. 또 이번 논란은 영향력이 있는 사람을 통해 확산되었다는 점에서 우려한다. 역사를 가르치는 강사가 명확한 근거 없이 선거 시스템에 의구심을 표하는 것은 자칫 유권자들에게 왜곡된 민주주의관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 의원이 "추태를 끝내겠다"고 일갈한 배경에는, 더 이상 과학적 근거 없는 주장이 정치적 자양분으로 소비되는 상황을 방치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깔려 있다. ■ 논리가 아닌 신념의 영역으로 도피하는 음모론자들 부정선거론자들의 주된 논리는 대개 ‘내가 믿고 싶은 것’에 끼워 맞춘 단편적인 정보들의 조합이다. 대법원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수차례 재검표와 기술적 검증을 거쳐 "조작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음에도, 이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확증 편향에 갇혀 있다. ▪︎검증된 사실의 부정 대법원은 이미 지난 총선 관련 선거무효 소송에서 부정선거의 증거가 없음을 명확히 판결했다. ▪︎디지털 문해력의 부재 복잡한 선거 관리 프로세스를 이해하지 못한 채, 단순한 통계적 우연을 조작의 증거로 둔갑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 정치적 도구화 극단적인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해 음모론을 동력으로 삼는 일부 정치 세력의 책임 또한 가볍지 않다. ■ ‘맞장 토론’이 단순한 구경거리가 되지 않으려면 이번 토론은 감정적인 비난이 아닌, 철저히 데이터와 논리에 기반한 검증의 장이 되어야 한다. 이준석 의원은 그간 부정선거론자들의 허구성을 수학적·논리적으로 반박해온 대표적인 정치인이다. 전한길 강사 역시 본인이 제기한 의구심이 합리적 추론인지, 아니면 막연한 심증인지를 대중 앞에서 기필코 증명해야 할 책임이 있다. 단순히 누가 더 말을 잘하느냐를 가리는 승패의 장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이번 토론을 통해 우리 사회가 얻어야 할 결론은 분명하다. "민주주의 시스템은 음모론보다 견고하며, 근거 없는 불신은 공동체의 적"이라는 합의다. 정치권 또한 이번 사안을 구경하듯 방관할 것이 아니라, 선거 제도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허위 사실 유포에 대한 엄중한 사회적 경종을 울려야 한다. ■ 음모론의 시대, 이성으로의 회귀를 기대한다 민주주의는 서로를 향한 ‘신뢰’라는 토양 위에서만 꽃을 피울 수 있다. 선거 결과가 내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판 자체를 부정하는 행태는 민주주의의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이번 이준석 의원과 전한길 강사의 토론이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 내린 '음모론의 독소'를 제거하고, 합리적 이성과 과학적 토론이 승리하는 변곡점이 되기를 희망한다. 진실은 복잡한 수식 속에 숨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직시'하려는 용기 속에 있다. 더 이상 ‘부정선거’라는 낡은 레코드가 민주주의의 전진을 가로막게 두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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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10
  • [이창호 正論] 갈등의 시대, 외교의 해법은 소통이다..., 한미 관계의 전략적 재구성
    [지구일보 이창호 칼럼니스트] 신냉전의 파고가 거세다. 우크라이나와 중동의 전란(戰亂)은 끝이 보이지 않고, 미·중 패권 경쟁은 첨단 기술의 ‘장벽 세우기’를 넘어 진영 간 전면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가치'와 '이익'이 충돌하고 규범 기반의 국제질서가 흔들리는 지금, 대한민국은 건국 이래 가장 복잡한 고차방정식 앞에 서 있다. 그 해법의 중심에는 한미 동맹이 있다. 그러나 과거의 방식으로는 부족하다. 이제는 일방적 의존이나 단순한 안보 결속을 넘어, 변화된 지정학적 위상에 걸맞은 ‘전략적 재구성’이 절실한 시점이다. ◇ 안보 동맹에서 '기술·공급망 동맹'으로의 진화 과거 한미 동맹의 상징이 군사적 '방패'였다면, 미래의 동맹은 경제적 '창'과 '엔진'이 되어야 한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양자 컴퓨터 등 핵심 전략 기술은 이제 단순한 산업의 영역을 넘어 국가 안보의 핵심 요소로 부상했다. 미국이 추진하는 리쇼어링(Reshoring)과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 정책 속에서 한국은 대체 불가능한 파트너임을 기필코 증명해야 한다. 단순히 미국의 요구에 부응하는 수준을 넘어, 우리의 핵심역량과 미국의 원천 기술을 합해 글로벌 공급망의 주도권을 공동 행사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는 미국 대외 변수에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기술 결속력'을 확보하는 길이다. ◇ 북핵 대응, '확장억제'의 실행력 담보가 최우선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는 더 이상 가상의 위협이 아니다. '워싱턴 선언'과 '핵협의그룹(NCG)'의 출범은 진전된 성과지만, 우리 국민이 느끼는 안보 불안을 완전히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다. 이제는 선언적 의미를 넘어 실질적인 '핵 공유에 준하는 실행력'을 담보해야 한다. 유사시 미국 핵 자산의 전개 과정에 우리 군의 역할을 확대하고, 정보 공유와 공동 기획의 수준을 한 차원 높여야 한다. 동맹의 신뢰는 말뿐인 약속이 아니라, 구체적인 매뉴얼과 행동에서 나온다. ◇ '글로벌 중추국가'로서의 다자외교 전개 한미 관계의 강화가 곧 중국과의 절연을 의미해서는 절대 안 된다. 오히려 든든한 한미 동맹을 지렛대 삼아 대중 관계의 공간을 확보하는 '포괄적 지혜'가 필요하다. 한국은 '글로벌중추국가(GPS)'로서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연대하는 동시에,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와의 접점을 넓혀야 한다. 기후 위기, 에너지 전환, 보건 안보, 안보 경제 등 국제사회가 직면한 공통 과제에서 한국이 주도적인 해법을 제시할 때, 미국의 전략적 파트너로서 우리의 가치는 더욱 상승한다. "강대국 사이의 끼인 국가가 아니라, 스스로 규칙을 만드는 ‘룰 메이커(Rule Maker)’로 거듭나는 것, 그것이 한미 관계 재구성의 종착지다." ◇ 능동적이고 당당한 'K-외교'의 길 외교는 생물(生物)이다. 고정된 틀에 갇히는 순간 도태된다. 우리는 미국에 무엇을 얻어낼 것인가를 고민하기보다, 미국이 우리와 함께할 때, 어떤 이익을 얻을 수 있는지를 먼저 제시하는 능동적 외교로 전환해야 한다. 갈등의 시대, 소통은 선택이 아닌 생존이다. 한미 동맹을 넘어, 새로운 100년을 향한 여정은 '전략적 유연성'과 '원칙 있는 외교'가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 학계 그리고 시민단체는 정파적 이해를 떠나 국익이라는 단일 깃발 아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지금이 바로 그 골든타임이다. 글/사진: 한중교류촉진위원회 위원장, 국제다자외교평의회 대표의장, 한중기자연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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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28
  • [이창호 視線] 큰 별이 지다, 한국 민주주의의 거산(巨山) 이해찬을 보내며...,
    “시대의 정수리를 꿰뚫던 그 서슬 퍼런 원칙주의, 이제는 영면의 길로” [지구일보 이창호 대기자] 한국 현대사의 굽이마다 거대한 이정표를 세웠던 '강철의 전략가'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유명을 달리했다. 한 시대의 마감을 알리는 비보 앞에 우리는 단순히 한 정치인의 죽음을 넘어, 한국 민주주의의 한 축이 무너져 내리는 비통함을 금할 길 없다. 그는 민주화의 야성을 간직한 채 제도권의 경륜을 완성한, 실로 우리 시대가 낳은 '민주주의의 산 증인'이었다. ● 1987년 체제의 설계자, 그리고 '송곳' 같았던 열정 그의 삶은 곧 한국 민주주의의 투쟁사와 궤를 같이한다. 유신 독재에 맞선 학생 운동가에서 출발해 김대중ㆍ노무현ㆍ문재인ㆍ이재명 대통령을 만든 전략의 킹메이커로, 스스로는 행정의 수반으로서 국가의 기틀을 다졌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송곳'이라 불렀다. 타협 없는 원칙, 상대의 허점을 꿰뚫는 예리한 논리, 그리고 국가 운영에 대한 방대한 지식은 그를 대체 불가능한 정치적 거목으로 만들었다. 지구일보가 주목하는 그의 가치는 단순히 '승리의 기록'에 있지 않다. 그는 정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시스템'으로 정립하려 했던 드문 정치가였다. 5공 청문회에서의 활약은 권력의 부조리를 단죄하는 의회의 권위를 세웠고, 교육부 장관 시절의 개혁은 기득권의 저항 속에서도 공공성의 가치를 지키려는 고독한 결단이었다. ● 책임 총리의 전형, 행정의 품격을 높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그는 '책임 총리'라는 생소한 개념을 헌법적 가치로 현실화했다. 대통령의 신뢰를 바탕으로 국정 전반을 아우르는 그의 통찰력은 행정부의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비록 그 엄격함이 때로는 독선으로 비치기도 했으나, 그것은 사익이 아닌 공적 가치를 수호하려는 완고한 책임감의 발로였다. 그는 정치를 '세력을 모으는 기술'이 아니라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도구'로 여겼다. 게다가 민주당의 20년 집권론을 주창했던 것도 권력욕이 아닌, 자신이 믿는 민주적 가치가 뿌리내리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물리적 시간을 확보하려 했던 고심의 결과였다. ● 거인이 남긴 숙제... 민주주의는 아직도 길 위에 있다 이제 그 '큰 별'은 졌다. 하지만 그가 남긴 궤적은 밤하늘의 북극성처럼 우리 앞에 남았다. 그가 평생을 바쳐 지키려 했던 민주주의는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갈고 닦아야 할 과정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해찬이라는 이름 석 자는 우리에게 묻는다. 정치의 본령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떤 공동체를 꿈꾸는가. 진영의 논리가 민생을 압도하고, 대화보다는 혐오가 난무하는 오늘의 현실에서 그의 부재는 더욱 크게 다가온다. 그가 가졌던 원칙과 국가를 향한 뜨거운 애정이 새삼 그리워지는 이유다. "정치는 허업(虛業)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실업(實業)이어야 한다." 그가 생전에 몸소 보여주었던 이 평범하고도 위대한 진리를 가슴에 새긴다.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이자, 영원한 전략가 이해찬. 당신이 일구어 놓은 옥토 위에서 후대들은 다시금 민주주의의 꽃을 피울 것이다. 거산(巨山)의 안식을 빈다.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안고 갔던 당신, 이제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평안히 잠드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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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26
  • [지구일보] 신뢰를 얻는 길, 공자가 말한 리더의 조건
    [지구일보 이창호 칼럼니스트] 우리는 흔히 신뢰를 결과로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평판, 혹은 지위와 성과가 쌓이며 얻어지는 부수적 산물처럼 여긴다. 공자는 신뢰를 결과가 아니라 출발점으로 보았다. 『논어』에서 그는 “사람이 믿음이 없으면 그가 무엇으로 설 수 있겠는가(人而無信 不知其可也)”라고 했다. 신뢰는 관계의 장식이 아니라, 인간과 사회를 지탱하는 기둥이라는 뜻이다. 신뢰의 첫 출발은 정직과 투명함이다. 공자는 “군자는 속이지 않고, 소인은 숨긴다”고 보았다. 말과 행동이 다르고, 과정이 불분명한 사람에게 신뢰가 쌓일 수는 없다. 투명함은 단순한 도덕적 미덕이 아니라 조직과 공동체를 안정시키는 실질적 자산이다. 오늘의 사회에서 정직은 더 이상 순진함이 아니라, 가장 전략적인 선택이다. 그러나 정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신뢰는 결국 진짜 실력에서 완성된다. 공자는 “말은 신중하고, 일은 민첩해야 한다(君子欲訥於言 而敏於行)”고 했다. 과장된 언변보다 묵묵히 결과로 증명하는 태도, 이것이 신뢰의 핵심이다. 실력 없는 도덕은 공허하고, 실력 없는 진정성은 오래가지 못한다. 또 하나 중요한 요소는 결과에 대한 책임이다. 공자는 지도자의 덕목으로 ‘책임지는 용기’를 중시했다. 잘못을 남에게 돌리지 않고, 성과와 실패 모두를 감당하는 자세는 신뢰를 쌓는 가장 빠른 길이다. 책임을 회피하는 순간, 신뢰는 즉시 균열을 일으킨다. 신뢰는 말로 쌓이지만, 책임으로 유지된다. 신뢰는 현재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미래를 만들어내는 능력과 직결된다. 대전공자는 “먼 장래를 생각하지 않으면 가까운 근심이 반드시 생긴다(不慮遠者 必有近憂)”고 경고했다. 신뢰받는 사람은 오늘의 이익보다 내일의 가치를 본다. 단기 성과에 집착하지 않고, 지속 가능한 방향을 제시할 때 사람들은 그를 믿고 따라온다. 그래서 시간은 신뢰받는 사람의 편이다. 조급한 사람은 성과를 앞당기려 신뢰를 깎아 먹지만, 신뢰받는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단단해진다. 공자가 말한 군자는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 간다. 정직하고, 실력이 있으며, 책임을 지고, 미래를 설계하는 사람. 그 사람 곁에는 결국 사람이 남고, 시간은 그를 증명한다. 오늘 우리가 묻는 질문은 단순하다. 어떻게 하면 신뢰를 얻을 수 있는가. 공자의 답은 명확하다. 신뢰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이며, 전략이 아니라 인격의 총합이다. 그리고 그 인격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신뢰를 쌓는 길을 선택한 사람에게, 시간은 반드시 우군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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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21
  • [이창호正論]이재명 정부의 한일 셔틀 외교... '실용적 동반자'를 향한 전략적 대전환
    [지구일보 이창호 대기자] 2026년 벽두, 한일 관계는 거대한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과거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 윤석열 전 정부의 대일 정책을 '제로 셔틀 외교'라 칭하며 강하게 비판했던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후 보여주고 있는 행보는 가히 파격적입니다. 그는 "과거를 직시하되 미래를 향해 손을 잡아야 한다"는 원칙 아래, 한일 셔틀 외교의 복원을 넘어 이를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로 재정의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한일 셔틀 외교의 다층적 의미와 그것이 그려낼 동북아의 미래를 새롭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 셔틀 외교의 재해석, '굴욕'에서 '실용'으로의 이동 이재명 대통령의 대일 외교 기조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전략적 유연성'입니다. 과거 야당 시절의 강경했던 목소리는 집권 후 국정 운영의 책임감과 맞물려 정교한 실용주의로 진화했습니다. 이 대통령이 추진하는 한일셔틀 외교는 단순한 회담의 복원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는 한미일 삼각 공조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한국의 '목소리'를 키우기 위한 지렛대이자,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지정학적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한 철저한 포석입니다. 이 대통령은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의 정신을 계승하면서도, 이를 인공지능(AI)시대에 걸맞게 업그레이드한 '영리한 공동선언'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는 과거사 문제로 인한 감정적 소모를 최소화하고, 반도체·배터리·AI 등 첨단 산업에서의 공급망 협력과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가입과 같은 경제 실익을 최우선시하겠다는 의지의 발현입니다. ● 과거사와 미래 가치의 병행, '투트랙(Two-Track)'의 정착 이재명표 한일셔틀 외교의 또 다른 특징은 과거사 문제를 회피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이 미래의 발목을 잡지 않게 관리하는 '분리 대응'에 있습니다. 최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 피해자 신원 확인을 위한 실무 협의에 합의한 것은 매우 상징적입니다. 이는 강경 일변도의 민족주의적 접근에서 벗어나, 인도주의적이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통해 일본으로부터 성의 있는 조치를 이끌어내려는 세련된 외교술의 결과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행보가 국내 보수층과 진보층 모두를 설득할 수 있는 '중도적 합리성'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역사를 잊지 않되, 그 아픔을 미래지향적인 에너지로 치환하려는 시도는 한일 관계의 고질적인 '냉온탕' 악순환을 끊어낼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 동북아 질서의 설계자, 한·중·일 협력의 교량 역할 이재명 정부의 한일셔틀 외교는 단지 일본만을 향해 있지 않습니다. 이 대통령은 방일 직전, 중국을 방문하여 시진핑 주석과 한중 관계의 전면 복원을 선언했습니다. 이는 한일 셔틀 외교를 통해 다져진 신뢰를 바탕으로 '한·중·일 3각 협력' 체제를 주도하겠다는 거대한 구상을 담고 있습니다. 일본과 미국에 편중된 외교가 아닌, 중국과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까지 아우르는 '전략적 자율성' 확보야말로 이재명 실용외교의 진면목입니다. 향후 일본과의 긴밀한 소통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한국의 가치를 높이는 동시에, 중국과의 관계 설정에서도 안정적인 핵심을 확보하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 지속 가능한 신뢰의 시대로 이재명 대통령이 그리는 한일 관계의 미래는 '앞마당을 공유하는 이웃'과 같습니다. 저출생, 고령화, 지방 소멸 등 양국이 공통으로 직면한 사회적 난제에 공동 대응하고, 미래 세대가 편견 없이 교류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한일 셔틀 외교의 궁극적인 지향점입니다. 물론 일본 정계의 우경화와 여전한 역사 인식 차이는 여전히 불안 요소입니다. 이념에 매몰되지 않고 '국익'이라는 냉철한 잣대로 일본을 상대하는 이재명 정부의 행보는 과거 어느 정부보다 견고하고 안정적인 한일 관계를 구축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일 셔틀 외교의 미래는 단순히 정상들이 오가는 횟수에 있지 않습니다. 그 여정 속에 얼마나 많은 실질적 협력의 결실을 채워넣느냐가 향후 동북아 평화와 번영의 향배를 결정지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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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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